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호령 고구려인 기상ㆍ생활상 담긴 걸작 外

2022. 8. 19. 09:24美學 이야기

문화재 디지털 복원 ⑦ 고구려 고분벽화(안악 3호분)  / 박진호

 

   고구려 고분벽화는 우리나라 고대 조형예술 사상 가장 자랑스럽고 귀중한 유산의 하나로, 같은 시기 세계미술을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이다. 특히 고구려인의 강인함과 전투적 기상을 소박하면서도 생동 감 있는 필치로 묘사했고, 색채를 자유자재로 구사, 회화미를 십분발휘했다는 점에서 세계미술사상 큰 주목을 끌고 있다. 2004년 6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벽화가 있는 고구려 고분은 약 100여 기에 달하는데, 압록강 통구 일대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유역, 황해남도 안악 지방에 이 르기까지 분포돼 있다. 벽면에 곱게 회를 바른 뒤에 벽화를 그린 무덤이 있고, 부분적으로 화강석 또 는 대리석으로 벽을 만든 후 벽면에 직접 벽화를 그린 고분도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남아있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서 누리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죽은 뒤에도 누리기 위해 살았을 때의 생활과 똑같이 무덤 속을 묘사했다. 또 죽은 영혼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사신 도(청룡ㆍ백호ㆍ주작ㆍ현무) 등 수호신들을 그리기도 했다. 벽화에는 체육경기, 오락장면, 동물, 일용품 등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복원의 필요성

   100 여기에 달하는 고구려 고분의 벽화는 후기의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덤칸의 벽과 고임에 백회층을 입히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프레스코식 벽화). 때문에 프레스코식 벽화의 약점인 백회층 박락의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 상당수 고분벽화의 백회층 부분, 혹은 전면 박락으로 벽화가 훼손되거나 소멸된 상태다. 20세기에 들어서 집중적으로 진행된 벽화고분의 발굴조사와 이후의 미흡한 보존 조치로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던 유적 내외의 환경이 변화를 겪거나 파괴됨으로써 남아있던 고분벽화의 훼손, 소멸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프레스코식 뿐만 아니라 석면화법으로 제작된 모든 고분벽화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요구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안악 3호분의 행렬도를 디지털로 복원한 모습.pdf
0.88MB

 

복원과제

   고구려 고분벽화는 뛰어난 시각화(Visualization)와 벽화의 악기들이 막 뿜어낼 것 같은 음향(Sound)성, 전배ㆍ후배까지 합쳐 근 500 여명 에 달하는 고구려 아바타(Abatar)의 등장, 벽화의 각 내용에는 각각의 이야기로 꾸며진 디지털 스토리텔링(Digital Storytelling) 요소까지 고루 겸비한 멀티미디어 컨텐츠 (Multimedia Contents)의 총아다. 그래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인 동시에 예술이 된다. 1500년 전 2차원으로 정지된 고분벽화가 생동감 있는 3차원 컴퓨터그래픽스ㆍ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동적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벽화 속에 정지된 고구려인들과 현대인들과의 만남이고, 고구려인들이 벽화를 뚫고 우리 앞에 다가와 고구려 춤을 같이 추자고 손짓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것이 바로 고구려 고분벽화 디지털 콘텐츠의 지향점이었다. 고분벽화가 총천연색이라고 하지만 천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 많이 부식되고 훼손돼 원래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디지털 복원은 어느 정도 위험부담 요소를 안고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디지털 복원은 ‘바로 이것이다!’ 라는 확정작업이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 졌을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왜냐하면 원본은 제작된 그 순간부터 변질이 시작되기 때문에 누가 복원하든 100% 똑같이 복원을 해낼 수는 없다. 디지털 콘텐츠화 작업도 마찬가지다.

