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기법 外

2022. 8. 20. 00:30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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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11.02.27 09:57
 














 

 

출처: 그림이 있는 풍경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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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20.01.07 00:32
 
한국화 기초이론


1. 한국화의 정의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공동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동양화라는 회화 장르를 만들다. 근세에 이르러 아시아 국가들은 서양 제국의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자국의 주체성 확보를 위하여 중국이 가장 먼저 동양화를 중국화로 독립시키고, 이어 일본은 일본화, 북한은 조선화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동양화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70년대부터 일부 화가들이 한국화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였고, 1982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한국화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한국화는 한국의 전통적 기법과 양식으로 창작된 화화를 의미한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한 예술은 그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종교, 철학 등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 발전한다. 특히 천인합일의 자연주의적 사상과 도가의 노장사상 및 샤머니즘적 의식은 시대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사시대에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서 발생하는 샤머니즘적 색채관이 지배적이었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서는 음양오행설과 불교가 중심이었으며, 조선시대는 유교 중심의 수묵화가 주류를 형성하였다. 유교적 사회질서 확립은 색채에 지위와 계급적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 색채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다.
우리나라 회화는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불화와 조선시대의 산수화, 민화 등으로 변화 발전하였다.







   한국화의 분류는 그리는 방법에 따라 수묵화, 수묵담채화, 채색화(진채화)로 나누고, 소재에 따라 산수화(관념산수화, 진경산수화), 인물화(초상화, 고사인물화, 도석인물화), 기록화, 화조화(화훼화, 영모화), 어조화, 초충화, 풍속화, 기명절지화, 민화로 구분된다.


가. 수묵화
  수묵화는 먹의 멋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그림으로 동양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다. 채색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먹으로만 그리는 문인화의 근원이 되었다.

  화려한 채색을 피하고 문인과 선비들의 사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양식으로 수묵화의 특징은 태양광선에 의한 명암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체의 양감은 묵의 농담의 변화로 구현하지만 의식적으로 태양광선에 의한 음영은 표현하지 않는다. 이는 직관과 감성으로 자연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극도로 생략된 선으로 단숨에 화면에 그리는 기법이다.


나. 수묵담채화
  수묵담채화는 수묵을 위주로 그리되 담채나 채색을 혼용 혼합하여 먹 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게 그리는 회화로 조선후기 이래로 성행한 전통기법이다. 수묵으로 바탕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엷게 채색하여 아주 건조하거나 현란하지 않은 담담한 화풍이 특징이다. 색을 넣는 방법으로는 밑그림을 먼저 그린 다음 먹 선이 남도록 채색하거나, 채색과 먹을 한 번에 붓에 담아 그리거나 또는 색을 먼저 그린 다음 먹 선을 그려 넣는 방법 등이 있다.


다. 채색화(진채화)
  채색화는 수묵을 사용하지 않고 진하고 불투명한 물감으로 채색하는 기법으로 민화, 탱화, 벽화, 단청을 그릴 때 많이 사용한다. 색칠은 한 번에 진하게 칠하는 것보다는 여러 번 나누어 덧칠하는 것이 더 깊고 우아한 색을 만든다.


  수묵채색화는 수묵에 안료 등의 채색을 가미하여 현대적 감각으로 그리는 기법인데 수묵화와는 반대로 수분이 흡수되지 못하도록 칠하여 도막을 만든 후에 그림을 그린다.


라. 혼합재료를 이용한 현대 한국화
  20세기 이후에는 먹, 신문지, 크레용, 나무 등 성질이 다른 여러 가지 재료 또는 혼합재료를 사용하고 소재나 주제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현대 한국화이다.


