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대 餠茶와 團茶제다법 비교연구(Ⅱ)*- 蒸茶/ 搗茶와 硏茶를 중심으로

2018. 11. 26. 18:34차 이야기



당·송대 餠茶와 團茶제다법 비교연구(Ⅱ)*- 蒸茶/ 搗茶와 硏茶를 중심으로| 중국인문과학


| | 樂民(장달수)    2018.10.28. 19:07




당·송대 餠茶와 團茶제다법 비교연구(Ⅱ)*- 蒸茶/ 搗茶와 硏茶를 중심으로


송 해 경**


―――――――――――――― < 目次> ――――――――――――――

Ⅰ. 머리말
Ⅱ. 병차와 단차 제다의 蒸茶
1. 당대 병차 제다의 蒸茶
2. 송대 단차 제다의 蒸茶
3. 병차 단차 제다에서 蒸茶의 차이점 비교
Ⅲ. 병차와 단차 제다의 搗茶와 硏茶
1. 당대 병차 제다의 搗茶
2. 송대 단차 제다의 硏茶
3. 병차 搗茶와 단차 硏茶의 차이점 비교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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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당대의 餠茶와 송대의 團茶는 중국 고형차를 대표하는 차이다. 인류가 최초로 제다과정을 거쳐 만든 차는 삼국시대 장읍의 <광아>에 기록된 병차이다. 광아의 병차 제다법을 수용한 것은 당대 陸羽(733~803)의 <다경>이였다. 다경에는 차나무, 차의 정신, 병차 제다법, 전차 음다법, 차의 역사, 차사, 차 생산지 등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육우는 추차, 산차, 말차, 병차 등 네 가지 차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차는 병차로서 병차의 제다법과 음다법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다경의 병차 제다는 採·蒸·搗·拍·焙·穿·封의 일곱 단계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는데, 육우는 제다도구의 설명을 통해 제다법을 설명하는 독특한 기술방법을 택하고 있다.


* 이 논문은 2017년 원광디지털대학교의 교비 지원에 의하여 수행됨.
** 원광디지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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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대에는 병차가 주류를 이루면서도 병차에서 발전한 臘茶와 團茶같은 硏膏茶가 황실에 진공되는 貢茶로서 상류층의 차문화를 주도하였다. 특히 龍鳳團茶는 단차를 대표하는 차가 되었다. 송대의 많은 다서 어차원이 있었던 복건성 건안북원지방 공차 단차를 다루고 있고, 저자는 복건성 전운사 출신이 많았다. 단차 제다는 비교적 많은 다서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비교적 후대에 쓰여진 조여려<북원별록>판 벌리기(開焙 : 배로 열기) 에서부터 차 말리기(過黃)까지 8과정으로 나누어 상세히 잘 기록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병차와 단차는 중국에서 삼국시대부터 당·송대를 거쳐 상당히 오랫동안 애음되었던 차이다. 차의 역사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가 생겨났으며, 많은 노력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병차와 단차 모두 고형차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어 제다법상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세세한 차이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당·송대의 고형차인 병차와 단차 제다법의 차이점을 비교 검토하는 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선행연구에서는 당대와 송대 차문화 전반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당대의 병차 제다에 관해서는 김진숙당대 제다 공구의 종류를 통해서 제다법을 소개하고 있고, 송대의 차에 관해서는 서은미의 논문이 다수 있으나 차생산지와 차산업에 관해 다루고 있으며, 제다에 관해서는 극히 단편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정도이다.1) 본 연구자는차와 단차 제다법 중 채다 부분을 비교 연구한 바 있다.2)

   본고에서는 채다에 이어 시루에 찌는 蒸茶 절구에 찧는 搗茶 그리고 瓦盆에 가는 硏茶의 상호 차이점을 규명하고자 한다. 고형차를 만들기 위한 증차 과정에서 찌는 정도와 찌고 난 후 찐 차의 처리과정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증차 이후 병차의 도다와 단차의 자다와 연다는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당대도다는 찐 찻잎을 덩어리로 만들기 쉽도록 절구에 넣고 절구공이로 찧었던 과정이다. 그러나 송대연다는 차고를 짜고 와분에 가는 병차와는 전혀 다른 제다 과정이다. 여기에는 의 진액인 茶膏의 유무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면서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이 요구되었다.

   제다법에 따른 차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새로운 차를 추구하고자 하는 차인들의 노력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병차, 단차와 같은 고형차는 발전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병차와 단차 제다의 차이점을 분석하여 그 특징을 이해하고, 산차가 나오게 된 차문화 배경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자 한다.


1) 김진숙, 「다경에 나타난 唐代製茶工具考察」, 한국차학회지 Vol 14, 2008; 서은미, 「송대의 음다생활과 차 산업의 발전」, 동양사학연구 제90집, 2002;
2) 송해경, 「당·송대 餠茶와 團茶제다법 비교 연구(Ⅰ)-채다를 중심으로-」, 중국인문학회 제65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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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병차와 단차제다의 蒸茶

   삼국시대 이래로 병차와 단차 같은 고형차는 시루에 찐 찻잎을 찧거나 갈아서 곱게 분쇄한 후에 틀에 박아 만들었다. 찻잎을 찌는 증청의 목적은 뜨거운 수증기에 의해 찻잎이 익으면서 끈기가 생겨 덩어리를 만들기 쉽고, 찻잎에 들어있는 효소(polyphenol
oxidase)의 활동을 억제시켜 비발효차를 만들기 위함이다. 따라서 당·송대의 고형차는 녹차로 분류된다. 병차나 단차 제다에서 차싹이나 찻잎을 시루에 찌는 증청 과정은 동일하다. 그러나 증청의 정도나 증청 후 찻잎을 처리하는 과정은 상당히 다르다. 양자를 비교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당대 병차제다의 蒸茶
   당대의 대표적인 다서 <다경>에서 육우는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병차 제다법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증청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부뚜막에 솥을 걸고 솥 위에 시루를 앉힌다. 솥은 입구 가장자리에 전이 있는 것을 사용하고,3) 솥과 시루 사이에는 김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진흙을 바른다.4) 육우는 전이 있는 솥을 화덕에 얹어 화력이 손실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솥의 물이 끓어 뜨거운 수증기가 시루에 온전히 전해지도록 솥과 시루의 틈 사이에 진흙을 발라 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였다.

