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代≪十六湯品≫에 나타난 沃茶法 考察

2018. 9. 6. 23:12차 이야기



       

唐代≪十六湯品≫에 나타난 沃茶法 考察| 중국인문과학

樂民(장달수) | 조회 38 |추천 0 | 2018.07.22. 19:54


唐代≪十六湯品≫에 나타난 沃茶法 考察

유 동 훈**


―――――― < 目次> ――――――

Ⅰ. 들어가는 말
Ⅱ. ≪十六湯品≫에 나타난 沃茶法
1. ≪十六湯品≫의 저술연대와 구성
2. 沃茶法의 특징
3. 沃茶法의 발전
Ⅲ. 나가는 말
――――――――――――――――――


Ⅰ. 들어가는 말
   
   飮茶文化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중국은 차문화의 발상지로서 다양한 제다법(製茶法)이 개발되었고 그에 따라서 각 시대별로 고유한 飮茶法이 생겨나고 발전하였다.

   중국의 음차법은 일반적으로 唐代(618-907)에는 병차(餠茶)를 가루내어 솥에서 끓여 마시는 자차법(煮茶法)이었으며, 宋代(960-1279)에는 연고차(硏膏茶)를 곱게 가루내어 잔(盞)에서 차시(茶匙)나 차선(茶筅)으로 유화(乳花)를 만들어 마시는 점차법(點茶法)이었다. 그리고 明代(1368-1644)부터는 산차(散茶)를 그대로 우려 마시는 포차법(泡茶法)으로 발전하였다.

   본고에서 논하고자하는 ≪십육탕품(十六湯品)≫은 唐代 소이(蘇廙)가 저술한 다서(茶書)로 음차시(飮茶時) 사용하는 끓인 물인 탕(湯)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내용 가운데 찻가루를 잔(盞)에 넣고 탕병(湯甁)의 물줄기로 풀어 마시는 ‘옥차법(沃茶法)’이라는 새로운 음차법이 나타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옥차법의 음차방법이 宋代의 점차법(點茶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 목포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 겸 목포대학교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 목포대학교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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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선행연구에서는 唐代자차법에서 찻가루를 솥에서 끓여 마실 때 두 번째 끓는(二沸) 단계에서 끓는 물의 중심을 죽협(竹筴)으로 돌려 휘저은 후 그 중심에 찻가루를 넣어 거품이 잘 일어나도록 하는 죽협의 용도와, 宋代 점차법에서 찻가루를 풀어서 거품인 유화(乳花)를 만드는 대나무 재질의 차선(茶筅) 용도가 유사한 것으로 보고1) 자차법에서 점차법으로 음차법이 발전한 것으로 보았다.2)  하지만 자차법과 점차법에서 사용하는 죽협과 차선의 용도가 유사한 점 이외에는 차탕(茶湯)을 만드는 방법과 차탕을 만들 때 사용하는 차기(茶器)의 유사점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자차법에서 점차법으로 바로 발전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십육탕품≫에 나타나는차법의 음차방법과 차탕을 만들 때 사용하는 차기가 점차법과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옥차법을 자차법에서 점차법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간단계의 음차법으로 보는 것이3) 음차법의 발전과정상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唐代에 저술된 ≪십육탕품≫에 나타옥차법(沃茶法)의 특징과 발전과정을 고찰하여 옥차법점차법으로 발전하게 된 요인(要因)을 밝혀보고자 한다.



Ⅱ. ≪十六湯品≫에 나타난 沃茶法

1. ≪十六湯品≫의 저술연대와 구성


   ≪십육탕품(十六湯品)≫의 저자는 소이(蘇廙)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외에는 아직 까지 발견된 기록이 없어 저술연대 및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소이의 생몰연대는 미상이지만 소이를 唐代사람으로 보는 것은 차학계의 공통된 인식이다.4) 


  중국차엽대사전(中國茶葉大辭典)≫에서도 ≪십육탕품≫에 대해서 “품차의 전문저서로 당대 소이가 지었다. 



