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2. 09:40ㆍ美學 이야기
동아시아 미술, 이상을 품다-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2014년 봄 특별기획전 주제가 있는 전시회
동아시아 미술, 이상을 품다
미술과 이상/2014.5.14.~7.31/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2014년 봄 특별기획전
이상(Idealism)은 미술작품에 어떻게 표현되는가. 각 나라의 이상은 같은가 다른가. 이런 주제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대학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관장 오진경:02-3277-3152 )에서는 2014년 봄 특별기획전으로 “미술과 이상 - 동아시아 미술 속의 이상주의 / 현대미술, 이상을 담다”를 전시중이다.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좀 더 완전한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인간들의 소망이 동아시아의 전통미술과 한국 현대미술의 주제로 도입되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 티베트 등 동아시아 국가의 전통미술 속에 묘사된 이상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왕조의 번영과 평화를 염원하는 군주의 이상에서부터 학문과 예술에 대한 선비의 이상, 불교와 도교 등 종교에서 제시한 이상을 재현한 동아시아의 전통미술품들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보다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옛 선인들의 깊은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작자미상, 「일월오봉도육곡병풍(日月五峰圖六曲屛風)」, 19세기, 비단에 색, 155.3×349cm, 삼성리움미술관
작자미상, 「왕회도병풍」,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167×380cm, 이화여대박물관
김진여 외,「기사사연도」(기사계첩 중) , 1720년, 비단에 색, 43×66.5cm, 이화여대박물관
작자미상,「태묘문례」(공자성적도 중), 1742년, 종이에 연한 색, 33×54cm, 성균관대박물관
1실: 군주, 이상을 품다.
동아시아에서 왕은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대한 제사와 궁중행사에 대한 의례를 관장한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의 군주는 세자로 책봉된 왕자시절부터 성군이 되기 위한 예학(禮學)을 습득하였으며, 왕이 되어서는 중요한 역사서와 경전을 신하들과 강독하고 시국문제를 함께 논했다. 이러한 국왕의 집무공간을 장식했던 병풍과 서예작품, 그리고 의례에 사용되었던 용품들과 왕의 행사를 담은 기록화 등의 예술작품들은 태평성대의 이상을 표출하고 있다.
군주의 이상을 대변하는 작품으로는 「일월오봉도육곡병풍(日月五峰圖六曲屛風)」, 「공자성적도(孔子聖跡圖)」, 「기사계첩(耆社契帖)」, 「왕회도병풍(王會圖屛風)」 등을 들 수 있다. 「일월오봉도」는 왕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 함께 함으로써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왕의 상징물이 된 그림이다. 「공자성적도」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목각본, 필사본, 인쇄본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고 그 수량 또한 상당하다. 그림을 통해 성인(聖人)의 행적과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시각자료로 많이 활용됐다. 왕은 혼자서 정치할 수 없다. 어진 신하가 호흡을 함께 해야 국정이 잘 돌아간다. 왕이 기로회(耆老會)를 베풀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노대신들을 위로한 것은 이상적인 군신관계를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기사계첩」은 1719년 4월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회갑을 맞은 왕과 노대신들이 가졌던 기로회 장면을 그린 것으로 조선시대 기록화의 사실성과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인 「왕회도」는 10폭으로 된 대작 병풍이다. 황제가 각국 사신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장면이 오방색의 화려한 진채로 그린 작품이다. 부감법으로 내려다본 궁궐에는 소나무와 오동나무 등의 나무 위로 상서로운 구름이 뒤덮인 가운데 각국의 사신들이 황제에게 조공을 바친다. 꼼꼼하게 채색으로 묘사한 건물과 괴석, 정원에서 거니는 공작과 수목 표현은 19세기에 많이 제작된 「요지연도(瑤池宴圖)」「백동자도(百童子圖)」「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으로 이 작품의 제작시기를 추정해볼 수 있다. 왕회도는 당(唐) 태종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조선은 대한제국이 되면서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던만큼 1897년 이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밖에도 전시장에서는 조선 초기의 국가의례인 오례(五禮)를 적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왕의 만수무강과 태평성대를 기원한 「만수태평천하동(萬壽太平天下同)」, 군주의 신념과 사상을 알 수 있는 「세조어필(世祖御筆)」, 정조의 군왕으로써의 자신감과 백성을 위한 뜻이 담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등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조세걸,「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17세기, 종이에 연한 색, 40.2×30.4cm,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임득명, 「임류탁영도(臨流濯纓圖)」, 19세기초, 종이에 연한 색, 24.3×18.6cm,,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전 구영,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명 16세기, 비단에 색, 115.8×49.5cm, 국립중앙박물관
「청화백자산수문병」(앞, 뒤)1911년, 19.5cm,이화여대박물관
작자미상,「난정수계도(蘭亭修契圖)」, 1670년, 삼베에 수묵담채, 27×56.3cm, 선문대박물관
선비, 이상을 꿈꾸다.