<다경>에는 蒸茶할 때 소요되는 시간과 온도 그리고 종다래끼(箄)에 넣을 찻잎의 양에 대한 언급이 없어 당대의 증청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5) 그러나 시루(甑)의 설명을 통해 어느 정도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시루(甑)는 나무나 질그릇으로 만든다. 허리에 진흙을 두른다. 대바구니(籃)를 종다래끼(箄)로 삼아 대껍질로 엮어 쓴다. 김이 나기 시작하면(始其蒸也) 종다래끼를 시루에 넣고 찻잎이 익으면 종다래끼를 꺼낸다. 솥(釜)이 마르면 시루 안에 물을 붓는다. 또 세 갈래로 갈라진 닥나무 가지로 찐 차싹과 찻잎을 흩뜨려서 膏가 흘러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6)茶經


3) 茶經 「二之具」“釜: 用脣口者”
4) 茶經 「二之具」“甑: 匪腰而泥”
5) 김진숙, 「다경에 나타난 唐代製茶工具考察」, 한국차학회지 Vol.14, 2008,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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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루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구멍을 통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구멍은 비교적 크기 때문에 찻잎이 솥 아래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箄를 사용하였다. 布目潮渢에 의하면 “箄를 시루 밑에 까는 겅그레(簀の子)의 역할로서 작은 대바구니(小籃)로 보았다”7)
김진숙 “작은 대바구니 ‘箄’에 찻잎을 담아 ‘箄’채 시루 안에 넣었다가 찻잎이 다 익혀지면 ‘箄’째 꺼냈다”8)고 하였다. 여기서 ‘始其蒸也’를 대부분 ‘찌기 시작할 때’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본 저자는 ‘김이 나기 시작하면’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증청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높은 온도에서 짧은 시간에 찌는 것이다. 즉 신속히 찻잎에 수증기를 쬐어 효소 활동을 중지시켜 찻잎의 산화를 억제해야하기 때문이다.9) 그러므로 찻잎을 넣는 시기는 물이 끓기 전이 아니라 솥의 물이 충분히 끓어서 김이 나오기 시작할 때 찻잎을 넣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찻잎을 찌는 정도는 푹 익혔을 것으로 유추된다. 왜냐하면 당대 병차의 원료는 차싹과 찻잎뿐만 아니라 어린 줄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찻잎은 얇아서 빨리 익지만 차싹과 줄기는 두툼하므로 차싹과 줄기도 충분히 익어야 절구에 넣고 찧을 때 잘 문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찻잎이 익으면 시루에서 꺼내어 재빨리 흩뜨려 식혔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 갈래로 갈라진 닥나무 가지로 찐 筍과 芽의 차싹과 찻잎을 흩뜨렸는데, 膏가 유실될 것을 염려해서였다.10)
시루에서 뜨거운 수증기로 찐 찻잎은 매우 뜨겁다. 그러므로 재빨리 식히기 위해 세갈래로 갈라진 닥나무 가지(穀木枝三椏)를 사용하여 재빨리 흩뜨렸다. 穀木枝三椏대 허차서가 솥에서 살청할 때 “손에 木指를 끼고 급히 찻잎을 움켜쥐었다가 돌렸다”11)고 한 木指와 유사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육우가 찐 찻잎을 재빨리 식힌 이유는 차의 진액인 膏가 흘러나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고에는 점성이 있어서 찻잎끼리 달라붙어 덩어리가 진 것은 解塊하여 풀어주어야 한다.12) 따라서 뜨거운 찻잎을 빨리 흩뜨려 식히는 攤凉을 하지 않으면 찻잎은 누렇게 변색되고 탕색이 탁하고 답답한 향기가 난다.13) 또한 찐 찻잎을 빨리 흩뜨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차의 膏가 흘러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송대의 黃儒는 육우의 膏에 대한 설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6) 茶經 「二之具」“甑:或木或瓦匪腰而泥籃以箄之篾以系之始其蒸也入乎箄既其熟也出乎箄釜涸注於甑中”
7) 布目潮渢, 中國茶の文化史, 硏文出版, 2001, p.26.
8) 김진숙, 「다경에 나타난 당대 제다공구 고찰」, 한국차학회지 Vol.14, No.1, 2008, p.87.
9) 치우치핑 지음, 김봉건 옮김, 茶經圖說, 이른아침, 2005, p.54. ; 김종태, 차의 과학과 문화, 보림사, 1996, p.108.
10) 茶經 「二之具」“甑:又以彀木枝三椏者制之散所蒸芽筍並葉畏流其膏”
11) 許次舒, 茶疏 “炒茶: 手加木指急急鈔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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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사람 육우는 차에 대해 잘 알았으나 육우가 알고 있던 차는 모두 오늘날의 草茶이다. 왜 그럴까? 홍점의 이론에 의하면 ‘찐 차싹과 찻잎의 고가 유실될까 두려워했다’고 하였다. 초차는 맛이 옅고 담박하기 때문에 고를 제거하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그러나 건차는 맛이 진하고 달아서 오로지 고를 제거하고자 했다.14)ㅡ 品茶要錄


   여기서 草茶와 建茶는 차가 생산되는 지역에 따른 명칭이다. 초차육우가 살았던 강절지방의 차로 江茶라고도 불리웠다. 건차송대에 공차 생산지가 복건성의 건안지방으로 옮겨 오면서 유명해진 차로서 硏膏茶인 臘茶와 團茶가 이에 속한다. 초차는 맛이 약하므로 膏를 찻잎에 가두어두려고 한 반면에 건차는 맛이 진하기 때문에 膏를 짜 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면 당대의 병차는 시루에 찌는 증청도 중요하지만 증청 후 뒤처리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 같다.

2. 송대 단차제다의 蒸茶
   송대의 단차는 황실에 진공했던 공차였으므로 주로 찻잎이 펴지지 않은 차싹으로만 만들었다. 차를 만드는 원료 자체가 병차와는 달랐다. 그러나 단차 역시 채다한 차싹을 시루에 찌는 증차의 과정을 거쳤다.
차싹은 네 번 깨끗이 씻어 청결하게 한 후, 물이 끓는 것을 살펴 시루에 넣고 찐다. 그러나 증청은 지나치게 찌거나 설익게 찌면 병폐가 있다. 지나치게 찌면 색이 누렇고 맛이 담담하다. 설익게 찌면 색은 푸르나 가라앉기 쉽고 풋내가 난다. 오직 중도(得中)가 적당하다.15) ㅡ 北苑別錄


12) 김진숙, 앞의 논문, p.87.
13) 吳覺農, 茶經述評, 農業出版社, 1988, p.56.
14) 黃儒, 品茶要錄 “後論 : 昔者陸羽號爲知茶然羽之所知者皆今之所謂草茶何哉如鴻漸所論‘蒸笋幷葉畏流其膏’ 蓋草茶味短而淡故常恐去膏建茶力厚而甘故惟欲去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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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다한 차싹물에 여러 번 씻어 청결하게 하였다. 대관다론에도 “마실 때 모래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세척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6)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차싹에 묻은 오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한 두 번이 아니라 네 번씩이나 씻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있다. 아마 세척의 목적에는 청결도 있지만 단차 제다에서 사용을 기피하였白合, 烏蒂, 盜葉17)을 제거하기 목적도 함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백합과 도엽은 가벼워서 물 위에 뜨기 때문에 물을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내려 보내고 차싹만을 가려냈을 것이다.

