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상대별곡(霜臺別曲)

2019. 2. 24. 19:10율려 이야기

 


<제1장>
華山南(화산남) 漢水北(한수북) 千年勝地(천년승지)

廣通橋(광통교) 雲鍾街(운종가) 건너 드러

落落長松(낙낙장송) 亭亭古栢(정정고백) 秋霜烏府(추상오부)

위 萬古淸風(만고청풍)ㅅ 景(경)긔 엇더하니잇고.

葉(엽) 英雄豪傑(영웅호걸) 一時人才(일시인재) 英雄豪傑(영웅호걸) 一時人才(일시인재)

위 날조차 몃 부니잇고.

  

 

* 華山南(화산남) : 화산의 남쪽. ‘화산’은 삼각산(북한산)을 일컫는 말

漢水北(한수북) : 한강의 북쪽, '한양'을 가리킴

山之南, 水之北 →陽, 풍수지리설의 표현

千年勝地(천년승지) : 예로부터 좋기로 이름난 땅

* 廣通橋(광통교) : 다리의 이름, 광교(넓은 다리)

* 雲鐘街(운종가) : 지금 서울의 종로 부근

*건나 드러 : 건너 들어가

* 落落長松(낙락장송) : 가지가 축축 늘어진 큰 소나무

* 亭亭古栢(정정고백) : 우뚝 솟은 오래된 잣나무->  이 글에서는 사직의 원로대신 표현

萬古淸風(만고청풍) : 오랜 세월 동안 닦아온 맑은 기풍. 청렴한 모습

* 秋霜烏府(추상오부) : 추상같은 사헌부

*엽 : 곡조 이름

* 一時人材(일시인재) : 한 시대의 뛰어난 인물

*날조차 : 나를 위시하여

*몃부니잇고 : 몇 분(사람)입니까?

  

북한산의 남쪽, 한강의 북쪽, 옛날부터 이름난 경치 좋은 땅 한양,

광통교를 건너 운종가를 지난 곳에, 낙락장송과 우뚝 솟은 잣나무가 우거진 추상 같은 사헌부.
아!, 만고에 변함 없는 청렴한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영웅 호걸과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들, 영웅 호걸과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들.
나를 위시하여 몇 사람입니까?


<제2장>
雞旣鳴(계기명) 天欲曉(천욕효) 紫陌長堤(자맥장제)

大司憲(대사헌) 老執義(노집의) 臺長御使(대장어사)

駕鶴驂鸞(가학참난) 前呵後擁(전가후옹) 辟除左右(벽제좌우)

위 上臺ㅅ景(상대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엽) 싁싁 한뎌 風憲所司(풍헌소사) 싁싁 한뎌 風憲所司(풍헌소사)

위 振起頹綱ㅅ景(진기퇴강경) 긔 엇더 하니잇고

 

* 紫陌長堤(자맥장제) : 자줏빛 두렁과 긴 제방, 곧고 넓은 길

* 大司憲(대사헌) : 사헌부의 우두머리

* 執義(집의) : 사헌부의 종3품 벼슬

* 臺長(대장) : 사헌부의 ‘장령’과 ‘지평’의 별칭

* 駕鶴驂鸞(가학참란) : 아름다운 가마

* 前呵後擁(전가후옹) : 앞에서는 벽제(辟除)하고 뒤에서는 옹위함

* 辟除(벽제) : 높은 관원이 행차할 때 구종 별배(驅從別陪)가 잡인의 통행을 막아 길을 치우던 일.

* 上臺(상대)ㅅ 景(경) : 사헌부로 등청하는 광경

*上臺(상대) : 사헌부의 별칭. 백부, 오대, 어사대 등으로 불림

* 싁싁 한뎌 : 씩씩하도다. 엄숙하도다

* 風憲所司(풍헌소사) : 사헌부의 관리

* 振起頹綱(진기퇴강) : 허물어진 기강을 떨쳐 일으킴

  

닭이 울자, 하늘은 훤하게 새벽이 밝아오는데, 서울의 길게 쭉쭉 뻗은 길로,

사헌부(司憲府) 으뜸인 대사헌(大司憲)과 늙은 집의(執義) 그리고 장령(掌令) 지평(持平)들이,

아름다운 학무늬가마와 난새무늬수레를 타고 사헌부로 등청하는데, 앞에서는 잡인의 접근을 막으며 고함치고,

 뒤에서는 옹위(擁衛)하며 좌우의 잡인을 물리치매,

사헌부 관원들이 등청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그 모습도 엄숙하도다, 사헌부의 관리들이여, 그 모습도 엄숙히도다. 사헌부의 관리들이여.
아! 허물어진 기강을 다시 떨쳐 일으키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제3장>

