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4. 19:07ㆍ율려 이야기
유원순의 문장, 이인로의 시, 이공로의 사륙반려문. 이규보와 진화가 쌍운을 맞추어 쓴 글 유충기의 대책문, 민광균의 경서 해석, 김양경의 시와 부. 아, 과거 시험장의 모습 그 어떠합니까(참으로 대단합니다).
금의가 배출한 뛰어난 많은 제자들, 금의가 배출한 뛰어난 많은 제자들 아, 나를 포함하여 몇분입니까? 위 歷覽(역람)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당서와 한서, 장자와 노자,한유와 유종원의 문집. 이백과 두보의 시집, 난대영사(令使)들의 시문집, 백거이의 문집. 시경과 서경, 주역과 춘추, 대대례와 소대례
아, 이런 책들의 주석까지 외우는 광경이 그 어떻합니까? 대평광기 사백여권을, 대평광기 사백여권을 아, 두루 열람하는 광경, 그것이 어떠합니까.
안진경체 비백서, 행서와 초서. 전서와 유문, 과두문, 우서와 남서 양털붓, 쥐털붓, 비껴 들고 내려 찍는 모습 그 어떻합니까?
오생과 유생 두분 선생님의 오생과 유생 두분 선생님의,
거침없이 휘두루는 붓놀림 그 어떻합니까? <제4장> 황금빛이 도는 술, 잣으로 빚은 술, 솔잎으로 빚은 술과 단술 죽엽주와 이화주 오가피주를 앵무잔과 호박잔에 가득 부어 아, 올리는 모습 그 어떻합니까? (죽림칠현인) 유령과 도잠 두분 같은 노인들이, 유령과 도잠 두분같은노인들이 아, 거나하게 취한 광경 그것이 어떻합니까? <제5장> 붉은 모란, 흰 모란, 진홍빛 모란. 붉은 작약, 흰 작약, 진홍빛 작약. 능수버들과 옥매, 노랑과 자줏빛의 장미, 지란과 영지와 동백. 아, 사이사이 핀 모습 그 어떻합니까? 대나무와 복사꽃처럼 고운 두분, 대나무와 복사꽃처럼 고운 두분,
아, 서로 어울려 비치는 광경 그 어떻합니까. 아양이 타는 거문고, 문탁이 부는 피리, 종무가 부는 중금 명기 대어향과 옥기향이 타는 쌍가얏고 금선의 비파, 종지의 해금, 설원의 장고로 아, 밤새워 노는 모습 그 어떻합니까? 일지홍이 벼껴들고 부는 피리소리, 일지홍이 비껴들고 부는 피리소리 아, 듣고서 잠들고 싶어라.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의 삼신산. 이 삼신산 붉은 누각의 작약선자 녹발액자 비단장막 속에서 주렴을 반만 걷고 아, 멀리 오호를 바라보는 광경, 그것이 어떻합니까? 푸른 버들 푸른 대가 자라는 정자가 있는 언덕에서, 푸른 버들 푸른 대가 자라는 정자가 있는 언덕에서, 아, 지저귀는 꾀고리 반갑기도 하여라.
<제1장>
元淳文(원순문) 仁老詩(인로시) 公老四六(공노사륙)
李正言(이정언) 陳翰林(진화림) 雙韻走筆(쌍운주필)
沖基對策(중기대책) 光鈞經義(광균경의) 良經詩賦(양경시부)
위 試場(시장) 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 琴學士(금학사) 玉笋門生(옥순문생) 琴學士(금학사) 玉笋門生(옥순문생)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
<제2장>
唐漢書(당한서) 莊老子(장노자) 韓柳文集(한유문집)
李杜集(이두집) 蘭臺集(난대집) 白樂天集(백낙천집)
毛詩尙書(모시상서) 周易春秋(주역춘추) 周戴禮記(주대예기)
위 註(주)조쳐 내외온 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엽) 太平廣記(대평광기) 四百餘卷 (사백여권)太平廣記(대평광기) 四百餘卷(사백여권)
<제3장>
眞卿書(진경서) 飛百書(비백서) 行書草書(행서초서)
篆籒書(전류서) 蝌蚪書(과두서) 虞書南書(우서남서)
羊鬚筆(양수필) 鼠鬚筆(서수필) 빗기드러
위 댁논 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 吳生劉生(오생유생) 兩先生(양선생)의 吳生劉生(오생유생) 兩先生(양선생)의
위 走筆(주필)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黃金酒(황금주) 栢子酒(백자주) 松酒醴酒(송주예주)