1) 金明培 譯, ≪中國의 茶道≫, 明文堂, 2001, p. 128.
2) 구기평(裘紀平)≪다경도전(茶經圖典)≫에서 누노메조후(布目潮渢)는 ≪다경상해(茶經詳解)≫에서 자차법(煮茶法)에서 사용된 죽협(竹筴)점차법(點茶法)에서 차선(茶筅)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고 자차법에서 점차법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연미, <차그림에 나타난 茶筅연구>, ≪한국차학회지≫ 제15권 제1호, 2009, p. 14. 재인용)
3) 송해경, <中國點茶文化發展史에 關한 硏究>,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p. 79.
4) 陳世熙 ≪唐人說薈≫, 陳祖槼․朱自振 編 ≪中國茶葉歷史資料選輯≫, 寥寶秀 ≪宋代喫茶法與茶品之硏究≫, 阮浩耕 外 ≪中國古代茶葉全書≫ , 陳宗懋 主編≪中國茶葉大辭典≫, 草衣禪師≪東茶頌≫, 짱유화 ≪中國古代茶書精華≫, 김명배 譯著≪中國의 茶道≫ 등에서는 모두 ≪十六湯品
을 唐代의 저술로 기록하고 있다. (고연미, <韓․中․日點茶文化에 나타난 宋代建盞硏究>,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p. 18.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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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당 광화 3년에 완성된 책이다.”5) 라고 설명하고 있다. 광화(光化)는 당나라 제19대 황제 소종(昭宗, 재위기간 888-904)시기 898년부터 900년까지 사용한 연호(年號)로 광화 3년은 서기(西紀) 900년이다. 따라서 ≪십육탕품≫은 당나라 말기에 저술된 다서(茶書)임을 알 수 있다.

   ≪십육탕품≫은 소이가 저술한 ≪선아전(仙芽傳)≫ 제9권<작탕십육법(作湯十六法)> 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었지만, ≪선아전≫은 유실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宋代 도곡(陶穀, 903-970)이 지은 ≪청이록(淸異錄)≫ 제4권 <명천문(茗荈門)> 에 ≪십육탕품≫으로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6)

   ≪십육탕품≫은 가루차를 마시기 위해 사용하는 끓인 물인 탕(湯)에 관련된 다서(茶書)이다. 서두(序頭)에 “끓인 물은 차의 목숨을 맡는 것이다. 만약 이름난 차일지라도 끓인 물을 함부로 다루게 되면, 곧 평범한 가루차와 다를 바가 없다.”7)라고 끓인 물인 탕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십육탕품≫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첫째, 탕을 끓이는 정도에 따라서 

제일품(第一品) 득일탕(得一湯)은 알맞게 끓여진 탕이며, 

제이품(第二品) 영탕(嬰湯)은 막 끓기 시작하여 아직 익지 않은 탕이고, 

제삼품(第三品) 백수탕(百壽湯)은 지나치게 오래 끓인 탕으로 나누고 있다.

   둘째, 탕을 따르는 완급에 따라서 

제사품(第四品) 중탕(中湯)은 중용을 갖춰서 따르는 탕이며, 

제오품(第五品) 단맥탕(斷脈湯)은 막혔다 뚫렸다 하는 것처럼 따르는 탕이고, 

육품(第六品) 대장탕(大壯湯)은 급하게 따르거나 지나치게 많이 따르는 탕으로 나누고 있다.


   셋째, 탕을 끓이는 그릇의 재질에 따라서 

제칠품(第七品) 부귀탕(富貴湯)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탕기(湯器)에서 끓여진 탕이며, 

제팔품(第八品) 수벽탕(秀碧湯)은 돌로 만든 탕기에서 끓여진 탕이고, 

제구품(第九品) 압일탕(壓一湯)은 사기병(瓷甁)에서 끓여진 탕이며, 

제십품(第十品) 전구탕(纏口湯)은 구리 · 쇠 · 백랍 · 주석 등으로 만든 탕기에서 끓여진 탕이고, 

제십일품(第十一品) 감가탕(減價湯)은 질그릇으로 만든 탕기로 끓여진 탕으로 나누고 있다.


   넷째, 탕을 끓이는 땔감의 종류에 따라서 

제십이품(第十二品) 법률탕(法律湯)은 숯(炭)으로 끓여진 탕이며, 

제십삼품(第十三品) 일면탕(一面湯)은 화력이 약한 허탄(虛炭)으로 끓여진 탕이고, 

제십사품(第十四品) 소인탕(宵人湯)은 분(糞, 짐승의 똥을 말린 것)으로 끓여진 탕이며, 

제십오품(第十五品) 적탕(賊湯)은 성미가 약하고 가벼운 땔감으로 끓여진 탕이고,

제십육품(第十六品) 대마탕(大魔湯)은 연기가 들어간 탕으로 나누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5) 陳宗懋主編, ≪中國茶葉大辭典≫, 中國輕工業出版社, 2000, p.679. “品茶專著唐代蘇廙撰約成書
于唐光化三年”
6) 짱유화, ≪中國古代茶書精華≫, 남탑산방, 2000, p. 143.
7) 蘇廙, ≪十六湯品≫, “湯者茶之司命若名茶而濫湯則與凡末同調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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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육탕품≫에 나타나는 음차법은 찻가루를 잔(盞)에 넣고 탕병의 물줄기를 조절하여 풀어 마시는 방법이다. 이러한 음차법을 ‘옥차법(沃茶法)’이라고 하는데, 이는 ≪십육탕품 제십이품(第十二品) 법률탕(法律湯)에서 “오직 옥차의 탕은 숯이 아니면 안 된다”8)라는 내용을 통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2. 沃茶法의 특징


