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松幽岫亭》 曹知白
元代 立轴 纸本水墨 纵48厘米 横36.4厘米 (法)吉美国立东方美术馆藏
前景是挂满藤蔓的参天松柏,中景、远景的山峰层叠而巍峨。山间有飞流的瀑布,瀑布下有平常的人家。
虽然仍能找到宋代山水画的遗风,但曹知白也将自己的个性色彩加了进去。
由于家中雄厚的财力,曹知白的日子过得舒心如意,与倪瓒等人同为太湖一带的著名文人。
传世之作有《疏松幽岫亭》《群山雪霁图》《溪山泛艇图》等。
《花卉图》 陈遵
明代 立轴 绢本设色 纵136.8厘米 横57.8厘米 (日)泉屋博古馆藏。
溪流自左至右贯穿着画面,岸边繁花似锦,色彩缤纷。花草以没骨法画成,色彩浓淡层次丰富。轻柔的笔法,完美地表现出小溪边的清新景致。
陈遵,生平不详,明代画家。字汝循,浙江嘉兴人。擅长描绘花鸟,栩栩如生。传世作品有《三友图》《枇杷图》《蓼花蛱蝶图》。
《陶渊明故事图》陈洪绶
明末清初 长卷 绢本设色 纵30.3厘米 横308厘米 (美)火奴鲁鲁艺术学院藏 (호노룰루?)
陶渊明是东晋时期的诗人、名士,不阿权贵,嗜酒安贫,喜好在宁静中体会生活的乐趣。这幅画抓取解印、种秫、归去、无酒等几个特写镜头来描绘陶渊明辞官归田后的清馨生活(此选两幅)。
作者陈洪绶(1598—1652)是明末清初的人物画家,少年时得到北宋李公麟所作《孔门七十二贤》的拓本,关门在家终日鉴习。到晚年已突破前人陈规,自成一派。
《仙山图》陈汝言
元代 长卷 绢本设色 纵33厘米 横102.9厘米 (美)克利夫兰艺术博物馆藏 클리브랜드?
山峦层叠起伏,错落有致。山顶和山脚都配以墨色厚重的松树,它们压住了山峰鲜亮的绿色,使画面趋于沉稳。山峦中安排了小桥、村落、浮云、人物,左下角两人正在看山羊戏耍,右边有高士与童子,一片世外仙境的境象。
陈汝言,元末画家,和元四家之一的王蒙是好友。传世之作有《仙山图》《百丈泉图》《荆溪图》等。
《猿图》 法常
宋代 立轴 绢本水墨 纵173.9厘米 横98.8厘米 (日)京都大德寺藏
一棵枯松斜插天际,猿猴的重色稳定了画面的重心。
作者用浓墨画猿猴的躯干、脚爪,然后用笔反复皴擦,使毛皮的质感十分强烈。猿猴面部留白,眉眼用焦墨随意点出。松树枝干的描绘狂乱泼辣,是作者常用的“蔗渣草结”式的笔法。
法常(?—1281)是南宋西湖长庆寺的和尚,早年是儒生,中年出家。与当时来中国的日本僧人关系不错,许多画作流传到日本,对日本绘画产生很大影响。
传世作品有《猿图》《渔村夕照图》,另有《龙、虎》对幅 等。
《明妃出塞图》宫素然
宋代 长卷 纸本水墨 纵30.2厘米 横160.2厘米 (日)大阪市立美术馆藏
图中描绘西汉宫女昭君远嫁出塞的情形。寒风迎面,景色荒凉,人物形象刻画极为真实生动,笔墨技巧纯熟,线条勾画细致流畅,淡墨略染衣褶、马匹,将塞外苍茫萧瑟的环境特点表现出来。
此画的构图和人物造型与金代画家张踽的《文姬归汉图》极为相似,后世普遍认为作者参考了《文姬归汉图》。
宫素然,宋代女画家,事迹不详,根据《明妃出塞图》的题款,可以知道她是宋高宗时贵州镇远女道士。
《中山出游图》龚开
宋末元初 长卷 纸本水墨 纵32.8厘米 横169.5厘米 (美)弗利尔美术馆藏 (프리어미술관)
Freer Gallery of Art and Arthur M. Sackler Gallery
此图插绘的是钟馗和妹妹率众小鬼一起出游的场景。从题诗中可知,他们一行正在为途中没有食物而发愁。小鬼们都望着钟馗,希望他能有办法。但钟馗也无计可施,回头无奈地看着妹妹。
通过他们目光的牵引,我们自然地浏览了全图,也体会了画中的情趣。
龚开(1222—1304),宋末元初画家,宋朝末年曾任官职,入元后卖画为生。擅画人物和马。他的传世之作有《中山出游图》《骏骨图》等。
*** 전재자 註 : 당 현종 이전 중국 기록에서 귀신을 잡는 역활을 하는 종규(鐘馗)와 같은 신이설화(神異說話)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종규(鐘馗)는 신라의 처용설화가 당나라 유학생이나, 유학승 또는 사신 등의 신라인을 통하여 중국에 전하여진 후에 새로이 만들어진 신(神)으로 짐작된다.
