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당전집(阮堂全集) 해제

2018. 10. 11. 20:34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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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전집(阮堂全集) 해제


선종순(宣鍾順)


1. 서지사항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문집으로는 1934년에 종현손 김익환(金翊煥)이 간행한 《완당선생전집(阮堂先生全集)》을 대표로 들 수 있다. 이 《완당선생전집》은 그 전에 제자들에 의해 간행된 《완당척독(阮堂尺牘)》《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 《완당집(阮堂集)》을 한데 모아 빠진 것을 보충하고 중복된 것을 정리하여 간행한 것이다.
따라서 《완당척독》, 《담연재시고》,《완당집》에 대해서도 아울러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완당척독》은 전사자본(全史字本)으로 2권 2책 10행 20자로 되어 있고, 판심은 상백어미(上白魚尾)이며, 권두에 남상길(南相吉)의 서문이 있다. 1867년(고종 4)에 제자 남상길에 의해 간행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도서번호 : 일산古367-17, 한-44-다2, 古367-27),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담연재시고》는 전사자본으로 7권 2책 10행 20자로 되어 있고, 권두에 신석희(申錫禧)의 서문남상길의 제사(題辭)가 있다. 이 시고 역시 1867년(고종 4)에 남상길에 의해 간행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도서번호 : 奎7153), 장서각(도서번호 : 藏4-5886), 국립중앙도서관(도서번호 : 일산고3644-64, 한-45-가186),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완당집》은 본래 간행본인 만향재(晩香齋) 활판본(活版本)이 거의 유실되어 영본만 남아 있고, 이 활판본을 필사한 사본만이 전질로 남아 있다. 전질로 남아 있는 사본은 5권 5책 10행 20자로 되어 있으며, 권두에 남상길의 지(識)민규호(閔奎鎬)의 완당김공소전(阮堂金公小傳)이 있다. 이 문집은 1868년(고종 5)에 제자 민규호가 전해에 간행된 《완당척독》《담연재시고》를 정리하여 남상길과 함께 간행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도서번호 : 奎4706, 奎5311)에 사본이 전질로 소장되어 있고, 성암고서박물관(도서번호 : 4-837)에 활판본이 영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완당선생전집》은 신활자본(新活字本)으로 10권 5책 12행 27자로 되어 있고, 판심은 상흑어미(上黑魚尾)이며, 권두에 정인보(鄭寅普)와 김영한(金甯漢)의 서문, 그리고 그 전에 간행된 척독, 시고, 문집에 실려 있는 서문 및 제상, 지, 소전 등이 모두 실려 있다. 1934년에 종현손 김익환에 의해 간행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도서번호 : 위창古3648-10-26, 한-46-가1282),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도서번호 : D1-A1 01),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도서번호 : D3B-750),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 간행경위

   추사가 남긴 글은 그의 사후 근 10여 년이 지난 1867년(고종 4)에 이르러 문인 남상길에 의해 비로소 시고(詩藁)와 척독(尺牘) 두 종류의 문집으로 간행된다. 남상길은 추사의 고금체시(古今體詩)를 모아 7권 2책으로 《담연재시고》를 간행하고, 척독만을 모아 2권 2책으로 《완당척독》을 간행하였다.

   그는 다음해 민규호가 간행한 《완당집》를 쓰면서, “완당 김공의 문자가 흩어진 채 수합되지 않아서, 내가 그 묻혀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잔본들을 주워 모아 고금체시 및 척독 약간 편을 얻어 정묘년에 간행 반포하였다."고 그 간행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문인 민규호는 고문과 잡저 등 여러 편을 찾게 되었는데, 이에 남상길과 함께 이미 간행된 《완당척독》《담연재시고》를 대조하여 5권 5책으로 《완당집》을 간행하였다. 그리하여 세간에는 완당의 글이 시고와 척독, 문집 세 종류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 후 70여 년이 지나 종현손 김익환이 이 모두를 한데 모아 유일된 것을 수습하고 중복된 것을 정리하여 10권 5책으로 간행한 것이 바로 《완당선생전집》이다.


