선운사 야생차와 부풍향차보를 만나다. / Tea Magazine

2018. 3. 30. 15:57차 이야기



        

[Travel] 선운사 야생차와 부풍향차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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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야생차와 부풍향차보’

Dated : 2016-11-30  l   Published :  TeaMagazine.net   티매거진 조윤실 기자

 

 

카멜리아 Camellia

선운사에서 세미나가 있다고 송해경 교수(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께서 연락을 주셔서 초겨울 비가 촉촉이 내리는 길을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를 마음으로 읊으며 선운사를 향한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 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봄부터 선운사 대웅전 뒤의 동백숲과 야생차밭에 가보려 했는데 이 늦은 계절에라도 찾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계절의 순환이 늦어서인지 11월 하순의 문턱에 아름다운 단풍나무 숲길과 전나무, 동백나무, 차나무의 붉은색과 푸른색 잎들이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낸다. 게다가 Camellia들이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차나무(Camellia sinensis)와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는 같은 차나무과 식물로서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도솔산 언저리에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는 차나무가 있고 그 바로 뒤쪽으로는 동백나무 숲도 있다. 둘 다 흰색과 붉은색으로 화답하듯이 피어 있는 차꽃과 동백꽃을 동시에 보는 것은 이곳에서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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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차밭

초겨울 비도 귀찮다 않고 전국에서 모인 열정을 가진 학우들은 송 교수님의 출석 부르기에 이어 도솔암 수종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약 6km에 이르는 길을 차를 타고 오른다. 선운사 골짜기에는 야생차 밭이 3만여 평 되고, 약 25년 전에 우룡이라는 스님이 조성한 차밭이 6만여 평 된다는 설명과 함께 곳곳에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한 명소들이 있다는 얘기며, 선운사 대웅전 뒤의 동백나무숲 자랑과 도솔암은 풍광이 빼어나기도 하지만 기가 샘솟는 곳이란 말씀을 하다 보니 일행을 실은 차는 어느덧 도솔암에 이른다.

도솔암 바로 밑에 ‘도솔암 찻집’이 있다. 암자의 스님께서 세미나실로 내주신 차방도 있다지만 ‘도솔암 찻집’에 들어가 앉아 보고 싶은 나의 취향에 따라 차 한잔 주문해 본다. 찻집이란 차맛도 일품이어야 하지만 주인의 배려도 매우 중요한데, 도솔암 찻집은 찻집 주인이 조금 까다로운듯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인정의 모자람은 창밖 풍광을 보며 눈맛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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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향차보 : 효능에 맞춘 블렌딩 차

한국 차문화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고창 도솔산 자락 선운사 야생차밭의 차라고 생각한다. 송 교수님께서 마련하신 세미나의 핵심 주제도 선운사에 자생하는 차와 관련된 ‘부풍향차보’라 하겠다. 몇 년 전 정민 교수가 쓴 <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에서 읽은 바가 있지만, 이런 초겨울 즈음하여 이운해가 차를 따오게 한 시기와 비슷한 계절에 운무에 싸인 도솔암 차방에서 야생차밭을 굽어보며 고전을 이야기하고 선각자의 행적을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송 교수님의 여전하신 열강과 특별한 차를 나누는 시간은 세미나에 참석한 우리를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풍향차’가 어떤 차였을지 가늠해 보며, 늘 블렌딩을 궁리하는 입장이라 차와 허브의 블렌딩이 바로 이곳에서 비롯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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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전북 부안의 옛 이름) 현감으로 부임한 이운해(1710~?)는 선운사 일대에 나는 차나무의 찻잎을 채취해 오게 해서 일곱 가지 향차를 만든다. 차에 대해 많은 식견과 향초들의 성질과 맛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이운해의 저술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풍향차’는 황윤석(1729~1791)이 일기장 <이재난고>에 그림을 곁들여서 간략히 핵심 내용을 기록해서 전해진 것인데, 이 사실이 기록의 중요성과 가치를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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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난고>에 기록된 ‘부풍향차보’ 는 다본, 다명, 제법, 다구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부분은 다명과 제법인데, 서문에 보면 “제각기 주된 효능이 있어 일곱 종류의 상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상차란 쉽게 말하면 상비약차인 셈이다. ‘風 寒 暑 熱 感 嗽 滯’ (풍 맞고, 춥고, 덥고, 열나고, 감기 들고, 기침하고, 체했을 때)의 칠향차는 순서대로 감국차, 창이자차/계피차, 회향차/오매차, 백단향차/황련차, 용뇌차/ 향유차, 곽향차/귤피차, 상백피차/산사육차, 자단향차를 말하는데 모두 선운사 작설차에 향초 일곱 가지를 가미한 차이다. 한국차문화사를 살필 때 효능에 맞춘, 멋진 목적별 티블렌딩의 효시임이 분명하다. 정민 교수는 향유를 목이버섯이라고 적고 있지만, 향유나 곽향은 모두 꿀풀과의 식물로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는 허브(약용 식물 )이다.

