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허자 步虛子 ㅡ 장춘불로지곡 長春不老之曲 / 보허사 步虛詞 ㅡ 현악 보허자, 황하청(黃河淸)

2019. 2. 16. 23:39율려 이야기





   ***   한국고전종합DB에서 '보허자' 를 넣어 검색한 결과, <국조보감> 등 고전번역서에서 10건, <조선왕조실록>에서 16건, <승정원일기>에서 10건, 성현<용재총화> 등 고전원문에서 3건,  주세붕<무릉잡고 (武陵雜稿, 1564년 간행)> 등 한국문집총간에서 12건,  <진연의궤(進宴儀軌)> 등 해제 고전번역서에서 1건, 각주 정보에서 3건 등 도합 55건의 문헌이 검색되었으나 대표적인 2건 외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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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년 신축(1421) 9월 11일(신미)


03-09-11[04] 예조에서 담제 뒤에 형식에 대해 올린 소문


[DCI]ITKC_JT_D0_A03_09A_11A_00040_2005_002_XML DCI복사 URL복사

   예조에서 계하기를,
“담제(禫祭) 뒤에 광효전(廣孝殿) 제향(祭享)에 풍악을 올리는데, 친향(親享)할 때와 재궁(齋宮)에서 나오실 때에는 주악으로 성수무강(聖壽無彊)을 아뢰고, 오르고, 내리고, 술 붓고, 술 올릴 때에는 태평년(太平年)을 아뢰고, 재궁(齋宮)으로 돌아가실 때에는 보허자(步虛子)를 아뢰고, 섭행(攝行)으로 술 부어 올릴 때에는 태평년을 아뢰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2 집 451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예술-음악(音樂)


  *** 보허자 악보 링크 :  『국악전집, 제19집 : 여민락 만, 여민락 영, 해령, 보허자, 낙양춘, 경모궁제례악, 정동방곡, 유황곡』, 서울: 국립국악원, 2007.  https://www.gugak.go.kr/site/program/board/basicboard/view?menuid=001003002002&pagesize=10&boardtypeid=12&boardid=1288


한국민족문
화대백과사

보허자

동의어 장춘불로지곡 다른 표기 언어步虛子
요약 테이블
성격 당악곡
유형 작품
분야 예술·체육/국악

요약 고려 때 들어온 당악(우리 나라 궁중음악 중 중국에서 들어온 당·송의 속악) 중의 하나.

내용

고려 때 들어온 당악(우리 나라 궁중음악 중 중국에서 들어온 당·송의 속악) 중의 하나.

  <장춘불로지곡 長春不老之曲> 등의 딴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나, 이러한 이름은 조선 말기 진연(進宴: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이 있을 때마다 임시로 지어서 쓴 것이기 때문에 많은 다른 이름이 있다.

  <보허자>≪고려사≫ 악지 당악조에 소개된 당악곡 43편 중에는 들어 있지 않고, 당악정재(唐樂呈才:송나라에서 들어온 궁중무용)의 하나인 <오양선 五羊仙>을 춤추다가 부르는 창사(唱詞)로 그 가사와 함께 전해온다.

   가사는 미전사(尾前詞:前段)미후사(尾後詞:後段)의 2단으로 되어 있다. 음악 형식은 전단인 미전사(A·B)를 부르고 후단인 미후사를 부를 때는 미후사의 첫 구의 가락만 미전사 첫 구의 가락과 다르게 부르고(C), 둘째 구 이하는 미전사 둘째 구 이하의 가락을 반복한다(B). 이와 같이 A·B·C·B의 부분, 즉 미후사의 첫째 구를 두(換頭)라 하고 미후사의 B부분을 환입(還入)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식은 송나라에서 들어온 사악(詞樂)의 특징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당악이 점차 도태되고, 겨우 <보허자>·<낙양춘 洛陽春> 두 곡만이 전승되었으나, 이 두 곡도 향악화(鄕樂化)되기 시작하여 원래의 형식과 음악적 특징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향악화 과정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대악후보(大樂後譜)

