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우리나라 풍경 外

2018. 10. 6. 02:30잡주머니



       

[스크랩] 1920년대 우리나라 풍경| 아!!!옛날이여~~~
필킴아저씨|조회 75|추천 0|2016.08.31. 07:34


그옛날 그옛적의 우리들의 생활상




1920년대 남대문통의 모습.





1935년 청량리역 앞의 모습.





1910년 용산역의 모습.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현 서울)
그래도 제법 높은 건물이 많이 보인다.





남대문로와 종로가 만나는 1905년 무렵의 보신각 주변.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현재의 을지로 입구에서 광교 쪽을 조망한 경관.


콜로니엄 양식의 건물들이 제법 고색창연하다.
길 오른쪽 붉은색 벽돌 건물은 지금의 우리은행이다.





[THE QUEEN OF KOREA]
1894. 11. Frank G. Carpenter에
‘서울의 중심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남대문로의 모습.


거리 양쪽에 한옥 상가 앞쪽으로 초가로 조성된
가가(假家)가 늘어서 있어 상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에 찍은 광화문 거리.




헤르만 잔더가 1907년 9월 무악재를 넘다가 찍은 사진.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북한산이다.




경성부청(지금의 서울시청) 건물.




1925년의 서울역.




일제강점기 사진엽서의 하나.


당시 경성과 부산을 오가던 특급
[아카즈키(あかづき=붉은 달)] 일등전망차의
호화스러운 모습으로 일본 고관 및 친일 상류인사들이
주로 이용했다.





일제강점기 부산역사.





부산 세관의 모습.





1930년대 부산 초량 입구.





1930년대 부산 청사의 모습.





1930년대 부산 연락선 출항 모습.





1940년 부산 대청동.





일제강점기 대구역 앞 광장.





일제강점기 대구 서문시장.





일제강점기 대구시청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구 본정통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구 서문시장의 모습.





1940년대 대구역에서 바라본 중앙통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구 원대통 거리.





인천의 일본인 거리 모습.





일제강점기 대전역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전역 주변의 모습.





1936년 9월 충청남도 대전군 회덕면 송촌리 쌍정당의 모습.





일제강점기 수원역 모습.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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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 1920년대 우리나라 영상]| 휴식이 있는 곳

조재영 | 조회 16 |추천 0 | 2017.10.15. 17:05

***  전재자 註 : 동영상을 재생할 수 없음.



cafe.daum.net/Kcinema/8iaB/10  한국영상문학의이해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
 
     1921년~1930년

1920년대

유럽에서 파시즘이 등장하고, 한국의 좌우익 독립운동 세력이 손을 잡다.


1920년대의 한국과 세계

   파시즘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했으며,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나치당도 세를 키워 갔다. 한편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은 내전에서 승리한 뒤 한동안 점진적인 사회주의의 길을 걸었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 국가 주도의 급속한 공업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에서는 화려한 영상 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했다. 영화 산업이 발전하고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이 이뤄졌다. 그러나 불시에 찾아온 대공황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하루 아침에 붕괴 직전으로 몰아갔다.

식민지인들의 저항은 더욱 과감하고 조직적인 양상을 띠어 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민연합이 결성되고, 이집트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이 조직됐다. 인도의 간디가 이끈 소금행진은 인도 독립의 당위를 전 세계에 알렸다.

   한국에서도 6・10만세운동광주학생운동 등 독립을 향한 의지가 꺾일 줄 몰랐다. 독립운동 세력 안에 사회주의 이념이 확산되고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 단체들도 결성됐다. 신간회의 결성민족유일당 운동은 성장한 사회주의 진영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이 손을 잡은 좌우합작의 산물이었다.


대공황으로 파산한 뱅크오브유나이티드스테이츠에 비를 맞으며 몰려든 예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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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한국사세계사
대륙/국가사건
1921년무장 독립운동 세력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판하다유럽러시아 신경제정책 도입
자유시사건과 독립군의 희생아시아중국공산당 설립
루쉰의 <아Q정전> 연재
1922년사회주의 확산과 사상 단체 결성유럽아일랜드 내전 발발
한국 최초 노동절 행사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에 오르다
어린이날의 선포소련의 결성
한국인 최초 비행사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
1923년대한민국임시정부 분열아메리카월트디즈니 설립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발표유럽히틀러의 맥주홀 폭동
조선형평사 결성
간토대지진과 한국인 학살
1924년이광수 〈민족적 경륜〉 발표아시아제1차 국공합작 체결
각각 청년 운동과 노동 ・ 농민 운동의 대표임을 자임하는 조선청년총동맹과 조선노농총동맹이 결성되다유럽페트로그라드가 레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꾸다
암태도 소작쟁의 마무리아메리카에드윈 허블, 은하계의 존재 입증
1925년이승만 대통령 탄핵아메리카스콥스재판
조선공산당 설립유럽영화에 몽타주 기법 도입
사회 운동을 강도 높게 탄압하기 위한 치안유지법이 한반도에도 시행되다
을축년 대홍수 피해
1926년6・10만세운동 발발유럽텔레비전의 발명
영화 <아리랑> 개봉아메리카최초의 액체 연료 로켓 발사
〈가갸날〉 제정아시아일본 쇼와 천황 즉위
1927년신간회 창설아메리카린드버그, 비행기로 대서양 횡단 성공
경성방송국, 한반도 최초의 방송 전파 송출아시아인도네시아국민연합 결성
제4대 조선총독 임명유럽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의 원리 발표
1928년경성 시내버스 등장아시아만주 군벌 장쭤린의 폭사
전민족유일당회의 개최유럽소련의 5개년계획과 농업집단화
홍명희 〈임꺽정〉 연재항생제 페니실린의 개발
1929년원산총파업 선언아시아터키 라틴 문자 도입
제5대 조선총독의 부임유럽바티칸시국의 수립
광주학생운동의 전국 확산아프리카이집트 무슬림형제단 결성
아메리카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 개최
세계 대공황
1930년최승희 제1회 창작무용발표회 개최아시아인도 간디의 소금행진
평양고무농장 노동자들의 파업아메리카제1회 월드컵 축구대회 개최
세계 최초의 슈퍼마켓 개점
1920년대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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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시대 구분은 한국사의 흐름에 맞추었다.
  • 서기 1년 이전의 시대는 교과서에서 쓰이는 '기원전' 대신 '서기의 앞 시기' 라는 뜻에서 '서기전'으로 표기했다.
  • 한국사의 연대는 1895년까지는 음력, 태양력을 도입한 1896년 이후는 양력으로 표기했다. 세계사의 연대 표기는 중등 교과서에 따랐다.
  •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는 중등 교과서와 국립국어원에 준하되 편집의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화를 줬다.