 

 

백파율사, 초의 선사, 그리고 추사를 만나는 길

선불교를 강의하고 호남의 선백으로 불린 백파 긍선은 <선문수경>을 저술하여 초의 선사와 논쟁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성으로 일컫는 초의 선사와 절친한 관계였던 추사까지 참여하여 ‘백파망증 15조’를 지었건만, 추사가 타계하기 일 년 전에 백파율사 비문을 쓰게 되는 아이러니칼한 대학자들의 모습은 미소를 짓게 한다.

세미나 마치고 도솔암에서 내려오는 길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거리낌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길이다. 수령 600년 넘은 장사송, 진흥굴 거쳐서 선운사 지나 바로 내려오니 왼편 숲길 안에 제각기 늘어선 부도와 선사들의 행적이 기록된 비석들은 역사의 빛깔을 입고 조화로운 모습으로 행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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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웅혼한 힘, 힘찬 필치, 방정한 해서체라고 극찬하고 <완당평전>에서는 완당 만년의 최고 가는 해서, 행서의 금석문이라고 말한다. 부도밭 뒤로는 야생 차밭이 그 뒤 언덕엔 동백나무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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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 함께한 고창 출신의 학우는 자신이 고창 사람이며 고창에 사는 게 참 자랑스럽단다. 먹을 게 많고 볼거리도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그래서인지 선운사 올라오는 중에 여러 기의 고인돌을 보며 아득한 옛날에도 ‘이 곳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나 보다‘하는 생각을 했다. 선운사 동백꽃을 그리며 달려온 길이, 돌아가는 길에는 오늘의 향차, 나만의 블렌딩차를 꿈꾸는 길이 됐다.

 

 


       

[Travel] 선운사 야생차와 부풍향차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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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야생차와 부풍향차보’

Dated : 2016-11-30  l   Published :  TeaMagazine.net   티매거진 조윤실 기자

 

 

카멜리아 Camellia

선운사에서 세미나가 있다고 송해경 교수(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께서 연락을 주셔서 초겨울 비가 촉촉이 내리는 길을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를 마음으로 읊으며 선운사를 향한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 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봄부터 선운사 대웅전 뒤의 동백숲과 야생차밭에 가보려 했는데 이 늦은 계절에라도 찾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계절의 순환이 늦어서인지 11월 하순의 문턱에 아름다운 단풍나무 숲길과 전나무, 동백나무, 차나무의 붉은색과 푸른색 잎들이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낸다. 게다가 Camellia들이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차나무(Camellia sinensis)와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는 같은 차나무과 식물로서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도솔산 언저리에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는 차나무가 있고 그 바로 뒤쪽으로는 동백나무 숲도 있다. 둘 다 흰색과 붉은색으로 화답하듯이 피어 있는 차꽃과 동백꽃을 동시에 보는 것은 이곳에서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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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차밭

초겨울 비도 귀찮다 않고 전국에서 모인 열정을 가진 학우들은 송 교수님의 출석 부르기에 이어 도솔암 수종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약 6km에 이르는 길을 차를 타고 오른다. 선운사 골짜기에는 야생차 밭이 3만여 평 되고, 약 25년 전에 우룡이라는 스님이 조성한 차밭이 6만여 평 된다는 설명과 함께 곳곳에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한 명소들이 있다는 얘기며, 선운사 대웅전 뒤의 동백나무숲 자랑과 도솔암은 풍광이 빼어나기도 하지만 기가 샘솟는 곳이란 말씀을 하다 보니 일행을 실은 차는 어느덧 도솔암에 이른다.

