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5장 극락정토는 각자가 마련하는 것 - 2. 정토신앙의 발생과 전개

2013. 8. 17. 20:24경전 이야기

 2. 정토신앙의 발생과 전개

 

 

                                                        장휘옥 著/불교시대사/자료입력:김수남  

 

정토신앙이 역사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일반적으로 2세기경 인도 쿠산왕조의 카니쉬카왕 무렵에 서북 인도에서다.

 

대승 불교의 이론적 대성자 용수(2~3세기)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반야경> <법화경> <유마경> 등과 같은 중요한 대승경전과 함께 정토경전 계통의 <반주삼매경> <아미타경> <무량수경> 등이 성립되어 있었으므로, 이로 미루어 보아 1세기 후반에서 2세기에 걸쳐 대승불교 운동과 함께 출가교단에서는 물론 재가신자들 사이에서도 정토신앙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정토신앙은 인도에서 서역,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이것은 소위 북방불교 특히 대승불교가 전래된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신앙으로서 스리랑카나 미얀마, 태국방면으로 전해진 남방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정토신앙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의 근본사상은 지혜와 자비 두 정신이다.

 

부처(佛陀)란 잘 아는 바와 같이 '깨달은 자' '눈뜬 자' 즉 각자(覺者)를 의미한다. 그러면 무엇에 눈을 떳다는 말일까?

 

그것은 사물의 참다운 모습, 즉 인생과 우주의 실상,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눈을 뜬 것이다. 만물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아는 것, 이것을 불교에서는 지혜라 한다. 만물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고 믿고, 이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 이 불멸의 실체라고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면 스스로 집착하는 일이 없어져 인생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불교의 지혜다.

 

그러나 이것은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몸으로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주체적으로 체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은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는 진리, 진실에 눈을 뜨게 될 때 자신의 삶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다. 이것이 부처의 자리의 측면이다.

 

 

그러나 만일 이 자리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깨닫는 자각(自覺)에 그칠 뿐, 남을 깨닫게 하는 각타(覺他)가 없기 때문에 혼자만 깨닫는 독각(獨覺)으로 끝나 버리므로 진정한 부처라 할 수 없다.

 

깨달음에 자리뿐 아니라 이타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깨닫는 자각이 그대로 남을 깨닫게 하는 각타로 나타나 스스로 해탈함과 동시에 타인을 구제하려는 자비로서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석

 

가모니가 깨달음의 내용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중생을 위해 교화를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이와 같이 불교의 근본정신인 지혜와 자비의 두 정신 가운데 부처님의 대자비에 중점을 두어, 자비의 관념이 부처님의 중생구제로 나타난 것이 정토사상이다.

 

정토신앙에서의 구제사상은, 특히 중국에서는 말법시대라는 종교적 역사관과 시대의식에 따라 육성하고 성장하였다. 역사는 석가모니부처님 시대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나빠진다고 하는 말법의식은, 불교의 역사관이 지닌 독특한 성격으로서 석가모니 입멸 후 수백 년 내에 발생한 사상이다.

 

불교에서는 시대를 3기로 나누어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구분한다. 정법시대는 석가모니 생존 당시부터 오백 년 혹은 천 년간을 말하는데, 이 시대에는 가르침과 수행이 뛰어나 깨달음을 얻는 자가 나타나는 시대다.

 

상법시대는 정법시대가 지난 후 천 년 간에 해당하며, 가르침과 수행은 있지만 깨닫는 사람이 없는 시대다.

 

마지막으로 말법시대는 상법시대가 지난 후 만 년간을 말하는데, 이 시대에는 가르침만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깨닫는 사람도 없는 시대다. 이 말법시대가 지나면 불교는 완전히 멸한다고 한다.

 

참고로 말법 만 년이 지나면 삼보는 완전히 별하지만, 현재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56억 7천만 년 뒤에 부처가 되어, 이 땅에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세 번의 법회를 열어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에서 빠진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하는 것이 '용화삼회의 깨달음(龍華三會의 曉)'이다.

 

역사적으로 말법시대에 대한 자각은 시대적으로 불안할 때나 사회적으로 모순이 심각할 때마다 대두된 것으로서, 말법시대의 위기의식은 의식 있는 종교가들로 하여금 서민구제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였다.

 

특히 중국에서는 수나라 말에서 당나라 시대에 걸쳐 말법시대에 대한 자각이 대두되었는데, 신행(信行, 540~594)이 삼계교(三階敎)를 창설해서 말법시대에 걸맞은 서민 구제의 가르침을 설한 것이나, 정토의교의 도작(道綽)이 불교를 자력성도문(自力聖道門)과 타력정토문(他力淨土門)으로 구분해서 오늘날의 말법시대 중생들은 근기가 약하므로 타력정토문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시대의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자력성도문이란 주로 출가수단의 수행자들이 석가모니가 임종 때 "자신을 섬(洲)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지 타인을 의지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법(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야지 타인을 의지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남전 <열반경>)고한 말씀에 따라 자신과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 석가모니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르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해탈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 계통의 가르침은 석가모니의 직제자들로서 교단을 조직한 사람들이나 그 손자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출가 교단에 의해 전승되었다.

 

이에 반해 타력정토문은 주로 재가의 신자들이 그들 스스로는 석가모니가 걸어온 험한 길을 그대로 답습할 수도 없고 자신과 진리를 의지처로 삼을 힘도 없으므로 아미타불의 본원(대비심)에 귀의하여 아미타불을 생각(念)하고 그 명호를 부르면서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즉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파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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