3. 문집의 구성 및 내용 

   완당선생전집》이 간행되기 까지에는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완당척독》, 《담연재시고》, 《완당집》이 있었기에, 먼저 이 세 문집에 대해 그 구성 및 내용을 간단히 살펴본 뒤에 《완당선생전집》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완당척독》은 2권 2책이며 상책과 하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 의산(義山) 남병길(南秉吉)의 서문이 있는데, 병길은 남상길의 초명이다. 상책에는 8편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홍선대원군(興宣大院君), 권돈인(權敦仁), 남병철(南秉哲), 김병학(金炳學), 동생인 김산천(金山泉), 조원호(趙寃鎬)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하책에는 상책보다 4편이 많은 12편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심희순(沈熙淳), 신관호(申觀浩), 장인식(張寅植), 이상적(李尙迪), 홍현보(洪顯普), 김석준(金奭準), 오경석(吳慶錫), 오규일(吳圭一) 등과 백파상인(白波上人), 초의상인(草衣上人), 그리고 흑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 외에 권말에는 독외여언(牘外餘言)가야산해인사중건상량문(伽倻山海印寺重建上樑文)이 실려 있다.

   《담연재시고》는 7권 2책이며 상책과 하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는 신석희의 서문남병길의 제사가 있고, 상책은 권 1에서 권 6까지, 하책은 권 6과 권7이 실려 있다. 이 시고는 완당의 고금체시를 오언, 칠언 및 고시, 율시, 절구로 분류하여 채록하였는바, 권 1에는 오언고시를, 권 2에는 칠언고시를, 권 3에는 오언율시를, 권 4에는 칠언율시를, 권 5에는 오언절구를, 권 6과 권 7에는 칠언절구를 실었다.

   《완당집》은 5권 5책이다. 권두에 남상길의 지 민규호가 지은 완당김공소전이 실려 있다. 권 1에는 소(疏) 5편, 서(書) 10편, 문답(問答) 37편이 실려 있고, 권 2에는 서(序) 2편, 기(記) 3편, 제문 4편, 상량문 1편, 고(考) 6편, 변(辨) 7편, 설(說) 6편, 논(論) 1편, 명(銘) 등 기타 5편, 제후(諸後) 12편이 실려 있고, 권 3에는 척독(尺牘) 72편이, 권 4에는 별록이, 권5에는 시가 실려 있다.

   《완당선생전집》은 10권 5책으로 권두에 김영한, 정인보의 서신석희, 남상길의 구서, 그리고 민규호가 쓴 소전이 있다. 각 권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 1에는 고(考) 8편, 설(說) 7편, 변(辨) 10제 12편이 실려 있다.
考- 周易虞義攷 其子攷 天文攷 日月交食攷 新羅眞興王陵攷眞興二碑攷 稷帖攷 天竺攷
說- 革卦說 漢儒家法說 禮堂說 壹獻禮說 實事求是說 人才說 適千里說
辨- 易筮辨(上下) 太極卽北極辨 尙書今古文辨(上下) 理文辨 聲韻辨 學術辨 私蔽辨 書派辨 墨法辨 格物辨

권 2에는 소(疏) 6편, 서독 20제 48편이 실려 있다.
疏- 辭奎章閣寺敎疏 辭翰林疏 辭職兼陳情疏 辭大司成疏 辭嘉善疏 辭職兼陳情疏
書牘- 上親庭 與舍仲命喜(5) 與舍季相喜(9) 與懋兒(3) 與佑兒上從兄敎喜(2) 上再從兄道喜 與從姪商一 寄從姪商黙 寄再從孫始濟兄弟 與再從孫台濟(3) 上外舅李羲民 與李善在 與興宣大院君(7) 與閔台鎬 與趙冕鎬(4) 與李鍾愚 與尹定鉉 與申觀浩(3) 與趙寅永

권 3에서 권 5까지는 31제 197편의 서독이 실려 있다.