竹葉酒(죽엽주) 梨花酒(이화주) 五加皮酒(오가피주)
鸚鵡盞(앵무잔) 琥珀盞(호박배)예 가득브어
위 勸上(권상)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엽) 劉伶陶潛(유령도잠) 兩仙翁(양선옹)의 劉伶陶潛(유령도잠) 兩仙翁(양선옹)의
위 醉(취)혼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紅牧丹(홍목단) 白牧丹(백목단) 丁紅牧丹(정홍목단)
紅芍藥(홍작약) 白芍藥(백작약) 丁紅芍藥(정홍작약)
御柳玉梅(어류목매) 黃紫薔薇(황자장미) 芷芝冬柏(지지동백)
위 間發(간발)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엽) 合竹桃花(합죽도화) 고온 두 분 合竹桃花(합죽도화) 고온 두 분
위 相暎(상영)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제6장>
阿陽琴(아양금) 文卓笛(문탁적) 宗武中琴(종무중금)
帶御香(대어향) 玉肌香(옥기향) 雙伽倻(쌍가야)ㅅ고
金善琵琶(금선비파) 宗智嵇琴(종지해금) 薛原杖鼓(설원장고)
위 過夜ㅅ景 긔 엇더 하니잇고
(葉)엽 一枝紅(일지홍)의 빗근 笛吹 一枝紅(적취일지홍)의 빗근 笛吹(적취)
위 듣고아 잠 드러지라.
<제7장>
蓬萊山(봉래산) 方丈山(방장산) 瀛州三山(영주삼산)
此三山(차삼산) 紅樓閣(홍루각) 婥妁仙子(작약선자)
綠髮額子(록발액자) 錦繡帳裏(금수장리) 珠簾半捲(주렴반권)
위 登望五湖(등망오호)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葉) 綠楊綠竹(록양록죽) 栽亭畔(재정반)애 綠楊綠竹(록양록죽) 栽亭畔(재정반)애
위 囀黃鸎(잔황앵) 반갑두셰라.
<제8장>
唐唐唐(당당당) 唐秋子(당추자) 皂莢(조협)남긔
紅(홍)실로 紅(홍)글위 매요이다
혀고시라 밀오시라 鄭少年(정소년)하
위 내 가논 대 남 갈셰라
(葉엽) 削玉纖纖(삭옥섬섬) 雙手(쌍수)ㅅ길헤 削玉纖纖(삭옥섬섬) 雙手(쌍수)ㅅ길헤
위 携手同遊(휴수동유)ㅅ景(경) 긔 엇더 하니잇고.
당당당 당추자(호두나무) 조협(쥐엄)나무에
붉은 실로 붉은 실로 그네를 매옵니다.
당기거라. 밀거라. 정소년아
아, 내가 가는 그 곳에 남이 갈까 두려워
옥을 깎은 듯이 가녀릴 두 손길에, 옥을 깎은 듯이 가녀릴 두 손길에,
아, 손잡고 같이 노니는 모습 그 어떻합니까?
한림별곡(翰林別曲)
시대: 고려
성격: 경기체가
저작자: 유원순, 이인로, 이공로, 이규보, 진화, 유충기, 민광균, 김양경
발표시기: 고려 고종
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유자(儒者)들이 지은 경기체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연대가 가장 오래인 작품으로, 제작 연대는 13∼14세기 주장도 있으나 믿기 어렵고,
학계 논의를 폭넓게 수용할 때 1216년(고종 3)∼1230년 사이로 추정된다.
경기체가는 <한림별곡>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려사≫ 권71 악지에는 “이 노래는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선비가 지은 바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작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장에 나오는 금의(琴儀) 문하의 유원순(兪元淳)·이인로(李仁老)·이공로(李公老)·
이규보(李奎報)·진화(陳樺)·유충기(劉沖基)·민광균(閔光鈞)·김양경(金良鏡) 등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며,
이 작품은 여러 선비가 지었다는 기록과 모두 8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 사람이 한 장씩 돌아가며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주제는 작자층으로 보이는 신진사대부들의 득의에 찬 노래로 보고 있다.
