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령 대가야 박물관 참관기

2013. 5. 15. 00:38여행 이야기

 

 

   지난 달 10월 3일(일요일)에는 경북 고령에 있는 대가야 박물관을 참관하고 가야산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기저국(己低國), 불사국(不斯國),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변진접도국(弁辰接途國),

 

근기국(勤耆國),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 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 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

 

염해국(苒亥國), 변진반로국(弁辰半路國), 변악노국(弁樂奴國),  군미국(軍彌國), 변군미국(弁軍彌國),

 

변진미오야마국(弁辰彌烏耶馬國), 여담국(如湛國),  변진감로국(弁辰甘路國), 호로국(戶路國),

 

주선국(州鮮國),  마연국(馬延國), 변진구야국(弁辰狗耶國),  변진주조마국(弁辰走漕馬國),

 

변진안야국(弁辰安耶國),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  사로국(斯盧國), 우중국(優中國)......

 

 

   이상의 복잡한 듯하고,우리들이 흔히 듣고 보지를 못하였던 24개국의 나라 이름들이

 

진수(陳壽)의 <삼국지>-삼한전-에 나타나는 신라.가라.백제 등의 후삼한 강역 70여 개국 중

 

진한(辰韓)과 변진(弁辰)에 속한 나라 이름들이다.

 

 

 

    <문헌비고>에 " 대가야(大伽倻)는 지금의 고령(高靈), 소가야(小伽倻)는 지금의 고성(,固城),

 

고령가야(古寧伽倻)는 지금의 함령(咸寧), 아라가야(阿羅伽倻)는 지금의 함안(咸安),  성산가야

 

(星山伽倻 : 일명 벽진가야 碧珍伽倻)는 지금의 경산(京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는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에서 .....변진고순시는 곧 고령가야(고링가라)이니,

 

함창 공갈못의 공갈은 고링가라의 와전인 듯하며,공갈못은 고링가라국의 못이다. 변진안야는 곧 아라가야

 

(아라가라)니, 아라는 함안(咸安) 북강(北江)의 옛 이름인 듯하다. <삼국사기>-지리지-의 같이 사용하는

 

글자에 의거하여, 진(珍).미(彌).매(買) 3자를 다 <메>로 읽어야 하니, 성산(星山)은 <별메>의 뜻이고,

 

벽진(碧珍)은 <별메>의 음인 데, 반로(半路)는 곧 별이니 변진반로(弁辰半路)는 성산가야(星山伽倻)이다.

 

  이상의 것에다 이미 서술한 미오야마(임나) 즉 지금 고령과 구야(가라) 지금 김해와 고자미동(구지미지)를

 

합하여 6가야라고 칭하였다......... 라고 풀이 하였다.

 

 

  이렇 듯이 각 사료 마다 여러 가야국을 지칭하는 나라 이름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이들 사료들이

 

편찬될 당시에 한글이 창제되지 못하고 한자를 이두문 식으로 차용하여 사용하였던 연유로

 

어떤 것은 그 음(音)으로 어떠한 것은 그 뜻(訓)으로 표기. 해석한 데에 따르는 혼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재 선생님께서는 1910년 5월 중순 어느 날 압록강을 기차로 건너면서 안정복 선생님의 후손들에게서

 

빌린 동사강목(東史綱目) 한 질만을 가지고 상해로 독립운동을 하려 떠나셨다는 일화가 있다.

 

그 분의 역사정론이 아니었으면 일제식민지하에서 양성된 소위 관학파들의 역사 왜곡을 후대에서

 

바로 잡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올해인 2010년은 단재 선생님께서 상해로

 

떠나신지 꼭 백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천안함 사태, G 20등의 국내외 사건과 행사로 인하여

 

그를 기리는 어떠한 행사도 찾아 볼 수 없다.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    각설하옵고 대가야박물관에서 촬영한 몇 장의 사진으로 참관기를 대신 하고져 하옵니다.  ..........

 

 

 

 

철의 강국 대가야 : 야로 일대에서 철의 제련 시설이 있었다고 함.

 

 

 

석기를 만드는 모식도

 

 

철의 가공품 만들기 전단계의 중간 제품 : 현재에도 철을 잘 다루는 국가가 강대국이며, 정보화사회라고는 하나, 역사시대로

볼 때에는 철기시대의 연장선에 있다.인류가 철을 사용한 것은 지역, 민족에 따라서 달리하나 이제 겨우 2천~4천년 밖에는

되지 않았다. 석기시대 1만~3만년에 비해서는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이다.

 

 

 

 가야 토기

 

 

철제 말 등자

 

 

철제 마갑(馬甲) 부분 출토품

 

 

대가야 기병의 모형

 

 

철제 갑옷 출토품

 

 

철의 극세 가공 기술

 

 

고기잡이에 사용된 그물 : 베드로도 전직 어부였다.

 

 

반룡사 다층석탑

 

 

고령의 옛지도

 

 

박물관 옥상 중정의 벽면화

 

 

가야 통치자들의 복식

 

 

순장의 유형 : 순장자의 인권과 생명권을 당시에는 무시하였을까?

 

 

대가야 지산동 고분군 모형

 

 

대가야 지산동 고분군의 모형 전시실

 

 

 

박물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 해치상

 

 

출처 : 백담 그 시절...
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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