권 3- 與權敦仁(35)

권 4- 與丁若鏞 與金逌根(3) 與南秉哲(5) 與金炳學(3) 與沈熙淳(30) 與金尙鉉 與張寅植(20) 與李在奎 與吳進土(8) 與姜浩(3) 與柳節瑞 與黃裳 與洪樂有 與李尙迪(7) 與丁學淵 與金敬淵(3) 與吳慶錫(4) 與金奭準(4) 與洪顯普(4) 與曹匡振(8) 與吳昌烈 與吳圭一(2) 與咸聖中 與李最相 與沈皥卿 與梁文晼(2)

권 5- 與李瑋煜 與白波(3) 與艸衣(38) 與人

권 6에는 서(序) 3편, 기(記) 3편, 제발(題跋) 42제 43편이 실려 있다.
序- 全唐詩序序 橘中屋序 巵園詩藁後序
記- 謙謙室記 硏山瀨記 天然亭重修記
題跋- 永慕庵扁背題識跋 題川頌金剛經後 등 43편

권 7에는 전(箋) 4편, 명(銘) 4편, 송(頌) 3편, 잠(箴) 3편, 상량문 2편,
제문 4편, 묘표(墓表) 1편, 잡저 34편이 실려 있다.
箋- 大殿誕日內閣進箋 冬至內閣進箋 冬至進箋 正朝進箋
銘- 仁政殿銘 汲古泉銘 性銘 番琴銘
頌- 漢??經師頌 金孝子旌閭頌(2)
箴- 箴妄 箴萎 箴情
上樑文- 烏石山葉嚴寺上樑文 伽倻山海印寺重建上樑文
祭文- 仲母淑夫人鄭氏祭文 祭南海神文 下壇祭文 夫人禮安李氏哀逝文
墓表- 朴仲恢墓表
雜薯- 秋風悔心萌論 論小學書 戲述贈某衲 등 34편

권 8에는 잡지(雜誌)가 실려 있고, 권 9에서 권 10까지는 시가 실려 있다.


4. 생애

   김정희, 1786(정조 10)에 태어나 1856년(철종 7)에 졸하였다. 자는 원춘(元春), 본관은 경주, 호는 추사(秋史)이다. 그 외에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농장인(農丈人) 등 많은 호가 있다.
   가계를 살펴보면, 고려말의 성리학자로 고려에 충절을 지키고자 벼슬을 버리고 안동에서 은거하던 중 태종이 형조 판서로 부르자 서울로 오는 도중에 정몽주의 묘소에 이르러 자결함으로써 절의를 빛낸 김자수(金自粹)를 중시조로 한다. 그로부터 5대를 내려와 서흥부사를 지낸 연(堧)이 가야산(伽倻山) 취령봉(鷲嶺峯) 아래에 터를 잡는데, 이곳이 바로 자손 대대로 살게 되는 한다리이다. 이에 연의 주손인 적(積)은 안기 찰방으로 있다가 광해군 때 폐모 사건을 계기로 가족과 함께 한다리로 내려와 은둔한다. 적은 슬하에 홍익(弘翼), 홍량(弘亮), 홍필(弘弼), 홍욱(弘郁) 4명의 아들을 두는데, 막내 홍욱이 황해감사로 재직시에 한재(旱災)로 인한 응지상소(應旨上疏)에서 강빈(姜嬪)의 원옥(寃獄)을 거론하였다가 장살된다. 당시에 강빈의 원옥은 사림들이 매우 원통하게 여기고 있던 터라 이 사건으로 인하여 홍욱은 사림의 추앙을 한몸에 받는 명사가 되니, 나중에는 사림의 종장인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의 적극적인 주청으로 효종 10년에 복관작되고 숙종 44년에는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받고 이조 판서에 추증된다. 그로부터 가문이 융성하여 홍욱의 장증손 홍경(興慶)은 영의정을 지내고, 그 말자(末子) 한신(漢藎)은 영조의 장녀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하여 왕실의 내척이 되니, 이가 바로 추사가 봉사손으로서 대를 잇게 되는 월성위(月城尉)이다. 그러나 월성위는 후사 없이 39세로 요절하고, 장형 한정(漢楨)의 3자 이주(頤柱)가 출계하여 노영(魯永), 노성(魯成), 노명(魯明) 노경(魯敬) 4명의 아들을 두니, 4자인 노경추사의 생부이다. 월성위가의 적통인 노영에게 후사가 없으므로 추사는 백부 노영에게로 출계하여 월성위가의 적통을 잇게 된다. 이상 살펴보았듯이 추사는 왕실과 혼인 관계가 있는 노론의 명문 출신으로서, 융성한 가문을 배경으로 아버지 노경과 어머니 기계유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 노영에게로 출계한다. 어머니 기계유씨는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낸 유준주(兪駿柱)의 딸이다.