가사의 형식을 보면 각 장은 앞 4구에 엽(葉) 2구가 붙은 6구형이고,
음수율은 제1·2구는 3·3·4, 제3구는 4·4·4(3·4장은 예외), 제5구는 4·4·4·4로 되어 있고,
제4구와 제6구는 ≪악장가사≫에 ‘위 시댱ㅅ경 긔 엇더니잇고’로 되어 있는 부분이
≪고려사≫ 악지에는 ‘偉試場景何如(위시장경하여)’로만 적혀 있으나,
≪악장가사≫에 순수한 국어로 된 부분이 ≪고려사≫ 악지에는 ‘云云(운운)’이라 적고
주(註)에 “이어(俚語)임, 가사 중 이어로 된 곳은 다 이 같이 싣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고려사≫에 ‘偉試場景何如’로 적혀 있는 부분도 노래로 부를 때에는 ≪악장가사≫에 실린 바와 같이 불렀을 것이다.
또, ≪악장가사≫에 각 장 제5구는 모두 2음보의 말이 반복된 4음보로 되었는데
≪고려사≫에는 반복의 표시가 없으나, 그것도 당시 노래로 부를 때에는 반복하였을 것이다.
<한림별곡>의 구조는 제1·2·3구과 제5구은 개별 사물을 열거하고, 제4구와 제6구는 그 앞의 내용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개별화의 원리와 포괄화의 원리가 두 번 반복하는 구조로 보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여덟 가지 경(景)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문인과 그들의 장기(長技), 2장은 서적, 3장은 서체와 명필, 4장은 술, 5장은 꽃, 6장은 악기와 그에 능한 사람들,
7장은 산과 누각, 8장은 그네로 1장 1경씩 읊었다.
제1장에서는 당시에 유명한 문인들과 그들이 각각 잘하는 글들을 나열하고, 위 시장(試場)의 경이 어떠하냐고 물은 다음에,
금의(琴儀)의 죽순 처럼 많은 제자, 나까지 모두 몇 분인가를 노래하였다.
제2장에서는 당시 문인들이 읽었던 책들을 열거한 다음에 그 경(景)과 역람(歷覽)의 경(景)이 어떠하냐고 노래하였다.
제3장에서는 서체(書體)와 붓의 종류를 열거한 다음에
붓을 찍는 경(景)과 오생(吳生)과 유생(劉生)의 주필(走筆)의 경(景)이 어떠하냐고 노래하였다.
제4장에서는 좋은 술의 종류를 열거하고
그 술을 좋은 잔에 부어 권하는 경(景)과 유령(劉伶)과 도잠(陶潛)이 취한 경(景)이 어떠하냐고 노래하였다.
제5장에서는 꽃들을 노래하고
그 간발(間發)의 경(景)과 합죽도화(合竹桃花)의 고운 두 분이 상영(相映)하는 경(景)이 어떠하냐고 노래하였다.
제6장에서는 악기와 그 악기의 역대 명인을 열거하고 그들이 밤을 보내는 경(景)을 노래하고
일지홍(一枝紅)이 빗긴 피리소리를 듣고 잠을 들리라 노래하였다.
제7장에서는 삼신산(三神山) 누각의 미인이 수놓은 휘장 안에서 주렴을 반쯤 걷고 오호(五湖)를 바라보는 경(景)이 어떠하냐고 묻고, 버드나무와 대나무가 자라는 정자 언덕에 지저귀는 꾀꼬리가 반갑다고 노래했다.
제8장에서는 당추자(唐楸子)나무와 조협(皁莢)나무에 그네를 매어 당기거라 말거라 내가 가논데 남이 갈세라 하면서
옥을 깎은 듯한 섬섬옥수의 두 손길에 손을 잡고 함께 노는 경(景)이 어떠하냐고 노래했다.
<한림별곡>의 형식이 이루어진 근원과 동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① ≪고려사≫ 악지에 실린 노래는 그것이 민간에서 발생한 가사라 할지라도
국가나 궁중의 주악가사(奏樂歌詞)였던 것만 실어 놓았다는 점에서,
<한림별곡>도 고려 때 국가에서 외국 손님을 접대하던 잔치(宴享)나 놀이의 잔치 때 부르던 주악가사였을 것이다.
② 고대에는 가사를 먼저 지어놓고 그것을 작곡해서 부르기보다는
어떤 음악상 영향에서 어떠한 형식의 가요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므로,
이 작품 역시 당시 어떤 음악의 영향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③ 작자인 한림들은 유명한 한문학자였으므로 우리 민요보다는 지식층의 시가나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본다.
