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 빠진 안철수, 그러다 큰코 다친다

2013. 8. 9. 22:00잡주머니

 

 

 

양비론 빠진 안철수, 그러다 큰코 다친다

'국정원 공작' 남 일처럼 발언...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된다

 

   한국 정보기관의 야당 지도자에 대한 정치공작의 역사는 참으로 길고 화려하다. 그런데 그 핵심은 언제나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맞춤형 정보공작'으로 진보적인 야당 지도자는 빨갱이로 몰아 공격하고, 중도적인 야당 지도자는 사생활을 문제 삼아 공격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단일화 방해공작'으로 야당 지도자 간 단일화를 갖은 방법을 다해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를 보자. 

   첫째 '맞춤형 정보공작'의 대표적 사례.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사실상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봄, 완전한 정권장악을 위해 '5·17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들이 제거해야 할 정치세력은 '3김', 즉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육군 보안사령관을 겸임하며 정보기관을 완전히 장악했던 전두환은 3김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거한다.

    먼저 김대중은 빨갱이로 몰아 체포한다. 김영삼은 여자 문제를 문제 삼아 관련 기사로 언론을 도배한 후 가택연금 시켜버린다. 김종필은 부정축재자로 몰아서 물러나게 한다. 세 사람 모두 정보기관과 언론의 합작으로 제거한다. 이에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신군부는 이것을 '김대중 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로 조작,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둘째 '단일화 방해공작'의 대표적 사례. 1987년 제13대 대선 때 당시 안전기획부는 김대중·김영삼 지지자들의 분열을 가속시키고, 지역감정에 불을 질러 영남 표를 결집시키기 위해 작전을 세운다. 노태우 후보의 전주·광주 유세 때 폭력 난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 난동은 당시 안기부 대선팀장의 조정에 의해 조직 폭력배들에 의해 일으켜진 난동이었다.

국정원 정국, 안철수 의원의 양비론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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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의원이 지난 7월 18일 전주시 덕진예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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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의원은 8월 7일 촛불집회에 참여할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현재로서는 없다"고 답변하고, "국정원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여당과 정부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야당도 좀 더 슬기롭게 대처해서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며 양비론을 폈다.

   국정원 대선공작 사건에 대한 안철수 의원의 양비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월 2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민주당 친노와 새누리당 친박을 싸잡아 "중간층이나 반대층은 설득하지 않고, 소수 열성 지지자 그룹만 바라보면서 정치를 양극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7월 8일에는 국정원 개혁과 관련 "민주정부 10년 책임도 적지 않다"며, "국정원이 물어주는 달콤한 정보에 무너진 것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지난 6월 검찰의 원세훈·김용판 기소로 시작된 국정원 정국에서 안철수 의원은 양비론을 계속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적대적 공생관계'로 싸잡아 비판하면서 제3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 국면에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안철수에게 아무런 공작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처럼 국정원 사건을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는 안철수 의원을 보며, 과연 지난해 국정원은 안철수 후보를 상대로 아무런 정치공작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까지 드러난 지난해 국정원 대선공작은 2가지다. 첫째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왜곡·변조·유출하여, 문재인 후보를 '서해 NLL을 북한 김정일에게 헌상한 노무현의 후계자'로 낙인찍고, 선거 구도를 종북이냐 아니냐로 몰고 간 것이다. 둘째는 국정원의 사이버 정예요원 70여명이 인터넷에서 야권후보 낙선운동을 했고, 서울경찰청이 이에 대한 수사결과를 조작하여 허위 발표한 것이다.

    이 2가지를 볼 때 국정원은 지난 대선 사실상 박근혜 캠프의 네거티브 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국정원의 정치공작은 문재인 후보에만 머물지 않았다. 야권의 유력 정치인을 그냥 두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09년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정원을 비판했다고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인데, 국민의 국정원 비판으로 국가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국민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올 5월에는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이라는 국정원 작성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공개되었는 데, 여기에 실린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은 실제로 우익단체들의 박 시장 공격에 활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국정원이 안철수 후보를 그냥 놔뒀을까? 사실 안 후보는 지난해 출마선언 후 단일화 회피의 모습을 보여줘 지지율이 떨어졌지, 그 이전 1년 동안은 야권후보 중 압도적 지지율 1위의 후보였다. 그랬는데 과연 국정원 대선공작이 안철수 후보를 비켜갔을까?