   이제 이러한 가계를 배경으로 자란 추사의 수학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백부 노영은 북학의 선구자인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재당질서(再堂姪婿) 연암 박지원의 문하에서 종유하였으며, 1790년(정조 14)에는 성절진하 겸 사은사의 행차에 참여하여 박제가와 접촉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때 완당의 나이 5세인데, 북학에 경도되어 있던 백부의 영향으로 완당은 일찍부터 청 나라의 문명에 관심을 갖는다. 더구나 노영은 완당의 교육을 박제가에게 맡기게 되니, 그로부터 완당은 20세까지 북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박제가의 문하로 들어가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 24세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동지부사인 생부 노경을 수행하여 연경에 가게 된다. 이에 스승을 통해 말로만 듣던 청 나라의 학문을 직접 접할 기회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연경 학계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옹방강, 완원과 사제지간을 맺어 그들의 학문을 전수받고, 당시 연경 학계의 이름난 학자들과도 교유하게 된다. 

   당시 47세인 완원은 자신의 경학관, 예술관, 금석고증의 방법론을 전수하면서 자신의 저서인 《경적찬고》 106권과 《연경실문집》 6권, 《십삼경주소교감기》 245권을 완당에게 기증하니, 이때에 별호를 완당(阮堂)이라고 짓는다. 78세의 옹방강으로부터는 금석 고증, 서화 감식, 서법 원류에 관한 가르침을 받는다. 또한 옹방강은 추사가 귀국한 후에도 제자 섭지선(葉志詵)을 통해 완당의 경학질의(經學質疑)에 답함으로써 자신의 경학관을 피력하는데, 그의 경학관은 훈고(訓詁)와 의리(義理)를 동시에 중시하는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으로서 추사가 이에 영향을 받아 저술한 것이 바로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이다. 이 실사구시설은 추사가 31세 때 지은 것으로 옹방강의 경학관에 완원의 철저한 고증학적인 경학관을 합쳐 종합 정리한 것으로 새로운 경학관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경에서 귀국한 후에 완당은 중국의 학자들과 지속적으로 서신을 왕래하며 정보를 얻고 학문을 토론하니, 추사의 학문은 가히 국제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추사는 1819년(순조 19)에 문과에 급제하고 암행어사, 예조 참의, 설서, 검교, 대교, 시강원, 보덕 등을 역임한다. 그러나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루되어 생부 김노경은 유배되고, 추사도 파직된다. 그 뒤 1836년에는 병조 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고, 다시 윤상도의 옥사가 거론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에 유배된다. 헌종 말년에 방환되나 1851년에는 권돈인의 진종조천예론(眞宗祧遷禮論)에 연루되어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된다. 2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난 완당은 다시 관로에 나가지 않고 과천의 봉은사에 기거하며 학문에 몰두한다. 이제 아래에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서 추사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잡지인 간송문화에 실린 추사연보를 다소 다듬어서 첨부한다.


