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의 천년3.

2013. 11. 2. 01:08차 이야기

 

 

 

한국 차의 천년 3.

 

      

송재소, 유홍준, 정해렴, 조창록, 이규필
돌베개
2011년03월28일
신국판/440 쪽
ISBN 9788971994252 94810 , 9788971993408
555 28000 원
 
   내용소개   목차    보도자료   상세정보   독자서평       뒤로
 
이 책은 삼국시대와 고려 때 창작된 시문(詩文) 중에서 ‘한국의 차 문화’가 담겨 있는 다양한 옛글을 엄선하여 번역한 것이다. 2009년 6월에 조선 후기의 차 문화를 1, 2권으로 출간한 바 있다.
삼국시대는 사료가 남아 있는 것이 매우 드문데, 가야와 신라의 기록이 주를 이룬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기록들과 최치원의 『고운선생문집』, 『계원필경집』을 1차 자료로 하였다. 고려는 개인의 문집, 그리고 개인 문집 없이 『동문선』에만 실린 작품, 『고려사』 『고려도경』 등을 1차 자료로 하였다.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천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나라 고유의 차 문화에 관한 문헌 기록 자료를 집대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차시(茶詩)를 포함한 개인 문집의 자료,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의 관찬 사료(官撰史料)와 『동문선』 『임원경제지』, 『성호사설』, 『음청사』 등의 별집류(別集類)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자료까지 차에 관한 모든 문헌 자료를 망라할 계획이다.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을 펴내며
<삼국시대, 고려의 차 문화>를 엮어 내며
일러두기


◎ 삼국시대의 차 문화

    ▷ 백월산의 죽로차 / 고구려의 떡차 / 차의 재배 / 설총의 화왕계 / 가야의 차 풍속 / 충담사가 올린 차 / 오대산 우통수로 끓인 차 / 경덕왕이 월명사에게 하사한 품차
    ▷ 최치원(857∼?) : 무염 화상 비명 / 진감 화상 비명 / 유주의 이가거 태보에게 / 수주 장고에게 명함 / 운주의 경원심에게 명함 / 급료를 요청하는 글 / 새 차를 감사하는 편지