各房拜(각방배) 禮畢後(예필후) 大廳齊坐(대청제좌)

正其道(정기도) 明其義(명기의) 參酌古今(참작고금)

時政得失(시정득실) 民間利害(민간이해) 救弊條條(구폐조조)

위 狀上ㅅ景(장상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 君明臣直(군명신직) 大平盛代(대평성대) 君明臣直(군명신직) 大平盛代(대평성대)

위 從諫如流ㅅ景(종간여류경) 긔 엇더 하니잇고

 

* 正其道(정기도) : 도를 바로 잡음

* 狀上(장상) : 서장으로 올림

* 君明臣直(군명신직) : 임금은 현명하고 신하는 곧음

* 從諫如流(종간여류) : 임금이 신하의 간함을 듣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

  

각 방에서 서로 아침 인사를 마친 후 소속된 관원들이 대청에 질서 정연히 앉아

도를 바로잡고, 의를 밝히며, 옛부터 지금깢의 일을 참작하여

민간의 이해득실과 여러가지 폐단을  시정하고 조목조목 구제하여

그 결과를  문서로 올리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임금은 현명하고 신하는 충직한 태평성대, 임금은 현명하고 신하는 충직한 태평성대,
아, 임금이 신하의 직언을 자연스럽게 듣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떠합니까?

<제4장>

圓議後(원의후) 公事畢(공사필) 房主有司(방주유사)

脫衣冠(탈의관) 呼先生(호선생) 섯거 안자

烹龍炮鳳(팽룡포봉) 黃金醴酒(황금예주) 滿鏤臺盞(만루대잔)

위 勸上ㅅ景(권상경) 긔 엇더 하니잇고

즐거온뎌 先任監察(선임감찰) 즐거온뎌 先任監察(선임감찰)

위 醉(취)혼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 圓議後(원의후) : 회의가 끝난 후

* 公事畢(공사필) : 공무를 마침

* 有司(유사) : 어떤 단체의 사무를 맡아 보는 사람

* 烹龍炮鳳(팽용포봉) : 삶은 용과 구운 봉. 진귀한 음식

* 黃金醴酒(황금예주) : 황금빛이 도는 청주

滿鏤臺盞(만루대잔) : 잔에 가득 부음

* 勸上(권상) : 권해 올림

* 監察(감찰) : 관료들을 규찰하고 기강을 확립하는 일을 맡은 사헌부의 관리

* 醉(취)혼ㅅ 景(경) : 술에 취한 광경

 

회의가 끝난 후 공무를 마치니, 방주 유사들이 의관을 벗고 서로 ‘선생’이라 부르면서 한자리에 섞여 앉아

진귀한 요리를 먹고 술잔에 좋은 술을 잔에 가득 부어 마시며,  

서로 권하여 올리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즐겁구려, 선임이신 감찰이여, 즐겁구려, 선임이신 감찰이여,

아! 취한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제5장>
楚澤醒吟(초택성음)이아 녀는 됴하녀

鹿門長往(녹문장왕)이아 너는 됴하녀

明良相遇(명량상우) 河淸盛代(하청성대)예

驄馬會集(총마회집)이아 난 됴호이다

  

* 楚澤醒吟(초택성음) : 초나라의 굴원이 ‘뭇 사람들이 제 정신을 못 차리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고 말한 일을 일컫는 말

* 녀는 됴하녀 : 그대는 좋은가

* 鹿門長往(녹문장왕) :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 절의를 지켜 녹문산에 들어가 은거했던 일

* 明良相遇(명량상우) : 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서로 만남

* 河淸盛代(하청성대) : 태평성대

* 驄馬會集(총마회집) :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곳

   

초나라 상수의 물가에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제 정신을 못 차리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고 읊조린 굴원이 그대는 좋은가?

절의를 지켜 녹문산에 들어가 은거했던 맹호연이 그대는 좋은가?

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가 만나 이룩한 태평성대에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것이야말로 나는 좋습니다.

 

-해석2-

 屈原이 초나라 懷王때 충직한 신하로 瀟湘水가로 귀양가서,

 “온 세상이 다 흐려 있으나, 나 홀로 맑았다네.

뭇사람들이 다 취하여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었네”라 읊은, 굴원처럼

충신으로 일관되게 충절을 지키는 신하가 되는 것이, 너는 좋은가?

