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 선생 현판 글씨 “유재留齋” 유감(有感) 外

2019. 3. 25. 18:21글씨쓰기




[스크랩] 추사(秋史) 선생 현판 글씨 “유재留齋” 유감(有感)| 꽃/나무/자연/그림 

 

운영자 | 조회 12 |추천 0 | 2019.02.07. 20:33

 


추사(秋史) 선생 현판 글씨 “유재留齋” 유감(有感)

 

   

 

   


   유재(留齋)는 추사(秋史) 선생의 제자(弟子)로 남병길(南秉吉, 1820-1869)의 아호이다. 그는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는데 추사 선생이 서세(逝世)한 후 유고를 모아 12년만에 [완당척독(阮堂尺牘)]과 [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를 펴내어 오늘날 ‘완당선생집’이 나올 수 있는 기초 작업을 닦아 놓은 분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그의 아호 연관 현판을 추사 선생이 그것도 제주도 유배 생활 중에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 “유재‘라는 현판이 창덕궁에도 걸리고 또 그것을 모각한 작품이 민간에도 수다히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헌종대왕이 추사의 글씨를 무척 좋아하여 제주에 귀양살이 하고 있는 추사에게 자주 글씨를 요청하였다고 하는 바 위 현판의 원본은 그 때 쓰여진 것으로 짐작이 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저간(這間)의 사정을 짐작하도록 하는 글을 추사 선생의 또다른 제자 소치(小癡) 허유(許維, 許鍊. 1809-1892)에게서 보게 된다. 곧 소치가 헌종대왕의 부름을 받고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로 배알하러 갔을 때 거기서 본 추사의 현판에 대하여 언급한 바가 ’소치실록‘에 전한다. 그 글의 내용 중 중요 부분을 약기하면 “수문장을 따라……낙선재에 들어가니 상감께서 평상시 거처하시는 곳으로 좌우의 현판 글씨는 추사의 것이 많았다. <향천香泉>, <연경당硏經堂>, <유재留齋>, <자이당自怡堂>, <고조당古藻堂>이 있었고, 낙선재 뒤에는 또 <평원정平遠亭>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현판들이 경복궁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소치가 보았다는 현판 중 <유재留齋>에 대하여는 좀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소치실록’ 부기(附記)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더하고 있어서 지금껏 전설처럼 되어 세상에 떠돌게 되었다. 곧 “추사 선생이 제주에 있을 때 글씨를 써서 현판으로 새겼는데 배로 싣고 바다를 건너다가 떨어뜨려 일본땅으로 떠내려간 것을 후에 찾아온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 <유재>라는 현판 글씨는 아주 귀하고 상당한 사연을 간직한 현판인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현판에 대하여는 유홍준의 글이 또한 있는데, 그는 이 현판의 모각본을 세 가지를 보았는데, 그 중 일암관(日巖館) 주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하였다.


   오늘(2013.08.04) KBS 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 출품된 추사 선생 <유재> 현판 또다른 모각본을 보면서 내가 언젠가 어디서인지도 모른 채로 사진 파일로 간직하게 된 자료를 다시 꺼내 보게 되었는데, 내가 그 사진 파일을 일부러 오래 자료로 간직한 이유는 추사 선생의 명품 글씨도 글씨려니와 한편으로 어릴 적부터 배워 뇌리 속에 간직한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誠心篇]  글귀의 아름다움 및 그 뜻의 절실함에 대하여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감동 때문이었다.

 

* 留齋

留不盡之巧,   以還造化.

留不盡之祿,   以還朝廷.

留不盡之財,   以還百姓.

留不盡之福,   以還子孫.

阮堂題 .

 

* 유재 - 다 쓰지 아니하고 남겨 돌려주는 집


다 쓰지 아니한 재주를 남겨 조물주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아니한 봉록을 남겨 나라에 돌려주고,

다 쓰지 아니한 재물을 남겨 백성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아니한 복을 남겨 자손에게 돌려주라.

완당이 쓰다.