◎ 고려의 차 문화

    ▷ 다촌
    ▷ 김극기(?∼1209): 운주산 용장사 / 한송정 / 박금천
    ▷ 임춘(1148∼1186): 이유의가 다점에서 낮잠 자다 / 연화원 벽에 쓰다 / 겸 스님에게 차를 부쳐 보내다 / 겸 스님에게 장난삼아 쓴다 / 밀주에서 노닌 일을 쓴다 / 요혜가 양식을 베풀어 줌을 사례한다 / 족암기
    ▷ 이인로(1152∼1220): 승원의 차맷돌
    ▷ 이규보(1168∼1241): 영공의 화답을 받고 다시 차운하여 화답하다 / 천화사에 놀며 차를 마시고 동파의 시운을 쓰다 / 남쪽 사람이 보낸 철병으로 차를 끓여 보다 / 앵계에 거처를 정한 뒤 양 각교에게 주다 / 시후관에서 쉬면서 / 쌍령에서 자면서 / 팔월 이일 / 강가 마을에서 자다 / 다시 화답하다 / 또 화답하다 / 또 운을 나누다가 악 자 운을 얻다 / 덕연원에서 자고 화답하다 / 엄 선사를 찾다 / 찬 수좌의 방장에 쓰다 / 마령 객사에서 자다 / 임시로 천룡사에 살면서 짓다 / 보광사에서 자다 / 또 절구 여섯 수에 차운하다 / 또 「새로 초가집을 빌리다」에 차운하다 / 괴로운 비 / 문 장로의 화답시에 받들어 올리다 / 박공과 동래 욕탕지로 떠나려 하면서 입으로 부르다 / 운봉에 있는 규 선사께 / 다시 앞의 운자를 써서 보내다 / 다시 운을 따라 화답하다 / 손한장이 다시 화답하기에 차운하여 부치다 / 장원 방연보가 화답시를 보내왔기에 차운하여 답하다 / 구품사에서 놀다가 날이 저물다 / 차맷돌을 준 사람에게 감사하다 / 안화사 당 선사를 찾다 / 유 시랑 집에서 술을 마시고 / 유 시랑이 화답시를 보고 찾아오다 / 천마산에서 노닐며 / 잠시 감불사에서 놀다가 주지인 늙은 비구에게 주다 / 일암거사 정분이 차를 보내준 데 감사하며 / 엄 스님을 찾다 / 남행 일기
    ▷ 백비화(1180∼1224): 속명사에 이르러 / 차운하여 봉서사에 적다
    ▷ 이승휴(1224∼1300): 진 시랑의 고시에 차운하여 올리다
    ▷ 홍간(?∼1304): 김둔촌의 사계절 시에 화답하여
    ▷ 안축(1282∼1348): 삼척의 서루 팔영 / 한송정에 쓰다
    ▷ 이제현(1287∼1367): 우연히 쓰다 / 송광 화상이 새로 난 차를 부쳐 주다 / 묘련사 석지조기
    ▷ 민사평(1295∼1359): 금강산 유람을 떠나는 선주 총법사를 보내며
    ▷ 이곡(1298∼1351): 음주시 한 수를 백화보, 우덕린과 함께 짓다 / 홍 합포가 귤과 차를 부쳐 준 것을 감사하다 / 강릉 객사의 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 흥해현 객사에 쓴다 / 동유기
    ▷ 정포(1309∼1345): 스님에게 차를 부탁하다
    ▷ 이집(1327∼1387): 김구용의 시에 차운하다
    ▷ 이색(1328∼1396): 중강의 시에 차운하다 / 눈 온 뒤에 다시 중강의 운을 사용하다 / 가을날에 회포를 쓰다 / 수안 방장에서 / 봉산 십이영 / 행점 가는 길에 눈보라가 치다 / 차를 끓이며 / 눈 / 앞의 운을 사용하여 읊다 / 차를 마신 뒤 짤막하게 읊다 / 한적한 삶을 읊다 / 아침에 읊다 / 감로사를 그리워하다 / 회포를 서술하다 / 느지막이 일어나 / 가랑눈 / 송광사의 화상이 차와 부채를 보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답하다 / 즉흥시 / 눈 / 담 선사의 편지와 차를 얻다 / 무열을 그리워하여 / 정 정당을 뵙고 문병하니 정공이 차를 내오다 / 홍수겸 상서가 방문하다 / 느낌이 있어 / 가지사 영공이 차를 선사하다 / 부목 화상이 차를 부쳐 주다 / 등암사에서 감로사로 와 묵은 일을 기억하다 / 하 안부가 차와 포를 부쳐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다 / 행재 선사가 차를 부쳐 준 데 대하여 답하다 / 당제 이우량이 보낸 편지와 찻잔 한 쌍을 얻고서 / 일을 기록하다 / 유두회에 대하여 읊다 / 보제사에 들어가 나잔자를 뵙고 차를 마시다 / 홍시가 / 뜨거운 물로 차를 우리다 / 인우에게서 편지와 차를 받고서 / 나잔자에게서 차를 얻어 오게 하고 / 나잔자가 차를 보내왔으므로 / 물 끓이는 소리를 듣다 / 광평 시중께서 산수화 병풍 시를 청하기에 / 늦게 돌아오는 말 위에서 / 한유항과 곡성부원군의 초청을 받고 / 김 안렴사가 보낸 차가 마침 도착했기에 / 운암 존자가 차를 보내다 / 서쪽에 사는 이웃이 염주를 선물했기에 찾아뵙고 사례하다 / 술 취해 돌아오다 / 밀양군 박공 집에서 차를 마시고 돌아오다 / 화엄도실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 총지사 도대 선사에게 보내다 / 홀로 앉아 읊다 / 군수 이공이 찾아온 것을 감사하며 / 한 문경공 묘지명
