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2. 12:38ㆍ美學 이야기
예전에 모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작품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화가의 이름을 말할까 하다가 러시아 화가들 작품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당시 한참 러시아 미술가들에게
빠진 이유도 있었지만 보고 나면 머리에 오래 남기 때문이었지요. 그 동안 이 곳을 통해서 소개한 러시아 화가가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창 밖으로는 11월 하순인지 봄인지 구별이 안 될 만큼 안개가 자욱합니다.
잊고 있었던 콘스탄틴 마코프스키(Konstantin Makovsky / 1839~1915)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보야르는 러시아의 중세 귀족을 말합니다. 귀족의 딸이 시집을 가는데 이 정도는 화려했겠지요.
혹시 하객들이 요즘처럼 ‘뽀뽀 해!’라고 외쳤을까요? 신부는 고개를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런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가져가는 듯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두 남녀에게 쏠렸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데 당연하지요.
간혹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뽀뽀하는 것을 보면 다들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고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혹시 집에서 뽀뽀 안 하십니까?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마코프스키는 화가가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고르 마코프스키는 아마추어 화가였는데, 화가로서 활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 상트 페테르부르그 종합 예술학교의 공동 설립자가 됩니다.
맏이로 태어난 마코프스키 밑으로 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나중에 모두들 다 유명한 화가가 되었으니까
대단한 가족이죠. 이런 분위기 탓인지 훗날 마코프스키는 ‘아카데미나 교수가 아니라 오직 가족에게서
그림을 배웠다’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이 들었다면 기분이 나쁘셨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표도르 고두노프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한 가짜 드미트리 암살자
False Dmitrys agents murdering Feodor Godunov and his mother / 1862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어렵습니다. 방금 한 사내가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찌르고 체포 되었습니다. 쓰러진 사람은
이미 목숨을 잃었습니다. 흥분한 주위 사람들이 암살자에 대해 주먹을 날릴 기세입니다.
죽은 사람은 당시 러시아의 짜르였던 고두노프입니다.
고두노프는 이반 4세의 아들인 표도르가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섭정을 했던 사람입니다. 표도르와는 처남, 매부
사이였지요. 황제의 자리에 대한 욕심이 생긴 고두노프는 표도르의 동생이자 후계자였던 드미트리를 암살합니다.
그리고 표도르가 죽자 황제의 자리에 오르죠. 그러나 민심은 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뒤 죽었다는 드미트리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오자 고드노프는 갑자기 사망합니다. 혹시 암살단이 그를
살해 한 것은 아닐까요? 물론 나중에 등장한 드미트리는 가짜였습니다.
열 두 살이 되던 해 마코프스키는 모스크바 예술학교에 입학하는데, 당시 젊은 이들에게 열려 있는 유일한
학교였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최우수 학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상을 쓸어 담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요. 스승의 지도로 그는 낭만주의 화풍을 익혔고 훗날 장식적인 것에 치중한 것도 이때 스승들에게
배운 것이었습니다.
천둥에서 도망치는 아이들 Children running from a thunderstorm / 1872
아직 비는 내리지 않지만 벌판 어디에선가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언니는 동생을 등에 업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놀란 동생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이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 보는
언니의 표정도 불안합니다. 점차 밀려 오는 천둥과 함께 바람이 풀들을 흔들고 있는 들판을 걸어 온 소녀의
맨발이 애처롭습니다.
어렸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천둥이었습니다. 하늘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는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소리였지요.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안겨 있으면 무서움이 덜 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저에게 매달립니다.
간혹 아내도 제 옆으로 옵니다. 별 것 아니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저라고 안 무섭겠습니까?
무서운 것은 나이 들어도 무섭습니다.
마코프스키는 모스크바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세운 학교가 모태가 된 상트 페테르브르그 종합 예술학교로
진학합니다. 이 진학 코스는 러시아 화가들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처럼 보입니다.
입학하고 난 2년 뒤부터는 아카데미에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 났습니다.
아카데미 대상에 참여할 동료 13명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것이죠.
쉬고 있는 시골 아이들 Peasant Children at rest / 46cm x 37.5cm
놀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쉬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에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아이들의 옷차림을 보니 남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입고 있는 옷은 커다란 천을 적당히 잘라 걸친 것 같습니다.
오른 쪽 아이의 소매는 얼마나 심하게 입었는지 까맣게 되었습니다. 신발도 언뜻 보니 우리의 짚신처럼 보입니다.
설마 이 아이들이 방금 전까지 일을 한 것은 아니겠지요?
생활은 힘들겠지만 그 나마 다행인 것은 표정에 아이들의 것이 그대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표정이 느껴진다면, 그 것은 참 세상이 아닙니다. 여기 지금 세상은 어떤가요?
‘반란’의 시작은 제가 보기에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아카데미가 그림의 주제로 내 건 것이 스칸디나비아의
신화였습니다. 아무래도 전통적인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주제였지만 젊은 화가들은 이 결정에
반대하고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폐쇄적인 아카데미의 규범과 주제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싶었던 것이지요
당연히 조금만 더 있으면 받게 될 공식적인 학위도 포기한 것이 되었죠. 학교를 떠난 그들에게는 2급 화가의
호칭이 부여되었습니다.
여름 오후 Summer Afternoon
햇빛 맑은 오후입니다. 숲에서 나온 길 위에는 마차 바퀴 자국이 선명합니다.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모두가 그림을 보는 저를 바라 보는 듯합니다. 마치 배웅이라도 하는 모습인데, 그렇다면 길 위에 남겨진
마차 바퀴 자국은 제가 탄 마차의 것이겠군요.
다시 돌아 올게요.
