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의 흐름과 변화 (당(唐)의 해서 완성과 광초의 발생. 초당)

2019. 11. 26. 00:46글씨쓰기



서체의 흐름과 변화 (당(唐)의 해서 완성과 광초의 발생. 초당) |서예통론
하전|조회 79|추천 0|2015.02.12. 13:23http://cafe.daum.net/bbhy0003/S1GN/21 

 

 

p208

 

당(唐)의 해서 완성과

광초(狂草)의 발생

 

수대(隋代,581-617)는 서사(書史)에 있어서

승선계후(承先啓後)한 시기이다.

서가는 진(陳)부터 활약하였던

지영(智永)이 있을 정도이고

서적은 <용장사비(龍藏寺碑)>. <계법사비(啓法寺碑)>.

<소효자비(蘇孝慈碑)>. <조식묘비(曹植廟碑)>.

<미인동씨묘지(美人董氏墓誌)> 등이 있다.

 

승선계후(承先啓後) ; 이전 세대를 이어받아 다음 세대를 인도하여 줌?

 

 

당(唐)은 618년에서 905년까지의 287년간이다.

당대(唐代)에 와서 서적사상(書跡史上)에 빛나는

해서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당의 서법은 초(初). 중(中). 만당(晩唐)으로

연변(演變)하는 서풍으로 구분한다.

초당삼가(初唐三家)와 안(顔). 유(柳)의

해서의 완성과 창출(創出)이 대표적이며

안로공(顔魯公) 행서의 우뚝함과

장욱과 회소의 광초도 일격(一格)으로 꼽는다.

 

연변(演變) ; 변화 발전하다

창출(創出) ; 새로 이루어서 생겨 남

일격(一格) ; 격식을 갖추다

 

 

 

 

초당(初唐)의 서법(書法)

 

초당의 제왕들은 글씨를 좋아 함으로써

서풍이 성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특히 태종(太宗)은 서법을 보급하고

천하의 명적(名跡)을 모아들였다.

또한 왕희지를 준숭(遵崇)하여

이왕(二王)의 법을 익히고

우세남을 배워

<온천명(溫泉銘)>. <진사명(晉詞銘)>

 등과 같은 수일웅매(秀逸雄邁)한

풍격을 이룬 명가(名家)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가 안정되고 민생이 부족(富足)하여

서법의 발전에 좋은 환경이었으므로

걸출한 서가들이 배출되었다.

구양순(歐陽詢). 우세남(虞世南). 저수량(褚遂良)이

대표적인 인물로 초당삼가(初唐三家)라 칭해진다.

 바로 뒤인 손과정(孫過庭)도 중요한 인물이다.

 

명적(名跡) ; (=行蹟) 행위의 실적이나 자취

준숭(遵崇) ; 중요시하여 따르다 ?

수일웅매(秀逸雄邁) ;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며 힘이 있게 나아감 ?

명가(名家) ; 전문 분야에서 이름이 난 사람

부족(富足) ; 부유하고 넉넉함 ?

 

 

 

 

구양순(歐陽詢, 557-641)

 

구양순(歐陽詢)은 진(陳), 수(隋)나라에서

당(唐)나라의 초기(初期)에 걸친 서예가

(書藝家)이다. 

 자(字)는 신본(信本),

담주임상(潭州臨湘)사람이다.

그의 아들 구양통도 명필이다.

처음 우군서(友軍書)를 배우고

차차 널리 중장(衆長)을 취하여

자성일가(自成一家)하였다.

구성궁예천명 (九成宮醴泉銘)

75세 때의 글씨이다.

정관(貞觀) 6년 각(刻)하였다.

섬서성(陝西省)의 인유(麟遊)에 있다.

이 비는 구양순이 황제(皇帝)의 명(命)으로

쓴 것이므로 일점일획에 소홀함이 없는

근신(謹愼)한 것으로

해서의 지극한 법칙으로 여겨져 왔고

또한 완미(完美)로 평가되었다.

결체가 평정하고 엄밀하며

방정한 가운데 변화의 묘가 있으며

특히 정성을 들여 휘호(揮毫)한 것인 만큼,

용필(用筆)과 결구(結構)에는

촌분(寸分)의 어김도 없다.

심경(心境)은 높고 품격도 좋다.

구서(歐書)의 비(碑) 중에서

글자가 비교적 크고,

형(形)도 가장 잘 짜여 있다.

