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중국실] 신선사상과 도교 / Korea & World by younghwan 外

2018. 10. 8. 20:10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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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국실] 신선사상과 도교

1. 예기(禮器)2. 명기와 도용, 3. 신선사상과 도교4. 불비상과 불상5. 도자기6. 중국회화



   도교(道敎)는 불사약이나 심신수련, 신들에 대한 기도 등을 통해 불로장생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부와 명예 등 현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중국의 전통 종교이다. 도교(道敎)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인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에 기원하고 있다. 이후 전통적인 신선사상에 음양오행(陰陽五行), 유교의 주역(周易), 의학 등이 더해지고 서역에서 전해진 불교의 사상과 체계 반영되었다.


   신선사상과 도교적인 성격은 고대 중국 전설상에 나타나는 용이나 진묘수(珍妙獸)같은 상상의 동물이나 신선이 산다는 세계인 신산(神山), 서역의 영향을 받아 방위를 나타는 사신(四神)이나 십이지신(十二支神) 등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선사상은 남북조시대 한반도에서도 전해져 고구려 사신도, 백제의 무령왕릉, 금동대향로 등 많은 유물에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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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 

樓閣模型, 동한, 녹유도기. 껴묻거리로 만들어진 누각 모형이다. 

4층 건물 형태로 주택, 부엌 등과는 달리 실제 생활하는 용도는 아니다. 

사후세계에서 신선처럼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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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한대(漢)에는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는 풍속이 유행하여 무덤에도 다양한 껴묻거리를 매장하였다. 

그 가운데는 주택, 부엌, 축사, 방앗간, 화장실 등 망자를 위한 건축모형도 있는데 

이는 죽은 이가 사후세계에서도 안락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누각모형은 신선사상과 관련하여 망자의 사후 영생을 기념하는 관념적 건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박산향로(博山香爐)와 박산준(博山樽)

   한대에는 신선사상의 유행으로, 불사영생의 신선이 산다는 선계(仙界)의 신산(神山), 즉 박산(博山)을 표현한 박산향로와 박산준을 많이 제작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박산향로에 향을 피우면서 서계의 선인을 불러내려 불사약을 얻고자 했고 박산준에 술을 담아 신산의 불사수(不死水)처럼 생명의 술로 변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이 박산향로는 뾰족한 산모양의 뚜껑과 가는 기둥의 형태만 남은 후대의 간략화된 형태이고 박산준도 틀로 다량으로 찍어낸 것으로 세속화된 도교신앙 속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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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향로, 博山香爐, 동한, 황갈유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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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장식 단지, 博山樽, 한, 황유도기. 

한나라때 유행했던 박산(중첩된 산악모양) 형 뚜껑으로 바다에서 3개의 산이 용솟음치는 형상이다. 

몸체의 외벽에 신선,파도,구름, 풀과 나무 등의 무늬를 새겨넣었고 술을 담던 그릇이다.

 앞선 시기에는 동물모양 그릇이 많았으나 한대에는 자연을 형상하여 만든 그릇이 유행하였다.



전국시대 와당(기원전 475 ~ 기원전 221년)


   기와는 비바람으로부터 지붕을 보호하고 건축물을 장식하는 기능을 지닌다. 중국은 서주(西周)때부터 왕실을 중심을 와당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전국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는 반원과 원형의 막새로 만들어지면 문양은 출토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다. 연나라에서는 도철무늬(饕餮紋), 산자형무늬(山字形紋)가 유행하였고, 제나라에서는 나무 무늬(樹木紋)가 자주 등장하였다. 진나라에서는 사슴무늬 용무늬, 해바리기 꽃 무늬가 유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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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동물무늬 반원막새(樹木雙獸紋半瓦當), 나무무늬 막새(樹木孔釘紋瓦當), 

나무무늬 반원막새( 樹木方格紋半瓦當). 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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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리의 용무늬 막새(雙龍紋半瓦當), 도철무늬 반원막새(饕餮紋半瓦當), 연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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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무늬 막새(雙鳳紋圓瓦當), 산과 구름무늬 막새(山雲紋半瓦當),

해바라기꽃무늬막새(葵紋圓瓦當), 호랑이와 제비무늬막새(虎燕紋圓瓦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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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장생을 기원하는 글자를 새긴 수막새, 

銘文 瓦當, 1. ‘즐거움이 다함이 없으리라’는 글자를 새긴 수막새, 長樂未央銘 瓦當, 한, 토제, 

2. ‘천만년이 되도록 오래살기를’이라는 글자를 새긴 수막새, 千秋萬世銘 瓦當, 한, 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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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작.현무를 새긴 수막새, 朱雀玄武紋, 한, 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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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지키는 괴수, 鎭墓獸, 남북조, 도기.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무령왕릉에서도 볼 수 있는 진묘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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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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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본 모습


외부의 나쁜 기운으로부터 죽은 이를 지키기 위해 무덤에 매장하는 괴수 모양의 도용이다. 

진묘수는 날카로운 사슴의 뿔 또는 사자의 갈기, 긴 혀, 괴기스럽게 포효하는 괴수의 얼굴 등이 특징인데, 

이는 보는 이를 위협하여 감히 무덤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진묘수는 네 발 짐승의 몸에 눈을 부릅 뜬 무서운 사람의 얼굴과 등에 곤두선 갈기가 특징이다. 

이지러진 얼굴 표정에 보이는 생동감과 안정적인 자세는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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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지키는 괴수, 鎭墓獸, 1. 당, 도기, 2. 북제-수, 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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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령스러운 동물무늬 거울, 獸帶鏡, 동한,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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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선과 신령스러운 동물무늬 거울, 神獸鏡, 동한,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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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의자손」 글자를 새긴 거울, 長宜子孫銘 鏡, 동한,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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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신과 신령스러운 동물, 기하학무늬 거울, 方格規拒鏡, 한,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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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약을 찧는 토끼와 두꺼비무늬 벽돌, 仙兎捣藥紋 塼, 한, 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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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가 장식된 네 잎 모양이 금속판, 水晶嵌入 四葉金具, 한, 청동.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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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 화상석에서 볼 수 있는 서왕모와 금속판에 표현된 서왕모


중국의 십이지신은 도교의 방위신앙을 바탕으로, 동.서.남.북 등 각 방위에 상응하는 열두마리의 동물을 상징한다. 

그 동물들은 각각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로, 

당(唐) 중기 이후에 도교의 방위 신앙과 관련되어 능묘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고분벽화에 그려지거나 도용으로 매장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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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수호신, 三彩 十二支神,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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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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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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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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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신 진무대제를 모신 신감, 靑花 眞武大帝神龕, 명


청화백자로 제작된 도교의 진무대제(眞武大帝)를 모신 신감이다. 

진무대제는 현무신(玄武神), 현천상제(玄天上帝)로도 부르며, 북방의 비.바람 등을 맡은 태음신(太陰神)이다. 

특히 명대(明)에는 진무대제를 모시는 신앙이 발달하여 이러한 신감도 제작되었다. 

위층 내부에는 현신한 거북(玄武)을 장식했고 뒷면에는 벽면에 부착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놓았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도교문화"] 함께 하는 도교 – 도교와 유교, 불교 그리고 동학

1. 행복으로 가는길2. 도교의 신들3. 팔선이야기4. 신선세계를 꿈꾸다5. 신선이 되는 법6. 함께하는 도교



   도교(道敎)유교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토착종교이다. 중국 전통 신선사상토착신앙에서 유래하여 후한남북조시대에 불교의 영향을 받아 경전과 교리를 갖춘 종교로서 모습을 갖추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의식과 일맥상통한 점이 많아 쉽게 받아들여졌다. 도교는 종교로서 모습을 갖추던 때부터 불교의 영향을 받는 등 다른 종교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다.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전각(殿閣) 중 산신을 모신 산신각(山神閣), 홀로 수행을 통해 도를 깨친 성인을 모신 독성각(獨聖閣), 북두칠성을 모신 칠성각(七星閣)은 토착신앙이자 도교의 성격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다. 도교의 경전이나 제례의식 또한 남북조시대 불교의 것을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도교의 지위가 낮아진 조선시대에도 유학자들은 개인적인 수양의 방편으로 도교의 양생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생육신 중 한명인 김시습은 불교와 도교에 정통하여 도교적인 관점에서 유가의 사상을 해석하기도 하였다. 


   구한말 서양의 학문과 종교 들어오면서 이에 대응하는 동학이 발생하였다. 동학은 기존의 유교와 불교의 가치에 민간신앙과 도교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창제된 종교로 도교적인 성격이 강했다. 또한 민간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전래된 삼국지 영웅 관우를 숭배하는 관제신앙이 크게 유행하였다.



함께 하는 도교 – 도교와 유교, 불교 그리고 동학


   고대부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도교와 유교.불교가 삼교(三敎)로 일컬어지며 중시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도교 제사를 많이 지낸 고려시대에는 개인이 도교적 지식을 갖추고 신선처럼 생활하는 것이 큰 미덕으로 여겨졌다. 도교의 지위가 크게 낮아진 조선시대에도 삼교의 어우러짐을 형상화한 문학이나 회화작품이 만들어졌다. 그런하 하면 저명한 유학자들이 『도덕경』이나 『장자』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기도 하였다. 한편 도교는 불교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다. 당초 도교의 조직체계나 의례는 불교의 그것을 본뜬 것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사망한 불교 승려의 매지권(買地券)에 서왕모.동왕공, 황천(皇天).후토(后土)와 같은 도교 신들이 등장하였다. 고려나 조선의 치성광여래도(熾星光如來圖)와 같은 불화에는 도교의 신들이 불법의 수호신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도교는 19세기 말에 서학(西學)에 대응하여 창시된 동학(東學)의 전파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약(仙藥), 주문(呪文), 장생(長生)과 같은 도교적 용어나 개념이 사용됨으로써 동학이 일반 백성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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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九雲夢圖), 조선, 소설 구운몽의 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전통적인 도석인물화와 비슷하다.

소설 『구운몽』의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각 화면의 상단에 소설의 내용을 쓰고, 하단에 그림을 그렸다.

 성진이 팔선녀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백능파와 양소유가 함께 있는 장면까지 있는데,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어서 원래는 10폭으로 제작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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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규지(性命奎旨), 중국 명,

도교의 내단 수련 비법을 집대성하여 압축 설명한 명나라 책이다. 지은이와 간행연도를 알 수 없다. 

성명규지란 본래 이름인 ‘

성명쌍수만



수규지(性命雙修萬壽奎旨)

’를 줄인 말로서, 

마음과 몸을 함께 수련한다는 성명쌍수(性命雙修)의 방법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편마다 그림을 그려 넣고 내단 수련의 복잡하고 미묘한 과정을 체계있게 정리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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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九雲夢), 조선 1900년,

조선 숙종 때 김만중이 지은 소설이다.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이던 성진은 팔선녀를 만난 후 추방되어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환생한다.

 이후 팔선녀의 후신인 8명의 여자들을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고 영화롭게 살다가 다시 불문에 귀의하여 극락세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소재나 모티프 면에서 유교와 불교, 도교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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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도(虎溪三笑途), 남북조시대 도연명과 관련된 일화를 그린 그림으로 고사인물화이다.

중국 육조시대의 고승 혜원(慧遠)과 시인 도연명(陶淵明), 도사 육수정(陸修精)의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혜원이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수행할 때 절 앞의 호계(虎溪)를 넘어가지 않았는데, 

어느날 찾아 온 도연명과 육수정을 배웅하며 담소하다가 호랑이의 울음을 듣고서야 다리를 건넜음을 깨닫고 함께 웃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유.불.도 삼교의 회통을 상징하는 뜻에서 회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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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 심취한 왕효의 묘지명,

고려 15대 숙종의 다섯째 아들 왕효의 묘지명이다. 

유교의 가르침 안에서 불교을 믿고 도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왕효의 정신세계를 잘 요약하고 있다. 

『고려사』는 그가 1179년에 사망했다고 기록하였으나, 

이 묘지명을 통해 그보다 8년 앞선 1161년에 노환으로 타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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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 심취한 윤언민의 묘지명, 고려,

여진 정벌로 유명한 윤관의 막내아들 유언민의 묘지명이다. 

의술로 병자를 치료한 일, 노자를 사숙한 듯 푸른소를 타고 출퇴근한 일, 

불교와 도교를 대표하는 인사들의 존경을 받은 일 등 

그의 다채로운 정신세계를 포함한 여러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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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경주해(南華經註解), 박세당, 저명한 유학자였던 박세당의 도교에 대한 이해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남화경』은 중국의 책 『장자』의 다른 이름으로 『남화진경』, 『장자남화경』이라고도 한다.

 『도덕경』과 함께 고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이 즐겨 읽던 대표적인 도가서(道家書)이다. 

이 책은 중국 송나라의 임희일이 지은 『구해남화경』을 다시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 

『구해남화경』은 『장자』의 입장이 유가(儒家) 경전의 뜻과 부합됨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해설서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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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에 해석을 달아 펴낸 책(新註道德經), 박세당, 조선,

조선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박세당이 『도덕경』에 주석을 붙여서 펴낸 책이다. 