2. 한국화 용구 및 재료


가. 붓
  우리나라에 붓이 전래된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며 붓털로는 족제비 꼬리털인 황모(黃毛)와 청모(靑毛), 양호(羊毫) 등을 사용하며, 붓대는 죽관이 많이 쓰인다. 붓으로 운필의 빠름과 느림, 먹을 묻히는 법, 운필의 방향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조합하여 농담, 굵기, 경중 등으로 화면에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붓을 보관할 때는 물로 잘 씻어 물기를 완전히 빼고 붓털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통풍이 잘되는 음지에서 말려 걸어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나. 종이
  종이는 AD 105년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어 졌으며 8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지금의 한지로 발전하였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불경과 함께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 종류로는 고려지, 마지, 화선지, 미농지, 아방지 등으로 구분되며, 한국화는 화선지를 많이 사용한다.


  화선지는 닥나무와 펄프를 섞어 만들고, 당지는 대나무와 닥나무를 섞어서 만든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선지(宣紙)의 특징은 질기기가 명주 같고, 색은 백설, 무늬와 결이 깨끗하면서도 치밀하여 쉽게 썩지 않으며 벌레나 좀이 잘 슬지 않고 변색도 잘 되지 않는다. 먹을 잘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수묵화를 그릴 때에는 화선지를 많이 사용하며, 채색화는 스며들기나 번짐이 적은 것이 좋아서 한지에 호분과 아교물, 명반을 칠한 것이나 마지를 사용한다.


다. 벼루
  좋은 벼루의 조건은 갈아도 소리가 나지 않고 물을 담아 놓아도 줄어들지 않으며 먹이 잘 먹고 붓이 상하지 않아야 한다. 벼루의 표면 입자가 미세하고 오래 사용하여도 마모되지 않아야 하며 수분을 잘 함유하고 색이 좋아야 한다. 먹을 갈 때는 누르거나 힘을 주지 않아야 하며 사용 후에는 깨끗이 씻어서 보관해야 한다.


  벼루 원석은 한국에서는 해주 보령석, 보령의 남보석과 백운상석, 충북 단양석, 경남 합천석, 경북 안동석 등이 유명하고 일본에서는 양단(兩端), 적간(摘奸) 등이고 중국에서는 단계석을 제일로 치고 흡주, 라문 등이 유명하다.


라. 먹(墨) 및 물감의 종류
  동양에서 먹(墨)은 문자, 그림 등을 기록하는 재료이다. 서예와 수묵화의 세계는 곧 먹의 농담에 함축되어 있는 '玄'의 세계로 고요한 가운데 기운을 품고 있는 독특한 색깔이다.

  옛날 먹은 순수 천연탄인 광물성 석묵(흑연)을 사용하였는데, 그 후 소나무나 각종 목재를 태운 그을음을 수거하여 갖풀에 반죽한 다음 고체형태로 굳힌 검은 먹을 사용하였고 지금은 일반적으로 탄소분말에 아교액을 섞은 먹을 많이 사용한다.
먹을 만드는 원료에 따라 송연묵과 유연묵, 색상에 라담묵, 자묵, 고묵 등으로 나눈다. 좋은 먹은 카본 블랙(Carbon Black)이 잘 섞여 있다. 먹의 수명은 200년 이상인데 70~100년 정도 묵은 먹은 번쩍임이 없고 매우 깊은 색감이 나는데 이를 특별히 고묵이라 한다.


<먹 제조법>
  먹을 만드는 주요 재료는 그을음, 아교, 향료 등이다. 먹의 주성분은 극히 미세한 탄소(Carbon Black) 입자인데, 탄소 입자의 크기가 고를수록 좋은 먹이고 불규칙하면 질이 떨어진다. 그을음(Carbon Black)은 화염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을음 입자가 미세하여 품질이 좋고 반대로 가까울수록 거칠어서 품질이 떨어진다. 송연묵은 먹 중에서 가장 선명한 광채가 나서 최고급으로 치고, 유연묵은 채자유, 호마유, 춘유, 대두유 등 식물성 유료작물을 태워서 발생하는 그을음을 채취하여 만들고 지금은 중유, 경유 등 공업유를 이용하여 먹을 만든다.