 

중장(衆長) ; 많은 장점 ?

근신(謹愼) ; 삼가고 조심함 ?

휘호(揮毫) ; 글씨를 씀 ?

 

 


 참고도판

구성궁예천명 (九成宮醴泉銘)




고근복묘지명(高近福墓誌銘)





온언박비(溫彦博碑)



행서 천자문(行書 千字文)


황보탄비(皇甫誕碑)


구양통(歐陽通)

도인법사비(道因法師碑)







우세남(虞世南, 558-638)

 

진초(陳初)에 나서 북주(北周). 수(隋)를 거쳐

당인(唐人)이 되었다.

자는 백시(伯施), 월주여요(越州餘姚)사람으로

벼슬이 비서감(秘書監)에 이르렀다.

해서인 <공자묘당비(公子廟堂碑)>는 그의 대표작이다.

처음 지영에게 글씨를 배웠고

다시 우군의 법을 묘득(妙得)하였다.

평자들은 구서(歐書)는 외로근골(外露筋骨)하며

우서(虞書)는 내합강유(內合剛柔)한데

군자장기(君子藏器)는 우세남이 우위라고 하였다.

공자묘당비(公子廟堂碑)

72세 때 스스로 짓고 쓴 해서이다.

지금 전하는 것은 송원(宋元) 때의 모각본(摹刻本)이다.

필획이 방정한 중에 원세(圓勢)를 띠었으며

봉망(鋒鋩)이 불로(不露)하여 온윤(溫潤)을 함축하고 있다.

결구는 평정한 가운데 변화가 있다.

청경(淸勁)하면서 또한 순후(純厚)한 걸작이다.

여남공주묘지명고(汝南公主墓誌銘稿)는 행서이다.

우세남의 행서 대표작으로 묵적(墨跡)이 남아있어

 더욱 보배스럽다.

운필이 막힘이 없고 구도(矩度)를 잃지 않았으며

필획이 조세(粗細)가 어울리고

자체의 대소가 참치(參差)하다.

장로(藏露)가 어울려 연미(姸美)하면서도 전아(典雅)하다.

적시첩(積時帖)은 남첩(南帖)의 종일(縱逸)함과 풍격이 근사하다.

고의(古意)가 남아있어

 면면히 흐르는 기세는 왕헌지의 풍을 닮았다.

혹자는 미불이 임서한 것이라고 한다.

당 태종(太宗)의 서(書)도 이 풍과 비슷하다.

 

 

묘득(妙得) ; 묘한 요령이나 방법을 깨달아 얻음

외로근골(外露筋骨) ; 근육과 뼈가 밖으로 드러남

내합강유(內合剛柔) ; (內合; 대나무의 안쪽이 겉으로 드러나게 쓰는 방식)

                             (剛柔 ; 굳세고 부드러움)

                             강하고도 부드러움이 겉으로 드러나 보임 ?

군자장기(君子藏器) ; 학식과 덕망과 실력

모각본(摹刻本) ; 책을 그대로 임모(臨模)하여 새긴 경우

임모(臨模) ; 글자의 형태를 원전과 똑같이 보고 쓰는 것

원세(圓勢) ; 둥근 형세 ?

봉망(鋒鋩) ; 붓의 끝부분 ?

불로(不露) ; 붓 끝이 드러나지 않음 ?

온윤(溫潤) ; 부드럽고 친근감이 듦

청경(淸勁) ; 맑고 굳셈

순후(純厚) ; 순박하다

구도(矩度) ; 법도. 법칙. 기거동작의 규율 법칙.

조세(粗細) ; 거칠고 세밀한 정도. 꼼꼼한 정도.

참치(參差) ; 길고 짧고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아니함

장로(藏露) ; 감추고 드러남

연미(姸美) ; 곱고 아름다움

전아(典雅) ; 법도에 맞아 아담(雅淡)함

아담(雅淡) ; 조촐하고 산뜻함

종일(縱逸) ; 제멋대로 하고 버릇이 없음(글씨를 씀에 막힘이 없이 자유자재로 씀 ?)

 

 


참고도판

 공자묘당비(公子廟堂碑)



汝南公主墓誌銘高(여남공주묘지명고)




적시첩(積時帖)







저수량(褚遂良, 596-658)

 

구(歐), 우(虞)의 만년에 장년(壯年)이었던

저수량은 우세남이 죽은 이후에 당 태종에게 발탁되었다.

