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 들꽃다회 5. - 일곱

2013. 10. 25. 07:13들꽃다회

 

 

 

   광주 무등산 들꽃다회  5.  -  일곱(20131019)

 

 

무등산에 가면

 

                        /  나천수

 

 



왜 무등산에 오르느냐 묻는다면
그곳에 높고 낮음이 없는
무등(無等)이 있어 간다고 말하리라.

무등으로 가는 길에 배고픈 다리 있는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하늘의 설법인 것을,
마음을 비었다고 증심(證心)하는 자만에게만
대문 없는 일주문이 열리는 것
배부른 사람들은 모른다.

배부른 자, 어찌 무등의 의미를 알랴.
욕망으로 가득 찬 자, 어찌 무등이 보이랴.
마음 빈 자리로 부처가 들어오거늘,

배고픈 다리 지나
장불(長佛) 등에 업고
가파른 고개 너머 서석대에 올라서면
장불은 간데없고 텅 빈 무등만 있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빈 마음으로 만나면
높고 낮음이 없는 무등이 되어서이다.

사람들이 무등에 오르려는 것은
텅 빈 그 마음속에 무등을 담으려고
허기진 배 움켜쥐고 헐떡이며 가는 것이다.
무등이 되려고 무등산에 가는 거다.

마음을 비우고 무등에 오르면
내가 무등산인 것이다.
우리가 무등산인 것이다.
온 천하가 무등산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없을 무자로 이름 지어진 무등산은 이름 그대로 

                 높고 낮음이 없으니 산은 산이로되 산이 아니로다.

 

 

감상】 나천수 시인은 초야에 자연과 더불어 생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사물을 관조하는 냉철한 시상과 함께 자연을 포용하며 그 속에서 인생의 삶을 철학적 관조로 승화시켜 노래하는 시인으로 평하고 있다.

 

<사색의 창> 나천수 시인은 나주 출신으로 무진주문학 대상을 수상한 원로작가로 공직생활을 마치고 전원생활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가을이 서고 가을이 들어선 지금, 나 시인의 시를 음미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상을 곁눈질해본다. 있을 때 없을 때를 생각하고 높을 때 낮음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삶이 우리에게 습관화돼 간다면 준비된 생활의 여정들이 우리네 삶들은 좀 더 여유롭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무등산 시그라기 울음소리
                        

                                    /   김일곤

 


시그라기 온 몸으로 뒤척이며 우는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얼음새꽃처럼 행복을 꿈꾸면서
순수하고 지선하며 따뜻함을 제 몸인 듯 아끼고
그저 물빛 솔빛 대숲바람 사랑하며
작은 평화를 노래했을 뿐인데
언제련 총칼에 흘린 핏방울이
장불재 평전에서
계절 따라 시그라기꽃으로 피었던 것
조용히 바람에 기대 우는 울음이 더 깊어지곤 했는데
그건 자신의 몸짓 탓
망개 붉은 너릿재에 정의의 탯줄 묻고
줄줄이 젖줄 물고 피었다한들
그 아픔 어찌 위로할까
동백꽃보다 붉은 핏빛 목소리 아련한 날
무등 입석대 관목 숲에 서면
서러움이 칼날처럼 불어와 피는 상고대 얼음꽃
개화산통이 얼마나 장엄하랴마는
결코그 칼바람 두려워하지 않고
제 몸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 흔드는 바람으로
순백의 빛 피워놓았으니
네 무등의 이마, 얼마나 눈부시랴

 

 

******* 시그라기 울음소리 :  억새가 가을철에 말라 바람이 불 때마다

                    "시그락 시그락"하고 서로 몸을 부비며 운다는 의성어임.

 

 

* 김일곤. 새교실 시 추천완료, 교육자료 시조 추천완료. 공무원 문예대전 시 부문 은상 수상. 광주광역시 및 전남문인협회 회원. 시집, <겨울나무의 뒷모습> 외 합동시집 다수. 어등초등학교장(전)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의 시조, 서하당유고에 전함.
고천 나천수 옮겨 씀.