   ≪십육탕품(十六湯品)≫에서 옥차법(沃茶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제오품(第五品) 단맥탕(斷脈湯)제육품(第六品) 대장탕(大壯湯)으로 이 두 부분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사발의 차는 많아도 두 돈(7.5g)이 못된다. 만약 잔에 담긴 양이 알맞으면 끓인 물 붓기는 육부를 넘기지 않는다. 만일 급하게 따라서 깊이 차면 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된다.9)
차가 이미 반죽이 되었으면 마땅히 조화롭게 그 모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만약 손이 떨리고 팔뚝이 축 늘어져 오직 끓인 물이 지나치게 따라지는 것을 꺼려서, 탕병 부리의 끝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아서 끓인 물이 순하게 통하지 않으면 차는 고르게 풀리지 않는다.10)

   위 내용을 통해서 옥차법은 찻가루(末茶)를 잔(盞)에 넣은 후에 먼저 탕병에서 끓인 물을 조금 붓고 찻가루와 섞어서 걸쭉하게 고(膏) 상태로 반죽한 후에 다시 끓인 물을 부을 때 물줄기의 세기와 완급을 조절하여 반죽된 고를 풀어서 차탕을 만들어 마시는
음차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옥차법의 가장 큰 특징은 별도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탕병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힘만으로 차탕을 만들어 마시는 음차법이라는 점이다. 이러차법은 唐代의 일반적인 음차법인 차를 가루내어 솥에서 끓여 마시는 자차법(煮茶法)과는 다른 방법이다.

   그런데 차를 가루낸 후에 탕을 부어서 마시는 음차법은 唐代이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중국 삼국시대 위(魏, 220-265)나라의 학자 장읍(張揖)≪광아(廣雅)≫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8) 蘇廙, ≪十六湯品≫ <第十二品法律湯>, “惟沃茶之湯非炭不可”
9) 蘇廙, ≪十六湯品≫ <第六品大壯湯>, “且一甌之茗多不二錢若盞量合宜下湯不過六分萬一快 瀉而深積之茶安在哉”
10) 蘇廙, ≪十六湯品≫ <第五品斷脈湯>, “茶已就膏宜以造化成其形若手顫臂嚲惟恐其深甁嘴之 端若存若亡湯不順通故茶不勻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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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주파주 일대에는 찻잎을 따서 병로 만들고, 늙은 찻잎으로 만든 병차는 걸쭉한 미음을 쑤어서 빚는다. 차를 마시려면 먼저 붉은색이 나도록 구운 후 찧어서 가루내어 자기 속에 넣고 끓인 물을 붓는다.11)

   위 내용은 병차(餠茶)를 만드는 방법과 병차를 이용한 음차법을 최초로 기록한 내용이다. 이처럼 병차를 가루내어 끓인 물을 부어서 마시는 음차방법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음차법은 唐代에까지 이어져 왔는데, 이러한 사실은 육우≪다경(茶經)≫ <육지음(六之飮)>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마시는 종류에는 추차 · 산차 · 말차 · 병차가 있다. 차나무 가지를 베어 찻잎을 따고, 찌고, 굽고, 찧어 가루를 내어 병이나 오지병에 담아 끓인 물을 부어서 마시는 것을 암차라고 한다.12)

차를 가루내어 병(甁)이나 오지병(缶)에 담아 끓인 물을 부어서 마시는 방법을 육우는 암차(痷茶)라는 이름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육우가 ≪다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암차라는 명칭은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13) 육우는 암차와 같은 음차방법을 평하기를 “이러한 것들은14) 도랑에 버릴 물에 불과한데도 세속의 풍속은 그치지 않고 있다”15)고 적절한 음차방법으로 보지 않고 있다.


