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여자 / 김명서

2014. 4. 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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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서 09.04.19 18:39 주소추가  수신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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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 속의 여자  

 

                                          /    김 명 서


 

봄에는 죽은 나무도 몸을 일으킨다

 

어두운 숲 그늘처럼

차고 습한 몸  

겹겹이 수의를 입은 듯

눕는다

눕는다는 것은 절규마저 잠재운다는 것이다

 

새벽의 박명을 꽝꽝 못질하는 신음소리

비애로 쌓이면

툭툭 모세혈관 터진

그 자리에 시퍼런 무늬로 음각되는 멍

 

진통제는 질 나쁜 비유처럼

아무것도 채우지도 품지도 못한다

헛되이   

눈부신 통증만 키웠다

통증의 잔뿌리들이 아스포델로스같이 

몸의 진액을 빨아들인다

 

얇아진 몸, 휘청

숲의 윤곽이 흐릿해진다

심호흡을 한다

 

절망조차 사치였던 것이다 

 

아스포델로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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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 김 명 서

 



전송대기 중인 이메일처럼



빛에너지와 접속하면



다시 복제되는 유전자를 상속받았지



앞으로,



4차원의 시공간을 장악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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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존재군

                          

                             / 권 성 훈 

 

  

    -   시인은 사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세계의 일면을 상상력을 발휘하며 문자를 획득한다. 지금까지 시인들이

외부의 특이와 내부의 돌출에 주의를 기울이며 존재를 탐사했다면 아래의「맨발의 산책」은 외부의 돌출을 통하여

내부의 존재를 관철시키고 있다.

 

 

 

 

 

 

 

            맨발의 산책

                            

                                     /  김 명 서

 

 아라비아産 카펫 위, 개미지옥이 파놓는

 구멍에서

 벽시계가 뻐꾹뻐꾹 몸 안의 적멸을 내놓는다

 벽이 술렁거리고, 암모나이트 같은 여자가 빠져나온다

 알몸에는 아라베스크 넝쿨이 자라고 있다

 나이테를 알 수 없지만

 단지 허한 동공과 짓무른 지문으로 보아 수천 개의 삼릉석을 들이고 이력

과 기면증의 습성을 번역해 낸다

 흐느린 걸음마다 점액질의 곡선이 그려진다

 잠의 행간 사이에 매몰 된 기억을 퍼올리는 몸짓인지 찬밥 한 덩이 먹어치

우고,

 실루엣을 오려내 벽걸이에 걸어둔다

 어깨 위에 주저앉은 모래가 풀어진다

 거울 속, 창백한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눈빛이 가슴으로 건너간다

 비죽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뒤집어버리고

 나는 사막인데 도대체 넌 누구냐 언성을 높인다

 여태 말이 없던 여자, 배꼽아래 아라베스크 문신을 가리키며 마른 입술을

달싹거린다

 진공 상태에서 오래 살다보면, 원래 말도 퇴화하는 법이라고

 가슴에 분포하는 복화술을 읽어낸다

 구겨진 실루엣을 펴서 그 여자에게 붙여주자

 아귀가 딱 들어맞는

 그림자극이다

<하략>

 

 

 

 

 

 

 

 

김명서, 「맨발의 산책」(『열린시학』2010 겨울호) 부분

 

    국어사전에는 ‘의미’로 단순화된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언어들은 편의를 위해 읽히거나 쓰여 진다. 이러한 체계적인 단순함은 원래 언어가 지닌 자율적인 속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한다. 그래서 국어사전은 ‘말의 감옥’이다. 말의 감옥은 개미지옥처럼 한 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침묵의 세계다.

 

    시인은 말이 파놓은 ‘개미지옥’에서 시어의 몸을 입고 빠져나오는 존재인가? 이 시는 대상에서 발화된 상상력이 무한 한 시공간에서 의미를 창출해 낸다. 이 시에서 실재하는 것은 현재 시인이 ‘아라비아産 카펫 위’에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 후 펼쳐지는 그로데스크한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서 극도로 언어화된다. 시인의 상상력은 시적 대상의 돌출을 읽어낸다. ‘벽시계가 뻐꾹뻐꾹 몸 안의 적멸’을 꺼내고, ‘벽이 술렁’거리고, ‘암모나이트 같은 여자가 빠져’나오고, ‘알몸에는 아라베스크 넝쿨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자는 개미귀 신이 사막에 파 놓은 구멍에서 잡아먹힌 존재다. 시인은 사막의 지하에서 수천 년 전 존재였던 여자를 잠의 행간 사이에서 매몰 된 기억을 퍼 올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여자는 ‘기면증’을 앓고 있다. 기면증은 선잠이 들어 환각에 빠지게 되는 정신질환이다. 시인은 기면증에 걸린 거울 속 창백한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여자와 ‘복화술’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림자극’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상상력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의식 속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시인들은 정상(正常)으로는 정상(頂上)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보들레르가 ‘시인은 저주받은 자’라고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위 텍스트들이 보여주는 집착과 환상은 단연 병질적이다. 그러나 ‘특이’와 ‘돌출’이 만들어 낸 언어의 ‘탄환’으로서 명중시킨 ‘진실의 과녁’은 인간내면의 ‘존재성’과 ‘초월성’을 성찰하게 한다. 언어가 죽고 소리만 남지 않는 한, 시인들의 의식 속에서 ‘시’는 쓰여 질 것이다. 하지만 시적 언어의 논리적 관계가 표면화 되지 않고 표현 속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시어로 전이되기 이전의 의미가 전이된 언어로서 얼마나 미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시인의 지속적인 경주가 필요하다. 이것은 비정상이 정상을 정복할 수 있는 언어의 성찰, 즉 시의 힘이기 때문이다.

 

  권성훈교수님

문학박사. 2002년《문학과 의식》《시조시학》신인상으로 등단.《젊은 작가상》《열린시학상》수상. 시집 『푸른바다가재의 전화를 받다』외 1권,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경기대학교 출강

 

 

 

 

 

                   -    다음 카페 < 담양 시사랑회 > 물소리 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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