아니면 漢末 龐德公이 鹿門山에 약초를 개러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벼슬길을 아예 단념하고 속세를 숨어사는 은사가 되는 것이, 너는 좋은가?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들이 새세상에 서로 만난 것은,

황하물이 천년만에 한번 맑아지면 성군이 나타나듯, 대평성대가 도래한 이 때에,

청총마를 타고 오는 훌륭한 벼슬아치들의 모임이야말로, 난 좋습니다.

 

 

상대별곡 [霜臺別曲]

* 작자: 권근 (1352~1409)

* 연대: 세종 때

* 갈래: 악장(경기체가)

* 구성: 전 5장의 분절체

* 제재: 사헌부(오부, 상대)

* 주제: 사헌부의 위엄 칭송과 조선 건국의 예찬

* 출전: 악장가사

조선 초기에 권근(權近)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형식의 가요.
주로 궁중에서 연악(宴樂)으로 쓰이던 송도가(頌禱歌)로서 악장문학에 속한다.
총 5장으로 《악장가사(樂章歌詞)》에 가사가 실려 전한다.


제목에 보이는 상대(霜臺)는 사헌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작자가 1399년(정종 1) 대사헌을 맡았으니,
그 뒤의 어느 시기에 사헌부에서 하는 일을 칭송한 이 노래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장체(聯章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1장부터 4장까지는 경기체가의 정격(正格) 형식을 정연히 지켰으나,
끝의 5장은 형식을 상당히 벗어나 변격(變格)으로 되어 있다.

≪용재총화 慵齋叢話≫ 권1에는 사헌부에 등청하는 광경부터 시작하여
방주(房主) 감찰의 임무와 신관을 맞는 까다로운 여러 절차에 따른 신참례(新參禮)가 해학 넘치게 묘사되어 있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사헌부는 새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는 기관이다.
서릿발 같은 기세로 새 왕조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찰하고 엄격한 질서를 수립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으니,
거기서 일하는 관원은 차림새가 대단히 엄격하고 자부심도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새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하는 취지를 펴기 위해 이 작품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1장에서는 새 왕조의 도읍터가 천년승지임을 말하였다.
이어서 서울의 거리와 사헌부의 엄숙한 기풍 및 관원들의 기상과 자기과시를 노래했다.
2장에서는 사헌부 관원들이 관청에 출근하는 광경에서 씩씩하고 믿음직한 자태를 묘사하였다.

3장은 임금의 현명함과 신하의 충직한 모습을 그리면서 태평성대를 기린 것이다.
4장에서는 관원들이 일을 끝내고 술잔치에서 즐기는 장면을 노래하였으며,
5장에서는 어진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들이 어우러진 태평성대에 훌륭한 인재들의 모임이 더욱 좋다는 것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사헌부에서 하는 일을 하나씩 서술하면서 자부심이 공연한 것이 아님을 제시하였다.
5장은 이러한 감격을 총괄하느라고 경기체가의 특유한 형식에서 이탈한 것이다.
격정적인 감정의 표출은 형식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총 5장 중, 제 5장은 앞의 장과는 달리 파격적인 형태인데,
자연 속에 묻혀 사는 것보다 관도의 즐거움이 더 낫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새 왕조의 확립에 이바지한 자신의 긍지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관변문학이다.)

이 작품은 장르상으로 볼 때는 경기체가에 귀속된다.

형성기의 경기체가로서 장르양식을 굳혀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또, 경기체가 최초의 작품인 <한림별곡 翰林別曲>의 표현양식을 적극 수용한 점에서 두 작품 사이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상대별곡>은 ‘군명신직지사(君明臣直之詞)’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성종대의 연향에서 가창되었고(성종실록 권 200), 사헌부의 소미연(燒尾宴 : 선비의 자제가 처음으로 진사에 합격한 때 행하는 잔치)에서나(증보문헌비고 권 107),

사헌부 관원들의 주연에서도 노래로 불렸다는 기록(용재총화)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타

 


권근(權 近) 1352~1409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학자.
본관 안동. 자 가원(可遠)․사숙(思叔). 호 양촌(陽村). 시호 문충(文忠). 초명 진(晋).
1367년(공민왕 16) 성균시(成均試)를 거쳐 이듬해 문과에 급제, 춘추관 검열이 되고,
우왕(禑王) 때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창왕(昌王) 때 좌대언(左代言)․지신사(知申事)를 거쳐 밀직사첨서사(密直司僉書事)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75년(우왕 1) 박상충(朴尙衷)․정도전(鄭道傳)․정몽주(鄭夢周)와 같이
친명정책(親明政策)을 주장하여 원나라 사절의 영접을 반대하였고,
89년(창왕 1) 윤승순(尹承順)의 부사(副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올 때 가져온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이 화근이 되어
우봉(牛峯)에 유배되었다가 영해(寧海)․흥해(興海)․김해(金海) 등지로 이배(移配)되었다.
90년(공양왕 2)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또 다시 청주(淸州)에 옮겨졌다가 풀려났다.