 

안악 3호분의 행렬도 원본.pdf
0.88MB

 

안악3호분

  안악3호분은 황해남도 안악읍에서 약 7km 가량 떨어진 용순군 유설리 대지형의 구릉 서편끝 등마루에 위치해 있다. 3호분은 남북 33m, 동서 30m이며, 높이는 지평선에서 봉정까지 약 6m 정도다. 지금까지 왕릉으로 알려진 고구려 무덤벽화 중에서 규모나 벽화 내용의 풍부성이 단연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진시황의 지하궁전을 방불케하는 스케일과 4세기 동방문화를 대표하는 고구려의 힘과 뛰어난 문화를 과시한 이 무덤은고구려 사회의 모습과 생활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무덤의 앞칸에는 무덤의 주인인 고구려 국왕의 실내생활을 그려 놓았다. 옆에 있는 신하, 관리들보다는 몇 배나 크게 벽면의 한가운데 그려진 왕은 화려한 방안에서 관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채 털부채를 쥐고 거만하게 앉아 있다. 그가 쓴 모자와 옷은 고구려왕이 썼다고 하는 백라관과 오채의복이다. 왕의 왼쪽에는 한 손에 흰 홀을 잡고, 다른 손에 붓을 들고 공손히 왕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관리와 두 손으로 홀을 잡고 있는 여인이, 오른 쪽에는 줄을 치고 글을 쓴 종이를 두 손으로 펼쳐든 사람과 홀을 잡고 선 사람이 그려져 있다. 남쪽벽에는 왕후를 그렸는데, 왕후는 구름무늬 같은 무늬를 놓은 긴 저고리와 잔주름을 잡은 긴 치마를 입 었다. 이 밖에 국왕과 왕후를 호위하는 무관들이 앞칸 서쪽벽면에 그려져 있다. 국왕과 왕후의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복식과 시중드는 많은 측근들의 모습을 통해 고구려 시대 궁중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앞칸 동쪽벽에는 씨름하는 장면을, 동쪽 곁칸에는 발방아간ㆍ 용드레우물ㆍ부엌ㆍ육고ㆍ차고ㆍ 외양간 등을 그렸다. 거기에는 소 반ㆍ접시ㆍ시루ㆍ물동이ㆍ항아리 등 그릇들과 여자들이 발방아를 찧고 키질과 설거지를 하는 모습 등 고구려인들의 생활풍속이 잘 묘사돼 있다. 안칸 동쪽과 북쪽을 돌아가는 회랑에는 큰 행렬도가 있다. 주인공의 행차를 중심에 놓고 그린 이 벽화는 규모가 크고 화려한데, 당시 왕의 거대한 행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25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을 세밀하게 묘사한 대작으로 손꼽힌다. 안악 3호분 벽화에 등장하는 중장기병은 거의 대부분 철제 찰갑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장기병은 대부분 창을 들고 있으며,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확인되지 않는다. 적어도 벽화로만 본다면 고구려의 중장기병은 창을 주무기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군사강국 고구려의 실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안악 3호분 행렬도는 단순한 왕의 행렬도라기 보다는 원정을 떠나기 위해 출전하고 있는 고구려군의 퍼레이드를 연상케 한다. 벽화를 디지털 복원할 때 벽화 위에 그려져 있는 갑옷의 색과 재료는 동시대 고구려 관련 기록을 참조했다.

 

복원과정

   고구려 고분벽화의 디지털 복원에는 가상현실 기법을 사용했다. 가상현실이란 체험자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들어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복원 과정은 제작회의→CG & VR설계→모델링(Modeling) : CG 용ㆍVR용 개별→오브젝트 모델링 (각 개체별)→2D 매핑작업→렌더링 작업→나레이션ㆍ음악녹음→ 프로그래밍(3D입체영상 제작용)→ 테스트→최종시연 순으로 진행했 다. 모델링 질감자료 또한 디지털 문화재 복원작업의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벽화에 나타난 이미지를 정교하게 만들어서 물체에 입히면 사실적인 문화재의 질감과 형태를 표현할 수 있다. 다양한 정보 수집을 통해 얻은 사진을 포토과 같은 2D 제작도구를 사용하여 사진의 선명도 및 그림자 등을 수정, 보완하고 질감 을 통일되게 만들어 덧씌우는 과정이다. 이미지로 매핑을 하게 되면 모델링 작업에서 필요로 하는 형태까지 표현할 수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벽화의 톤 (tone)을 맞추는 문제와 AD 4세기 당시의 벽화여서 1600년 동안 마모되어 없어져버린 벽화부분에 대 한 복원이었다. 벽화의 톤 문제는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의 1인자인 울산대 전호태 교수에게 의뢰했고, 훼손되어 보이지 않는 2차원 벽화는 남아있는 윤곽을 통해 일일이 유추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 같은 이유로 이번 디지털 고구려벽화 복원 작업 중 가장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됐다. 총 9명의 디지털고구려 제작팀 중 무려 4명이 6개월에 걸쳐 이 매핑작업에 투입됐다. 사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압권은 벽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배정이었다. 아울러 벽화가 많이 마모되었기 때문에 많은 인원을 투입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복원의 의미