  아교는 먹을 갈 때 먹의 질감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고 먹의 품질을 결정한다. 아교의 원료는 주로 소가죽이나 연골을 물에 끓인 끈적끈적한 성분으로 탄소입자를 굳히는 기능을 하고 냄새가 좋지 못하여 천연 향료를 첨가하는데 사향노루향(사향)을 최고로 친다.


<먹의 종류>
○ 석묵(자연산에서 채취한 먹) : 중국 공양산의 묵산에서 많이 생산된다.
○ 송연묵(소나무 송진을 태운 그을음) : 먹색이 맑고 깊으며, 아교가 적다.
○ 주묵(수은+유황+납) : 중국에서 고귀한 사람과 지체 높은 권문을 상징하는 붉은 빛깔의 먹으로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다.
○ 유연묵(채자유, 호마유, 춘유, 대두유를 태운 그을음) : 아교 성분이 많고 순도가 매우 높아 오래될수록 먹의 고택이 난다.
○ 양연묵(광물유을 태운 그을음 = 카본블랙) :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상품화된 먹

<한국화 채색 물감>
  한국화 채색 물감은 크게 천연물감과 인조물감으로 구별한다. 천연물감으로는 자연원석을 분쇄해 흐르는 물로 정제하여 추출한 석채(자연원석)와 흙이나 진흙을 정제하여 추출한 수간물감이 있다. 현재 상품으로 출시되는 제품은 대부분 산화금속물로 만든 인조 석채와 화학안료를 정제한 인조 수간물감이다. 채색 물감은 형태에 따라 분채, 석채, 채묵, 당채 등으로 나뉜다. 옛날에는 당채만 사용하였는데 요즘에는 채묵(덩어리 먹), 석채(가루 물감), 분채(가루)가 있다.


 분채(汾彩) : 분말 가루로 된 광물성 물감을 병에 담은 것으로 접시에 분채와 아교물을 1:3 비율로 넣고 손가락으로 으깨어 섞어 사용한다. 농도를 묽게 사용할 때는 아교물을 더 넣어서 조절하며 만약 물을 넣어 사용할 경우에는 채색과정에서 물감의 물 번짐 현상이 발생하므로 유의해야 하며 분채는 광물성이므로 색을 혼합을 할 경우에는 채도가 떨어지므로 색을 섞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석채(石彩) : 광석을 분쇄하여 만든 것으로 가장 우수한 물감인데 입자가 굵은 것은 아교를 많이 섞어야 접착이 된다.


○ 채묵(彩墨) : 먹처럼 벼루에 갈아 쓰는 광물성 물감으로 색깔별로 채묵용 벼루를 따로 준비해야 하며 접시로는 유약이 묻어 있지 않은 거친 게 좋고 옹기 항아리 뚜껑 모양형태의 접시가 좋다.


 당채(唐彩) : 오채먹이라고도 하며 원래는 광물성 물감이었는데 요즘 중국산 오채먹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 전문가가 사용하기에는 좋지 않다.


 식물성 물감 : 풀, 꽃잎, 열매 등 식물성으로 만든 천연 물감으로 한지가 아니면 자연스런 효과를 내지 못하므로 펄프 원료로 된 종이에 사용하기에는 곤란하다. 야생 꽃잎을 사용할 때에는 백반(명반)물을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튜브 물감 : 현재 판매되는 상품화된 한국화 물감으로 붓에 물을 묻혀서 즉시 그릴 수 있는 상태의 물감이기 때문에 수간물감보다 사용이 편리하다. 튜브물감은 보통 얇게 칠하는 그림에 사용하나 두껍게 칠하거나 표구하여 오래 보존할 때는 접시에 적당량의 아교액을 섞어 사용한다.







   
3. 낙관의 형태와 종류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 낙성(落成)은 완성, 준공의 의미하고, 관지(款識)는 주로 청동기인 종정(鐘鼎)이나 이기(彛器)에 새겨져있는 명문(銘文)을 뜻한다. 당(唐), 육조(六朝), 한(漢) 시대에도 일부 서화에 낙관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宋代에 시작하여 元代부터 활발하게 사용하였지만 낙관에 관한 설명이 최초로 확인된 것은 1679년 淸代에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이다.


