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의 흐름과 변화 (북조의 서법과 북비)

2019. 11. 26. 00:44글씨쓰기



서체의 흐름과 변화 (북조의 서법과 북비)|서예통론
하전|조회 161|추천 0|2015.02.03. 20:00http://cafe.daum.net/bbhy0003/S1GN/20 

 

 

 

p201

 

 

북조의 서법과 북비

 

 

 

  북조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주의 조(趙). 연(燕)에서


이어진 나라들이다.


북위를 비롯하여 북위에서 양분된 서위(西魏). 동위

 

(東魏). 북주(北周). 북제(北齊)이다.


이때에 금비령(禁碑令)이 없었으므로


북비의 특유한 서체가 연성(演成)되었는데 남조의

 

유풍과는 이취(異趣)가 있다.


북비는 북위의 입국(立國)이 가장 오래 유지되었으므로


‘위비(魏碑)’라고 하고 그 글씨를 ‘북위서’라고 한다.


육조(六朝)는 건업(建業; 지금의 남경)을 수도로 하였던

 

오(吳). 동진(東晋).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을 가리킨다.

 

북비는 실진(失眞)된 남첩에 반하여 원작에 가까운 유풍을 접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귀중하게 여겨졌다.


그 성취도 대단하였으므로

 

마침내는 존비(尊碑)의 사상을 낳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비각(碑刻) 이외에도 <조상제기(造像題記)>. <마애각경(摩崖刻

 

經)>. <묘지명(墓誌銘)> 등 전하여지는 글씨가 매우 많다.

 

대체적으로 비문과 조상기는 방준능려(方峻稜厲) 하고 마애서는

 

웅위기절(雄偉奇絶)하며 묘지명은 온자연미(蘊藉姸美)한 것이

 

특징이다.

 

 

연성(演成) ; 재촉하여 이루어지게 하다


이취(異趣) ; 색다른 정취


실진(失眞) ; 부정확하게 재생


입국(立國) ; 나라를 세움


존비(尊碑) ; 비문을 소중히 여김


조상기(造像記) ; 석상(石像), 동상(銅像), 목상(木像) 화상(畵像) 따위를

                      

                       만든 유래 등을 적은 기록


마애각경(摩崖刻經) ; 암벽이나 석벽에 글을 새김


묘지명(墓誌銘) ; 묘지(墓地)에 기록한 글


방준능려(方峻稜厲) ; 규모가 크고 날카로우며 힘이 있음


웅위기절(雄偉奇絶) ; 웅대하고 위세가 넘치며 매우 기이함


온자연미(蘊藉姸美) ; 함축성이 있으며 곱고 아름다움

 

 

 



p202

 

비(碑)

 

 

  북조의 서풍은 북위 456년에 세워진


중악숭고영묘비(中岳嵩高靈廟碑)의 예법(隸法)이


비교적 함유되어 있는 것과


동위(東魏) 540년에 세워진


경사군비(敬使君碑)의 원유(圓柔)한 풍격의

 

것들을 제외하면 거의가


방준단정(方峻端整)하여


봉망(鋒鋩)이 현로(顯露)한 것들이다.

 

 

 


예법(隸法) ; 예서를 쓰는 법 ?


원유(圓柔) ; 둥글면서 부드러움 ?


방준단정(方峻端整) ; 규모가 크고 바르고 말쑥함


봉망(鋒鋩) ; 글씨를 써서 마지막으로 빠진 획의 끝 ?


현로(顯露) ; 겉으로 드러나는 것?

 

 

 

 

 

장맹룡비(張猛龍碑)

 

 522년 북위에 세워진 것으로 곡부의 공묘에 있다.

필획이 단정하고 강하며 예리하다.

운필은 굳세며 치밀하다.

결구는 평정 속에 운율이 있는 듯 묘하며

품격은 웅장하고 강하며 대단히 치밀하다.