   당대와 마찬가지로 시루에 찔 때는 물이 충분히 끓은 후 차싹을 넣었다. 증청의 정도는 설익지도 지나치게 익지도 않은 적당한 중도(得中)를 중요시하였다. 단차는 차싹만을 원료로 하였기 때문에 당대의 병차보다 증청이 쉬웠을 법한데도, 대관다론 품다요에서는 설익게 쪘을 때(蒸不熟) 지나치게 쪘을 때(過熟)의 병폐를 상세히 지적하고 있다.
차의 품질이 좋고 나쁨은 차싹을 찌고 누르기에 달려 있다. 찔 때 설익으면 싹이 매끄러워 색은 맑으나 맛이 강하다. 지나치게 찌면 차싹이 문드러져서 붉은색이 나며 점도가 떨어진다.18) ㅡ 大觀茶論
증불숙: 찔 때 설익은 병폐와 지나치게 익은 병폐가 있다. 설익으면 비록 정선된 차싹이라도 손해가 많다. 시음할 때 색은 푸르나 가라앉기 쉽고, 복숭아 씨같은 맛이 나는 것은 설익어서 생기는 병폐다. 오직 잘 익어야만 맛이 달고 향기롭다.
과숙: 차싹을 찔 때에는 김이 나는 징후를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시험할 때 색이 누렇고 좁쌀 같은 거품이 큰 것은 지나치게 익은 병폐다. 그러나 비록 지나치게 익었더라도 설익은 것보다는 달고 향기로운 맛이 낫다.19) ㅡ 品茶要錄


15) 趙汝礪, 北苑別錄 “蒸茶: 茶芽再四洗取令潔淨然后入甑俟湯沸蒸之然蒸有過熟之患有不熟之患過熟則色黄而味淡不熟則色青易沉而有草木之氣唯在得中爲當也”
16) 徽宗, 大觀茶論 “製造: 飮而有少砂者滌濯之不精也”
17) 白合은 차싹을 양쪽에서 싸고 있는 抱葉으로 鱗片이라고도 하며 싹이 자라면 저절로 떨어진다. 烏蒂는 차싹에 줄기의 일부가 붙어있어 검은색을 띈다. 盜葉은 가지 아래에 달려 있는 작은 잎으로 魚葉 혹은 턱잎이라고 한다. 백합, 오체, 도엽은 모두 차의 색깔을 해치므로 송대 단차제다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송해경, 「당•송대 병차와 단차제다법 비교 연구Ⅰ」, 중국인문과학 제65집, 2017, p.397.)
18) 徽宗, 大觀茶論 “蒸壓: 茶之美惡尤係于蒸芽壓黃之得失蒸太生則芽滑故色清而味烈過熟則芽爛故茶色赤而不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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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로 차싹이 설익었을 때 차의 색깔은 푸른색을 띄어 아름답지만 點茶할 때 쉽게 가라않고 풋내가 나며, 때로는 복숭아씨 같은 맛이 난다. 반면에 지나치게 쪄서 過熟하게 되면 색깔은 누렇게 되고 차싹은 문드러져서 붉은색을 띄며 접착력이 떨어진다. 점차할 때 좁쌀같이 자그마한 거품이 풍성해야 하는데, 과숙하면 거품의 크기가 크고 맛이 담담해진다고 언급하고 있다.

   증청의 정도는 시루에서 나는 김의 징후를 보고 차가 익었는지를 판별하였다. 북원별록에서 차싹이 설익지도 지나치게 익지도 않는 중간(得中)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적정한 정도를 가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품다요록에서는 둘 중에 굳이 고른다면 지나치게 익은 과숙이 설익은 것보다 달고 맛이 향기로운 편이라고 하였다.

   찐 차싹은 곧바로 물에 담갔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빨리 식혀 차싹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방지하여 녹색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차싹 안에 있는 심만을 가려낸 水芽를 손쉽게 가려내기 위해서였다. 단차가 공차로 바쳐지면서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심했다. 다농들이 차맛을 시험하고 겨루었던 試茶에서 발전한 鬪茶는 사대부 뿐만 아니라 황실에서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단차는 더욱 고급화되었고 초기 투차에 사용되었던 단차 원료는 雀舌이나 鷹爪와 같은 小芽는데, 나중에는 그보다 훨씬 더 고급하고 섬세한 水芽로까지 발전하였던 것이다.20)

   宣和庚子年(1120) 조신 鄭可簡은 처음으로 銀線水芽를 만들었다. 차싹을 선별하여 익힌 다음 다시 싹 안에 있는 한 가닥 심(水芽)을 발라내어 진귀한 그릇에 담긴 깨끗한 물에 담그면 밝은 광택이 나는 것이 마치 은실과 같았다.21) ㅡ 宣和北苑貢茶錄
차싹을 순차적으로 쪄서 익힌 후 물동이에 넣고 차싹의 精英을 발라내어 취하는데 마치 작은 바늘과 같다. 水芽라고 하는데, 小芽중에서도 으뜸이다.22) ㅡ 北苑別錄


19) 黃儒, 品茶要錄 「蒸不熟」“蒸有不熟之病有過熟之病蒸不熟則雖精芽所損已多試時色青易沉味爲桃仁之氣者不蒸熟之病也唯正熟者味甘香” 「過熟」“茶芽方蒸以氣爲候視之不可以不謹也試時色黃而粟紋大者過熟之病也然雖過熟愈於不熟甘香之味勝也”
20) 송해경, 「당·송대 병차와 단차 제다법 비교 연구(Ⅰ)」, 중국인문과학제64집, p.396.
21) 熊蕃, 宣和北苑貢茶錄 “宣和庚子歲漕臣鄭公可簡始創為銀線水芽蓋將已揀熟芽再剔去只取其心一縷用珍器貯清泉漬之光明瑩潔若銀線然”
22) 趙汝礪, 北苑別錄 “揀茶: 以其芽先次蒸熟置之水盆中剔取其精英僅如鍼小謂之水芽是小芽中之最精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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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아의 차싹으로 만든 銀線水芽는 차를 좋아했던 휘종 황제 때 복건 전운사였던 鄭可
簡이 처음 만들었던 고급 단차다. 겨울을 난 어린 冬芽안에는 5~7장의 찻잎이 단단하게
말려 있다.23) 따라서 소아의 겉잎을 벌려 벗겨내면 속에 있는 하얀색 수아가 드러난다.
그런데 익은 차싹은 무르기 때문에 심을 발라내는 과정에서 찢어지거나 문드러지기 쉽
다. 그러므로 물속에서 작업이 수월했고, 지나치게 익은 것보다는 설익은 차싹이 발라내
기는 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차의 색과 맛을 중요시했던 송대 황실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던 것이 단차였던 것이다.
차싹을 시루에 찌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고급 단차를 만
들기 위해서 차를 찔 때에는 설익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중간을 유지하여야 했다. 또한
작은 차싹의 심만을 물속에서 발라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차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었던 귀한 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병차와 단차 제다에서 蒸茶의 차이점 비교
병차와 단차 제다에서 증청은 전기한 바와 같이 차싹이나 찻잎을 시루에 넣고 찌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차 속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이나 펙틴과 같은 성분이 뜨거운 수
증기에 의해 끈적끈적하게 변하는 糊化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므로 시루에 쪄낸 차
를 절구에 찧거나 盆에 갈아 틀에 박았을 때 접착력이 생겨 단단한 고형의 형태를 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증청을 마친 뜨거운 찻잎은 빨리 식혀 차싹이나 찻잎이 누렇게 변하
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이러한 증청의 과정이나 목적은 병차나 단차의 경우 대동소이하
다. 각 세부 과정은 다음과 같은 상이점이 있다.
첫째, 차싹이나 찻잎을 찌는 정도가 다르다. 당대의 병차는 차싹과 찻잎 그리고 줄기
도 있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시루에 넣고 쪄도 각기 익는 정도가 달랐다. 찻잎은 얇아서
빨리 익는 반면에 차싹과 줄기는 천천히 익기 때문에 차싹과 줄기가 익을 정도의 기준
으로 증청했을 것이다. 차싹과 줄기도 충분히 익어야만 절구에서 찧을 때 잘 찧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송대의 단차는 차싹만을 따서 만들었다. 따라서 잎이나 줄기가 없고 차싹 한가
지만을 익혔기 때문에 병차보다 오히려 증청하기 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송대
의 단차는 황실에 진공하는 공차로서 단차의 증청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설익지
도 지나치게 익지도 않는 적절한 상태(得中)를 유지하려고 그들은 매우 많은 노력을 기
울였다.