나당연합군의 백제와 고구려 정벌( 660 ~668년) 후 양국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역병과 정변 등이 창궐 또는 속출하자 이반하는 민심을 잡기 위한 정략적인 홍보와 정훈용(精訓用) 설화로 당황실에서 현종의 꿈에 가탁하여 당시 화괴(畵怪)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오도자(吳道子)에게 명하여 이를 그리게 하고, 정초에 액막이용 세화(歲畵)로 대신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신라에서 처용그림을 세화로 활용한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중국의 기후와 장강이 발달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음력 5월에 역병이 창궐하고, 홍수와 기근으로 인한 민란이 일어나기 쉬운 계절임을 감안하여, 당초 당나라에서 정월에 나누어주던 세화용 종규그림을 음5월에 나누어주는 것으로 바꾼 것으로 볼 때, 신라의 처용설화가 중국에 전해져 종규설화로 재탄생하였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十六罗汉图•诺距罗》贯休
唐代 立轴 绢本设色 纵129.1厘米 横65.7厘米 (日)高台寺藏
传说中的诺距罗原是一位勇猛的战士,出家后佛主让他静坐修行,摒弃粗野的性格。图中的诺距罗虽双手合什,但双眉紧锁,气宇轩昂,仍然透着一股威猛之气。
贯休,唐末画家,和安寺的和尚,所以绘画以佛像居多。《十六罗汉图》中的罗汉都是高鼻、深眼窝,可能是根据印度人的长相所作。传世作品有《十六罗汉图》《释迦十弟子》,另著有《禅月诗集》。
《罗汉图》归庄
明末清初 册页 纸本水墨淡设色 纵26厘米 横35.3厘米 (美)克里夫兰艺术博物馆藏 (클리브랜드?)
这两个罗汉虽然一把年岁,仍然对坐嬉戏,传达出天真淡泊的禅意。衣纹信笔草草,一波三折,欲飞欲狂,就在这看似潦草的挥洒中却准确地刻画出了人物的形体和姿态。
归庄(1613—1673),原名祚明,是明末清初的书画家。归隐于山庄之中,所以才改名叫归庄。他山水、花鸟、兰竹无不擅长,且深得元代大家的遗韵。
传世作品有《罗汉图》《墨竹诗翰》。
《日暮归渔图》江参
宋代 团扇 绢本水墨 纵24.2厘米 横25厘米 (美)波士顿艺术博物馆藏 (보스턴)
一位渔夫在日暮时分,肩扛渔具,从桥上蹒跚经过,走在归家途中。过不了多久,他的身影就将消失在后面的山林中,而这一片清淡的风景也要隐退在茫茫的夜色里。扇面背后还有宋高宗亲笔所题的诗章。
江参,生平不详,南宋画家。山水学董源、巨然,笔墨细润,擅用水墨写江南景色,由于受文学家叶梦得称道,声名鹊起。
《寒山拾得图》蒋贵
明代 立轴绢本 水墨淡设色 纵173.5厘米 横105.5厘米 (美)普林斯顿大学美术馆藏 (프린스턴)
“寒山”和“拾得”是唐代的两位高僧。寒山好吟词偈,神情疯癫。拾得是孤儿,为寺庙僧人拾到收养,在寺里伙房打杂,与寒山友善。历代画家喜欢以此为画题。两位人物,一人染淡墨,一人用白描,以战笔和铁线描写衣纹。
蒋贵,明代画家,生平不详。号青山,江苏仪征人。师法同代人物画家吴伟,作品细致逼真。
《孔子圣迹图》焦秉贞
清代 册页 绢本设色 纵29.2厘米 横35.7厘米 (美)圣路易斯美术馆藏(칼루이스?)