유학자인 박세당은 『도덕경』이 비록 성인(공자)의 뜻에 부합하지는 않으나 

세상에 행해지고 있는 이상 잘못된 점을 보고 넘길 수가 없어서 주해로서 바로잡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대도가 없어진 뒤에 인(仁)의 가치가 인정된다고 말한 노자는 

그 근본을 빠뜨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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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언(醇言), 이이, 이황과 함께 조선을 대효하는 석학인 이이 또한 도교에  대한 이해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조선중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가 『도덕경』 중에서 유학의 뜻에 가까운 말 2,098언(言)을 가려 뽑아 풀이하고 토를 붙인 책이다. 

성학(聖學), 즉 성리학에 해롭지 않은 말이라고 하여 순언이라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동학속의 도교


   19세기 조선의 백성들은 정부와 지방 토호들의 수탈에다 전염병과 흉년으로 도탄에 빠져 있었다. 서학(西學)이라 불리는 천주교가 꾸준히 전파되는 한편에서, 성리학과 불교는 사회적 구실을 다하지 못하였다. 이런 현실을 고민하던 경주 출신 지식인 최제우는 1860년(철종11) 4월 상제(上帝)와 대화를 나누는 신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서학에 맞선다는 뜻의 동학을 창립하였다. 동학에서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하면, 병이 낫게 되고 나아가 사회적으로는 도덕이 회복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을 펴기 우해 동학에서는 기존의 유교와 불교의 도덕과 가치에다 민간신앙과 도교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최제우의 신비체험 당시 상제가 신비스런 부적을 내려주며 불사약이라 했다는 점, 그 부적을 최재우가 불에 태워 마시자 병이 나았다는 점, 상제가 부적과 함께 주문을 내려 주면서 사람들에게 이를 가르치면 장생할 수 있다고 한 점 등은 모두 도교의 불사약과 부적, 주문에서 그 개념을 빌어 온 것이었다. 동학의 핵심적 가치나 도덕은 유교적이었다. 그러나 유교나 불교만으로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민중을 달래기 어렵다고 보고, 친숙하면서도 신비로운 도교적 요소를 가미하였던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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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東經大全), 최제우, 조선,

동학의 1대 교주인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경전이다. 

포덕문(布德文).논학문(論學問).수덕문(修德文).불연기연(不然其然)의 네 편으로 구성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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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龍潭遺詞), 최제우, 조선,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1860년(철종11)에서 1863년에 걸쳐 지은 포교 가사집이다. 

1881년 6월 충북 단양군 남면 천동 여규덕의 집에서 최시형에 의해 처음 간행된 후 목판본으로 다시 간행된 바 있다. 

한문으로 된 『동경대전』과 함께 동학의 기본 경전이다. 


최제우는 자신이 깨친 후천개벽사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국문으로 쓰고, 

가사의 형식을 빌려 표현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민간신앙과 도교

   도교의 신들 중에는 중국 토착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그 중에는 우리 고유의 토착 신들과 상통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고 숭배하며, 삶의 터전이 되는 대지와 강, 산과 나무 등을 신성시하고, 마을이나 성곽, 가정을 지키는 신령이 있다고 믿는 종교 관념은 우리 조상들도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에서 유래한 칠성신(七星神), 성곽이나 마을을 수호하는 성황신(城隍神), 불을 수호하는 조왕신(竈王神)과 같은 도교의 신들이 한국에 들어와 토착 민간신앙과 무리없이 어우러지면서 점차 그 일부가 되어 간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한편으로, 중국 무속(巫俗)에서 유래한 도교의 점복(占卜)과 부적(符籍)문화 역시 복을 구하고 액(厄)을 피하려는 한국 재래의 민간 신앙과 결합되면서 그 일부가 되어 갔다. 또한, 중국 고대의 무장 관우를 국가 수호신이자 민간의 재물신으로 숭배하는 신앙이 임진왜란 이후로 확산되면서 점차 무속화하였다. 19세기 후반 고종대에는 관우 신앙에 대한 한글전적들이 많이 간행되었고, 서울과 전주 등에 관우 사당이 새로 건립되기도 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 관우신앙은 점차 쇠퇴해 갔다. <출처:중앙박물관>



북두칠성


   칠성도는 북두칠성과 하늘의 여러 별들을 그린 불화이다. 북두칠성인 칠성은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별자리 중의 하나로서 일찍부터 인간사를 주관하는 별로 신앙되었다.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하늘의 성신(星辰)이 복합적으로 망라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민간신앙과 도교에서도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발전하여 관복을 입고 홀을 든 칠원성군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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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 공양문, 조선,

북두칠성에게 올리는 의식에 필요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칠성청(七星請)」, 「불설북두칠성연명경」, 칠성하강일, 칠성부(七星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책 말미에 1534년(중종29)에 안동 하가산 광흥사(壙興寺)에서 초간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은 좋지 못한 인쇄 상태로 보아 그 후쇄본이 아닌가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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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원성군을 그린 그림, 조선,

손에는 홀을 쥐고, 관복과 관모를 쓰고 서 있는 7구의 인물은 북두칠성을 도교적으로 의인화하여 묘사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이다. 

칠원성군은 탐랑성군, 거문성군, 녹존성군, 문곡성군, 염정성군, 무곡성군, 파군성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두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한다는 도교의 믿음에서 유래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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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을 그린 그림,

북두칠성은 하늘을 상징하고 하늘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무속에서도 오랫동안 모셔졌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 노무편(老巫篇)에는 칠원성군 그림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는 등 

고려시대부터 도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북두칠성 그림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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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황신 손긍훈 상(城隍神), 조선,

경남 밀양 추화산성황사에 모시던 손긍훈의 신상이다. 

원래 도교에서 성곽이나 도시의 수호신이던 성황신은 우리토착의 마을 공동체 신앙과 습합하여 점차 민간신앙화한 것으로 보인다.


 손긍훈은 신라말 고려초 밀양을 지배하던 호족으로 추정되는 인물인데, 

당시의 호족들은 지역의 통치자이자 공동체의 수호자로 인식되어 훗날 손긍훈처럼 

지역 성황신으로 모셔지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관우신앙


   소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으로 충의와 용맹의 상징인 관우, 관제 또는 관왕으로도 불리는 관우는 명대에 도교의 신으로 우뚝 섰다. 관우에 대한 신앙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이후 조선의 왕들은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하는 등 관우를 높이는 정책을 폈다. 특히 19세기 말 고종대에는 관우신앙과 관련된 서적을 다수 출판하는 등 관우에 대한 존승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관우숭배는 1910년에 관왕묘 제사가 폐지되면서 끝을 맺었다. 민간에서도 임진왜란을 계기로 관우신앙이 퍼져 나갔다. 조선후기를 통해 무속화해 간 관우신앙에서 관우는 병을 다스리고 복을 내리며, 재물을 관장하는 영험한 신으로 받들어졌다. 민간의 관우신앙은 20세기초까지 지속되다가 쇠퇴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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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치성병(東廟致誠甁)」을 새긴 병, 조선 19세기,

동관왕묘에서 치성을 드릴때 사용하던 백자병이다.

 몸체 상단부에 돋을새김으로 ‘동묘치성병 경진삼월일’이라는 명문이 있어 이 백자병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유물의 제작기법과 기형을 고려해 보면 명문 중의 경진(庚辰)은 1820년(순조20)이거나 1880년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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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이 그려진 부채, 조선 19세기,

동관왕묘 정전 앞에서 4점의 황룡선(黃龍扇)이 발견되었다. 부채의 앞면에는 각각 한쌍의 용을 그려 넣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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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상.유비상.장비상, 조선 19세기,

동관왕묘 정전의 좌우 벽에는 여러개의 감실이 세워져 있다.

 그 중 정전의 왼쪽벽에 배치된 목조 감실 중 한 감실에 관우를 비롯한 세 구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 조각상은 모두 크기가 작은 목조상으로 주칠한 용상 위에 앉아 있는 의좌상이다. 

모두 용머리를 장식한 용상 위에 앉아 있다.

 용상의 답장에는 용무늬를 비롯한 각종 무늬를 장식한 최고급 화문석에 황실을 상징하는 자주색 선을 두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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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제군보고, 조선 19세기후반,

관제신앙의 경전인 『관성제군보고』를 청색안료로 쓰고 그 위에 투명 유약을 입혀 구워낸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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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화존신(過化存神), 조선 1880년,

고종의 명령으로 관제신앙의 경전들을 모아 한글로 옮겨 1880년(고종17)에 편집, 간행한 책이다.

 번역자나 편집자는 알 수 없다. 


원래 본문은 「각세진경(覺世眞經)」, 「구겁문(救劫文)」, 「부대련구(附對聯句)」, 「영험기(靈驗記)」, 

「교유문(敎諭文)」, 「배심성훈(拜心聖訓)」 등으로 이루어졌으나,

 이 책에는 「교유문」과 「배심성운」은 빠져있다. 

관제신앙과 국어사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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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왕묘비명(武安王墓碑銘) 탁본, 조선,

관우의 충절을 기려 제사 지내던 동묘에 1785년 정조가 세운 무안왕묘비를 탁본한 것이다. 

비명은 정조가 직접 글을 짓고 전서(篆書)로 썼다.

 맨끝에 정조 자신이 이 글을 짓고 써서 관제 제사때 악가(樂歌)로 쓰도록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부적과 점

   민간에서는 복을 구하는 것과 액을 막는 것이 가장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복받는 삶을 위해서 액(厄)을 피하고 신의 뜻을 살피는 점복(占卜)이 선시시대로부터 꾸준히 행해졌다. 이와 더불어 신의 뜻을 전달하고 귀신을 부리는 부록(符錄) 또한 유행했는데, 부(符)는 노란 종이에 붉은 색으로 쓴다. 반면, 록(錄)은 여러 부적 사이에 쓰는 비문(祕文)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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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도구,

점을 칠 때 거북점 통 속에 든 엽전으로 양효(陽爻), 음효(陰爻) 6개로 된 주역의 64괘를 뽑아 점을 치는 도구이다. 

거북 등에는 낙서(洛書) 혹은 별자리 무늬를 표현하였다.


 점상, 조선 19세기, 

기둥 아래 받침은 거북모양이고, 

거북의 등에는 별자리 무늬가 음각되어 있어 점을 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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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추보경(玉樞寶經),

굿을 할 때 읽는 경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경국대전』에는 도류(道流)가 이를 읽는다고 하여 도서(道書)라고 전하고 있으나, 위서(僞書)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류들이 이를 읽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주로 병굿이나 신굿과 같은 큰 굿에서 읽는데, 이 경을 읽으면 천리 귀신이 다 움직인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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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주(唐四柱), 

평생 운세를 글과 그림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주역점에 비해 쉽고 삽화가 있어 조선후기 이래 민간에서 많은 판본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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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액박이 부적, 

사람에게 12년 중 3년은 세가지 재앙이 드는데 이를 삼재라 한다. 

삼재가 닥치면 머리가 셋이고 몸은 하나인 매를 붉은 물감으로 그려서 방문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녀 액을 막았다.


2.칠성부적, 

칠성부를 몸에 지니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이 온다고 한다. 

칠성부에는 상단 우측부터 자손에게 복을 주는 탐랑,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는 거문,

 업장을 소멸시켜 주는 녹존, 구하는 바를 얻게 해주는 문곡, 하단에는 모든 장애를 없애주는 염정, 

복덕을 두루 갖추게 해주는 무곡,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파군이 각각 표현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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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화판(歲華板),

세화는 한 해 동안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새해 첫 날 여러 사람에게 좋은 뜻을 전해주고자 목판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길상문자와 길상무늬가 함께 시문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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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 조선,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창에서 성황신을 섬기던 일을 새긴 현판이다. 

송판 2장을 이어붙이고 총73행 1,600여 자의 글자를 새겼다. 

1281년(충렬왕7)과 1297년(충렬왕23)에 작성된 성황신의 봉작(封爵) 및 존호(尊號) 문서와 

1583년에 현판을 새기고 1623년과 1743년에 현판을 보수한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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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신 관련 문서, 조선, 

염라판관(閻羅判官)이 측신(厠神,뒷간신)에게, 

그리고 종규(鐘馗)가 조왕(竈王)에게 각각 내린 전령 형태의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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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 모양 부장품, 봉산 양동리 출토, 낙랑,

부엌의 신인 조왕신은 불의 신 혹은 부뚜막의 신으로 여겨졌다. 

부엌 신의 역할은 집 안에 머물면서 집 주인의 과실을 낱낱이 기록한 뒤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에게 고자질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조왕신이 여성으로 표현되는 데 반해 중국은 남성으로 표현되는 차이점이 있다. 


이 유물은 무덤에 부장되는 명기로 방형의 아궁이에 굴뚝이 있으며 위에 2~3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 

가마 모형과 그릇 모형이 놓여 있어 부엌 아궁이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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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신,

황당에 모시던 것으로 전해지는 성황신도이다. 

일성과 월성이 표현된 관을 쓰고 홀을 든 채 용이 장식된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깁진년 유월 초칠일 오시에 동방삭이 이 우물에서 나왔다. 정씨의 축원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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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을 새긴 팔각 간주석,

통일신라 때 간주석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글을 새긴 것이다.

 동방삭은 중국 한나라 때의 전설적인 인물로 불로장생을 상징한다. 