23) 農文協, 茶大百科Ⅱ, 2008,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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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시루에 찐 후 식히는 과정이 다르다. 당대의 병차는 찻잎이 익으면 시루에서 꺼
내어 재빨리 흩뜨려 식혔다. 찐 차는 뜨거워서 세 갈래로 갈라진 닥나무(穀木三枝椏)를
사용하여 차싹과 찻잎을 빨리 펼쳐 널었다. 그 이유는 차의 진액인 고가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다. 뜨거운 찻잎을 빨리 흩뜨려 놓지 않으면 찻잎끼리 달라붙어 덩어리가
지고 색깔이 누렇게 변색 될 뿐만 아니라 문드러지기 쉽다. 이렇게 되면 차맛이 지나치
게 담담해지게 되어 좋은 차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대의 단차는 찐 차싹을 찬물에 담가 식혔다. 차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막고
자 함은 당대의 병차와 같다. 찐 찻잎을 물에 담가 식힌 이유는 銀線水芽의 水芽와 같은
어린 차싹을 쉽게 얻기 위해서였다. 수아는 雀舌이나 鷹爪와 같은 어린 小芽의 겉을 싸
고 있는 잎을 제거한 후 가장 안에 들어있는 은색 실같은 차싹이다. 수아의 심을 효과적
으로 발라내기 위해서 수아를 싸고 있는 겉잎을 물속에서 한 장씩 떼어 내는 것이 차싹
이 찢어지거나 문드러지지 않고 온전한 수아를 얻을 수 있었다.
셋째, 단차의 증청은 병차에 비교해서 매우 세심하고 복잡하였다. 병차는 비교적 대중
적인 차였으나 단차는 공차로서 경쟁적으로 더 좋은 차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
로 과거보다 이른 시기에 딴 어린 차싹을 이용하였고, 더욱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만 했다. 또한 병차는 사용하는 재료도 차싹과 찻잎 그리고 줄기까지 사용하였으
나, 단차는 매우 어린 차싹이나 심지어 은실처럼 가느다란 수아를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단차의 증청과정은 매우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품질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다농들은 차를 겨루는 試茶를 하였고 후에 鬪茶로 발전하였다. 투차는 황실과 사대
부뿐만 아니라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을 하였고, 자연스럽게 차의 품질을 고급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채다한 차싹이나 찻잎을 증청하는 과정은 당대나 송대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내용
면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당대 육우의 병차는 대중적인 차로서 증차 과정은 찻잎을 시루
에 쪄서 흩뜨렸다. 송대의 단차는 공차로 진공했던 고급차였기 때문에 증청 역시 섬세하
고 복잡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Ⅲ. 병차와 단차 제다의 搗茶와 硏茶
병차와 단차 제다에서 찐 찻잎을 찧거나 가는 搗茶와 硏茶는 산차 제다에서 揉捻에
해당된다. 산차에서 유념은 살청한 찻잎을 손으로 비벼주어 부피를 줄이고, 외형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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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차를 우릴 때 잘 우러나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고형차에서 搗茶와 硏茶는 찐
찻잎을 절구에 찧거나 盆에 갈아, 찻잎의 섬유소를 잘게 부수고 입자를 곱게 하여 덩어
리를 만들기 쉽게 하는 과정이다.
병차는 찐 찻잎을 절구에 넣고 찧는 搗茶의 과정을 거쳐 만든다. 반면에 단차는 병차
의 搗茶에 해당되는 榨茶와 硏茶두 과정이 있다. 자다는 연다 과정 전에 찻잎의 물기를
제거하고 차의 진액인 膏를 제거하기 위해 찐 찻잎을 가볍게 자에 넣고 압착하는 과정
이다. 또한 도차와 연다는 목적이나, 방법, 요령 등이 서로 다르며 당연히 사용하는 도
구도 다르다.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병차 제다에서의 搗茶
당대의 병차에서 搗茶과정은 찐 차싹과 찻잎이 잘 문드러지도록 절구에 넣고 찧는 비
교적 단순한 과정이다. 搗茶의 목적은 병차의 고형 덩어리를 만들기 쉽고, 건조한 후에
는 병차가 갈라지지 않도록 섬유소를 짧게 끊어 주는 과정이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차를 마실 때 덩어리진 병차를 가루내기 쉽도록 하는 목적도 있다.
육우 茶經 에서 搗茶는 차 만들기인 「삼지조」에서 언급하지 않고, 제다도구를 설명
하는 「이지구」와 차를 끓이는 「오지자」에서 언급하고 있다.
절구공이와 절구는 일명 碓라고도 하며 항상 사용하던 것이 좋다.24) 茶經
차를 만들기 시작함에 있어 지극히 여린 것을 쪄서 뜨거울 때 찧으면 잎은 문
드러지지만 싹은 남아 있다. 힘 있는 사람이라도 千鈞의 절구공이를 가지고 문드
러뜨리지 못한다. 마치 칠과주와 같아서 힘센 장사가 칠과주를 손가락으로 능숙
하게 정지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잘 찧으면 줄거리(穰骨)가 없는 것처럼 된
다.25) 茶經
우선 搗茶에 필요한 도구는 절구와 절구공이다. 찐 찻잎을 절구에 넣고 절구공이로 찧
는다. 육우는 제다도구를 설명하면서 독특한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차 전용도구를
말하면서도 일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체 가능한 도구를 순차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26) 예를 들어 차를 찧는 전용 절구 대신 일반 방아(碓)도 사용 가능하다
24) 茶經 「二之具」“杵臼:一名碓惟恒用者為佳”
25) 茶經 「五之煮」“其始若茶之至嫩者蒸罷熱搗葉爛而芽筍存焉假以力者持千鈞杵亦不之爛如
漆科珠壯士接之不能駐其指及就則似無穰骨也”
26) 布目潮渢, 茶經詳解, 淡交社, 2001, p.62.
당·송대 餠茶와 團茶제다법 비교 연구(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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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조언 등인데, 이러한 특징은 육우 검박정신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또한 항상 사용하
던 기물을 추천함으로써 새로 제작한 도구에서 나는 냄새가 차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전기한 蒸茶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茶經 「이지구」에서는 차를 절구에 찧기 전에 찐
찻잎을 세 갈래진 닥나무로 재빨리 흩뜨려서 식힌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지자」에서는
‘지극히 여린 것을 쪄서 뜨거울 때 찧으면 잎은 문드러지지만 싹은 남아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절구질할 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차싹은 작고 단단하여 절구공이로 내려칠 때 칠
을 한 구슬 같아서 미끄러지고 잘 찧어지지 않는다. 힘이 세다고 잘 찧는 것이 아니라
차싹을 잘 조준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절구질하여야 싹의 심이나 줄기의 구분 없이 고르
게 찧어지고, 완성된 병차도 매끄러운 모습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병차는 건조되면서
