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의 흐름과 변화 (위진남북조)

2019. 11. 26. 00:40글씨쓰기



서체의 흐름과 변화 (위진남북조)|서예통론
하전|조회 46|추천 0|2015.01.22. 19:17http://cafe.daum.net/bbhy0003/S1GN/18 

  

 

 

p186

 

 

 

위진남북조의

 

 

북비(北碑)와 남첩(南帖)

 

 

 

위진 남북조는

 

조조(曹操)가 위(魏)를 세운 220년으로부터

 

589년 남조의 진(陳)과 북조의 주(周)가

 

수(隋)에 멸망하기까지의 359년간이다.

 

한 대의 장초를 계승하여 행초가 이채롭게 발전된 한편

 

예서가 변하여 해서 특유의 풍격을 이룬 기간이다.

 

전해지고 있는 이 시기의 글씨로 볼 때

 

북방의 글씨는 모두 비이다.

 

남방은 대부분이 첩이다.

 

 

 

 

 

 

 

위-서진의 서법

 

 

위에서 서진에 이르기까지

 

전한의 여서(餘緖)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면모로 변하여 갔다.

 

조조가 금비령(禁碑令)을 내림으로서

 

환(桓). 영(靈) 이래에 비를 세우던 풍습이 쇠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서가는

 

위의 종요(鍾繇)를

 

비롯하여 호소(胡昭). 한단순(邯鄲淳).

 

위개(衛개). 위탄(衛誕)이 있고

 

오(吳)의 황상(皇象).

 

서진(西晉)의 위관(衛瓘). 위항(衛恒) 부자.

 

색정(索靖). 육기(陸機) 등이다.

 

필적은 전하지 않으며

 

다만 육기의 평부첩(平復帖)이 전해지지만

 

진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서(餘緖) ; 후세에 남겨주는 부분 (留傳給後世的部分)

 

 

 

 

 

종요(鍾繇 , 151-230)

 

 

자는 원상(元常)이고 영천장사(穎川長社)사람이다.

 

벼슬이 상국(相國)에 이르렀으며

 

위(魏) 명제(明帝)가 태부(太傅)에 봉(封)하였다.

 

글씨는 유덕승(劉德升). 조희(曹喜)에게 배웠고

 

주로 채옹(蔡邕)의 필법을 공부하였다.

 

유적(遺跡)은 전부 해서로서

 

<선시표(宣示表)>. <천계직표(薦季直表)>. <하첩표(賀捷表)>

 

등이 있으나 모두 위작(僞作)으로 여겨진다.

 

지금 전해지는 선시표는

 

왕희지 임본(臨本)이라고 한다.

 

그 서풍은 단정고아(端整古雅)하며

 

결체(結體)는 납작한 편이고

 

필획은 이미 예의(隸意)가 없다.

 

 

상국(相國) ; 영의정·좌의정· 우의정의 총칭. 상신(相臣)


위작(僞作) ; 다른 사람의 작품을 흉내 내어 비슷하게 만드는 일.


단정고아(端整古雅) ; 정리되어 있으며 예스러워 맑음


예의(隸意) ; 예서의 필의

 

 

 


천계직표(薦季直表)는  당송 때에는 기록이 없다가

 

명대에 와서 추중(推重)되어

 

건륭(乾隆) 때에는 <삼희당법첩(三希堂法帖)>의

 

귄수(卷首)에 넣었다.

 

고고박졸(高古樸拙)하여 색다른 운미(韻味)를 풍기기는 하지만

 

후인의 위작이다.

 

 

고고박졸(高古樸拙) ; 고상하고 예스러우며 소박하고 정직하다


운미(韻味) ; 우아한 맛

 

 

 




 

 

 

황상(皇象)

 

 

생졸년은 미상 자는 휴명(休明)이고

 

광릉인(廣陵人)이다.

 

시중(侍中) 벼슬을 하였고

 

두도(杜度)에게 장초와 채옹에게 예서를 배웠다.

 

소전에도 능했다.

 

장초로 쓴 급취편이 있으며.

 

<천발신참비(天發神讖碑)>를 쓴 것으로 전해진다.

 

 





급취장(急就章)



 

 

 

 

색정(索靖)

 

자는 유안(幼安)이고 돈황(敦煌) 사람이다.

 

초서를 잘 썼다.

 

칠월첩(七月帖)이 전하며

 

번각(翻刻)으로 참모습을 잃었지만

 

그 풍신(風神)을 가상할 수 있다.

 

전해오는 <급취장(急就章)>.<월의첩(月儀帖)>.

 

<출사표(出師表)>등이 장초의 풍격과 비슷하다.

 

 

번각(翻刻) ; 한번 새긴 책판 따위를 본보기 삼아 다시 새김






 

 

 

 

육기(陸機, 261-303)

 

자는 사형(士衡), 오군(吳郡)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이름을 얻었고 글씨를 잘 썼다.

 

그의 <평부첩(平復帖)>은

 

진(晉) 이전의 명가묵적(名家墨跡)으로는

 

최고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첩은 미문(微紋)이 있는 상아색 종이에 쓴 것으로 

 

 먹색이 녹의(綠意)를 띄고 있다.

 

씨는 장초인데 필획이 연세(連勢)하고 기굴(奇倔)하다.

 

필법이 원혼(圓渾)하여

 

자못 전주(篆籒)의 유의(遺意)가 엿보인다.

 


 명가묵적(名家墨跡) ; 이름난 글씨


 미문(微紋) ; 작은 무늬


 녹의(綠意) ; 푸른 색 ?


연세(連勢) ; 이어져 있는 형세

 

기굴(奇倔) ; 기이하고 강한 필세? (倔;고집셀 굴)

 

원혼(圓渾) ; 부드럽고 중후하다.

 

전주(篆籒) ; 대전(大篆)

 

유의(遺意) ; 의미가 남아있다. ?





평부첩(平復帖)



 

 

 

 

곡랑비(谷郞碑 272)

 

서촉(西蜀)에는 석각이 없다.

 

동오(東吳)의 석각은

 

<천발신참비(天發神讖碑)>.<봉선국산비(封禪國山碑)>.

 

<곡랑비(谷郞碑)>의 세 비석이 전한다.

 

272년에 세워진 이 비는

 

예서에서 해서로 변모하는 일면을 볼 수 있다.

 

간간히 之자와 같이 전서체가 보이기도 하고

 

삐침이나 가로획에서 해법(楷法)이 나타난다.

 

 

 

 해법(楷法) ; 해서의 필법

 







 

p191

 

 

 

천발신참비(天發神讖碑 276)

 

 

276년 강소(江蘇)의 암산(巖山)에 세워졌으며

 

원석(原石)은 청의 가경(嘉慶) 때에 훼손되었다.

 

필획이 다곡(多曲)하면서 능려(稜厲)한데

 

서체는 전서와 예서의 중간이다.

 

가로획 기필에서의 특이한 처리와

 

두드러진 방필 내리긋는 획의 첨봉(尖鋒)은

 

서예사상에 있어서 달리 한 체를 갖추고 있다.

 

 

다곡(多曲) ; 많은 굴곡 ?


능려(稜厲) ; 기세가 강해 당해 내기 어렵다.

첨봉(尖鋒) ; 매우 뾰족한 산봉우리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 도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