 

 

현대역;

----열구름이 심히 궂어 밝은 달을 가리우니,
----밤중에 혼자 앉아 애달음이 그지없다.
----바람이 이 뜻을 알아 비를 몰아 오도다.

 

 

 

 

 


 

억새밭과  중봉 방송중계기지와 중계탑

 

 

 

 

 

 

서석대 주상절리

 

 

 

 

서석대

 

 

 

 

 

 

 

 

 

찔레나무 열매

 

 

 

 

깨묵 (일명 께묵)   -  이른 봄에 근경(根莖)을 식용. 전초는 약용.

 

 

 

 

사방오리나무  - 사방 조림용, 열매는 염료용.

 

 

 

 

사위질빵(일명 질빵풀)  종실섬유(種室纖維)

 

                 - 어린 잎과 줄기는 식용.

                 - 사위질빵은 덩굴의 마디가 쉽게 끊어져 사위에게는 사위질빵 넝굴로

                    작고 가벼운 나뭇짐을 지게 하였고, 이에 비하여 할미밀망은

 

                     덩굴이 질겨서 할머니에게는 크고 무거운 나뭇단을 메고 다니도록

                     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장인 어른의 사위사랑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중봉 지능선과 광주시내 원경

 

 

 


*환벽당(環壁堂) : 성산(星山) 맞은편 언덕 위에 김윤제가 지은 집. 광주 북구 충효동 387번지 광주호 상류의 언덕 위에 높다랗게 자리 잡은 정자로 사촌 김윤제 (沙村 金允悌 1502~1572)가 관직에서 은퇴하고 만년(晩年)을 고요히 보내고자 1558년 무렵에 창건했다.

 

     정자의 이름인 당호 (堂號)는 전북 태인 현감인 신잠(申潛)이 정자의 아래로 창계천이 흐르고 있고, 성산별곡'의 배경인 성산(星山)이 좌우로 자리 잡아 푸르름이 둘러쳐진 곳 즉 청산녹수(靑山綠水)가 병풍처럼 둘러 쳐져있어서 ‘환벽당(環碧堂)’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고경명(高敬命)이 유서석록(遺書石綠)에 벽간당(碧澗堂)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정자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옆에서 볼 때 팔작지붕(팔(八)자 모양) 건물이며,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다시 세우면서 가운데 2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바꿨고, 현재는 정철의 4대손 정수환(鄭守環)씨가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정씨(경북연일, 포은 정몽주 가문) 문중인 정일택씨가 관리하고 있다. 1972년 01월 29일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등록되었다.


     김윤제(金允悌1501년∼1572년)는 광산 사람으로. 호는 사촌(沙村)이다 . 중종(中宗) 23년(1528)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等)에 합격하고, 중종(中宗) 26년(1531)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로 급제하였으며, 직강(直講), 홍문관교리(弘文館敎理), 전중어사 겸 춘추관 편수관(殿中御使 兼 春秋館 編修官)을 역임하였고, 남원판관(南原判官), 전주진영 병마절도사(全州鎭營 兵馬節度使), 부안군수(扶安郡守), 나주목사(羅州牧使)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두로 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을 하였는데,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과 종질(從姪)인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과 김덕보(金德普) 형제는 종손으로 그의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교유한 사람들은 송순(宋純), 임억령(林億齡), 김인후(金麟厚), 소세양(蘇世讓), 양산보(梁山甫) 부자, 양응정(梁應鼎), 기대승(奇大升), 고경명(高敬命), 삼당시인으로 이름난 백광훈(白光勳) 등이다.

 

    환벽당(環碧堂)이란 한자로 써진 현판을 가리키면서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이 쓴 제액(題額)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자의 중앙 마루 좌측 높은 곳에 판각되어 걸려 있는 시의 현판은 석천 임억령(石川林億齡)의 작품이고 우측 것은 조자이(趙子以)의 작품이라고 했다.