출처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4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4 | cp명다산북스 도서 소개

한국사와 세계사가 동시에 펼쳐지는 신개념 통합 역사 교양서한국사, 이제는 세계사와 함께 봐야 더 깊이 보인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역사 시리즈한국사 읽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역사책.접기

전체목차
조선이 개항하다     조선이 일본에 제1차 수신사를 파견하다     관세 자주권 사라진 조일무역규칙이 체결되다   박효관 ・ 안민영, 시가집(詩歌集) 『가곡원류』를 편찬하다     전화기가 발명되다     사족이 칼을 차지 못하게 되다     4행정 내연 기관이 발명되다     원주민들이 리틀빅혼전투를 승리로 이끌다     전세계에 대기근이 찾아오다     일본이 세운 부산 제생의원, 종두 실시를 알리다     서대문 밖에 일본공사관이 들어서다     전국의 가구 수와 인구 현황이 보고되다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로 즉위하다     일본에서 세이난전쟁이 일어나다     러시아 ・ 튀르크전쟁이 벌어지다     축음기가 발명되다     일본이 조선 해안을 측량하다     조선의 관세 자주권 회복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다     베를린조약으로 발칸반도에 갈등이 고조되다     사회주의자 탄압법이 제정되다     제2차 영국 ・ 아프가니스탄전쟁이 벌어지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축구클럽이 창단되다     조선이 일본 압박에 밀려 원산 개항을 약속하다     지석영이 천연두에 맞서 우두법을 시행하다     줄루전쟁이 벌어지다     일본이 류큐왕국을 병합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동맹을 맺다실     용적인 백열등이 탄생하다     『진보와 빈곤』이 출간되다     개화를 권한 『조선책략』이 조선을 뒤흔들다     12월, 리델 신부가 한국어-프랑스어 사전인 『한불자전』을 발간하다     개화 추진 기구인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다     광개토대왕릉비가 발견되다     일본에서 집회조례가 공포되다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가 창간되다     11월,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출간되다     제1차 보어전쟁이 벌어지다     랑케가 『세계사』를 집필하기 시작하다

영남 유생들이 개화를 비판하는 만인소를 올리다     일본에 조사시찰단을 파견하다     별기군을 창설하고 5군영제를 폐지하다     청나라에 영선사를 파견하다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되다     전차 운행이 시작되다     수단에서 마흐디 운동이 시작되다     국회 개설의 조서가 공포되다     조선과 미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수교하다     구식 군인들이 개화에 반발해 임오군란을 일으키다     제물포조약으로 289년 만에 조선 수도에 일본군이 들어오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으로 조선 수도에 청국 상인이 몰려오다     결핵균을 분리하다     미국이 중국인이민금지법을 제정하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가 삼국동맹을 맺다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다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다     조선 최초의 사진관이 들어서다     최초의 근대 학교 원산학사가 세워지다     조선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가 창간되다     크라카타우섬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일어나다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단체가 결성되다     오리엔트특급열차가 개통되다     윤5월 15일, 청나라를 견제하고자 조선이 러시아와 수교하다     김옥균·박영효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다     조선이 한성조약을 맺고 일본에 사죄하다     범이슬람주의 신문 『끊을 수 없는 끈』이 창간되다     청나라와 프랑스가 베트남을 두고 전쟁을 벌이다     맥심 기관총이 발명되다     본초자오선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정해지다     베를린회의에서 아프리카 분할의 기본 원칙이 마련되다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설립되다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다     톈진조약으로 청군과 일본군이 모두 물러가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탈아론」을 쓰다      인도국민회의가 결성되다     가솔린 자동차가 만들어지다     현대식 자전거가 탄생하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쓰다     노비 세습과 매매를 금지하다     가톨릭이 포교권을 얻다     신식학교인 이화학당과 육영공원이 설립되다     1월 1일, 버마(지금의 미얀마)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식민지가 되다     세계노동절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 사건이 벌어지다     코카콜라가 탄생하다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다     경복궁에 최초로 전깃불이 들어오다     청, 조선의 외교 자주권을 뺏으려 하다     국제 공통어 에스페란토가 탄생하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만들어지다     코넌 도일이 「셜록 홈스」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다     5월 27일, 한성-공주-전주-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남로(南路)전선이 개통되다     조선이 러시아와 육로통상장정을 체결하다     함경도 곳곳에서 농민들이 들고일어나다     9월, 벨기에의 스파에서 세계 최초의 미인 대회가 열리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창간되다     독일에서 헤르츠가 전자기파의 존재를 입증하다     청나라가 베이양함대를 창설하다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방곡령을 선포하다     함경도에 이어 강원도에서도 농민들이 들고일어나다     조선이 일본과 불평등한 어업협정을 체결하다     언더우드가 조선 최초의 영어사전 및 문법책인 『한어자전』과 『한영문법』을 출간하다     대일본제국헌법이 공포되다     파리만국박람회가 개최되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다     제2인터내셔널이 결성되다     닌텐도가 설립되다     시전 상인들이 청나라·일본 상인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다     일본 어민들이 제주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     비스마르크가 독일 총리에서 물러나다     미국에서 셔먼 반독점법이 제정되다운     디드니 학살이 벌어지다 

청나라 밀무역에 뿔난 일본이 대동강 입구의 개항을 요구하다     6월, 한성과 원산을 잇는 북로(北路)전선이 개통되다     연안 경비용 군함을 구입하기로 결정하다     8월, 프랑스와 러시아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의 삼국동맹(1882년 참조)에 맞서 동맹을 맺다     이란에서 국왕과 외세에 반대하는 담배 불매 운동이 벌어지다     농구 경기가 개발되다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되다     청나라가 차관 20만 냥으로 조선을 더 옥죄다     동학교도가 공주·삼례에서 최제우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호세 리살이 필리핀민족동맹을 결성하다     세균보다 더 작은 병원체, 바이러스가 발견되다     동학교도가 광화문 앞에서 상소하고, 외국인은 물러가라는 벽보가 붙다     동학교도가 보은과 금구에서 일본과 서양을 몰아내자고 외치다     봉기 65건, 방방곡곡에서 백성들이 들고일어나다     미국 대법원이 토마토를 채소로 결정하다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도입되다     1월 10일, 고부 봉기를 계기로 농민전쟁이 불붙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이 암살되다     이제마, 사상의학을 책으로 정리하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후 갑오개혁이 이뤄지다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청·일전쟁이 터지다     9월 농민군이 일본을 몰아내고자 다시 일어서다     일본인 하나야마가 청·일전쟁 중에 인력거 10대를 들여와 조선 최초로 인력거 영업을 하다     하와이왕국이 무너지다     드레퓌스사건이 벌어지다     뉴질랜드에서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다     조선을 뒤흔든 민중 혁명, 동학농민운동 청나라를 이긴 일본이 삼국간섭에 밀려 랴오둥반도를 포기하다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살해하다     친일 내각의 단발령에 백성이 반발하다     조선 최초의 서양견문록인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출간되다     바스크민족당이 결성되다     독일에서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다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영화를 상영하다     정부가 양력을 도입하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격분해 의병이 들고일어나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다(아관파천)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이 탄생하다     6월, 일본이 러시아에 ‘유사시 북위 38도선 경계로 조선 분할’을 은밀히 제의하다     에티오피아가 아두와전투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치다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다     마르코니가 무선 통신 장치를 발명하다     필리핀인들이 독립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다     1월 1일, 조선 최초로 종로에 석유 가로등이 등장하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등극하다     독립문이 완공되다     유대 민족 국가의 건설을 위한 시온주의자대회가 개최되다     디젤 엔진이 제작되다     원자보다 작은 전자의 존재가 발견되다     만민공동회에 모인 백성들이 지위를 초월해 자주 독립을 외치다     5월 29일, 가톨릭 종현본당(지금의 명동성당)이 완공되다     독립협회가 이토 히로부미를 환영하다     정부와 독립협회가 정면충돌하다     러시아혁명의 주역이 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 결성되다     미국·에스파냐전쟁이 벌어지다     변법자강운동이 시작되다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가 파쇼다에서 충돌하다     3월, 여우회 소속 여성 50여 명이 대안문 앞에서 축첩 반대 시위를 하다     서대문-청량리 구간을 운행하는 전차가 개통되다     대한제국이 국제를 반포하고 황제 중심 근대화를 시도하다     한반도 최초의 철도가 노량진-제물포 구간에서 개통되다     영국이 제2차 보어전쟁을 일으키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무의식의 존재를 주장하다     청나라에서 의화단운동이 일어나다     소설 『홍길동전』의 활빈당이 나타나다     한강철교가 놓이고 경인철도가 완전히 개통하다     영국노동당이 결성되다      플랑크가 양자 가설을 수립해 양자 역학의 토대를 닦다     파블로프가 조건 반사 실험을 하다     ABO식 혈액형 분류법이 발견되다