일설에는 동방삭이 우물을 파고 지하세계로 내려가 영지초(靈芝草)를 먹었으며

 신비한 세계에 오래 머물다 나왔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재물의 신, 관성제군

   용맹하고 의리 있는 장수였던 관우는 고향인 산시성의 상인들에 의해 재물신으로 모셔졌다. 원대(元代)를 거쳐 명청대에 관우의 인기가 높아지자 전쟁의 신이자 상인들의 재물신으로 각 지역에서 숭배되었다. 우리나라도 임진왜란 이후 관우신앙이 확산되었으며, 특히 상인들이 재물신으로 많이 섬겼다. 지금도 서울의 성제묘(聖帝廟) 등지에서 상인들이 관우제사를 지내는 등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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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제군성적지도(關聖帝君聖籍圖誌), 조선, 

중국 청나라에서 1693년 간행된 『관성제군성적도지』를 1876년(고종13)에 조선에서 증간한 것이다. 

「관성제군성적지도」는 관우의 일생을 미화.윤색하여 그림과 함께 해설한 것으로서 관제신앙의 경전으로 사용되던 책이다. 

책의 서문에서 박규수는 자신이 20세 무렵부터 관왕을 숭모해 왔으며, 

거처할 때나 꿈속에서도 가르침을 받았다고 썼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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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제군보훈상주, 조선 1882년,

중국 청나라의 길단(吉旦)이 옛 술사(術士)가 채록(採錄)했다는 관성제군의 말과 보충 설명을 적은 다음, 

내용에 맞는 사례들을 그림과 함께 실어 놓은 책이다. 

사람이 충효와 절의를 다하지 않으면 몸은 세상에 있어도 마음은 이미 죽은 것이라며, 

선악에 대한 응보가 있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1731년에 처음 간행한 것을 1882년에 다시 간행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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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제군명성경언해, 조선,

관제신앙의 경전을 한글로 풀이한 책으로, 고종의 관우신앙 강화책의 일환으로 1886년에 간행되었다. 

한문본은 1855년(철종6)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언해본은 1883년 간행 후 여러 차례 출판되었다. 

한문 구절마다 한글로 언해와 주석이 붙어 있다. 

분향하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독송하면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복이 오며, 

효도와 공경이 인륜도덕의 근본이고 악을 행하면 반드시 갚음을 받는다고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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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신.수성노인, 조선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인 수성 혹은 남극노인성을 인격화한 그림이 바로 수성노인도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수성노인은 단독으로 그려지거나 혹은 복(福)을 담당하는 복성(福星)

관직 출세를 담당하는 녹성(祿星)과 함께 삼성도(三星圖)의 형태로도 그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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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신, 문창제군(文昌帝君), 김덕성, 조선,

문창제군은 북두칠성의 국자 머리 바깥쪽에 위치한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 문창성을 신격화한 것으로, 

문학과 교육, 학문의 신이며 특히 과거를 치르는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문창성은 일반적으로 괴성(魁星)이라 불리며 붓과 벼루를 들고 왼쪽 다리를 번쩍 치켜들어 

북두칠성을 차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묘사된다. 

문창제군에 대해서는 당대의 장아(張亞) 대신이었다는 설 등 여러 주장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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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성을 묘사한 자수 붓 주머니


도교가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에 해답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도교를 미신과 동일시하며 과격하게 부정하는 것도 적절한 시선은 아니다.


 도교문화는 엄연한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었고 세시풍속이나 민간신앙, 예술과 대중문화, 심신 수련 등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오늘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우리 문화의 깊은 연원,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다양한 삶의 방식의 일부분을 

들여다 보는 매개체로서 이번 전시가 자리매김 되길 희망한다. <출처:중앙박물관>


부귀에 얽매여 서로 다투는 혼란한 세상에 몇 사람이 날개를 친다 해도 

오묘한 진리 속에 흘러가는 우주의 법칙은 어찌 한 치인들 바꾸어 놓을 수 있겠는가!


산속에 들어가야만 반드시 도를 터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를 닦으려 하면 반드시 산림 속에 들어가서 경건한 마음으로 

비린내 나는 세속을 잊으려 하면 곧 맑고 조용한 마음이 된다.
석실 깊숙하게 들어가 정신을 집중하여 귀신을 부르려고 하면, 

이미 말다툼 따위는 피하고 정숙하지 않으면 안되며 선약을 제련하려면 말 많은 우인들을 멀리해야 한다.
『포박자(抱朴子)』

 






[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도교문화"] 신선이 되는 법

1. 행복으로 가는길2. 도교의 신들3. 팔선이야기4. 신선세계를 꿈꾸다5. 신선이 되는 법6. 함께하는 도교



   신선사상은 선계에서 젊음을 유지하면서 불로장생한다는 신선의 존재를 믿고 추구하는 사상으로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무렵에 생겨났다고 한다. 신선사상은 무속적인 성격와 자연숭배 등이 혼합되어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술(方術)이 생겨났으며, 전국시대에 민간에 널리 알려졌다. 또한 장생불사를 이룰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나타나는데 불사약과 같은 외부 물질의 의존하는 외단(外丹)과 수련으로 생명의 기운을 축적하는 내단(內丹)으로 나뉜다. 외부물질에 의존하는 외단은 중금속이 포함된 불사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했던 사람들이 중독사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여 점차 쇠퇴하였으나, 내단수련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내단 수련 전통은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에 유학했던 최승우같은 사람들이 시작했으며, 조선시대에는 김시습처럼 내단학을 대표하는 저명한 지식인도 있었고, 상당수의 유학자들도 건강을 위해서 내단 수련을 활용하였다. 또한 질병 예방의 중심으로 하는 내단 수련은 한의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동의보감』에 그 내용들이 반영되어 있다.


신선이 되는 법
   도교에서 신선이 되는 법은 불사약과 같은 인체 외부의 물질에 의존하는 외단(外丹)과 수련(修練)으로 인체 내에 생명의 기운을 축적하는 내단(內丹)으로 나뉜다. 주사(朱沙, HgS, 황화수은)을 원료로 하여 만든 금단(金丹)은 외단의 불사약을 대표하는데, 금단 복용자들이 잇따라 중독사하면서 송대(宋代) 이후에는 외단이 쇠퇴해 갔다. 한국 내단 수련의 전통은 9세기 당에 유학한 통일신라김가기최승우, 승려 자혜 등에게서 비롯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내단 수련이 꽃을 피웠는데, 김시습(1435~1493), 정렴(1506~1549) 등은 내단학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다. 전문적인 내단 수련가가 아니더라도 저명한 성리학자 이황처럼 건강을 위해 내단 수련을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아가 질병 예방을 중시하는 내단 수련의 발전은 도교적 의학의 발전과도 맥을 같이 하였다. 『동의보감』은 그 대표적 성과였다. 그런데 도교에서는 아무리 불사약을 먹고 수련을 하더라도 윤리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신선이 될 수 없고 수명도 그만큼 짧아진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가르침들을 전해주는 도교 권선서(勸善書)들이 조선후기에 많이 유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도교와 의술

   ‘도가(道家)’는 맑고 고요하게 수양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의학은 약과 음식, 침과 뜸으로 치료를 하니, 이는 도가가 정밀함을 얻고 의학이 거친 것을 얻은 것이다. – 『동의보감(東醫寶鑑』 內景 -

허준의 이 말은 몸의 생명력을 기르는 도교의 양생술이 병이 난 후에 치료하는 의학보다 우선함을 말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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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東醫寶鑑), 

동양의 주요 의약서적들을 집대성하여 만든 의학서로 도교의 양생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허준이 1610년(광해군2)에 완성한 것을 1613년(광해군5)에 총25권25책으로 간행한 의학서이다. 

당시까지 나온 우리나라와 중국의 주요 의학서들을 거의 망라하여 인용하면서 

고금의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책의 서두에서 허준은 병이 난 뒤에 치료하는 것보다 

평소 맑고 고요한 수양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내단 수련 위주의 도교적 양생 관념과 실제 수련의 전통이 

꾸준히 축적되어 온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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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장, 조선 18세기,

한약재를 종류별로 따로따로 넣어 두는 서랍이 딸린 장이다. 

서랍에는 열고 닫기에 편리하도록 둥근 고리를 달았고, 양옆으로 약재 이름을 쓴 종이를 나란히 붙였다. 

하단 중앙에 극약과 독약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은혈 자물쇠

(자물쇠장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열쇠구멍만 겉으로 보이는 자물쇠)가 달린 서랍을 설치하였고, 

양쪽 옆으로는 아래위 두 개씩 큰 서랍을 두어 자주 사용하는 약재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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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나 뜸을 뜨는 위치를 그린 그림, 조선후기, 인

체에 있는 경혈(經穴)의 위치를 그린 그림이다. 

경혈은 한의학에서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자리를 말한다. 


이 그림은 사람의 전신을 그리고 빨강.파랑.노랑.초록.검정의 선 위에 경혈의 이름을 적었다. 

위쪽에는 ‘침구지도(鍼灸之圖)’라는 제목이 크게 적혀 있다. 

동인도(銅人圖), 침구도(鍼灸圖), 경락도(經絡圖), 명당도(明堂圖)라고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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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의술을 기록한 임익돈의 묘지명, 고려,

고려 무신집권기의 문신 임익돈의 묘지명이다. 

임익돈이 황려현(黃麗縣, 지금의 여주) 수령 재임시 관내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승려와 도사들로 하여금 불경을 읽으며 거리를 돌게 하자 

많은 병자들이 나발과 경쇠소리를 듣고 병이 나았다는 내용이 보인다. 


임익돈이 승려와 도사를 이끌고 나발과 경쇠를 동원한 음악 연주를 한 것은 

도교 의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부호 요법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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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초상화, 조선후기, 

김시습은 당대의 천재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그의 대표작 ‘금오신화’는 도교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조선시대 이른바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한국 선도(仙道)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김시습의 초상화이다. 


소매가 큰 도포를 착용하고 손에 홀을 든 모습은 유학자의 일반적인 초상화와 전혀 다르다. 

19세기 말 남산 용장사 옛 터에 있던 매월당 영당(影堂)기림사로 이건할 때 

불교식으로 다시 제작한 영정일 가능성이 크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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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이적(海東異蹟), 홍만종(1643~1725), 조선후기, 

단군신화에서 출발하여 한국 도교 여사를 집대성했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평가(詩評家)안 홍만종이 단군에서 곽재우에 이르는 38명의 단학 설화를 모아 1666년(현종7)에 펴낸 책이다.

 불로장생의 가능성과 초능력을 획득한 사례들을 모으고 논평을 달았다. 


『해동전도록』과 달리 한국 단학의 뿌리를 중국이 아닌 단군에서 찾고 

그 도맥을 전승한 고유 선파(仙派)의 인물들을 다루어 한국 선도(仙道)가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것임을 부각하려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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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집(靑鶴集), 조여적, 조선후기,

조선중기의 도인 조여적(趙汝籍)이 스승인 청학상인(靑鶴上人) 위한조(魏漢祚)를 둘러싼 

선파 인물들의 행적과 담론을 잡기雜記)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단군 이전의 환인을 시조로 한 선도의 계보가 제시되어 있으나, 

환인은 광성자(廣成子)에게 도를 전수받은 명유(明由)에게 배웠다고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도맥에 연결시킨 샘이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을 예언하고, 

소중화 의식을 보이는 점이 특이하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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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한우외, 조선후기,


조선중기의 도인 한우외(韓無畏)가 1610년(광해군2)에 지은 한국 내단 수련의 계보를 밝힌 책이다. 

통일신라의 김가기최승우, 승려 자혜 등 3인이 중국에서 진인 종리권(鍾離權)으로부터 내단학을 전수받고

 이것이 최치원과 고려의 이명(李茗), 조선의 김시습 등을 거쳐 저자 한우외까지 전해진 계보를 밝혔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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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기(金可紀) 탁본, 통일신라,

중국 장안현(張安縣)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김가기 관련 석각을 탁본한 것이다. 


『속선전(續仙傳)』에 따르면, 김가기는 통일신라 말에 당나라에 건너가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이를 그만 둔 후 종남산 자오곡(子午谷)에 은거하며 복기(服氣)를 비롯한 수련 생활에 매진하였다.


 잠시 귀국 후 다시 돌아가 수련하다가 858년 2월에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낭떠러지 바위에 새긴 이 석각은 김가기의 승천을 기리기 우해 새건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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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기가 승천했다는 현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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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도장(中華道藏). 도장은 도교의 경전을 모은 책으로 『도장경(道藏經)』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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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 위백양(魏伯陽), 조선 15세기, 

주역은 사서삼경 중 하나로 대표적의 유학 경전이지만, 그 내용은 도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후한 대 위백양『주역(周易)』의 괘상(卦象)을 이용하여 연단수련(燃丹修鍊)의 원리와 과정을 설명한 책이다. 


『포박자』.『황정경』과 더불어 3대 단서(丹書)로 평가되지만, 

워낙 난해하여 주석서만 주자(朱子)의 것을 포함한 40여 종이나 된다. 


이 책은 1441년(세종23)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간행된 것으로, 

관료 신언식(1519~1582)이 소장하던 것이다. 

비단 표지에 금박으로 ‘주역참동계’라 쓰여 있고,

 맨 앞면에 ‘선사지기(宣賜之記)’가 찍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수련과 양생

   어리석거나 지혜롭게 태어나는 것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고, 건강하고 병약한 것, 장수하고 요절하는 것은 사람이 결정한다.  

     ㅡ『양성연명록(養性延命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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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비결(龍虎泌訣), 정렴(鄭磏, 1505~1549),

조선 전기의 유의(儒醫) 북창(北窓) 정렴이 지은 도교 내단수련의 입문서이다.


