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옛 문헌에 나오는 ‘한반도 명산’ <3>조선왕조실록 ①] 한양 주변 산들 대거 명산으로 떠올라

2019. 12. 18. 22:38산 이야기



[연재 | 옛 문헌에 나오는 ‘한반도 명산’ <3>조선왕조실록 ①] 한양 주변 산들 대거 명산으로 떠올라

    

입력 2019.12.16 10:48

왕조 따라 기준 달라져… 삼각산·백악 등 호국백으로 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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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은 조선 왕조 내내 한반도 최고 명산 대접을 받는다.
   조선은 불교를 국교로 지정한 고려와 달리 유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한국의 전통사상인 산천숭배는 여전히 매우 돈독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잘 나타난다. 
조선 개국 후 얼마 지나지 않은 태조 4년(1395) 8월, 태조는 서운관 관원에게 산이 무너지면 국가의 운세가 어떠한지를 묻는다. 
“산이 무너지는 것은 어떠냐?”
“명산明山이 아니라면 해가 없습니다”라고 답을 한다. 조선왕조 내내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명산에 대한 인식의 단면이다. 뿐만 아니다. 가뭄 때 지내는 기우제에서도 어김없기 명산대천에 대한 제사, 산천제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태종 5년(1405) 5월 종묘·사직·원단과 명산·대천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는 장면이 기술돼 있다. 
‘종묘宗廟·사직社稷·원단圓壇과 명산대천에 비를 빌었다. 임금이 오랫동안 가뭄으로 인하여 대전大殿에 나아가 정사를 듣지 아니하고, 날마다 더욱 두려워하여 수성修省하였다. 문가학이 아뢰기를 “신이 청재에 들어가서 비를 빌면 반드시 비가 내릴 것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과연 비가 조금 내렸으나, 먼지만 적실 따름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은 국가의 대소사를 산천에 제사 지내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유교는 신神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의 상황해결에 대해서는 한국의 전통신앙과 혼합돼서 나타나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징이다. 유교적 전통에 따라 지내는 제사는 혼백魂魄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와는 논의의 초점이 다른 부분이다. 
조선은 그래서 초기부터 전국의 명산·대천·성황·해도의 신에게 봉작을 내린다. 태조 2년(1393) 1월에 전국의 명산을 구체적으로 지정해서 봉작을 수여한다. 
‘이조에서 경내의 명산·대천·성황·해도의 신을 봉하기를 청하니, 송악의 성황은 진국공鎭國公이라 하고, 화령·안변·완산의 성황은 계국백啓國伯이라 하고, 지리산·무등산·금성산·계룡산·감악산·삼각산·백악白嶽의 여러 산과 진주의 성황은 호국백護國伯이라 하고, 그 나머지는 호국의 신이라 하였으니, 대개 대사성 유경이 진술한 말에 따라서 예조에 명하여 상정한 것이었다.’ 
명산에 대한 봉작을 내리며 그 구체적 지명이 드디어 등장한다. 또한 태조 3년(1394) 12월에는 왕도를 옮긴 이유에 대한 고축문도 황천과 후토의 신에게 지내는 모습이 나온다. 이러한 장면은 고려보다 오히려 조선이 한국의 전통신앙인 산신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조선 초 산천제 사전 규정해서 상정
   ‘(전략) 일관이 고하기를 “송도의 터는 지기地氣가 오래 되어 쇠해 가고, 화산華山의 남쪽은 지세地勢가 좋고 모든 술법에 맞으니, 이곳에 나가서 새 도읍을 정하라” 하므로 여러 신하들에게 묻고 종묘에 고유하여 10월 25일에 한양으로 천도한 것입니다. 또 참찬문하부사 김입을 보내서 산천의 신에게 고유하게 하였는데, 그 고유문은 이러하였다. 왕은 이르노라! 그대 백악과 목멱산木覓山의 신령과 한강과 양진楊津 신령이며 여러 물귀신이여! 대개 옛날부터 도읍을 정하는 자는 반드시 산을 봉하여 진鎭이라 하고, 물을 표表하여 기紀라 하였다. 그러므로, 명산 대천으로 경내에 있는 것은 상시로 제사를 지내는 법전에 등록한 것이니, 그것은 신령의 도움을 빌고 신령의 도움에 보답하기 때문이다. (후략)’ 
여기서 ‘산을 봉하여 진’이라 하는 의미가 바로 진산의 개념인 것이다. 후반부에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어 태종 13년(1413), 14년에는 잇달아 사전祀典을 개정하거나 산천에 제사 지내는 규정을 상정한다. 
태종 13년 6월 올린 사전은 다음과 같다. 
‘삼가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살펴보건대, 산천에 작爵을 봉해 준 것은 무후(측천무후를 지칭)로부터 시작되었고, 송나라 진종 때에 이르러 오악에 모두 봉하여 제帝로 삼았으며, 또 각기 후后로 봉했습니다. 진무가 말하기를 “제는 단지 하나의 상제가 있을 뿐인데, 어찌 산을 제라 이를 수 있겠는가? 또 후전을 그 뒤에 세운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지만 어느 산이 그 짝으로서 부부가 되겠는가” 하였습니다. <홍무예제洪武禮制>에서는 악진해독嶽鎭海瀆을 제사하는데, 모두 모악某岳·모해某海의 신이라 일컬었고, 아직 작을 봉한 호는 없었습니다. 전조에 경내의 산천에 대하여 각기 봉작을 가하고…, (후략) 엎드려 바라건대, 태조가 이미 내린 교지를 거듭 밝혀 단지 모주의 성황지신이라 부르게 하고, 신주 1위만 남겨 두되, 그 처첩 등의 신은 모두 다 버리게 하소서. 산천·해도의 신 역시 주신 1위만을 남겨 두고 모두 목주에 쓰기를 모해·모산천지신某山川之神이라 하고, 그 상설은 모두 다 철거하여 사전을 바루소서. 
예조에서 또 아뢰었다. 
‘1. 삼가 당나라 <예악지禮樂志>를 살펴보니, 악진해독은 중사이고, 산림천택은 소사입니다. <문헌통고>송제에서도 악독을 중사로 하였고, 본조에서도 전조의 제도를 이어받아 산천의 제사는 아직도 등제等第를 나누지 아니하였으니, 경내의 명산 대천과 여러 산천을 바라건대, 고제古制에 의하여 등제를 나누소서. (후략)’ 
임금이 그대로 따르면서 이듬해 산천에 지내는 제사에 대한 규정을 상정한다. 
‘악·진·해·독은 중사로 삼고, 여러 산천은 소사로 삼았다. 경성의 삼각산의 신·한강의 신, 경기의 송악산·덕진, 충청도의 웅진, 경상도의 가야진, 전라도의 지리산·남해, 강원도의 동해, 풍해도의 서해, 영길도의 비백산鼻白山, 평안도의 압록강·평양강은 모두 중사이었고, 경성의 목멱, 경기의 오관산·감악산·양진, 충청도의 계룡산·죽령산·양진명소, 경상도의 우불신·주흘산, 전라도의 전주성황·금성산, 강원도의 치악산·의관령·덕진명소, 풍해도의 우이산·장산곶·아사진·송곶이, 영길도의 영흥성황·함흥성황·비류수, 평안도의 청천강·구진익수는 모두 소사이니, 전에는 소재관에서 행하던 것이다. 경기의 용호산·화악, 경상도의 진주성황, 영길도의 현덕진·백두산은 이것은 모두 옛날 그대로 소재관에서 스스로 행하게 하고, 영안성·정주목감·구룡산·인달암은 모두 혁거革去하였다. 개성의 대정·우봉의 박연은 이미 명산대천이 아니니, 빌건대 화악산·용호산의 예에 의하여 소재관에서 제사를 행하게 하소서.’ 