  낙관은 특정 작품에 대한 제작자 및 제작 시기, 진품여부를 확일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낙관에는 인장의 날인이 포함된다. 인장이 찍혀 보이는 자국을 인영(印影) 또는 도서(圖署)라고 한다.


  낙관에 작품제작의 동기나 시기, 성명, 아호 등 제작자 자신에 관한 사항만 기재하였을 때는 이를 단관(單款)이라 하고, 받을 사람에 관한 내용까지 함께 적으면 쌍관(雙款)이라 한다. 쌍관일 경우 받는 사람에 관한 기록을 먼저 하게 되므로 상관(上款), 제작자 자신에 관한 기록을 하관(下款) 이라 한다.


  관기(款記)의 길이가 길면 장관(長款), 짧으면 단관(短款)이라 하는데 길고 짧은 기준은 별도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주문(主文)의 길이, 작품의 크기나 글자의 대소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하여 판단하게 된다. 서화작품에 주제(主題)란 표현하고자 하는 주된 문장으로 서화에서는 주문(主文)이라고 하며, 이러한 주문이나 주제와 낙관이 서로 호응하여 미족 효과를 증진시킨다.


  인장은 인(印), 신(信), 인신(印信), 도장(圖章), 새(璽), 인감(印鑑),도서(圖書)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 도서(圖書)와 인장(印章)의 합성어로서 도장(圖章) 또는 인(印)과 장(章)의 합성어로서 인장(印章)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인장을 찍는 행위를 날인(捺印), 압날(押捺) 또는 검인(鈐印)이라 하며, 찍혀있는 흔적에 대하여는 인영(印影), 인흔(印痕)이라고 한다.


  인장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공무에 사용하는가 아니면 사무에 사용하는가에 따라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으로 구분한다. 그 중 서화에 쓰이는 인장을 사인이라 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4. 한국화의 필법

가. 필법
○ 중봉법 : 다섯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여 붓을 단정하게 붓대를 지면과 수직으로 세워서 붓끝이 획의 중심에 두고 주로 주제부에 사용한다.


○ 편봉법 : 붓대를 약간 비스듬히 잡고 붓끝이 획의 한쪽으로 치우치게 사용하며, 붓대를 우측으로 약 80도를 기울여 운필하고 예리하고 경쾌한 선을 그리기에 적합하다.


○ 와봉법 : 붓대를 눕혀서 긋는 법으로 가장 부피 있는 선을 표현할 수 있다.






나. 묘사법
○ 몰골법 : 먹의 농담을 조절하여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단번에 그리는 방법이다. 사물의 형태적 특징과 색감, 질감, 입체감, 운동감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으며 사물의 구체적 형상보다는 간결하고 집약적으로 표현하여 생략되는 부분이 많고 느낌과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


○ 구륵법 : 선으로 사물의 윤곽선을 그리되 선의 강약과 굵기 등 여러 가지 선으로만 그리는 방법으로 구륵법과 몰골법은 한국화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 백묘법 : 선을 위주로 사물을 묘사하고 붓의 속도와 선의 굵기로 그리며 주로 인물화에 많이 사용한다.


○ 점묘법 : 크고 작은 점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점의 형태와 모양에 따라서 점열법, 호초점, 대흔점, 소흔점, 국화점, 매화점 등으로 구분된다.







다. 용묵법
   먹에는 오채가 있는데 먹의 농담과 묵법으로 모든 색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먹의 진하기와 흐림으로 입체감을 표현하고 수묵의 농담으로 수많은 색채 감정을 표현한다.


○ 삼묵법 : 붓에 묻은 먹 농도 사물의 입체적 묘사와 미묘한 색감 변화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먹물의 농도에 따라 3종류로 분류하는데 물이 적게 섞여서 진한 색을 농묵, 물이 많이 섞여서 아주 흐린 색을 담묵, 농묵과 담묵의 중간 수준을 중묵이라 하며 담묵, 중묵 농묵을 한 붓에 묻혀 나타내는 방법으로 먹색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표현할 수 있다.