주도민이 과도한 세금과 가톨릭에 맞서 들고일어나다     일본이 철도 건설을 내세워 땅을 뺏고 조선인을 강제로 부려먹다     제1회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다     러시아에서 인민주의자들이 사회혁명당을 결성하다     민간인용 전화가 개통되다     하와이 이민이 시작되다     영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다     홉슨이 『제국주의론』을 통해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을 비판하다     최초의 공상 과학 영화 <달세계 여행>이 상영되다     러시아가 압록강 하구 용암포를 무단 점령하다     팔미도에서 한반도 최초의 등대가 불을 밝히다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자동차를 도입하다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다     치올콥스키가 로켓의 기본 원리를 밝히다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러·일전쟁이 벌어지다     일본이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을 강제하다     플레밍이 진공관을 발명하다     <피터 팬>이 공연되다     스탈링이 호르몬을 발견하다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을 출품하다     1월 1일, 경부철도(1901년 참조)가 완전히 개통되다     2월 22일, 일본이 ‘다케시마(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다’고 공시하고 독도를 강탈하다     7월에 시작된 화폐 정리 사업을 계기로 일본이 조선의 재정권을 장악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제2차 영·일동맹이 체결되다     포츠머스강화조약으로 러·일전쟁이 끝나다     제2차 한·일협약으로 사실상 보호국으로 전락하다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지다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다     중국혁명동맹회가 청나라 타도를 목표로 결성되다     2월 11일, 동대문 근처 훈련원에서 대한제국 최초의 야구 경기가 벌어지다     4월 3일, 경의철도(1901년 참조)가 완전히 개통되다     제2차 한·일협약 이후 의병 운동이 활발해지다     ‘사람도 차도 오른쪽 통행’ 규칙이 반포되다     스톨리핀이 러시아제국을 구하려 ‘보수적 개혁’을 시도하다     인도인들이 스와라지·스와데시 운동을 벌이다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물러나다     7월,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신문지법과 보안법이 제정되다     군대가 해산되고, 군인들은 의병에 합류하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삼국협상을 이루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다     방사성 연대 측정법으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다     13도 창의군이 한성 진공 작전을 펼치다     장인환과 전명운이 통감부 고문 스티븐스를 죽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되다     청년튀르크당의 혁명으로 오스만튀르크에서 전제정이 폐지되다     T형 포드와 더불어 대량 생산의 시대가 열리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다1     1월 14일, 푸이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로 즉위하다     일본이 간도협약을 맺고 간도를 청나라에 넘기다     일본이 마지막 걸림돌인 의병을 제거하고자 ‘남한 대토벌’을 하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다        11월 1일,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생기다     베이클라이트가 대량 생산돼 플라스틱의 시대가 도래하다     4월 6일,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인류 최초로 북극점을 밟다     ‘마법의 조미료’ MSG가 등장하다     모호로비치치가 지구의 내부 구조를 밝히다     서양식 건축물인 덕수궁 석조전이 완공되다     한·일병합조약이 발표되고 대한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다     멕시코혁명이 일어나다칸딘스키가 최초의 추상화를 그리다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추구한 경학사가 서간도에 만들어지다     ‘일본에 충성하는 선량한 백성’을 목표로 삼은 조선교육령이 발표되다     일본이 105인 사건을 조작해 독립운동을 탄압하다     10월, 일본의 ‘대륙 침략 교두보’ 압록강철교가 준공되다     신해혁명이 일어나다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다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하다     3월, 일본 헌병과 경찰이 재판 없이 한국인을 처벌할 수 있는 경찰범 처벌 규칙이 만들어지다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와 대한독립의군부가 결성되다     일본이 토지조사령을 공포하고 토지조사사업에 박차를 가하다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수립되다     4월 14일,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첫 항해 중에 침몰하다     7월 30일, 일본에서 다이쇼 천황이 즉위하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운동이 전개되다     제 1, 2차 발칸전쟁이 벌어지다     제 1, 2차 발칸전쟁이 벌어지다     엄복동이 일본 선수들을 누르고 자전거 대회에서 우승하다     미주 독립운동이 세 갈래로 나뉘다     일본이 석굴암 보수 공사를 강행하다     보어가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시하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펴내다     녹이 슬지 않는 철, 스테인리스강이 탄생하다     호남선과 경원선이 개통되다총독부가 담배 관련 세금을 인상하다     연해주에서 대한광복군정부가 만들어지다     사라예보의 총성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다          조선총독부가 사립학교 규칙을 개정하다     공화주의를 내건 대한광복회가 결성되다     일본이 한국 지배 5년을 기념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열다박은식이 식민 사관을 비판하는 『한국통사』를 출간하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활동하던 국내 마지막 의병장 채응언이 처형되다     독일군이 독가스를 사용하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가 전쟁에 가담하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다     카프카가 『변신』을 출간하다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제2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다     일본이 임야조사사업으로 삼림을 장악하다     김관호가 한국 최초 누드화 <해질녘>을 그리다     아일랜드에서 ‘부활절 봉기’가 일어나다     베르됭 전투와 제1차 솜전투에서 약 200만의 병력이 희생되다     이광수가 『무정』을 연재하다국민주권과 공화정을 내세운 대동단결선언이 발표되다     인도교가 개통돼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되다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돌입하고 미국이 참전하다     영국이 유대 민족 국가의 건설을 지지하는 밸푸어선언을 발표하다     러시아 혁명치솟은 쌀값 때문에 경성에서 폭동이 발생하다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이 만들어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다인플루엔자가 전 세계를 휩쓸다     1월 22일, 고종이 세상을 떠나고, 일본이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지다     3 · 1운동이 일어나다     중국에서 5·4운동이 일어나다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되다     3 · 1운동이 가져온 것     일본이 회사령을 철폐하고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다     4월, 한국 최초의 노동 운동 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가 만들어지다독립군이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다     8월, 평양에서 ‘토산품 애용’을 주장하는 조선물산장려회가 결성되다     국제연맹이 출범하다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다중국이 군벌들 사이의 전쟁으로 암흑기에 들어서다

