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의 흐름과 변화 (당(唐)의 해서 완성과 광초의 발생. 중당)

2019. 11. 26. 00:47글씨쓰기



서체의 흐름과 변화 (당(唐)의 해서 완성과 광초의 발생. 중당) |서예통론
하전|조회 101|추천 0|2015.03.03. 19:45http://cafe.daum.net/bbhy0003/S1G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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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당(中唐)의 서법

 

중당에 접어들면서

이왕(二王)의 기식(氣息)과

초당의 유풍에서 점점 벗어나면서

당대(唐代)의 특유한 서풍이 전개되었다.

이 시기의 서가(書家)로는

이옹(李邕). 하지장(賀知章). 서호(徐浩).

이양빙(李陽氷). 장욱(張旭).

안진경(顔眞卿). 회소(懷素). 등이 있다.

중종(中宗). 현종(玄宗)도 글씨를 잘 썼다.

 

 

 

 

 

이옹(李邕, 678-747)

 

자는 태화(泰和)이고

양주강도인(揚州江都人)인데

북해(北海)의 태수(太守)를 지냈으므로

보통 ‘이북해(李北海)’라 부른다.

초에는 우군을 배웠는데 차차 구습(舊習)을 버리고

청신(淸新)한 자가풍을 이루었다.

대표작은 <녹산사비(麓山寺碑)>와

<운휘장군이사훈비(雲麾將軍李思訓碑)>이며

명인(明人)이 집(輯)한 <<이북해집(李北海集)>>이 있다.

녹산사비(麓山寺碑)는 730년에 세워졌는데

이옹(李邕)이 짓고 썼다.

행서로 비를 쓴 것인데

당시 행서로 비를 쓰는 것은 그리 흔치 않았다.

태종이 <온천명(溫泉銘)>을 행서로 썼고

저수량(褚遂良)의 <성교서(聖敎序)>에

행의(行意)가 있을 정도이다.

이 글씨는 초당 글씨 같은 단정한 기분과 달리

이지러진 듯한 가운데 골격을 갖추었다.

 

구습(舊習) ; 옛날이 습관

청신(淸新) ; 맑고 새로움

 

 

이사훈비(李思訓碑)는 737년에 세워졌다.

행서이다. 난정서 같은 맛도 있으면서

호방한 필치로 장봉(藏鋒)이 두드러져 보이는

단아한 일취(逸趣)의 것이다.

 

장봉(藏鋒) ; 붓끝을 감춤

일취(逸趣) ; 소탈하고 꾸밈없는 정취. 세속을 초월한 흥취.

 


참고도판


이사훈비(李思訓碑)  





녹산사비(麓山寺碑)





서호(徐浩, 703-782)

 

서호의 자는 계해(季海)이며

월주(越州) 사람으로

벼슬이 태자소사(太子少師)에 이르렀다.

묵적으로

주거천고신(朱巨川告身)이 있고

비각(碑刻)에

<불공화상비(不空和尙碑)>가 있다.

불공화상비(不空和尙碑)

획심(畫心)에 봉(鋒)이 감추어져 힘이 넘치며

결체(結體)가 평정관박(平正寬博)하다.

특히 노공필법(魯公筆法)이 간간이 나타나는데

꼭 단정할 수는 없지만

노공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획심(畫心) ; 획의 중심

봉(鋒) ; 붓 끝

결체(結體) ; 형체를 결합함

평정관박(平正寬博) ; 평평하고 바르며 널찍하다

노공필법(魯公筆法) ; 안진경 글씨의 특색

 



참고도판

불공화상비(不空和尙碑)




 

장욱(張旭)

 

장욱의 생졸 년대는 미상(未詳)이고

자는 백고(伯高) 소주오(蘇州吳) 사람이다.

초서를 잘 썼으며 벼슬이 장사(長史)에 이르러

세칭(世稱) ‘장장사(張長史)’라 한다.

성품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심지어 대취(大醉)하여 머리를 풀어 먹을 찍어

함성을 지르고 뛰어다니며

벽에다 광서(狂書)하였다고 한다.

