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2. 12:39ㆍ美學 이야기
시간이 날 때마다 기억 해 두고 싶은 그림들을 저장해 놓습니다.
그러다가 자료가 모이면 화가를 소개하는데, 그도 여의치 않으면 그림 엽서로 그림만 띄우고 있습니다.
그 동안 그림 엽서에 몇 번 올렸던 테오필 루이 뒤홀(Theophile-Louis Deyrolle / 1844~1923)의 그림이
몇 장 더 모여서 이 번 기회에 소개를 드릴까 합니다.
그런데 이 화가에 대한 자료는 전해지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참 많이 아쉽습니다.
건초 만드는 사람들의 휴식 Rest of the Haymakers
잠시 쉬는 동안 아버지는 풀을 베는 날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들판에서 보냈을 아버지는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 망치로 날을 두드리고 있는데, 언뜻 봐도 고집스러운 얼굴입니다.
옆에 선 두 아가씨는 딸처럼 보입니다. 쇠스랑을 땅에 꽂고 지친 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입니다.
더구나 가녀린 그녀의 몸에 비해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이는 신발은 너무 큽니다.
그 옆에 선 소녀는 얼굴에 피곤과 짜증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만 해요.
시끄러워, 올 겨울 잘 넘기려면 부지런히 일해야지. 그래서 시집이나 가겠냐?
들판에 꽃이 지천이듯 소녀들의 마음에는 불이 한웅큼이겟습니다.
뒤홀은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유명한 곤충학자였다고 하는데 아마 어려서는 집안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뒤홀 자신이 호기심이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집안의 후광에 의한 것인지
열 아홉이 되던 해 지리학회로부터 탐험 의뢰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화가의 일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죠.
하루의 끝에 있는 풀 말리는 사람들 Tedders at the End of the Day
목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을에 건초를 만드는 일이 가장 큰 일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겨우내 동물들이 먹어야 할 양식이니까 온 식구가 붙어야 할 일이었겠지요.
숲 사이로 지는 햇빛이 풀밭을 황금빛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루 종일 시작한 일이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 모아 놓은 풀이 마르고 나면 그 다음은 남자들
몫이겠지요. 지친 몸을 잠시 땅에 내려 놓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의 끝은 이렇게 노곤한 몸과 함께 와야 건강한 사회가 되는데, 지금의 도시 생활은 어떤가요?
스물 두 살이 되던 해부터는 건축학을 배웁니다. 탐험가에서 건축가로 – 참 대단한 경력 쌓기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뒤홀은 윌리엄 부게로와 카바넬에게서 그림을 배웁니다.
제 상상이지만 건축을 위해서는 건물에 대한 모사도 필요했고 혹시 그런 이유로 화실에 다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바넬에게서 그림을 배우는 동안 뒤홀에게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있었습니다.
항구도시 콩카르노에서 온 알프레드 기유 (http://blog.naver.com/dkseon00/140104639815)를 만난 것이지요.
죽이 잘 맞았던 뒤홀과 기유는 뒤홀이 스물 일곱 되던 해, 모든 것을 정리해서 파리를 떠나 콩카르노에 정착합니다.
들판에서의 식사 Repast in the Fields / 203.2cm x 46.05cm / c.1890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노랗습니다. 가을의 황금색은 풍요로움을 뜻하죠.
비록 한 그릇 밖에 안 되는 소박한 점심이지만 먹는 사람도 음식을 가져온 사람도 마음은 푸근할 것 같습니다.
무릎을 꿇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는 사내의 모습과 그 옆에 선 여인의 모습에서 웃음이 납니다.
여인이 손에 든 것을 아무리 봐도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 마셔!
음, 알았어. 이렇게 마시면 되는 거지?
음식이 아니라 사랑을 마시는 것이라면 배가 두 배는 부르겠지요.
콩카르노에 도착한 다음 해, 뒤홀은 기유의 여동생 수잔과 결혼 합니다.
원래 두 사람 사이도 좋았는데 처남, 매부 사이가 되었으니 요즘 식으로 말하면 ‘기쁨 두 배’가 되었겠지요.
예전에 친구 여동생과 그 친구들을 모아 놓고 가르쳤던 생각이 납니다.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났지만 저는 깍듯한 선생님이었고 그 애들은 ‘학생’이었죠.
그 애들 중 한 명이 저를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그 과외를 끝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급했던 것 같습니다
꽃 따기 Picking Flowers / 71cm x 100cm
일 하러 나온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가 좀처럼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가에 거대하게 만들어진 꽃 동산을 본 것이죠.
어른 눈에는 적당한 크기로 보이겠지만 아이의 눈에는 얼마나 크고 대단해 보이겠습니까?