 

 

 

環碧堂(환벽당)  林億齡(임억령)


烟氣兼雲氣(연기겸운기)

琴聲雜水聲(금성잡수성)

斜陽乘醉返(사양승취반)

沙路竹與鳴(사로죽여명)


연기의 기운인지 구름까지 겸했는지

거문고 소리인지 물소리가 섞이었는지

노을 사양길에 취객 태워 돌아가는 지

모래가의 대나무 가마소리 울리고 있네.


노송에 운애가 끼여 운치가 있고 멋있는 환벽당에서 재물을 쓸 곳에 쓸 줄 아는

김윤제가 후학들을 위하여 백일장을 열고, 볼거리, 먹을거리를 풍족히 준비하고,

선비들이 문장을 짓는 동안 풍악이 울리고 줄타기와 씨름의 묘기가 벌어지고

시문의 장원자, 입선자와 그 가족이 기분 좋아 한잔 걸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가마타고 피리 불며 돌아가는 길이 추억의 축제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環碧堂(환벽당) 

 

                       /   趙子以(조자이)


丞相故墟何處尋(승상고허하처심)

鳴陽縣郭瑞湖潯(명양현곽서호심)

淸名直節賢孫繼(청명직절현손계)

餘韻遺風過客欽(여운유풍과객흠)

環碧亭空新易主(환벽정공신이주)

棲霞堂在古猶今(서하당재고유금)

通家小子悲吟地(통가소자비음지)

老木寒波無限心(노목한파무한심)


승상께서 사신 옛터 어느 곳에 찾을런지

명양고을 서호 위에 그의 유적 남아 있네.

맑은 이름 곧은 절개 어진 자손 이어가고

남긴 여운 맑은 유풍 지난 손이 흠모하네.

비어있는 환벽정자 새 주인으로 바뀌었고

그 옛날의 서하당이 아직까지 건재하네.

통가하는 이 소자가 찾자 와서 읊조리니

늙은 나무 찬 물결에 이 마음이 설레이네.


옛날에 높은 벼슬을 하신 김윤제 정승께서 사시던 곳을 찾으려고 헤매니

햇볕 좋고 새소리 청아하고 상서로운 호수가 있는 마을에 아직도 남아있다.

정직하기로 소문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정을 주셨던 분이라

사람마다 그 분이 남겨놓은 좋은 영향과 높은 가르침을 잊지 않고 실천하였다.

그 분의 후손들은 보이지 않고 다른 가문의 사람으로 바뀌었으니 인간사 덧없구나?

그 분이 전성기 때 지은 정자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곳을 찾는 이마다 따뜻한 그 분의 정이 그리워 한 없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흐르는 세월의 한파에 나무건 인간이건 살아있는 생물은 영원할 수가 없음을 느낀다.


짝 마즌 늘근솔란 釣臺예 셰져두고

그 아래 배랄띄워 갈대로 더져두니

紅蓼花 白蘋洲어나 사이 디나관대

環碧堂 용의 소히 배 넌패 다핫나니


 위와 같이 한자와 우리의 고문으로 써져 있어 쉽게 알 수 없었다. 가이드는 낱말 하나하나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짝 마즌 : 짝이 맞은, 즉 한 쌍의

*조대(釣臺) : 낚시터

*홍료화(紅蓼花) : 붉은 여뀌꽃

*백빈주(白蘋洲) : 흰 마름꽃이 피어 있는 물속의 작은 섬


*용의 소히 : 성산의 승지(勝地)의 하나인 용추(龍湫)를 이름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에 세워 놓고,

그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니,

홍료화 백빈주를 어느 사이에 지났길래.

환벽당 용의 못이 뱃머리에 닿았구나.