 

   예전 같으면 선비들은 물론이려니와 학동이면 거개가 다 암기하고 있었을 만한 글인데 추사 선생이 아끼는 제자를 위해 써준 좌우명(座右銘) 내지는 경구(警句, aphorism)라 할 만한 것이다. 위에서 보듯 제주 유배 시절 작품이라고 하는 현판의 글씨가 복각에 복각을 거듭해 원 글씨의 획 맛을 많이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 중 큰 글씨 부분은 원래의 필의(筆意)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인연으로 맺혀져 도움을 주고 받았을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 친지, 스승, 상사, 선배, 친우, 후배 등등 모두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은인들이요 조력자들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제 잘난 맛과 멋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참으로 많은 고마운 사람들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서 내가 있었고, 내가 자라온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 그대로 독불장군(獨不將軍)인 것이다. 나이 70만 되면 더 잘 난 이나 못 난 이, 더 가진 자이나 덜 가진 자, 더 배운 이나 덜 배운 이가 모두 한결이라 하니, 오로지 하늘이 나에게 품부(稟賦)한 모든 것이 나만을 위한 것만 아닌 줄 알아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 가는 지혜도 배워야 한다. 내가 남겨 하늘에 돌려줄 재주, 내가 남겨 나라에 돌려줄 봉록, 내가 남겨 세상에 돌려줄 재물, 내가 남겨 자손에게 돌려줄 복록이란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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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유재 留齋 현판’ - 석야 신웅순| 신웅순 유묵이야기 

                 

신웅순 | 조회 604 |추천 1 | 2016.01.07. 07:42 
   

                 

추사의 ‘유재 留齋 현판

 

 

 

 

석야 신 웅 순

 

        

 

김정희의, ‘유재’, 32,7×103.4 일암관 소재

 

   유재 남병길의 이다. 수학자, 천문학자로 이조참판을 지냈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고를 모아완당척독담연재시고를 펴냈다. 완당선생전집 기초가 되었다.

유재는 추사가 제자 남병길에게 유재라는 호를 지어준 현판 글씨이다. 예서로 쓴 유재와 행서인 풀이글, 그리고 끝에는 "완당 제하다"라고 적혀 있다.

 

남김을 두는 집.


다 쓰지 않은 기교를 남겨서 조물주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않은 녹을 남겨서 나라에 돌려주고,

다 쓰지 않은 재물을 남겨서 백성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않은 복을 남겨서 자손에게 돌려주라.

 

완당 김정희가 쓰다.

 

 

留齋.


留不盡之巧, 以還造化,

留不盡之祿, 以還朝廷,

留不盡之財, 以還百姓,

留不盡之福, 以還子孫.


阮堂題.

 

   이 현판은 그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쓴 것이다. 복각에 복각을 거듭해 원 글씨의 맛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큰 글씨 유재는 원 필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치실록의 부기에는 완당이 제주에 있을 때에 써서 현판으로 새겼는데 바다를 건너다 떨어뜨려 떠내려 간 것을 일본에서 찾아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궁금증을 더하는 이유이다.


   유홍준은 유재 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유재 현판을 모두 세 개 보았다. 대개 같은 서체로 되어 있으나 약간씩 글맛이 달라 복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중 일암관 주인이 소장하고 있는 유재 현판이 가장 명품이다. 예서 로 쓴 유재두 글자와 행서로 쓴 풀이글이 참으로 멋지게 어울렸다. 더욱이 그 뜻풀이를 보면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충언의 일격이었다.(완당평전,252)

 

   노자화려한 색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눈은 멀게 되고, 섬세한 소리를 추구할수록 인간의 귀는 먹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입은 상하게 된다. 얻기 힘든 물건을 얻으려 할수록 사람의 행동은 무자비하게 된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難得之貨令人行放)’고 경고했다.

도의 경지라할까, 달관의 경지라할까. 유재 현판은 그의 인생과 예술의 진수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추사 현판의 남기는 여유와 나누는 미덕의 해제는 오늘날 욕망과 물질에 눈이 어두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 한국문학신문,2016.1.6(수) 




                                                                추사의 ‘유재 留齋 현판’ - 석야 신웅순 2016.01.07


cafe.daum.net/callipia/Whpy/204   서예세상








유재(留齋) - 남겨 둠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8년 03월 19일 월요일 제23면     승인시간 : 2018년 03월 18일 18시 08분
             

[투데이칼럼]
허재영 충남도립대학교 총장


   유재(留齋)는 추사 김정희가 그의 제자 남병길에게 지어준 호이다. 김정희는 현판에 유재라는 제목의 글을 남기고 있다. 김정희가 그의 제자 남병길에게 호를 지어주면서 글로 남긴 선물이라고 한다.