○ 발묵법 : 주로 문인화에 사용하며 먹물을 뿌리고 떨어뜨리면서 번져 나가는 기법으로 내면의 세계 및 감정을 화면에 쏟아놓은 것처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양식이다. 붓은 깨끗한 물로 씻은 다음 붓의 중간 높이까지 중묵을 묻히고 다시 붓 끝에 농묵을 찍어서 선을 그리면, 붓에 머금은 중묵과 농묵의 양에 따라서 농담의 변화가 나타난다.


○ 파묵법 : 처음의 먹이 채 마르기 전에 덧칠하는 방법으로 수묵의 농담을 단계적으로 사용하여 사물의 음양, 명암,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다. 파묵법은 농묵으로 담묵을 깨뜨리는 방법으로 화면에 담묵으로 윤곽이나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귀에서부터 차차 묵으로 더 칠하며, 종종 묵으로 그 윤곽선을 깨트리거나 한계를 분명히 한다. 왜냐하면 농묵으로 그린 밑그림에 수분이 많은 담묵을 그리면 먹이 번져서 묘사 대상이 불명확해지기 때문에 담묵의 밑그림을 먼저 그린다음 농묵을 쓰는 것이 좋다.


○ 적묵법 : 칠한 먹이 마르고 나면 그 위에 계속해서 덧칠하여 중첩시키는 방법으로 깊은 양감 표현에 활용하는 기법이다. 담묵부터 중묵, 농묵 순으로 계속해서 덧칠할 경우에는 먹이 층층이 겹쳐져서 중후한 느낌이 난다.


○ 선염법 : 마른 화면에 먹의 번짐을 이용하여 엷게 우려내는 방법으로 구름, 안개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하며 담묵의 화면에 농묵을 칠하여 희미한 효과를 내는 화법으로 흐릿한 정경 표현에 많이 사용하며 운염법이라고도 한다.


○ 갈필법 : 붓에 물기를 최대한 빼내고 중묵을 약간 취한 다음 붓 끝에 농묵을 찍어서 긁듯이 붓을 누르며 그리거나, 먹물의 함유량이 적은 붓을 접시나 벼루에 대고 누르며 비틀면 붓끝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상태에서 메마르고 거친 필치로 그리는 기법이다.


  




5. 동양화의 여백


   동양화와 서양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백에 있다. 특히 서양화에서의 여백은 작품의 미완성으로 간주되어 철저하게 배척되었으나, 동양화에서 여백은 그림 구성의 필수 요소이다. 동양화에서 여백의 발달과정을 고찰해 보면 고대 벽화 등에서 나타나는 원시적 구성상의 여백이 최초의 원형으로 등장하지만 본연의 여백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동양화에서 空白理論의 창시자는 중국 동진의 화가 고개지(顧愷之)이다. 그는 회화에서 여백이란 하늘과 물을 의미하는데, 이 모든 하늘과 물은 靑色으로 일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동양화의 공백처리 문제가 해결되어 산수화의 그림 묘사법이 진일보하게 되었다.


  그 이후 唐과 北宋 시대에 산수화 및 수묵화의 발달로 여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여, 南宋 시대의 평온한 시정과 감정을 표현하는 ‘평온산수’부터 본격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여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 이전에는 유행하였던 화면을 꽉 채우는 기법은 소멸하고, 풍경을 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는 편파구도로써 여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연의 광대함과 깊이를 화폭에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여백만이 생략된 모든 세상만물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특히 남송의 평온산수와 사대부의 문인화의 발달로 여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唐代는 인도의 조형이념과 중국의 전통적 예술관의 융합으로 문예와 미술이 극도로 발달한 시기였으며, 대부분의 문인학자들은 미술을 음미하고 즐겼고 시인이나 화가 못않게 능숙하게 그림을 잘 그려서 후대에 발생하는 문인화의 터전이 이때 수립되었으며, 이는 중국미술사상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즉, 수묵법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산수는 그림의 배경적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묵주의는 吳道子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하고 실제적인 수묵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오도자에 이어 수묵의 발원은 王維의 등장으로 水墨渲淡에 의한 파묵(破墨)의 본령을 수립하게 되었다.