   ≪대악후보≫에 전하는 <보허자>는 미전사와 미후사의 가사와 환두가락에 의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음역(音域)은 당악기 음역인 한 옥타브 반이고, 거문고의 특징인 문현(文絃:거문고의 제1현)과 청현(淸絃:향비파의 제2현)의 용법이 없다. 이런 점에서 ≪대악후보≫의 <보허자>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2) 금합자보(琴合字譜)

   ≪금합자보≫안상(安瑺)1572년(선조 5)에 편집한 거문고 악보이다. 이 시기의 음악은 성종 이전의 경안법(輕按法:거문고나 해금 연주 때 줄을 가볍게 짚어 연주하는 법)에서 역안법(力按法:거문고에서는 줄을 밀어 짚고, 해금에서는 줄을 당기어 짚는 연주법)으로 그 연주법이 바뀌면서 자유자재한 농현법(弄絃法:현악기 연주 때 본래 음 이외에 여러 가지 꾸밈음을 비롯하여 미묘한 떨림소리를 내는 기법)의 발전으로 모든 향악이 표현력을 가진 음악으로 전환한 때였다. 당악곡인 <보허자>도 이 시기에 와서 향악화 과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지입(指入):즉 미전사의 가락과 미후사의 환두가락만 남고 둘째구 이하 환입가락은 생략되었다. ② 적보(笛譜)는 하오(下五)에서 상이(上二)까지 원래의 당악기 음역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하여 거문고는 음역이 넓어져서 두 옥타브에 이른다. ③ 아직 장별(章別)은 없고, 거문고 연주법의 특징인 문현과 청현의 용법이 가미된다.

④ 거문고의 연주법은 줄을 가볍게 짚고 타던 경안법에서 줄을 밀어서 타는 역안법으로 바뀐다. 따라서, 농현법·퇴성법(退聲法)·전성법(轉聲法) 등이 가능하게 되어 표현력을 가지는 음으로 전환, 발전하게 되었다.

(3) 신증금보(新證琴譜)

   숙종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증금보≫신성(申晟)이 편집한 악보로 전한다. 이 거문고 악보는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나, 부자연스럽고 무리한 점이 많이 눈에 뜨인다. ① 미전사와 미후사가 모두 전한다. ② 가사 붙임에 잘못된 점이 너무 많은데, 이런 현상은 가사 부르는 법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③ 거문고 연주법에서 청(淸)이 나오는 자리를 단락으로 장(章)의 구분이 시도되고 있으나 불합리하다.

④ 음역이 넓어지고 가락이 ≪금합자보≫보다 복잡해진다. ⑤ 문현 용법을 도입하되, 한장마다 규칙적으로 첫박과 중간박에 두 번씩 사용한다. ⑥ 농현법을 쓰고 있다. ⑦ 환입가락 끝에다가 또 환두가락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같이 환입가락 끝에 환두가락을 첨가한 것이 후대의 <밑도들이 尾還入>로 변주되는 틀이 된다.

(4) 한금신보(韓琴新譜) 

   영조시대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금신보≫에서는 <보허자>의 가사가 완전히 탈락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주어 다음과 같은 파생곡이 생긴다. ① ≪한금신보≫의 <보허자>는 원래의 미전사 가락에 환두가락까지로 되어 있다. 이것은 현행 거문고·가야금 등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보허사 步虛詞>와 같다. ② <보허자본환입 步虛子本還入>은 원래의 <보허자> 2장 일곱번째 장단(환입부분) 이하의 가락을 변주한 것으로서, 현재의 <밑도들이>에 해당한다.

<보허자삭환입 步虛子數還入><보허자본환입>의 변화곡으로 현행 <웃도들이 細還入>에 해당한다. ④ <보허자제지 步虛子除指> ‘보허자 가락덜이’라는 뜻으로 이 악보를 해독하면, 현행 <우조가락도들이 羽調加樂還入>에 해당한다. ⑤ 이상 ≪한금신보≫의 <보허자본환입>·<보허자삭환입>·<보허자제지>는 원곡인 <보허자> 장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가락과 속도만 달라진 곡들이다.