   고구려 고분벽화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훼손된 고분벽화의 원모습, 가볼 수 없는 고분벽화의 현장감 있는 경험, 고분벽화를 통해 고대 고구려인들의 생활상 등 가상현실 영상을 통해 고대문화 체험을 가능케 하는 것이 21세기 박물관 전시관에 주어진 새로운 요구라고 생각되며 이런 전시 형태를‘디지털 뮤지엄(Digital Museum)’ 혹은 ‘가상현실 뮤지엄(Virtual Museum)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디지털 복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구려 벽화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아주 정확한 원형 벽화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둘째, 또 다른 재난이나 화재 발생시 훼손된 벽화를 다시 원형으로 복구하기 위한 원자료로 삼기 위함이다. 궁국적으로 국가 차원의 문화재 복원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상콘텐츠화는 가장 완벽한 몰입도를 줄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평면 컴퓨터 화 면으로는 볼 수 없는 영상 정보를 제공하여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을 통한 입체화된 고구려 고분벽화가 UHD나 가상현실 등 각종 전자 매체를 통해 폭넓게 확산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박진호 유라시아디지털문화유산연구소장

 

[금강일보] 기사

 

 

 

[책동네 산책] 디지털로 복원된 고구려 벽화

입력 : 2012-03-30 17:09:36 수정 : 2012-03-30 17:09:36

 

 
   1949년 황해도 안악군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고국원왕인가, 전연(前燕)의 망명객 동수(冬壽)인가. 고국원왕릉이라면 왕이 전사하면서까지 백제와 치열하게 공방을 펼쳤던 남평양 전투의 실상을 해명할 수 있고, 동수묘라면 당시까지 이 지역에 일정하게 존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의 실체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안악3호분의 발견으로 우리는 그동안 부족한 사료 속에서 모호했던 4세기 중엽 고구려의 남방진출 과정의 실상을 파헤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됐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당시 사람들의 영화로운 삶을 사후에도 누리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현세의 생활 모습과 관념세계를 형상화해 사진 찍듯 그려 넣었다.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들이하는 행렬, 화려한 꾸밈새를 하고 시중을 받는 실내생활, 부엌과 곳간 및 방앗간 등 풍족한 살림집, 음주가무, 씨름과 사냥, 각종 상상의 동물들과 사신도 등이 묘사돼 있다. 이러한 벽화의 장면들은 사서에는 충분히 기록돼 있지 않은 고구려의 문화상을 복원할 수 있는 일급 사료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고구려 고분벽화들이 계속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도굴이나 무분별한 발굴로 인해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돼 훼손될 우려가 작지 않다. 안팎의 온도 차에 의해 벽면에 물방울이 생기고 화학반응에 의해 벽화가 하얗게 변색되고 있다. 1000년 하고도 수백년간 밀폐돼 있던 내부환경이 외부에 노출된 이상 벽화의 훼손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간 벽화의 상태를 담아내기 위한 나름의 시도들이 있었다. 직접 그리거나 사진 촬영하던 방식이다. 그러나 모사도는 그리는 사람마다 형태와 색상의 차이가 나고 사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되는 한계가 있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에 의해 고구려 고분벽화의 디지털 복원사업이 완성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벽화의 도상들과 색상을 정밀 고증해 최신 디지털 기술과 접목시켜 원상을 복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고분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입체 영상을 제작, 홈페이지(www.nahf.or.kr/094000)에 올렸다. 책뿐만 아니라 디지털로도 고구려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고구려 벽화무덤 디지털 복원 완료

입력 : 2012-03-22 19:36:58 수정 : 2012-03-22 19:36:58

 

北 소재 안악3호분동북아역사재단은 북한 소재 고구려 벽화무덤 ‘안악3호분’ 디지털 복원작업을 마쳤다고 22일 밝혔다.

