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우리 차는 이 땅에서 난 자생차(自生茶)

2018. 4. 22. 02:27차 이야기

원필자: 而山 河 相演(1934~2000)
정 리: 春樹

우리 차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차나무의 원산지 등에 대하여 많은 이설(異說)들이 있으나, 필자는 우리 차의 강토자생설(疆土自生說)을 꾸준히 주장하여 왔습니다.

1. 이설(異說)들

(1) 차의 기원에 관한 이설(異說)들
차의 원산지에 대하여 중국의 곤륜산이나 인도의 설산 즉 히말라야산맥이라는 설이 있어 왔는데, 히말라야산은 신생대 즉 6천5백만년 이후에 생긴 산이므로 차나무의 원산지가 될 수 없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중국인들은 운귀고원에서 발견되는 거차수(巨茶樹)를 예로 들면서 중국의 서남부지역을 차의 원산지로 규정하고 있으나 반론의 여지가 많은 주장입니다.

(2) 우리 차의 유래에 관한 그릇된 견해들
사계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차가 인도 또는 중국으로부터의 유입되었다는 외래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도유래설은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에 있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왕후인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차종자를 가져와 김해 백월산(白月山)에 심었다”라는 내용에 근거한 이론입니다. <삼국유사>의「가락국기」등에는 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긴 하나, 정확한 근거가 박약한 주장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중에는 "입당회사 대렴이 차종자를 가지고 와서 왕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그 이전에도 차를 마신 기록이 엄연히 있으므로 우리 차의 시발(始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흔히 있는 일처럼 외국에서 배나무나 사과나무 신품종을 들여와서 어느 지방에 심게 되었다는 정도의 주장일 뿐입니다.

<유사>나<사기>의 저자들은 인도나 중국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함과 자기 땅에 자라는 차나무를 알고자 하는 주체적 긍지와 자주의식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2. 반론(反論)

(1) 우리강토에서 예로부터 자생하는 차나무를 야생차(野生茶) 운운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표현입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차나무는 산야의 아무데서나 자라는 잡목이 아닙니다. 차나무는 사람에게 유익한 식약(食藥)원료로서 중생대(中生代; 2억5천만년전~6천5백만년전)이후부터 이 땅에 자라온 온 자생수(自生樹)이자, 선사시대부터 우리 겨레가 길러 마셔온 특작물(特作物)입니다.

한 때 우리나라 영남과 호남지방의 산간계곡(山間溪谷)에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의 차나무가 방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그 대부분이 주민들에 의해서 경제적 가치창출을 위해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2) 차나무는 실화상봉(實花相逢)하는 중생대 식물이고,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고생대 이전의 지층입니다. 아시아 대륙에 있어서 고생대 지층은 우랄산맥, 천산산맥, 흥안령 그리고 우리강토의 백두대간(白頭大幹) 등과 그 지맥들입니다.

중국의 서남부에서 우리나라의 남부와 일본의 중남부를 아우르는 조엽수림(照葉樹林)지대 가운데 우리나라의 남부가 가장 오래되고 지질학적으로도 안정된 지역입니다.

중국의 곤륜산, 인도의 설산 등 소위 히말라야산맥이나 일본의 후지산은 신생대 즉 6천5백만년 이후에 생긴 산이므로 차나무의 원산지가 될 수 없으며, 또한 만년설을 정상에 이고 있기 때문에 빙하의 침식 일어나는 등 토양 및 기후조건이 차나무 자생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종래의 차의 중국 원산지설과 인도 원산지설은 지질학적 및 식물생태적론적으로 입론의 근거가 희박합니다.


(3) 차나무 원종은 소엽관목(小葉灌木)이지 대엽교목(大葉喬木)이 아닙니다.

원래 나무와 과실의 원종은 잎과 과실이 작고 향기가 짙으며 육질이 치밀한 것입니다. 사과의 원종인 산사(아고배), 배의 원종인 돌배, 감의 원종인 고염, 밤의 원종인 산밤 등은 모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삼, 머루(포도), 다래(키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나무는 열대지방 및 아열대지방에서는 대엽종과 중엽종이 주로 자라고, 사계가 분명한 온대지방으로 북상할수록 소엽종이 주로 자랍니다.

우리 토종차나무는 중국, 일본 등지의 소엽종 차나무에 비하여 그 크기가 작으며 잎도 작고 가느다랗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의 본질인 색, 향, 미와 기에 있어서도 우리 토종차가 우월하므로 고려차는 고려인삼과 같이 원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수렵과 목축을 생업으로 삼는 기마족(騎馬族)들은 차를 필수품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서 오는 영양의 불균형을 차가 보완하기 때문입니다. 우랄-알타이어계 인종인 황인종(지나어를 쓰는 한족(漢族)은 제외)은 인류가 처음 불을 사용하게 된 후기 신석기시대부터 차를 마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고분출토물중에 차기(茶器)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인류문화사적 견지에서 볼 때에도 결코 인도 또는 중국이 차의 발상지 즉 근원지 (根源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대 인도의 석가의 제자 중 약사보살인 기파(耆婆)의 딸 무덤에서 솟은 나무가 차 나무였다는 전설이 차의 기원(起源)이 될 수 없으며, 전국시대 중국의 명의(名醫)인 편작(扁鵲)의 무덤에서 솟았다는 차나무가 불로초(不老草)로 되었다는 고사로서 차의 기원을 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염제신농(炎帝神農)의 저서라는 신농본초(神農本草)에 차(茶)가 상약에 포함되어 있음을 근거로 하여 차의 기원을 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5) 지리산남록(智異山南麓)에는 차나무가 자생군락(自生群落)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 서호지방, 일본 시스오까지방, 인도 아샘지방 등 세계적인 차생산대단지에는 원래 차나무가 자생하던 곳이 아닙니다. 인간이 경제적 목적을 위하여 심어 가꾸어 대단지로 육성한 것입니다.

3. 맺음말

이상 다섯 가지 예를 들어 우리 차의 자생설을 피력하였으나, 역부족과 천학비재함을 절감하는 바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차에 대한 관심과 차 문화에 관한 논객(論客)들은 많으나 우리 차의 본질에 관한 연구가 빈약하고, 외래문화에 휩쓸려 자주성을 잃고 살아온 이 땅의 지식인들은 사이에서는 기존의 폐습을 극복하지 못한 채 국제화다 세계화다 하는 부화뇌동의 풍조만 팽배할 뿐입니다. 차제에 차와 관련된 다방면의 학자들이 우리 차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우리 차를 민족자원으로 개발하고 진흥시킬 것을 열망하는 바입니다.

차나무는 늦가을 초겨울에 하얀 꽃을 피워 북풍한설 속에서도 벌, 나비를 불러 모아 열매를 맺고, 봄여름가을을 지나 새 가지에 꽃이 피어야만, 지난 겨울에 맺은 열매가 영글어 열매와 꽃이 서로 만납니다. 그래서 모자상봉 즉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 부릅니다.

해 바뀌어 차나무에 새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조상들이 기나긴 외세의 침략을 견디고 이겨내며 가꾸어 온 이 강산과 문화가, 새 가지에 새 열매가 소담스럽게 영글듯이 결실 맺게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이산다농>(www.hadongtea.co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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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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