오악 개념 빠지고 중사·소사로 명산 지정
   조선 초기 산천제 지내는 사전 규정에 따르면, 오악의 개념은 빠지고 중사·소사로 명산을 지정하는 점이 이전 왕조와는 다르다. 중사는 지리산·송악산·삼각산·비백산 4개이고, 소사는 치악산·계룡산·죽령산·우불신·주흘산·전주성황·금성산·목멱산·오관산·우이산·감악산·의관령·영흥성황으로 총 13개이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도성 포함 경기에는 삼각산(한성부)·송악산(개성부)·목멱산(한성부)·감악산(적성)·오관산(송림) 등이고, 충청은 계룡산(공주)·죽령산(단양) 등이다. 경상도는 우불신(울산)·주흘산(문경)이다. 전라도는 지리산(남원)·전주성황·금성산(나주) 등이고, 황해도는 우이산(해주)이다. 강원도는 치악산(원주)·의관령(회양) 등이고, 함경도는 비백산(정평)·영흥성왕 등으로 총 17개 산이 명산에 해한다. 통일신라 39개, 고려 41개에 비해 명산 숫자가 상당히 줄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만 명산의 수가 적었을 뿐이지 세종대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다시 42개로 늘어난다. 여기서는 태종대까지의 기록을 정리했다. 
조선 초기에 17곳만 명산 지정, 중후기 들어 크게 늘어 
   국가 제사로 지정된 산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나타낸다. 바로 왕도를 중심으로 명산이 바뀐다는 점이다. 제사를 주도한 집단은 왕족과 중앙지배권력층이라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명산에 대한 인식은 국가권력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고대의 산천제는 국가의 운명이 산천 신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절대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왕도가 어디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주변의 산들이 명산으로 지정됐다. 시리즈<1>에서 이미 살펴봤듯이 통일신라의 대사·중사·소사는 경주를 중심으로 지정되고, 그 외의 산들을 지방호족이나 국토 수호·국방의 개념으로 조직적·체계적으로 배치했다. 