1786
6월 3일 충청도 禮山에서 탄생. 백부 金魯永에게 출계
179611세祖母 海平尹氏 卒.
179712세養父 金魯永 卒. 祖父 金頤柱 卒.
180015세韓山李氏와 결혼.
180116세母夫人 兪氏 卒.
180520세夫人 韓山李氏 卒. 스승 朴齊家 卒.
180823세禮安李氏를 再娶로 맞음.
180924세11월 9일 生員試에 일등 入第. 12월 冬至 兼 謝恩副使 金魯敬의 燕行에 子弟軍官으로 수행.
181025세1월 阮元, 翁方綱을 찾아뵙고 師弟義를 맺음. 朱鶴年, 李鼎元, 曹江, 徐松, 翁樹培, 翁樹崑, 謝學崇, 李林松 등과 結交.
181328세2월 17일 人日製詩에 克明峻德賦로 次上 入格.
181530세翁方綱이 편지로 硏經指導. 葉志詵과 편지로 사귐. 草衣와 金蘭之交를 맺음.
181631세윤3월 沈象奎記(以威亭記)를 씀. 實事求是說 저술. 북한산순수비 발견.
181732세庶子 商佑 출생. 吉祥室 편액 씀.
181833세金魯敬이 지은 桑村先生碑閣記事를 씀.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을 지음.
181934세4월 25일 文科 及第. 養子 商懋 출생.
182035세10월 19일 翰林召試에 入格. 草衣, 金在元, 金敬淵, 逌根과 東莊에서 交驩.
182136세藝文館 檢閱로 申緯와 銀臺에서 交驩.
182237세[直聲留闕下 秀句滿天東]을 顧蒓에서 써 보냄.
182338세8월 5일 奎章閣 待敎가 됨. 石見樓老史詩卷과 虛川小草跋을 撰書함.
182439세[好古有時搜繼碣 硏經婁日罷吟詩]를 鄧傳密에게 써 보냄.
182641세6월 25일 충청우도 암행어사가 됨.
182742세4월 1일 副校理에 제수. 4월 23일 議政府 檢詳에 제수 10월 4일 禮曹 參議에 제수. [題蘭雪紀遊十六圖詩]를 吳嵩梁에게 써 보냄.
182944세內閣 檢校待敎 兼. 侍講院 輔德에 제수.
183045세6월 20일 同副承旨에 제수. 8월 28일 尹尙度의 獄事가 일어남. 10월 2일 生父 金魯敬이 古今島로 유배.
183247세禮堂金石過眼錄을 지음.
183651세4월 6일 成均館 大司成에 제수. 7월 9일 兵曹 參判에 제수. 申翠微太史暫遊詩帖을 씀.
183853세生父 金魯敬 卒. 8월 許維가 草衣의 주선으로 제자가 됨.
183954세5월 25일 刑曹 參判에 제수. 6월, 7월 門下에서 藝林乙錄이 이루어짐.
184055세6월 冬至副使에 제수. 7월 10일 尹尙度의 猉事의 再論으로 벼슬에서 쫓겨나고, 8월에 예산 향저에서 체포되어 9월 2일 大靜으로 유배됨. 도중 南原에서 耆耋圖를 제작.
184257세후취 부인 禮安李氏 卒. 夫人禮安李氏哀逝文을 지음. 慕庵扁背題議跋 撰書.
184358세白坡와 往復討論함.
184459세李尙迪에게 歲寒圖를 그려줌.
184661세華巖寺上樑文을 지음. 無量壽閣, 詩境軒의 편액을 씀.
184863세12월 6일 濟州의 유배에서 풀려남.
184964세玉笛山房에서 契帖考를 저술함.
185166세7월 22일 眞宗祧遷禮論의 배후발설자로 北靑에 유배됨.
185267세8월 14일 北靑의 유배에서 풀려남.
185570세瓜地草堂에서 지냄. 白坡律師碑 撰書. 孝子金箕鍾旌閭碑를 씀.
185671세奉恩寺에서 지냄. 10월 10일 卒.

5. 관련 논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논문 및 단행본을 조사하였다. 논문은 학위 논문과 학술지 및 잡지에 게재된 논문을 모았고, 단행본에서 서첩류는 제외하였다.


