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26. 11:52ㆍ詩
春夜喜雨 춘야희우
- 두보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나니
봄이면 초목이 싹트고 자란다
봄비는 바람따라 몰래 밤에 들어
가는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신다.
들길도 구름도 모두 어두운 밤
강가에 배만이 홀로 불 밝혔네
새벽녁 붉게 젖은 곳 보노라면
금관성에 꽃이 활짝 피었으리니.
좋은 비 시절을 알아 好雨知時節
봄이 되니 곧 내리기 시작한다 當春乃發生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 隨風潛入夜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신다 潤物細無聲
들판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 野徑雲俱黑
강 위에 뜬 배의 불만이 밝다 江船火燭明
새벽녘 분홍빛 비에 적은 곳 보니 曉看紅濕處
금관성에 꽃들 활짝 피었네 花重錦官城
* 이 ‘낯선’ 번역은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이병한 교수의 것이다.(『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민음사, 2000, 32면)
어느 노학자는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로 번역한 바 있다. 험잡기 같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내리는’이라는 표현은 사려 깊지 않은 것 같다. 시방 시에서 화자는 새벽녘에 일어나 밤 새 내린 비에
젖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 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견해가 있다고 한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리니 만물이 생기를 얻게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 것으로 농민들의 마음을 대신한 것이라는 설과, 때맞춰 내린 비에 금관성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날
것이니 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라는 향락적인 기대감을 적은 것이라는 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둘이 어찌 별개의 다른 견해이겠는가.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대로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한 사랑 노래」중에서) 말이다.
여하튼 이 시는 ‘밤-새벽’이라는 시간, ‘들-강’이라는 공간, ‘어둡고 밝은’ 색채의 대비를 전면에 내세워 ‘기쁨[喜]’을 묘사하고 있는데, 기분이 경박하게 달떠 있지 않고 차분해서 좋다. “어젯밤 송당에 비 내려 /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 자던 새 둥지를 뜨지 않았네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고려 시대 시인 고조기高兆基의 「산장우야山莊雨夜」)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
그런데 다른 데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겠는데, 마지막 구절이 실로 어렵고도 어렵다.
“금관성에 꽃들 활짝 피었네”의 원문은 ‘花重錦官城’이다. ‘금관성’을 빼면 ‘화중’만 남는다. ‘꽃들 활짝 피었네’는 사실 『두시언해杜詩諺解』의 ‘고지 해 폣도다’의 직역이므로(‘해’는 ‘많이’의 고어다.) 이 부분 번역의 저작권은 두시의 언해에 참여한 옛 문인학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의역을 감행하였던 것 같다. 이 부분을 황동규 시인은 “꽃이 금관성을 짓누르다”로 해석했다고 한다. 역시 시인다운 상상력이다. ‘활짝’이나 ‘많이’가 지닌 육체적이고 물량적인 해석과는 다른 층위다. 그러나 너무 앞서 간 게 아닐까?
‘화중’은 글자 그대로 ‘꽃이 무겁다’는 뜻이다. 밤새 비를 온몸으로 맞았을 테니 무거워 고개 숙일 만하다. 실제 ‘화중’은 큰 사전을 보면, ‘비를 흠뻑 머금은 꽃’이란 뜻이기도 하다. 이 축자 해석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밤새 비 맞아 고개 숙였다고 슬프다니, 고민스럽다니 하는 식의 촌스러운 상상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위의 “자던 새 둥지를 뜨지 않았네”의 정서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새들은 밤새 내린 봄비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너무 작위적인가?
달리 볼 길은 없을까? 이렇게 답답할 때 상식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重’은 무겁기도 하지만 거듭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중복이다. 금관성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단[錦]을 그 이름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봄비마저 내렸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그래서 ‘화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역시 너무 초보적인 상상인가?
그렇다면 시인들이여,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석일까? 아니면 이 모든 해석을 다 포함한 다중성을 이 시 한편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각자 생각해 보고 가장 좋은 번역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춘야희우(春夜喜雨)
됴 비 時節(시절)을 아니,
보 當(당)야 베퍼 나게 놋다.
조차 마니 바 드니
物(물)을 저져 라 소리 업도다.
해 길헨 구루미 다 어듭고,
옌 브리 오아 도다.
새배 불근 저즌 보니,
錦官城(금관성)에 고지 해 폣도다.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野經雲俱黑
江船火獨明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시어, 시구 풀이]
됴 비 : 좋은 비[甘雨]
베퍼 : 베풀어
놋다 : 하는구나
조차 : 따라
물(物)을 : 만물을
저져 : 적시어
라 : 가늘어서
해 : 들에
길헨 : 길에는
옌 : 배에는
오아 : 홀로
새배 : 새벽
불근 : 붉은
해 : 많이
폣도다 : 피었도다. 피었을 것이다
[전문 풀이]
좋은 비는 그 내릴 시절을 알고 있나니
봄이 되면 내려서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구나.