 정렴의 호를 따서 『북창비결(北窓祕訣)』이라고도 한다. 

내단서(內丹書)의 시조격인 중국 위백양의 『주역참동계』가 초학자들에겐 마치 조개껍질로 바다를 헤아리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으므로 이를 간추려서 쉽게 쓴다고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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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심방(活人心方), 퇴계 이황, 조선 16세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이 도교의 양생술을 참조하여 직접 만든 수련법이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도교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중국의 수련서를 요약하여 직접 쓰고 그린 책이다. 

이황은 이 책의 서문에서 병은 모두 마음에서 비롯한며 마음 다스리는 수련의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도안들은 건강체조 같은 것인데, 이황은 그 모습을 그려서 매일 실천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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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환아도(黃庭換鵝圖), 이도영(1884~1933), 조선,

왕희지와 도사의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평소 긴 거위의 목에서 운필(運筆)의 묘를 느끼고 거위를 사랑하던 왕희지는 

산음(山陰)의 도사가 좋은 거위를 기르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팔 것을 청하였다. 


이에 도사가 『황정경(黃庭經)』을 써 주면 거위를 주겠다고 하자, 

왕희지는 흔쾌히 『황정경』을 써 주고 거위를 받아 돌아왔다고 한다. 

『황정경』은 양생(養生)과 수련(修鍊)의 원리를 담은 초기 도교의 경전으로서, 

『도덕경』, 『주역참동계』와 함께 선도(仙道) 수련의 주요 경전으로 여겨졌다. <출처:중앙박물관>




법기
   법기(法器)는 도교과의(道敎科儀)에서 법술(法術)을 행하는 데 필요한 기구들이다. 법기의 주된 용도는 사악함을 물리치는 것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신(神)의 뜻을 함축한 강력한 상징물을 지님으로써 사악한 귀를 몰아내는 데 도음을 받고자 하는 필요성에서 생겨났다. 법기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요괴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과 요괴를 베어내는 칼, 그리고 신비한 효능의 부적 역할을 하는 도장 등을 들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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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별전(十二支別錢), 1.2.3.고려,

한 면에 12지상과 문자를 양각한 청동 별전으로 모두 원형의 구멍을 뚫었다. 

뒷면에는 오두미도의 창시자인 장천사(장도릉, 張道陵)가 새겨져 있고, 신선문이나 별자리 등이 새겨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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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전, 경추 물천리 출토, 고려,

고려 무덤에서 출토된 ‘개원통보(開元通寶)’, ‘선화통보(宣和通寶)’ 등 동전7종 27점이다. 


송대 이후 동전의 매납이 상당히 유행하는데 고려 무덤에 당대의 개원통보 등 

이른 시기의 동전이 매납되는 것과 고려 사회가 현물 거래 위주였던 점으로 볼 때 

유통되지 않는 동전은 벽사와 압승의 의미로 매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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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자모양문진, 경주 물천리 출토, 고려, 

청동문진으로 한 점은 입에 구슬을 물고 있으며 나머지 한 점은 가슴에 방울을 단 형상이다. 


인장(印章), 경주물천리 출토, 6.7.고려, 

도교에서 인장은 신비한 효능의 부적 역할을 한다고 믿어져 법기로 언급된다. 

특히 인장에 새겨진 글씨는 신의 뜻을 담아 신을 부르고 귀(鬼)를 몰아내는 것으로 믿어져 

부록(符錄)처럼 글씨를 해독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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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인검(四寅劎), 조선,

 연.월.일.시가 모두 인(寅)일 때에 만드는 칼이다. 

칼날의 한 면에는 북두칠성과 28수 천문도가, 다른 면에는 검결(劍訣) 27자가 전서체로 금입사되어 있다. 


2.삼인검(三寅劍), 조선, 

검신의 한 면에 북두칠성을 은입사하였다. 

자루에는 은입사한 당초문 바탕에 ‘삼인검(三寅劍)’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삼인검은 연.월.일.시 중 세 개의 인(寅)을 갖춘 벽사용 검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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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격룡도(擊龍圖), 윤덕희(1685~1766), 조선 18세기, 

오른손에 보검을 쥔 인물이 교룡을 잡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사 속 인물은 여동빈이라는 설이 있다. 


4. 격호도(擊虎圖), 윤덕희, 조선 18세기, 

무사복 차림의 인물이 무기를 들고 호랑이와 대치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명대(明代)의 소설집 『성세항언(醒世恒言)』의 삽화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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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부선서(祥符铣瑞)」를 새긴거울, 고려, 

팔엽 뉴좌를 가진 청동거울이다. 내구에 연화문이 있고 각 판에는 명문이 있다. 

외구에는 팔괘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상부선서 등 명문을 두었다. 


2. 「평광기(平廣記)」를 새긴 거울, 고려, 

내구에 「의재대(義在大)」와 「평광기」라는 명문이 있고, 외구에는 헌원팔월경 등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의 왕경이었던 개성에서는 이처럼 도교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거울들이 많이 출토되어 

도교문화가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유행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3.팔괘무늬 거울, 고려, 

고려시대에 등장하는 팔괘문경은 팔괘를 주무늬로 표현한 것과 식물문, 십이지문 등 

다른 무늬에 부속적으로 시문되는 것으로 나뉜다. 

도사들이 도교과의를 진행할 때 중요한 법기로 거울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때에 보통 팔괘무늬 동경을 지니거나 차고 다녔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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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팔보(八寶)무늬 거울, 고려, 5.보주무늬 거울, 고려




착해야 오래산다.
   선과 악의 보답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무릇 사람에게 잘못이 있으면 크게는 12년의 수명을 빼앗고 작게는 100일을 빼앗는다. 

그러한 크고 작은 허물은 수백가지가 된다. 

오래 살고 싶은 자는 먼저 그러한 잘못을 피해야 한다. 

   –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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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상감응편도설언해(太上感應篇圖說諺解), 조선,

중국 명나라 허남증태상감응편도설(太上感應篇圖說)을 1848년(헌종14)에 최성환이 다시 편집하고, 

1852년(철종3)에 만주어와 한문으로 된 『선악도보도설(善惡所報圖說)』을 구하여 

그림과 한문은 원본대로 두고 만주어를 한글로 고쳐 간행한 책이다. 


500여 장의 그림이 실려 있고, 

그림에 대한 해설과 선악(善惡)은 반드시 응보가 있다는 사실이 주석으로 달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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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성제궁오륜경언해(關聖帝君五倫經諺解), 조선

1884년, 관제신앙(關帝信仰)의 경전 가운데서 『오륜경(五倫經)』을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으로, 1884년에 간행되었다. 

부자장(夫子章), 군신장(君臣章), 부부장(夫婦章), 장유장(張維章), 붕우장(朋友章) 등 다섯장으로 되어 있다. 

도교에서는 오륜과 같은 윤리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가르쳤다. <출처:중앙박물관>




‘우선 공덕(功德)을 세우는 것, 다음으로 과실(過失)을 없애는 것, 

도(道)를 닦는 자는 남의 위험을 구제하여 재화(災禍)를 면하게 해주고,

 질병에서 지켜 횡사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최상의 공덕이다.’ – 『포박자(抱朴子)』 대속(對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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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창제군보고(文昌帝君寶誥), 조선 19세기,

문창제군의 귀한 가르침이란 뜻의 도교 경전을 청화백자에 담은 것이다. 이 내용은 『삼성훈경』에도 수록되어 있다. 

앞부분의 「문창제군권효문(文昌帝君勸孝文)」에는 효가 사람사는데 가장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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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각세신편팔감상목(覺世信新編八鑑常目), 조선 1865),

『태상감응편』.『문창제군음즐문』 등 대표적 도교 권선서에 주석을 붙인 「경주감(經註鑑)」 등 8개의 항목을 통해, 

고금의 격언과 선악에 대한 응보사례, 음행(淫行)과 살생에 대한 경계, 의술에 관한 내용 등을 적은 책이다. 

무관출신의 저술최성환이 1866년(철종7)에 쓰고 간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인간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고, 장수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 태평경(太平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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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선최락(僞善最樂)」을 새긴 거울, 고려, 

경배면 중앙부에는 ‘위선최락’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렇게 명문이 전면에 배치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송대로부터 명대까지 유행하던 형식이다. 

당시 선(善)을 최고의 가치로 권장하던 권선서의 유행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울이다. 

개성부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한다. 


2.「덕후(德厚)」를 새긴 거울, 고려, 

‘덕후’의 두자를 뉴의 상하로 배치하고 ‘수즉광성자(壽卽廣城子)’, ‘작비곽령공(爵比郭令公)’이라 적고 있다. 

앞의 문장은 신선 광성자(廣成子)의 오기인 듯 보인다.

 곽령공은 살아서 관직, 다복 등 최고의 삶을 누렸던 곽자의(郭子儀)를 이르는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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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신록언석(敬信錄諺釋), 조선 1880년,

도교에서 인간의 선행과 악행에 대한 하늘의 응보(應報)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 실증한 『경신록』을 한글로 풀이한 책이다. 

서명과 경문의 제목만 한자로 쓰고 나머지는 모두 한글이다. 1880년(고종17)에 고종의 명으로 간행되었다. 

『태상감응편』 등 여러 도교서적에서 발췌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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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삼성훈경(三聖訓經), 조선 1880년,

1880년(고종17)에 고종의 명으로 간행한 책으로, 

삼성(三聖)의 경문(經文)을 모아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


 삼성이란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불리는 관우와 

문창제군(文昌帝君)이라 일컫는 장아(張亞)

부우제군(孚佑帝君)이라 불리는 여암(呂巖, 여동빈)을 말한다. 


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관성제군보고, 각세진경, 문창제군보고, 음즐문(陰騭文), 부우제군보고, 구심편(求心篇) 등이 실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過格
. 1점 짜리 공덕: 한사람의 선을 칭찬하는 것, 의롭지 못한 재물을 취하지 않는 것.
. 3점 짜리 공덕: 남의 비당을 감당하면서 변명하지 않는 것,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는 것.
. 5점 짜리 공덕: 심성과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경전법문을 한 권 편찬하는 것, 

           약처방이나 민간 요법 등으로 한 사람의 가벼운 질병을 고쳐 주는 것.
. 30점 짜리 공덕: 한 사람의 덕을 이루도록 도와 주는 것.
. 50점 짜리 공덕: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거두어 양육해 주는 것, 한 사람의 원통함을 풀어 주는 것.
. 100점 짜리 공덕: 한 사람 죽을 것을 구제해 주는 것.


. 1점 짜리 죄과: 한 사람의 선을 못하게 방해하는 것. 오곡이나 하늘이 주신 사물을 함부로 버리는 것, 

            경전을 독송할 때 잘못 읽거나 빠뜨리는 것.
. 3점 짜리 죄과: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화를 내는 것. 자기 분수 외의 것을 탐하고 추구하는 것, 

            남의 근심 걱정을 보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것.
. 10점 짜리 죄과: 나쁜 사람을 천거하여 등용하는 것, 남을 해칠 수 있는 독약을 만들거나 조제하는 것, 

            덕을 손상할 수 있는 말을 내뱉는 것.
. 30점 짜리 죄과: 근거 없는 비방을 지어 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것, 흉년에 오곡을 사재기해 놓고 폭리를 취하는 것.
. 50점 짜리 죄과: 백성에게 해를 끼칠 말을 하는 것.
. 100점 짜리 죄과: 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 한 부녀의 정절을 잃게 만드는 것.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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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여래를 그린 그림, 조선,

도교와 쟁생술의 영향으로 불교에서는 일월성신을 부처로 의인화하여 신앙하였고, 그 영향이 불화에 투영되었다.

 불화에서는 고려시대 치성광여래도(熾星光如來圖)에 북두칠성을 비롯한 여려별들의 존상이 표현되었고, 

선후기에는 민간신앙과 결합되어 복을 구하고 득남을 염원하는 칠성신앙의 성행과 함께 

북두칠성과 하늘의 여러 별들을 그린 칠성도가 다수 조성되었다. 


이 불화는 크게 상단과 하단의 2단 구도로, 

상단에는 치성광여래.일광보살(日光菩薩).월광보살(月光菩薩)의 치성광삼존(熾星光三尊)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보필성(輔弼星)과 칠여래(七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 일궁천자(一宮天子).월궁천자(月宮天子)를 그렸고, 

하단에는 자미대제(紫微大帝)를 중심으로 28수(二十八宿)와 삼태육성(三台六星), 동자를 표현하였다. 


별을 바라보며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점쳤고 신앙했던 조선후기 사람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화기 중 시주자가 ‘본부 사하면(本府 沙下面)’에 거주한다고 쓰여져 있어, 

이 불화는 본래 동래 근처 사찰에 봉안된 불화로 여겨진다. <출처: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도교문화"] 장수와 복을 주는 팔선(八仙) 이야기

1. 행복으로 가는길2. 도교의 신들3. 팔선이야기4. 신선세계를 꿈꾸다5. 신선이 되는 법6. 함께하는 도교



   동천복지(洞天福地)는 중국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명산을 말하며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낙원이었다. 그 중 곤륜산서왕모(西王母)가 산다는 곳으로 그곳에서 열리는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곤륜산에서 서왕모가 신선들을 초대하여 베풀었다는 연회는 신선세계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발해 동쪽에 있다고 전해지는 삼신산(三神山)곤륜산과 함께 신선이 사는 낙원으로 삼국시대 정원 연못에 조성한 인공섬, 백제 향로나 전돌 등에 표현된 그림 등으로 많이 접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명승지를 정자나 서원 등을 짓고 자연을 벗하며 신선이 사는 세계로 표현하기도 했다.