무장 독립운동 세력이 임시정부의 외교 중심론을 비판하다     자유시사건으로 독립군이 희생되다     러시아에서 내전이 끝나고 신경제정책이 도입되다     중국공산당이 설립되다     루쉰이 『아Q정전』을 쓰다     사회주의가 확산되고 사상 단체가 속속 생겨나다     한국 최초로 노동절 기념행사가 열리다     어린이날이 선포되다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고국 방문 비행을 하다     아일랜드내전이 벌어지다     무솔리니가 로마로 진격해 이탈리아 총리에 오르다     12월 30일, 소련이 결성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분열하다     신채호가 ‘민중 혁명’을 강조한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하다     조선형평사가 결성되다     간토대지진이 일어나고 한국인들이 학살되다     ‘미키 마우스’를 낳은 월트디즈니가 설립되다        히틀러가 맥주홀 폭동을 일으키다     이광수가 ‘독립 대신 자치’를 주장하는 「민족적 경륜」을 발표하다     4월, 각각 청년 운동과 노동·농민 운동의 대표임을 자임하는 조선청년총동맹과 조선노농총동맹이 결성되다     암태도 소작쟁의가 1년여 만에 마무리되다     제1차 국공합작이 이뤄지다페트로그라드가 레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꾸다     허블이 여러 은하계의 존재를 밝히다     임시정부가 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하다     조선공산당이 만들어지다5월 7일, 사회 운동을 강도 높게 탄압하기 위한 치안유지법이 한반도에도 시행되다‘을축년 대홍수’로 큰 피해가 발생하다‘스콥스재판’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다영화 <전함 포툠킨>에서 몽타주 기법이 도입되다3 · 1운동 이후 최대 규모 시위인 6 · 10만세운동이 벌어지다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으로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다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해 ‘가갸날’을 제정하다     텔레비전이 발명되다     최초의 액체 연료 로켓이 발사되다     일본에서 쇼와 천황이 즉위하다     사회주의자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가 손잡고 신간회를 만들다     경성방송국이 한반도 최초의 방송 전파를 송출하다     12월, 육군 대장 출신 야마나시 한조가 사이토 마코토의 뒤를 이어 제4대 조선총독으로 임명되다     린드버그가 비행기로 대서양을 건너다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국민연합을 결성하다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다     경성에 시내버스가 등장하다     중국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유일당 운동을 펼치다     홍명희가 장편 역사소설 『임꺽정』 연재를 시작하다     만주 군벌 장쭤린이 폭사하다     소련에서 5개년계획과 농업집단화가 시작되다     항생제 페니실린이 개발되다     일제강점기 최대 파업인 원산총파업이 일어나다     8월, 제3대 조선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총독(제5대)으로 다시 부임하다     광주에서 발생한 학생 시위(광주학생운동)가 전국으로 번지다     터키가 라틴 문자를 도입하다     바티칸시국이 수립되다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이 결성되다     제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리다     세계 대공황최승희가 제1회 창작무용발표회를 열다     평양고무공장 노동자들이 원산총파업에 버금가는 파업을 벌이다     인도에서 간디가 소금행진을 벌이다     제1회 월드컵 축구대회가 개최되다     세계 최초의 슈퍼마켓이 문을 열다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하다     육군 대장 출신 우가키 가즈시게가 제6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다     일본의 거짓 정보에 속아 반중국인 폭동이 일어나다     일본이 만주 침략을 계기로 한반도 공업화에 착수하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다     중국공산당이 중화소비에트 정부를 수립하다     윤봉길과 이봉창이 폭탄으로 일본군 수뇌부와 천황을 노리다     총독부가 농촌진흥운동을 시작하다     민생단 사건으로 한국인 혁명가들이 억울하게 희생되다     시암이 입헌군주국이 되다     독일에서 나치당이 제1당이 되다     네지드헤자즈왕국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름을 바꾸다     황금광 열풍이 몰아치다     이청천과 양세봉이 만주에서 일본군에 맞서다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취임하고 파시즘 체제를 구축하다     3월 2일, 미국에서 영화 <킹콩>이 개봉하다     루스벨트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다     3월,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하다      10월, 독일이 국제연맹을 탈퇴하다     실증주의 역사학을 표방한 진단학회가 설립되다     총독부가 농촌계몽운동을 방해하다     중국공산당이 장정을 시작하다     멕시코에서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취임하다     민족유일당을 지향한 조선민족혁명당이 결성되다     우장춘이 세계 최초로 ‘종의 합성’을 입증하다     합성 섬유 나일론이 탄생하다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하다     독일에서 유대인의 시민권이 박탈되다     8월, 육군 대장 출신 미나미 지로가 제7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다     손기정이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어나다     총독부가 학생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다     신출귀몰하던 이재유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다     일본이 세균전 부대를 만들다   일본에서 2·26사건이 일어나다     에스파냐내전이 시작되다     시안사건이 벌어지다     동북항일연군이 국내에 진공해 보천보를 습격하다           소련이 연해주의 한국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다     10월, 조선총독부가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황국신민서사를 만들어 한국인들에게 제창할 것을 강요하다     중·일전쟁이 시작되다     스탈린이 대숙청을 벌이다     일본이 조선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다     총독부가 조선교육령을 개정해 정규 과목에서 ‘조선어’를 삭제하다     일본이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한반도에도 적용하다     11월, 조선일보사 주최로 경성 부민관에서 국내 최초 영화제가 열리다     페르시아만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다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주데텐란트를 합병하다     최초로 핵분열에 성공하다     일본이 국민징용령을 공포하다     10월, 이광수·최재서 등이 일본 문인들과 함께 ‘내선일체 구현’을 표방한 친일 단체 조선문인협회를 결성하다     리승기가 새로운 합성 섬유인 비날론을 발명하다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맺다     제트기와 헬리콥터가 개발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다     나비 박사 석주명이 『조선산 접류 총목록』을 발간하다     총독부가 창씨개명을 강제하다     총독부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하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창설하다     독일이 유럽을 장악하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설치되다       일본이 인도차이나를 침공하다     11월,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가 추축국에 가담하다

일본이 심상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꾸고 ‘조선어’ 교육을 금지하다     일본이 밥그릇과 숟가락까지 뺏어가다     임시정부가 균등 사회를 지향하는 건국강령을 발표하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다     5월, 육군 대장 출신 고이소 구니아키가 제8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다     중국공산당 근거지에서 조선독립동맹이 결성되다     일본이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한글 운동을 탄압하다     일본이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을 장악하다     미국이 원자 폭탄 개발 계획에 착수하다스     탈린그라드공방전이 벌어지다     일본이 학도병제를 실시하고 징병제 실시를 선포하다     총독부가 항일 사적 파괴령을 내리다     ‘한국 독립’을 최초로 명시한 국제 문서인 카이로선언이 채택되다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일본을 괴롭히다     미군이 과달카날전투에서 승리하다      백장미단이 체포되다     바르샤바 게토에서 유대인들이 봉기하다     연합군이 이탈리아 진공 작전에 나서다     티토가 유고슬라비아 임시정부를 수립하다     7월, 육군 대장 출신 아베 노부유키가 제9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다     여운형이 건국동맹을 조직하다     일본이 한국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가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유럽에 제2전선이 열리다     독일 장교들이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하다     가을 들어 소련이 독일군을 몰아내고 영토를 회복하다     10월, 미군이 필리핀 진공 작전에 돌입하다     친일파 대회가 열리던 부민관에서 폭탄이 터지다     총독부가 여운형에게 치안 협조를 요청하다     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하다     일본이 원자 폭탄 공격을 받고 항복하다