孔子席地而坐,俯身拱手,正推销自己的治国之道。国君慵懒地坐在红木椅上,似乎已经听得不耐烦了。孔圣人也面露难色,转过脸来,不知道说什么好。国王身后三五个随臣,交头接耳。
焦秉贞,生平不详,清代画家。康熙时供奉宫廷之中,任钦天监五官正,擅画人物、山水、花卉和楼阁。画法工细,设色鲜丽,画风受到西方绘画的影响。
《横竿晴翠图》柯九思
元代 立轴 纸本水墨 纵51.7厘米 横32.5厘米 (日)大阪市立美术馆藏
竹枝一竿,自上倾下,又翻转而上,用笔苍劲,竹叶用浓墨画出,主干用墨稍淡,将人的注意力全部集中在长势劲猛的竹叶上,表现出自在而顽强的精神境界。
柯九思(1290—1343),元代画家。号丹丘生,浙江台州人。博学能文,曾任职奎章阁鉴书博士。精鉴赏古物书画,墨竹师法文同,亦擅画墨花、山水。
《藻鱼图》赖庵
年代不详 立轴 绢本水墨 纵89.6厘米 横48.3厘米 (美)波士顿艺术博物馆藏(보스턴)
这条大鱼突然掉转身来面对观者,嘴巴大张, 目光犀 利。鱼几乎占据了画面的全部空间,作者用细线精心描绘了片片鱼鳞,通过晕染来显示质感和立体感,以淡墨写水草,并通过鱼尾的摆动和水草的摇晃增加了画面的动感。
赖庵,僧人,生平事迹不详。擅画鱼藻。
《读碑窠石图》李成
五代宋初 立轴 绢本水墨 纵126.3厘米 横104.9厘米 (日)大阪市立美术馆藏
古碑压在石雕巨龟的背上,掩映在枯树之后。薄雾将斑驳的石碑与读碑的二人一起遮盖得影影绰绰。枯木的枝条扭曲如怪爪,似乎在命运的颠沛中挣扎生长。
李成(919—967),五代宋初画家,祖上为唐代贵族,五代时为避乱而流离四方。他才学过人却时运不济,纵情诗酒、寄兴书画,最后醉死在他乡。与同代画家范宽一起形成了北方山水画派的主流。
《枯木竹石图》李衎
元代 立轴 绢本水墨 纵160.1厘米 横85.8厘米 (美)印第安纳波利斯艺术博物馆藏 (린제 안느 팰리스?)
高大而枯老的松树穿透了画面的山下两端,两枝横干上挂满了深色的藤蔓,像一个象征性的符号,充满压迫感。
李衎,元代画家。 号息斋道人。少年孤贫,从20岁开始在太常寺作小吏,后来官至吏部尚书、集贤殿大学士。擅画墨竹,在当时享有盛名,曾奉命绘制宫殿、寺院壁画。传世作品有《枯木竹石图》《双钩竹图》《墨竹图》。
《东丹王出行图》李赞华
辽代 长卷 绢本设色 纵27.8厘米 横125.1厘米 (美)波士顿艺术博物馆藏 (보스턴)
图中人物都是胡人形象,但各具姿态,衣冠、服饰、佩带各有不同,马匹肥硕矫健。画面中,东丹王李赞华却神情忧郁,若有所思。人物与马的描绘技法非常出色。
李赞华,契丹人,辽代开国皇帝耶律阿保机长子,封东丹王,公元 930 年投后唐明宗,赐姓名李赞华。后来他被唐明宗养子遣人杀害。李赞华通音律,善文章,擅画契丹人物,画风对后世影响很大。
《五星二十八宿神形图》梁令瓒
唐代 长卷 绢本设色 纵28厘米 横491.2厘米 (日)大阪市立美术馆藏
这本《五星二十八宿神形图》册中的形象,将天文、传说、世俗理念等糅为一体,形成独特的艺术效果。此画的画法是唐代吴道子人物画的典型画风,以至于后世董其昌在题跋中误定为是吴道子所作。
梁令瓒,唐代天文学家、画家。精通天文、数学,曾参加改造新历的活动。后又与同代著名天文学家僧一行共同创制了“浑天仪”。
《落花游鱼图》刘寀
宋代长卷 绢本水墨淡设色 纵26.4厘米 横252.2厘米 (美)圣路易斯艺术博物馆藏 (칼 루이스?)