   육우는 ≪다경≫을 통해서 차를 끓일 때에는 삼비(三沸)의 순서에 따라서 정성을 다해 차를 끓이는 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암차와 같이 끓인 물만을 부어서 차를 마시는 단순한 음차방법을 “사람들이 만드는 것은 단지 얄팍하고 쉬운 것만을 추구한다”16)고 마땅치 않게 생각하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간에서 풍속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음차법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옥차법도 매우 유사한 음차방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암차와 같은 음차법이 자차법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존속하고 발전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11) 陸羽, ≪茶經≫ <七之事> “荊巴間採葉作餠葉老者餠成以米膏出之欲煮茗飮先炙令赤色搗末置瓷器中以湯澆覆之”
12) 陸羽, ≪茶經≫ <六之飮> “飮有觕茶散茶末茶餠茶者乃斫乃熬乃煬乃舂貯於甁缶之中以湯沃焉謂之痷茶”
13) 육우가 언급한 암차(痷茶)에서 암(痷)의 뜻을 ≪광아(廣雅)≫ 에서는 ‘병이다(病也)’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병을 앓는 것(痷殜)’ 혹은 ‘반신불수병(半臥半起病也)’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짱유화, ≪茶經講說≫, 차와 사람, 2008, p. 217).
14) ‘이러한 것들은’에서 지칭한 것은 암차(痷茶), 여러 가지 양념을 넣고 오래 끓인 것, 차탕 위에 떠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여 맑게 한 것, 끓어 오른 거품을 제거한 것 등이다.
15) 陸羽, ≪茶經≫ <六之飮> “斯溝渠間棄水耳而習俗不已”
16) 陸羽, ≪茶經≫ <六之飮> “人之所工但獵淺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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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암차에 끓인 물을 조금 따라서 찻가루와 잘 섞어 걸쭉한 상태로 만드는 조고(調膏)17) 과정과 차시(茶匙)차선(茶筅)으로 유화(乳花)를 만드는 격불(擊拂) 과정이 첨가되면서 점차법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는 선행연구도 있다.18) 하지만, 옥차법에서도 조고의 과정을 거쳐서 차탕을 만들기 때문에, 본 연구자는 암차에서 점차법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암차조고 과정이 첨가되면서 잔(盞)과 탕병(湯甁)을 사용하여 차탕을 만드는 옥차법으로 발전하였으며, 다시 옥차법 격불 과정이 첨가되면서 점차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된다.

   육우가 차를 가루내어 끓인 물을 부어서 마시는 음차법을 암차라는 이름으로 비판한 이유는 아마도 거품이 거의 생기지 않는 차탕(茶湯)을 마시는 방법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육우는 병차(餠茶)를 가루내어 끓여 마시는 자차법에서 차탕에 생기는 거품을 차의 정화(精華)라고 하였는데, ≪다경≫ <오지자(五之煮)>에서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릇 여러 사발에 따를 때에는 말발을 고르게 나눈다. ≪자서≫≪본초≫서는 “발은 차의 거품이다”라고 하였다. 포홀의 반절이다. 말발은 차탕의 정화다. 정화의 얇은 것을 말이라 하며, 두꺼운 것을 발이라 하고, 잘고 가벼운 것을 화(花)라고 한다.19)
육우는 자차법으로 가루차를 끓일 때 생기는 말발(沫餑), 곧 거품을 차탕의 정화로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고, 거품이 많이 함유된 차탕을 가리켜 ‘준영(雋永)’이라고 하였는데, 준영이란 가장 맛있는 차탕을 뜻하는 것이다.20) 따라서 육우는 ≪다경≫ <오지자>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발 이외에는 갈증이 심하지 않으면 마시지 말아야 한다.”21)라고 했는데, 이는 말발(거품)이 없는 차탕을 마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마시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22)