자는 등선(登善)이고 하남양적(河南陽翟) 사람으로

벼슬이 상서좌복야하남공(尙書左僕射河南公)에 이르러

세칭(世稱) ‘저하남(褚河南)’이라 한다.

당초삼가(唐初三家) 중에 가장 변화로운 글씨를 써서

후대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 해서는

구(歐), 우(虞)에 비하여

완미(婉美)하고 경일(勁逸)하며

행초의 변화도 다채다자(多彩多姿)하다.

해서로는 <이궐불감기(伊闕佛龕記)>.

<맹법사비(孟法師碑)>.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

<예관전찬(倪寬傳贊)>. <음부경(陰符經)> 등이 있고

행서는

<고수부(枯樹賦)>. <천자문(千字文>. <문황애책(文皇哀冊)> 등이 있다.

이궐불감기(伊闕佛龕記)는 45세의 글씨로

저서(褚書)의 비로는 가장 조년(早年)에 속하는 것으로

진(陳), 수(隋) 동안의 전통적인 서법이다.

용문에 남아 있으며

기조(氣調)가 웅후고질(雄厚古質)하고

풍격이 천진경일(天眞勁逸)하다.

예관전찬(倪寬傳贊)은 묵적(墨跡)으로

대만고궁박물원에 있다

획의 굵고 가늠이 잘 어울려 있고

적(趯)이나 파(波)에서 이전의 것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이 역시 구(歐), 우(虞)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위진 서법의 승계이며 또한 창신으로 보여진다.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는 57세에 썼다.

자형(字形)은 해서이나 필법은 행서에 가깝다.

 획이 굵어도 비(肥)하지 않으며

말라도 고(枯)하지 않다.

결구에 변화와 미화(美化)를 궁구(窮究)하여

기묘한 지태를 이루었다.

변화의 모색과 얽매이지 않는 붓의 구사(驅使)는

그 이후에 끼친 영향이 막대하다.

 

 

기조(氣調) ; 기세의 어울림, 분위기 조화 ?

웅후고질(雄厚古質) ; 웅장하고 예스러우며 질박하다 ?

천진경일(天眞勁逸) ; 꾸밈이 없고 굳세며 편안하다 ?

 

 



이궐불감기(伊闕佛龕記)



 

 

 

맹법사비(孟法師碑)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





 


예관전찬(倪寬傳贊)





애책()





고수부(枯樹賦)




손과정(孫過庭, 648-702 ?)

 

초당삼가를 거치면서 초서에 있어서는 괄목할만한 작품이 없었다.

조금 후에 출현한

손과정의 수적(手蹟)인 <<서보>>는

초서의 법본(範本)으로 대표적이다.

자는 과정(過庭)이고 명은 건례(虔禮)이다.

자칭 오군인(吳郡人)이라고 하였다.

그는 옛 것을 좋아하였고 문사(文辭)를 잘했다.

글씨는 이왕(二王)의 신수(神髓)를 얻었으며

특히 초서에 뛰어났다.

서보는 초서의 범본일 뿐만 아니라

유명한 서학논저(書學論著)이다.

<<서보(書譜)>>는 전. 예. 해. 행. 장초. 초서 등의 공용(功用)과

그 특질을 천명했으며

서법의 기본적인 기법에 대해서도 총결하였다.

자신의 서법창작에 대한 경험을 토로 했으며

후학에게 어떠한 자세와 태도로 글씨에

임할 것인가를 제시하였다.

사륙변려체의 유려한 문장과 더불어

그 유려한 글씨는 장지(張芝)와 이왕(二王)

그리고 지영(智永)을 잇는

금초(今草)의 최상승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적(手蹟) ; 필적. 손으로 쓴 글씨

법본(範本) ; 본으로 삼거나 본으로 보여 줄만한 것

문사(文辭) ; (文詞) 문장에 나타난 말

신수(神髓) ; 정화, 깨끗하고 순수한 알짜.

공용(功用) ; 공을 들인 보람이나 효과

사륙변려체 ; 중국의 육조와 당나라 때 성행한 한문 문체




참고도판

서보(書譜)



  참고 문헌 ; 서예통론(원광대학교 출판국),

                 구성궁예천명(대신당) 선주선저, 인터넷 사전, 각 종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