画面以俯视的角度描绘了动态轻盈的水底游鱼,看似杂乱无章,实则各方有序,深具匠心。虽然对水不着一笔,但通过游鱼的自由穿梭,我们仍然感到它的柔滑清凉。
刘寀,北宋画家。年少时流离失所,寓住京都,性格豪放,流连于诗酒之中,过着放荡不羁的生活,这也是他选择自由自在的鱼作为抒情寄托的原因。上图为《落花游鱼图》的局部。
《消夏图》刘贯道
元代 长卷 绢本水墨淡设色 纵29.3厘米 横71.2厘米(美)纳尔逊•艾京斯艺术博物馆藏
图中一位士大夫正斜倚在木榻上消磨夏季湿热烦闷的时光,木榻后的屏风上画一高士正在童子陪伴下读书,高士的背后又有一面绘有山水的屏风。左手执一画轴,画虽然没有打开,但他只是想想画的内容就已心旷神怡。
刘贯道,元代画家。擅长人物、道释画,是当时的名家高手。传世之作有《消夏图》《元世祖出猎图》《积雪图》。
《狩猎人物图》赵雍
元代 长卷 绢本设色 纵39厘米 横尺寸不详 (美)圣路易斯美术馆藏 (칼 루이스?)
此图以高丽(朝鲜)国诞生的神话为画题。长卷分为三部:中部画王者与随从,白袍红缨,造型威武,色彩明艳;右部为幽静的山路,仆人抬着朱蒙所射猎物;左边朱蒙策马渡河,回望河岸。
赵雍(1289—1360),元代画家、书法家。赵孟与第二任妻子之子,功力不逊于父亲。传世之作有《狩猎人物图》《兰竹图》《溪山渔隐》。
*** 전재자 註 : 조옹(趙雍)은 서예가 조맹부의 서자로 원대의 서예가이자 화가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북부여국 금와왕의 맏아들 대소에게 쫓겨 오이 등 세사람의 신료들과 함께 엄수(淹水)에 이르렀을 때,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손자다. 오늘 도망하고 있는데 뒤쫓는 자가 따라오니 어찌하리오?"
하니, 물고기와 자라 등이 다리를 놓아주어 무사히 강을 건너 졸본(卒本 : 초본의 한자표기 ㅡ 초본 : 샛별 금성을 뜻하는 옛말)에 다달아 졸본부여 즉 고구려를 개국하였다는 동명왕 신화를 <수렵인물도>라는 이름으로 그렸다.
송(宋)을 창건하였던 조광윤의 11대손인 아버지 조맹부(趙孟頫)와 그의 아들(趙雍)과 손자(趙麟)들이 송(宋)의 왕족이면서 몽고족이 세운 원(元)에 출사(出仕)하였다 하여, 후대 명(明)의 한족(漢族) 성리학자들이 서체(書體)인 송설체(松雪體) 조차도 배척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수렵인물도>는 팍스유라시대를 열어간 몽고족들이 그 뿌리를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 주몽에 두고 그를 숭배하고 있었다는 산 증거가 되는 귀중한 그림이다.
동명왕 신화(東明王神話) (주몽 신화)
고구려(高句麗)는 곧 졸본 부여(卒本扶餘)다.
혹 지금의 화주(和州)니 성주(成州)니 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遼東)의 경계에 있다.