  宋代 문인화는 사대부들의 사실적인 사물의 표현보다는 자기 주관과 생각 속에 있는 것만을 선택하여 寫意적인 내용을 第一劃으로 형태를 깊이 있게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여백이 문인화라는 양식으로 발전하여 현재까지 동양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백은 자연의 광대함을 화면에 모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주제 이외의 부분이 생략된 공간이다. 즉, 화면상 표현형체 이외에 비워둔 공간 또는 표현형체 이외의 공간을 말한다. 그래서 여백은 막연히 비워둔 공간을 뜻하지는 않으며 완결을 추구하지 않는다. 완성되지 않는 것을 취함으로써 함축성을 지니고 비로소 빈 여백에 무한한 우주를 담고 있는 것이다.


  동양화의 이론적 배경은 儒敎와 老莊子의 도가사상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불교의 선종사상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 老莊子의 자연주의적 도가사상은 有無가 핵심 사상이다. 무위란 “적적하고 고요하며 無聲으로 아무리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끌어도 오지 않고, 밀어내도 가지 않는 것이다(准男子, 第十九券)”라고 한다. 즉, 무위란 아무리 인위적인 힘을 가해도 되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히 있으면 된다는 道敎繪畵思想은 자연 속에 은둔해 있는 정신을 중요시하였다.


  孔子는 論語에서 “회화란 ?文인데, 모든 회화는 먼저 구도를 잡고 난 다음 채색하고 그 後에 素로서 그 사이를 分布하여 文을 이루는 것이고, 이를 미인에 비유하건데, 비록 미인이 간드러지게 어여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뒤에는 예절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바른 몸가짐이 뒤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처럼, 회화에서도 구도와 채색을 아무리 잘해도 그 속에 文이 없으면 소용없다 하여 공자는 이를 후소(後素)라고 하였는데, 이는 문인화의 사상의 배경이 되었다.


불교에서 여백의 의미는 空이다. 空은 陰陽을 말하고, 陰陽은 凹凸을 의미한다. 色卽是空이요 空卽是色이라는 것은 色은 空과 같으며 空은 色과 같다는 뜻이다. 즉, 만물은 형상에 지나지 않고 내적으로 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空은 有에 근거하고 有는 空에 근거한다” 것은 어디까지나 외면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고 내면적으로는 항상 공이다.


   


6. 남북종화론(南北宗畵論, 南北二宗論)


   남북종화론(南北宗畵論)은 중국 명말(明末)의 대표적 문인인 동기창(董其昌)이 자신이 저술한 화지(畵旨)에서 불교 선종(禪宗)의 남북 양종론을 모방하여 중국 당대(唐代)부터 원대(元代)에 이르기까지 중국 화가를 중심으로 계보를 만들어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누는 남북종화(南北宗畵) 이론을 주장하였다.


明 말기에 동기창은 남북종의 근원을 남북조시대(AD 386∼588)부터 시작하여, 초기에는 남북화의 대립은 뚜렷하지 않았으나 唐대에 이르러 남종과 북종이 분리된다는 이론이다. 당시의 명조 화단은 남송의 청록화를 종사로 하는 원체파와 마원 하규의 수묵화풍을 계승한 절파, 그리고 오지방의 사대부 사이에 원대의 문인화풍을 계승한 오파로 구분 되는데, 이 당시 오파가 명조 화단의 중심이 되어 나머지 두 화풍을 공격하는 경향이 있었다. 북종화는 산세가 날카롭고 험한 화북지방의 기후풍토를 배경으로 발전해온데 비하여 남종화는 강남지방의 부드럽고 온화한 풍토에서 성장하였는데, 이 두 종파를 대표하는 사람은 이사훈과 왕유이다.