   宋代의 점차법(點茶法)은 찻가루를 잔(盞)에 넣고 끓인 물을 부은 후에 차시(茶匙) 차선(茶筅)으로 유화(乳花)를 만들어 마시는 음차법으로 唐代의 자차법과는 음차 방법이 다르지만 차탕에 생기는 거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유사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북송(北宋, 960-1127) 제8대 황제 휘종(徽宗, 재위기간 1100-1125)이 대관(大觀,1107-1110) 연간에 지은 ≪대관다론(大觀茶論)≫ <점(點)> 조(條)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 조고(調膏)는 휘종의 ≪대관다론≫ <점(點)> 條에서 “점차는 한 가지가 아니고, 짧은 시간에 고를 만드는 것이다(點茶不一而調膏繼刻)”라고 설명하는 내용에서 보인다.
18) 김진숙, <唐代의 飮茶文化>, ≪한국차학회지≫ 제13권 제1호, 2007, p. 52.
19) 陸羽, ≪茶經≫ <五之煮> “凡酌置諸盌令沫餑均字書并本草餑茗沫也蒲笏反沫餑湯之華也 華之薄者曰沫厚者曰餑細輕者曰花”
20) 陸羽, ≪茶經≫ <五之煮> “至美者曰雋永”
21) 陸羽, ≪茶經≫ <五之煮> “第四第五盌外非渴甚莫之飮.”
22) 짱유화, 앞의 책, 2008, 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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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점하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니다. 지체하지 말고 짧은 시간에 고를 만들어 끓인 물을 붓고, 손은 무겁고 솔은 가볍게 하여 좁쌀 같은 거품이나 게눈 같은 기포도 일지 않는 것을 정면점이라 한다. 대개 격불에 힘이 없어서 차의 근본이 일어나지 못하고 물과 유화가 어울리지 못했는데, 또 탕수를 부으니 색택이 다 나오지 않아서 정화는 잠기고 흩어져서 차의 근본을 만들 수 없게 된다.23)

   위 내용을 통해서 宋代에는 차의 거품을 유화(乳花)라고 했으며, 차의 근본(根本) 혹은 정화(精華)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화를 마시는 방법에 대해서도 ≪대관다론≫ <점> 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마실 때에는 그 가볍고도 맑으며, 떠서 합쳐진 것(거품)을 고르게 마셔야 한다. ≪동군록≫에 이르기를 “차에는 발이 있는데, 이를 마시면 사람에게 알맞다”고 하였으니, 아무리 많이 마신다고 하여도 지나침은 없는 것이다.24)

   점차법으로 만든 차탕에 생기는 거품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사람에게 알맞은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唐代의 자차법과 宋代의 점차법에서는 차탕에 생기는 거품을 대단히 중요시하였지만 옥차법에서는 탕병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힘만으로 찻가루를 풀어 차탕을 만들었기 때문에 차탕에 거품이 거의 생기지 않는 음차법이었다. 따라서 거품을 만들기 위해차시(茶匙)차선(茶筅)을 사용하여 거품인 유화(乳花)을 만들어 마시는 점차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된다.


3. 沃茶法의 발전

   唐代의 옥차법은 찻가루를 잔에 넣은 후에 먼저 탕병에서 끓인 물을 조금 부어서 찻가루를 걸쭉한 고(膏) 상태로 반죽한 후에 다시 탕병에서 따르는 물줄기의 세기와 완급을 조절하여 고를 풀어 차탕(茶湯)을 완성시켜 마시는 음차법이다. 이러한 음차방법이 점차법에서 차탕을 만들 때 차시차선으로 격불(擊拂)하기 전의 단계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볼 때 옥차법에서 점차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된다.


23) 徽宗, ≪大觀茶論≫ <點>, “點茶不一而調繼刻以湯注之手重筅輕無粟文蟹眼者謂之靜面點  擊拂無力茶不發立水乳未浹又復增湯色澤不盡英華淪散茶無立作矣”
24) 徽宗, ≪大觀茶論≫ <點>, “宜均其輕淸浮合者飮之桐君錄曰茗有餑飮之宜人雖多不爲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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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옥차법에서 점차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되는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옥차법에서 차탕을 만들 때 사용하는 차기(茶器)로 잔(盞)탕병(湯甁)을 사용했는데 마찬가지로 점차법에서도 탕병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옥차법에서는 찻가루를 솥에서 끓여 마시는 자차법병(甁)이나 오지병(缶)에 담아 끓인 물을 부어서 마시는 암차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잔에 찻가루를 넣고 차탕을 완성했는데 점차법에서도 동일하게 잔에서 차탕을 완성했다.25)
점차법에서 탕병의 사용은 북송시기인 1051년경에 저술된 채양(蔡襄, 1012-1067)의 다록(茶錄)≫ <탕병(湯甁)> 조에서 “탕병은 작은 것이 끓는 물을 살피기가 쉽다. 또한 점차할 때 끓인 물을 정확하게 따를 수가 있다.”26) 라고 설명한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휘종 ≪대관다론≫ <병(甁)> 조(條)에서도 탕병의 사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더욱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병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 좋다. 크거나 작게 만드는 것은 알맞게 정하는 것이 좋다. 끓인 물을 따를 때의 이로움과 해로움은 오직 병의 주둥이에 달려 있을 뿐이다. 주둥이의 입이 약간 크고 굽은 듯 곧으면 끓인 물을 따를 때 힘차서 흩어지지 않는다. 주둥이의 끝이 둥글고도 작으며 싹둑 잘라내야 곧 끓인 물을 따를 때 조절이 되어 물방울을 흘리지 않는다. 대개 끓인 물이 힘차고 팽팽하면 빨리 조절이 되고, 물을 흘리지 말아야 찻물의 표면이 갈라지지 않는다.27)