엄마가 작은 꽃 몇 송이를 따서 아이에게 건네 주었지만 아이는 꽃에서 눈길을 거둘 수 없는 모양입니다.
가을 숲에서 만난 꽃 밭에 마음을 준 아이, 아주 곱게 크겠습니다.
제 기억 속에는 저만한 나이에 저런 꽃 밭에 대한 기억이 없거든요.
결혼을 한 뒤홀은 점차 그 곳 어촌의 사회 속으로 녹아 들어갔습니다.
건축과 관련 된 일은 버려 버리고 오전에는 굴 양식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뒤홀 자신은 행복했겠지만 만약 뒤홀의 부모가 우리나라의 부모 같았으면 꽤 끌탕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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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브르타뉴의 노래 La Chanson De Mai Bretagne / 110cm x 151cm
어려서는 친구들이 모이면 곧 잘 노래를 불렀습니다. 동요도 있었고 만화 영화 주제가도 있었지요. 간혹 어른들의 유행가를 부르기도 했지만 그 것은 용기 있는 친구들의 몫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노래 소리는 텔레비전에서나 들을 수 있더군요. 그 많은 아이들의 노래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꽃이 흐드러진 길을 가면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5월은 푸르구나’라고 목소리 높이던 친구들 생각이 납니다.
1876년, 서른 두 살이 되던 해 살롱전에 처음 작품을 출품합니다. 화가가 되기로 마음 먹은 지 10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세간의 평도 좋았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항구 주변의 일상, 양치기, 추수하는 사람,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시장의 모습과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 옷을 입은 아이들이 담겼습니다.
빨래하는 여인들 Bid Les lavandiere / 27cm x 41cm
뒤홀의 다른 작품과는 구별이 됩니다. 섬세한 묘사 보다는 굵은 붓 터치를 이용해서 분위기를 전하는데 중점을 둔 느낌입니다. 원래 빨래터라는 곳이 정보를 교환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르지 않겠지요. 빨래를 하다 말고 이야기에 빠진 여인들이 있는가 하면 그러거나 말거나 빨래만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요즘은 집집마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 사이의 정보는 어디에서 구하는 걸까요? 버릇이지만 물 맑은 곳을 보면 빨래를 하고 싶어집니다.
뒤홀의 작품 특징은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색의 향연입니다. 지금도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부게로의 작품 속 사람에 대한 묘사를 떠올려 보면 스승이었던 부게로나 카바넬의 영향이었겠지요. 1881년, 뒤홀은 드디어 살롱전에서 본격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이 무렵 퐁타방에서 전원을 그리던 화가들 중 몇몇이 실증을 느끼고 콩카르노를 찾아 옵니다.
양치는 소녀와 양떼 A Shepherdess and her Flock / 77.5cm x 125cm
문을 열어 놓자 양떼들이 밖으로 몰려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긴 장대를 척하니 가슴에 걸치고 선 모습에서 전문가의 냄새가 납니다. 그 옆에 앉아서 양들을 보고 있는 양치기 개도 주인과 함께 한 세월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인들의 삶이 어느 시대인들 편했을까요? 생각해보면 그런 여인들이 땀과 눈물 때문에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온 것 아닐까요?
뒤홀과 기유 그리고 퐁타방에서 건너온 화가들은 곧 ‘콩카르노파’를 결성하게 됩니다. 뒤홀과 기유는 그 그룹의 대표주자였지요. 1887년 살롱전에서 3등 메달을 수상한 후 1889년에는 2등 메달을 수상합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는 동메달을 수상했습니다
푸낭의 순례제에 도착 L'Arrivée au Pardon de Fouesnant 103cm x 133cm / 1881
브라타뉴의 순례제는 가장 인기 있는 가톨릭 축제이자 전통적인 브르타뉴식 순례 행사입니다. 이 순례제를 그림에 담기 위해서 근처에 있던 퐁타방에 있던 화가들이 많이 찾아 왔는데 폴 고갱의 작품에도 이 것을 묘사한 것이 있지요. 순례제에 참석하기 위해 여인들이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가는 길, 끌고 가던 돼지가 말썽을 부리고 있습니다. 돼지를 잡아 끄는 남자와 그 돼지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여인들로 소란한데 맨 앞의 남자, 여인의 손을 잡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듯 합니다. 보아하니 남편 같지는 않습니다. 손을 잡힌 여인의 눈초리가 사납거든요. 이 손 못 놔요? 순례길이 엉망이 되는 것 같군요.
뒤홀은 일흔 아홉의 나이로 콩카르노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자세한 그의 연표를 알 수는 없지만 태어난 파리를 떠나 50년 넘게 콩카르노에서 살았던 뒤홀의 인생이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따스함이 있거든요.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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