수축이 일어나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거칠거칠하게 된다. 육우는 병차 표면의 주름진 모
양에 따라 胡靴에서 霜荷까지 8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품질이 좋은 것 6가
지를 精腴라 하였으며, 거칠고 조악한 것 2가지를 瘠老라 하였다.27) 육우는 차를 감별함
에 있어 병차의 외형을 보고 판단하는데, 완성된 차의 표면이 주름지고 울퉁불퉁한 원인
을 茶膏로 보고 있다.
膏가 빠지면 빛이 나고, 膏가 있으면 주름이 생긴다. 하룻밤 지난 다음 만들면
검은색이 되고, 당일에 만들면 누런색이 된다. 쪄서 세게 누르면 평평하고, 느슨
하게 누르면 울퉁불퉁하다. 차와 초목의 잎도 마찬가지다. 차의 좋고 나쁨은 口
訣에 의해 전해진다.”28) 茶經
육우는 고가 유실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찐 찻잎을 재빨리 흩뜨려 식혔다. 고가 있는
병차는 주름이 있었고, 精腴와 같은 차를 품질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차의 감별은 매
우 어려운 것으로 육우도 차의 九難중 두 번째에서 “嚼味嗅香非別也”라 하여 차를 씹
어서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아 차를 안다는 것은 표피에 불과한 감별법이다.29) 즉 차 품
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한마디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祕訣은 口
27) 1)호인의 주름진 신발과 같이 蹙縮然한 것, 2)물소의 앞가슴 주름과 같은 廉襜然한 것, 3)산위
에 떠있는 구름이 중첩되어 있는 것 같은 輪囷然한 것, 4)가벼운 바람에 물결친 것 같이 涵澹
然한 것, 5)도공이 흙을 물에서 수비한 것 같은 것, 6)새로 난 길에 폭우가 지나가 도랑이 파
인 것 같은 모양은 모두 차의 精腴이다. 7)마치 대나무 껍질과 같이 가지와 줄기가 뻣뻣하여
쪄서 찧기 어려운 고로 藘簁然한 것, 8)서리맞은 연잎처럼 줄기와 잎이 축 처져서 그 모양이
委萃然한 것은 모두 차의 瘠老이다.
28) 茶經 「三之造」“出膏者光含膏者皺宿製者則黑日成者則黃蒸壓則平正縱之則坳垤此茶與草
木葉一也茶之否臧存於口訣”
29) 짱유화, 煮茶學, 도서출판국차미디어, 2011,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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訣로 전해온다고 하였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당대 병차의 搗茶는 병차를 만들기 쉽도록 찐 찻잎을 절구에 넣고 찧는 과
정이다. 蒸茶를 통해 찻잎의 탄수화물이나 펙틴 같은 성분이 糊化된 상태에서 절구에서
줄거리가 없게 잘 찧으면 틀(規)에 넣어 성형을 할 때 잘 뭉쳐졌다. 또한 搗茶를 통해
찻잎이 균일하게 잘 찧어져야 완성된 병차의 표면이 갈라지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2. 단차 제다의 硏茶
1) 茶膏를 짜는 榨茶
단차 제다의 硏茶는 병차 제다의 搗茶와 유사한 과정이지만 훨씬 까다롭고 복잡하다.
찐 찻잎을 가는 硏茶를 하기 전에 茶膏를 짜는 榨茶과정을 거쳤다. 북원별록에는 다
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차가 익은 것을 茶黃이라고 한다. 모름지기 여러 번 씻어서 식히고자 했다. 네
모난 小榨에 넣어 물기를 제거한다. 또 大榨에 넣어 膏를 짠다. 水芽는 馬榨에
눌렀는데 싹이 어리기 때문이다. 먼저 보자기에 싸서 대껍질로 묶은 후에 大榨에
넣어 눌렀다. 한밤중이 되면 꺼내어 비벼서 푼 후 다시 榨에 넣어 반복하는데 翻
榨라고 한다.30) 北苑別錄
차싹은 시루에 찌기 전에도 깨끗이 씻었지만 쪄서 익은 茶黃도 물에 여러 번 씻어 식
혔다. 그리고 착즙기와 같은 榨에 넣어 물기와 膏를 제거하였다. 자에는 小榨, 大榨, 馬
榨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소자는 물에 씻은 차황의 물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므로 압
력이 그리 세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차고를 본격적으로 짜는 것은 대자이
다. 어린 싹인 水芽는 더 강력한 마자에 넣고 눌렀다. 자다의 방법은 차황을 헝겊에 싼
후 대나무 껍질로 묶은 후, 대자에 넣고 눌러 놓았다. 그리고 한밤중에 꺼내어 고르게
비벼 편 후 다시 榨에 넣어 눌러 반복하는 翻榨과정을 통해 물기와 고를 완전히 제거
하였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단차 제다에서는 차의 진액인 고를 최대한 짜 내고자 하였다.
고의 유무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당대 육우 다경 의 저술 배경이
되었던 양절지방의 차는 江茶(혹은 草茶)라 하였고, 송대 복건성 건안 북원지방의 차는
建茶로 불리었다. 건차에서 생산되었던 공차의 대표적인 차가 바로 납차와 단차였다. 그
30) 趙汝礪, 北苑別錄 「榨茶」“茶旣熟謂茶黃須淋洗數過欲其冷也方入小榨以去其水又入大榨出
其膏水芽則以馬榨壓之以其芽嫩故也先是包以布帛束以竹皮然後入大榨壓之至中夜取出揉勻
復如前入榨謂之翻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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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므로 병차와 달리 단차에서 차고를 제거하고자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건차의 맛은 진하고 오래가서 강차(초차)와 비교도 안된다. 강차는 고가 유실
될까 염려했고, 건차는 오로지 고를 다 짜내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고를 다 짜내
지 않으면 색과 맛이 무겁고 탁하기 때문이다.31) 北苑別錄
홍점의 이론에 의하면 ‘찐 차싹과 잎의 차고가 유실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
다. 초차는 맛이 옅고 담박했기 때문에 고를 제거하는 것을 항상 두려워하였다.
건차는 맛이 진하고 달아서 오직 고를 제거하고자 노력하였다.32)
品茶要錄
차싹이 설익으면 초목기가 있고, 고를 다 제거하지 않으면 색이 탁하고 맛이
무겁다. 연기를 쐬면 향을 빼앗기고, 壓黃을 하면 맛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것이
모두 차의 병폐이다.33) 東溪試茶錄
차는 고의 유무에 따라 색향미에 차이가 난다. 첫째, 고를 제거하지 않으면 색과 맛이
무겁고 탁하였다. ‘茶色貴白’34)이라 하여 차의 흰색을 귀히 여겼다. 고를 짜 내어 완성된
차의 색깔이 흰색에 가까운 옅은 녹색을 띄었으며, 點茶할 때 생기는 하얀 乳華를 선호
하였다. 또한 차의 색깔이 옅을수록 단차 표면을 무늬를 새긴 숫틀로 눌러 찍었을 때 문
양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다른 이점도 있었다.35) 즉 화려한 문양을 세밀하게 새기기
위해서도 단차의 고를 짜 내었던 것이다.
둘째, 맛이 진하고 달기 때문에 고를 제거해도 괜찮았다. 건차의 생산지는 강차 생산
지에 비해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가 따뜻하므로 중엽종의 차나무가 자란다. 잎이 크
고 두꺼울수록 쓰고 떫은 폴리페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폴리페놀의 함량이 많은
찻잎으로 녹차를 만들게 되면 맛이 강한 편이었다. 이러한 점에 대해 東君은 “차의 쓴맛
을 극복하기 위해 당대의 육우는 차를 끓일 때 소금을 첨가했지만 송대에는 榨茶공정
이 필요했다”36)고 보았다. 宍戶佳織도 “자다의 주요한 목적은 차의 쓴맛과 떫은맛을 제
31) 趙汝礪, 北苑別錄 「榨茶」“蓋建茶味遠而力厚非江茶之比江茶畏流其膏建茶惟恐其膏之不盡
膏不盡則色味重濁矣”
32) 黃儒, 品茶要錄 「後論」“如鴻漸所論‘蒸笋幷葉畏流其膏’ 蓋草茶味短而淡故常恐去膏建茶力
厚而甘故惟欲去膏”
33) 宋子安, 東溪試茶錄 “茶病: 蒸芽未熟則草木氣存去膏未盡則色濁而味重受煙則香奪壓黃則