  


디지털 자료로 복원한 안악3호분의 ‘묘주 부인상’
 
 
   지난해부터 복원작업을 벌여 최근 완료한 이 자료들은 웹 서비스용 데이터로 가공해 재단 홈페이지(contents.nahf.co.kr/goguryeo/anak3/)를 통해 공개한다. 이번에 디지털로 복원한 안악3호분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는 석실봉토 벽화고분으로 고국원왕대인 357년에 만들어졌다. 회랑에 그려진 대규모 행렬도(行列圖)로 유명한 무덤이다.

박종현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고구려 고분 벽화, 북한에서 10기 새로 발굴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승인 2018-07-06 23:54 0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한성백제박물관, 6일 ‘고구려 고분벽화, 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국제 심포지엄 개최

   세계문화유산 고구려 고분벽화의 가치와 의미를 조명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는 한성백제박물관(관장 이인숙)과 공동기획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국제학술심포지엄을 6일 서울 한성백제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이 한성백제박물관이 소장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模寫圖)’(북한 제작)를 박물관과 함께 조사한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문화유산 고구려 고분벽화가 갖는 가치와 의미를 조명했다.

고구려 고분벽화 전문 연구자인 울산대학교 전호태 교수가 ‘세계문화유산 고구려 고분벽화의 가치와 의미’를 기조발표를 통해 고구려 고분벽화가 갖는 문화, 예술, 종교, 사상, 사회 전반에 걸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조명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한성백제박물관과 공동기획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국제학술심포지엄을 6일 서울 한성백제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전호태 교수는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문화적 보편성과 독자성이 구현되고 문화 재창조의 과정이 확인되는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고분벽화는 고구려에서 이루어진 문화·예술 교류의 과정과 결과를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고분벽화는 고구려 생활문화사의 입체적 이해 및 원형에 대한 추적을 가능하게 해주며 과학기술사적 성취과정과 결과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종교·사상적 측면에서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이 지닌 내세관, 세계관을 형상화한 수단이었다. 이는 내세관, 세계관의 바탕을 이루는 종교·신앙의 전개과정을 파악하게 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고분벽화는 또한 고구려인이 지닌 내세관, 종교·신앙과 관련된 관념과 형상, 무덤 구조의 연동 관계를 확인시켜 준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사회사적 측면에서 고분벽화는 고구려 역사·문화 복원의 기초 자료를 제공해주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고분벽화는 고구려 사회질서와 신분 관계의 재구성에도 활용될 수 있다. 고분벽화는 고구려 사회사, 문화사, 예술사, 종교사의 복합적 이해도 가능하게 한다”며 “이처럼 문화사, 예술사, 종교 사상사, 사회사적 측면에서 다양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는 성과의 축적이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고분 벽화 연구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려면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팀을 이룬 학제적, 융합적 연구가 추진되고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한성백제박물관과 공동기획으로 6일 개최한 ‘고구려 고분벽화, 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 관해 발표한 전문가들과 주최 기관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이어 1부에서 최근 10여 년간 북한 지역의 낙랑, 고구려, 발해유적 발굴사업에 참여한 정경일(鄭京日) 중국 연변대학교 역사학부 교수(연변대 고구려발해연구센터 부주임) 가 ‘북한 소재 고구려 고분벽화 최신 발굴 성과 및 관리 현황’ 발표를 통해 옥도리 벽화고분, 천덕리 벽화고분, 보성리 벽화고분, 장수원동 벽화고분 등 21세기 들어서 발굴된 벽화고분들의 조사 성과와 북한의 문화유산 보호 및 관리 현황을 소개했다. 정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2001년 태성리 3호 무덤을 비롯하여 총 10기가 조사, 발굴되었다."며 최근 발굴한 성과를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소개했다.