당 문종(文宗) 때에 이백의 가시(歌詩)와

배민(裵旻)의 검무(劍舞)와 더불어

장욱의 초서가 삼절(三絶)로 꼽혔던

희기(稀奇)한 인물이다.

그가 쓴 초서를 ‘광초(狂草)’라 한다.

대표작으로는

해서인 <낭관석기(郎官石記)>가 있고

묵적으로 <초서고시사첩(草書古詩四帖)>이 있다.

그의 광초의 특징은

일필직하(一筆直下)하여

필세가 방종(放縱)하여

필치가 고경(古勁)하면서 유창하다.

이러한 필치는 멀리 왕헌지에서 나타난다.

장욱의 광초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가시(歌詩) ; 가사를 포함한 시문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 시와 노래

검무(劍舞) ; 칼춤

일필직하(一筆直下) ; 붓에 먹을 다시 먹이지 아니하고

                             단번에 곧바로 곧게 내려감

방종(放縱) ; 제멋대로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음

고경(古勁) ; 예스럽고 굳셈

 

 


참고도판

초서고시사첩(草書古詩四帖)




낭관석기(郎官石記)



 

 

 

 

안진경(顔眞卿, 709~785)

 

중국서예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당 현종(玄宗) 때의 충신으로

자는 청신(淸臣)이고 낭야임기(琅邪臨沂) 사람으로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이르고,

노군공(魯郡公)에 봉(封)하였으므로

세칭(世稱) ‘태사(太師)’

혹은 ‘노공(魯公)’이라고 한다.

평원령(平原令)을 지냈으므로

‘평원(平原)’ 이라고도 한다.

성품이 경개(耿介)한 충신열사(忠信烈士)로도

이름이 높다.

해서 작품으로는 <안근례비(顔勤禮碑)>,

<안씨가묘비(顔氏家廟碑)>, <다보탑비(多寶塔碑)>,

<고신첩(告身帖)> 등 많은 작품이 있으며,

행초(行草)의 작품으로는 <쟁좌위(爭座位)>,

<제질문고(祭姪文稿)>, <제백문고(祭伯文稿)>

등이 유명하며

전. 해. 행. 초를 마구 섞어 쓴 기서(奇書)인

<송배장군시(送裵將軍詩)> 등과

그밖에 전(篆) 예(隷)도 능하였다.

시대는 왕희지와 동향이다.

경개(耿介) ; 바르고 곧다

 

 

 

 

 

다보탑비(多寶塔碑)

  그 서풍(書風)은 세상에서

안법(顔法)이라 불리 우는데 다보탑비에는,

아직 노공(魯公) 독특(獨特)의 안법이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보탑비는, 안서(顔書)로서는

가장 초기작으로 天寶十一載(752년 4월)

안진경이 44세에 쓴 것인데 안서의 특색은

아직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일보직전(一步

直前)의 것으로서 해법(楷法)이 정확하고

엄밀하여, 일점일획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분명하게 쓰여 졌다.

석각(石刻)은 서안(西安)에 있다.



참고도판

다보탑비(多寶塔碑)



안근례비(顔勤禮碑)

  안진경(顔眞卿)이 짓고 썼다.

근례는 안진경의 증조부(曾祖父)이다.

건비(建碑)의 연대는 미상(未詳)이나

약 대력14년(大歷年間 766-779)

섬서성(陝西省) 만년현(萬年縣)

영안향(寧安鄕) 봉서원(鳳栖原)에 있는

묘도(墓道)옆에 세웠다.

진서(眞書=楷書(해서))로

사면(四面)에 새겼으며

안진경이 증조부의 덕업(德業)을 쓴 것으로

상배(上輩)에 대하여는 경어(敬語)를 썼고

동배이하(同輩以下)에는 경어(敬語)를 쓰지 않았다.

 



참고도판

안근례비(顔勤禮碑)



 

안씨가묘비(顔氏家廟碑)

 노공이 72세 때 짓고 쓴 것이다.

‘안씨가묘지비(顔氏家廟之碑)’의

6자 전액(篆額)이 있는데,

당시 전서의 대가인

이양빙(李陽氷)의 글씨라고 한다.