조선이 개국되자 93년(태조 2) 예문춘추관학사(藝文春秋館學士)․대사성․중추원사(中樞院使) 등을 역임하고,
96년 표전문제(表箋問題)가 일어나자 자청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두 나라의 관계를 호전시켰으나,
정도전 일파의 시기로 불안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98년 정도전 일파가 숙청되자, 정당문학(政堂文學)․문하부참찬사(文下府參贊事)를 거쳐 대사헌을 지내고,
사병(私兵)의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고,
대사성․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거쳐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이사(貳師) 등을 역임하였고,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찬하였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경학(經學)에도 밝아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을 정하였다.
또한 그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은 후일 이황(李滉)․장현광(張顯光) 등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성리학자이면서도 문학을 존중하였고, 시부사장(詩賦詞章)의 학을 실용면에서 중시하여 이를 장려하였으며,
경학(經學)과 문학(文學)의 양면을 조화시켰다.
문집 《양촌집(陽村集)》 외에 저서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
《동현사략(東賢事略)》이 있고, 작품에 <상대별곡(霜臺別曲)>이 있다.

  

악장가사

소장/전승 규장각 도서, 장서각 도서

고려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속악과 가곡을 수록한 책
조선 중종과 명종 사이에 박준이 엮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으로서 <국조 사장(國朝詞章) >이라고도 한다.

이 책의‘가사(歌詞) 상(上)’부분에는 모두 24곡의 노래가 한글로 실려있다.

고려 이후 조선 초기에 걸쳐 악장으로 쓰인 아악(雅樂)과 속악(俗樂) 가사(歌詞)를 모아 엮은 가집(歌集).
목활자본. ‘국조사장(國朝詞章)’·‘국조악장(國朝樂章)’·‘속악가사(俗樂歌詞)’ 등으로도 불린다.
편자 및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중종에서 명종 연간의 밀양 사람 박준(朴浚)이 편찬하였다는 설이 있다.

체재는 속악가사 상(俗樂歌詞 上)·아악가사(雅樂歌詞)·가사 상(歌詞 上)의 3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 속악가사 상에는 영신(迎神)에서 송신(送神)까지의 궁중 제례(祭禮)에 쓰이는 28곡이 있는데,
앞에 한문구를 내세우고 그 옆에 한글음을 표기해 놓았다.

또 비궁(閟宮) 속악이 11곡, 어제(御製)가 3곡 있는데 본문은 순한문의 4언 4구 또는 4언 8구, 4언 6구로 기사되었다.
필사의 모습으로 보아 후대에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제2부 아악가사에는 <풍운뇌우 風雲雷雨>·<사직 社稷>·<선농 先農>·<우사전폐 雩祀奠幣> 등 네가지 의식이

순서에 따라 4언 8구의 순한문 시경체로 기사되어 있고,

이어서 <납씨가 納氏歌>·<정동방곡 靖東方曲>·<대보단악장 大報壇樂章> 5곡이 있다.

제3부 가사 상에는 <여민락 與民樂>·<보허자 步虛子>·<감군은 感君恩>·<서경별곡 西京別曲>·<어부가 漁父歌>·

<화산별곡 華山別曲>·<풍입송 風入松>·<야심사 夜深詞>·<한림별곡 翰林別曲>·<처용가 處容歌>·<정석가 鄭石歌>·

<청산별곡 靑山別曲>·<사모곡 思母曲>·<능엄찬 楞嚴讚>·<영산회상 靈山會相>·<쌍화점 雙花店>·<이상곡 履霜曲>·<가시리>·<유림가 儒林歌>·<신도가 新都歌>·<만전춘별사 滿殿春別詞>·<오륜가 五倫歌>·<연형제곡 宴兄弟曲>·

<상대별곡 霜臺別曲> 등 당대의 속악가사로 향유된 24곡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정석가> 이하의 14곡은 이 책에만 그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제3부에 이어 가사 하(下)편이 있을 듯하나 전하지 않는다.