味失此皆茶之病也”
34) 蔡襄, 茶錄 「色」
35) 송대 단차를 제작하는 틀에는 암틀과 숫틀이 있다. 섬세한 문양을 새긴 것은 주로 숫틀이었고,
재질은 금속성의 은이나 동을 사용하였다.(송해경, 「병•단차의 틀에 관한 연구」, 차문화연구
지 제14권, 2006,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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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하는 것이다”37)고 하였다. 따라서 차고를 제거했을 때 맛이 더 부드럽고 순하게 되어
차맛을 오히려 더 좋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관다론에는 “蒸壓이 지나치
면 오히려 맛은 순하지만 풍미가 부족할 수 있다”38)고 하여 지나친 차고의 제거를 경계
하고 있다. 또한 榨에 넣고 누를 때 지나치게 눌러 차싹이 누렇게 변하는 壓黃은 늘 경
계의 대상이었다.
셋째, 차고는 맛뿐만 아니라 향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성분이기도 하다. 차의 진액인
차고를 제거하면 향기는 당연히 부족해졌을 것이다. 채양의 茶錄 에는 “입공하는 차에
는 연고차에 용뇌를 조금 섞어 향기를 보충하였다. 건안 민간에서 試茶할 때는 진향을
빼앗길까봐 모두 향을 넣지 않았다.”39)고 하였다. 단차 제조 초기에는 부족해진 향을 보
충하기 위해 공차에 용뇌향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大觀茶論 에서 “차에는 眞香이 있어
용뇌나 사향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40)라고 하였고, 宣和北苑貢茶錄 에서는 “처음에는
공차에 모두 용뇌향을 섞었으나 후에 차의 진미가 훼손될 것을 염려하여 쓰지 않게 되
었다.”41)라는 기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차의 진향이 점차 강조되면서 향료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차고를 제거하는 자다 과정이 송대의 단차 제다를 제외하고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차의 평가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차싹을 瓦盆에 가는 硏茶
송대 단차의 시작은 硏膏茶였다. 연고차는 차의 膏를 짜내고 盆에 갈아서 연고상태로
만든 차를 말한다. 선화북원공다록에 의하면 “오대 때에 남당에 속해 있던 건안 북원
에서 해마다 차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연고차를 만들었고, 계속해서 납면차를 만들었
다”42)라는 기록이 있다. 용봉단차는 송나라가 南唐(937~975)을 복속시킨 후인 태평흥국
(976~983) 초부터 관리를 파견하여 만들기 시작하였다.
품질 좋은 황실 진공용 단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의 고를 짜내고 盆에 넣고 가는 연
다가 매우 중요하였다. 북원별록에서는 연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36) 東君, 「固形茶から散形茶へと變化する原因について, 茶から茶道へ , 市井社, 1998, p.75.
37) 宍戶佳織, 「中國宋代における茶の加工法の變化と鬪茶」, 人間科學硏究제18권 제2호, 2005,
p.157.
38) 徽宗, 大觀茶論 「味」“其味醇而乏風骨者蒸壓太過也”
39) 蔡襄, 茶錄 「香」“茶有眞香而入貢者微以龍腦和膏欲助其香建安民間試茶皆不入香恐奪其眞”
40) 徽宗, 大觀茶論 「香」“茶有眞香非龍麝可擬”
41) 熊蕃, 宣和北苑貢茶錄 “初貢茶皆入龍腦至是慮奪眞味始不用焉”
42) 熊蕃, 宣和北苑貢茶錄 “五代之季建屬南唐歲率諸縣民採茶北苑初造硏膏繼造臘面”
당·송대 餠茶와 團茶제다법 비교 연구(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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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다도구는 잣나무 절구공이와 瓦盆이다. 단차에 따라 물을 나누어서 붓는데
역시 횟수가 모두 정해져 있다. 위로는 勝雪, 白茶16水, 아래로는 揀芽6水, 小
龍鳳4水, 大龍鳳2水, 기타 나머지는 모두 12水이다. 12수 이상은 하루에 團하
나를 간다. 6수 이하는 하루에 3개~7개를 간다. 매번 물을 넣고 갈 때에는 반드
시 차에 물이 스며들어 마른 후에라야 한다. 물이 마르지 않으면 차가 익지 않는
다. 차가 익지 않으면 (단차의)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차를 달여 시험할 때 가라
앉기 쉽다. 그러므로 차를 가는 硏夫는 강하고 힘이 있는 자를 귀하게 여긴다.43)
北苑別錄
고를 짜낸 차싹은 수분이 거의 없어 푸슬푸슬한 상태다. 연다를 하기 위해서 질그릇으
로 된 瓦盆에 넣고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면서 잣나무 절구공이로 갈았다. 병차제다에서
절구에 찧는 것과는 달리 처음 시도된 제다법이었다. 북원의 차는 등급에 따라 물을 붓
는 회수가 달랐다.44) 즉 고급차일수록 물을 여러 번 나누어 부었으며 오랫동안 갈았다.
승설과 백차와 같은 고급차는 16수로 16번에 걸쳐 물을 부어가며 갈았다. 12수 이상은
힘센 연부가 하루에 겨우 1단 갈았다고 하며, 6수 이하라도 하루에 3~7개 정도밖에 갈지
못하였다.
연다를 할 때 주의할 점은 물이 겉돌지 않고 차에 스며들 정도로만 물을 붓는 것이다.
물을 붓는 회수에 따라 차의 입자가 점점 고와져서 정성 들여 오랫동안 간 연고차는 표
면이 고르고 단단했다. 그래야만 단차 표면에 찍는 무늬의 문양도 섬세하고 선명하게 드
러나게 된다. 이러한 연다가 송대 연고차의 특징인데, 그 과정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에 연고차가 후대로 이어지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라고 판단된다.45) 서민들이 마
시는 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용봉단차는 서민들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돈이 있
어도 살 수 없는 귀한 차였던 것이다.
3. 병차의 搗茶와 단차의 硏茶차이점 비교
당대의 병차와 송대의 단차는 모두 고형차라는 점은 동일하다. 그리나 절구에 찧는 搗
茶나 盆에 가는 硏茶과정도 유사한 점도 있지만 세부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병차의
도다와 단차의 연다의 차이점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43) 趙汝礪, 北苑別錄 「硏茶」“硏茶之具以柯爲杵以瓦爲盆分團酌水亦皆有數上而勝雪白茶以
十六水下而揀芽之水六小龍鳳四大龍鳳二其餘皆以十二焉自十二水以上日硏一團自六水而下
日硏三團至七團每水硏之必至於水乾茶熟而後已水不乾則茶不熟茶不熟則首面不勻煎試易沉
故硏夫尤貴於强而有力者也”
44) 짱유화, 點茶學, 보이세계, 2008, p.302.
45) 류건집, 송대 다서의 주해 하, 이른아침, 2012,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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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단차는 硏茶를 하기 전에 膏를 짜내는 榨茶과정이 있다. 병차는 시루에서 찐
찻잎을 절구에 찧어서 덩어리 형태의 고형차로 만들었다. 그러나 단차는 찐 차싹을 분에
갈기 전에 膏를 짜내는 榨茶과정이 선행되었다. 시루에서 쪄 낸 뜨거운 차싹을 식히기
위해 물에 담궜고, 압력이 낮은 小榨에 넣고 눌러서 차싹의 물기를 제거하였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大榨에 넣고 눌러 膏를 짜 내었다. 水芽의 차싹은 압력이 센 馬榨에 넣어 차
고를 최대한 제거하였다. 이렇게 고를 반복해서 짜내는 翻榨작업은 밤새도록 이루어졌
다. 송대 단차제다에서 이처럼 큰 수고를 하며 고를 제거한 이유는 ‘茶色貴白’ 의 풍조로