    ▷ 원천석(1330∼?): 금주령이 내렸는데 제호로 소리 들린다 / 굉 스님에게 보낸다 / 선옹이 화답시를 보내왔기에 다시 차운하다 / 가형과 원서곡이 화답시를 보내왔기에 다시 두 수를 쓰다 / 눈을 보고. 소경 원립에게 부치다 / 원적암 / 만세당 당두께 올리다 / 도경 선옹이 지은 「산속 지독한 추위」 시에 차운함 / 단옷날 빙정 아우에게 / 헌납 송우의 시운에 차운하다 / 아우 이사백이 차 보내 줌을 감사한다 / 갑술년 새해에
    ▷ 정추(1333∼1382): 청풍 객사 한벽헌에서 문절공 주열의 운을 따서 / 심 내사에게 주어 혜총 장로와 동로에게 세 번째 화답하다 / 유점사(원나라로부터 사액을 받은 대보덕 수성사) / 암둔이 서울로 돌아와 시를 지어 부쳤기에 차운하여 보내다
    ▷ 한수(1333∼1384): 경상도 안렴사가 햇차를 부치다(앞의 운을 다시 써서) / 엄광 대선사가 아차를 부쳐 주다
    ▷ 김구용(1337∼1384): 달가에게 보내다 / 산사에서 둔촌 이집의 거처를 찾아가다 / 술 취한 뒤 운을 따라 적다
    ▷ 정몽주(1337∼1391): 윤주를 바라보며 / 『주역』을 읽고 / 돌솥에 차를 달이며
    ▷ 성석린(1338∼1423): 계융 스님의 시에 차운하다 / 경상도 관찰사가 차와 물고기를 보내왔기에 사례하다 / 기우자에게 부치다 / 이행이 보내온 송이버섯과 차싹을 받고 / 동곡을 맞이하다
    ▷ 이첨(1345∼1405): 김 비서감의 시골집을 찾아가다 / 눈 녹인 물로 차를 달이다
    ▷ 조준(1346∼1405): 달 아래서 남 정당에게 부치다 / 스님이 차를 보냄에 사례하다
    ▷ 이숭인(1347∼1391): 남악 총 선사의 방에 적다 / 민망의 시에 차운하다 / 섣달 그믐밤 옛사람의 운자를 써서 / 유 지군이 차를 보내 준 것에 사례한다 / 옛일을 생각하여 은봉 선사에게 부치다 / 여태허가 좨주에게 화답한 시에 차운하다 / 실주 주사에게 차를 올리며 / 차 한 봉지와 안화사의 샘물 한 병을 삼봉에게 주며 / 신효사 담 스님의 방에 적다 / 백 안렴사가 차를 보내왔기에 / 신효사 조사의 방에 적다
    ▷ 이행(1352∼1432): 유사척록
    ▷ 길재(1353∼1419): 산가서
    ▷ 정총(1358∼1397): 장의사 주도 대사 총공에게 주다 / 안화사 천택 스님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해 벽에 적고 오다 / 붓 가는 대로 / 병이 들어 동방에 우거하며
    ▷ 이종학(1361∼1392): 즉흥시 / 밤에 앉아 / 남 선생의 행차가 청주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 『동문선』(東文選): 화암사 구름다리(백문절, ?∼1282) / 박충좌가 차를 보내 준 것에 사례하다(이연종, ?∼?) / 어은의 시를 차운하여(권흥, ?∼?) / 유가사(김지대, 1190∼1266) / 용혈 대존숙의 방에 부치다(김서, ?∼1284) / 최성지가 차와 종이를 보내왔기에(홍약, ?∼?) / 가야사 주지 노스님의 시를 차운하여(유숙, 1324∼1368) / 보문사(이수, ?∼?) / 청연각에서 두 봉지 용봉차를 몸소 내려 주다(곽여, 1058∼1130) / 행산 박전지 댁에서 짓다(홍규, ?∼1316) / 벗이 차를 보내왔기에 사례하다(권사복, ?∼?) / 청연각기(김연, ?∼?) / 행학기(김수자, ?∼?)
    ▷ 『고려사』(高麗史) 외: 『고려사』  「세가」 / 『고려사』 「열전」 / 『고려사』 「지」 / 『고려사절요』 / 『고려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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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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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글을 통해 천년의 차 문화를 만나다