   도교에서 신이나 신선들은 복을 비는 대상으로 인기가 많았다. 도교에서 인기가 많았던 여덟신선들을 팔선(八仙)이라 부르며 조선후기에는 팔선을 그린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팔선은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이철괴(李鐵拐), 장과로(張果老), 한상자(韓湘子), 조국구(蓸國舅), 남채화(藍采和), 하선고(何仙姑) 등 8명의 신선을 말하며 대부분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들로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전해진다. 그 중 종리권(鍾離權)은 팔선 중 우두머리로 여겨지며, 여동빈(呂洞賓)은 팔선 중에서 가장 인기 이씨는 신선으로 검법에 뛰어났다.



신선의 세계.동천복지(洞天福地 )


   도교에서 신선들이 사는 곳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낙원이었다. 곤륜산(崑崙山)은 도교 최고의 여성 신선 서왕모가 산다는 곳으로, 그곳 서왕모의 과수원에 3천 년마다 열린다는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세기 낙랑 무덤과 5세기 무렵의 고구려 무덤 벽화 등에 서왕모가 보이며, 조선 후기에는 곤륜산에서 서왕모가 베풀었다는 연회를 묘사한 회화들이 많이 그려졌다. 『사기』등의 기록에는, 발해 동쪽에 방장산, 영주산, 봉래산삼신산(三神山)이 있는데, 이곳에는 불사약이 있고 신선들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제나 통일신라의 왕실 원지(園池)에 삼신산을 조성했고, 백제의 왕실 향로나 전돌 등 공예품에 신산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들 신선세계는 어떤 재앙도 도달하지 못하는 별천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림(園林)이나 별서(別墅)를 지어 현실 속에 신선세계를 구현하려 하였다. 조선시대 문인들처럼 시나 기행문 등에서 심산유곡의 명승지를 신선세계로 표현하는 일도 많았다. <출처:중앙박물관>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봉래(一蓬萊), 이방장(二方丈), 삼영주(三瀛州) 죽장집고 풍월 실어 봉래산 구경갈 제
경포 동령(東嶺)의 명월(明月)을 구경하고 청간정(淸澗亭) 낙산사와 총석정을 구경하고
단발령을 얼른 넘어 봉래산을 올라서니 천봉만학(千峯萬壑) 부용(芙蓉)들은 하늘 위에 솟아 있고 

백절폭포(百折瀑布) 급한 물은 은하수로 기울인 듯
잠든 구름 깨우려고 맑은 안개 잠겼으니 선경(仙境) 일시가 분명하고나.
때마침 모춘(暮春)이라 붉은 꽃 푸른 잎과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춘색을 자랑한다.
봉래산 좋은 경치 지척에 두고 못 본 지가 몇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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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세계를 표현한 대표적인 고사인물도로 김홍도가 그렸다고 전해진다. 

서왕모요지연(瑤池宴)에 참석하기 위해서 각자의 지물을 갖고 바다를 건넜다고 하는

 ‘팔선과해 각현신통(八仙過海 各顯神通)’의 고사로부터 나온 도상이다. 

중국에서는 팔선의 신통력을 대표하는 매우 유명한 고사였다.




맹수에서 절세 미녀가 된 서왕모

   서왕모(西王母)곤륜산에 살고 있는 여신이다. 서왕모의 궁전에는 각종의 보석으로 치장된 건물이 늘어서 있고, 반도원(蟠桃園)에는 먹으면 불로장생 한다는 신비의 복숭아가 열려 있다. 주변에 요지(瑤池)라는 호수가 있어 때때로 신선들이 총 출동하는 연회를 베푼다. 서왕모는 한대 화상석과 『산해경(山海經)』에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의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길게 풀어헤친 머리에 비녀를 꽂은 기괴한 모습의 맹수로 동굴 속에 산다고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젊고 아리따운 미녀로 묘사되는데, 머리에는 금빛나는 장식을 하고 비단옷에 봉황을 수놓은 가죽신을 신는다. 손에는 원시천존에게 받은 부적을 들고 신선들을 맞이한다. 초기에 서왕모는 하늘의 재앙과 오형(五刑)을 주관했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서왕모의 위상은 점차 높아져 불로불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최고의 여신으로 변화하게 된다. 주나라 목왕은 여덟 필의 명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요지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는 서왕모를 찾아갔다. 이 장면은 ‘요지연도’라 하여 조선시대에 많이 그려지고 있다. 목왕은 다시 가고자 하였으나 다시는 천계를 방문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한의 무제도 서왕모를 만나 불사에 관해 물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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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연도(瑤池宴圖), 조선,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 연회에 초대된 신선들을 그린 대표적인 장면이다. 

주나라 목왕이 꿈에 보았다는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요지연도는 중국 주나라의 목왕이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 요지(瑤池)에서 열리는 연회장에 초대 받은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곤륜산에는 삼천 년 만에 열매가 열린다는 반도(蟠桃),

 연회에 초대받은 여러 신선들, 마당에 춤추는 학 등이 모두 장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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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선경술도(群仙競術圖), 조선 17세기,



복을 바라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도교의 신이나 신선들은 사람들이 복을 비는 대상으로 인기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여덟 신선들을 그린 그림과, 최고의 여성 신선인 서왕모의 연회를 그린 그림, 그리고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 등이 조선후기에 인기가 많았다. 또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노인(壽老人), 장수를 상징하는 동방삭(東方朔), 학문의 신인 문창제군(文昌帝君), 재물의 신인 관성제군(關聖帝君) 등이 신선 그림의 소재로 애용되었다. 한편, 서왕모의 반도(蟠桃)에서 유래한 복숭아, 신선초라 불리는 영지(靈芝), 그리고 사슴.학.거북을 비롯한 십장생(十長生) 등은 장수와 복록(福祿)을 상징하는 의미로 각종 길상화(吉祥畵)나 공예품의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십장생은 베갯모, 수젓집, 열쇠패, 담배합, 필통, 화로 같은 일상 용품에 폭넓게 애용되었다. 사람들은 복을 구하는 것 못지 않게 재액(災厄)과 잡귀를 물리치는 것도 중요시하였다. 잡귀를 물리치는 도교의 신인 종규(鍾馗)는 세화(歲畵)로 그려졌고, 삼시충(三尸蟲)이 경신일(庚申日)마다 상제에게 사람의 잘못을 고하여 수명이 깎이는 것을 막기 위해 경신일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풍습도 도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팔선(八仙)


   신선 중 가장 인기 있는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이철괴(李鐵拐), 장과로(張果老), 한상자(韓湘子), 조국구(蓸國舅), 남채화(藍采和), 하선고(何仙姑) 등 8명의 신선을 팔선이라고 한다. 이들은 주로 군선도(群仙圖)라 하여 여신 서왕모가 복숭아를 나눠 주던 연회(宴會) 장면과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군선을 그린 요지연도(瑤池宴圖), 또 요지연도 중 여러 신선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만 분리해서 그린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등으로 그려졌다.


천년 된 반도에다 사수의 영지는 무성히 잘 익어 뜨락에 늘어섰네.
밝은 별빛 옥녀들은 아래에 늘어섰고 뜬 해와 솟는 달이 그 가운데 지나가네.
구름 창 수놓은 문 어둠을 젖히니 신선들 낯빛이 복사꽃인 양 환하구나.
무지개 옷을 입고 무지개 빛 허리 차고 신선 수레 몰려들어 서로 모여 기뻐하네.
- 조찬한(1572~1631) 「몽선요(夢仙謠)」-


   도교에서는 수련의 결과로 상자(上者)는 허공에 올라가 우주에 소요하는 천선(天仙)이 되고 중자(中者)는 36동천(洞天)과 72복지(福地)에서 사는 지선(地仙)이 되며, 하자(下者)는 혼백(魂魄)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시선(尸仙), 인선(人仙)이 된다고 말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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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 국보139호, 김홍도(1745~1806),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가 그린 대표적인 도석인물화이다. 

배경없이 인물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감정이 살아 있는 듯한 인물묘사 등 그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원래 있는 그림을 따라서 그렸으나 김홍도만의 독특한 인물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선 1776년, 

맨 앞에 하선고(何仙姑)와 영지버섯을 단 남채화(藍采和),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책을 보는 장과로, 

딱딱이 모양 판을 치고 있는 조국구, 

대나무 통을 든 한상자(韓湘子), 

외뿔소를 타고 『도덕경(道德經)』을 든 노자, 

천도복숭아를 든 동방삭(東方朔), 

종이를 들고 걸어 다니면서도 글을 문창(文昌), 

머리를 깎은 종리권, 

머리에 두건을 두른 여동빈, 

호리병을 든 이철괴 

등이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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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 중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책을 보는 장과로

딱딱이 모양 판을 치고 있는 조국구, 대나무 통을 든 한상자(韓湘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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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 중 하선고(何仙姑)와 영지버섯을 단 남채화(藍采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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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이철괴,신선 장과로,


이철괴(李鐵拐), 이재관(1783~1837년), 

이철괴는 어려서 도를 깨우쳤으며 혼이 몸에서 빠져 나와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어느날 몸에서 빠져나와 7일간 돌아다니다 와 보니 

제자가 장례를 치룬 뒤라 돌아갈 곳이 없게 되자 거지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한 쪽 다리를 절고 손에는 쇠지방이를 들고 있다. 


신선 장과로(張果老),유한지(1760~1834), 

장과(張果)라고도 한다. 

항주(恒州) 중조산(中條山)에서 오랫동안 은거하며 스스로 천여 세가 되었다고 말했다

흰 나귀를 타고 다닌다. 

쉴 때는 종이처럼 접었다가 다시 탈 때 물을 뿌려 나귀로 만들어 타고 다녔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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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종리권,  신선 여동빈,


신선 종리권(鍾離權), 조선, 팔선(八仙)의 우두머리다.

 나면서부터 용모가 기이해 체격이 매우 크고 풍채가 당당하며 

쌍상투를 틀고 옷을 풀어헤친 채 배를 내밀며 파초선을 쥐고 다녔다. 


신선 여동빈(呂洞賓), 윤덕회(1685~1766), 

여동빈은 팔선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신선이며 검법에 뛰어나 검과 함께 묘사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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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유해섬과 신선 황초평


신선 유해섬(劉海蟾), 조선, 

오대(五代) 때의 실존 인물로 종남산(終南山)에서 수도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호를 해섬자라 하고 전국 각지를 방랑하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적 인물이다. 

보통 두꺼비와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 


신선 황초평(黃初平), 

양을 치던 도사(道士). 양이 밤에는 모두 돌로 화했다고 함. 

또는 돌을 꾸짖어 양을 만들었다고도 함.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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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여동빈,김득신(1754~1822),

여동빈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두 차례나 과거시험에 낙방한 후 종리권을 만나 시험에 통과하였고 

종남산에 들어가 죽지 않는 비결과 검술을 전수 받았다. 


여동빈은 백살이 넘었는데도 늙지 않고 펄덕이는 옷자락에 화양건을 즐겨 쓰고, 

보검을 메고 다닌다. 

보검으로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

 다양한 변신술로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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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 세선인

신선들, 전 김홍도, 

청오자(靑烏子), 등에 황정경을 메고 붉은 영지를 들고 있으며 

허리에 호리병을 차고 있으니, 묻지 않아도 청오자임을 알 수 있겠다.

 골골사의 빠른 필치와 구법이 속세를 활발히 벗어났으니 청오술이 능히 대적할 수 있겠는가? 


세 선인(仙人), 

여동빈종리권에게 배우고 종리권은 호리병을 뒤집어 금단을 쏟고 있는 사람에게 배웠다.

 때 마침 맑은 달이 곁에 있다가 그 사정을 아는구나.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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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조국구, 신선 황초평


조국구(蓸國舅), 

조국구는 왕족으로 송나라 인종 조태후의 동생이며, 

매우 모범적인 사람이어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조태후에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지 않자 집안의 재물을 다 털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홀로 깊은 산 속에 은거해 수행에만 힘쓰자 종리권과 여동빈이 찾아와 그를 신선으로 인정했다. 

관복에 홀을 든 모습으로 표현된다. 


신선 황초평(黃初平), 

초평이 돌을 보고 소리를 질렀더니 양이 되었다고 하니 조화수를 다한 것이다. 

사능(士能)이 필묵으로 초평의 조화수를 홀리게 하니 거의 초평보다 한 수 위라 할만하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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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세계의 복숭아, 

뒷면의 해반도도는 도교의 전설 속에서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인 해과(海果)를 그린 것이다. 

복숭아가 열린 이곳은 장수의 주재자이자 수명의 신선인 서왕모가 거처한다는 

바다 위의 곤륜산, 즉 상상의 선계(仙界)이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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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세계의 복숭아, 조선,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서 자라는 복숭아를 묘사한 그림이다.

앞 두 그림의 크기가 같은 이 해빈도도(海蠙桃圖)는 궁궐안을 장식한 한 쌍의 장자(障子) 보인다. 


벽과 천장에 문틀을 고정시킨 다음 문지방을 필요에 따라 끼우고 

장지문을 달면 공간을 구획할 수 있는 칸막이 형식을 말한다. 