손을 높이 흔들고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학교를 떠난 마코프스키와 동료들은 크람스코이가 주도하던 예술가 조합의 멤버가 됩니다.
이 조합이 훗날 러시아 미술에 큰 전환점이 되는 이동파가 되죠. 이제까지 그렸던 주제들을 버리고
전형적인 러시아의 일상과 풍경을 그림에 담기 시작합니다. 그의 초기 작품을 두고 러시아적인 주제에 관한 한
‘챔피언’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마코프스티는 이동파 멤버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러시아 신부의 의상 The Russian Bride's Attire / 1889
결혼식을 앞둔 신부 치장이 한창입니다. 어린 동생은 곧 시집을
가면 한동안 못 볼 언니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는지 무릎에 고개를 기댔습니다. 그런 동생이 안쓰러운지 언니는 손을 들어 동생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즐겁고 호기심 많은 표정입니다. 옷차림도 화려합니다.
17세기 러시아의 좋았던 시절을 그림에 담았던 마코프스키가 마음껏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세상에 예쁘지 않은 신부가 있던가요?
그러나 평생 이동파로 활동할 것 같았던 마코프스키는 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동파 전시회에도 참여하고 아카데미에도 출품을 한 것이죠. 작품의 주제만 확실하다면 어디에다 출품하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을까요? 이동파의 창립 멤버가 되기 1년 전, 1869년 마코프스키는 아카데미의 교수가
됩니다. 아카데미의 폐쇄성이 싫어 아카데미를 떠났던 그가 교수로 돌아 온 것이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타마라와 데몬 Tamara and Demon / 1889
타마라는 공주입니다. 이웃 나라 왕자와 약혼을 했는데 그 왕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 죽고 맙니다. 슬픔에 빠진 그녀를 위로 한 것은 그녀를 지켜 보던,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데몬입니다. 그녀와 함께라면 더 이상 ‘악마’가 아니어도 좋았지요. 그러나 둘이 사랑의 밤을 보내고 난 뒤
그녀는 신의 노여움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악마는 사랑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악마는 착할 수 없는 걸까요? 천사로 태어나 악마가 되는 사람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께서 좀 심했다 싶습니다. 슬픔 가득한 데몬의 눈빛이 안타깝습니다.
비평가들의 평가와는 달리 마코프스키의 작품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의 사실주의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됩니다. 또한 러시아의 중요한 사건을 묘사한
역사화는 그의 또 다른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1870년 대 중반 이집트와 세르비아를 여행하고 난 후,
작품에 변화가 옵니다. 그 때까지 그의 주된 관심이었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문제가 색과 모양의 예술적인
문제로 옮겨 간 것이죠.
쿠지마 미닌의 선언 Proclamation of Kuzima Minin / 1896
1610년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침략, 점령합니다. 2년 뒤 모스크바를 다시 탈환하는데 가장 공이 큰 사람이 바로
쿠지마 미닌이었습니다. 그림에서는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쿠지마 미닌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들고 그를 향해 모여 들고 있습니다. 아마 무기를 사고 군인을 무장하기 위한
자금을 위한 것이겠지요. 그림 속에는 해 보겠다는 사람들의 의지는 높은 성곽과 그 위를 나는 새들까지 이어져
하늘에 닿는 느낌입니다. 자랑스러웠던 과거의 일을 그림에 담는 것이 19세게 러시아 화가들의 주요 주제였지요.
결국 1883년, 마코프스키는 이동파와 결별합니다. 이 일로 많은 민주적인 비평가들은 이동파의 이상을 변절시킨
사람으로 그를 폄하합니다. 그러나 또 한 편에서는 그를 러시아 인상파의 선두주자라고 평가하기도 했지요.
한 사람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평가도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그는 1891년 살롱을 지향하는 상트 페테르브르그
미술협회의 멤버가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는 고집이
보입니다.
러시아 신부 Russian Bride
결혼을 하고 난 후 몇 년 동안 거실에 결혼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이사를 다니면서 언제가 액자를 떼었고
그 뒤로는 걸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그 사진을 우연찮게 다시 찾았습니다. 2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을 두고
저와 아내가 사진 속에 있었습니다. 아내를 보니 얼굴에 주름이 늘었고 얼굴이 통통해졌습니다.
머리카락 수가 조금 줄어 든 것을 제외하면 그런 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더군요. 고마운 일이지요.
1880년대 초상화와 역사화의 선두주자가 된 마코프스키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3점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결과는 대상이었습니다. 당대에 가장 칭송을 받은 러시아 화가이자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화가가 된 것이죠.
쉰 두 살이 되던 해, 그는 아카데미의 회원이 됩니다. 그가 이동파에서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 온 것에 대한
자료를 구하지 못해 그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화가로서만 그를 읽는다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목욕을 준비하는 미인 Beauty preparing to bathe
초기의 마코프스키의 작품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선과 색의 변화도 확실하게 구별됩니다. 힘들게 목욕을 준비하는 여인을 보다가 요즘 허리 선이 나왔다고 운동에 더욱 힘을 쏟고 있는 아내를 불렀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정도 몸매는 이제 불가능할 것 같지? 무슨 소리, 두고 봐, 곧 내가 저런 몸매 보여줄게. ‘곧’이라는 단어가 제 생애에는 불가능한 시간이라는 것을 아내는 모르는 모양입니다.
1915년 9월 17일, 상트페테르브르그에서 교통 사고가 있었습니다. 전차가 승용 마차를 들이 받은 것이죠.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마토프스키였습니다. 일흔 여섯의 나이였으니까 당시 사회를 생각하면 세상을 떠나기에 아주 억울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급작스러운 사고가 아니었다면 좀 더 많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지는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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