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새, 까마귀 / <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58)

2022. 8. 17. 17:49美學 이야기

태양새, 까마귀

<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58)

  • 기자명 심규섭 
  •  입력 2013.09.27 10:49
  •  수정 2013.09.27 10:55
 

‘까마귀’(carrion crow)
   한자어로 오(烏)·효조(孝鳥)·오아(烏鴉)라고도 한다. 몸길이 50cm, 날개길이 32∼38cm이다. 수컷의 겨울 깃은 온몸이 검고 보랏빛 광택이 난다. 이마의 깃털은 비늘모양이며 목과 가슴의 깃털은 버들잎 모양이다. 여름 깃은 봄에 털갈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광택을 잃고 갈색을 띤다. 암컷의 빛깔은 수컷과 같으나 크기는 약간 작다. 부리도 검은색이며 부리 가운데까지 부리털이 나 있다. 한국의 전역에 걸쳐 번식하는 흔한 텃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까마귀는 우리 민족의 상징과 깊은 연관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져 있다. 삼족오는 그야말로 태양 속에 발이 셋 달린 까마귀의 모습이다. 태양 속에 존재하니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거나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연오랑(延烏郞) 세오녀(細烏女)’라는 설화도 태양신화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 있다.
견우와 직녀라는 설화에서 오작교(烏鵲橋)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새도 까마귀와 까치이다.
이런 상징을 가진 까마귀는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신성한 새, 길조로 인식되었다.

▲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삼족오와 평양 진파리 7호분에서 출토된 ‘삼족오금동관식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 사상은 동이족의 공통된 전통이다. 중국에서는 수, 당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삼족오는 사라지고 단지 행복을 주는 새 정도로 축소된다. [자료사진 - 심규섭]
 

하지만 조선 말기에는 청나라의 영향으로 까마귀는 밀려나고 까치가 전면에 등장한다.
까치는 희작(喜鵲), 즉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라는 상징을 얻어 길조가 된다. 조선시대 세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그림’의 뜻은 ‘새해 나쁜 기운을 막고 기쁜 소식만 들으세요.’이다. 나쁜 기운은 호랑이가 막고 기쁜 소식은 까치가 전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정월 보름을 오기지일(烏忌之日)로 정하고 찰밥을 지어 제사하였는데, 이로부터 ‘까마귀날’ 또는 ‘까마귀밥’의 습속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까마귀날’과 ‘까마귀밥’은 사라지고 대신에 ‘까치설날’과 ‘까치밥’으로 바뀌었다.

까마귀는 검어서 보기가 싫고 울음소리가 탁하다.
중국에서는 붉은 색이나 금색으로 그린 까마귀는 길조라며 좋아한다. 하지만 이것은 까마귀의 상징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붉은 색과 금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까마귀가 아니라 어떤 새라도 붉은 색과 금색으로 그리면 좋아할 것이다.
예전에도 까마귀는 길조와 흉조라는 반대되는 상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불행, 불길, 죽음 따위의 상징으로 굳어진다.

까마귀를 한자로 오(烏)라고 쓰는데, 너무 검어서 눈도 보이지 않아, 새를 뜻하는 조(鳥)에서 획을 하나 빼서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까마귀를 한자로 부르면 그냥 오(烏), 자오(慈烏)라고 한다.
우리말로 부른다면 ‘오새’라고 할 수도 있다.
옛날 순수 우리말로 까마귀를 뭐라고 불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보니 ‘가마기, 가마고, 가마괴’라는 기록이 있다.
어떤 사람은 까마귀의 어원이 ‘가마고’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가마’는 ‘고마’에서 변형된 말이라고 한다. 물론 ‘가마’는 ‘꼭대기, 우두머리’라는 뜻도 있다.
‘고마’는 ‘곰’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곰’은 여신, 태음신이다.
어떤 우리말 학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고마’와 존칭이 결합된 말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고마’는 곧 ‘곰’을 뜻하고 여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풀이하면 ‘여신의 은총을 받으세요.’라고 한다.

