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5장 극락정토는 각자가 마련하는 것 - 4. 정토경전에 나타난 정토

2013. 8. 17. 20:25경전 이야기

 4. 정토경전에 나타난 정토

 

 

정토경전에 나타난 정토는 어떠할까?

 

일반 불교교리의 입장에서 정토라 하면 위에서 설명했듯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교화하는 불국토가 모두 다 정토지만, 여기서 정토사상 혹은 정토경전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그에 관한 경전만을 가리킨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정토가 다른 부처님의 정토에 비해 예로부터 널리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토경전인 <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가 48가지 원을 성취해서 깨달음을 얻어 아미타불이 되는 과정을 설하고, 그 성불한 아미타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모든 중생은 구제를 받을 수 있음을 설한다.

 

진리의 자각을 기조로 하는 불교에서 인격적인 부처를 신앙한다는 것은 특이한 것으로, 이러한 타력신앙은 원시불교 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대승경전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불교는 인간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됨으로써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불도를 닦는 사람 각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자각의 종교다.

 

그러므로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에서 보이는 유일 절대의 신도 없고, 신의 종으로서 신전에 엎드려 용서를 구할 일도 없으며, 일본의 신도(神道)처럼 '부정을 없애는 정신'도 없다.

 

오히려 의미는 약간 다르지만, 형식상에서 보면 불교에서는 '부처란 뭐하는 것이냐, 경전은 똥 닦는 종이와 같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량수경>과 같이 하나의 인격적인 아미타불을 구세주로 신앙하는 경전이 있다는 것을 언뜻 희귀하다.

 

정토경전에서 아미타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모든 중생은 구제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예호바 신의 율법을 어기고 남녀가 서로 정을 통해 자식을 낳은 것을 원죄(原罪)로 간주하여, 이후부터 자손인 인류는 이 선조의 원죄를 짊어지고 생사의 고통을 계속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는 신의 용서를 받거나, 신의 아들인 예수가 속죄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전미개오(轉迷開悟)라 하여 어리석음을 바꾸어 깨달음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을 배반한 죄악관이 없으며, 따라서 선조나 부모의 죄를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로 짊어진다고 하는 개념이 없으므로 구원을 받거나 속죄할 일도 없다.

 

한마디로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 불교의 자각(自覺)적인 깨달음이기 때문에, 생사의 고(苦)라고 여기는 생각을 없애는 것, 즉 생사하는 우리의 심신을 자아(自我)라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고, 생사를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만약 불교에서 유대교적인 원죄와 같은 것을 찾는다면 무명(無明)밖에 없다.

 

무명은 번뇌로 말미암아 진리에 어두운 것, 곧 무지(無智)를 말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인간의 입장으로서 이 무명 때문에 우리의 심신을 자아로 간주하는 아집이 생기고, 생존의 욕망인 갈애(渴愛)가 생긴다.

 

그러나 무명은 저질은 죄가 아니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무명의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생로병사를 고통으로 삼는 생존이 있기 때문에 이 무명을 없애면 생사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각시키는 데 있다.

 

그런데 무명은 워낙 고질적인 것이어서 인간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라고 한다.

 

따라서 아미타불의 구원이라는 것도, 아미타불을 믿고 그 힘으로 무명의 중생을 명(明)으로 바꾸어 어리석음으로 인한 생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 다른 말로 바꾸면 진리(法)와 인간(人)과의 대결이 일반 불교의 입장이다.

 

그러나 무명으로 덮인 어리석은 인간이 직접 진리와 대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무량수경>에서는 이 진리와 인간 사이에 아미타불의 정토라는 것을 개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가 직접 진리와 대결해서 아미타불이 되어 자신이 건립한 정토를 중생을 위해 제공함으로써, 진리와 인간의 대결을 보다 쉽게 해 준다.

 

따라서 정토교에서는 진리와 인간이 직접 대결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결하는 장소를 정토에서 구하여, 정토에 왕생한 후에 그곳에서 진리와 대결한다.

 

그리고 그 정토는 진리와 인간의 대결에서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진리를 깨닫거나 보살행을 닦는 것도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가피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왕생자에게 '왕생 즉 성불'을 약속하는 곳 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아미타불의 정토가 등장한 것이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염화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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