④ 고려 제11대 문종 26년(1072) 이후에 송나라 음악인 포구락(抛毬樂)·구장기별기(九張機別技)가 들어왔고,
16대 예종 때에는 송나라 신악(新樂)과 대성악(大晟樂) 및 중국 교방악(敎坊樂)인 당악(唐樂)이 쏟아져 들어와
국가적인 음악은 거의 송악(宋樂)이었다는 점과,
조선시대의 속악인 치화평 삼기(致和平三機), 동동 만기(動動慢機), 정읍 만기(井邑慢機)와
중기(中機)·급기(急機), 처용 만기(處容慢機), 봉황음 중기(鳳凰吟中機)와 급기(急機) 등이
모두 우리 고유의 악곡이 아니라 송나라 구장기(九張機)의 음악계통이라는 점,
또 ≪고려사≫ 악지 당악조에 실린 50여 편의 가사가 모두 중국시가의 한 형식인 사(詞)라는 점이다.
⑤ 이 노래가 ≪고려사≫ 악지 속악조에 들어 있는바, ‘속악’이라는 것은 우리의 고유음악이라는 말이 아니라
외국악곡의 변주곡(變奏曲)이거나, 또는 악곡은 외국 악곡 계통이지만
가사가 우리말로 된 것, 또는 외국음악이 우리에게 들어와 오랫동안 관습화한 것을 일컫는다고 보는 것이다.
⑥ ≪고려사≫ 악지 속악조에 원가사가 실린 것은 <풍입송 風入松>·<야심사 夜深詞>·<한림별곡>·<자하동 紫霞洞>의
네 노래뿐인데, 그 중 <풍입송>은 ≪시용향악보≫에 실린 악보에 의하면 제2장 재1·2구의 악곡이 제1장 제1·2구와 다르니
그것은 사악(詞樂)의 특색인 환두식(換頭式)이고, 또 제2·3장의 제3·4·5·6구 악곡은 제1장 제3·4·5·6구의 악곡과 같으니
그것은 사악의 환입식(還入式)이므로 그 음악이 사악 계통인 데 비하여 가사는 사(詞)가 아니기 때문에 속악에 들었고,
<야심사>·<자하동>은 가사는 사(詞) 계통이나 창법이 사악 그대로가 아니므로 속악에 들었다.
그런데 <풍입송>·<야심사>가 모두 음악상 단락은 매 구(句) 3음보 진행으로
<한림별곡>의 각 절 전강(前腔) 4구와 일치한다.
따라서 <풍입송>·<야심사>·<자하동>이 사악 계통이라는 점에서 <한림별곡>도 사악 계통으로 보아야 한다.
⑦ 각 장 제4·6구에는 거의 ‘∼경’이라는 말이 끼었는데 <한림별곡> 이전의 시가 중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고,
≪고려사≫ 악지 당악조(唐樂條)에 실린 사악 가사인 <헌선도 獻仙桃>의 금잔자(金盞子) 중에
‘봉래궁전신선경(蓬萊宮殿神仙景)’, ‘월화청(月華淸)의 공대경(空對景)’, ‘석노교(惜奴嬌)의 성경(聖景)’, ‘전화지령(傳花枝令)의 우양신당미경(遇良辰當美景)’, ‘경배악(傾盃樂)의 변소경(變韶景)’, ‘영춘악(迎春樂)의 신주여경(神州麗景)’ 등이 보여
<한림별곡>의 ‘∼경’도 그 영향이라고 보아야 한다.
⑧ 제8장의 ‘당당당 당추자’와 같은 음조도 이전의 다른 시가에서는 볼 수 없는데,
송나라 육유(陸游)의 사(詞)인 <채두봉 釵頭鳳>에 “동풍오 환정박 일회수서 기년이색 착착착(東風惡歡情薄一懷愁緖幾年離索錯錯錯)…… 도화락 한지각 산맹수재 금서난탁 막막막(桃花落閒池閣山盟雖在錦書難託莫莫莫)” 등과 같은 것이 있다.
⑨ 제6장에 나오는 ‘해금·장고’는 송나라 음악이 들어온 뒤부터 쓰인 악기이다.
⑩ 제6장에 나오는 ‘대어향(帶御香)’도 ≪고려사≫ 악지 당악조의 첫 노래인 <헌선도>에서
항시 듣던 ‘화기인온대어향(和氣氤氳帶御香)’에서 끌어들인 것이다.
⑪ 3·3·4, 4·4·4조는 사(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조이다.