이런 의미의 ‘가마고’가 어떻게 해서 ‘까마귀’로 변형되었는지는 정말 아리송하다.
다만 까마귀가 ‘까맣다’라는 색의 느낌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다하더라도 ‘까마귀’라는 새의 이름은 좀 심하다.
옛 문헌에서 보이는 ‘가마기, 가마고’라는 말이 경음화되어도 ‘까마기, 까마고’ 정도가 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까마기’와 ‘까마귀’의 느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이다.
보통 사람들이 ‘까마귀’라는 이름을 들으면 ‘까만 마귀’, ‘시커먼 마귀 같은 새’라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태양을 상징하고, 여신이면서 하늘과 인간을 매개한다는 신성한 새가 졸지에 악마의 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라고 여기며 숭배하여 까마귀 마을이나 신당이 여럿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한자로 烏라고 쓰고 ‘カラス(카라스)’라고 읽는다.
태양의 상징이 일본에서는 살아남아 있는 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시커먼 마귀 같은 새’로 전락한 것이다.
이건 어떤 음모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국기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고, 자신들이 태양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상징을 독점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서 까마귀는 그야말로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길조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상징만 왜곡하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태양새의 상징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까마귀는 일본 축구협회의 상징 깃발로 사용한다.
원래 우리민족의 상징이었던 ‘용’은 중국에 빼앗겼고, 봉황은 ‘대만, 홍콩’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까마귀는 일본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동물이나 식물에 들어간 상징은 민족 구성원들의 철학과 사상, 삶의 원형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녹아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징을 통해 ‘너와 나’는 ‘우리’라는 동질성을 얻는다.
김치를 먹고 아리랑을 부르면 모두가 동포가 되는 것이다.

▲ 위-김홍도의 팔가조도 / 아래-최우석의 팔가조.
화가들이 그린 까마귀 그림에서는 ‘태양신, 하늘과 땅의 매개자’라는 뜻은 없다. 다만 까마귀의 다른 이름인 팔가조는 효(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효가 유교의 주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조선시대 화가들은 가끔 ‘까마귀’를 그렸다.
화가들이 ‘까마귀’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 것은 ‘태양신, 하늘과 땅의 매개자’로서의 새가 아니라 유교적 가치인 ‘효(孝)’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까마귀’의 유교적 상징인 반포보은(反哺報恩)이다.
풀이하면, 보통의 새는 어릴 때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자라는데 까마귀는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줌으로써 키워 준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까마귀를 특별히 ‘팔가조(八哥鳥)’라고 부른다.
한자 풀이만으로는 그 뜻을 알기 어렵고 유래된 뜻도 잘 모른다.
하지만 팔가조와 까마귀는 같은 새를 지칭한다. 까마귀를 다른 말로 효조(孝鳥), 자조(慈鳥)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효조란 ‘효도하는 새’라는 뜻이니까 팔가조와 다르지 않다.

 

▲ 송귀영/팔가조/종이에 수채/30*100/2013.
이 그림은 민화이다. 원본그림은 아마 조선 말기에 그려졌을 것이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팔가조는 효를 상징하니 ‘효도하는 자녀가 있는 부귀한 집안’이란 뜻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팔가조는 보통 모란과 함께 그린다.
민화에서 모란은 ‘부귀영화, 부귀옥당’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에 팔가조와 모란이 함께 그려지면 ‘부귀한 집안과 효도하는 자식, 효도하는 자식과 함께 부귀한 삶을 누리다.’라는 뜻이 된다.
화가들은 화려한 모란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또한 모란그림의 뜻이 ‘생명의 만개’라는 사실도 알았고 민간에서 ‘부귀영화’를 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화가들이 모란을 그렸다면 대부분 민화의 상징을 사용해 부잣집에 팔았을 가능성이 높다.
화가들은 궁중회화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반대로 판매용 그림인 민화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조선시대 화가라고 해서 모두가 선비정신을 수묵화로 녹여낸 것은 아니다. 민화와 관계를 맺으면서 돈벌이에 주력했던 화가들도 많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린 화가도 있었다. 김홍도나 신윤복 같은 궁중화원도 ‘춘화(春畵)’를 그려 팔았고 조선 말기를 주름잡던 장승업도 돈이 되는 그림은 가리지 않고 그려 팔았다.

까마귀는 검은 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다.
이 검은색 때문에 불길하고 재수 없는 새가 되었고 ‘까만 마귀’라는 치욕스런 이름을 얻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나 화가들은 검은색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화가들의 수묵화는 그야말로 검은색 하나만 사용하는 그림이다.
또한 검은색의 액체를 뿜는 연체동물을 단지 검은 액체가 먹물과 닮았다는 이유 때문에 ‘학문을 하는 생명체’라는 뜻의 ‘문어(文魚)’가 되었을 정도였다.

검은색은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을 모두 섞어야 만들어진다. 다르게 말하면 모든 색의 결합이자 시작이 되는 색이다.
검은색의 까마귀를 그릴 때 화려한 모든 색을 사용하면서 적절한 어둡기가 나오게 조절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색조의 까마귀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까마귀를 ‘가마고’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르자고 주장해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화가들이 태양과 만나고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는 존재로 멋지고 아름답게 미술작품으로 형상화시킨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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