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탐라순력도

2013. 5. 14. 23:54美學 이야기

 

 

                                고산자 김정희      대동여지도 중에서  제주부분

 

 

 

 

탐라순력도   / 1702년(숙종28)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 이형상이 제주목 화공 김남길에 명하여 2년간의 행적을 그린 41첩의  화첩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문헌실에 소장

 

 

 

 

탐라순력도의 서문

 

極)과의 거리가 가장 가깝고 춘분과 추분에는 노인성(老人星)이 한라산에 나타나니, 대개 절역이기 때문이다. 북으로는 전라도에 접했고 동으로는 일본과 이웃하였다. 그 병향(丙向)은 여인국(女人國), 오향(午向)은 대소유구(大小琉球), 정향(丁向)은 교지(交趾)와 안남(安南), 곤향(坤向)은 민구, 그 밖은 섬라(暹羅), 점성(占城), 만라가 이다. 신향(申向)에서 해향(亥向)까지는 오(吳), 초(楚), 월(越), 제(齊), 연(燕)의 지경이다.

구한(九韓)때 양(良), 고(高), 부(夫) 삼을나(三乙那)가 분거하며, 이 지역을 탁라라 하였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와 한(漢)의 무제(武帝)는 신선(神仙)을 찾으면서 이곳을 영주(瀛洲)라 하였다. 그 땅이 벽지이며 또 기화이초(琪花異草)가 많아서 연제(燕齊)의 사람들은 신산(神山)이라 하였다. 고후(高厚) 등 3인은 탐진(耽津)에 정박하여 신라(新羅)에 조회하면서 탐라(耽羅)라 하였는데, 한문공(漢文公)은 이를 탐모라(耽牟羅)하였다.

                           

 

 

고려(高麗)는 삼별초(三別抄)의 난에 원(元)의 병사와 합쳐 이를 토벌하였다. 마침내 원(元)의 관활이 되었다. 혹은 군민총관부(軍民摠管府)를 설치하고 혹은 동서아막(東西阿幕)을 세워서 마(馬), 우(牛), 양(羊)을 방목하였다. 그 뒤 제주(濟州)라고 불렀고, 조선조(朝鮮朝) 태종(太宗) 때에 이르러 성주(星主), 왕자(王子)의 호칭을 제거하였다. 뒤에 또 대정현(大靜縣)과 정의현(旌義縣)을 설치하여 제주목(濟州牧)과 함께 삼읍(三邑)이라 하였다.

연혁의 이어짐이 있었으나 더러는 없어지기도 하였으며 인심이 가로막혀 잠시 순종하다가도 갑자기 반역하였다. 이리하여 국초(國初)로부터 안무사(安撫使), 선무사(宣撫使), 순문사(巡問使), 지휘사(指揮使), 방어사(防禦使), 부사(副使), 목사(牧使)를 파견하고 그 거처를 영문(營門)이라 하였다. 사건들을 전제(專制)하는 까닭에 과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주(島主)라 하였고, 험로(險路)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은 환적(宦謫)이라 하였으니, 대개 그 지세(地勢)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형상 수고본(李衡祥 手稿本)

 

 

금상(肅宗) 29년 임오(壬午)에 내가 재주 없으면서 외람되이 절제사(節制使)의 명을 받았다. 곧 영(營)에 도착하여 장부를 점검해 보았다. 세 고을의 인민은 9,552호(戶), 남여 43,515명, 밭은 3,640결(結), 64목장 내에 국마(國馬)가 9,372필, 국우(國牛)가 703두, 41과원(果園) 내에 감(柑)이 229그루, 귤(橘)이 2,978그루, 유자가 3,778그루, 치자가 326그루이다. 이 외에 개인의 우마와 감귤이 있으나 소재가 생략되어 있는 것은 권장하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17명의 훈장(訓長)과 68명의 교사장(敎射長)을 분치(分置)하였으니, 유생(儒生)은 480인이요, 무사(武士)는 1,700여 인이다. 모두가 각기 부지런하여 성취하는 바가 있으니, 역대 임금께서 길러준 효과가 해도(海島)에까지 스며들어 성대해진 것이다.