 




 

 

 

고정비(高貞碑)

 

  523년에 새겨진 북위의 비로

청 건륭(乾隆) 때에 산동(山東)의 덕현(德縣)에서 출토되었다.

필법이 경건(勁健)하고 결자가 준정(俊整)하다. 

 <장맹룡비>와 더불어 북비의 걸작(傑作)으로 꼽힌다.


경건(勁健) ; 굳세고 튼튼함


준정(俊整) ; 빼어나게 단정함 ?

 








 

 

조상기(造像記)

 

 

  조상기는 용문석굴(龍門石窟)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494년 북위의 효문제(孝文帝)가

도읍을 낙양(洛陽)으로 옮긴 이후

제왕들이 불교를 극진히 신봉하게 되었다.

따라서 도읍의 남방인 용문의 석벽(石壁)에

굴을 뚫고 석불을 조각하고 낱낱이 조상(造像)의 내력을 새겼다.

‘용문오백품(龍門五百品)’이란 표현으로

그 방대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중에도 가장 유명한 것 20가지를

<용문이십품(龍門二十品)’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것은

<우궐조상기(牛橛造像記)>. <시평공조상기(始平公造像記)>.

<손추생조상기(孫秋生造像記)>. <양대안조상기(陽大眼造像記)>이다.

 

석벽(石壁) ;  돌로 쌓아 올린 벽 돌 벽

                  언덕의 바위가 바람벽 같이 내려질린 곳

조상기(造像記) ; 석상(石上), 동상(銅像), 목상(木像), 화상(畵像)

                         따위를 만든 유래 등을 적은 기록



우궐조상기(牛橛造像記)

 

  495년에 새겨졌고 용문의 기년(紀年)이 있는 것 중에는

 최고(最古)의 것이다.

자형은 편평(扁平)하며 특히 어깨부분의 전절(轉折)에서

이곡절(二曲折)을 이룬 것이 특이하다. 

결구가 불안정한 듯 하며 선조(線條)가

점성(粘性)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기년(紀年) ; 연대를 기재함


편평(扁平) ; 납작하고 평평함


이곡절(二曲折) ; 두 번 꺾임

 








 

시평공조상기(始平公造像記)

 

  498년에 글자를 양각으로 새겼다.

주의장서(朱義章書)란 서명(署名)이 있다.

필획이 방준능려(方峻稜厲)하여

마치 칼로 벤 듯 하며 풍격이 중후하다.

 

 

서명(署名) ; 서명하거나  사인함


방준능려(方峻稜厲) ; 규모가 크고 날카로우며 힘이 있음

 

 

 



 

 

 

손추생조상기(孫秋生造像記)

 

  502년에 새겨진 것으로

“맹광달문(孟廣達文), 소현경서(蕭顯慶書)”라고 서명되어 있다.

용필과 서체는 <시평공조상기(始平公造像記)>와

거의 비슷하다.

점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고

수획(竪畫)에 현침(懸針)이 많으며

횡획의 말단이 마치 파세와 같이 출봉(出鋒)되어 있다.

장중(莊重)하고 전려(典麗)한 풍격이다.

 

수획(竪畫) ; 세로획


현침(懸針) ; 바늘을 매어 단 듯한 획


출봉(出鋒) ; 붓 끝이 드러나 있음


장중(莊重) ; 장엄하고 무게가 있음

 

전려(典麗) ; 격식에 알맞고 아름다움

 

 






 

마애(摩崖)

 

 준령(峻嶺)의 애벽(崖壁)에 새긴 것으로

문명(石門銘)이 최조(崔早)이며

정도소(鄭道昭)의 것이 제일 유명하다.

 

 


석문명(石門銘)

  509년에 왕원(王遠)이 썼다.

필획이 혼원(渾圓)하고

결체는 횡편(橫扁)하면서 기울어 있다.

대자(大字)이면서 엉성하지 않다.