    이곳 용소는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에 묘사한 아름다운 여름 풍경의 한곳이었다. 늙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뻗어나간 모습과 소나무 껍질은 영락없이 이무기의 비늘같이 보였다. 이 소나무가 있었기에 이곳을 용소(龍沼)라 하였다. 개울의 이름은 창계천이라고 하는데 큰 암반이 깔려있었다. 이곳이 바로 조대라고 했다. 이 시비의 뒷면에 조대(釣臺)라고 한자로 써 있었다. 이곳 용소는 김윤제와 정철이 만나게 된 일화가 있다.


 

                                                               다음 카페 <산그리고사람>    최영수 님의 글 중에서 발췌

 

 

 

 

 

중봉과 광주  시내 원경

 

 

 

 

말오줌때 열매( 일명 칠선주나무, 나도딱총나무) - 어린 순은 식용

 

 

 

 

꿀벌과 뱀무 - 비포장도로 바로 옆이라 먼지를 뒤집어 씀.

 

 

 

 

쇠서나물 꽃과 열매

 

 

 

 

눈개쑥부장이( 일명 눈개쑥부쟁이,큰털쑥부장이 ) - 관모는 붉은 빛

 

 

 

 

바디나물(일명 사약채) 등 산형과(傘形科) 식물의 씨앗 열매

 

 

 

 

산딸나무 열매  - 봄철에 꽃이 필 때, 나무잎이 십자가 모양으로 흰색 혹은 연한 분홍색을 띄어

                        자그만 꽃의 단점을 보완하여 멀리서도 쉽게 보이게 하여 벌나비 등의 매개곤충을 유인함.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십자형으로 배치된 잎의 반엽(斑葉)을 보고 십자가를 연상하여

                        성목(聖木)으로 숭배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혀 매달린 십자가도 이 산딸나무로

 

                         만든 것이라는 설화가 있으나, 그 당시 제가 십자가를 만들 나무를 직접 베어내지 않아서

                         확인되지 않음.

 

 

 

 

 중봉 진입로 근처 커브길에 있는 등산로 안내 표지판 - 반사경에 중봉 방송중겍ㅣ지가 보인다.

 

 

 

 

 

 

 

 

 

등산로 안내 표지판

 

 

 

 

버드생이나물 - 쑥부장이 보다 잎의 결각이 깊고 , 두상화서는 다수임.

                      윗 부분의 잎은 선상 피침형임.

 

 

 

 

중봉에서 중불재로 가는 도로에서 본  광주시내 원경

 

 

 

 

*풍암정: 광주광역시 충효동에 있는 풍암정(楓巖亭)은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15호이다.

 

    이 정자는 조선중기 김덕보(1571-1627)가 세웠다. 1614년(광해군6년)에 정홍명(鄭弘溟)이 쓴 풍암기(楓巖記)의 내용으로 미루어 1614년 이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풍암'이라는 명칭은 단풍과 바위가 이루어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김덕보의 자는 자룡(子龍), 호는 풍암(楓巖)으로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아우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큰형 덕홍(德弘)이 금산에서 순절하고 작은형 덕령(德齡)이 모함을 받아 죽자 이곳 원효 계곡에 정자를 짓고 시인 묵객들과 더불어 은둔생활을 하였다.

     임억령(林億齡), 고경명(高敬命), 이안눌(李安訥), 안방준(安邦俊), 등 많은 문인들이 여기에 시를 남겼다.  정자에는 풍암정사(楓巖亭舍) 현판과 여러 시인들의 시를 새긴 판각이 걸려 있다.

 

 

 

 


 漫詠(만영) 

 

                         /  金德普(김덕보)

 

 

 


 晩結楓崖屋數間 (만결풍애옥수간)

岩前脩竹後重蠻 (암전수죽후중만)

向陽簷牖三冬煖 (향양첨유삼동난)

臨水亭臺九夏寒 (임수정대구하한)

靈藥每從仙侶斲 (영약매종선려착)

好書時借野人看 (호서시차야인간)

棲身自有安間地 (서신자유안간지)

何用蓬壺海外山 (하용봉호해외산)


 늙은 나이에 단풍나무 우거진 언덕에 두어 간 정자를 지었다.

