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차〔蜀茶〕

2018. 9. 7. 01:53茶詩


樂民(장달수) | 조회 22 |추천 0 | 2018.08.27. 03:20



       

촉차〔蜀茶〕 /  황현(黃玹) 매천집(梅泉集)



  지난 임인년(1902, 광무6)에 나는 동년(同年) 송평숙(宋平叔)을 방문하였다. 평숙이 막 상해에서 돌아와 내게 촉차 사방 1치 되는 것을 주면서 이르기를, “촉 지방 선비에게서 얻었다.” 하였다. 나는 집에 돌아와 차를 끓여 맛을 보았는데, 맛이 매우 향기롭고 시원하였다. 자주 맛을 음미하면서 그를 위해 시 한 수를 읊어 보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월곡(月谷)으로 옮겨오면서 휴일에 옛 상자를 점검하였는데, 아직도 그 반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기쁘게 한 사발을 시음하자니, 시가 뒤따라 이루어졌다. 대개 그 묵은 빚을 갚은 셈이다.


동년의 젊은이는 자가 평숙인데 / 同年少年字平叔
모습은 좌사이나 재주는 반육이네 / 貌如左思才潘陸
풍류는 본래 진나라의 인물들 같아서 / 風流自是晉人物
좁은 강산 싫어서 미련 없이 떠나갔었지 / 掉臂江湖厭局促

하루아침에 배를 돌려 상해에서 돌아와 / 一朝舟碾上海還
빻은 누룩 같은 덩이차를 내게 주었네 / 貽我團茶如破麴
그 말로는 서촉 사람에게 얻은 것인데 / 自言得之西蜀人
풍미가 일반 차와 크게 다르다고 하네 / 風味逈非凡茶族

명성을 들은 뒤로는 감히 가까이 못하다가 / 聞名便已不敢褻
날을 받아 달이면서 삼가 재계하였네 / 筮日煎烹謹薰沐
돌솥을 씻고 씻으니 청명한 빛 발하는데 / 石罐千洗發灝光
가득한 새벽 샘물은 더할 수 없이 맑네 / 汪汪晨泉奪?淥

순식간에 부글부글 거품이 가득하니 / 須臾洶洶魚眼盡
한 조각 떼어 찬 옥 속에 담그네 / 切以方寸浸寒玉
두터운 거품 가는 꽃이 잔 면에 가득하니 / 餑厚花細盞面勻
마시기도 전에 눈길을 먼저 끄네 / 未及下咽先奪目

담담하게 옆 사람과 대화하며 느끼나니 / 慘澹說與傍人知
색깔, 향기, 맛이 모두 과연 촉산(蜀産)이네 / 色香氣味無非蜀
탕화에는 가늘게 금강의 흰 물결 번득이고 / 湯華細翻錦江白
운각은 멀리 아미산의 푸름을 띠고 있네 / 雲脚遙帶峨眉

상상컨대 싹이 돋아 잎이 달릴 즈음이면 / 想當吐芽抽鎗時
천협의 산과 계곡에 가득 널렸으리라 / 布滿川峽衆山谷
노두의 시내 곁 숲이 아니면 / 除非老杜溪傍林
참으로 삼소의 사당 뒤 기슭이리라 / 定是三蘇祠後麓

만리 밖까지 유명한 차의 산지인지라 / 萬里歷歷茶産地
산천 풍물이 온통 마음을 자극하네 / 山川風物紛掁觸
중국 유람 평생토록 소원하던 바이지만 / 平生我欲游中國
생각나면 고서를 통할 따름이라네 / 思至惟將古書讀

천태, 안탕에 나막신 소리 울리고 / 天台鴈宕響屐齒
칠택, 삼상에 돛의 배가 불룩하네 / 七澤三湘飽帆腹
서홍조는 형으로 섬길 만하고 / 徐弘祖可兄事之
종소문은 아이처럼 기를 만하네 / 宗少文堪兒輩畜

어찌할거나, 꿈을 꿔도 길을 알지 못하니 / 爭奈夢中不識路
신마가 발해의 굽이에서 방황하네 / 神馬徬徨渤海曲
지금에 와 호락은 말할 필요 없으니 / 如今瓠落莫須說
부끄럽네, 백발 된 거울 속 귀밑머리여 / 靑銅羞對雙鬢禿

