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要文化財 1幅 絹本 墨畫 掛軸 縱100.3 橫41.4cm
鐮倉時代 13~14世紀 奈良國立博物館 1010(絵198)
[퍼온 자료 : 전희스님]
백의를 여유 있게 걸치고 바위 위에 정좌하고 있는 관음의 상이지만, 왼쪽 하단에 그를 경배하는 동자가 있는 것을 볼 때 『화엄경』「입법계품」에서 해설하는, 선재동자의 선지식 역참 중 보타락산의 금강보석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관음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쪽의 대나무 숲과 폭포도 경문에 「화과수림은 두루 편만하고 천류지소는 모두 구족하다」라 기록된 부분과 대응하며, 이는 수묵화에 관용 소재로 대표된다.
관음 옆에 버드나무를 꽂은 수병이 배치되어 있으며 바위 밑에 수면이 퍼져 있어 양류관음과 수월관음으로 칭하여지는 것들과 도안상 친밀한 관계에 있고, 수묵화의 유행과 함께 백의의 맑고 깨끗함에 흥미를 가지고 그려져 특히 선종의 절에서 즐겨 찾았다.
그림 윗부분에 칠언절구의 찬을 기록한 것은 가마쿠라의 절들과 난젠지 절에 거했던 야쿠오 돗켄(1244~1319) 이며, 그가 송에서 귀국한 13세기 말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사이에 이 그림이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일본 초기 수묵화의 한 예이며 백의관음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지만, 이미 매우 숙달된 수묵 기법을 사용하여 심오한 공간을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작품이다.
這是一幅身著飄逸白衣、靜坐在岩石之上的觀音像。
左下方有拜佛童子,可知圖中所繪的是《華嚴經(kegonkyou)》“入法界品”中提及的善財童子 遍參善知識的傳說中,於普陀落伽山(fudarakusen)金剛寶石上結跏趺坐的觀音。
身後的竹林及瀑布與經文中所述“華果樹木皆遍滿,泉流池沼悉具足”相符,
代表了水墨畫中慣用的題材。
觀音身旁繪有插有楊柳的淨瓶,水面延伸至岩石下方,這些圖像特點與名為楊柳觀音和水月觀音的圖像具有密切關係,
但隨著水墨畫的流行,人們普遍喜歡描繪白衣的清澈感,尤其鍾愛禪林。
圖上方記有七言絕句畫贊,出自曾居於鐮倉諸寺和南禪寺的約翁德儉(yakuoutokken)
(1244~1319)之手,據推測此畫繪製的時間應是他於13世紀末從宋朝歸國後直至圓寂的期間。
本作品為日本初期水墨畫的一例,更是最早的白衣觀音圖文物。
值得一提的是,此圖中的水墨技法相當成熟,表現出具有深度的空間感。
[제화시의 원문과 해석]
釣翁德儉題 야쿠오 돗켄이 짓다 .
斒水活時楊柵靑(반수활시양책청) 얼룩얼룩한 물이 생기는 때 버들 울타리도 푸르고
善財童子會不貪(선재동자회불탐) 선재동자는 만나 탐하지 않네.
中見色眼榖開勢(중견색안곡개세) 가운데를 보니 안색은 정성스럽게 열리는 형세인데
竹岩下盤石上耳(죽암하반석상이) 대나무 바위와 평평한 돌이 위로 듣고 있네.
約翁德儉(1244~1319)
佛燈國師, [日本語] やくおう-とっけん
朝代 :日本, 性別 :男
相模(神奈川縣)鎌倉人,號約翁。
幼年隨侍蘭溪道隆,後於東大寺受具足戒。
文永年間(1264-1275)入宋,在宋八年期間,參訪石帆惟衍、藏叟善珍諸禪僧。
返國後,再度師事道隆。及道隆寂後,師又參謁大休正念、無學祖元諸師。
[느낀 점]
일본 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 그림은 고려후기에 제작된 수월관음도와 구도상에서 대단히 흡사하다.
고려정병과 그 병에 꽃혀있는 버들 그리고 관음보살의 앉아있는 구도와 선재동자의 모습은 모든 면에서 구도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조선은 수묵화로 그려진 관음보살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이 그림은 당시 일본에서 고려에서 입수한 불화를 보고 수묵화로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된다. 관음보살의 말씀을 사람이 아닌 대나무와 바위가 듣고 있다는 표현으로 볼 때 이 그림도 선종(禪宗) 계통의 불교화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