   위 내용 중에서 “끓인 물을 따를 때의 이로움과 해로움은 오직 탕병의 주둥이에 달려있을 뿐이다”라고 언급한 것은 점차법에서 차를 만드는데 있어서 탕병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십육탕품≫ 제오품(第五品) 단맥탕(斷脈湯)에서도 “탕병 부리의 끝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아서 끓인 물이 순하게 통하지 않으면 차는 고르게 풀리지 않는다.”라고 끓인 물을 따르는 탕병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탕병옥차법점차법에서 차탕을 만드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차기(茶器)였다. 


   ≪중국차엽대사전≫에서도 “탕병에서 물을 조금씩 따랐기 때문에 점이라는 이름이 생겼다.”28)라고 탕병으로 인해서 점차(點茶)라는 이름이 생겼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도 차탕을 만들 때 탕병을 사용하는 옥차법에서 점차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된다.

25) 점차법에서 사용된 잔(盞)에 대해서는 채양의 ≪다록≫ 하편(下篇) 논차기(論茶器) <차잔(茶盞)> 條와 휘종의 ≪대관다론≫ <잔(盞)> 條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26) 蔡襄, ≪茶錄≫ <湯甁>, “甁要小者易候湯又點茶注湯有準”.
27) 徽宗, ≪大觀茶論≫ <甁>, “甁宜金銀大小之制惟所裁給注湯利害獨甁之嘴而已嘴之口欲大而宛直則注湯力緊而不散嘴之末欲圓小而峻削則用湯有節而不滴瀝蓋湯力緊則發速有節不滴瀝則茶面不破”
28) 陳宗懋主編, ≪中國茶葉大辭典≫, 中國輕工業出版社, 2000, p.556. “因以甁滴注爲點故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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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옥차법에서 찻가루를 잔(盞)에 넣은 후 먼저 탕병에서 끓인 물을 조금 따라 찻가루를 걸쭉한 상태로 반죽하는 음차방법이 점차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채양≪다록≫ <점차(點茶)> 조에서는 옥차법과 매우 유사하게 차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찻가루 한 돈을 숟가락으로 떠내어, 먼저 끓인 물을 붓고 고르게 섞은 후, 재차 끓인 물을 보태어 붓고, 돌려가면서 격불한다. 끓인 물을 잔에 보태어 붓기는 4부쯤 차면 곧 멈춘다.29)


   위 내용에서 격불(擊拂)하기 전 찻가루에 끓인 물을 붓고 고르게 섞은 후에 다시 끓인 물을 붓는 방법이 옥차법과 매우 유사한 과정을 거쳐서 차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대관다론≫ <점(點)> 조에서도 “묘한 방법은 이러한 것이다. 차의 양에 맞추어서 끓인 물을 붓고 녹은 아교처럼 만든다.”30)라고 격불하기 전의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녹은 아교처럼”은 찻가루에 끓인 물을 부어서 걸쭉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인데, 이≪십육탕품≫ 제오품 단맥탕에서 “차가 이미 반죽이 되었으면 마땅히 조화롭게 그 모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라고 찻가루를 걸쭉한 고(膏)상태로 만드는 방법과 매 유사하다.31) 


   이 단계에서 옥차법에서는 다시 탕병에서 따르는 물줄기의 세기와 완급을 조절하여 고를 풀어 차탕을 완성하지만, ≪다록≫≪대관다론≫에서는 찻물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차시차선으로 격불(擊拂)하여 유화를 만들면서 차탕을 완성했다. 이와같이 차탕을 만드는 방법의 유사성으로 볼 때 옥차법에서 점차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된다.