매번 봄, 가을로 절제사가 직접 방어의 실태와 군민(軍民)의 풍속을 살피는데, 이를 순력(巡歷)이라 하였다. 나도 구례(舊例)에 따라 10월 그믐날 출발하여 한 달 만에 돌아왔다. 이 때 반자(半刺) 이태현(李泰顯), 정의현감(旌義縣監) 박상하(朴尙夏), 대정현감(大靜縣監) 최동제(崔東濟), 감목관(監牧官) 김진혁(金振爀)이 모두 지역별로 배행(陪行)하고자 하니, 이에 일어나며 말하기를, "이번 행차는 참으로 기록할 만하다." 하였다. 도민(島民)이 군은(君恩)에 감격하여 건포(巾浦)에서 배(拜)를 올림에 이르렀으니, 이 또한 임금의 은택에 보답하고자 함이다. 서로 맹서하여 온 고을의 음사(淫祠)와 아울러 불상(佛像)을 모두 불태웠으니, 이제 무격(巫覡) 두 글자가 없어졌다는 것을 더욱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곧 한가한 날에 화공(畵工) 김남길(金南吉)로 하여금 40도(圖)를 그리게 하고, 비단으로 장식하여 일첩(一帖)을 만들고는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라 이름하였다.

계미(癸未)년 죽취일(竹醉日, 5월 13일)에 제주영(濟州營) 와선각(臥仙閣)에서 기록하여, 이를 병와거사(甁窩居士) 이형상(李衡祥)은 서(序)로 삼는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조선 숙종 때인 1702년도의 제주도에서 그려진 그림이라 합니다.

당시 조선의 모습을 좀 보여주는 면이 있는 것 같아서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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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탐라순력도』소개 글 -

보물 제652-6호

『탐라순력도』는 이형상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달간에 걸쳐 순력(감사가 도내의 각 고을을 순회함)하고 돌아온 후

그간의 여러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이다.

이 그림들은 김남길이 그리고 이형상이 설명을 삽입하여 함께 제작한 것이다.

 

 

화북성조(禾北城操)

제주목사가 제주도의 화북진성(禾北鎭城) 군대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

 

 

화북성조 부분들

 

 


 

조천조점(朝天操點)

제주목사가 조천진성(朝天鎭城)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

 

 

조천조점 부분들

 

 

 

 

정의조점(旌義操點)

정의현성(旌義縣城)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

 

 

정의조점 부분

 

 

 

 

정의양로(旌義養老)

 

 

정의현(旌義縣)의 노인들을 초대하여 양로잔치를 벌인 그림.

정의양로 부분

 

 

 

 

 

정의강사(旌義講射)

정의현(旌義縣)에서의 활쏘기 시범

 

 

정의강사 부분들

 

 

 

 

정방탐승(正方探勝)

정방폭포를 관람하는 모습

 

 

정방탐승 부분들

 

 

 

 

천연사후(天淵射帿)

천지연폭포에서 활쏘기하는 그림

 

 

천연사후 부분들

 

 

 

 

고원방고(羔園訪古)

귤나무 과수원을 방문한 모습

 

 

 

 

현폭사후(懸瀑射帿)

천제연 폭포에서 활쏘기 하는 그림

 

 

현폭사후 부분

상대편에 있는 과녁에 활을 쏘고 나서

[인형]을 줄에 매달아 화살을 다시 가져오는 모습.

 

 

 

 

산방배작(山房盃酌)

산방산 굴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

 

 

산방배작 부분

 

 

 

 

대정배전(大靜拜箋)

 

 

대정배전 부분

 

 

 

 

모슬점부 (摹瑟點簿)

모슬진성 군대를 점검하다.