 앞은 바위와 대밭이 싱그럽고 뒤엔 첩첩 산이 병풍 치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 있으니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정자가 물가의 높은 곳에 자리 잡았으니 한더위에도 서늘하다.

 먹으면 늙지 않는 불로초를 일찍이 신선들이 캐려고 애를 써도

 좋은 책을 모두 벼슬을 모르는 사람들이 빌어다 다 읽는다 해도

 나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편안히 쉬고만 있을 것이라고 작정하니

 신선이 산다는 아름다운 바다와 산도 내게는 흥미를 끌지 않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묵객은 석천집(石川集)의 저서 임억령(石川 林億齡)은 서하당 김성원의 장인이며, 유서석록(遊瑞石錄)의 저서 제봉(霽峰)고경명(高敬命), 야담집인 동야휘집(東野彙輯)의 저서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은봉전서(隱峰全書)에 수록된 수많은 시문을 쓴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등이었다.


    풍암정(楓巖亭)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원효계곡(元曉溪谷)의 하류다. 계곡 가장 자리에 큰 바위 두 개가 10m 쯤 거리를 둔 곳에 3층으로 막돌로 축대를 쌓아 터를 만들었다. 위쪽의 센 물이 붙이지는 곳의 큰 바위는 축대가 허물어지지 않게 방파 역을 하고 아래 큰 바위는 축대의 끝으로 축대가 달아나지 않게 하는 역을 담당한다. 정자는 정면2칸 측면2칸으로 덤벙 기둥 받침돌 위에 두리기둥을 멋있게 배흘려 세웠다. 오른쪽 뒤에 좌우 1칸의 온돌방을 아담하게 만들었다. 방의 문은 4개를 2쪽씩 나누어 여름에는 들어 열수도 있고 열고 닫을 수도 있도록 하였다. 띠살문으로 꾸밈없이 문살을 만들었다. 정자의 중앙에는 특이하게도 팔각기둥이 서있고 마루는 판자마루로 여름을 거처하기 편하게 하였다.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椽燈天障)이고, 지붕은 옆에서 보면 팔작지붕이다. 담장은 아주 낮게  선비의 집임을 느낄 정도로  뒤편에만 기와를 얹었다. 무등산 원효사에서 시작된 물줄기를 계산(溪山)이라 한다. 그래서 시문학의 꽃을 피운 가사문학을 계산(溪山)풍류라고 한다.

 

 

 

 

중봉에서 중불재로 가는 도로에서 본 동남쪽 화순지방 원경

 

 

 

 

이고들빼기 꽃과 버드생이나물의 씨앗

 

 

 

 

비목나무 열매

 

 

 

 

루비알 보석같이 영롱한 - 비목나무 열매

 

 

 

 

비목나무 열매 - 양지성 식물,

                      산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색갈을 갖는 열매를 만나면

                      그 동안의 산행의 피로가 저 멀리 달아난다.

 

 

 

 

비목나무(일명 보안목) - 생강나무속,  가구재로 활용.

 

 

 

 

 

푼지나무

 

 

 

 

 

푼지나무  -  어린 잎은 식용, 나무는 땔감용.

                  가지에 기근(氣根)이 있어 바위 표면이나 노목 줄기에 기어 오르고

                  가지가 늘어지는 것도 있음.

 

 

 

 

드물게 나타나는 단풍나무

 

 

 

 

중불재로 가는 내리막 도로

 

 

 

 

무등산은 평야지대에 우뚝솟은 지형적 여건으로 바람이 센 탓인지

뒤에 있는 활엽수들의 나뭇잎들은 거의 떨어졌다.

 

 

 

 

900여 미터 고지에는 단풍나무의 색이 곱고.............

 

 

 

 

중봉에서 중불재 가는 길 옆 돌서덜의  자연석미륵불 돌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