   셋째, 唐代에 이미 연고차(硏膏茶)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옥차법에서도 점차법과 마찬가지로 연고차를 곱게 가루내어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唐代의 음차법인 자차법에서는 병차를 가루내어 솥에서 끓여 마셨기 때문에 아주 곱고 미세한 찻가루보다는 쌀가루 정도의 과립형태의 크기가 알맞은 것으로 여겼다. 육우≪다경≫ <오지자>에서 “가루의 상품은 그 부스러기가 가는 쌀가루와 같다”32) 고 했으며, <육지음> 에서는 “푸른색 가루가 되거나 먼지처럼 날리는 것은 옳게 가루내는 것이 아니다.”33)라고 찻가루를 너무 곱고 미세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 만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29) 蔡襄, ≪茶錄≫ <點茶>, “鈔茶一錢匕先注湯調令極勻又添注之環回擊拂湯上盞可四分則止”
30) 徽宗, ≪大觀茶論≫ <點>, “妙於此者量茶受湯調如融膠”
31) 高橋忠彦, <唐宋を中心とした飮茶法の變遷について>, ≪東洋文化研究所紀要≫ 第109冊, 1989, p. 251.
32) 陸羽, ≪茶經≫ <五之煮> “末之上者其屑如細米”
33) 陸羽, ≪茶經≫ <六之飮> “碧粉縹塵非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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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육우는 쌀가루 정도 크기의 과립형태의 찻가루를 얻기 위해서 차를 가루내는 맷돌(碾)의 재질을 금속이 아닌 나무로 만들었다. 하지만 옥차법은 찻가루(末茶) 약 두 돈(二錢, 7.5g)을 잔에 넣은 후에 탕병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세기와 완급을 조절하
여 풀어 마시는 음차법으로 찻가루를 차시나 차선을 이용하지 않고 물줄기의 힘만으로 풀기 위해서는 상당히 곱고 미세하게 찻가루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채양≪다록≫ <라차(羅茶)> 조에서도 “체질을 곱게 하면 차가 뜨고, 거칠게 하면 물이 뜬다”34)고 찻가루가 아주 미세하고 고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찻가루의 입자가 곱고 미세할수록 가벼워서 끓인 물을 부으면 찻가루가 물 위로 뜨면서 잘 풀어지게 되지만, 입자가 거칠면 무겁기 때문에 물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뭉치게 되어 잘 풀어지지 않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또한 병차 연고차와는 다르게 제조 과정에서 찻잎의 진액인 차고(茶膏)를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탕의 맛이 쓰고 떫은맛이 강했다.35) 따라서 병차를 가루내어 솥에서 끓여 마시는 자차법에서 소금을 첨가한 이유도 바로 병차의 쓰고 떫은맛을 중화시키기 위한 것이다.36) 하지만 옥차법에서는 차탕을 만들 때 소금을 첨가하지 않았는데, 이는 옥차법에서 사용한 차는 병차와 같이 쓰고 떫은맛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옥차법에서 사용한 차는 쓰고 떫은맛이 강한 병차보다는 차고를 제거한 연고차37) 가루내어 잔에 넣고 풀어마셨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唐代에 이미 연고차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북송시대 장순민(張舜民)≪화만록(畫墁錄)≫에서 연고차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시기와 제다법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원연간에 건주자사 상곤이 처음으로 찌고 불에 쬐어 말리고 갈아서 연고차라고 하였다.38)
위 내용을 통해서 연고차가 唐代 정원연간(貞元年間) 시기에 처음으로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정원(貞元)은 당나라 제9대 황제 덕종(德宗, 재위기간 779-805)이 785년부터 805년까지 21년간 사용한 세 번째 연호(年號)다.  

34) 蔡襄, ≪茶錄≫ <羅茶>, “羅細則茶浮麤則水浮”
35) 唐代의 병차(餠茶)는 일반적으로 채(採) - 증(蒸) - 도(搗) - 박(拍) - 배(焙) - 천(穿) - 봉(封)의 7단계 공정(七經目)을 거쳐서 만들어졌으며, 찻잎을 시루에서 찔 때 고(茶膏)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찻잎을 흩어 펼친다.
36) 김진숙, ≪중국 차 문화 茶經≫, 국학자료원, 2014, p. 196.
37) 연고차(硏膏茶)란 시루에서 찐 찻잎의 진액(膏)을 완전히 짜낸 후에 갈아서(硏) 만든 차라는 뜻이다.(짱유화 譯, ≪點茶學≫, 普洱世界, 2008, p. 73.) 연고차의 제조방법은 일반적으로 차판 벌이기(開焙) - 차따기(採茶) - 찻잎 가리기(揀茶) - 찻잎찌기(蒸茶) - 차짜기(搾茶) - 차갈기(硏茶) - 차만들기(造茶) - 차말리기(過黃)의 공정으로 만들어졌다.
38) 張舜民. ≪畫墁錄≫ “貞元中常衮為建州刺史始蒸焙而研之謂研膏茶” (文淵閣, ≪四庫全書電子版≫, 上海人民出版社,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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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화만록≫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 연고차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39) 당나라 16대 황제 선
종(宣宗, 재위기간 846-859)시기에 활동했던 이영(李郢)이 지은 <다산공배가(茶山貢焙歌)>에서도 “(차를) 찌는 향기는 매화 향보다 더 좋은 향이다. 천둥과 같은 소리가 나면 연고차를 만든다.(蒸之馥之香胜梅研膏架動轟如雷)”라고 연고차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856년 양화(楊華)가 지은 ≪선부경수록(膳夫經手錄)≫ 에서도 “목주의 구갱차는 맛이 담박하고 연고차의 절품은 곽산에서 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도 唐代에 이미 연고차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40)