비는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내리나니
사물을 적시거늘 가늘어서 소리가 없도다.
들길은 낮게 드리운 구름과 함께 캄캄하고
강 위에 떠 있는 배의 고기잡이 불만 밝게 보인다.
날 밝으면 붉게 비에 젖어 잇는 곳을 보게 되리니
금성관에 만발한 꽃들도 함초롬히 비에 젖어 있으리라.
[핵심 정리]
지은이 - 두보(杜甫, 712-770) 당(唐)의 시인.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린다. 생애의 대부분을 방랑 생활로 지낸 불우한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애가 넘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갈래 - 오언율시(五言律詩)
표현 - 선경후정(先景後情)
제재 - 봄비
주제 - 비 내리는 봄밤의 포근함
출전 -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 중간본 권 12 · 24
▶ 작품 해설
이 시는 작가 49~50세에 청뚜에서 지은 작품이다. 봄날의 반가운 비를 제재로 하여 봄날 밤의 서정을 나타낸 시로서, 섬세한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짜여 있다.
수련(首聯)에서는 봄의 서경을, 함련(頷聯)에서는 봄을 맞아 만물이 소생함을 통하여 서정을 나타냈으며, 경련에서는 ‘두루미 어둡고’로써 현실적 감정을 ‘보리 오아 도다’로서 내일에의 희망을 나타내어 대조적 이미지로써 표현하였고, 미련에서는 미래에의 밝은 희망을 감각적․상징적 수법으로 나타냈다.
전쟁 중에서도 계절의 질서는 잊지 않고 찾아와 너무 반갑고 기쁘다. 좋은 시절의 비는 만물을 생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고단한 자신의 심정을 달래 주는 한숨과 같은 구실까지 하고 있다.
<참고> 두보의 문학관과 두보 문학의 의의
그의 시는 전란 시대의 어두운 사회상을 반영하여 사회악에 대한 풍자가 뛰어나며 만년의 작품은 애수에 찬 것이 특징이다. 형식적 기교에 뛰어나고 유교적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시성(詩聖)이었다. 한유(韓愈), 백거이(白居易) 등 한시(漢詩)의 대가(大家)들에게 선구적 입지를 인정받고 1,400여 편 이상의 수작을 남겼다
***** [스크랩]호우시절 - 봄날은 갔지만 행복은 온다......
▲ 심사정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1735년. 비단에 먹.
153.2×61㎝. 국립중앙박물관
봄 가뭄이 극심하다. 푸석거리는 대지 위로 흙먼지만이 풀풀 날린다. 싱싱하게 세상을 향해 내달리던 여린 새싹들이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성장을 멈추었다. 올봄도 헐벗음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배가 고픈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서보지만 거기도 가물기는 마찬가지여서 주린 배를 채우기는 여의치 않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반가운 비가 내렸다. 행여 고단한 잠을 깨울까 봐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들어와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비는 더 오려는 듯 새벽 들판의 오솔길은 아직도 어둑어둑하다.
흐린 구름 사이로 강 위에 뜬 배의 등불만이 반짝거린다. 새벽이 걷히면서 보니 밤새 내린 비로 촉촉해진 붉은 꽃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다. 뭐라 언질을 해준 것도 아닌데 시절을 알고 내려준 봄비가 더없이 고맙고 기쁘다. 금관성은 쓰촨(四川)성의 수도인 청두(成都)의 별칭이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712~770)가 가뭄 끝에 내린 반가운 비를 보고 그 감흥을 노래했다. 이 시가 특히 가슴에 와닿은 이유는 두보의 시이기 때문이다. 두보는 생애의 대부분을 객지를 떠돌며 살았는데 평생 배고픔 속에서 병마와 씨름하며 시를 지었다.
가장이 집을 비운 사이 사랑하는 아들은 굶어 죽었다. 중국 문학사에는 시로 이름난 사람이 별처럼 많지만 두보의 시가 특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공감을 얻는 것은, 그의 시 속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힘 없는 민초들의 직접적인 아픔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春夜喜雨(춘야희우)’ 또한 봄밤에 내리는 비를 보고 제3자적 입장에서 얄팍한 감상을 읊은 시가 아니다. 비가 대지를 적시자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옆에 있는 사람을 와락 껴안고 싶은 반가움이 담겨 있는 시다. 허기를 채워주는 시다.