인하여 단차의 색깔이 흰 것을 귀하게 여겼고, 무늬가 새겨진 틀로 찍었을 때 문양이 선
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특히 투차의 우열을 결정하는 5가지 품질 요소(色, 香, 味,
浮, 水痕) 중에서 궁정 투차는 색과 거품(浮)을 중시하였다.46) 건잔의 대표적인 흑유 찻
잔은 흰색의 거품을 돋보이게 하였으므로 송대 최고의 찻잔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둘째, 병차의 搗茶는 절구(臼)에 찧었지만 단차의 硏茶는 瓦盆에 갈았다. 병차는 찐 찻
잎을 절구에 넣고 절구공이로 찧었다. 병차의 원료는 차싹과 찻잎 그리고 줄기가 포함되
어 있다. 절구에 찧을 때 면적이 큰 찻잎은 잘 문드러지지만 차싹은 칠과주와 같이 매끄
러워 잘 찧어지지 않으므로 숙련된 솜씨를 필요로 하였다. 차싹과 찻잎, 줄기의 형태가
없어질 정도로 골고루 곱게 찧어야 차가 매끄럽게 잘 뭉쳐져야 건조되었을 때 갈라지거
나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차는 차싹의 물기와 고를 제거한 榨茶이후에 瓦盆에 가는 硏茶의 과정을
거쳤다. 盆은 분마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유약을 발라 매끄러운 것은 적당하지 않았
다. 질그릇으로 만든 와분은 바닥이 거칠어서 마찰이 생겨 분쇄가 용이했다. 와분에 푸
슬푸슬한 차싹을 넣고 절구공이(杵)로 가는 연다는 절구에 찧는 도다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공력을 필요로 했다.
셋째, 병차의 搗茶는 찻잎 자체의 수분으로 찧지만 단차의 硏茶는 물을 첨가하며 아주
곱게 갈았다. 병차는 시루에 찐 찻잎을 곧바로 흩뜨려서 식힌 다음 절구에 넣고 찧었다.
이 때 찻잎에 적당한 수분이 있어야 틀에 박아낼 때 쉽게 덩어리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슬 맞은 찻잎 자체의 수분만으로도 덩어리를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찐 찻잎에서 나오
는 수증기를 빨리 흩뜨려 식힘으로서 적당한 수분을 유지시키고자 하였다. 찻잎이 익으
면서 생긴 끈적한 茶膏와 더불어 절구에 찧는 搗茶의 과정은 섬유소를 짧게 끊고 입자
를 작게 분쇄함으로써 접착력을 높였다.
반면에 榨茶의 과정을 거쳐 茶膏를 짜낸 차싹은 물기가 없이 푸슬푸슬하여 끈기가 없
었다. 수분이 거의 없는 차싹을 와분에 갈 때에는 물을 조금씩 첨가하면서 연고상태로
46) 고연미, 「한·중·일 點茶文化에 나타난 송대 建盞연구」, 원광대 박사논문, 2008, pp.200~201.
당·송대 餠茶와 團茶제다법 비교 연구(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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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았다. 硏膏茶의 입자가 작을수록 단을 만들 때 표면이 매끄럽고 단단했다. 차의 등급
에 따라 물을 첨가하는 회수도 달랐다. 2수에서 16수까지 다양한데, 물을 12수 이상 붓
는 단차는 힘센 硏夫도 하루에 겨우 1단을 갈았다. 고급 단차일수록 물을 붓는 횟수가
많았고,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넷째, 병차는 문양이 없지만 단차의 榨茶와 硏茶는 문양을 넣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였
다. 병차는 차고를 짜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된 차의 색깔이 진한 녹색이고, 차의 입자도
단차에 비해 비교적 거칠었다. 세밀한 문양을 넣는다 해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따라서
병차는 동그라미, 네모, 꽃모양의 틀에 박아 내었을 뿐 병차에 무늬가 없었다.
반면에 단차는 榨茶와 硏茶를 통해 차의 색깔은 흰색에 가까웠고, 입자도 매우 미세하
였다. 완성된 단차의 조직은 매우 치밀하여 쇳소리가 날 정도로 단단하였다. 남송시대
심안노인의 다구도찬의 木待制는 단차를 부수는 전용 절구가 있었고,47) 대관다론에
는 떼어낸 단차 조각을 금속제 茶碾에 갈 때 나는 소리를 ‘碎玉鏘金’이라고 하여 옥이
깨질 때 나는 (금속성) 소리라고도 칭하였다.48) 문양을 새기기 위한 단차의 틀은 암틀과
숫틀로 나뉘었고, 암틀에 차를 담고, 문양이 새겨진 숫틀로 눌러 찍었다. 선화북원공다
록에 “태평흥국 초에 용봉무늬 틀을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북원에서 단차를 만들
었는데, 서민들이 마시는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49)고 하였다. 용봉단차는 황실에 진
공했던 공차였기 때문에 이처럼 榨茶와 硏茶의 까다롭고 힘든 과정을 거치고, 아름다운
문양도 새겨 넣었던 것이다.
다섯째, 병차에는 향을 첨가하지 않았지만 초기 단차에는 향을 첨가하였다. 차에는 차
고유의 眞香, 眞色, 眞味가 있다. 육우는 찻잎만을 사용하여 병차를 만들었다. 차를 끓일
때에 약간의 소금을 첨가했지만, 여러 재료와 함께 끓인 차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고,
차의 本味를 강조하는 淸飮法을 더욱 강조하였다.50)
단차는 여러 번에 걸친 榨茶과정에서 차의 진액인 차고를 제거하여 완성된 단차는
색깔은 흰색이지만 차의 고유한 향미는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入貢하는 차에는 부족한
차향을 보충하기 위해 硏茶할 때에 용뇌향을 섞어서 갈았다. 그러나 점차 차의 眞香을
중요하게 여겨 용뇌나 사향과 같은 향료를 첨가하지 않게 되었다.
이상에서 당대 병차의 도다와 송대 단차의 연다는 고형의 덩어리를 만들기 위한 선행
과정이었지만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병차의 도다는 차싹과 찻
잎 그리고 어린 줄기까지 포함된 차를 절구에 넣고 절구공이로 찧는 비교적 간단한 과
47) 高橋忠彦, 「茶具圖賛 に就きて」, 東京學藝大學紀要第2部門第48集, 1997, pp.375~376.
48) 류건집, 앞의 책, 이른아침, 2012, p.91.
49) 熊蕃, 宣和北苑貢茶錄 “太平興國初特置龍鳳模遣使卽北苑造團茶以別庶飮”
50) 김진숙, 「唐代의 飮茶文化」, 한국차학회지Vol 13, 2007,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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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거쳤다. 여기에 비해 단차는 원료 자체가 차싹인 小芽를 사용하였고, 은선수아와
같은 차는 소아의 심만을 발라낸 水芽를 사용하였다. 연다는 차고를 짜는 자다 과정을
거친 후에 와분에 넣고 절구공이로 물을 첨가해가면서 오랫동안 곱게 갈았다. 당대의 병
차는 손쉬운 제다공정을 거친 대중적인 차였다면 송대의 단차는 만들고 마시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으며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차였으므로 당연히 대중적
인 차와는 거리가 먼 고급차였다.
Ⅳ. 결론
당대의 병차와 송대의 단차는 고형차로서 삼국시대 이래로 중국에서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차이다. 고형차라는 유사점이 있지만 제다 과정상에는 대
단히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사용하는 재료 찻잎이 매우 달랐다. 병차는 차싹과 찻잎 그리고 어린 가지까지
를 사용하였으나 단차는 매우 어린 차싹만을 사용하였고, 때로는 아직 피지도 않은 차싹
속의 가느다란 은실 같은 수아를 사용 하였다.
둘째, 蒸茶부분에서는 찌는 정도에 차이가 있었다. 병차는 차싹과 찻잎 그리고 줄기
가 있어서 차싹이나 줄기가 익을 정도로 푹 쪘다. 단차는 어린 차싹 한 종류만을 사용하
여 증청이 쉬울 수도 있었으나 황실에 진공하는 차는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지
나치게 찌면 색이 누렇고 맛이 담담하며, 설익게 찌면 색은 푸르나 가라앉기 쉽고 풋내