   이처럼 唐代에 이미 연고차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고차를 곱고 미세하게 가루낸 찻가루를 잔에 넣은 후 탕병의 물줄기만으로 풀어마시던 옥차법에서 차시 차선을 사용하여 유화를 만들어 마시는 점차법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Ⅲ. 나가는 말


   본 연구에서는 唐代 소이(蘇廙)가 저술한 ≪십육탕품(十六湯品)≫에 나타난 옥차법(沃茶法)의 특징과 점차법(點茶法)으로 발전하게 된 요인(要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옥차법(沃茶法)’이라는 명칭은 ≪십육탕품≫ 제십이품(第十二品) 법률탕(法律湯)에서 “오직 옥차의 탕은 숯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내용을 통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옥차법은 찻가루(末茶)를 잔에 넣은 후에 먼저 탕병(湯甁)에서 끓인 물을 조금 따라 찻가루를 걸쭉한 고(膏) 상태로 반죽한 후 다시 끓인 물을 부어서 반죽을 풀어 차탕(茶湯)을 만들어 마시는 음차법으로 별도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탕병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힘만으로 찻가루를 풀어 마시는 특징을 가진 음차법이다. 


   옥차법의 이러한 음차방법은 이후 점차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되는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옥차법점차법에서 차탕을 만드는데 사용한 차기(茶器)잔(盞)탕병(湯甁)이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둘째, 옥차법에서 찻가루를 잔에 넣은 후 먼저 탕병에서 끓인 물을 조금 따라 찻가루를 걸쭉한 고(膏) 상태로 반죽하여 차탕(茶湯)을 만드는 방법이 점차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셋째, 唐代에 이미 연고차(硏膏茶)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옥차법에서도 점차법과 마찬가지로 연고차를 곱고 미세하게 가루내어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통해서 ≪십육탕품≫에 나타난 옥차법은 唐代 음차법의 일종으로 이후 宋代 점차법으로 발전한 가치있는 음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보다 많은 관심과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39) 유동훈, <다산 정약용의 고형차(固形茶) 제다법 고찰>, ≪한국차학회지≫ 제21권 제1호, 2015, p. 38.
40) 陳祖槼․朱自振編, ≪中國茶葉歷史資料選輯≫, 农业出版社, 1981, p. 217. “睦州鳩坑茶味薄研
膏絕勝霍山者” (金明培, ≪茶道學論攷≫, 大光文化社, 2005, pp. 522-523.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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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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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唐代의 飮茶文化>, ≪한국차학회지≫ 제13권 제1호, 2007.
송해경, <中國點茶文化發展史에 關한 硏究>,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유동훈, <다산 정약용의 고형차(固形茶) 제다법 고찰>, ≪한국차학회지≫ 제21권 제1호, 2015.



【中文概要】


   中国唐代苏廙撰写的≪十六汤品≫是关于煮茶使用的汤论述的一本茶书,在书上记载的茶法是一种新的饮茶方式.
≪十六汤品≫中说明的沃茶法是把茶末放入茶盏,放入少许汤瓶里的沸水,先调成膏,再注入沸水交融茶汤的饮茶法. 沃茶法最大特征是注入沸水交融茶汤时不使用别的道具,只利用汤瓶出水的力量交融茶汤.


   沃茶法的这种饮茶方式估计宋代点茶法的前阶段. 因为宋代点茶法也是放入少许汤瓶里的沸水,先调成膏,用茶匙茶筅旋转打击和拂动茶盏中的茶汤使之泛起汤花,所以能说沃茶法发展到点茶法.



【中心语】≪十六湯品≫, 沃茶法, 茶末, 湯甁, 點茶法

접수일자 2015. 11.10.  심사완료일 2015. 12.06.  게재확정일 2015. 12.13.



201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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