1) 학위논문
《秋史 金正喜의 歲寒圖에 관한 硏究》, 成和泳, 1996, 석사,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대학원 회화학과
《秋史 金正喜의 不二禪蘭圖 硏究》, 孫承延, 1995, 석사,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阮堂의 實學思想 硏究》, 徐承澤, 1995, 석사,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
《秋史 金正喜의 濟州流配 繪畫 硏究》, 夫順暎, 1994, 석사,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秋史의 流配詩 硏究》, 金泰洙, 1992, 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秋史蘭畫의 美學的考察》, 朴根述, 1976, 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金正喜의 繪畫 硏究》, 張錫源, 1976, 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阮堂 金正喜先生 文學論》, 朴京善, 1980, 석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秋史의 書畫論에 關한 考察》, 朴宗杰, 1994, 석사, 경원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秋史 金正喜의 藝術思想 : 秋史體의 成立과 詩文을 中心으로》, 朴元圭, 1993, 석사, 배재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秋史 金正喜의 諺簡 硏究》, 崔文煥, 1987, 석사 建國大學校 大學院 國語國文學科
《秋史 金正喜의 生涯와 그의 作品世界》繪畫中心으로, 金春姬, 1986, 석사, 建國大學校 敎育大學院 敎育學科
《秋史 金正喜의 生涯와 藝術》書藝를 中心으로, 朴貞子, 1985, 석사 弘益大學校 敎育大學院 敎育學科
《秋史와 그 畫派의 繪畫硏究》, 金順子, 1985, 석사, 釜山大學校 敎育大學院 美術敎育專攻
《秋史 金正喜의 繪畫世界》, 徐尙萱, 1983, 석사, 弘益大學校 大學院 繪畫科
《秋史 金正喜의 墨蘭畫에 관한 硏究》, 崔順子, 1985, 석사, 誠信女子大學校 大學院 東洋畫科
《阮堂 金正喜의 書法論》 - 論書書와 論書詩를 중심으로, 鄭祥玉, 1984, 석사, 東國大學校 敎育大學院 漢文敎育專攻
《秋史 金正喜의 文學硏究》- 詩論과 詩를 중심으로, 扈承喜, 1983, 석사, 梨花女子大學校 大學院 國語國文學科
《阮堂 金正喜 詩文學攷》, 鄭東羽, 1991, 석사 東國大學校 敎育大學院 漢文敎育專攻
《阮堂 金正喜의 實事求是 硏究》, 李善慶, 1992, 석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學大學院
《秋史書論硏究》- 中, 高等學校 書藝敎育을 中心으로
金光郁, 1992, 석사, 弘益大學校 敎育大學院 敎育學科
《秋史 金正喜의 流配書簡 硏究》, 金奉玉, 1991, 석사, 濟州大學校 敎育大學院 國語敎育專攻
《秋史 金正喜의 詩文學 硏究》, 金惠淑, 1989, 박사, 서울大學校 大學院 國語國文學科
《秋史 金正喜의 書畫 硏究》, 尹天根, 1987, 석사, 弘益大學校 敎育大學院 敎育學科