'미션' 속  격변의 조선, 충무로에서 '씨  유  어게인'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 행간 읽기 3] <미스터 션샤인>과 주사 서병달 사건 (하)

18.10.02 13:54l최종 업데이트 18.10.02 14:00l





   만약에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지 않았다면 우리 삶은 어땠을까? 다른 건 몰라도 직장인들은 저녁이면 혼마치니 신마치니 불리는 거리로 가서 한국말은 온데간데없고 일본어로 한잔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문턱까지 갔던 게 사실인 듯하다. 해방 전 식민지 수탈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절 진고개길이었고 지금은 충무로인, 당시 혼마치로 불리는 거리 사진들을 보면 여기가 과연 우리나라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눈을 의심케 한다.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일본 여성들이 보일 뿐 아니라 도회화된 조선인들도 양장이나 양복을 입고 다닌다. 그 사이로 여전히 흰색의 한복을 입은 우리 선조들도 보인다. 적어도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신마치(묵정동)-혼마치(충무로)-남대문로'길은 지금의 종로보다 더 서울의 중심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제시대 혼마찌(진고개길)과 2018년의 충무로 거리(1가 인근) 경술국치 이후 진고개길은 혼마찌로 바뀌었고 식민지 시절 내내 번화했다. 해방 직후 바로 혼마찌라는 이름은 충무로로 바뀌었다. 2018년 촬영한 진고개길 입구 충무로 1가는 아이러니하게 관광객의 거리가 되어 그시절의 분위기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 일제시대 혼마찌(진고개길)과 2018년의 충무로 거리(1가 인근) 경술국치 이후 진고개길은 혼마찌로 바뀌었고 식민지 시절 내내 번화했다. 해방 직후 바로 혼마찌라는 이름은 충무로로 바뀌었다. 2018년 촬영한 진고개길 입구 충무로 1가는 아이러니하게 관광객의 거리가 되어 그시절의 분위기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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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자국 거류민들의 상권 확대의 출발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진고개길(충무로)과 선은전 광장이라 불렸던 지금의 서울 중앙우체국 앞 분수광장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고 경술국치 이후 이곳의 북쪽인 지금의 시청 그리고 심지어 광화문까지 진출해 갔다.
  

1920년대 선은전광장의 모습 일제시대 금융가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한 선은전 광장은 일제의 조선수탈 중심지였다
▲ 1920년대 선은전광장의 모습 일제시대 금융가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한 선은전 광장은 일제의 조선수탈 중심지였다
ⓒ 인터넷 수집 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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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의 전차, 정말 진고개 풍경일까?

   전차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자면 tvN의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진고개 거리 중앙으로 전차들이 오가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진고개 가로등 점등식 당시에도 전차가 오고 간다. 아무래도 신문물이 넘쳐나는 격변기였던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데는 전차만 한 것도 없어서일 거다.

이 전차를 인정한다면 아마도 한성전기회사가 1899년부터 운영하던 용산선일 거다. 용산선은 종로에서 을지로 입구, 진고개 입구를 거쳐 남대문, 구용산으로 갔다. 그렇다면 <미스터 션샤인>의 극중 장면처럼 진고개 길 안쪽으로 전차가 다녔을까?

  
구한말  남산에서 명동성당 방향으로 바라본 한성 예장골 일본 공사관 아래로 밀집해 있는 일본식 가옥들이 보인다.
▲ 구한말 남산에서 명동성당 방향으로 바라본 한성 예장골 일본 공사관 아래로 밀집해 있는 일본식 가옥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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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고개는 남산의 잠두봉에서 시작되어 북쪽 수포교 지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냇물이 있었는데 그 냇물길의 중간 정도 현재의 세종호텔 뒤편에 있었던 고개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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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길은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건천이어서 깊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폭우로 수량이 늘면 남산에서 내려온 토사가 좌우로 퍼져 진고개 일대가 진흙탕이 되기 일 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말로 진흙 고개, 한자로 泥峴(이현)이라 불리다 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1885년 일본의 곤도 대리공사가 조선정부로부터 명동성당 후문 또는 진고개 일대를 일본인 거류지역으로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임진왜란 때 한성을 공격하는 왜군의 주둔지가 남산에 있었고 그곳이 왜성터라고 불렸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일대를 거류 지역으로 정한 이유가 짐작이 된다.

이곳은 소위 말하는 남촌인데 남산골 샌님을 '딸깍발이'라고 부른 것이 샌님들이 신고 다니던 나막신 소리 때문이었다. 다만 짚신 살 돈도 없어서 나막신을 신었다는 설도 있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맨날 진흙탕을 다녀야 하기에 나막신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도 있다. 북촌에 조선의 잘 나가는 양반들이 살았다면 이곳 남촌에는 샌님들이 살았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남촌의 주인공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진고개터 표석 진고개터 표석은 현재의 충무로 2가에 있는 세종호텔 뒤편 모서리에 세워져 있다.
▲ 진고개터 표석 진고개터 표석은 현재의 충무로 2가에 있는 세종호텔 뒤편 모서리에 세워져 있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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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고개 길(현 충무로)이란 현 한국은행 대각선에 있는 서울 중앙우체국 오른쪽 골목에서 세종호텔을 지나 현 충무4~5가 인쇄거리, 명보극장, 중구청 인근에 이르는 길이다. 구한말 초기 일본 거류민들은 공사 인부 정도였는데 이후 거류민들이 증가하면서 음식점에 각종 물건을 파는 상점 등 상업이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진흙 때문에 장사는 물론이거니와 거주마저 힘들 지경이어서 공사관이 주도를 해 상인들로부터 자금을 모금하여 진고개의 흙을 2.5미터 가량 파내어 고개의 높이를 낮추고 도로를 확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길 아래에 지름 1.5미터 정도의 하수관로를 파묻어 물을 흘려보냈다.