   이 곡들이 <보허자> 장단에서 벗어나 현행 장단으로 변주된 것은 순조 때≪유예지 遊藝志≫ 이후이다. 그 뒤 고종 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죽금보 三竹琴譜≫에 이르러서는 <양청환입 兩淸還入>이 파생되는데, <양청환입>은 <웃도들이>를 변주한 곡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허자>는 원래 장별이 없었으며 1572년에 간행된 ≪금합자보≫에도 없었다. 그 뒤 숙종 무렵의 ≪신증금보≫에 이르러 장별이 시도되었으나 불분명하고, 영조 무렵의 ≪한금신보≫에도 장의 구분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보허자>를 7장으로 구분한 것조선 말기에 속하는 ≪속악원보 俗樂源譜≫ 지편(智篇)과 신편(信篇), ≪유예지≫ 시기부터이다. 현행 <보허사>(絃樂 步虛子)의 1·2·3·4장은 느린 속도로 연주되고, 5·6·7장은 빠른 속도로 연주된다.

   그런데 ≪대악후보≫는 물론 ≪금합자보≫·≪신증금보≫ 등 영조 이전의 <보허자>에서는 중간에 속도가 변하는 요소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5장 이하에서 빨라지는 연주법은 ≪한금신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관악기 중심의 <보허자>는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속악원보≫<보허자> 7장 가운데에서 1·3·4장만이 전해온 것이다.

조선시대 궁중의 연회에서 불렸던 악장(樂章)의 하나로 세종 때 처음 악장의 가사로 확정되었고, 세조 때 다시 일부를 고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고려 때부터 당악정재인 <오양선> 등에 보허자령(步虛子令)이라는 악곡의 가사로 ‘벽연농효사(碧烟籠曉詞)’라는 제목 아래 불렸다.

한문 가사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푸른 안개 새벽하늘에 자옥한데/바다 물결 한가롭고 강가의 몇 봉우리는 서늘해라/패환(佩環)소리 속에서 기이한 향기 인간세상에 떨어지는데/오색구름 끝에선 강절(絳節) 멈추네/한데 어우러져 이삭 패인 좋은 벼의 상서 가리키고/ 한차례 웃어 붉은 웃음 띄워보네/구중 높은 궁궐 바라보며 하늘 향해 세 차례 축수하기를/만만년 두고두고 남산 맞보고 솟아 있을지라.”

  이처럼 유선(遊仙)의 황홀경을 묘사한 뒤, 이어 대궐을 향하여 송축하여, 태평시절의 즐거움과 또한 임금의 장생불로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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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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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허자

