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덕룡산과 주작산 / 문화일보 기사
2014. 3. 13. 22:19ㆍ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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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 둥지 튼 朱雀.. 선홍빛 울음에 푸른 강진만 '쩌렁∼'
전남 강진의 봄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입력 2014.03.12 15:01 수정 2014.03.12 15:41
↑ 이른 아침 덕룡산의 능선에서 바라본 강진만 일대의 풍경. 암봉이 지느러미처럼 늘어선 덕룡산의 암릉구간은 흔히 설악의 공룡능선이나 용아장성에 비유되는데, 이런 바다 조망은 설악이 갖지 못한 것들이다.
↑ 만덕산 아래 백련사의 동백숲에는 이제 막 동백의 낙화가 시작됐다. 어둑한 숲 그늘 아래 동백꽃이 낭자하게 떨어지고 있다. 이곳의 동백은 이달 말쯤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 강진에서 날개를 편 봉황과 거친 등갈기의 용을 만나다 = 먼저 강진에서 만난 주작(朱雀), 그러니까 봉황의 얘기부터 시작하자. 강진의 산이라면 이웃 영암과 나눠 가진 월출산부터 떠올리겠지만 그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아찔하고 품이 넓은 산이 강진에 있다. 주작산(朱雀山). 주작은 청룡, 백호, 현무와 함께 네 곳의 방위를 지키는 사신(四神) 중의 하나다. 그중에서도 봉황의 형상을 따온 신화의 동물인 주작은 남쪽을 지킨다. 남도 땅 강진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솟은 산이라 남녘을 지키는 주작이라 이름 했겠지만, 땅의 기운이나 산의 형세도 주작이란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주작산은 주봉을 머리로 삼아 두 능선이 양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 영락없는 거대한 봉황의 모습이다. 풍수 따위는 전혀 모르는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그렇다.
주작산과 능선이 붙어있는 산이 덕룡산(德龍山)이다. 주작이 봉황이라면 덕룡은 용(龍)인 셈인데, 덕룡산이라 따로 부르기도 하고, 주작산의 한 봉우리로 봐 '주작산 덕룡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작을 봉황의 형상으로 본다면 덕룡산은 암봉을 사나운 등갈기로 세운 한 마리 용이면서 주작이 펼치고 있는 거대한 왼쪽 날개이기 때문이다. 이 산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은 봉황의 날개와 용의 잔등을 이어붙여 함께 종주하는 게 보통이다.
주작산과 덕룡산은 철 따라 산깨나 올라봤다는 사람들 외에는 아는 이들이 드물다. 하지만 강진의 신전면에서 해남의 북일면으로 이어지는 55번 지방도로를 한 번이라도 달려봤다면 이 산을 모를 리 없다. 흰 이빨처럼 날카롭게 치솟은 흰 암봉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범상찮은 산세 때문이다. 먼발치서 바라본 산은 기대보다는 아찔한 공포로 다가온다. 톱니같이 거친 암봉이 도무지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산행의 들머리를 묻는데 산 아랫마을 주민들은 위아래로 쓱 훑어보고는 '쉽지 않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주작산의 높이는 475m, 덕룡산은 이보다 낮은 433m에 불과하다. 아무리 바닷가라 육지의 산보다 체감 고도가 높다 해도 500m도 채 안 되는 산이 무어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 설악의 공룡능선이나 용아장성을 방불케 하는 덕룡산의 거대한 암봉을 올려다보면 그 위용에 그만 기가 질린다. 종주 산행이 쉽지 않음은 두 산의 능선을 이어 종주하는데 꼬박 7시간이 걸린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올라보면 웬만큼 날렵한 산꾼이 아니고서는 7시간에 주파한다는 것도 잘 믿기지 않는다. 이 두 산에는 나무덱이나 철계단 같은 인공시설물이 거의 없다. 매듭을 지은 굵은 밧줄과 바위에 'ㄷ'자로 박아놓은 철심이 전부다. 그러니 내내 깎아지른 바위를 온몸을 써서 올라야 한다. 믿을 건 오로지 자기 몸일 뿐이다.