강가에 배가 있는 풍경인 줄 알았더니
‘춘야희우’에는 봄, 밤, 비, 들판, 오솔길, 구름, 강, 배, 등불, 꽃 등의 시어(詩語)가 담겨 있다. 이 시어로 빚어낸 봄날 새벽의 풍경을 화가는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해냈을까.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는 두보의 ‘춘야희우’ 중 ‘들판의 오솔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등불만 비추네’라는 시구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그림은 전경·중경·후경이 지그재그로 구성되어 변화와 깊이가 느껴진다. 전경의 언덕에는 종류가 다른 나무들을 여러 그루 배치했고, 중경에는 버드나무 아래 사공이 탄 배를, 후경의 원산(遠山)에는 미점(米點)을 찍어 습윤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는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에서 명대(明代)의 오파(吳派)로 이어지는 남종화풍(南宗畵風)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담백한 필치의 구성과, 농묵(濃墨)과 담묵(淡墨)이 빚어내는 조화로운 화면은 심사정이 조선 후기에 남종화의 대가로 인정받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림은 ‘반가운 비’를 그렸음에도 반가운 기색이 전혀 없다. 어둠 때문에 아직 은밀한 밤비의 방문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사공은 새벽부터 손님을 기다리느라 배에서 졸고 있다. 억지로 졸음을 참으며 꾸벅거리는 사공의 어깨 위로 무거운 구름이 내려 앉았다.
그 풍경이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하다. 사공 뒤에서는 새벽안개가 산과 마을의 이음새를 덮은 채 구름 속으로 잦아든다. 늙은 바람을 따라 밤에 몰래 들어온 봄비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잠시 후 어둠이 걷히고 나면 붉게 젖어 있는 꽃으로 드러나리라. 드러나면 알게 되리. 간밤에 내린 비가 꽃과 나무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그림의 주제가 된 시구는 화면 맨 위에 적혀 있다. 시구를 무시하고 그림만 보게 되면 ‘밤에 강가에 배를 대다’라는 뜻의 ‘江上夜泊(강상야박)’이라는 그림 제목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그림 속에 시구를 적어 놓은 이상, 그림 제목을 ‘강상야박’이 아닌 ‘춘야희우’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춘야희우’라는 제목을 붙였을 경우, 그것이 두보의 시인 줄 아는 사람은 시 전체가 주는 울림을 떠올리며 그림을 볼 것이다. 두보의 시인 줄 모르는 사람은 강가에 배가 있는 풍경인데 왜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서 시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이래저래 시와 그림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제목이 좋지 않겠는가.
누구의 가슴에 봄비처럼 스며들까
허진호 감독이 만든 한·중 합작 영화 중에 ‘호우시절(好雨時節)’이 있다. 정우성과 가오위안위안(高圓圓)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두보초당(杜甫草堂)이 있는 쓰촨성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애잔한 사랑을 그렸다.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다시 그 사람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옛사랑을 희미한 기억 속에 덮어두고 사는 연인들에게 그렇게 묻는 영화다.
영화는 쓰촨 대지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주인공이 두보초당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내용인데 배경만 두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영화 제목 또한 두보의 ‘춘야희우’의 첫 구절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에서 따왔다.
여기서 ‘호우(好雨)’는 장대비를 뜻하는 ‘집중호우(集中豪雨)’와는 다르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만물을 적셔주는 조용하고 수줍은 봄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가슴에 ‘호우(好雨)’처럼 살포시 젖어들어야 한다.
‘호우(豪雨)’처럼 작달비로 마구 퍼부으면 부담스럽다. 봄이 되니 반가운 비가 시절을 알아 내리는 것처럼 우리들의 사랑도 봄비처럼 팍팍한 가슴을 적셔 주었으면 좋겠다. 심사정의 ‘강상야박도’ 또한 호우(好雨)처럼 슬그머니 우리의 가슴속에 스며드는 작품이다.
두보의 시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심사정의 그림으로 환생했다면, 천삼백 년이 흐른 뒤에는 남녀간의 사랑을 얘기하는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다음에는 어떤 사람의 가슴에 비를 뿌려 꽃을 피울까. 누구의 가슴속에 봄비처럼 스며들어 피리를 불고 춤을 추게 할까
- [출처] 그림 시에 빠지다 1회 ~ 10회 [조정육]|작성자 ohyh45
조정육 :주간 조선 연재물 <행복한 그림 읽기>의 저자
春夜喜雨(춘야희우): 봄 밤을 적시는 단비
두보의 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절제되어 있다.
杜甫(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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