   고려시대 산천제도 중앙집권세력들의 정치군사적인 영역 중심으로 명산이 지정되는 동시에 각 지역을 지배하는 호족세력들의 거점이 되는 산과 국토수호의 개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점이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도 별로 다르지 않다.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의 강화 및 지방 통치의 필요성으로 중앙은 진산이나 주산 중심으로 지정되고, 지방은 점차 수적으로 확산, 증가되는 추세를 보인다. 초기에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산을 봉하여 진’이라 칭하는 진산鎭山의 개념을 사용했다. 신라가 경주를 중심으로 대사·중사·소사가 모두 포함된 반면 조선시대에는 삼각산(북한산)만 중사로, 목멱산(현 남산)은 소사로 지정되는 정도에 그친다. 수도 한양의 중심지로서의 상징성과 영역성은 반영하지만 수적으로는 지방이 대폭 늘어난 점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경주 토함산, 고려시대에는 개성 송악, 조선시대에는 삼각산이 명실공히 최고의 산으로 대접받았다. 삼각산은 신라시대에는 소사에 지정됐고, 고려시대에는 남경으로 불렸고, 조선시대 들어서는 왕도의 산으로 올랐다. 

   여러 왕조를 통틀어 명산으로 지정된 산들은 사실상 명산 반열로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삼각산, 화악산, 감악산, 계룡산, 월악산, 가야산, 태백산, 지리산, 월출산, 무등산, 금강산 등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고대부터 명산 대접을 받았던 산들이다. 반면 경주 주변의 서술, 나력, 골화, 혈례, 토함산, 웅지 등은 신라 때 명산이었지만 그 뒤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영토의 중심성이 사라진 측면도 있지만 산세가 보여 주는 위세도 명산 반열에 올리기에 조금 부족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명산은 역대 왕조의 정치공간과 국토영역의 거점지로서 역할을 하면서 산세의 위용도 동시에 갖춘 산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쓰는 진산은 말 그대로 지키는 산이란 의미다. 지역과 삶터를 지키고 보호해 주는 산이다. 또한 산천제를 지내는 산이었다. 이는 산이 마을의 경제적인 생활터전인 동시에 군사적 방어요새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이 산천제를 지내는 정신적·신앙적 의지처 역할까지 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명산이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왕도 중심사상과 지방 거점역할을 했다고 본다면, 진산은 각 고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산이었다. 명산은 왕조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진산은 변화하지 않은 차이점이 있다. 
나라를 지키는 산은 나라의 진산이었고, 지방을 지키는 산은 지방의 진산이었다. 신라는 경주 주변 네 개의 산을 골라 진鎭으로 지정하고 제사를 지냈다. 고려에서는 송악산, 조선에서는 삼각산이 왕도의 진산이었다. 소나무를 가꾸며, 훼손되지 않게 관리도 했다. 시리즈 다음 순서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가면서 전국 대부분의 고을마다 하나씩 진산을 지정하고 관리했다. 

   주산主山은 조선 중후기 들어 풍수적 개념과 더불어 등장한다. 마을의 배후와 터전을 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개념으로 배산임수를 사용하면서 주산도 함께 등장한다. 때로는 고을 터의 배후에 접한 풍수적 주산이 진산으로 지정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진산이 주산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도 많았다. 명산과 진산이 국가 전략적, 통치적 차원에서 지정됐다면, 주산은 풍수적 측면에서 결정됐다. 풍수적으로 주산은 취락지와 반드시 연결돼서 결정되는 경향을 띠었다. 명산과 진산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주산은 마을의 입지와 배치, 공간축의 결정, 공간구성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졌다. 조선의 예를 들면, 한양의 진산은 삼각산이었지만 마을 단위로서 경복궁의 진산은 백악산(지금 북악산)인 것이다. 
조선 중후기 들어서 풍수의 개념을 본격 사용하면서 다양한 지리지가 등장한다. 여기서 명산과 진산, 주산 개념이 다양하게 설명된다. 특히 명산은 초기보다 중기 들어서 중앙집권을 더욱 강화할 목적으로 지방으로 대폭 확대되는 경향을 띤다. 이를 유념해서 살펴보면, 그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