만년에 가문에 대하여 쓴 것이므로

한 획도 소홀히 한 것이 없다.

초범탈속(超凡脫俗)의 것으로

안해(顔楷)의 최상으로 여겨진다.

비후웅경(肥厚雄勁)하며

엄엄기상(嚴嚴氣象)의 풍격이다.

결구는 관활평온(寬闊平穩) 하다.

 

전액(篆額) ; 전자(篆字)로 쓴 현판이나 비갈(碑碣)의 제액(題額)

비갈(碑碣) ; 네모난 비석과 둥근 비석

제액(題額) ; 편액(扁額)에 글을 씀

                  (비문 앞부분에 제목을 쓴 것)

초범탈속(超凡脫俗) ; 최상의 세속을 초월함

비후웅경(肥厚雄勁) ; 살져서 두툼하며 웅장하고 굳세다

엄엄기상(嚴嚴氣象) ; 엄숙한 기세

관활평온(寬闊平穩) ; 넓고 편안함

 


 

참고도판

안씨가묘비(顔氏家廟碑)




제질문고(祭姪文稿)

 당(唐)의 건원원년(建元元年 758)에

안진경(顔眞卿)이 안록산(安祿山)의

변란(變亂)에서 순직(殉職)한

종형(從兄)의 자식인 조카 계명(季明)을

제사(祭祀)한 문(文)의 초고(草稿)이다.

이 亂에서 진경의 형인 상산태수(常山太守)

호경(호日+木밝을호,卿)은 진경과 서로 호응하여

兵을 일으켜서 역적을 막아서

적장(賊將)인 고막(高邈) 및 何千年 등을 생포하였으며

호경은 아들인 천명(泉明)을

경사(京師)로 보냈으나

그가 태원(太原)에 도착했을 때

절도사(節度使) 왕승업(王承業)은

이를 앞질러 자신의 공(功)으로 만들기 위해

천명을 머무르게 하여 보내지 않았으며

상산에서 급고(急告)가 있었음에도

구원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은 함락(陷落)되고

호경은 죽었으며 幼兒 계명(季明)등에

이르기까지 해를 입었다.

후에 천명은 빠져 나올 수가 있어서

진경이 있는 곳으로 왔다.

진경은 천명으로 하여금 河北으로 가서

호경 등의 屍體를 찾도록 했다.

호경은 한쪽 다리가 없을 뿐이었으나

계명은 겨우 머리만을 찾을 수 있었다.

신당서(新唐書)에서는

적장이 계명의 목에 칼을 대고 협박했으나

호경이 굴하지 않으니

이로 인해 끝내는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 수츤(首,木+親널츤)이 도착된 날에

진경이 이 조카를 제사(祭祀)한 문이 이것이다.

묵적(墨跡)은 원대(元代)에

조언례(曺彦禮)로부터 선우추(鮮于樞)에게 전해졌고

또다시 장안(張安)에게 돌아갔으며

명시대(明時代)에는

양명시(楊明時). 은사례(殷司隷)를 거쳐

오정(吳廷)의 수중(手中)으로 들어가서

[餘淸齋帖(여청재첩)]에 刻入되었고

후에는 祭姪의 묵적은 청대(淸代)에 이르러서

여러사람의 손을 거쳐서

건륭(建隆)의 어부(御府)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제발(諸跋)에 상세하게 있다 한다.

포세신(包世臣)은

제질문(祭姪文). 고백부문(告伯父文).

쟁좌위문(爭座位文) 三稿 가운데

제질고가 가장 奇縱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안서(顔書) 가운데 걸작인 동시에

많이 있지 않은 당인(唐人)의 진적(眞蹟)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지금은 많은 명적(名跡)과 함께

대만(臺灣)에 있는 고궁중앙박물원(故宮中央博物院)에

수장(收藏)되어 있다.

   

순직 : 직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음

종형 : 사촌 형

제사 :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놓고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의 행사

초고 : 시문의 초벌 원고

경사 : 서울 ,수도

수츤 : 머리를 넣은 오동으로 만든 관

奇縱 ; 기이하고도 자유자재하다. ?

