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관문

2014. 5. 14. 14:22나의 이야기






        

  조  령  산  성  

 

 

Ⅲ. 사적지 문경관문  

 

  1966년 3월 22일 제1관문(主屹關), 제2관문(鳥谷關), 제3관문(鳥嶺關) 및 그 부속성벽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지정면적 14,301평) 되었고, 전설과 애환이 서린 이 산성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됐으나, 1970년 10월 문화재관리국이 조령로 주변 임야를 불하하게 되었음은 사적지 관리 및 자연경관의 자연 그대로 보존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문화재 감시원이 주흘관(1972년), 조곡관(1976년), 조령관(1977년)에 각각 배치되어 오지에서 문화재 보호·감시에 혹한과 폭서에도 굽히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주흘관을 보수하고 조곡관, 조령관을 복원하게 됐는데  이 보수 복원공사의 설계는 삼성건축설계사무소에서 맡고 시공은 태영개발주식회사(대표 윤세영)가 맡았다. (※ 관문보수정화공사 내역: 생략)

 

   초곡성(草谷城 : 제1관문 : 主屹關) 
  초곡성은 남적(南賊)을 막기 위함이며, 제1관문 또는 주흘관이라고도 한다. 이 성은 정면 3칸,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는 팔작지붕으로 홍예문은 높이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은 높이 3.6m, 폭 3.8m, 두께 19㎝이다. 좌우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며, 부속산성은 높이 1~3m, 폭 2~4m,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이다.
  1965년 11월 9일 문경군 교육청에서는 제1관문 보수공사의 설계승인을 얻어 지명입찰에 붙였으나 유찰되어 동절기공사로 이월되고 400천원(도비300, 군비100)으로 재원이 부적하여 500천원을 확보하여 1966년 4월 2일 입찰에 붙여 498천원에 장한건설주식회사가 낙찰되었다.
  1969년 문화재 보호업무가 교육청에서 시군으로 이관되고 1972년부터 문화재 감시원이 배치됐으나 1968년 향토예비군이 찰설된 이후 향토방위에 주력한 예비군들은 예나 지금이나 전략요충지라 생각하여 1973년 7월 9일과 10일에 모사단장의 지시로 문경 예비군 700여명이 성벽위에 폭과 높이 1m정도 증축하여 총구(銃口)를 내는 원형변경이 있었으며 아직도 원상복구 되지 않아 원형을 잃고 있다.
  1974년 9월 20일부터 12월 27일까지 제1관문 보수정화 공사를 문경군에서 시행하였으니 성문복원, 후면 좌우계단, 좌측 성곽 320m, 협문보수, 누각번와, B형 안내판 설치로 6,506천원(국비4,600)이 투입되었다. 1975년 훼손된 석성보수를 위해 다음과 같은 문화재 보수공사 설계지침이 있었다.
   제1관문 우측 상부 성벽 40m정도가 붕괴되어 개축하여야 한다. 석재 보충은 50%로 하고, 석재 가공은 기존 것에 맞추어 혹떼기 정도로 가공처리 한다.
   자연석 축성을 30m정도 해체 개축하고 자연석 보충은 60%로 한다.
  설계지침에 의한 설계를 삼성건축에서 설계하여 태영개발(주)에서 6월 1일 착공, 8월 17일 준공 했는데, 공사시방서와 내역서는 다음과 같다. (※ 시방서 및 내역서 : 생략)
  1976. 8. 14일에는 폭우로 우측 수문의 옥개석이 떠내려 갔으며, 1977. 7. 22일부터 문루 단청공사가 2,544천원에 태영개발의 윤세영과 계약되어 현장대리 이대재 지도와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건축기사보 천기봉의 감독하에 진척되어 8. 31 문화재관리국 건축기사보 박용철에 의하여 준공처리 됐다.
  1979. 3. 30일 폭우로 향좌측 자연석 성벽 6m가 붕괴되었으며, 어느땐지 보수하면서 축성 양식에 맞지 않게 축성된 부분 및 붕괴 위험부분 70여m의 보수가 시급하다.

 