그림의 구성이나 장식 및 형식으로 볼 때 19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삶도 죽음 부질 없음을 슬퍼하면서, 티끌세상 벗어나 먼 길 떠났네. 상계의 선부(仙府)까지 올라가서는 하토(下土)의 풀더미를 굽어보았지. 요지(瑤池)를 지나서는 돌아옴도 잊었는데 서왕모가 날 이끌고 길을 인도하였네. 한 알의 신령한 복숭아를 주는데, 그 향기 너무나 짙었다. 가만히 받아서 씹어 삼키니, 문득 이 몸 진인(眞人)으로 되돌아가서 어지러이 두둥실 날아올라선 아득한 동해바다 넘놀았다네.

 – 심의(1475~) 「반도부(蟠桃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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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신선들, 전 김홍도,

서왕모의 요지연에 참석하기 위해서 각자의 지물을 가지고 바다를 건넜다고 하는 ‘팔선과해 각현신통’이 고사로부터 나온 도상이다. 

중국에서는 팔선의 신통력을 대표하는 매우 유명한 고사였으며 원대 영락궁 벽화를 비롯하여 인기를 누렸던 화제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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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오봉도.조선,

곡병(曲屛) 형식으로 된 이 그림은 하늘의 동쪽에는 붉은 해가, 서쪽에는 하얀 달이 묘사되었다. 

일월오봉도에 나타난 하늘과 땅, 물, 해, 달, 산, 나무 등은 오행(五行)으로부터 나온 팔괘(八卦)를 형상화한 것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한국의 도교문화"] 신선세계를 꿈꾸다.

1. 행복으로 가는길2. 도교의 신들3. 팔선이야기4. 신선세계를 꿈꾸다5. 신선이 되는 법6. 함께하는 도교



   신선사상(神仙思想)은 속세를 떠나서 신선세계에 살면서 장생불사한다는 신선의 존재를 믿고 이를 추구하는 사상을 말한다. 신선사상은 기원전 4~5세기경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진시황, 장량(張良)을 비롯하여 한(漢)을 건국한 주체세력들을 비롯하여 많은 지식인들이 신선사상에 심취하였다. 우리나라의 신선사상은 고대 국가의 형성시기의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단군신화를 비롯한 많은 건국신화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중국 남북조시대 도교가 전래될 때 쉽게 토착화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현실속에서 신선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기풍이 확산되었으며, 도교의 수련법이 도입되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 일반민중들은 ‘홍길동전’같은 도교의 영향을 받은 영웅소설 주인공을 통해 억눌린 현실속에 대리만족을 얻을려고 하였다. 신선들이 살아던 세상인 박산, 삼신산, 곤륜산 등은 청동거울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용품에 표현되어 있다. 또한 신선들과 관련된 중요한 일화나 사건 등을 묘사한 고사인물화 또한 많이 그려졌다.



신선세계를 꿈꾸다.


   신선세계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은 신선사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기원전 4~5세기경부터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이에 따라 자연과 같은 탈속적인 세계로 숨는 ‘은일(隱逸)’의 관념이 신선세계를 지향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 갔다. 한국에서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현실속에 신선세계를 구현하여 은일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기풍이 확산되었다. 예컨대 정원에 가산(假山)을 조성하여 이를 감상하는 일, 산수화를 그리고 감상하는 일, 자연 속에서 바둑을 두는 일, 산수(山水)나 신선에 대한 시를 짓거나 읽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신선처럼 하늘을 날며 도술을 부리는 영웅의 이야기들이 소설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누렸다. 『홍길동전』, 『전우치전』을 비롯한 영웅소설의 주인공들은 옥황상제나 용왕, 신선, 도사 등의 도움속에 신이한 도술을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한다. 이러한 소설들은 억눌린 현실속에서 영웅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 것들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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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록.수 삼성(三星),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전 김홍도, 

김홍도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풍경화가 잘 알려져 있지만 신선사상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신선사상과 관련된 그림도 많이 그렸다.


복.록.수 삼성(三星), 전 김홍도, 

수(壽), 복(福), 록(祿) 삼성은 보통 그림이나 문자와 같이 상징화된다. 

한쪽에는 신선의 모습이 묘사되고 다른 쪽에는 ‘복’과 발음이 같은 박쥐, 

‘록’과 발음이 같은 사슴이 새겨지거나 문자로 대체되어 표현되는 특징이 있다.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전 김홍도, 

수성노인은 키가 작고 머리가 크며 수염이 많고 백발에 지팡이를 쥐고 학과 사슴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일반적으로 남극성(南極星)의 화신으로 여겨 남극노인(南極老人)이라고도 하는데, 

장수를 담당하는 별을 우상화한 것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인기를 끌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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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나무.인물을 묘사한 자수(전 정영공주, 조선), 도교의 신 종규(鍾馗, 조선).


학.나무.인물을 묘사한 자수, 전 정영공주, 조선,

 정월 초하루에 대궐에 붙이는 세화(歲畵)의 주제는 선녀 그림 혹은 사슴을 데리고 있는 신선 그림 등이 있다. 

하단의 두 신선은 바구니에 영지와 지혜를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담고 있고 또 한 신선은 복숭아를 들고 있다.

 화면 상단에 학을 탄 수성노인이 복숭아 가지를 들고 하강하고 있다


도교의 신 종규(鍾馗), 조선, 

종규는 악귀나 마귀를 쫓는다는 중국의 신으로 문에 붙여 악귀를 막는 풍속이 당송 때 성행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시풍속기에 보면 정월 초하루에 종규를 그려 문에 붙이는 방법으로 

사악한 귀신과 두려운 전염병을 울리쳤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세시풍속
   정월 초하루에 대문에 붙이는 서화(書畵)의 주제는 선녀도 혹은 시승을 데리고 있는 신선 그림등이 그려졌고, 악귀를 쫓는 의미로 사나운 종규를 그려 붙이기도 했다. 정월 초이레에는 왕이 신하들에게 동인승(銅人勝)이라고 하여 신선이 그려진 자루가 달린 작은 거울을 나눠 주었는데 이는 한 해의 일이 모두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며 신선의 예우는 건강, 장수를 비는 마음에서였다. 섣달 그믐에 행해지던 경신(守庚申) 풍습도 도교에서 유래하였는데, 사람 꿈속에 사는 삼시충(三尸蟲)이 경신일이 되면 사람이 잠든 틈을 타 몸속을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가서 상제(上帝)에게 사람의 잘못을 고해 바침으로서 사람의 수명을 깎이게 하므로 이를 막기 위해 경신일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세웠던데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단오날 아침 사랑하는 이에게 장수하라고 약을 주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궁중에서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속으로 왕을 비롯해 왕족들은 옥추단(玉樞丹)을 옷고름에 노리개 삼아 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을 차고 다니면 제액이 물러난다고 하며, 여기에는 일년 내내 무병을 비는 기축(祈祝)의 뜻이 들어 있었다. 이 외에도 단오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벽사의 의미를 가진 오색 끈으로 만든 것을 선물한다던지 관상감에서 주사(朱砂)로 벽사문(僻邪文)을 찍어 둔 상방에 붙여 여러 병을 물리쳤던 것. 동지에 팥죽을 쑤어 역질 귀신을 물리치는 풍습 등도 도교에서 영향 받아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사악함을 물리치려 행해지던 것들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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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짧은목항리와 뚜껑, 창녕 하왕산성, 2. 삼시충(三尸蟲) 부적 목간, 창녕하왕산성, 통일신라,

삼시(三尸)는 비록 형체는 없지만 사실상 혼령이나 귀신 따위라고 볼 수 있으며,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제사를 받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경신일이 될 때마다 하늘에 올라가 사람이 저지른 행실을 고하여 수명이 깎이게 한다. 


창녕 화왕산성에서 출토된 단지 안에 있던 목간은 

이미 통일신라기부터 삼시충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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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복(福)」을 새긴 거울(고려),  4.「수저」를 새긴 거울(고려),


「복(福)」을 새긴 거울, 고려, 

연꽃잎 모양의 거울 뒤에는 사슴 한 마라와 “복(福)”자가 양각되어 있다. 

손잡이가 있는 거울로 수(壽).복(福),록(祿) 삼성(三星)이 그림과 문자로 상징된 것이다. 


「수저」를 새긴 거울, 고려, 

수저귀학문경(壽저龜鶴文鏡)이라고 부르는 거울은 일반적으로 신선이 바위 위에 앉아 있고 

그 옆에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거북이 노니는 모습을 새긴다.

 이 거울 또한 수저귀학문경에 해당하는데, 신선의 모습 대신 ‘수저’라는 명문을 적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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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무늬 화장품 그릇, 숙신공주 무덤 출토, 조선 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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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무늬 노리개, 조선,

밀화(蜜花) 장식에 매듭을 단 노리개이다. 

밀화 장식의 앞면에는 신선과 사슴무늬,

 뒷면에는 각각 구름, 학, 수풀, 거북, 소나무, 산, 물, 영지, 해, 사슴을 뜻하는 한자들이 새겨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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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을 새긴 향합(香盒), 고려 13세기, 

도교가 크게 융성했던 고려사회를 잘 보여준다.


신선들의 한가로운 모습을 새긴 향합이다. 

뚜껑에는 나무 아래에 두 아이가 그림을 들고 서 있고 신선이 이를 감상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또 몸체에는 나무 아래에서 두 신선이 바둑을 두고 그 곁에 시중드는 아이가 서 있는 광경을 묘사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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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로운 동물들과 낙원,

조선, 봉황을 중심으로 용, 기린, 학, 사슴, 공작, 원앙, 거분 등의 서수(瑞獸)와 

신비한 구름 천도(天桃), 연꽃, 모란 등의 실상이 화면 가득히 배치되었다. 

이들이 상징하는 것은 부부 금술과 화목, 다산, 수명장수, 부귀영화 등 

현세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세속적 행복의 요소들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은일과 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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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 심취한 하지장(賀知章), 김홍도, 조선 1804년, 

당나라 시인 두보‘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첫 구절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하지장은 말 타기를 배 타듯 한다. 취중 몽롱하여 우물 가운데 떨어져 잠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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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새긴 청자병, 고려 12세기,

조롱박 모양의 몸체 양면 안에 시구(詩句)를 흑색 상감하였다. 

이 시는 도교에 심취했던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주흥(酒興)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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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팔선무늬 거울, 고려,

거울 중앙 뉴를 중심으로 「백수단원」이라는 명문이 배치되고 

경배면 전면에 팔선과 팔선의 상징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팔선 혹은 신선그림이 유행하게 된 데에는 

원대(元代) 이래로 팔선 그림이 모티브가 된 다양한 도상들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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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사 봉황무늬 거울(고려), 3. 신선무늬 거울(고려)


도사 봉황무늬 거울, 

한쪽에는 단정한 자세로 생황을 불고 있는 신선이 앉아 있고, 

그 반대편에는 선인의 음악에 빠져 춤을 추는 봉황이 묘사되었다.


 선인의 뒤편으로 묘사된 숲과 봉황 앞 쪽으로 펼쳐진 연못 등 

깊은 산중에서 봉황과 교감하는 신선의 일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신선 중 왕자교는 생황을 잘 불어 봉황의 소리를 낼 줄 알았다고 한다. 


신선무늬 거울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신선인 듯 앉아 있는 인물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뒷 배경의 산수무늬와 함께 산중에 한가로이 기거하는 신선의 유유자적함이 배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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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조선후기,

 도술을 부리는 영웅이야기는 민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심한 박색인 박씨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신기(神技)를 이어받은 듯 비범한 재주가 있었다. 

혼인 3년 째에 아버지에 의해 절세미인이 되니 남편과 가족들이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 

박씨는 오랑캐 장수 용골대를 죽이기도 하였다. 


남다른 부덕(婦德)과 신비한 도술을 지닌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남성 위주의 사회질서에 억눌린 여성들의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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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련몽(玉蓮夢), 조선후기,

조선후기의 소설로, 천상계의 문창성으로서 선녀들과 희롱하다가 인간계에 다시 태어난 양창곡(楊昌曲)이 

2처3첩과 더불어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세속적인 행복을 누리다, 

다시 천상계로 돌아가 선관이 된다는 내용이다. 


유교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불교나 도교를 수용하며 현실과 인생을 긍정적으로 다루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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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울전, 전우치전, 홍길동전 (조선후기)


금방울전,

동해용왕의 아들과 남해용왕의 딸이 죽어서 각각 선비 장원(張源)의 아들 해룡(海龍)과 과부 막씨의 딸 금령(金鈴)으로 태어난 후,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옥황상제, 변시, 용왕, 도술, 신선사상 등 도교적 요소들이 유교와 무속, 불교적 요소와 어우러져 흥미를 자아낸다. 


전우치전

조선 중종대의 실존 인물 전우치의 전설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전우치는 도술과 시에 능하고 나라에 반역을 꾀했다가 죽었는데, 

소설에서는 죽지 않고 도술로 탈출한 것으로 돼 있다. 

이본에 따른 내용 차이가 크지만, 전우치가 도술로써 천상 선관(仙官)을 가장하거나,

 횡포한 무리를 징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의 내용은 비슷하다.


 홍길동전(허균),

조선중기의 문신 허균이 지은 것으로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소설이다. 

판서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의적 생활을 하며 다양한 도술로 체포를 모면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고, 홍길동이 이를 받아 들인다. 

홍길동은 후에 자연이 아름다운 율도국을 발견하고 그 곳의 왕이 되어 잘 다스렸다는 내용이다. 