 

 

모슬점부 부분

 

 

 

 

병담범주(屛潭泛舟)

취병담(翠屛潭)에서 뱃놀이하는 모습

 

 

병담범주 부분

 

 

 

 

명월조점(明月操點)

명월진성(明月鎭城)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다.

 

 

명월조점 부분

 

 

 

 

명월시사(明月試射)

명월진성(明月鎭城)에서 활쏘기시험을 하는 모습

 

 

명월시사 부분

 

 

 

 

산장구마(山場驅馬)

제주목사가 말목장을 점검하는 그림

 

 

산장구마 부분

 

 

 

 

제주사회(濟州射會)

관덕정(觀德亭)에서 활쏘기 하는 모습.

 

 

제주사회 부분

 

 

 

 

호연금서(浩然琴書)
한라산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다.

 

 

호연금서 부분

 

 

 


대정조점(大靜操點)

대정현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다.

 

 

대정조점 부분들

 

 

 

 

대정양로(大靜養老)

대정현 노인들을 초대하여 경로잔치를 벌이다.

 

 

 

 

수산성조(首山城操)

수산진성(水山鎭城)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

 

 

 

 

별방조점(別防操點)

별방진성(別防鎭城)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

 

 

별방조점 부분

 

 

 

 

별방시사(別防試射)

별방진성(別防鎭城)에서 활쏘기 시험을 치르는 모습

 

 

별방시사 부분

 

 

 

 

서귀조점(西歸操點)

서귀진성(西歸鎭城)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

 

 

서귀조점 부분

 

 

 

 

애월조점(涯月操點)

 

 

애월조점(涯月操點) 부분들

 

 

 

 

차귀점부(遮歸點簿)

차귀진성(遮歸鎭城)의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

 

 

차귀점부 부분

 

 

 

 

비양방록(飛揚放鹿)

사슴을 사로잡아서 비양도에 방사하다.

 

비양방록 부분

 

 

 

 

귤림풍악(橘林風樂)

귤나무 과수원에서 풍악을 즐기다.

 

 

귤림풍악 부분

 

 

 

 

제주조점(濟州操點)

 

 

제주조점 부분

 

 

 

 

교래대렵(橋來大獵)

 

 

 

 

우도점마(牛島點馬)

우도에서 말들을 점검하다.

 

 

우도점마 부분

 

 

 

 

건포배은(巾浦拜恩)

 

 

 

 

승보시사(陞補詩士)

(지방에서 치르는 아래등급의) 과거시험

 

 

승보시사 부분

 

 

 

 

성산관일(城山觀日)

성산일출봉에서 해뜨는 모습을 바라보다.

 

 

성산관일 부분

 

 

 

 

감귤봉진(柑橘封進)

조정에 진상할 귤을 준비하다.

 

 

감귤봉진 부분

 

 

 

 

공마봉진(貢馬封進)

조정에 진상할 말들을 점검하다.

 

 

공마봉진 부분

 

 

 

 

제주전최(濟州殿最)

제주목사가 각 관리의 공적을 심사하다.

 

 

 

 

제주양로(濟州養老)

제주목의 노인들을 초청하여 양로잔치를 하다.

 

 

제주양로 부분

 

 

 

 

대정강사(大靜講射)

대정현에서의 활쏘기 시범 행사.

 

 

대정강사 부분

 

 

 

 

김녕관굴(金寧觀窟)


제주목사 일행이 김녕의 굴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라 합니다.
지금의 만장굴과 다른 작은 굴을 합쳐 김녕굴이라 한 듯하다 합니다.

김녕관굴 부분들

 

 

 

 

한라장촉(漢拏壯囑)

 

 

공마봉진   /1702년(숙종28년) 6/7  시행      -       

 

 

 

한라장촉도   / 1702년 4/15                                                  중국 寧波府,蘇洲, 杭洲,  楊洲,山東省, 靑洲

                                                                                       일본,硫球,安南,暹羅國,滿刺加

출처 : 백담 그 시절...
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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