자유분방하면서 웅후(雄厚)한 풍격의 것으로

강유위는

“비일(飛逸)하고 혼목(渾穆)한 것으로는 으뜸[飛逸渾穆之宗]”이라고 하여

신품(神品)으로 평하였다.



혼원(渾圓) ; 둥글다

횡편(橫扁) ; 가로로 넙적함?

웅후(雄厚) ; 웅장하고 튼튼함?

비일(飛逸) ; 나는 듯 한가로움 ?

혼목(渾穆) ;질박하면서도 엄숙함

신품(神品) ; 입신의 경지에 든 작품, 걸작

 







 

 

정문공비(鄭文公碑)


  정희하비(鄭羲下碑)라고 하며 정도소(鄭道昭)의 글씨다.

정도소가 그의 부친 정희(鄭羲)를 위한 송덕문 비다.

북위 영평(永平) 4년(511)에 새겼고 글씨도 완전하며 

 작품이 세상의 인정을 받은 것은 청나라 때부터였다.

北碑南帖論(북비남첩론)의 주창자인 완원(阮元)이

북비의 대표작으로 그것을 탁본으로 소개하였고,

양수창(楊守敞) 등이 칭찬한 뒤로 일약

북위의 대표적 서예가로 지목되었다.

서풍은 웅대하고, 강한 필세(筆勢)와

부한 변화가 특징이다.

鄭道昭 정도소 ( ? ~ 516 ) 자 희백(僖伯).

호 중악선생(中岳先生).

하남성[河南省] 형양[滎陽] 출생.

 명문 출신으로, 박학다재 하고

시문(詩文)과 글씨에 뛰어났다.

벼슬은 산기상시(散騎常侍) · 청주자사(靑州刺史)

등을 역임하였고, 광주(光州: 山東省 掖縣)로

부임하는 도중 그 관내 산 속의

석벽(石壁)에 수많은 시문을 새겼다.

 

 






 

 

 

묘지명(墓誌銘)

 

 

  석판(石版)이 지상에 세워지면 <비>이고 묘에 들어가는 것은

 

<묘지(墓誌)>이다.

 

그러므로 묘지는 출토되었을 때 완호(完好)한 것이 많다.


서체는 온자연화(蘊藉姸華)한 것이 특징으로


비각이나 조상기와는 다르다.


대표적인 것은 방준(方峻)한


<원우묘지명(元羽墓誌銘)>과


유(圓柔)한 <장묵녀묘지명(張墨女墓誌銘)>이다.


이 외에도 <최경옹묘지명(崔敬邕墓誌銘)>.


<원우비상계번묘지명(元祐妃常季繁墓誌銘)>


등이 유명하다.

 

 

 

 


 

 

장흑녀묘지명(張黑女墓誌銘)

 

 

  351년에 새겼는데 원석은 없어졌다.


1825년 하소기(何紹基)가

 

산동에서 구탁본(舊拓本)을 구하였을 때


이미 전표(剪裱) 되어있었으며 행관(行款)도 불명(不明)하였다.


장현묘지명(張玄墓誌銘)이라고도 하는 이 비는


운필에 방원과 장로(藏露)가 어우러져있고


결체는 납작한 편이다.


온윤(溫潤)한 풍격으로 묘지명 중의 걸작이다

 

 


묘지명(墓誌銘) ; 묘에 들어가는 비에 기록한 명문


온자연미(蘊藉姸華) ; 함축성이 있으며 곱고 화려함 ?


전표(剪裱 가위전, 목도리표) ; 가위로 자른 부분?


방준(方峻) ; 규모가 크다


장로(藏露) ; 장봉과 노봉 (붓끝을 감추어 쓰거나 붓끝을 드러내어 쓰는 것) ?


온윤(溫潤) ; 마음이 온화하고 몸에 화기가 있음






이하는 모두 묘지명 참고 도판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 한한대자전, 도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