이로 인해 진고개의 고질적인 진흙탕 문제는 해결이 되자 일본인들은 진고개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황금정(현 을지로 4가), 동쪽으로는 신마치(현 묵정동, 소피텔엠버서드호텔 인근), 서쪽으로는 남대문까지 상권을 넓혀갔다. 남산 아래에 국한되어 있던 일본인들의 활동무대가 서울 주요 지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1920년대 ‘경성유람안내도’ 검은색으로 표시된 도로가 진고개길(일제시대 혼마찌)이며 빨간색이 전차노선도인데 진고개길 안쪽으로는 전차길이 없다.
▲ 1920년대 ‘경성유람안내도’ 검은색으로 표시된 도로가 진고개길(일제시대 혼마찌)이며 빨간색이 전차노선도인데 진고개길 안쪽으로는 전차길이 없다.
ⓒ 인터넷 수집 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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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 션샤인>의 극중 시점이 1902년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03년이라면 결론적으로 진고개길 안쪽으로 다니는 전차는 없었다. 나중에 창경궁 오른쪽(현 창경궁로 중간)에서 남쪽으로 을지로 4가역을 지나 중구청 사거리에 이르는 본정선(本町線 또는 창경원선, 1910)이 생겼다. 경성관광유람도에선 중구청 쪽 종착점을 진고개 입구의 반대편 끝지점임에도 불구하고 본정(혼마찌)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이곳에 본정선이 들어온 것은 황금정 신마치가 혼마찌에 이어 일본인들의 중심가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별 전차 노선도를 확인해보면 진고개 길을 따라 운행된 전차노선은 결국 생기지 않았다. 이윤에 민감한 미국인들의 주도하에 진행된 전차 사업이 요금 때문에 대한제국 백성들의 구매 저항이 있을 것을 예상했다면 일본인 승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극중 시점에서 진고개를 가는 사람들이 하차를 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일본의 조선수탈 중심지 '선은전 광장'

   진고개를 전차로 가려면 하차를 해야 하는 곳은 현 한국은행(화폐박물관)과 서울중앙우체국, 신세계백화점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선은전(鮮銀前)광장'이다. 선은전 광장이란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 앞 광장이라는 뜻으로 식민지 시절 내내 센긴마에히로바라고 불렸다. 이곳에 내리면 진고개 입구 혹은 혼마찌 입구로 들어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 광장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903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발간된 '한국경성전도'를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일제시대 ‘선은전 광장’과 1903년도 발행 ‘한국경성전도’ 분수광장인 일제시대 ‘선은전 광장’은 한성의 구조를 감안하면 상당히 넓게 잘 닦여진 거리였으며 경술국치 이전인 1903년도 모습은  ‘경성전도’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다음 그림 참조)
▲ 일제시대 ‘선은전 광장’과 1903년도 발행 ‘한국경성전도’ 분수광장인 일제시대 ‘선은전 광장’은 한성의 구조를 감안하면 상당히 넓게 잘 닦여진 거리였으며 경술국치 이전인 1903년도 모습은 ‘경성전도’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다음 그림 참조)
ⓒ 인터넷 수집 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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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은전 광장 인근은 당시 그야말로 일본의 관청과 금융기관과 주요기업이 몰려 있거나 인접해 있었다. '한국경성전도'에 의하면 1903년 이곳에 조선은행(1912년 건축)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엔 '일본거류민역소'와 '일본우편진신국'이 있었다. 그 건너편 신세계백화점 자리엔 '일본영사관'이 이었다.

광장의 규모는 당시 한성의 도시 구조를 감안하면 꽤 넓었으며 남대문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기에 전차 선로를 이곳으로 깔기에 좋았을 것이다. 남대문로는 종로 보신각(종로구 관철동 45번지)에서 시작해서 남대문(남창동 20-1번지)까지 1500여 미터 이어진다. 애초 조선 한양 천도 이후 경복궁 앞 주작대로가 세종로 사거리에서 종로길과 만나고 다시 종로길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졌지만, 이 길이 확장되고 활성화된 것은 일본의 조선 침탈 계획의 일환이었다.

 
1903년 당시 서울 중앙우체국 앞 ‘분수광장’ 인근 모습(경성전도 확대) 조선은행은 아직 지어지기 전으로 인근에 영사관, 거류민역소, 우편전신국, 경찰서 등이 집중되어 있다.
▲ 1903년 당시 서울 중앙우체국 앞 ‘분수광장’ 인근 모습(경성전도 확대) 조선은행은 아직 지어지기 전으로 인근에 영사관, 거류민역소, 우편전신국, 경찰서 등이 집중되어 있다.
ⓒ 인터넷 수집 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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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은전 광장에서 진고개 방면에 자리한 '일본거류민역소'와 '일본우편전신국'은 결국 일본인 거주인구 증가에 따른 편의시설이었다. 원래 일본인들은 한성 안에 거주할 수 없었다. 1880년 서대문 바깥, 지금의 금화초등학교(서대문구 천연동)자리에 있었던 천연정 청수관을 사용하던 일본 공사관에 40여 명이 기거한 것이 최초 거주자들이었다.

1년 뒤 일본 공사관은 임오군란으로 청수관이 불에 타자 성안으로 진출해 이종승 금위대장 집을 임시로 사용하다가 바로 박영효 대감의 집(현 천도교회관 옆) 자리에 공사관을 지었다. 이때 공사를 빌미로 일본인 인부 70여 명이 한성에 들어왔는데 이들은 기존 일본인들과 달리 민간인 거주자였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 일부 완공하여 사용 중이던 공사관 건물이 또 불에 타 버리자 일본정부는 조선정부에 생떼를 써 1885년 2월 일본인들의 성내 거주를 허락받게 되었다.

  
천연정터 표석 현재는 천연동 금화초등학교 앞 인도에 당시 천연정터였곳임을 알려주는 표석만 남아 있다.
▲ 천연정터 표석 현재는 천연동 금화초등학교 앞 인도에 당시 천연정터였곳임을 알려주는 표석만 남아 있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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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적으로 공사관이 남산 예장골에 있던 녹천정을 허물고 자리를 잡음으로써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남산 아래 명동성당 후문 앞에서 시작해 예장동, 주자동, 진고개, 진고개 입구(충무로 1가)까지 빠르게 확대되었고 인구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예장골은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술 연습장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한양을 공격하기 위해 왜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녹천정은 철종이 세운 정자였는데 이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빼앗겨 허물어져 사라졌다.

일본인들은 임진란의 기억을 잊지 않고 그 곳을 중심으로 조선 수탈을 본격화해갔다. 남산의 일본공사관은 이후 통감부로 바뀌었고 통감부 인원이 늘어나면서 현재의 서울에니메이션센터 자리에 새로운 통감부 건물을 지었다. 기존 건물을 통감관저로 사용했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가끔 등장한 일본 공사의 사무실은 바로 녹천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남산의 소방 방재청 인근일 것이다.