가 났다. 특히 은선수아의 경우 푹 찌게 되면 물속에서 심을 발라낼 때 문드러지기 쉬위
찌는 정도는 병차에 비해 약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적당한 중도(得中)를 지키면
서 차를 쪘던 단차의 증차는 병차에 비해 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던 것이다.
셋째, 찐 차를 식히는 처리과정이 달랐다. 茶黃(익은 찻잎)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병
차는 穀木枝三椏를 사용하여 재빨리 흩뜨려 茶膏가 유실되는 것을 막았었다. 단차는 찐
차싹을 곧바로 찬물에 담가 여러 번 씻었다. 그 이유는 차싹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식힌 것이었다. 그리고 은실과 같은 水芽를 얻기 위해 차싹의 겉잎을 발라내는 과
정에서 차싹이 찢어지거나 문드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넷째, 병차의 도다와 단차의 연다는 물의 첨가에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병차의
도다는 찻잎을 절구에 거칠게 찧었지만 단차의 연다는 차싹을 와분에서 곱게 갈았다. 이
과정에서 병차는 이슬맞은 찻잎이었기에 자체 수분만으로도 덩어리를 만들기 쉬웠지만
단차는 자다과정을 거처 수분이 거의 없으므로 와분에 갈 때 물을 첨가해야 했다.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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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가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고급차였으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다섯째, 병차는 문양이 없지만 단차는 용봉무늬와 같은 세밀한 문양을 새겨 넣었다.
병차는 고를 빼지 않아 진한 녹색으로 문양을 새기고자 해도 잘 나타나지 않으므로 문
양 없이 틀에 넣어 박았다. 단차는 서민들이 마시는 차와 구분하기 위해 용봉무늬 틀을
설치하여 문양을 찍었고, 섬세한 문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차고를 짜 내는 자다와 입자
가 고운 연고상태로 만든 연다 과정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여섯째, 병차는 향을 첨가하지 않았지만 단차는 초기에 향을 첨가하였다. 병차를 만드
는 초차의 담박한 맛에 비해 단차의 건차는 맛이 강하였으므로 그 강한 맛을 순화시키
기 위해서도 단차는 자다과정을 통해 차고를 제거하였다. 차고의 제거는 차의 고유한 색
향미를 잃게 했기 때문에 단차의 부족한 향을 보충하기 위해 초기에는 용뇌향을 첨가하
기도 하였다.
이상의 분석과 같이 병차와 단차는 제다과정에서 차를 찌는 蒸茶와 찐 찻잎을 가는
과정에서 절구에 넣고 찧는 搗茶와 차고를 짜는 榨茶와 瓦盆에서 가는 硏茶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중국 제다사에서 병차와 단차와 같은 고형차는 자취를 감
춘 차이다. 이러한 고형차의 제다법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매우 고답적으로 보일 수
도 있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발전이나 진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옛 것에는 항상
새로운 것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오래 된 과거에서 오히려 우리는 현재를 발전시
킬 수 있는 많은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옛 것을 귀히 여
기고 그것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즉 지금은 사라진 고형차에서 오늘날
의 산차가 발전되어 나왔듯이 더 나은 현대 차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과거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당· 송대의 고형차는 제다, 음다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명
대 이후 등장한 산차는 만들기도 쉽고 마시는 방법도 용이하였다. 또한 녹차 뿐만 아니
라 다양한 발효차가 생겨났다. 오늘날 중국에서 병차와 단차와 같은 고형차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인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송대의 고형차는 제다방법의
다양성과 차의 품질 그리고 고급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오히려 이 어려운 제다와 음다
과정이 있었기에 명대에 이르러 산차라는 대중적인 차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
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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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Block tea(餠茶) and cake tea(團茶) are both the typical Chinese tea in Tang and
Song dynasty. Block tea was may be the Chinese original tea, and was very popular
in Tang dynasty. Cake tea is more elaborated tea and was very popular in Song
dynasty. Both teas are 固形茶, but similarity stops at that point. Block tea uses
relatively young leaves and they sometimes uses young branches also. Comparing to
the Block tea, Cake tea uses very young leaves and sometimes they uses the thread
like leaves which even come out from the wrapping leaves. They also different in
boiling method, cooling method and even different in adding water when grinding.
Cake tea uses so young leaves and pressing and grinding so many times the surface
of cake tea is so smooth that very delicate figures can be decorated, but not the
block tea. Block tea does not press much after grinding that the original taste and
flavor can be remained within the tea. However cake tea was so much pressed that
original tea flavor may be lost. So to compensate this loss cake tea added fragrance
in it. Both tea were long gone and hard to find, but studying the old tea methods
could be very important way to widen the variety and preparing the modern tea
culture.
【Key words】Block tea(餠茶), Cake tea(團茶), Tea boiling method(蒸茶), grinding tea,
pressing and grinding tea
접수일자 2017. 11.10 심사완료일 2017. 12.06 게재확정일 2017. 12.09

201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