한국에 차가 전래된 것은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인도 공주 허황옥부터라는 설이 있을 만큼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차와 관련한 오랜 문화적 전통은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에 공통된 것으로, 한자와 유교, 선종 계통의 불교와 함께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을 이해하는 주요한 코드이다.
한국에서의 차 문화 관련 문헌 자료의 정리와 소개는 일부 애호가들의 손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때문에 전문 연구자들이 이용하기에는 내용이 소략하거나 부정확한 경우가 많고,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접하기에도 힘들었다.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은 한문 고전에 익숙한 전문 연구자들이 관련 문헌을 폭넓게 정리하고 번역했다. 삼국시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한국의 차 관련 문헌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번역함으로써 차 문화 연구의 기초 자료는 물론 일반인들의 한국 차 문화 이해에 기여할 것이다.



※ 천년의 차 문화를 연 삼국시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시초는 삼국시대라고 추정된다. 삼국시대는 전하는 문헌이 매우 적지만, 당시에 기록된 문헌과 후대인이 삼국시대에 관해 기록한 문헌들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조선불교통사』는 한말의 학자 이능화가 편찬한 것인데, 이 책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순도(順道)의 입국으로부터 시작하여 1917년까지의 한국 불교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김해의 백월산에는 죽로차(竹露茶)가 있는데,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許黃玉)이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로 재배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인 학자 아오키 마사루(1887~1964)는 그의 책에서 고구려 옛무덤에서 나온 작고 얇은 떡차를 표본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떡차에 관해서도 자세히 적었는데, 지름이 4센티 남짓의 엽전 모양이고, 무게는 5푼 가량이 된다고 한다. 전남의 청태전과 유사한 것이었다고 짐작된다.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 김대렴이 중국 당나라에서 차의 씨앗을 가져다 지리산 인근에서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차 문화의 시작은 선덕여왕 때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흥덕왕 대에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관찬사료에서 전하는 가장 확실한 기록은 아마도 이것일 텐데, 당시 견당유학생이었던 최치원 또한 오랜 기간 당나라에서 지냈으므로, 귀국 무렵 수준 높은 당나라의 차 문화를 신라로 들여왔으리라 짐작된다. 최치원의 글에는 차를 선물하거나, 새 차를 보내준 데 대해 감사한다는 등의 글이 자주 보인다. 차를 마시는 문화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자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 융성한 불교문화가 꽃피운 고려의 차 문화


차 문화가 발달하게 된 데에는 불교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다. 삼국시대를 이어 고려는 불교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기였다. 경남의 화계와 밀양, 전남의 광양과 순천 등 주요한 차의 산지가 대부분 사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경내에 따로 다헌(茶軒)을 마련하거나 공양을 위해 인근에 차밭을 가꾸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통도사 인근에는 전문적으로 차를 만들어 바치던 다소촌(茶所村)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전남 장흥의 보림사에는 아직도 차밭이 남아 있어서, 차 문화와 불교문화의 밀접한 관련을 엿볼 수 있다.
문인들이 스님들과 교유하며 차를 주고받는 모습이 시문을 통해 자주 보이는데, 임춘은 겸 스님에게 몽산차와 자순차를 보낸다는 시를 썼고, 이인로는 절에서 말차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차 맷돌을 돌리는 모습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규보는 절에서 스님과 차를 마시는 풍경을 여러 편의 시로 남겼다. 불교문화의 융성과 함께 차 문화 또한 불가에서 가장 융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에서 들여오는 차 외에 국내에서 재배하던 차는 대부분 각 지방의 절에서 재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문인들이 차를 얻는 방법은 중국에서 차를 들여오거나 아는 스님을 통해 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이 여러 편의 글 속에서 발견된다.
고려 때는 왕이 몸소 차밭을 일구었다는 기록이 『고려사』 「열전」에 나오고, 고려 의종 21년에는 왕이 귀법사에 거둥하였다가 말을 달려 달령(獺嶺)의 다원(茶院)에 도착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국가 간의 예물로도 차가 쓰여, 송(宋)에서 고려로 혹은 고려에서 요(遼)와 금(金)으로 차를 보낸 기록들이 보인다.


※ 차 문화의 일반화와 상업화

차 문화가 백성들에게도 일반화되고 상업적으로 유통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의 다방처럼 고려 때는 다점(茶店)이 있었다. 임춘이 쓴 시 중에 「이유의가 다점에서 낮잠 자다」라는 시가 바로 그것! 김극기의 시 「박금천」을 보면 찻물을 길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온종일 떠들썩한 모습을 읊었다. 다점이 성행하고, 좋은 찻물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 당시 차 문화가 얼마나 일상생활에 가까웠는지 짐작이 간다.