 
남산 녹천정(예장골)에 자리 잡은 일본공사관(통감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공사관이 통감부로 바뀌었으며 1906년 통감부는 대한제국의 초등학교였던 ‘소학교’를 ‘보통학교’로 개칭했다. 왼쪽 검은색 원안의 건물이 남산에 중턱에 있던 일본 공사관 건물이다. 오른쪽 사진은 1906년 당시 일본 천황 메이지의 생일(11월3일)인 ‘천장절’을 맞이하여 학생들을 동원하여 거행한 기념식 장면이다.
▲ 남산 녹천정(예장골)에 자리 잡은 일본공사관(통감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공사관이 통감부로 바뀌었으며 1906년 통감부는 대한제국의 초등학교였던 ‘소학교’를 ‘보통학교’로 개칭했다. 왼쪽 검은색 원안의 건물이 남산에 중턱에 있던 일본 공사관 건물이다. 오른쪽 사진은 1906년 당시 일본 천황 메이지의 생일(11월3일)인 ‘천장절’을 맞이하여 학생들을 동원하여 거행한 기념식 장면이다.
ⓒ 인터넷수집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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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영사관은 공사관 내에 있다가 1885년 현 남산 1호 터널에서 명동방향으로 내려와 만나는 사거리 우측 주자동 6번지, 즉 녹천정 자리의 일본 공사관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 거주자 관련 업무가 많았던 영사관은 진고개 일대 일본인 거주자가 늘어나자 1896년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 즉 진고개길 입구 건너편에 2층 양옥을 지어 이전하였으며 통감정치가 시작되자 영사관은 경성이사청으로, 경술국치 후 경성부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경성부 청사가 현 서울시청으로 신축해서 옮기자 그 자리에 미쓰코씨 백화점이 들어서게 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해방 후 미군정 시절 적산불하 과정에서 불하되어 백화점으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경성이사청(이전 일본영사관)과 이후에 같은 자리에 세워진 미쓰코시 백화점 분수광장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세워진 2층 양옥의 일본 영사관건물은 경성이사청, 경성부 청사로 사용되다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1930년 일본의 ‘미쓰코시 백화점’이 세워졌다.
▲ 경성이사청(이전 일본영사관)과 이후에 같은 자리에 세워진 미쓰코시 백화점 분수광장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세워진 2층 양옥의 일본 영사관건물은 경성이사청, 경성부 청사로 사용되다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1930년 일본의 ‘미쓰코시 백화점’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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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거류민 역소'는 청일전쟁 이전까지 소공동, 서소문, 북창동 일대가 청국 상인들이 중심지기에 청국 상공인 단체의 '중화회관' 건물이었지만 전쟁 패배로 한성에서 청국 상인들이 대거 철수하면서 진고개길에 초입 최고의 위치를 일본인들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03년 일본인 거류민 역소와 영사관이 진고개 입구에 있었다는 것은 일본인 거주의 중심지가 진고개 중간 명동성당 부근이 아니라 이곳으로 옮겨졌으며 그 넓이 또한 엄청나게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고사흥 대감의 밀지와 모리 다카시의 전보

   일본인들의 활동의 중심지가 된 진고개 입구 선은전 광장엔 1903년 당시 영사관과 거류민 역소 외 또 하나의 중요한 시설이 있었는데 바로 훗날 경성의 중앙 우체국 역할을 하는 '경성우편국'의 전신 '일본 우편전신국'이다. 당시엔 전화도 보급이 잘 안되어 있던 시절이라 우편과 전보는 조선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일본 정부기관이든 조선 땅에서 돈을 벌려는 일본 기업과 장사꾼들에겐 더 없이 중요했던 시설이었다.

 <미스터 선샤인> 13화에서 우국충절 고사홍 대감은 일제가 제일은행권으로 조선의 경제를 유린하고 물자를 수탈하고 있음에 개탄하여 전국의 뜻있는 유생을 결집시키기 위하여 밀지를 발송하는데, 친일파 우체국 책임자가 가로채서 친일파 수장인 외부대신 이완익에게 넘긴다.

그리고 20화에는 조선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일본군 장교 모리 다카시가 조선의 정세와 반일 인사 및 항일의병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수집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유진초이가 한성 우체사의 전보 수발신 내역을 조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둘 다 한성의 우편시설에 관련된 이야기들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옥에 티이거나 허구의 정도가 좀 심하다.

 
2층으로 지어진 초기 ‘일본우편전신국’ 건물과 3층으로 지어진 ‘경성우편국’ 건물 ‘일본우편전신국’은 1900년에 현 분수광장이자 진고개 입구인 충무로 1가 일본거류민역소 뒤편에 지어졌고, 이후 1915년 거류민역소를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최신식 ‘경성우편국’ 건물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2층 건물은 경성우편국 부속건물로 사용하였다.
▲ 2층으로 지어진 초기 ‘일본우편전신국’ 건물과 3층으로 지어진 ‘경성우편국’ 건물 ‘일본우편전신국’은 1900년에 현 분수광장이자 진고개 입구인 충무로 1가 일본거류민역소 뒤편에 지어졌고, 이후 1915년 거류민역소를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최신식 ‘경성우편국’ 건물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2층 건물은 경성우편국 부속건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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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모리 다카시가 조선의 은밀한 정보를 전보를 통해 한성의 밀정들로부터 받았다면 한성의 대한제국 우체사가 아니라 일본 거류민 역소 뒤편에 있던 일본 우편전신국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일본 우편전신국은 일본인들이 본국이나 제물포항까지의 교신을 위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시설이어서 대한제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다카시나 밀정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면 한성 우체사를 이용했을 리가 없다. 유진초이가 다카시의 밀정들을 찾고 싶었다면 구동매의 힘을 이용해 진고개 입구 '일본 우편전신국'을 조사했어야 말이 된다.

  
우편으로 발송된 고사홍 대감의 밀지 고사홍 대감의 밀지는 한성우체사의 소인이 찍혀져 발송되었다. 사진은 <미스터 션샤인> 스틸컷.
▲ 우편으로 발송된 고사홍 대감의 밀지 고사홍 대감의 밀지는 한성우체사의 소인이 찍혀져 발송되었다. 사진은 <미스터 션샤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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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고사흥 대감의 밀지와 관련된 스토리는 무엇이 문제일까? 고사흥 대감의 밀지는 진고개의 일본 우편 전신국에서 붙인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우체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아마도 1895년에 우편업무를 시작한 종로구 세종로에 있던 한성우체사를 이용했을 것이다. 물론 외부대신 이완익이 주무르는 친일파 우체사 총판에 의해 밀지를 절취당하지만 이미 조선의 우편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렇듯 대한제국의 독자적인 우편이나 통신서비스는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침략의 걸림돌이었다.


 
한성우체사와 통신원 총판 민상호 대감 1895년 다시 우정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 한성에 개설한 한성우체사 모습과 1900년 우정사업을 관장하는 통신원이 생기면서 총판을 맡은 민상호 대감(1898년 미국화가 휴버트보스가 그린 초상화)
▲ 한성우체사와 통신원 총판 민상호 대감 1895년 다시 우정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 한성에 개설한 한성우체사 모습과 1900년 우정사업을 관장하는 통신원이 생기면서 총판을 맡은 민상호 대감(1898년 미국화가 휴버트보스가 그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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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1880년대 이미 자주적인 전신 및 우편 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1884년 우정총국을 두어 우편업무를 개시하려 했으나 12월4일 바로 그 우정총국 낙성식을 기해 갑신정변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1895년 다시 농상공부 산하에 우체사(농상공부 통신국 체신과)를 두어 본격적인 전국 규모의 우정사업을 시작했다. 1900년 3월 우정사업을 전담하는 통신원이 설립되었을 때 이미 전국에 38개의 우체사가 있었고 그 해에 만국우편연합에도 정식 가입을 했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친일파 이완익에게 붙어 고사홍 대감의 밀지를 불태우고 다시 변절하여 구동매에게 밀지 중 남아 있던 마지막 본을 전하는 '윤총판'이라는 자는 우체사 총판이 아니라 통신원의 총판이어야 맞다.

