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5장 극락정토는 각자가 마련하는 것 - 5. 극락정토는 각자가 마련하는 것

2013. 8. 17. 20:25경전 이야기

 5. 극락정토는 각자가 마련하는 것

 

 

불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산이나 강이 있는 세계가 먼저 있어서 그곳에 인간이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할 때에 그 존재하는 세계가 나타난다. 주위에 아무리 많은 볼 거리가 있어도 내가 볼 마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계는 그 사람의 깨달은 정도에 따라 전개된다. 깨달은 자의 눈에는 이 세상은 깨달은 세계 정토로 보이고, 중생의 눈에는 사바세계로, 동물의 눈에는 동물의 세계로 보인다.

 

예를 들면 지계 견고한 오랜 수행은 금강보좌를 감득하는데, 그 능력을 감득한 자는 앉으려고 할 때 반드시 금강보좌를 앉을 자리에 느낀다. 금강보좌가 먼저 있어서 그곳에 가서 앉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결과로서 저절로 마련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장비구는 48가지 서원을 성취하는 보살행을 완수하여 아미타불이 되었기 때문에, 그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보좌(寶座)를 관하게 하려고 하면 보좌가 있고, 보전(寶殿)을 관하게 하려고 하면 보전이 있다.

<관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을 관하는 방법을

 

"다음에는 부처님을 생각하여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법계신(法界身)이기 때문에 일체 중생의 마음(心想) 속에 들어 계시느니라."

 

하였다.

 

법계신이란 법신불을 말한다. 전세계를 통일·유지하는 법성은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되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心想)에 부처를 생각하면 부처는 중생의 마음에 투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관하는 중생의 마음이 그대로 부처가 되어 정토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관무량수경>은

 

"그대들의 마음에 부처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32상의 뛰어난 모습이 되고 80가지 특징을 가지게 되느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고, 또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지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일심으로 골똘히 생각을 모아 아미타불을 관해야 하느니라."

 

고도 설한다. 아미타불과 정토는 부처님의 실재(實在) 모습으로 존재하므로, 그 모습을 인간이 생각을 모아 관할 때에는 인간의 마음에 인간의 실재 모습으로 그대로 나타난다. 결국 아미타불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신이 아미타불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끔 수행을 하였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


<무량수경>에서는 극락정토는 각자 지은 업력의 과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한다.

"그 국토에는 수미산과 금강철위산 등 일체의 산이 없고, 바다나 강이나 시내나 골짜기나 우물 등도 없으나, 보고 싶어할 때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바로 나타나느니라. 또한 지옥·아귀·축생의 괴로운 경계도 없고,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도 없으니,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항상 온화하고 상쾌하느니라."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 불국토에 수미산이 없다면 그 산에 있을 사천왕과 도리천은 어디에 의지해 살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대는 제3의 염천(야마천)에서 색구경천(色究竟天)까지의 모든 천상들은 모두 어디에 의지해서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닌아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각기 지은 바 업력의 불가사의한 과보의 힘에 의해 자기에게 합당한 천계(天界)에 머물고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업력의 과보가 불가사의하여 그러한 천상계가 있을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의 세계도 또한 불가사의하여, 그 불국토에 사는 모든 중생들도 그들이 이미 지은 바 공덕과 선업의 힘에 의해 나타난 땅에 머물러 살 뿐아니라, 그러니 수미산이 없더라도 아무런 불편이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그러한 법을 의심하지 않사오나 다만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그들의 의혹을 풀어 주기 위해 짐짓 이러한 뜻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관무량수경>에서도 위제희부인이 부처님께 극락세계를 보여달라고 했을 때, "부인은 마땅히 마음을 가다듬어 청정한 업으로 이루어진 저 극락세계를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라 대답하였다.

 

여기서 '청정한 업'이란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의 청정한 업을 말하는 것으로서, 결국 극락세계의 건립은 자신의 업을 청정하게 닦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법장비구가 서방정토를 장엄하기 위해 토목공사를 하거나 토지를 확장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청정한 업을 닦아 극락정토를 건립한 것이다.



그러면 왜 정토삼부경에서는 아미타불을 여기서 서쪽으로 10만 억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 극락세계에서 현재도 설법하고 계신다고 하였을까?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인 선도는, 말세 오탁악세의 중생들은 인간의 실제 모습과 똑 같은 모습으로 서방에 이러이러한 부처님이 계신다고 말해도 이것을 관(觀)할 능력이 없는데, 하물며 모습을 여읜 모습을 관하라고 하는 것은 신통술이 없는 사람에게 공중에 머물러 집을 지으라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한마디로 극락정토는 부처의 눈으로 보면 실재하는 것이지만, 중생은 이것을 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믿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극락은 서방에 있고 아미타불을 현재 그곳에서 설법하고 계신다고 설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실한 세계인 정토가 존재한다.

 

이것은 육안(肉眼)이 아니라 마음의 눈인 심안(心眼)이라야만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정토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는다. 마음의 눈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량수경>에서는 이렇게 설득하고 있다.

전생에 착한 공덕 못 쌓은 이는
이 경전 말씀을 들을 길 없고
청정한 계행을 지킨 이라야
부처님의 바른 법문 받아들이리.

일찍이 부처님을 뵈온 사람은
의심없이 이런 일을 믿을 것이니
공경하고 겸손하게 듣고 행하여
환희심에 뛰놀며 기뻐하리라.

교만하고 삿되게 게으른 사람은
이 법문을 믿기 어렵고
숙세에 부처님을 뵈온 사람이라야
이러한 가르침을 즐겨 들으리.

업장이 두꺼운 사람은 업의 장애로 아무리 불법의 좋은 말을 해주어도 결코 믿으려 들지 않기 때문에 심안이 열릴 리가 없으며, 따라서 진실한 세계인 정토를 볼 수 없다. 그래서 <무량수경>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부처님께서 미래의 중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함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라. 또한 여러 부처님의 경전을 얻는 것도 어렵고 설법을 들은 것도 어려우니라.

 

그리고 보살행의 위대한 법인 육바라밀을 듣는 것도 또한 어려우며, 선지식을 만나서 법문을 듣고 능히 수행하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니라.

 

더구나 이 <무량수경>의 진리를 듣고 환희심으로 믿고 지니어 기억함은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욱 어려운 일로서,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무량수경>의 법문을 진리 그대로 이와 같이 마련하고, 진리 그대로 이와 같이 말하며, 진리 그대로 이와 같이 가르치는 것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믿고 의지하여 가르침과 같이 수행해야 하느니라.

 


불법 만나기 어렵고, 만나더라도 또한 배우기 어렵다는 말은 익히 들어 왔다. 불법을 만날 수 있다는 인연만으로도 우리는 숙세의 공덕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쓸데없이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매일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마무리 배가 고파도 남이 대신 먹어 줄 수 없고, 아무리 잠이 와도 남이 대신 잘 수는 없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아미타불께 귀의하여 그 가르침을 실천할 때, 그리하여 자신의 업을 하나하나 벗겨 갈 때 아미타불부처님의 모습은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고, 극락정토도 정차 실현될 것이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염화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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