 

   정 교수는 "2010년 5월부터 6월까지 남포시 용강군 일대에서 역사유적 조사발굴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옥도리 벽화무덤은 최근 발굴된 고구려 벽화무덤 가운데 고구려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특히 비교적 양질의 벽화가 남아 있어 가장 풍부한 고구려 벽화무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왕즈강(王志剛) 부소장은 ‘중국 소재 고구려 고분벽화 발굴 현황과 연구성과’라는 발표를 통해 최근의 고구려 고분벽화 현황을 소개했다. 왕즈강 부소장은 “2003년부터 집안 고구려 세계문화유산 신청과 신청 후 후속 보호 프로젝트가 전개되면서 연구와 유물 보호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고구려 벽화 고분의 보호 측면에서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며 “2008년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 등 기관은 고구려 세계유산 신청 후 후속 보호 프로젝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우산 1041호묘와 마선 1호묘에 다시 한번 수습을 진행하였다”고 말했다.

왕즈강 부소장은 “이 시기 고구려 벽화 고분을 기초로 한 연구 분야는 더욱 광범위해졌다. 전통적인 고고학, 역사 연구 외에 고구려 벽화 고분에 포함된 고구려 물질문화와 정신생활 연구가 더욱 심도 있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존 연구에서 많이 논의되지 않았던 고구려 복식, 건축, 미술 등에 대한 연구도 점차 늘어나 비교적 큰 학술적 영향력을 지닌 연구 저서와 광범위한 연구 분야와 다양한 방법론을 담은 논문이 발표되었다”고 밝혔다.

 

   2부에서는 박아림 (朴雅林)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 가치의 재조명’이라는 발표를 통해 대일항쟁기부터 제작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의 현황과 벽화 연구와 보존방안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1912년 오사 스네키리와 오타 후쿠조의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의 모사도 제작에서 시작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회화학습과 보존 방법인 동시에 사라져가는 고대 벽화의 보존과 전시 방안의 하나로서 현재까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앞으로 점차 사라져갈 벽화에 대하여 해당 모사도가 제작 시기의 벽화의 상태를 타임캡슐처럼 보관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모사도 자체 역시 후대에게 남기게 될 중요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윤희(朴允熙)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의 제작과 활용’이라는 발표에서 광복 이후 이후 제작된 북한 고분벽화 모사도의 제작배경과 벽화 보존 관리를 위한 기록 자료로서의 활용 가치를 소개했다.

 

1990년대 북한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한 강서대묘 ‘백호’, ‘주작’ 모사도 2점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사진=정유철 기자]

 

   박 학예연구사는 “해방 후 고구려 역사의 조명을 통해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당의 주도 아래 고분발굴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벽화 모사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초창기 모사도 제작에 참여한 정현웅과 손영기는 월북화가 출신으로 한국 전쟁 중 열악한 상황에서도 문양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열정을 보였다. 특히 벽화의 오염과 훼손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여 그렸다. 유물에 가해진 손상의 정도를 가감 없이 그려내는 현상모사의 방식은 이후 북한 모사도 제작의 지침이 되었다”고 말했다.

박 학예연구사는 “1950년대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사와 복제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모사도는 원본과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정교화 되었다.”며 “오늘날 모사도는조사 당시 원화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중성을 인정받는다. 벽화의 상태를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제작한 북한의 모사도에는 문화 유산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함께 축적되어 있다”고 말했다.

 

   3부에서는 미야사코 마사아키(宮廻正明) 일본 도쿄예술대학교 명예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보존과 공개’에서 2010년 도쿄예술대학이 특허를 취득한 문화재 복제기술 ‘클론 문화재’의 개발 경위와 이를 이용한 고구려 벽화 모사 사업의 성과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클론 문화재’는 도쿄예술대학이 개발한 특허에 의거, 제작된 문화재의 초고해상도 복원 복제 작품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사는 대일항쟁기 일본인들이 현존 벽화의 보존과 전시 방안의 하나로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왔다. [사진=정유철 기자]

 

   미야사코 마사아키 명예교수는 “클론 문화재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과 전통적인 아날로그 기술을 융합하고 사람의 손재주와 감성을 접목하여, 단순한 복제가 아닌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미야사코 교수는 “벽화는 성질상 당연하지만 쉽게 옮겨서 공개할 수 없고 훼손이 진행된다는 문제점이 있고 수작업 모사는 시간이 많이 걸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로 2010년 특허를 취득했다.”며 “먼저 강서중묘 남벽 동측의 주작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모사를 진행하였고, 이 4년에 걸친 성과를 토대로 강서대묘 사신도의 클론 문화재를 2012년에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강서대묘 클론 문화재를 이날 한성백제박물관 대강당 로비에 전시했다.