        한 줄기 빠른 내가 비로소 근원을 발한 곳은
        인가가 끊어진 유산(乳山)의 뿌리.
        달고 서늘한 맛이 차 달이기에 알맞아
        괴롭게도 도성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길어가는구나.

        한 줄기 시내 어디서부터 근원하였나
        유산 아래 흰 바위라네.
        차를 달이느라 곳곳의 사람들이 길어가니
        오고 가는 사람들로 온종일 떠들썩하네.
        <김극기, 「박금천」(薄金川)>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박금천은 평양부 북쪽 9리에 있는 내의 이름이다. 또한 고려의 차시에는 용봉차, 몽산차, 자순차 등 중국의 명차와 육우, 노동, 왕몽 등 유명한 다인(茶人)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또한 번성했던 차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 그들은 정적(政敵)이기 이전에 다인(茶人)이었다

여말선초, 고려와 조선 사이에서 충절과 변절의 길을 걸었던 이들! 정몽주, 이숭인, 정도전 등의 문인들도 격변기의 정적이기 이전에 소탈한 다인(茶人)이었다. 정답게 차를 나누던 이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사이로 돌아서는 모습은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절의의 충신 정몽주는 늘그막 돌솥에 차를 달이는 호젓한 모습을 시로 읊었다.

        늙은 서생은 나라 위해 할 일 없어
        습관처럼 차 마시며 세상에는 마음이 없네.
        바람 불고 눈 오는 밤 한적한 집에 홀로 누워
        돌솥에서 나는 솔바람 소리 듣기를 좋아하노라
        <정몽주, 「돌솥에 차를 달이며」>

이색은 그의 시에서 차의 효용에 대해 읊었는데, 차를 마시면 몸속의 열이 내려가고 나쁜 기운이 씻기며, 눈까지 맑아진다고 말하고 있다(이색, 「뜨거운 물로 차를 우리다」). 이외에도 이색은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여러 편의 시로 남기고 있다.
이숭인은 정도전에게 차 끓일 샘물 한 병과 차 한 봉지를 보내며 그 내용을 시로 읊었다.

        숭산(崧山) 바위틈을 굽이굽이 흐르는 작은 샘
        솔뿌리 얽힌 곳에서 솟아난 것이라오.
        오사모(烏紗帽) 쓰고 독서하는 맑은 낮 따분할 제
        돌솥에서 찻물 끓는 소리 좋이 들으시구려.
        <이숭인, 「차 한 봉지와 안화사 샘물 한 병을 삼봉에게 주며」>

삼봉 정도전은 조선의 개국을 도왔던 인물이다. 오사모 쓰고 독서하는 이는 바로 정도전으로, 이숭인은 정도전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차 선물을 했다. 훗날 정도전은 이숭인을 정몽주의 일당으로 몰아 심복을 보내 살해하지만, 그 전에는 이렇게 차와 찻물을 나누던 다인이었다.


※ 이 책의 구성

   _ 이 책은 삼국시대와 고려의 차 관련 문헌을 엄선, 번역한 것이다.

   _ 작품의 수록 순서는 저자의 생년을 기준으로 하였다. 단 『동문선』과 『고려사』의 기록은 별도로 장을 마련했는데, 『동문선』에 수록된 시들은 개인 문집이 없는 경우이다.

   _ 권말에 인명사전과 서명사전 항목을 마련하여, 중요하게 거론되는 사람과 책의 경우 설명을 따로 하였다.

   _ 가야와 신라, 그리고 고려의 다기(茶器) 유물 사진을 수록하여, 차 문화의 이해를 도왔다.

   _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은 전6권으로 간행될 예정이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1.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시
       2.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산문
       3. 삼국시대․고려의 차 문화
       4. 조선 전기 및 중기의 차 문화(근간)
       5. 조선 말기 및 근대의 차 문화(근간)
       6. 승려의 차 문화(근간)


▶ 역자 소개

송재소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유홍준 - 전 문화재청장,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정해렴 - 현대실학사 대표
조창록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이규필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총서사항
한국의 차 문화 천년 3
분야/시리즈
고전, 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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