 



참고도판

제질문고(祭姪文稿)



 

쟁좌위고(爭座位稿)

 

쟁좌위고에 대해서

미불(米芾)은 <<해악명언(海嶽名言)>>에서

안진경의 해서는 배우면

속문(俗文)이 된다고 나쁘게 평했지만,

쟁좌위첩(爭座位帖)은

전주(篆籒)의 기운(氣韻)이 있는

안진경의 걸출한 작품이라고 칭예했다.

<쟁좌위>는 <제질문>보다 더욱 고경(古勁)하다.

육필(肉筆)이 남아 있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걸작이다.

왕법을 골간(骨幹)으로 하고 있으며

장욱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이 느껴진다.

자연스러운 필치에 기위(奇偉)한 풍격은

안진경다운 창신이라 아니할 수 없다.

후대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고경(古勁) ; 고풍스럽고 굳세다 ?

골간(骨幹) ;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부분

기위(奇偉); 뛰어나게 훌륭함

창신(創新) ; 법고창신의 준말 ?

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

 

 


참고도판

쟁좌위고(爭座位稿)


그외 참고 도판

고신첩(告身帖)



곽씨 가묘비



동방삭화찬


 

마고선단기


 



부풍부자 묘당비


 


선우씨이퇴기



대당중흥송


송경비


제백고

알금천왕신사제기


장회각비



충의당 안서






회소(懷素)

 

회소의 자는 장진(藏眞)이고 장사(長沙) 사람이다.

출가하여 승(僧)이 되었지만

수행보다는 글씨에 몰두하였다.

회소도 장욱처럼 술에 취해

일사천리로 붓을 휘둘러 댔으므로

장욱의 광초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에게

‘장전소광(張顚素狂)’이라고 불린다.

자서첩(自敍帖)은

40세에 쓴 회소의 불후(不朽)의 명작이다.

비동(飛動)하는 필세로서

기상천외(奇想天外)하고 종횡무애(縱橫無涯)하여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필력은 경수(勁瘦)하고

필획이 운결(運結)되어 있으며

운필은 돈좌(頓挫)하였고

전절(轉折)은 합도(合度)하였다.

의취청원(意趣淸遠)하면서 종일(縱逸)한 작품이다.

초서천자문(草書千字文)은

광초와 다른 고박(古樸)한 법서(法書)이다.

죽은 해에 쓴 최만작(最晩作)이다.

세상 사람들이 ‘천금첩(千金帖)’이라고 한다.

각 글자가 분립(分立)되어 있고

운필은 수렴(收斂)하였으며

행간이 소랑(疏朗)하다.

도인(道人)이 쓴 것 다운

청담(淸淡)하고 고원(高遠)한 정품(精品)이다.

이외에도 초서로 <성모첩(聖母帖)>.

<장진첩(藏眞帖)>.<논서첩(論書帖)> 등이 있다.

 

 

비동(飛動) ; 나는 듯 움직임 ?

종횡무애(縱橫無涯) ; 자유자재로 행동하여 거침이 없는 상태

경수(勁瘦) ; 굳세고도 마르다 ?

운결(運結) ; 율동적이면서도 응집되어 있다 ?

돈좌(頓挫) ; 멈추고 바뀜, 기세가 갑자기 꺾임

전절(轉折) ; 붓을 사용함에 방향에 따라 엎고 뒤집는 운필의 하나 ?

합도(合度) ; 알맞다

의취청원(意趣淸遠) ; 뜻이 맑고 심오하다 ?

종일(縱逸) ; 자유자재하여 뛰어나다

고박(古樸) ; 예스럽다 ?

최만작(最晩作) ; 가장 늦은 나이에 쓴 작품 ?

분립(分立) ; 갈라져서 따로 서거나 따로 갈라서 세움

수렴(收斂) ; 거두어 들임 ?

소랑(疏朗) ; 성글고 활달하다 ?

도인(道人) ; 도교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

청담(淸淡) ; 맑고 담담하다 ?

고원(高遠) ; 높고도 심오하다 ?

정품(精品) ; 정성을 들여 정밀하게 잘 만든 작품 ?

 



초서천자문(草書千字文)





자서첩(自敍帖)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 운림당간 서적. 한한대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