적서차별을 비롯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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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자랑하는 신선들, 조선, 신선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요장면을 그린 고사인물화이다.

중국 소식의 『동파지림(東坡志林)』에 나오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한 노인이 말했다. “어렸을 때 천지를 만든 반고와 친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노인이 말했다. “바다거 변해 뽕밭이 될 때마다 하나씩 놓은 나뭇가지가 10칸 집에 가득하다.” 남은 한 노인이 말했다. “신선이 먹는 복숭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에 버렸는데, 지금 그 씨가 쌓여 곤륜산 높이와 같다.” 옷자락의 ‘千壽’자, 지팡이에 달린 영지버섯, 손에 든 복숭아, 대화를 엿듯는 흰사슴은 모두 장수를 상징한다. <출처:중앙박물관>



곤륜산
   서해의 남쪽, 유사의 언저리, 적수의 뒤편, 흑수의 앞쪽에 큰 산이 있는데, 이름은 곤륜구라고 한다. 어떤 신이 있어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을 하고 꼬리에 무늬가 있으며 모두 흰데 여기에 산다. 산 아래에는 약수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바깥에는 염화산이 있어 물건을 던지면 곧 타버린다. 어떤 이는 머리꾸미개를 꽂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를 하고 동굴에 사는데 이름을 서왕모라고 한다. 이 산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 『산해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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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왕부서왕모(東王父西王母)」를 새긴 거울, 1.낙랑, 2. 고려,

중국인들임 사후에 가고자 소망했던 신선의 세계는 서왕모와 동왕부가 사는 곤륜산이나,

 중국 동쪽 바다 가운데 신선들이 거주한다는 박산 등으로 묘사되었다. 

서왕모와 동왕부는 곤륜산에 거주하면서 신선들을 다스리는 신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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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무늬 전돌,

중국 한(漢), 일산을 쓰고 용호좌 위에 앉아 있는 서왕모가 표현되어 있다. 

서왕모 주위에 가는 리본처럼 묘사된 것은 일산과 더불어 서왕모가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존재임을 표현한 것이다.

 주연부에 뇌문이 돌려져 있다. 서왕모는 다소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소매가 넓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서왕모가 자리한 용호좌는 사신 개념이 성립되기 이전에 주로 유행하던 것으로 

한대(漢代)의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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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총(龕神塚) 새를 탄 선인 모사도, 고구려, 

새를 타고 날아가는 선인의 모습이다. 이 선인은 곤륜산서왕모로 언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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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동방삭(東方朔) 전 이경윤(1545~1611), 조선, 

동방삭은 여선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세번씩이나 훔쳐 먹어 3천갑자를 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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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와 토기무늬 수막새, 1.통일신라, 2. 중국 진~한,

서왕모의 곁에 종종 등장하는 토끼와 두꺼비, 계수나무는 모두 장수를 상징한다. 

신화에 따르면 토끼는 서왕모를 위해 달에서 불사의 약을 찧는다. 


두꺼비는 서왕모가 자신의 남편 예(羿)에게 내린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로 도망간 항아(姮娥)로 

달속의 궁전 광한전(廣寒殿)에서 토끼와 함께 살아간다. 

달 속의 계수나무는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나무로 토끼와 두꺼비 모두 볼로불사의 삶을 상징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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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불사약을 찧고 있는 거울, 고려, 

큰 나무 아래 4명의 인물과 그 옆에 토끼가 약을 찧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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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불사약을 찧고 있는 전돌, 중국 한(漢), 

한대(漢代)의 전돌로 불사의 약을 찧고 있는 토끼가 두꺼비와 함께 부조되어 있다.

 당시에 이미 선계에 대한 신앙이 매우 두터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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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모양 연적,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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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모양 연적, 보물 1025호, 고려,

서왕모반도에서 유래한 복숭아는 장수를 축원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벽사와 장수의 상징으로 사랑받아 도자기나 연적 등 

다양한 생활 용품에서 회화나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서 즐겨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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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 국보287호, 백제,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향로이다. 

신선이 사는 세계를 다양하면서도 상세히 묘사하여 삼국시대 사람들의 신선세계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1993년 부여 능산리 사지(寺址)공방지에서 출토된 백제 향로이다.

 금방이라도 승천할 듯이 꿈틀거리는 용이 입을 크게 벌랜 채 입속의 간주(竿柱)로 향로의 몸체를 받치고, 몸체는 연꽃잎을 중첩하여 두른 반구 모양을 하였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연꽃잎에는 2명의 인물과 짐승들을 배치하였고, 사이사이로 산길과 시냇물, 폭포 등을 표현하였으며, 상상의 동물과 호랑이, 멧돼지, 원숭이, 새 등 현실 속의 짐승들을 인물과 함께 묘사하였다. 대부분 포를 입은 인물들은 약초를 캐거나 명상을 하고 있고, 다른 인물은 갑옷을 입고 말을 타거나 또는 코끼를 탄 작은 인물도 있다. 뚜겅에 표현된 모습은 짐승과 사람들이 신선세계에 있는 듯 한 광경이다. 윗부분의 다섯 악사는 신선세계에서의 기쁨을 연주하는 듯하고, 그 옆의 5마리 새들은 꼭대기의 봉황을 응시한다. 봉황은 턱 맡에 구슬을 낀 채 하늘에서 방금 날아 내려온 듯 날개를 활짝 펼치고 서 있다. 이 향로는 신선들이 산다는 신산(神山)을 표현한 박산향로(博山香爐)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백제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불교적인 모티프인 연꽃이 장식되었지만, 고대의 전통적인 생명탄생의 우주관과 도가 내지 도교적 신선사상이 함께 표현된 걸작이라 하겠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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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묘사한 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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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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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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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라고도 불리는 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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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받침




동천복지
   향기로운 풀들이 아름답게 자랐고 복숭아 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있었다. 어부는 이상히 여겨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느지 알고자 했다. 숲은 강 상류에서 끝났고, 그곳에 산이 있었으며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속으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이고 넓어졌다. – 도연명(陶淵明), 『도화원기(桃花源記)』 –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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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림(上林)」을 새긴 수막새,중국 전한(前漢), 

한대의 명문 막새 중에서 그 막새가 사용된 건물이 명칭이 새겨진 것들이 있는데, 

궁전 혹은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상림(上林)’명막새는 상림원(上林苑)에 세워진 건축물에 사용된 것으로 

반원막새와 수막새가 함께 발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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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원석(庭園石),익산 왕궁리 출토, 백제, 

왕궁리 유적에서는 연못과 배수시설, 집수시설을 비롯하여 정원 관련 건물지가 함께 발굴되었다. 

연지의 외곽 전부를 판석으로 두르지 않고 기이한 형태의 조경석을 끼워 넣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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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나막신,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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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 모양 상, 조선,

연잎 모양으로 천판(天板)과 변죽을 만들고, 나전으로 연잎의 잎맥과 두마리 거북, 연꽃과 물고기를 표현하였다. 


십자형의 접지 부분에 연꽃 봉우리를 장식한 것으로 보아 접지 부위는 연근, 

기둥은 연잎줄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꽃은 동아시아에서 생명의 탄생, 재생 등을 의미하므로, 

이 소반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우주관이나 삼신산(三神山)과 관련한 불로장생 사상을 드러내려 한 것 같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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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봉황무늬 거울, 고려,

한쪽에는 단정한 자세로 생황을 불고 있는 신선이 앉아 있고, 

그 반대편에는 선인의 음악에 빠져 춤을 추는 봉황이 묘사되어 있다. 


선인의 뒤편으로 묘사된 숲과 봉황 앞 쪽으로 펼쳐진 연못 등으로 

깊은 산중에서 교감하는 신선의 일상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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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산향로, 낙양 석암리 출토, 낙랑, 

백제금동대향로와 마찬가지로 신선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향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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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산 술단지, 중국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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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산향로, 신안 도덕도 출토, 중국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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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구름무늬 반원 수막새, 1.중국 진, 2.중국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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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짐승모양 누름쇠, 낙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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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관꾸미개, 부여 능산리출토,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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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양연적, 5.조선, 6.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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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무늬전돌, 부여 외리 출토, 보물343호, 백제,

산수무늬를 표현한 백제시대 전돌이다.


 아랫부분에는 수면을, 중간의 넓은 부분에는 신산(神山)을, 윗부분에는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표현하였다. 

산악의 중앙 아랫부분과 그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건물과 도사로 보이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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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있는 은잔, 공주 무령왕릉 출토, 백제,

공주 백제 무령왕릉 발굴 시 왕비의 머리쪽에서 발견된 은잔과 청동제 받침이다.


 은잔은 굽이 있으며, 연꽃, 산봉우리, 새, 용, 사슴, 나무 등이 새겨져 있다. 

굽이 달린 접시 모양의 받침에는 중앙에 연꽃무늬, 가장자리에 거치나를 돌리고, 

그 사이에 인면조(人面鳥), 용, 사슴, 새, 나무 등을 표현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삼신산
   삼신산이라는 곳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발해 한 가운데에 있는데, 속세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 금방 다다랐다고 생각하면 배가 바람에 불려 가버린다. 언제가 가 본 사람이 있었는데 여려 신선들과 불사약이 모두 거기에 있고 모든 사물과 짐승들이 다 희며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이르기 전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막상 도착해 보면 삼신산은 도리어 물 아래에 있다… 배를 대려하면 바람이 문득 끌어가 버려 끝내 아무도 도달할 수 없다. 『사기』 봉선서(封禪書) –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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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연도(瑤池宴圖), 조선 19세기,

도교 최고의 여신선 서왕모가 산다는 곤륜산 요지의 연회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서왕모가 마련한 연회에 여러 신선들이 초대받아 간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그림으로, 

서왕모와 그녀를 방문한 주(周) 목왕(穆王)의 연회장면과, 초대받은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모습 등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반도(蟠桃)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들이 화면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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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가 펼쳐지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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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스러운 동물무늬화로, 조선, 

몸체 네 면에 십장생을 조합하여 나타내고 뚜껑에 팔괘무늬와 박쥐무늬를 베풀었다. 

여백이 없이 각종 기하학적인 무늬를 입사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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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무늬 담배합, 조선,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한 담배합이다. 뚜껑에는 도안화된 「수(壽)」자를 넣고 주변을 기하학문으로 빽빽하게 장식하였다. 

몸체의 중앙에 둥근띠를 배치하고 그 안에 사슴.학.거북.소나무.불로초 등을 입사로 장식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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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의 의미를 갖는 그림들이 새겨진 백자들


1.칠보무늬 합(조선),

 뚜껑에 칠보문을 배치한 백자 합이다. 

도교에서 복을 의비하는 전보(錢寶), 무소뿔로 된 서보(犀寶), 좋은 일에 쓰는 보자기인 방승보(方勝寶), 

벽사의 상징이 강한 거울인 경보(鏡寶), 그리고 고대의 악기인 특경보(特警寶)를 칠보로 언급한다. 

이 무늬들은 귀하게 여겨져 문방구류에도 자주 시문되었다.


 2.산수무늬합(조선), 

산과 구름, 귀룡(龜龒)이 그려진 합이다.

 귀룡의 등에는 45개의 점이 그려져 있는데, 

옛 중국 하나라 우임금이 황화의 범람을 다스릴 때 낙수에서 나온 신구(神龜)의 등에 있었다는 45점의 글, 

즉 낙서(洛書)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3.거북과구름무늬접시(조선), 

구름과 귀룡의 무늬가 있는 접시이다. 

귀룡의 형태는 현무(玄武)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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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장생을 꿈꾸는 십장생이 그려진 생활용품들이다.


4.십장생무늬 열쇠패, 조선후기, 


5.십장생무늬 필통, 조선,


 6.십장생무늬 안경집, 조선, 

십장생도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데 해, 달, 산, 물, 구름, 바위, 거북, 학, 대나무, 영지버섯, 복숭아 등을 그린 그림이다.

