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2. 12:38ㆍ美學 이야기
금년에는 ‘관측 사상 처음 ‘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날씨가 많았습니다.
가장 비가 많은 여름이었는가 하면 가장 더운 11월 초였습니다. 그래도 거대한 계절의 흐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보니 단풍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마음 관측 사상’ 최고에 이르렀습니다.
대신 프랑스의 앙리 조제프 아르피니 (Henri J. Harpignies / 1819-1916)의 그림 속에 담긴 풍경을 보면서 눈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큰 나무 The Big Tree
햇빛이 가득 내려 앉은 것을 보니 작은 언덕의 꼭대기처럼 보입니다.
무성한 잎사귀들은 이제 짙은 초록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키가 될 때까지 수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바람을 지켜 보았던 나무에게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을 봅니다.
나무 밑,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아이도 훗날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나무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소년의 몸 어디엔가 나이테처럼 쌓일 것이니까요.
한창 나이 때는 나중에 집을 지으면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고 지금은 나무 밑에
한 줌 재로 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아르피니는 프랑스 북부의 발랑시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벨기에 사람이었는데 프랑스로 이사 와
설탕비트 공장을 설립,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네 살 때부터 드로잉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학교에 입학해서도 미술과 음악, 지리 과목에서 유독 뛰어났다고 합니다.
‘유독’이라는 단어에 숨은 뜻이 궁금합니다.
열 네 살 무렵, 드로잉 콘테스트에서 여러 번 1등 상을 받았다는 것을 보면 미술에 대한 그의 재능은 확실했습니다.
강가에 앉아 있는 소년 Boy Seated by a River / 1872
강폭이 제법 넓습니다. 완만한 경사를 만난 강물은 급한 발걸음을 하는 바람에 비탈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고
다시 잰 걸음을 하게 되자 거칠게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나무 밑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어렸을 때 부른 던 동요 중에 흐르는 강물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보면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라는 답이 이어지는 곡이 있었죠.
바다에 거의 가까워진 나이가 되고 보니 소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고 온 것은 좋았는데 예전 냇물일 때보다, 강물일 때부터 많이 흐려지고 지저분해졌단다’
아르피니는 삼촌과 함께 아버지의 일을 거들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는데 그 때를 회상한 그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태양과 아름다운 날들로 나는 행복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종이에 자주 스케치하곤 했다’
열 아홉이 되던 해, 학교를 졸업할 무렵 장 아샤르 라는 화가를 알게 됩니다.
아샤르는 그에게 프랑스 전역을 여행할 것을 권합니다. 비록 2개월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 때의 감동은 평생을 가게 됩니다.
무제 No Title 64.8x43.2 1872
원래 제목이 없었던 것인지 소개하면서 제목을 누락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랜만에 제목이 없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어두워가는 하늘 밑으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면 저녁 무렵입니다.
길에서 돌아 온 사람들은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냇가로 나왔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또 한 쪽에서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녁 무렵의 차분함과 약간의 피곤함이 갈색 톤에 모두 녹아 들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 붙이고 싶은 제목은 ‘저녁 무렵의 나른함’입니다. 그런데 나른하기에는 너무 맑은가요?
아르피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업가나 기술자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아르피니는 이 도시 저 도시로 아버지 회사를 대표하여 일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르피니는 그런 바쁜 시간 속에서도 드로잉 수업을 계속 들었습니다.
결국 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의 결심에 대해 아버지는 화가로 성공할 때까지
그에게 매달 150프랑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 맞습니다.
아르피니의 나이 스물 일곱이었죠. 훗날 그는 더 일찍 화가가 되지 못한 것을 늘 후회했다고 합니다.
평생 후회하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 아르피니의 욕심이 좀 과한 것 아닌가요?
노르망디 마을을 지나는 길 Path through a Normandy Village / 1877
동네 어귀에 서 있는 나무를 지나 길이 마을 옆으로 뻗어 있습니다.
길은 문명도 가져왔지만 반문명도 그 길을 따라 왔습니다. 사랑도 그 길을 떠났고 또 돌아 왔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오고 있는 사람 모습은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보입니다.
비록 몸이 길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하나가 된 모습이지만 몸 전체에서 호기심이 느껴지거든요.
호기심은 여행자가 숨길 수 없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걷는 일이 줄었습니다.
아무래도 늦가을부터는 정신이 확 들도록 걷는 시간을 늘려야겠습니다.
파리로 간 아르피니는 장 아샤르의 화실에 입학합니다. 그 곳에서 아르피니는 거의 장인 수준에 가까운 수업을 받습니다.
스승인 아샤르는 아주 탄탄한 기초를 가르칩니다. 나중에 아르피니가 풍경화를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생각해보면 요령보다는 기초를 확실하게 잡아 주었던 선생님이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습니다.
르 로얄, 망통 부근 Environs De Menton, Le Royal / 66cm x 81.3cm
조금만 더 걸어가면 드넓은 호수가 모두 보이겠지요.
나뭇잎들은 햇빛 아래 옅은 색으로 반짝이고 있고 호수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 키 작은 풀들은 몸이 휘었습니다.
참 맑고 시원한 풍경입니다.
떨어진 잎들이 호수로 이어지는 길 위를 덮고 있지만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보입니다.
저도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서 나무 밑에 몸을 내려 놓고 싶습니다. 휘파람이라도 불며 호수를 보고 싶습니다.
1848년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아르피니는 스승과 함께 파리를 떠나 벨기에로 피난을 합니다.