⑫ 사악(詞樂) 가사에는 미전사(尾前詞)와 미후사(尾後詞)로 나뉜 것이 많은데,
<한림별곡>이 앞 4구에 엽(葉) 2구로 되어 있는 것은 사(詞)와 상통하는 점이다.
이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사악의 영향에서 이루어진 노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래를 빚어낸 동기는 작자들의 풍류적이고 유흥적인 성격도 곁들었지만,
또 그들이 아무리 큰 한문학자라 할지라도 사(詞)로 된 당악가사는 흥취가 적고, 또 음악면에 있어서도 당악보다는 전부터
몸에 익은 속악의 선율에 애착되어 절충적인 변형가사와 변주곡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림별곡>이 그 뒤 시가의 한 유형으로 고정된 것도 가사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이 노래로 불리는 데 흥미를 느끼고, 선망적(羨望的)인 내용에다가 읊을 때 ‘위’와 같이 기세를 돋우거나
‘당당당 당추자’와 같은 음조가 흥을 돋우어 그 시대의 지식인들에 널리 유행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곡’이라는 말은 사(詞)의 변형이나 변주곡에서 붙은 명칭으로,
<청산별곡>·<서경별곡> 등의 악곡이 고유한 우리의 악곡이 아니므로 ‘별곡’이라 한 것과 같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翰林別曲
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유생들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경기체가.
8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에 등장하는 8명의 문인들이 지은 것으로 보이며, 창작연대는 1215~16년경으로 추정된다.
제1장은 유원순·이인로·이공로·이규보·진화·유충기·민광균·김양경의 장기인 창작분야를 노래했고, 제2장은 서적, 제3장은 글씨, 제4장은 술, 제5장은 꽃, 제6장은 음악, 제7장은 경치, 제8장은 여럿이 그네를 띄우며 즐겁게 노는 정경을 노래했다.
가사의 기본 음수율은 3·3·4로 별곡체라는 독특한 음률과 구법을 나타낸다. 중국 사악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속악의 선율이
변주곡 형태를 띤 것으로 보이며, 그뒤 안축의 <관동별곡>·<죽계별곡> 등이 나왔고, 조선 초기에도 많은 경기체가가 지어졌다.
<악학궤범>·<악장가사>에 국한문 가사가 전하며, <고려사> 악지에는 한문과 이두로 실려 있다.
〈8장. 〈고려사〉·〈악장가사〉 모두에 고종 때 한림의 제유(諸儒)가 지은 작품이라 한 것으로 보아
〈한림별곡〉 제1장에 나타나는 8명의 문인들이 지은 듯하다.
창작연대는 1215(고종 2)~16년경으로 추측되는데 1215년 5월 궁에서 최충헌에 의해 추천희(鞦韆戱)가 열렸다고 한 것과
〈한림별곡〉의 마지막 장이 추천 광경을 읊은 것을 맞추어 보면 그 시기와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노래의 제1장을 소개하면 "元淳文 仁老詩 公老四六/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沖基對策 光鈞經義 良鏡詩賦/
위 試場 ㅅ景 긔엇더 니잇고/琴學士의 玉筍門生 琴學士의 玉筍門生/위 날조차 몃부니잇고"이다.
제1장에는 유원순·이인로·이공로·이규보·진화·유충기·민광균·김양경의 장기인 창작분야를 노래했고,
제2장에서는 서적(書籍), 제3장에서는 글씨, 제4장에서는 술, 제5장에서는 꽃, 제6장에서는 음악, 제7장에서는 경치,
제8장에서는 여럿이 그네를 띄우며 즐겁게 노는 정경을 노래했다.
이 노래에는 질탕하게 노는 내용이 많은데 이것은 퇴폐적이기보다는
새롭게 성장해가는 신진사대부들의 득의에 찬 기상을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사의 기본 음수율은 3·3·4로 별곡체(別曲體)라는 독특한 음률과 구법을 가지고 있다.
이 노래가 이루어진 근원이나 동기에 대해서는
중국의 사악(詞樂)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속악(俗樂)의 선율이 변주곡 형태를 띤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 뒤 안축(安軸)의 〈관동별곡 關東別曲〉·〈죽계별곡 竹溪別曲〉 등의 경기체가가 나왔고
조선 초기에도 많은 경기체가가 지어졌다.
〈악학궤범〉·〈악장가사〉에 국한문 가사가 전하며,
〈고려사〉 악지에는 한문과 이두로 우리말 부분이 삭제된 채 실려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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