이사훈(李思訓, 601~716)을 시조로 하는 채색(着色)산수를 북화(北畵) 또는 북종화(北宗畵)라 하고, 이러한 화풍은 송대의 왕선, 곽희, 장택서, 조백구, 백진 형제와 남송대의 이당, 유송년, 마원, 하규 등이 모두 북종화에 속한다. 북종화란 전문적인 궁정화가를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즘의 화풍이다. 선으로서 사물의 객관적 형태를 표현하고 채색하여 그림을 완성하는 등 기술 중심의 회화이다. 특히 사실(寫實)을 존중하고 채색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궁중의 전문화가나 직업 화가들이 선호하는 그림이다.


왕유(王維, 701~761)를 시조로 하는 수묵산수화를 남화(南畵) 또는 남종화(南宗畵)라 하고, 이러한 화풍은 형호, 관동, 이성, 이공린, 원관, 동원, 거연과 연숙, 조영양, 원사대가 등이 모두 남종화에 속한다. 남종화는 수묵을 위주로 사의(寫意)적인 면을 중시하는 문인화적 요소가 있다. 원래 문인화와 남종화는 서로 다른 개념이었으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묵을 위주로 하고 사의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문인화와 남종화가 동일시되었다. 남종화는 사의정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파격적 요소가 있으며, 사대부들 사이에서 그림을 즐길 수 있는 회화로 유행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북송의 문인화 화풍이 유입되어 이제현(李齊賢), 김부식(金富軾) 등의 작품에서 문인화적 경향 찾을 수 있으며,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에 의해서 본격적인 문인화가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중국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유행하였던 시기는 17세기 이후부터이다. 즉 강세황, 이인상, 심사정 등이며, 문인화의 화풍을 절정에 올린 인물은 김정희로, 이러한 경향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진경산수화는 쇠퇴하게 되었다.














7. 四君子 발달과정

   사군자는 예부터 文人들이 餘暇로 一筆法으로 사군자를 즐겨 그렸는데, 四君子란 춘추전국시대에 학문과 덕망이 높았던 孟嘗君(맹상군), 平原君(평원군), 春申君(춘신군), 信陵君(신능군)을 지칭하며 이를 매화(梅), 난초(蘭), 국화(菊), 대나무(竹)로 상징한 것이다. 즉, 매화는 설한(雪寒) 속에서 고고하게 피는 청정무구한 품격을 군자에 비유하고, 난초는 심산유곡에서 피어 은은한 향기를 자랑하지 않아 유미인(幽美人), 왕자지향(王者之香)이라 불린다. 국화는 늦가을 추위와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그 자태를 오상
고절(傲霜孤節)로 표현하며, 대나무는 곧고 빈속의 줄기와 四時 푸르른 잎을 허심(虛心)과 절개의 의미하는 절개수(節槪樹)를 뜻한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문인화의 기본적 화제(畵題)로 오랫동안 그려져 왔다. 繪畵의 한 장르로 사군자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명대의 화가인 진계유(陳繼儒)가 지은 梅蘭菊竹 사보(四譜)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이 사군자에 연꽃(蓮), 모란(牧丹), 목련(木蓮), 포도(葡萄), 파초(芭蕉), 소나무를 더하여 十君子라 한다. 文人畵家들에 사군자를 많이 그린 이유는 이 식물들이 의미하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종이, 먹, 붓, 벼루 등 최소한의 도구로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사군자는 水墨畵를 배우는 기초 수련 과정에 속한다. 그 까닭은 蘭 잎에서 線의 變化, 대나무 줄기에서 筆力, 매화 가지에서 構成, 菊花 꽃잎에서 먹 色의 濃淡의 能力을 배울 수 있는 適切한 素材이기 때문이다. 기법의 습득 단계는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난초에서 시작하여 대나무, 매화, 국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사군자 중에서 대나무 그림이 가장 먼저 출현하는데, 그 기원을 唐代부터라고 하나,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北宋代의 문동(文同, 1019∼1079)과 소동파(蘇東坡, 1036∼1101)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나무는 이미 시경(詩經)에서 군왕의 높은 덕망에 비유되어 칭송된 바 있으며, 대숲을 은거지로 삼고 유유자적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이나 대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한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王徽之)의 이야기를 통해 군자의 동반자로 입지를 굳혔다. 우리나라 묵죽도의 한국적 화풍은 이정(李霆, 1541∼1622)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탄탄한 구성과 꼿꼿한 필력을 바탕으로, 형사(形寫)와 사의(寫意)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화는 대나무 그림과 비슷한 시기에 선승(禪僧) 중인(仲仁)이 그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뒤를 이어 양무구(揚无咎, 1097∼1169)가 본격적으로 매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묵매(墨梅)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매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강한 생명력 때문에 선비의 절개와 불굴의 정신을 뜻하게 되었으며, 특히 북송 때 시인 임포(林逋)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 삼아 평생 은거한 이후 그 상징성이 더욱 유행하였다. 19세기 매화그림의 대가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여 매화병풍을 둘러치고 매화 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 매화시를 쓰고 매화차를 마셨다고 한다.