한 사발 차에 세 번 탄식하게 되니 / 一椀茶三歎息
어찌하면 이내 몸을 황곡으로 만들어 볼까 / 安得化身爲黃鵠

[주-C001] 갑진고(甲辰稿) : 
1904년(광무8), 매천이 50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
[주-D001] 송평숙(宋平叔) : 
평숙은 언론인이자 교육자였던 송태회(宋泰會, 1872~1941)의 자이다. 호는 염재(念齋)이며, 전남 화순(和順) 출생이다. 1888년(고종25)에 진사시, 1900년 박사시(博士試)를 거쳐 성균관에서 수업하였다. 1901년부터 1907년까지 중국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귀국하여 《대한매일신보》 기자로 활약하였다. 국권 피탈 후에는 낙향하여 1918년 전북 고창군(高敞郡)에 오산고보(吾山高普)를 설립,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하였다.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났는데, 순천의 송광사(松廣寺) 등지에 글씨 및 그림이 남아 있다.
[주-D002] 좌사(左思) : 
중국 서진(西晉)의 문장가로, 자는 태충(太冲)이다. 10년 동안 구상하여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다가 당대의 문사 황보밀(皇甫謐)이 감탄하여 서문을 써 주자 너도나도 베끼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올랐다고 한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左思》 그는 생김새가 몹시 추하고 어눌하였는데, 한번은 반악(潘岳)이라는 미남자가 거리를 거닐 적에 여인들에게 환대를 받는 것을 보고, 그를 흉내내어 거리를 걸어 보았으나, 여인들이 다투어 침을 뱉는 바람에 풀이 죽어 돌아왔다고 한다. 《世說新語 容止》
[주-D003] 반육(潘陸) : 
중국 서진의 문장가이자 미남자였던 반악(潘岳)육기(陸機)를 가리킨다. 모두 시문에 뛰어나 양(梁)나라 종영(鍾嶸)《시품(詩品)》에서, “육기(陸機)의 재주는 바다와 같고, 반악의 재주는 강과 같다.〔陸才如海 潘才如江〕”라고 평하였다.
[주-D004] 진(晉)나라의 인물들 : 
중국 위(魏)나라와 진나라가 교체되던 시기의 고사(高士)들인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 즉 혜강(稽康), 완적(阮籍), 완함(阮咸), 산도(山濤), 상수(向秀), 유령(劉伶), 왕융(王戎)을 가리킨다. 노장(老莊)의 정신을 숭상했던 이들은 항상 산음현(山陰縣)죽림에서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다.
[주-D005] 탕화(湯華) : 
찻물이 끓을 때 생기는 꽃, 곧 거품을 말하는 것으로, 송(宋)나라의 문인이자 차 전문가인 육우(陸羽)《다경(茶經)》에, “말발(沫餑)은 탕(湯)의 꽃〔華〕이다. 꽃이 엷은 것을 ‘말(沫)’이라고 하고, 두터운 것을 ‘발(餑)’이라고 하며, 가벼운 것을 ‘화(花)’라고 한다.” 하였다.
[주-D006] 운각(雲脚) : 
송나라 채양(蔡襄)이 지은 《다록(茶錄)》 차말기〔㸃茶〕 조에, “차가 적고 탕이 많으면 구름〔雲脚〕처럼 흩어지고, 탕이 적고 차가 많으면 죽〔粥面〕처럼 엉긴다.” 하였다.
[주-D007] 천협(川峽) : 
중국의 익주(益州), 재주(梓州), 이주(利州), 기주(夔州)천협사로(川峽四路)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금의 사천성이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주-D008] 노두(老杜)의 시내 : 
노두 당(唐)나라 때의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노두의 시내는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 서쪽 교외 금강(錦江)의 지류인 완화계(浣花溪)를 말하는 것으로, 현실에 염증을 느낀 두보가 말년에 그 근처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였다. 성도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차의 생산지이다.
[주-D009] 삼소(三蘇)의 사당 : 
삼소는 송(宋)나라 때의 문장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일원이었던 소순(蘇洵)과 소식(蘇軾), 소철(蘇轍) 3부자(父子)를 가리킨다. 이들의 사당인 삼소사(三蘇祠)는 중국 사천성(四川省) 미산(眉山)에 있으며, 원래는 삼소가 살던 집인데, 명(明)나라 때 사당으로 고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두보의 사당이 있는 성도(成都)와는 약 80리 거리에 있다. 미산죽엽청차(竹葉靑茶)의 산지로 유명하다.
[주-D010] 천태(天台), 안탕(鴈宕) : 
중국 절강성에 있는 명산 이름이다. 이 구절부터 ‘종소문은 아이처럼 기를 만하네’까지는 매천이 중국에 가 있는 것을 상상하는 내용인 듯하다.
[주-D011] 칠택(七澤), 삼상(三湘) : 
중국 호남성에 있는 저수지와 강 이름이다.
[주-D012] 서홍조(徐弘祖) : 
1586~1641.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로, 자는 진지(振之)이고, 호는 하객(霞客)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기서(奇書) 읽기를 즐겼다. 고금의 사적(史籍), 도경(圖經), 지지(地志)를 널리 읽었다. 22세에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30년 동안 화북, 화동, 화남, 서남을 두루 답사하여 산수, 풍속, 산물 등 지리적인 특징을 자세히 살펴 기록으로 남겼다. 3차례나 도둑을 맞고 4차례나 양식이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남긴 《서하객유기(徐霞客游記)》는 명대 지리학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주-D013] 종소문(宗少文) : 
송나라 때의 서화가인 종병(宗炳)을 가리키는 말로, 소문(少文)은 그의 자이다. 금서(琴書)를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노장학(老莊學)에 정통하였다. 형산(衡山)에 은거하면서 조정에서 불러도 일체 응하지 않았다. 노년에 병이 들어 명산을 유람하지 못하게 되자, 그동안 다녔던 명승지를 그림으로 그려 걸어 놓고는 누워서 감상하며 노닐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93 隱逸列傳 宗炳》
[주-D014] 신마(神馬) :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조물자가 나의 꽁무니를 점점 변화시켜 수레바퀴로 만들고 나의 정신을 말로 변화시킬 경우, 내가 그 기회에 타고 노닌다면 어찌 다시 수레 같은 것이 필요하겠는가.〔浸假而化予之尻以爲輪 以神爲馬 予因而乘之 豈更駕哉〕”라고 하였다.
[주-D015] 호락(瓠落) :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에게 말하기를 “지금 자네에겐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큰 통으로 만들어 강호에 띄울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것이 너무 커서 쓸데가 없다고 걱정만 하는가?〔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逍遙遊》
[주-D016] 황곡(黃鵠) : 
속세를 벗어나 은거하는 높은 재주를 가진 현사(賢士)를 비유하는 말이다. 《문선(文選)》 권33 굴원(屈原)〈복거(卜居)〉에 “차라리 황곡과 날개를 나란히 할까? 장차 닭이나 오리와 먹이를 다툴까?” 하였고, 유량(劉良)의 주에, “황곡은 일사(逸士)를 비유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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