# 수직의 벼랑에서 느끼는 아슬아슬한 고도감 = 주작·덕룡산의 종주 산행은 소석문에서 시작한다.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깃든 만덕산의 자락이 끝나고 덕룡산의 능선이 일어서는 지점이다. 시작하자마자 제법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올라가면 이내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암봉이 가로막는다. 여기서부터 온몸을 다 쓰는 산행이 시작된다. 암릉 산행경험이 적다면 오금이 저려서 도무지 발을 뗄 수 없을 것 같은 암봉의 연속이다. 하나를 넘었는가 하면 또 하나의 바위가 기다리고, 그걸 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 또 날 선 암봉이다. 바위 옆으로 우회하는 코스가 있긴 하지만, 바위 능선에서의 조망을 포기하기란 너무도 아깝다. 산중에서 만난 등산객들도 대부분 맞닥뜨린 암봉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우회 길 대신 밧줄을 붙잡고 바위에 붙었다. 그렇게 동봉을 지나고 덕룡산의 최고봉인 서봉 정상에 오르면 탐진강과 강진만 일대의 풍광이 죄다 발아래로 펼쳐진다. 이만한 높이로 아찔한 고도감과 힘찬 바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서봉을 넘었다고 해도 난코스는 이어진다. 날카로운 창처럼 일어선 바위 끝을 딛고 가는 세 번째, 네 번째 암봉도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마찬가지다. 급경사로 일어선 바위를 옆으로 돌아가며 디딤발을 찾아가는 앞 선 등산객의 모습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다. 이렇게 몇 시간에 걸친 씨름을 하고 나면 비로소 1.8㎞의 긴 억새밭 능선을 만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킨 암릉이 주작산이고, 주작산을 넘으면 남주작산과 이어지는 작천소령이다.
주작산은 멀리서 보면 덕룡산과는 달리 두리뭉실한 느낌이다. 하지만 막상 산에 들어서면 덕룡산 못지않게 날카롭고 거친 암릉이 이어진다. 석문 쪽에서 덕룡산을 넘어 종주 등반을 하는 이들은 여기쯤 이르면 아예 혀를 내두르게 된다. 산행 거리도 도합 16㎞가 훨씬 넘는데다 바위를 타고 내리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으니 이미 몸은 녹초상태. 지친 산행의 끝에서 다시 나타나는 거친 암릉에는 저절로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주를 택했던 이들은 십중팔구 남주작산은 포기하고 작천소령에서 주작산휴양림 쪽으로 내려서게 된다.
대부분의 산은 정상을 주산으로 삼지만, 주작산은 정상이 아니라 남쪽 강진만 쪽으로 흘러내린 남주작산 봉우리를 주산으로 삼는다. 해발고도는 낮지만 남주작의 봉우리가 주작의 머리부분이기 때문이다. 남주작산은 휴양림에서 임도를 타고 차로 오를 수 있다. 강진군이 주작의 정수리 부분에다 일출전망대를 만들면서 임도를 닦아놓았는데, 길은 구불구불 좁지만 노면은 잘 다듬어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한쪽으로는 강진만과 완도 일대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반대편으로는 만덕산에서 시작한 덕룡산과 주작산의 거친 산줄기가 마치 잘 접은 화첩을 펴듯 주르륵 펼쳐진다.
# 주작의 명당과 다산의 자취를 찾다 = 주작산과 덕룡산은 산이 품고 있는 비범한 기운 만큼 옛이야기들도 여럿 깃들어있다. 주작산은 '남쪽을 지킨다'는 주작의 의미 탓인지 강진 사람들은 예부터 영산이라 여겨왔다. 그래서일까. 주작산에는 예부터 8개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8곳 명당은 장군대좌(將軍大座), 노서하전(老鼠下田), 옥녀탄금(玉女彈琴), 계두혈(鷄頭穴), 정금혈(井金穴), 월매등(月埋燈), 옥등괘벽(玉燈掛壁), 운중복월(雲中覆月)이다. 이중 옥등괘벽은 연안 차 씨가, 계두혈은 도장 김 씨가, 정금혈은 전주 이 씨가, 운중복월은 해남 윤 씨가 이미 선산을 썼지만 나머지 4개의 혈이 남아있어 한동안 풍수지리가와 역술가들이 그 자리를 찾느라 자주 드나들었다고 전한다.
주작산의 기기묘묘한 기암에는 저마다 전설이 전해진다. 주작산 아랫마을 주민들을 붙잡고 물으면 할미바위와 동구리바위(흔들바위), 상여바위의 전설쯤은 쉽게 들을 수 있다. 보따리를 이고 가는 등 굽은 할머니 형상의 할미바위 때문에 산 아래 장동마을이 폐촌이 되고 주민들이 수양리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며, 동구리 바위 탓에 가뭄이 들었다고 믿었던 수양리 주민들이 바위를 폭파하려 하자 폭우가 쏟아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상여꽃이라 부르는 두소화가 핀 걸로 풍년을 점쳤던 주민들이 꽃이 잘 피지 않는 해에 꽃을 꺾어다 상여바위 부근에 꽂아두고 상엿소리를 하며 액땜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끝이 없다.