2) 학술지
《金正喜가 본 濟州道의 修學 분위기》, 鄭後洙, 東洋古典硏究, 1995
《金正喜 濟州道 流配詩 譯註 抄》, 鄭後洙, 漢城語文學, 1995
《秋史 金正喜의 文學과 佛敎的 受容》, 具任會, 語文硏究(韓國語文敎育硏究會), 1994
《秋史 金正喜 詩의 한 特性》-典故를 중심으로, 鄭後洙, 漢城語文學, 1994
《秋史 金正喜의 開化革新思想에 관한 硏究》, 趙載福, 牧園大論文集, 1993
《金正喜의 시세계》, 김혜숙, 現代文學, 1994
《金正喜의 實學思想과 靑代 考證學》, 고재욱, 翰林大泰東古典硏究, 1993
《阮堂 金正喜의 詩文學考》, 鄭東羽, 東岳漢文學論集, 1992
《秋史의 流配詩 硏究》, 金泰洙, 漢文學論集, 1992
《추사 언간글씨의 서체미 분석과 작품화 응용방안》-30대~50대 시기의 한글 편지 글씨를 중심으로, 박병천, 仁川敎大論文集, 1992
《秋史 金正喜의 濟州流配 敎學思想 硏究》, 梁鎭健, 濟州島硏究, 1992
《秋史와 紫霞의 文學的 交遊와 그 影響》, 김혜숙, 成均館大大東文化硏究, 1991
《秋史 金正喜의 濟州流配文學 硏究》, 양순필ㆍ金奉玉, 濟州大論文集(人文ㆍ社會學科), 1991
《阮堂 金正喜에 있어서 文人藝術의 理念》, 閔周植, 嶺南大人文硏究, 1991
《추사의 〈小遊仙詞〉연구》, 김혜숙, 울산어문논집, 1990
《韓國書藝와 阮堂先生》, 金忠顯, 藝術院報, 1990
《秋史의 佛敎觀》, 李相鉉, 민족문화, 1990
《禪雲寺 白坡碑로 본 白坡와 秋史》, 朴東洙, 圓光大鄕土文化硏究, 1990
《秋史 金正喜의 藝術哲學에 關한 硏究》-歲寒圖를 중심으로, 柳承國, 學術院會報, 1989
《김정희의 시론 연구》, 김혜숙, 울산대울산어논문집, 1989
《秋史 金正喜의 漢文書翰考》, 양순필, 濟州大耽羅文化, 1989
《추사 한글편지의 국어학적 고찰》, 吳錫蘭, 誠信語文學, 1988
《世紀의 文人畫 歲寒圖》-阮堂과 草衣禪師의 友情論, 김봉호, 예술계, 1988
《秋史의 濟州 敎學活動 硏究》, 양순필 양진건, 濟州大耽羅文化, 1987
《僻派家門 出生의 秋史 金正喜》-秋史의 濟州流配動機를 중심으로, 姜周鎭, 濟州大耽羅文化, 1987
《秋史 金正喜의 學問과 藝術》, 양순필, 濟州大白鹿語文, 1987
《秋史 再照明》, 金根洙, 韓國學, 1986
《僻派家門 出生의 秋史 金正喜》, 姜周鎭, 韓國學, 1986
《秋史故宅 ; 古建築硏究 2》, 李應黙, 建築士, 1986
《秋史와 그의 石印》- 완당인 43방(方)을 애장하면서, 李家源, 文學思想, 1986
《阮堂 金正喜의 書法論》-論書書와 論書詩를 중심으로, 鄭祥玉, 東岳漢文學論集, 1985
《秋史 金正喜와 칸딘스키》, 洪勇善, 전통문화, 1984
《金石學 沒入은 門性格의 表出》, -精神分析學的으로 본 秋史 金正喜의 人間像
李揆東, 醫藥情報, 1983
《秋史의 濟州流配諺簡硏究》, -그 年紀의 再構와 內容分析을 中心으로
양순필, 제주대논문집(인문학편), 1983
《秋史書派의 成立》, 崔完秀, 新東亞, 1981
《李朝 後期 山水畫의 두 흐름에 關한 考察》, -김선흠과 金正喜의 傾向을 中心으로
李東寬, 圓光大大學院學位論叢 (人文ㆍ社會ㆍ藝術系), 1981
《秋史에 대한 小考》, 琴仁錫, 法施, 1980
《秋史에 대한 小考(下)》, 琴仁錫, 法施, 1980
《秋史의 悼亡詩ㆍ祭文考》, 양순필, 廣場, 1979
《秋史의 『歲寒圖』 題文考》, 양순필, 제주도, 1979
《禪과 藝術의 生涯, 金正喜》, 전광호, 中央, 1978
《秋史와 考證學》, 李乙浩, 韓國學, 1978
《추사서백파선사비고석》, 權德周, 中文學報, 1978
《秋史의 禪觀》, 高亨坤, 韓國學, 1978
《완당선생전집 解題》, 이제곤, 도서관, 1978
《秋史 金正喜先生 故宅 重修記》, 申榮勳, 文化財, 1978

3) 단행본
《秋史의 書畫世界》, 최순탁, 학문사, 1996
《秋史 金正喜의 書畫》, 최순탁, 圓光大學校出版部, 1994
《(新釋)秋史集》, 崔完秀 譯柱, 현암사, 1976
《秋史集》, 崔完秀 譯, 玄岩社, 1975
《추사 김정희 또다른 얼굴》, 등총린 著, 朴熙永 譯, 아카데미하우스, 1994
《추사 김정희》(장편소설), 吳成贊 著, 큰산, 1993
《歲寒圖》(秋史金正喜實名小說), 吳成贊 著, 東光出版社, 1986
《秋史精華》, 澗松美術館 著, 知識産業社, 1983


1995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