난초와 국화는 대나무와 매화보다는 한참 후에 문인화의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南宋의 조맹견(趙孟堅, 1199∼1267경)이 묵란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난초가 군자의 상징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元初 정사초(鄭思肖, 1239∼1310)부터였다. 난초는 예로부터 아름다움과 향기가 귀하게 여겨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시에서는 충절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공자는 군자와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묵란도는 난초 그림과 서예의 관련성을 더욱 강조한 김정희 이후 본격적으로 성행하게 되었다. 조선말기 난초그림의 쌍벽인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은 각각 물기 많은 춘란(春蘭)과 난 잎의 끝을 뭉툭하게 뽑아내는 건란(乾蘭)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사군자의 중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바로 난인데, 난을 그린다 하지 않고 친다는 것은 한 번에 난의 잎을 쳐 올리지 않으면 난의 잎을 표현하는데 자연스럽지 못하고 화선지에 번지기 때문이다.


국화는 사군자 가운데 가장 늦게 유행하였다. 심사정 이후 묵국도(墨菊圖)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심사정은 부드럽고 밝은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의 분위기를 내는 담채화를 즐겨 그렸다. 김홍도는 담백한 필치의 수묵화 외에도 계절감이 느껴지는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국화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 하였다.


[ 작품 해설 ]


<장승업의 홍백매십정병 : 붉은 매화와 흰 매화 병풍>





   장승업의 홍백매십정병(紅白梅十幀屛 : 붉은 매화와 흰 매화 병풍, 1890)은 10폭짜리 병풍이다. 매화는 차가운 바람을 이기고, 피어나는 세 벗이라 하여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한다.



<흥선대원군 묵란도>  



   흥선대원군의 난을 가리켜 당대 최고였던 추사 김정희도 "압록강 동쪽에 이만한 작품이 없다"라 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대원군은 묵란도는 돌을 뚫고 나왔다고 하여 석란이라고 한다. 석란의 잎에도 세 번이나 굴곡을 주어서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감히 흉내 내기 어렵다 하여 삼절의 기법이라 한다.



 <강세황 국화도>

 






<탄은 이정의 니금세죽(泥金細竹)>




   조선시대 세종의 현손(玄孫)인 탄은(灘隱) 이정의 ‘니금세죽(泥金細竹, 1609)’은 검은 비단에 니금(泥金: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으로 대나무를 그린 쌍폭의 작품이다. 작품의 우측 상단에 ‘상강야우(湘江夜雨)’라는 화제가 적혀 있다. 즉 중국 대나무의 명산지인 ‘상강’에 밤비가 내리고 댓잎이 아래로 축축 늘어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작품 좌측 상단에는 그림을 그린 시기와 장소가 적혀 있다.




 

출처: 닭치는 꽃마을 (힐펌) 원문보기 글쓴이: 소용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