< 留齋> 留不盡之巧以還造化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자연)로 돌아가게 하고 / 留不盡之祿以還朝廷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 留不盡之財以還百姓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 留不盡之福以還子孫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남겨 둔다는 의미는 내게 허용된 것을 소진하지 않고 후일의 필요에 대비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현재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나 재능을 자기만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그것이 나에게 정당하게 할당되었는지에 대해 숙고하지 않는다. 나에게 허용된 양이 얼마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이 이 세상을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끝없는 훼손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기술의 발달이 앞으로 맞이하게 될 우리 삶의 환경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이 기술의 발달에 따라 편리하게는 되었으나 더 행복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억제되거나 통제된 욕망, 즉 남겨둠이 있어야 한다. 앙상한 감나무에 남겨놓은 까치밥처럼,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내어주는 희생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식량인 것처럼 말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남아있는 이삭은 우리 삶의 철학을 상징한다. 이삭은 여유롭지만은 않았던 농부들이지만 들판 위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식량조차 배려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는 자들은 그 녹봉마저 남겨두라고 유재(留齋)는 말한다. 그의 능력으로 받는 봉급이지만, 백성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돈이므로 아껴 쓰고 남겨서 조정으로 돌려주라는 권고이다. 재물도 만찬가지이다. 국부는 국민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소유의 기회는 국민들에게 고르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개 부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권력과 결합된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부의 집중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하였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재물조차 백성들에게 돌려주라는 유재의 가르침은 뼈아픈 지적이다. 주변에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졌다고는 하지만, 빈부의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고, 갚을 수 없을 만큼 진 은행 빚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과거에 우리에게는 잔칫날 찾아오는 걸인들에게도 융숭하게 상을 차려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걸인들조차도 내치지 않고 우리의 이웃으로 대접하는 포용력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귀중한 가치이다. 빈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세상에는 행복하다는 말보다 고통스럽다거나 불행하다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강고하고 불편한 질서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가질) 것을 조금이라도 남겨두어서 누군가의 간절한 필요에 내어주는 너그러움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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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留齋) - 남겨 둠 2018.03.18 | 충청투데이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남겨서 돌아가게 하니

입력 : ㅣ 수정 : 2017-12-12 22:51

                      
양진건 제주대 교수

▲ 양진건 제주대 교수

    


   한 해가 가고 있다. 실학자 이덕무는 한 해를 보내면서 “한평생 마음이 게으르기에 매번 섣달그믐이 슬퍼진다”고 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은 높은데 몸과 마음이 게으르기만 하니 큰일이라 여겨질 것이다. 그래서 새해엔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자 거듭 맹세하게 된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다. 그래서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마음이 어수선해질 때면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생활 때 남긴 ‘유재’(留齋)라는 현판 글씨의 내용을 한 번쯤 되새겨 볼 일이다. ‘유재’란 말 그대로 ‘남김을 두는 집’이라는 뜻이다. 부지런히 채워도 부족하기만 한데 대체 무엇을 남기라는 것인지.

   추사“기교를 다 쓰지 않고 남겨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巧以還造化), 녹봉을 다 쓰지 않고 남겨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祿以還朝廷), 재물을 다 쓰지 않고 남겨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財以還百姓), 내 복을 다 쓰지 않고 남겨 자손에게 돌아가게 하라(留不盡之福以還子孫)”고 했다. 바쁠수록, 잘나갈수록, 많이 가질수록, 높이 오를수록 ‘남기는 여유와 나누는 미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그런 시간이 없다. 버트런드 러셀이 지적했듯이 오히려 게을러야 실제로 가장 값비싼 소모품인 ‘시간’이 충분해지므로 여유와 미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가능할 수 있다. 

어떤 인기 연예인이 거액을 벌어 90억원대의 빌딩을 샀다는 뉴스가 세밑을 장식하고 있다. 그이 외에도 빌딩 부자가 된 스타들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그들이 남기고 나누었다는 이야기는 과문한 탓인지 듣질 못했다. 그들은 노래와 연기의 고되고 바쁜 일정으로 얻은 당연한 대가라고 하겠지만, 빌딩만을 구입한 채 남기는 여유와 나누는 미덕을 갖지 못한다면 결국은 자신들의 인기로부터 자신들이 소외당하게 될 것이다. 

   인기도, 권력도, 세상만사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한 번 성하면 반드시 멀지 않아 쇠해진다는 말이다. 쇠해짐을 대비해 빌딩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쇠해짐을 대비해 남기고 나누어야 함을 충고한 것이 추사 김정희 ‘유재’의 가르침인 것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만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가 모자라다고 아우성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넘쳐도 멈출 줄 모른 채 파국을 자초하고, 거대 교회는 아량도 도량도 없이 세습을 당연시하는 데다 재산 증식은 이제 고위 공직자들의 빼어난 실력이고, 편법 상속은 기업가들의 탁월한 경영 능력이 된 지 오래며, 소시민들은 가족의 행복이라는 미명 아래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챙기고,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 욕심으로 대를 잇는다. 