 

일본 도쿄예술대학교가 문화재 복원 특허기술로 재현한 강서대묘 ‘청룡’ 복제품 1점이 6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사진=정유철 기자]

 

   미야사코 교수는 “화재로 손상된 호류지 금당 벽화(일본), 둔황 막고굴 제57굴 벽화(중국), 바미얀 동대불 불감 천장벽화(아프가니스탄)를 클론 문화재로 복원하여 발표했다”며 “클론 문화재의 보급을 위해서는 위조품이나 가짜와 혼동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클론 문화재의 제작 이념을 명확히 밝히고 복제는 원본보다 뒤떨어진다는 선입견을 해소하며 문화재 보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호소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보존처리 전문가인 로돌포 루잔 런스포드(Rodolfo Luján Lunsford)는 그가 참여한 ‘북한 수산리 고분벽화 보존지원과 성과’ 발표를 통해 문화재 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례와 북한 수산리 고분 벽화 보존처리 현장의 체험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이날, 일본 도쿄예술대학교가 문화재 복원 특허기술로 재현한 강서대묘 ‘청룡’ 복제품 1점과 1990년대 북한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한 강서대묘 ‘백호’, ‘주작’ 모사도 2점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전시됐다.

고구려 고분벽화군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이는 남북한의 공통된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되어 이룬 성과였다. 2006년과 2007년에는 남북공동조사단이 북한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상태를 조사하고 보존처리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심포지엄의 성과와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의 조사내용을 정리하여 오는 12월까지 책자로 발간할 예정이다.

공유

[저작권자 © K스피릿]
 

K스피릿

인터넷신문, 홍익정신, 한류 정신문화, 인성교육, 건강행복 생활문화, 지구환경, 지구시민, 홍익사회 등 분야별 기사제공

www.ikoreanspirit.com

 

 

역사문화칼럼마당고구려 쌍영총 벽화, 눈으로 직접 본다

계림  22.03.11 08:35
 



▲‘빛의 과학’전에 처음 공개된 쌍영총 널길 동벽 벽화편의 주요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인 고구려 여인상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갸름한 얼굴에 입술을 칠하고 볼에 곱게 화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높이 168.7㎝, 너비 182.7㎝. 어른의 몸체 크기만한 1600년 전 벽화편으로 다가가자 가슴이 떨렸다.



   곱게 화장한 1600년 전 고구려 여인들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입술에 색칠하고 볼에는 연지를 찍었다. 그들은 순박하면서도 야무진 표정으로 맞은편의 모자 쓴 고구려 청년들을 바라보며 열을 지어 서 있다. 시선을 옮기니 바로 위쪽에 당당한 표정으로 갑옷을 차려입은 개마무사가 보이고, 그 옆쪽엔 한가로이 소가 끄는 수레를 모는 시동이 있다. 다시 위쪽을 주시하면 깃발을 들고 걸어가는 남성들의 행진 모습이 자리한다. 5세기 말 도읍 평양을 중심으로 우아하게 농익은 고구려 벽화미술 특유의 도상인 ‘남녀거마도’(男女車馬圖)다.




▲‘빛의 과학’전에 처음 공개된 쌍영총 널길 동벽 벽화편의 주요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고구려 여인상을 가까이에서 찍은 모습. 갸름한 얼굴에 순박한 눈매가 인상적이다.