다른 표기 언어步虛子

요약 한국 전통 관현합주곡의 하나.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이라고도 부른다. 보허자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중국 송사악(宋詞樂)의 하나로 낙양춘(樂陽春)과 함께 지금까지 당악(唐樂)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는 당악곡들이 향악화되어 당악의 원형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도들이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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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에는 송악(宋樂)이 매우 성행했는데, 이는 〈고려사〉 악지 당악조에 보이는 수십 편의 송사(宋詞)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보허자는 송사악 중 오양선(五羊仙)이라는 당악정재에서 부르던 창사(唱詞)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보허자의 편성 악기는 당피리·대금·해금·아쟁·당적·북·장구·편종·편경 등이다. 관악기 중심의 음악이기 때문에 관악보허자(管樂步虛子)라고도 한다. 이 음악은 주로 임금이나 왕세자의 출궁악(出宮樂)과 각종 연향악(宴享樂)에서, 특히 궁중 정재(呈才)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었다. 보허자는 몽금척·헌선도(獻仙逃)·수연장(壽延長)·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등 많은 궁중 정재에서 사용되었다. 한편 장생보연지무에서는 보허자 1·2장의 가락에 맞추어 한문가사를 노래하는데, 이를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라고 한다. 원래 보허자는 모두 7장이었는데, 지금의 보허자는 그 가운데 1·3·4장만을 뽑아서 3장으로 만든 것이다. 보허자의 음악형식은 환두형식(換頭形式)에 속하는데, 이는 음악을 반복할 때 처음부분을 바꾼다는 뜻으로 도들이형식이라고도 한다. 미후사의 첫째 구(句)는 미전사의 첫째 구와 가락이 다르나, 둘째 구 이하의 가락은 미전사의 가락을 그대로 반복하는데, 이를 환입(還入)이라고 한다. 한편 가야금·거문고 등 현악기로만 연주하는 보허사(步虛詞)가 있다. 이 곡은 원곡인 보허자에서 미전사의 가락과 미후사의 환두가락을 합쳐 만든 변주곡이다. 보허자에서는 보허사뿐만 아니라 향악화하는 가운데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원래 한 글자가 한 박을 차지하는 일자일음식(一字一音式) 성악곡에 음계는 7음음계인 당악식이었으나, 6음음계로 변하고 가사도 탈락하여 기악곡으로 변했다. 조선 말기에는 보허사에서 여러 파생곡들이 나타났다. 조선 후기에 향악화된 보허자는 주로 민간에서 현악기로 연주되던 현악보허자궁중에서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알려진 관악보허자로 크게 나뉜다. 관악보허자에 비해 현악보허자에서 많은 변주곡들이 생겨났다. 우선 밑도들이로 알려진 미환입(尾還入)은 세환입(細還入)의 선율을 거문고주법으로 바꿔 만든 변주곡이고, 우조가락환입(羽調歌樂還入)은 세환입의 선율을 변주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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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대백과사

보허사

동의어 현악 보허자, 황하청(黃河淸) 다른 표기 언어 步虛詞

요약 테이블
시대 고려
성격 궁중음악
유형 작품
분야 예술·체육/국악

요약 궁중 연례악(宴禮樂).

내용

   고려 때 중국의 송나라로부터 들어왔다. 원이름은 「보허자(步虛子)」이며, 아명(雅名)은 「황하청(黃河淸)」이다. 「보허사」라는 이름은 조선 영조 때부터 쓰였고 순조 때의 옛 악보인『유예지(遊藝志)』에는「보허사」의 이름으로 거문고악보가 전한다.

   관악기 중심「보허자」와는 달리 거문고·가야금·양금과 같은 현악기로만 연주하는 까닭으로「현악 보허자」라고도 한다. 원래 「보허자」는 고려 때 들어온 당악정재(唐樂呈才)인 「오양선(五羊仙)」에서 창사(唱詞)로서 노래불렀고, 그 창사는 미전사(尾前詞)와 미후사(尾後詞)의 두 단으로 되어 있다.

「보허자」조선 중기 이후로 향악화(鄕樂化)되었고, 1572년(선조 5)안상(安瑺)이 엮은 금합자보(琴合字譜)』(일명 安瑺琴譜)에는 미전사 가락에 미후사 첫구 환두(換頭)가락만이 전한다.『유예지』의「보허사」와 현행 「보허사」악보는『금합자보』의「보허자」와 같이 미후사 환두가락까지로 되어 있다.

현행 「보허사」는 1·2·3·4장은 느린 2분의 10박자이고, 5·6·7장은 빠른 2분의 10박자로 연주된다. 음계구성은 황(黃)·태(太)·중(仲)·임(林)·남(南)의 5음이 중축을 이루고 있어 평조적인 음계 같으나, 6장 중간 한 장단에 한하여 무(無)음이 더 출현하는 점에서 5음음계인 평조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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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금합자보(琴合字譜)』
  • 『유예지(遊藝志)』
  • 『국악논고』(장사훈, 서울대학교출판부, 1966)
  • 「보허자논속고」(장사훈,『한국음악연구』, 보진재, 1975)
  • 「보허자고」(이혜구,『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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