 이들은 신선사상을 기반으로 인간의 염원인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물로서 그림, 자수, 공예 등의 

장식문양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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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강원도 강원감영(사적 439호),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
  63.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 강원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집무공간
  64. 원주 구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65. 원주 흥법사지, 섬강변 교통로에 자리잡은 절터
  66. 원주 김두한 가옥, 조상 묘 관리를 위해 지어진 가옥
  67. 충청도 청풍도호부 관아, 동헌인 금병헌과 아문인 금남루
  68. 제천 청풍 후산리 고가, 19세기 건축양식이 잘 반영된 한옥
  69. 제천 청풍 황석리 고가, 양반계층이 살았던 작은 기와집
  70. 제천 청풍 도화리 고가, 충북지역 양반 가옥
  71. 제천 청풍지역 고인돌
  72. 제천 청풍 망월산성, 삼국시대 남한강변에 쌓은 산성
  73.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528호), 대표적인 조선시대 관아 누각
  74. 제천 청풍 응청각, 청풍도호부 관아 객사에 딸린 작은 정자
  75.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통일신라 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 불상
  76. 제천 수산 지곡리고가, 선비계층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한옥
  77. 단양 석문(명승 45호), 카르스트 지형의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는 명소
  78. 제천 장락사지, 삼국시대 당나라와 교류를 보여주는 남한강유역 절터
  79.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 전탑을 그대로 모방한 석탑
  80. 제천 입석리 선돌, 마을 입구에 세워졌던 큰 돌
  81. 제천 점말동굴, 남한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구석기시대 동굴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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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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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홍도필 군선도 병풍.jpg

1. 개요2. 내용3. 바깥고리4. 국보 제139호

1. 개요[편집]

  金弘道 筆 群仙圖 屛風.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 1745년 ~ 1806년)가 그린 군선도병(群仙圖屛) 8첩병풍.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편집]

파일: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5.jpg

파일: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2.jpg

파일: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3.jpg

파일: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4.jpg

파일: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jpg


  132.8㎝, 575.8㎝. 조선 후기의 대표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그린 도석 인물화로, 조선 영조 52년인 1776년에 그린 그림이다. 노자, 동방삭, 마고도교적 인물들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1971년 12월 21일에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도석 인물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3. 바깥고리[편집]

4. 국보 제139호[편집]

조선 후기 화가인 단원 김홍도(1745년 ∼ ?)가 그린 도석 인물화이다. 도석 인물화란 불교나 도교에 관계된 초자연적인 인물상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원래는 8폭의 연결된 병풍그림이었으나 지금은 8폭이 3개의 족자로 분리되어 있다. 이 그림은 모두 연결한 상태에서 가로 575.8㎝, 세로 132.8㎝의 크기이며, 그것이 분리된 3개의 족자는 가로 48.8㎝, 세로 28㎝ 내외이다. 종이 바탕에 먹을 주로 사용하고 청색, 갈색, 주홍색 등을 곁들여 채색하였다. 여기서 묘사된 신선들의 명칭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른쪽에 외뿔소를 타고 도덕경을 들고 있는 노자를 선두로 복숭아를 든 동방삭 등의 신선들과 동자들이 모두 3무리로 나뉘어 있다. 인물들의 시선과 옷자락이 모두 왼쪽을 향하고 있고 그 방향으로 갈수록 인물의 수를 점차 줄어들게 하여 화면의 전개와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인물의 윤곽을 굵은 먹선으로 빠르고 활달하게 묘사한 뒤 얼굴과 손, 물건들은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여 인물들의 표정을 살렸다.

아무런 배경 없이 인물을 나열한 구성과 감정이 살아 있는 듯한 인물들의 묘사, 그리고 얼굴의 둥근 눈매 등은 그의 풍속인물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비록 화본에 따라 그렸으나 호방한 필치로 독특한 인물 묘사를 한 작품이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후에 김득신, 이명기 등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 신선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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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u.wiki/w/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나무위키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金弘道筆群仙圖屛風)

회화문화재 | 작품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   

김홍도필 군선도병풍
이칭
군선도병, 군선도 8첩병풍
분야
회화
유형
문화재, 작품
시대
조선
지정기관
문화재청
지정부류
국보
지정번호
제139호
영역닫기 정의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
키워드
영역닫기개설
   국보 제139호.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고 세로 132.8㎝, 가로 575.8㎝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으로 원래 8폭의 연결 병풍 그림이었으나 현재 3개의 족자로 분리되어 있다.
화면의 끝 부분 하단에 ‘丙申春寫(병신춘사)’라는 관기(款記)와 ‘士能(사능)’이라는 김홍도의 자(字)가 적혀 있다. 그 아래 ‘金弘道印(김홍도인)’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과 ‘사능’이라 새긴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찍혀 있다. 이를 통해 김홍도가 31세 때인 1776년(영조 52) 봄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내용
  이 그림은 서왕모(西王母)의 반도회(蟠桃會)에 초대받고 약수(弱水)를 건너는 파상(波上) 군선(群仙)들을 배경을 생략한 채 나타낸 것이다. 여기 묘사된 신선들의 명칭을 단정지어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들고 있는 기물(器物)이나 도상(圖像) 등으로 미루어 오른쪽의 신선들은 외뿔 소를 탄 노자(老子), 두건을 쓴 종리권(鍾離權), 두루마기에 붓을 든 문창(文昌)으로 여겨진다. 다음 두 폭에는 흰 당나귀를 거꾸로 탄 장과로(張果老), 딱따기를 치는 조국구(曹國舅), 낚싯대를 든 한상자(韓湘子), 그리고 왼쪽에 연꽃가지를 든 하선고(何仙姑)와 꽃바구니를 맨 마고(麻姑)라고 생각된다.
이들 신선과 시자(侍者)들은 모두 세 무리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인물들의 시선을 한결같이 진행 방향인 왼쪽으로 돌리고, 그 방향으로 갈수록 인물의 수가 점차 줄어들게 하였다. 이로써 화면의 전개와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바람을 등 뒤에서 받아 나부끼는 듯한 옷자락도 모두 행진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부끼고 있어 화면에 동감(動感)을 더해준다.
인물의 윤곽을 굵은 먹 선으로 빠르고 활달하게 묘사한 뒤 얼굴과 손, 기물들은 가는 필선으로 정확하고 섬세하게 처리하여 표정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옷은 연한 청색을 주조로 엷게 음영만 나타냈고 얼굴은 담갈색으로 처리하였다. 표주박, 꽃, 당나귀의 안장, 천도(天桃)의 주둥이 등에는 담홍색을 약간 사용하여 화면에 변화를 주었다.
아무런 배경 없이 인물을 배치한 구성력이라든지 제각기 특이한 감정이 살아 넘치는 듯한 인물 묘사력, 그리고 얼굴에 보이는 살구씨 모양[杏仁形]의 둥근 눈매 등은 김홍도의 풍속인물화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장과로가 타고 있는 나귀의 다리가 길게 표현된 것은 그의 40대 무렵 신선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색 중 하나이다.
영역닫기의의와 평가
   19세기의 서화가 조희룡(趙熙龍)은 그의 저서 『호산외사(壺山外史)』에서, “김홍도는 특히 신선에 능했다.”고 평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도석인물화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화본(畵本)에 따라 그리기는 하였으나 「진채해상군선도(眞彩海上群仙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나인기려도(仙人騎驢圖)」(간송미술관 소장)에 적용한 화법과 달리 호방한 필치로 독특한 인물 묘사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김홍도의 화풍은 김득신(金得臣), 이명기(李命基), 백은배(白殷培) 등 후배 화가들의 신선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영역닫기 참고문헌
  • 단원 김홍도 연구  (진준현, 일지사, 1999)

  • 17·18세기 조선왕조시대 신선도 연구  (박은순,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 『우리나라의 옛 그림』 ( 이동주 ,박영사,1975;『우리나라의 옛 그림』,학고재,1995)

  • 「한국도석인물화에 대한 고찰」 ( 문명대 ,『간송문화』 18,한국민족미술연구소,1981)

영역닫기 집필자
집필 (1996년)
김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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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필 군선도병풍 부분
    김홍도필 군선도병풍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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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66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군선도, 6m 화폭에 神仙의 필치

삼성미술관 리움 ‘단원 김홍도’ 특별전



   서양미술사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김홍도가 있다. 산수화·인물화·신선화(神仙畵)·불화(佛畵)·풍속화 등 모든 화목(畵目)에 능했던 천재화가 김홍도의 대표작이 10월10일까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전시된다.


김홍도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군선도’는 국보 139호다. 국보가 적은 조선시대 회화중 최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삼공불환도·송하맹호도 등 전시

   단원 김홍도(1745~1806 추정)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왕실에서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명성을 떨쳤던 화원(나라에서 설치한 회화기관) 화가였다. 특히 서민들의 삶을 실감나게 묘사한 풍속화는 김홍도 회화의 백미로 꼽힌다. 교과서에도 많이 실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친근하다.

   모두 18점의 작품이 소개되는 ‘단원 김홍도’ 특별전 하이라이트는 국보 139호인 ‘군선도’. 김홍도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그림이다. 조선시대 회화 가운데 불교 그림을 제외하면 국보는 완당세한도를 포함한 겸재 정선 작품 3편혜원 신윤복 풍속도 등 모두 일곱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송하맹호도’
































   젊은 시절 신선도로 이름을 날린 김홍도가 32세였던 1776년에 그린 ‘군선도’는 6m에 가까운 대작이다. 거대한 화면에 신선들의 행렬을 담았다. 젊은 시절 김홍도의 활발한 필치와 화면 전체에 흐르는 힘이 돋보인다.

   김홍도가 천재 화가로 명성을 떨친 뒤에는 정조가 있었다. 김홍도의 후원자였던 정조는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에 직접 글을 남겼다. 정조는 “김홍도가 주자(朱子)의 뜻을 깊이 얻었다.“고 칭찬하며 그림마다 시로 화답했다. 원래 총 8폭이었으나 지금은 6폭만 남아있다. 16년만에 공개되는 작품이다. 병풍이었다가 불에 타 낱장으로 남아있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도 처음 공개된다. 리움 보존연구실이 4년간의 보존 처리 끝에 병풍으로 개장(改裝)했다.

   삼성그룹이 해마다 VIP들에게 보내는 달력의 올해 표지 작품으로 채택돼 여러 번의 품절 사태를 빚은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호랑이 그림으로 꼽힌다.

●홍라희 前관장 복귀 신호탄?


   리움은 2008년 1월부터 고미술 이해를 돕고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해 고미술 작가 특별전을 열어왔다. 김홍도 직전에는 정선의 작품이 전시됐다.

‘단원 김홍도’전이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의 복귀와 맞물려서다.

   미술계는 리움이 각별히 신경쓰는 김홍도전을 홍 전 관장의 복귀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실제 리움은 전시 준비에만 6개월 이상 시간을 쏟았고, 작품도 희귀작 위주로 엄선했다. 리움이 오래간만에 선보이는 대형 전시이기도 하다. 리움은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 부부의 동반 사퇴 이후 각종 기획전을 잇따라 취소했다.

   리움 측은 “김홍도전은 기획 전시가 아니라 상설 특별전”이라며 “(홍라희씨의 관장직) 복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미술계는 리움이 올 하반기에 대형 현대미술 기획전을 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02)2014-6900.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0-04-02 21면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들려주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 <한국의 미 특강>




<군선도群仙圖> 8첩병풍 김홍도, 1776, 종이에 수묵담채 水墨淡彩, 132.8×575.8cm,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139.


  옛 그림 가운데는 공책처럼 작은 것이 많습니다. 그럼 바짝 다가서서 보아야지요. 화가 자신도 사람들이 그만한 거리에서 볼 거라고 짐작하고 작은 그림은 작품의 세부를 더 꼼꼼하게 그립니다.


   저 끝에서 여기까지 칠판만큼이나 큰 연결 병풍, 김홍도(1745~1806)의 국보 <군선도 群仙圖> 같은 연병풍(連屛風: 각 폭이 모두 연결된 그림 병풍)은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아주 많이 떨어져서 보아야겠지요? 화가가 이렇게 거대한 작품을 그릴 때에는 붓끝은 화면에 닿아 있어도 마음은 저만치 뒤쪽에 가 있어서, 이게 멀리서 볼 때 이러저러하게 보여야 되니까 팔을 좀 더 휘둘러 각도를 크게 해 주어야 되겠다, 선이 좀 더 굻어져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시장에 가서 보면 사람들이 거의 다 1m 앞쯤에서 서서 그림을 보니까, 이렇게 큰 그림은 앞사람에 가려서 제대로 전체를 감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일반 대중의 그림을 보는 기본 소양이 부족한 까닭이지요.


   그러니까 전시장에서 큰 그림 앞에서는 썩 물러났다가 작은 작품은 좀 들어가서 보고, 또 어떤 그림은 특히 내 맘에 드니까 좀 더 오래 보거나 자세히 세부를 들여다본다든지,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분들을 대할 때면 , 저분은 그림을 많이 아시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가시거나 워싱턴의 내셔널갤러리를 가시거나 다 마찬가집니다. 작품 크기에 따라 본능적으로 거리를 맞추면서 감상하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관람객 가운데 어떤 분은 약삭빠르게 전시품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 60점쯤 되는구나. 나는 한 시간 정도만 보고 갈 거니까, 하나 앞에 1분씩이다 하고 군대 사열하듯이 일정한 속도로 보는 분도 계십니다. 정말 우습지요?


   그리고 전시장에서 주최 측이 자랑하는 최고의 명품은 어디에 걸겠습니까? 눈에 확 뜨이는 곳에 둡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고 어디고 간에 최고의 명품은 그 전시실에 딱 들어갔을 때 한눈에 척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전시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맨 처음 보게 되는 작품을 시원찮은 것으로 놓겠습니까? 첫인상이 중요하겠죠? 꽤 괜찮은 그림이 앞에 걸립니다! 그 방을 아주 떠나기 전에도 역시 어지간히 훌륭한 작품을 두어서 그 전시실의 인상을 마감합니다.


   그러니까 전시품의 질에 ABC의 등급이 있다고 한다면 아주 빼어난 특A급 작품은 한눈에 척 들어오는, 저편 시원한 공간에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고, 중간 중간에 A가 있고 B가 있고 C도 적당히 섞여 있어서, 자연스럽게 전체적으로 물결처럼 반복되는 커브를 형성하게 합니다.


   전시회를 주최한 사람이 이따금 그런 내력까지 속속들이 느껴가면서 보는 관람객을 대하면 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까지 다 알아맞히는 것은 전문가라도 쉽지 않은 일이죠. 또 그걸 꼭 알아낼 필요도 없습니다. 예술품이란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좋아서 보는 것이고, 또 내 맘에 꼭 드는 작품 한 점이 있으면 그것 하나 잘 감상한 것으로 충분히 보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