이 가집에 수록된 고려가요의 주제를 장르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별의 아픔이나 고독을 노래한 <가시리>·<서경별곡>·<만전춘별사>,

남녀상열(男女相悅)을 노래한 <쌍화점>·<이상곡>,

임금의 송수를 노래한 <정석가>,

어버이의 사랑을 노래한 <사모곡>,

유랑민의 집단적 비애를 노래한 <청산별곡>,

열병신(熱病神)의 구축(驅逐)을 노래한 <처용가> 등 고려속요가 있다.

신진사인층(新進士人層)의 도도한 자긍심과 화려한 생활을 노래한 <한림별곡>은 경기체가에 해당한다.

고려 말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어부의 삶을 노래한 <어부가>는

조선시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십이가사로까지 이어진다.

<능엄찬>은 불찬가(佛讚歌)이며,

성덕을 송축하고 태평을 노래한 <풍입송>과 <야심사>는 한시에 현토한 속악가사에 해당한다.

조선 초기에 새로 지어진 작품으로는 악장과 경기체가를 들 수 있는데,

오륜과 형우제공(兄友弟恭)을 노래한 <오륜가>·<연형제곡>,

조선조의 건국을 찬양한 <납씨가>·<정동방곡>·<여민락>,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만수무강을 빈 <감군은>·<영산회상>·<신도가>, 가 있다.

또한 조선왕조의 발전을 구가한 <보허자>·<화산별곡>,

관료로서 사대부의 이상적 삶을 노래한 <유림가>·<상대별곡> 등이 있다.

≪악장가사≫는 현재 전하는 가집 가운데

악장과 속악가사를 엮어 모은 순수 가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문학사적 가치를 가진다.

특히 오랜 동안 노래로만 구비전승되어 오다가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그 전문이 유일하게 기록된 고려가요가

<청산별곡>을 비롯하여 여러 편 실려 있어 자료적 가치를 더해 준다.

또한 ≪악학궤범 樂學軌範≫·≪시용향악보 時用鄕樂譜≫와 더불어

궁중의 악장에 소용된 노래들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3대 가집의 하나로서 의의가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조사장(國朝詞章)》이라고도 한다.
편찬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연간에 밀양 사람 박준(朴浚)이 엮었다는 일설이 있다.
현재 전하는 순수한 가집(歌集)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특히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기록된 고려가요들이 실려 있어
《악학궤범》 《시용향악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이다.
수록된 가사의 연대 범위가 고려에서 조선 초에 걸쳐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만 발견된 가사도 14종에 달하여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국내에는 장서각(藏書閣)에 간행 연대 미상인 1책, 활자본의 유일본(唯一本)이 전해지고
일본의 호사문고[蓬左文庫]에도 1책이 있는데,
이를 영인(影印)한 것과 《속악가사(俗樂歌詞)》를 《국어국문학》 36~38호에 영인 게재한 것이 있다.
내용은 첫머리에서 18면까지는 궁중연례(宮中宴禮) 때 쓰인 노래가 한문 내지 한문에 한글 토를 붙인 형식으로 실려 있는데,
종묘영녕(宗廟永寧)에 해당하는 28곡, 비궁속악(宮俗樂) 11곡, 아악가사(雅樂歌詞)로 풍운뇌우(風雲雷雨) ․사직(社稷) ․선농(先農) 등의 해설 및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 <대보단악장(大報壇樂章)> 5곡 등이다. 다음에 《가사(歌詞) 상(上)》이라고 하여 <여민락(與民樂)> <보허자(步虛子)> <감군은(感君恩)> <서경별곡(西京別曲)> <어부가(漁父歌)> <화산별곡(華山別曲)> <풍입송(風入松)> <야심사(夜深詞)> <한림별곡(翰林別曲)> <처용가(處容歌)> <정석가(鄭石歌)> <청산별곡(靑山別曲)> <사모곡(思母曲)> <능엄찬(楞嚴讚)> <영산회상(靈山會相)>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가시리> <유림가(儒林歌)> <신도가(新都歌)>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오륜가(五倫歌)> <연형제곡(宴兄弟曲)> <상대별곡(霜臺別曲)> 등 24곡이 실려 있으며, 이 중 <정석가> 이하의 14곡은 이 책에서만 발견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가사 상》에 수록된 24곡이나 《아악가사》 편에 들어 있는 <납씨가> <정동방곡>을 포함한 26편의 가사는 모두 한국 시가문학의 귀중한 자료로서, 고시가사(古詩歌史)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작품들이다. 이 책의 편찬 순서나 가악(歌樂)의 종류 및 분류 등은 뚜렷한 기준이 없으나 《가사 상》에 대하여 《가사 하(下)》도 분명히 있을 듯한데 전해지지 않는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출처 : 무불통지 지존무상
글쓴이 : 비가갠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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