<국사> 고려 본기(本記)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시조 동명왕(東明王)은 성(姓)은 고씨(高氏)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 보다 앞서,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가 동부여로 피해 가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
그 때 한 여자를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만나 물으니,
"나는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다가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解慕漱)를 만나 웅신산(熊神山) 밑 압록(鴨祿)가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중매 없이 남을 따라간 것을 책망하여 여기에 귀양 보낸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금와(金蛙)가 이상히 여겨 유화를 집에 두었더니, 햇빛이 비쳐 몸을 피해도 좇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해서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 들이나 되었다. 왕이 버려서 개,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으며, 길에 버리면 소나 말이 피해 가고, 들에 버리면 새와 짐승이 덮어 주었다. 왕이 깨뜨리려 해도 깨어지지 않으니 도로 어미에게 주었다. 어미가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기골이 영특하고 기이하여 7세에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게 뛰어났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百發百中)하였다. 속담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금와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주몽과 같이 놀면 그 재주가 늘 따라가지 못하였다. 맏아들 대소(帶素)가 왕에 말하되,
"주몽은 사람의 소생이 아니니, 만약 일찍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사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은 좋은 말을 알아보아 조금씩 먹여 여위게 하고 나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했다. 왕은 살찐 것을 타고 여윈 것은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의 어미가 왕의 다른 아들들이 여러 장수와 함께 주몽을 장차 해치려 함을 알고,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 하니, 너의 재주와 지략으로 어디로 간들 안 되겠느냐? 속히 일을 꾸며라."
라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오이(烏伊) 등 세 사람의 벗과 엄수(淹水)에 이르러 고하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손자다. 오늘 도망하고 있는데 뒤쫓는 자가 따라오니 어찌하리오?"
하니, 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놓아 주었다. 주몽이 건너자 다리는 사라지고 쫓아오는 군사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졸본주에 이르러 도읍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짓지 못하여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국호(國號)를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다.
고씨(高氏)로 성을 삼았으니, 그 때 나이 12세였다.
ㅡ 삼국유사(三國遺事)
[출처] 동명왕신화(東明王神話)주몽|작성자 낭만서생
《人马图》赵麟
元代 长卷 纸本设色 尺寸不详 (美)大都会艺术博物馆藏 (워싱턴?)
此图为《赵氏三世人马图卷》之一。图绘身着唐装的奚官双手握缰牵一匹花斑骏马,奚官神态安详,马亦温驯。线描匀净文雅,沉稳平实,画风显然承袭了家学。
赵麟,元代画家。生卒年不详,字彦徵,浙江湖州人,赵雍之子。擅画人马、山水。
《番王礼佛图》赵光辅
宋代 长卷 绢本设色 纵28.6厘米 横103.5厘米 (美)克里夫兰艺术博物馆藏 (클리브랜드?)
图为中国周边的少数民族酋长、番王正朝拜佛祖。
众番王作礼拜之状,服饰都为异域装束。画面气势宏大,人物安排疏密有致,表情各异,生动自然,是宋代人物画的一幅杰作。
赵光辅,宋代画家。陕西耀县人。宋太祖时期为画院学生,擅画佛像、人物。
*** 전재자 註 : 번왕이 봉황을 닮았다는 장미계(長尾鷄)의 꼬리깃털을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 전래 후에 고구려 황제나 발해왕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번왕의 뒤에 서 있는 수행관료들의 의상이나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고구려와 발해가 다민족 국가였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猴侍水星神图》张思恭
宋代 立轴 绢本设色 纵121.4厘米 横55.9厘米 (美)波士顿艺术博物馆藏 (보스턴)
美丽的水星神坐在榻上,右手执笔,正要书写。旁边一只小猴已经高举起石砚,供她填笔。小猴全用没骨法,极富质感,表情天真有趣。
这幅画早年流传到日本,十九世纪晚期被英国人威廉购得,原被当做佛教画,后经考证为中国五星神像。相传南朝梁张僧繇和唐代中期何长寿都画过水星神,此图是南宋时期仅存的一幅水星神图,极其珍贵。
《杨贵妃上马图》 钱选
宋末元初 长卷 纸本设色 纵29.5厘米 横117厘米 (美)弗利尔美术馆藏 (프리어미술관 소장)
图中的唐玄宗一袭白衣,回头正脉脉含情地望着,杨贵妃脚踩着凳子上马。画中的人物似乎也被这一对恋人所感染,每个人的眼中都流露着温情。就连玄宗的名马“照夜白”也驻足不前,为贵妃的美而心醉。
钱选(1239—1299),宋末元初画家,南宋时的进士。进入元代后,归隐从事绘画。力图摆脱南宋画院风格,追寻唐代遗风。擅画人物、花鸟。
主办单位:
主编:
九曲黄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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