주작산과 덕룡산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이 빠질 수 없다. 다산은 유배 중에 덕룡산의 거친 암봉 아래 은둔하던 사돈이자 친구인 개보 윤서유의 별서 '조석루'를 자주 찾았고 여기서 시문을 여럿 남겼다. 그 중 '개보에게 부치다'란 시문을 보자. '주작산 속에 있는 자그마한 산장 하나 / 그대의 별서가 참으로 청량하네 / 대밭가에 누대있어 의상에 냉기돌고 / 연못가로 나 있는 길 지나만 가도 향기 스미네…." 윤서유는 별서에 울창한 왕대숲과 붉은 잉어를 기르던 연못을 두었고, 거기서 아침에는 왕휘지 글을, 저녁에는 도연명의 시를 읽었다. 다산은 꽃필 무렵이면 만덕산의 다산초당에서 나와 그런 그를 찾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가 석양에 말을 타고 긴 그림자를 이끌며 초당으로 돌아왔다.
월하마을에는 200여 년 전의 조석루의 자리가 여태 남아있다. 주민들도 죄다 '처음 듣는 곳'이라며 고개를 저으니 찾기가 쉽잖지만, 덕룡산의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앞으로 솔숲이 들어선 자리쯤에 껍질이 다 벗겨진 흰 고사목 한 그루를 찾으면 거기가 바로 조석루 터다. 윤서유가 왕희지와 도연명을 읽던 누각도, 그윽한 풍류의 정원의 자취도 없지만 연못과 그 가운데 심어둔 솔숲의 형태는 어렴풋이 남아있다. 덩그러니 세워진 조석루 터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안내판에 한 줄 시처럼 얹혀진 문장의 마지막 구절이 이렇다. "사람은 가고 오지 않아도, 풍경은 풍경으로써 순결하다."
# 봄밤의 달빛과 낭자하게 떨어진 동백꽃 = 주작산과 덕룡산을 찾았다면 거친 산과 맑은 달이 서로 어우러지는 정취를 꼭 보고 돌아오자. 이마에 흰 암봉을 이고 있는 거친 바위 산의 풍류를 완성시키는 건 예부터 차고 맑은 달이었던 것 같다. 월출산의 강진 쪽 자락에 암봉을 올려다보는 자리에 월남마을과 주작산과 덕룡산 아래의 암봉 밑에 월하마을의 이름에서 그걸 짐작한다. 푸른 봄밤에 흰 암봉을 배경으로 뜬 맑은 달의 정취는 그윽했다. 월남마을과 월하마을의 돌담마다 이미 매화는 만개했다. 마침 달 밝은 봄밤. 달빛 아래 월하마을을 거닐면서 흰 바위산을 올려다보노라니 문득 코끝으로 매화 향기가 지나갔다. 낮에는 희미하던 매화의 암향은 어둠과 달빛으로 더욱 짙어졌다.
이맘 때 강진을 찾았다면 주작산과 덕룡산의 능선과 이어 붙어있는 만덕산 아래 백련사의 동백을 아니 보고 돌아올 수 없는 일이다. 다산이 초의선사와의 만남을 위해 초당에서 숲길을 넘어 드나들던 백련사. 그 절집의 서쪽 부도밭에는 7000여 그루의 어둑한 동백 숲이 있다. 백련사 동백은 이제 낙화가 막 시작됐다. 후드득 모가지째 덜어지는 동백은 앞으로 보름 남짓이면 낭자하게 융단처럼 깔리게 될 게다. 그때쯤이면 주작산과 덕룡산 암봉의 능선에도 연분홍 진달래꽃이 피리라. 주작산과 덕룡산을 이어붙여 오르던 날에 마을 주민들도 휴양림 직원들도, 그리고 산행 중에서 만난 등산객들도 다들 이른 산행을 아쉬워했다. 짧게는 보름, 길면 한 달쯤 뒤에 진달래꽃이 만개할 때의 풍경을 기다리지 못하고 덕룡산과 주작산을 찾아온 게 더없이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짧게 지나가는 덕룡과 주작의 진달래꽃 사태는 독자들에게 양보할 밖에….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길을 다 걷고 나서야 안 일이지만, 종주 말고도 수양마을의 별빛마루펜션 쪽에서 덕룡산의 서봉과 세 번째 봉우리 사이로 치고 올라가는 짧은 코스가 있었다. 대략 1시간 남짓이면 능선에 닿는데 거기서 서봉 쪽과 주작산 쪽으로 산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산행이 서툴러서 거친 암봉 앞에서 오금이 저린다면, 그저 수직의 암봉이 길게 늘어선 풍경을 눈맛으로만 즐기고 되돌아 내려온대도 충분히 보람이 느껴지는 코스다.
강진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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