   유배인이었던 다산 정약용은 ‘죽는다는 것은 아침에 생겼다가 없어지는 버섯처럼 덧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덧없는 인간사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는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마라. 노심초사하지 마라. 사는 것을 하늘에 맡겨라. 부질없이 바쁘지 마라. 쓸데없는 계획을 세우지 마라. 독서하고 탐구하라. 마음을 닦고 천품을 온전히 하라. 높은 정신에 도달하라”고 했다. 

   ‘남기는 여유와 나누는 미덕’ 이야말로 다산이 말한 ‘천품’이요 ‘높은 정신’일 것이다. 추사나 다산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를 수 있다면 바쁜 한 해를 보내면서 세월타령이나 건강타령, 돈타령, 술타령 대신 ‘매번 남기고 나눌 수 있어 기쁘다’고 진정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값나가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7-12-13 30면








[시간의 빈터]과유불급(過猶不及)과 12월  윤석홍 시인·자유여행가

  • 대경일보
  • 승인 2017.12.13 14:16



 

   얼마 전 추사 김정희와 관련한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내용입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은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유재(留齋)’라는 현판이 눈길을 끕니다. 유재는 김정희의 제자 남병길(南秉吉)의 호입니다. 유재는 추사가 세상을 뜨고 난 후 추사의 유고를 모아 ‘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완당척독(阮堂尺牘)’을 펴낸 인물입니다. 오늘날까지 추사의 작품을 세상에 전해지도록 한 학자입니다. 훗날 이조참판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어떤 연유로 그의 호인 유재를 현판으로 새기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어 아쉬움이 듭니다. 다만 추사의 제자였던 허소치(許小癡)의 책  ‘소치실록’ 부기(附記)에 보면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 있을 때 현판으로 새겼는데 바다를 건너다 떨어뜨려 떠내려간 것을 일본에서 찾아온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 현판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책에 실린 사진으로 보는‘유재’ 현판은 예서로 쓴 ‘유재’라는 글자와 행서로 쓴 풀이가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 깊은 맛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삶의 자세로‘유재’의 의미를 풀어냈습니다. 즉, 챙기기보다 남기는 미덕을 강조한 해제가 돋보입니다. 욕망과 물질에 마음이 어두워진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의미가 크게 느껴집니다. 유재의 풀이 글은 이렇습니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겨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巧以還造化)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겨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祿以還朝廷)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겨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財以還百姓)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겨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留不盡之福以還子孫)

간결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글입니다.

   다하지 않는 여유, 그리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미덕에서 볼 때 우주가 주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작은 욕심마저 다하고도 모자라 아우성이고, 넘쳐도 멈출 줄 모른 채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그런 세상에는 아량이나 도량도 없고 배려도 없습니다. 당연히 도덕과 신뢰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어지며 사막처럼 황량해질 것입니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 등장하는 고정 메뉴인 재산 증식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기업가들은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법적 포장술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챙기려는 욕심, 누구와도 나누지 않으려는 욕심이 세상을 얼룩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물질이나 욕심을 채우고 넘쳐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입니다. 2000여 년 전에 노자‘화려한 색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눈은 멀게 되고, 섬세한 소리를 추구할수록 인간의 귀는 먹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입은 상하게 된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五味令人口爽)’라고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궁궐은 화려하나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곳간이 비었다. 그런데도 비단옷 두르고 날카로운 칼 차고 음식에 물릴 지경이 되어 재산은 쓰고도 남으니 이것이 도둑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랴(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財貨有餘 是爲盜과)’라고 개탄했습니다.

   남김으로써 두루두루 돌아가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자연과 인간의 흐름이 아닐까요. 한꺼번에 챙기고 탕진하고 싶어하는 욕망, 넘쳐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는 욕심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립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을 마음에 되새기며 남기는 여유와 함께 나누는 미덕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12월을 보내며 느끼는 것은 '1'은 시간의 주인이고, '2'는 그 앞에 무릎 꿇은, 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365일 써왔던 일기 잉크가 조금씩 말라 가며 서서히 멈춰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날은 춥지만 훈훈한 마음의 별 하나 켜고 이웃을 위해 밝혀 주며 기쁜 성탄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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