친절하게도 드라마에선 총판이 우체사의 최고 직위라는 자막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옥에 티다. 우정총국의 최고 책임자가 총판이었듯이 당시 총판은 통신원의 최고 책임자 관직이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보면 고사홍 대감의 밀지가 총판에 의해 친일파에게 넘겨지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스터 선샤인 윤총판과 한성우체국 실내 모습 극중에서 우체사의 최고 책임자로 표시되지만 당시는 통신원 책임자가 총판이었다. 오른쪽 사진은 구동매와 유진초이가 한성우체사에서 일본인 장교 모리 다카시와 관련된 전보수발신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미스터 션샤인> 스틸컷.
▲ 미스터 선샤인 윤총판과 한성우체국 실내 모습 극중에서 우체사의 최고 책임자로 표시되지만 당시는 통신원 책임자가 총판이었다. 오른쪽 사진은 구동매와 유진초이가 한성우체사에서 일본인 장교 모리 다카시와 관련된 전보수발신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미스터 션샤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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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한제국 내 우편전신 사업은 일본인들 외에도 조선인들과 대한제국 거주 외국인들까지 이용하게 함으로써 대한제국 우정사업의 국권확립을 방해하고 있었다. 급기야 1903년엔 대한제국의 통신원이 일본 우편전신국의 영업이 불법이라고 강력히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실제 총판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반일 친미파 민상호 대감이었다. 이 사실을 기초로 극이 전개되었다면 고사홍 대감의 편지를 총판이 가로채 이완익에게 넘겨주는 스토리는 성립될 수가 없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반일성향이 강했던 민상호 대감 대신 스토리의 전개를 위해 친일파인 가상의 인물을 만든 것이다.

결국 대한제국의 통신원은 일본의 침략이 더욱 거세져 1905년 한일통신합동조약이 체결되고 12월 20일 통감부 통신관서제도가 발표되면서 통신관리국하의 우편소가 관장하게 되었지만 일제에게 통신권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1906년 7월 통감부령에 의해 통신원은 완전 폐지되고 만다.

통신원이 폐지되면서 한성우체사를 흡수한 진고개 입구의 '일본우편전신국'은 1905년 이미 '경성우편국'으로 바뀌었고 그 해에 2층 양옥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1915년에는 이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3층에 벽면은 붉은색과 흰색 화강석으로 올리고 옥상은 돔형태를 취한 연면적 4400여 평방미터 새로운 우편국 건물이 완공되어 바로 옆 혼마치(진고개길)와 함께 일제시대 동안 일본인들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건물은 해방 후 그대로 사용되다가 1949년에 서울 중앙우체국 간판을 달았지만 한국전쟁 때 반파되었고, 휴전 후 반파된 건물을 복구하여 사용하다가 1957년에 완전히 허물어 3층짜리 새 우체국 건물을 세우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우정사업을 방해한 것은 결국 고사흥 대감의 밀지처럼 조선의 의병이나 항일 세력의 성장을 막기 위한 치밀함이었다.

아쉬운 역사의 순간, 구한말

   갓 쓰고 도포 두르고 다니던 대한제국에서 고작해야 마차나 인력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시절에 전차의 도입은 일본의 교토와 도쿄 다음이었다. 전등이 점화된 것은 에디슨이 전구를 개발하고 8년 후였다니 꽤나 혁신적인 사건들이었다. 문호개방이라는 명목 하에 청나라와 더불어 서구열강의 이권 쟁탈전이 치열했던 조선에서 새로운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던 전기서비스를 둘러싼 이야기는 그만큼 우여곡절로 가득 차 있다.

실제 전차를 도입하자마자 바로 어린아이가 치여 죽는 사고가 있었고 조선 인력거꾼들은 손님이 떨어져 불만이 엄청났다. 심지어 공중에 떠 있는 전선줄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헛소문까지 나돌고 전차 운전수나 매표원들에 대한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전차도입 초기 운전수였던 일본인들이 총을 소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도 한다. 실제로 조선인들이 무서워 이들 일본 전차 운전수들이 모두 그만두는 바람에 한동안 전차 운행이 정지되기도 했다.

   전차 사업의 주축세력은 미국 공사 알렌의 비호를 받고 있던 미국인들이었고 한동안 한성은 전차를 둘러싼 잡음과 반발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전차나 전등, 우정사업 등이 대한제국 정부의 초미의 관심사였고 그만큼 독자적인 근대화의 열망이 엄청났음에도 외세 침략에 전전긍긍하는 면만을 그려낸 것이 아쉽다.

당시는 아직 경술국치 이전이어서 식산흥업 정책을 펼쳐가고 있던 대한제국이 주도가 되어 전기사업이 도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꿈을 망친 국가가 바로 일본과 미국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본에 비해 미국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국가로만 그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 외세에 의한 한국 독립의 파괴’(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 서울대 출판부, 2007)책 표지와 저자 캐롤 카메룬쇼(Carole Cameron Shwa, 72세)
▲ 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 외세에 의한 한국 독립의 파괴’(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 서울대 출판부, 2007)책 표지와 저자 캐롤 카메룬쇼(Carole Cameron Shwa, 72세)
ⓒ 캐롤카메론쇼,서울대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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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비분강개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한성전기를 둘러싼 이야기를 파다 보면 많은 의문이 든다. 과연 한성전기가 콜브란에게 줘야 할 돈이 그렇게 많았을까? 한성전기는 왜 적자였을까? 왜 조선인들에게 운영과 기술이 전수되지 않았을까?

신문물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직접 도입하거나 운영할 능력이 없어서 대한제국이 외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당시 상황과 사건, 개입 인물들을 조사하다 보면 국가의 발전에서 신문물이 하게 될 역할과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또한 막연히 미국이나 러시아와 관계를 잘 맺으면 일본을 견제할 수 있을 거라는 미성숙한 외교 감각이 문제였던 것 같다. 실제로 2007년에 국내 출간된 미국 재야 사학자 캐롤 카메룬쇼(Carole Cameron Shwa, 72세)의 <외세에 의한 한국 독립의 파괴>(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 서울대 출판부)에 의하면 경술국치 이전 이미 미국은 한반도의 일제 강점을 묵인했었다고 한다.

심지어 1904년 러일 전쟁을 앞두고는 당시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의 주선으로 일본은 철강회사 카네기, 제피모건 등 미국 대기업으로부터 7억 엔(현재 가치 14조 원)에 달하는 전쟁차관을 조달했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는 일까지 나중에 벌어졌지만 적어도 미국은 일본의 전세계를 상대로 한 식민지 전쟁을 지원한 셈이었다.

후세에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서병달 주사 같은 분이 이 전체를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물 운영의 주도권을 외세에 넘겨 줄 수 없다는 순수한 그의 애국심은 이후 항일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간접자본과 같은 기간산업은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깨우침도 주었을 것이다. 

뜨거웠던 화제의 드라마를 보면서 그 시대의 우리 선조들의 삶의 고뇌와 아픈 경험을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매천 황현 선생이 그 긴 세월동안 손수 그 시대를 기록하고 남긴 것도 당대 사람들보다 후대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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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한전국기통신 100년사>, 1984년 전기통신공사
2. <한국근대 전기산업의 발전과 경성전기(주)>, 오진석, 2006년
3. <대한제국의 전기사업-한성전기회사를 중심으로>, 김연희
4. <관광안내로 본 근대 도시 경성 -1920~30년대 도해 이미지를 중심으로>, 김선정, 2017년
5. <도시 '본정통'의 장소 기억 -충무로·명동 일대의 사례>, 전종한, 2013년
6. 전우용의 서울탐사 블로그-센긴마에히로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