도솔암 바로 밑에 ‘도솔암 찻집’이 있다. 암자의 스님께서 세미나실로 내주신 차방도 있다지만 ‘도솔암 찻집’에 들어가 앉아 보고 싶은 나의 취향에 따라 차 한잔 주문해 본다. 찻집이란 차맛도 일품이어야 하지만 주인의 배려도 매우 중요한데, 도솔암 찻집은 찻집 주인이 조금 까다로운듯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인정의 모자람은 창밖 풍광을 보며 눈맛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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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향차보 : 효능에 맞춘 블렌딩 차

한국 차문화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고창 도솔산 자락 선운사 야생차밭의 차라고 생각한다. 송 교수님께서 마련하신 세미나의 핵심 주제도 선운사에 자생하는 차와 관련된 ‘부풍향차보’라 하겠다. 몇 년 전 정민 교수가 쓴 <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에서 읽은 바가 있지만, 이런 초겨울 즈음하여 이운해가 차를 따오게 한 시기와 비슷한 계절에 운무에 싸인 도솔암 차방에서 야생차밭을 굽어보며 고전을 이야기하고 선각자의 행적을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송 교수님의 여전하신 열강과 특별한 차를 나누는 시간은 세미나에 참석한 우리를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풍향차’가 어떤 차였을지 가늠해 보며, 늘 블렌딩을 궁리하는 입장이라 차와 허브의 블렌딩이 바로 이곳에서 비롯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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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전북 부안의 옛 이름) 현감으로 부임한 이운해(1710~?)는 선운사 일대에 나는 차나무의 찻잎을 채취해 오게 해서 일곱 가지 향차를 만든다. 차에 대해 많은 식견과 향초들의 성질과 맛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이운해의 저술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풍향차’는 황윤석(1729~1791)이 일기장 <이재난고>에 그림을 곁들여서 간략히 핵심 내용을 기록해서 전해진 것인데, 이 사실이 기록의 중요성과 가치를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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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난고>에 기록된 ‘부풍향차보’ 는 다본, 다명, 제법, 다구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부분은 다명과 제법인데, 서문에 보면 “제각기 주된 효능이 있어 일곱 종류의 상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상차란 쉽게 말하면 상비약차인 셈이다. ‘風 寒 暑 熱 感 嗽 滯’ (풍 맞고, 춥고, 덥고, 열나고, 감기 들고, 기침하고, 체했을 때)의 칠향차는 순서대로 감국차, 창이자차/계피차, 회향차/오매차, 백단향차/황련차, 용뇌차/ 향유차, 곽향차/귤피차, 상백피차/산사육차, 자단향차를 말하는데 모두 선운사 작설차에 향초 일곱 가지를 가미한 차이다. 한국차문화사를 살필 때 효능에 맞춘, 멋진 목적별 티블렌딩의 효시임이 분명하다. 정민 교수는 향유를 목이버섯이라고 적고 있지만, 향유나 곽향은 모두 꿀풀과의 식물로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는 허브(약용 식물 )이다.

 

 

백파율사, 초의 선사, 그리고 추사를 만나는 길

선불교를 강의하고 호남의 선백으로 불린 백파 긍선은 <선문수경>을 저술하여 초의 선사와 논쟁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성으로 일컫는 초의 선사와 절친한 관계였던 추사까지 참여하여 ‘백파망증 15조’를 지었건만, 추사가 타계하기 일 년 전에 백파율사 비문을 쓰게 되는 아이러니칼한 대학자들의 모습은 미소를 짓게 한다.

세미나 마치고 도솔암에서 내려오는 길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거리낌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길이다. 수령 600년 넘은 장사송, 진흥굴 거쳐서 선운사 지나 바로 내려오니 왼편 숲길 안에 제각기 늘어선 부도와 선사들의 행적이 기록된 비석들은 역사의 빛깔을 입고 조화로운 모습으로 행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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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웅혼한 힘, 힘찬 필치, 방정한 해서체라고 극찬하고 <완당평전>에서는 완당 만년의 최고 가는 해서, 행서의 금석문이라고 말한다. 부도밭 뒤로는 야생 차밭이 그 뒤 언덕엔 동백나무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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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 함께한 고창 출신의 학우는 자신이 고창 사람이며 고창에 사는 게 참 자랑스럽단다. 먹을 게 많고 볼거리도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그래서인지 선운사 올라오는 중에 여러 기의 고인돌을 보며 아득한 옛날에도 ‘이 곳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나 보다‘하는 생각을 했다. 선운사 동백꽃을 그리며 달려온 길이, 돌아가는 길에는 오늘의 향차, 나만의 블렌딩차를 꿈꾸는 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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