   코로나19 재확산 사태로 곡절 끝에 지난달 말 재개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의 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11월15일까지)의 하이라이트는 사상 처음 관객에게 공개된 고구려 쌍영총 벽화편이다. 이 유물은 1913년 일본 학자들이 평양 외곽의 평안남도 용강읍의 고구려 고분 쌍영총에서 처음 조사했던 무덤 내부 벽화들 가운데 일부로 원래 널길 동쪽 벽에 붙어 있었다. 1920년대 혹은 1930년대 훼손돼 떨어진 것을 당시 국립박물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수습해 소장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는 일제강점기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복원도만 알려져 있다가 박물관이 전격적으로 벽화편을 대중 앞에 공개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고적도보>에 나온 쌍영총 널길 동벽 벽화 복원도. 오늘날 학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쌍영총의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고구려 벽화는 북한이나 중국 만주의 석실무덤에 있어 실물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뜻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에 조각편이 등장한 쌍영총과 개마총을 비롯해 감신총, 고산리 1호분, 운봉리 고분 등의 벽화 조각을 무려 262건 401점이나 소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박물관이 수집한 뒤 해방 이후 그대로 인수해 보관해온 것들이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총독부 당국과 일본 학자들은 1910년 평남 대동군 대성산성 고분 조사를 시작으로 1941년 평남 중화군 진파리 고분군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기 이상의 고구려 고분을 조사했다. 이들 가운데 벽화무덤만 30기에 이르렀다. 박물관에 남아 있는 벽화편은 일제의 이런 적극적인 조사의 부산물이다.이상한 점은 수집된 벽화 조각편 가운데 구체적인 수습·수집 경위에 대한 기록이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고구려 벽화편은 최소한 80년 이상의 수장 내력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대중에 선보였던 것은 쌍영총 고분의 널길 서쪽 벽에 붙어 있다 수습된 말 탄 기마무사상을 그린 조각이 유일하다. 그나마 이 조각도 주로 복제품으로 선보였을 뿐이다.




▲쌍영총 널길 동벽 벽화편의 적외선 촬영 이미지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에서 지난해와 올해 작업해 ‘빛의 과학’전에 처음 내보였다.


   고구려 벽화편의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국립박물관에서 이렇게 홀대를 받는 것엔 속사정이 있다. 1904년 평남 강서군수 이우영이 사신도로 유명한 강서대묘 안에 들어가 벽화를 확인한 것을 계기로, 20세기 초 고구려 벽화는 일본 학계는 물론 서구 학계에서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집중 탐구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민심을 자극했다. 외지 연구자들이 몰려들자 주민들 사이엔 벽화 무덤 속 회벽이 신통한 영약 재료여서 외지인들이 찾아온다는 헛소문이 퍼졌고, 회벽을 갈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돌면서 벽화무덤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고구려 벽화 전문가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20~30년대 이런 속설 때문에 평안도 일대의 고구려 벽화무덤 상당수가 파괴·훼손에 직면했고, 유적의 정비 보존을 위해 파견된 당국자들이 벽화 파편을 급히 거둬 박물관에 가져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쌍영총 벽화편과 함께 처음 공개된 개마총 벽화편의 적외선 촬영 사진. 태양 안에 다리 셋 달린 삼족오와 구름무늬 등이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벽화편들을 수습하고 보관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기록이 전혀 남지 않았고, 후대 학예사들도 유물의 내력과 정확한 연고를 알지 못해 사실상 수장고에 파묻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전시에 나온 쌍영총의 행렬도 벽화편과 개마총의 삼족오 무늬 파편들은 이런 방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난해 보존과학부와 고고역사부 학예사들이 적외선과 엑스선 투과 기술을 활용해 정밀한 도상을 확인하고 연고 무덤을 밝힌 성과를 업고 출품된 것이다. 쌍영총은 국내 학자들에게 전혀 개방된 적이 없고 개마총은 한국전쟁 때 완전히 파괴됐다. 박물관 쪽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쌍영총과 감신총의 다른 벽화 조각편들도 별도로 해체 보존 처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형석 한겨레 문화재전문기자 

 

 

 

고구려 쌍영총 벽화, 눈으로 직접 본다

▲‘빛의 과학’전에 처음 공개된 쌍영총 널길 동벽 벽화편의 주요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인 고구려 여인상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갸름한 얼굴에 입술을 칠하고 볼에 곱게 화장한 모습을 보

caf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