동양의 선비들은 자연을 완전한 덕목을 가진 도(道)가 구현된 공간으로 인식하여, 속되지 않은 고결한 덕성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여겼다. 중국 무이산에 은거했던 주희(朱熹)의 성리학(性理學) 사상을 담고 있는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는 조선초기부터 말기를 거쳐 민화에서까지 즐겨 채택된 소재였다. 이성길(李成吉), 강세황(姜世晃), 이방운(李昉運)등 이름 있는 작가들이 두루마리나 화첩으로 「무이구곡도」를 그리면서 주희에 대한 흠모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과거 역사 속에서 존경할만한 인물의 고사(故事)를 그림으로 표현해 그들의 삶을 칭송했다. 그 중에서도 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평생을 고결하게 산 북송대의 임포(林逋)는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어 많은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김명국(金明國), 정선(鄭敾), 김홍도(金弘道) 등이 모두 「고산방학도」를 남겼는데 이번 전시회에는 17세기의 작가 조세걸(曺世杰)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런 고사인물도는 진(晋)대의 왕희지(王羲之)가 난정에서 41명의 문사들과 모임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그린 「난정수계도(蘭亭修契圖)」, 송(宋)대의 왕진경(王晋卿)이 서원에서 소동파(蘇東坡)를 비롯한 명사들을 초대해 시회를 연 장면을 그린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등이 수없이 많이 그려졌다. 명(明)대의 구영(仇英)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서원아집도」와 선문대박물관 소장품 「난정수계도」가 모두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과거의 인물을 존경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운치를 자신들의 삶에서 직접 실천하고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정원에 함께 모여 음악과 서화(書畵)를 즐기는 모임을 그린 「아회도(雅會圖)」, 폭포를 구경하는 「관폭도(觀瀑圖)」, 달밤에 거문고를 타는 「탄금도(彈琴圖)」 등은 자연 속에서 학문과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서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임득명(林得明)의 「임류탁영도(臨流濯纓圖)」는 그런 풍류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작품 제목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임류탁영(臨流濯纓)’은 ‘시냇가에서 갓끈 씻기’라는 뜻인데 이는 굴원(屈原)과 공자(孔子)가 얘기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시냇가의 선비들이 누구를 생각하고 갓끈을 씻었을지 추측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선비들의 풍류는 당(唐)대의 시인 가도(賈島)가 지은 명시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를 새겨 넣은 「청화백자산수문병」에서 절정에 달한다. 소나무와 시가 청화백자 표면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작자미상,「아미타설법도」, 조선후기, 비단에 색, 143.8×192cm,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작자미상,「십장생도병풍」, 19세기, 비단에 색, 166×416cm,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작자미상,「도교사제복」, 중국 20세기 묘족, 모직, 115.5cm,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이재관,「호로신선도」, 19세기, 종이에 연한 색, 113.4×25.8cm,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신성, 낙원에 깃들다.
종교에서는 불안한 현실로부터 평화와 기쁨이 충만한 구원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다양한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아미타여래와 보살들이 살고 있는 극락(極樂), 청정과 광명이 충만한 불국토(佛國土)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약사불이 관장하는 동방 유리광정토(瑠璃光淨土)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이상세계가 등장한다. 극락정토는 여기서부터 십 만억 국토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일체의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불국토다. 아미타여래는 이곳에서 무량한 설법을 펼치고 있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아미타설법도(阿彌陀說法圖)」는 중앙의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로 서 있는 가운데 여러 보살들과 제자, 사천왕이 호위하고 서 있다. 이 작품 앞에 서서 부처의 설법에 귀 기울이면 십 만억 국토를 지나지 않아도 아미타여래와 독대할 수 있다. 죽은 영혼을 천도할 목적으로 제작된 「감로왕도(甘露王圖)」에서는 나와 인연 있는 영가들을 위한 애틋한 마음을, 「약사여래입상(藥師如來立像)」에서는 병든 자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져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도교에서는 불로장생의 도를 깨우친 신선들이 거주하는 이상향을 선계(仙界)로 표현했다. 「십장생도병풍(十長生圖屛風)」는 왕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만큼 해, 물, 돌, 불로초, 등 선계를 상징하는 열매와 동물들이 화사한 필치로 그려졌다. 이재관(李在寬)의「호로신선도(十長生圖屛風)」, 최우석(崔禹錫)의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등에서는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도교가 유교 못지않게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철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동시대 한국 미술가들의 회화, 사진, 설치 및 영상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전통이 현재 속에 어떻게 변형된 형태로 살아있는 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측에서는 이번 전시와 연계된 국제학술심포지엄도 개최했다. “미술속의 이상주의”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는 국내 학자들을 비롯하여 영국, 중국과 일본의 미술사학자들과 토론자들이 참여해 심도 있는 내용이 발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학박물관이 학문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대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 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획전이라 하겠다.
그림을 전부 감상하고 세 번째 전시장을 나오는데 방금 전에 본 「아미타설법도」에서 육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의 이상은 무엇인가? 그대는 가슴 속에 품은 이상을 향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이 글은 <미술세계> 6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왔했습니다.
2014.06.07블로그 > Daum블로그 http://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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