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자신감 /매일경제 김인수 기자

2013. 8. 6. 16:36잡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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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소박한 자신감’이 없으면 배움을 멈추게 된다
기사입력 2013.08.01 09:58:28
 

 


미국 펜실베니아에 사는 한 고등학생이 12명의 존경 받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훌륭한 경영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라면 비서실에서 걸러져서 휴지통에 들어갔겠지만, 미국은 달랐다. 몇 명의 위대한 CEO가 이 고등학생에게 회신을 했다. 그 중에 한 명이 A.G. 래플리 P&G CE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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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플리 P&G CEO

래플리의 조언을 밝히기에 앞서 그가 누구인지 잠깐 설명하겠다. 래플리는 P&G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2000년 CEO에 취임해 P&G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9년 박수를 받으며 CEO에서 물러났으나 최근 P&G의 실적이 악화되자 CEO로 복귀했다. 악질로 이름이 높았던 고(故) 스티브 잡스와 달리 훌륭한 인품으로도 직원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런 그가 편지를 보낸 고교생에게 했던 조언은 이랬다. "소박한 자신감(humble confidence)의 마인드를 가지세요. 당신의 능력을 믿되, 절대로 배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자기 인식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효과적인 리더가 될 수 있어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끊임 없이 배우려는 `소박함`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일화를 읽고부터 한동안 필자의 머리 속에는 `소박한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 래플리의 설명을 넘어서는 무엇인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최근에야 필자는 논어의 한 구절을 다시 접하고는 `소박한 자신감`의 뜻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한문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이 구절은 다음과 같다.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 是知也(시지야)` 한글로 옮기자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아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不知爲不知`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 이유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기만 한다면 `不知爲不知`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무지를 솔직히 인정하는 용기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자신감에 빠진 이들은 不知爲不知를 할 수가 없다. 폴 J.H 슈메이커 미국 워튼스쿨 교수에 따르면 과도한 자신감을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과도한 자신감에 빠진 이들은 배움을 멈추게 된다는 것. 스스로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배울 생각은 할 수조차 없다. 래플리가 배움을 멈추지 않는 `소박한 자신감’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일 것이다.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과도한 자신감에 빠져 있는 이들을 여럿 보았다. 뜻밖에도 꽤 많은 CE0들이 이런 상태였다. 자신이 회사의 재무, 전략, 인사, 공급망 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라는 CEO, 직원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는데 직원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CEO 등등. 이런 사람들에게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CEO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잭 웰치가 했던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웰치는 미국 미시간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강연하면서 "회사 사정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바로 CEO다. 나 역시 GE의 CEO로 재직할 때 그랬다"고 회고했다.

과도한 자신감에 빠진 리더는 사회적으로도 큰 해악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박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투자자들과 경영진의 과도한 자신감을 꼽는다.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한 채 위험한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에 거품을 키웠고, 결국 금융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래플리가 밝힌 `소박한 자신감`은 모든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공자가 2500여 년 전에 `不知爲不知`를 군자의 덕목으로 꼽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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