벨기에 생활이 지루해질 무렵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처음 찾아 간 이탈리아는 그에게 천국이었습니다.
대가들의 수 많은 작품,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화려한 풍경들이 그를 사로 잡았던 것이죠.
이후 그의 이탈리아 여행은 여러 번 계속됩니다. 혹시 영감을 얻는 자신만의 장소가 있으신가요?
초원, 햇빛 효과 Meadow, Sunlight Effect / 1889
이 작품도 햇빛이 가득하군요.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숲으로 인해 아늑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풀어 놓은 소는 그들끼리 모여 있고 그림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길 위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나무는 하늘을 향해 가지고 있는 팔을 모두 벌렸습니다.
덕분에 초원 위에는 거대한 양산이 만들어졌습니다. 보일 듯 말 듯 저 멀리 아득하게 산들이 달려 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그림자 속 흰 점으로 남은 꽃들에게도 평화가 가득하겠지요.
2년간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아르피니는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수 많은 스케치를 합니다.
나폴리는 6일 정도 머물 계획이었지만 6개월을 머물게 됩니다.
‘아버지가 부르시지만 않는다면 평생을 이탈리아에서 살고 싶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탈리아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1852년 파리로 돌아 온 아르피니는 자신의 화실을 열고 풍경 속에 있는 아이들 모습을 주제로 작품들을 제작합니다.
상프리베의 가을 Autumn at Saint-Prive / 32.7cm x 44.5cm / 1890
아직 가을이 깊지는 않군요. 성격이 급한 녀석들은 벌써 떠날 준비를 끝내고 이미 노란색으로 옷을 바꿔 입었지만
느긋한 녀석들은 이제 조금씩 옷을 벗는 중입니다. 키 큰 나무들과 그 옆에 숲들이 호수에 몸을 던졌습니다.
하늘도 한쪽을 던져 놓았습니다. 누군가 호수로 걸어 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군요.
너무 한적한 가을은 쓸쓸하거든요.
1853년, 서른 네 살의 늦은 나이로 아르피니는 살롱전에 3점의 작품을 출품, 데뷔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다시 프랑스의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는 중에 퐁텐블로숲에 도착합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그 곳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던 바르비종파 화가들을 만났지만 교류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숲 속과 주변 나무들의 묘사해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죠. 이 때 얻은 별명이 ‘나무들의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코로의 작품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었죠. 코로는 그의 영원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달빛 풍경 Paysage Au Clair de Lune / 50.2cm x 61cm / 1890
가을 밤, 달빛이 좋아서 천천히 산책을 나섰습니다. 호숫가에 서 있는 큰 나무가 보고 싶어 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달은 나무에 가로등처럼 걸렸고 그 빛은 하늘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문득 나무 그림자 밑에 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을 밤을 즐기러 온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니었군요.
반가워서 말을 건네볼까 했지만 푸른 색 상의를 입은 남자의 모습이 우울해 보입니다. 그냥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마음 속으로 ‘가을, 잘 이겨내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1859년 파리를 떠나 니베르니로 거처를 옮긴 아르피니는 스베르 해안과 알리에르 해변의 풍경을 그립니다.
그의 실험적인 스타일과 구성은 아주 독특했습니다.
빛과 자신의 감정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를 담아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했습니다.
1861년 살롱전에서 아르피니는 처음으로 성공을 거둡니다.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죠.
풍경 Paysage
작은 보 위로 걸린 다리를 한 사내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보면 일을 하러 나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천천히 밭 길을 걸어 볼 생각인가요? 맑은 날 가을 벌판을 따라 걷는 것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복 중 하나 아닐까 싶습니다.
아르피니의 그림은 마치 가을의 잎들처럼 힘이 빠진 색들이 많아서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합니다.
그림 속 마다 등장하는 나무, 이 곳에서 다시 만나는군요.
살롱전 출품은 1913년, 아르피니가 아흔 네 살이 될 때까지 계속되는데 여러 번의 수상과 함께
1878년 세계 박람회 은메달, 1900년 그랑프리 수상까지 상복도 많았습니다.
특히 1864년부터 2년간 그의 수채화 전시회가 열리는데, 수채화에서도 탁월했던 그의 작품을 뉴욕과 런던의 갤러리에서는
연간 70만 프랑어치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명예와 부의 성취는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마을 풍경 View of a Village / 53cm x 82.5cm / 1882
참 말끔한 풍경입니다. 초록 세상 속에 서 있는 하얀 교회가 더 맑아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길을 걷는 한 남자가 보입니다. 언뜻 보면 풍경 속 정물입니다.
사람이 자연 속에서는 정물인 것이 맞지요. 숲 너머로 지붕들이 보입니다.
잠깐만 눈을 돌리면 다른 세상인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군요.
1878년 쉰 아홉의 아르피니는 상프리베에 집을 구입, 정착합니다. 그 곳에 문을 연 화실은 빛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곧 학생들이 몰려 들었고 그는 그들과 함께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렸는데, 교사가 아니라 친구의 역할이었답니다.
근사하지 않은가요?
말년에는 거의 앞을 보지 못했지만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초기 작품에 비해 세부적인 것이 무시된 반면 은색이 주를 이루던 작품에도 화려한 색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인 스승인 코로의 색을 닮아간 것일 수도 있지요.
아흔 일곱 살 생일을 정확하게 두 달 넘기고 아르피니는 상프리베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결코 짧지 않은 한 인간의 인생이었고 화가로서의 삶도 나쁘지 않았으니 바랄 것이 없겠지요, 아르피니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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