 


국정원의 안철수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안철수 후보가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6일 금태섭 변호사는 "새누리당 공보단 정준길 공보위원이 안철수 원장의 뇌물비리와 여자 문제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대선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폭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설을 처음 주장한 것이 10월 8일이었으니 그 한 달 전이다.

   이에 대해 박영선 의원은 지난 7월 9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확보한 음성파일에는 "안철수 후보의 뒷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소문을 생산하고 확대한 사람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며 "그런 일을 할 데가 국정원밖에 더 있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재작년 12월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안철수는 대선후보가 안될 것으로 본다, 나오면 죽는다. 안철수의 '여자 문제'를 알고 있다. 허리 아래 문제인 데… 파렴치한 부분이야"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고위층은 2011년부터 안철수 여자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아온 것이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중앙정보부가 3김을 제거하는 방식이 32년이 지난 2012년 다시 그대로 부활하여 야권의 두 유력 후보를 한 사람은 빨갱이로, 한 사람은 개인적 네거티브로 몰아서 공격했던 것이다.

 


안철수로 단일화 됐으면 네거티브 전면화 됐을 것

   만일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가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정원의 준비에 따라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안철수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으로 대선정국을 도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대선결과는 사실상 결정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안철수 의원 측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사실이 아닌데, 그게 왜 문제가 되겠나?" 그러나 지난해 대선을 종북이냐 아니냐로 끌고 갔던 '노무현 NLL 포기 발언'도 그것이 사실이어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올해 국정원이 자신들의 대선공작을 덮으려고 무단으로 공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그것을 본 국민의 다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답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고 강변한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 내에서 거세게 일었던 대선 패배 책임론의 바탕에는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안철수 후보였으면 이겼을 수 있을 텐데"라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단일후보가 안철수 후보로 확정된 순간 선거는 네거티브로 뒤덮였을 것이고, 무균질의 깨끗한 이미지가 생명이었던 안철수 후보에 대한 파상적 공격은 아주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네거티브의 사실 여부가 확인도 되기 전에 선거는 끝났을 것이다. 더구나 안철수 캠프의 미숙함으로 볼 때, 위기 극복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국정원 공작은 없었을까?

   지난해 대선, 박근혜 후보가 승리하기 위한 여러 조건 중 단 하나를 뽑으라면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그 답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안철수·문재인 후보 단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만 성취되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그야말로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선 결과는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국정원 대선공작 사건을 보며 이것이 의문이었다. 국정원이 이것을 그냥 놔뒀을까? 폭력배를 동원, 김대중·김영삼 지지자들의 분열을 가속시키고, 지역감정에 불을 질러 영남표를 결집시켰던 빛나는 대선공작의 전통을 가진 국정원이 이것을 그냥 놔뒀을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왜곡·변조·유출하여 문재인 후보를 'NLL을 김정일에게 헌상한 노무현의 후계자'로 낙인찍고, 사이버 정예 요원 70여명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여론조작을 한 국정원이 이 중요한 사안을 그냥 넘어갔을까?

   아무 증거도 없지만 나는 국정원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인 동시에 너무도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캠프나 안철수 캠프에 단일화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조금만 발언권이 있도록 하면 그것은 너무 쉽게 해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리고 이러한 '단일화 방해 공작'은 대선이 단일화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언제나 있어왔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당시에도 정몽준 캠프에 참여했던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의 단일화 반대는 강력했고, 지난해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정원 대선공작,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 국정원 정국에 대한 안철수 의원의 양비론을 보면, 그가 지난해 국정원 대선공작이 자기와 무관한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첫째,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유력 야권후보였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숭고한 마음으로 양보했던 대통령선거가 국정원의 대선공작에 의해 짓밟혔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참혹할 것인가? 최근의 양비론은 그런 참혹한 마음을 전혀 국민들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둘째, 앞으로 안철수 의원이 정권교체를 통해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국정원 대선공작을 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안철수 의원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 국정원이 가만히 있을까? 다시 별의 별 정치공작을 하지 않을까? 그것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지금처럼 양비론을 펼칠 수 있을까?

   셋째, 무엇보다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처럼 지난해 국정원 대선공작이 안철수 후보도 결코 비켜가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 판단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안철수 의원에게 국정원 대선 공작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너무도 소중한 자신의 문제다. 촛불집회 역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만일 안철수 의원이 진정으로 향후 정권교체를 통해 대통령이 될 생각이 있다면, 지금처럼 촛불집회에 대해 양비론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