   중성(中城 : 제2관문 : 鳥東門 : 鳥谷關) 
  선조 때 충주인 신충원이 단독 축성한 곳이 이 중성이며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구성(舊城)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과 초곡성(草谷城)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을 설치하였다.① 그후 1907년 훼손되고 1975년에 보수하게 됐으니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문화재 보수공사 설계지침이 다음과 같이 있었다.
   아취형 성벽을 완전해체 보수한다.
   성곽위 노송 5주를 제거한다. 성곽의 석재보충은 35%정도로 하고 석재가공은 기존 것에 준한다.
   자연 석축 성곽 좌우 20m정도를 해체 개축한다. 자연석 보충은 30%로 한다.
  문공부 문화재관리국에서 75. 2. 13 9,290천원(국비)에 태영개발주식회사 윤세영과 계약하여 7. 12 홍예문과 좌우 성벽 73m의 해체 복원의 준공을 보게 됐다.
  1975년 서봉(瑞峰 李東寧)이 2천만원을 선뜻 희사하여 제2관문(문루, 성문, 협문)복원과 성황사, 산신각(제1관문에 위치)보수를 위해 삼성건축설계사무소의 장기인이 설계하여 태영개발주식회사의 윤세영과 17,300천원에 도급계약을 하고, 75. 10. 6 착공하여 12. 24일 준공되었다. 공사의 시방서 및 설계내역 및 도면은 다음과 같다. (※ 시방서, 설계내역, 도면 : 생략)
  이렇게 복원한 문루는 옛이름 조동문(鳥東門)이 아닌 조곡관(鳥谷關)으로 명명(命名)되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좌우 협문이 2개이며, 팔자지붕이고, 홍예문은 높이 3.6m, 길이 5.8m, 대문 높이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성의 높이 4.5m, 폭 3.3m, 길이 73m이고, 부속산성 높이 2m, 폭 2~3m, 길이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조곡관 중수기(重修記) 현판은 다음과 같다.

 

   조곡관중수기(鳥谷關重修記) 
  문경관문은 삼국시대 흥달(興達)이 축성하여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 칭하였다고 전하며 사기(史記)에 의햐면 이조숙종 34년 무자(戊子:1708)에 3개의 성을 구축하고 영호(嶺湖)경계에 제1성인 조령관(鳥嶺關)을 세우고, 제2성은 응암(鷹岩) 북에 중성(中城)인 조곡관(鳥谷關)을, 그리고 초곡리(草谷里)에 주흘관(主屹關)을 건립해서 각 성마다 웅장한 홍예문과 문루를 세웠다. 그후 영조 22년 건융(乾隆) 31년(1766) 및 헌종(憲宗) 6년 도광(道光) 20년(1840)과 경진년(庚辰年:1940)에 제1관루를 중수한 바 있으며, 제2관루의 기록은 없으나 제1관루가 창건될 당시 건조(建造)된 것으로 사료되며 연대는 알 수 없고 화재로 인하여 제2, 제3관루가 소실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성벽 및 홍예문도 허물어진 채 연구세심(年久歲深)으로 유적만 남기고 폐허되었던 것을 을묘년(乙卯年) 5월(1975)에 국비 1천만원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해체 복원함으로서 성벽 및 홍예문은 중수되었으나 문루는 복원치 못하고 있던 중 향토출신 서봉(瑞峰) 이동영(李東寧)씨가 2천만원을 기부하여 1975년(乙卯) 10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준공을 보아 웅장한 옛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1975년(乙卯) 12월 하한
문경군수 석진후 근지(謹識)
진성 이원기(李源箕) 근서(謹書)

 

   영성(嶺城 : 제3관문 : 鳥嶺門) 
  새재 정상에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선조조에 쌓고, 숙종조에 중창하여 1907년에 훼손되고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이 1976년도 홍예문 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4천백만원:국비1천만, 도비1백5십만원, 군비2천9백5십만원)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좌우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지붕이다.
  홍예문 높이 3.88m, 폭 2.98m, 길이 6.12m이며, 좌우성 높이 4.5m, 폭 3~4m, 길이 185m이고, 부속산성 높이 2~3m, 폭 2~3m, 길이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은 높이 3.9m, 폭 3.56m이고 두께가 19m이다. 1976년 8월 14일 수해로 홍예 석축이 충북쪽으로 일부 도괴 되었다. 
  9월 14일에는 복원보수를 위한 설계승인이 1차로 문루 성곽에 대한 해체조사 및 복원을 하고 2차로 해체조사 결과에 따른 문루 복원공사를 실시토록 구분 승인되었으며 문루 양식에 대한 고증조사는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이 참여하여 문루 성곽공사와 병행 발굴조사후 문루양식이 추정되면 시공토록 승인되었다.
  삼성건축 장기인 설계에 의해 태영개발(중구 충무로 4가 126) 윤세영과 18,914천원(국비 10,000천원, 도비 1,500천원)에 계약되어 76. 10. 11일 착공되고 현장대리는 정의용이 맡고 문화재관리국에서 건축기사보 천기봉이 감독관으로 파견되어 복원공사가 추진되면서 11.15~11. 30까지 신영훈 전문위원의 발굴작업으로 조선조 분청사기 파편, 토기 파편, 와전편(瓦塡片)이 무수히 출토 됐으며, 동절기 공사로 이월되어 77. 4. 11 준공되자 문화재관리국 건축기사보 박용철의 준공검사를 마쳤다. 
  문루 복원공사로 15,000천원(국비 7,500)에 76. 12. 1 착공되어 현장대리 이대재가 맡아 77. 6. 30 문화재관리국 건축기사보 이상열의 준공검사를 받게 되었으며, 보수 추가공사 3,520천원(국비 1,760천원)이 77. 9. 6 착공하여 9. 29일 준공 됐으며 공사개요는 다음과 같다.<공사개요:생략>




            - 네이버 블로그 < 문경 향토 역사관 > 산벗 박창희 님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