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地理志) / 集註 문 경 사

2014. 5. 14. 19:25나의 이야기






      

1.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地理志)  집주 문경사 / 개인발간 향토자료 

2012/08/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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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삼국사기지리지고려사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부 록

  

 

 

 集註                         

  문     경     사  

 

 

 

1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地理志)

 

                                               차      례                         

  해 설
  번 역
     상 주(尙州)
        예천군(醴泉郡)
  안인현(安仁縣)
  가유현(嘉猷縣)
       고령군(古寧郡)
  가선현(嘉善縣)
  관산현(冠山縣)
  호계현(虎溪縣)


  [해 설]

  리나라 역사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1145년(고려 인종 23년)경에 김부식(金富軾) 등
1)이 왕의 명령으로 편찬한 정사(正史)로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국사편찬은 왕권을 강화하여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나 당시의 정치 문화수준이 반영되고 국가의식을 높이게 된다. 김부식의 표문(表文:進三國史記表)에 의한 동기와 목적을 보면 중국 역사책에 우리의 역사가 간략하게 돼 있으나 자세히 쓸 필요가 있고 전해오는 <고기(古記)>의 내용이 빈약하여 다시 기록할 필요가 있는데다 왕, 신하, 백성들의 잘잘못을 가려 후세의 교훈으로 삼고자 했다.

  처음 간행은 12세기 중엽인 1149~1174(의종3년~명종4년)으로 책은 전하지 않고, 두 번째로 13세기 후기에 낸 책의 잔존본인 성암본(보물 제722호)이 성암 고서박물관에 전하고 일본 궁내청에도 있다. 그 후 1394년(조선 태조 3년) 경주부사를 지낸 진의귀(陳義貴), 김거두(金居斗) 등이 간행했으나 없어지고 1512년(중종 7년) 이계복(李繼福)이 다시 간행한 것이 옥산서원(玉山書院:경주시 소재)에 완질본(보물 제525호)으로 전한다.

  삼국사기는 기전체(紀傳體)2)로 정치, 천재지변, 전쟁, 외교 등을 기록한 본기(本紀)가 28권, 신라제도의 해설과 영토의식이 반영되어 지리지에 비중을 둔 지(志:여러가지 기록)가 9권, 나라를 위해 활약한 인물의 전기인 열전(列傳) 10권으로 되어 있다.

상  주

 

 

 

 

 

-

예천군(醴泉郡)

 

 

 

 

               영현

-

   안인현(安仁縣) - 동로

 

 

 

-

가유현(嘉猷縣) - 산양, 산북

 

 

 

 

 

 

 

 

 

 

 

 

 

 

 

 

-

고령군(古寧郡)

 

 

 

 

               영현

-

가선현(嘉善縣) - 가은, 농암

 

 

 

-

관산현(冠山縣) - 문경, 마성

 

 

 

-

호계현(虎溪縣) - 호계, 점촌


  삼국사기의 지는 제사(祭祀), 악(樂) 1권, 색복(色服), 거기(車騎), 옥사(屋舍)가 1권, 지리가 4권, 직관(職官)이 3권이다. 제34권인 잡지 제3의 지리 1에 현재의 문경지역이 신라 9주의 하나인 상주의 2개 군에 나누어져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상주는 예천군 등 10개 군을 두었는데 즉 예천군에 2개 현이 현재의 동로, 산양, 산북지역이고 고령군에 3개 현이 현재의 가은, 농암, 문경, 마성, 호계, 점촌지역에 해당해고 영순은 알려지지 않는다.

  1900년대 이래 조선고서 간행회, 동경 제국대학, 조선광문회, 조선사학회 등에서 활자로 간행했고 옥산서원 소장본을 고서 간행회에서 영인본으로 냈고 1983년 아세아 문화사에서 전국지리지총서(全國地理誌叢書)로 영인(影印)으로 발행했다.
 

  ※ 난산현
  삼국사기 제35권 잡지 제4의 지리2에 삭주(朔州:지금의 춘천)의 삭정군(朔庭郡)에 난산현이 속해 있다. 삭정군은 고구려 비열홀군(比列忽郡)인데 589년(진흥왕 17년, 양태종 1년)에 비열주(比列州)를 삼아 군주를 두고 성을 쌓으니 주위 1,180보(步)3)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등주(登州:지금의 함남 안변군)4)로 다섯 영현5) 가운데 하나가 난산현이다.

 「蘭山縣 本高句麗昔達縣 景德王改命 今未詳(난산현 본고구려석달현 경덕왕개명 금미상」“난산현은 본래 고구려의 석달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은 알려지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난산현을 이병도는 삭주(지금의 춘천)의 속현인데 삭정군에 잘못 기록했다고 주(註)6)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난산현이 경덕왕 때 안인현으로 명칭이 바뀌고 그곳이 대동여지도에서 동로지역에 표시된 점과 현재 동로면 석항리에는 삼국시대 석성인 할미성(老姑城)이 견고하게 남아있고, 성안에서 토기가 출토되며 문헌비고의 예천군 성곽난에 “고성(姑城)이 안인 고현에 있다.”는 기록 등에 주목하여 동로를 난산현으로 추정한다. 현의 소재지는 할미성안 석항으로 짐작되며 석항의 고분(장군묘라 칭함)을 발굴한다면 연구과제의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번 역]

  상 주(尙州)

   247~261(첨해왕 때) 사이에 사벌국(沙伐國)을 빼앗아 주(州)를 삼았다.
  
 524년(법흥왕 11년7))인 양나라 보통8) 6년에 처음으로 군주(軍主)9)
를 두고 상주(上州)로 삼았
    다.
  
 557년(진흥왕 18년)에 주를 폐지했다가 687년(신문왕 7년인 당(唐)나라 수공(垂拱)10)
 3년)에

    다시 설치하고 주위 1,109보의 성을 쌓았다.
  
 757년(경덕왕 16년)에 이름11)
을 상주(尙州)라고 고치었는데 지금도 그대로이고 영현(領縣)이

    3이다.

예 천 군

   본래 수주군(水酒郡)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은 보주(甫州)이고 영현이 4이다.

  예천군 영현
  
안인현(安仁縣)12)

  
 본래 난산현(蘭山縣)13)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은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는다.

  가유현(嘉猷縣)
   본래 근품현(近品縣)〔건품현(巾品縣)이라고도 함〕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은 산
     양현이다.

 

  고령군(古寧郡)

   본래 고령가야국(古寧加耶國)인데 신라가 빼앗아 고동람군(古冬攬郡)〔고릉현(古陵縣)이라고
     도 함〕을 삼았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은 함령군(咸寧郡)이고 영현이 3이다.

  고령군 영현
  
가선현(嘉善縣)

   본래 가해현(加害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 가은현(加恩縣)이다.

  관산현(冠山縣)
   본래 관현(冠縣)〔관문현(冠文縣)이라고도 함〕이라 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은
    문경현이다.

  호계현(虎溪縣)
  
 본래 호측현(虎側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도 그대로이다.

 

1) 최산보(崔山甫), 이온문(李溫文), 허홍재(許洪材), 서안정(徐安貞), 박동계(朴東桂), 이황중(李黃中), 최우보(崔祐甫), 김영온(金永溫)의 참고와 김충효(金忠孝), 정습명(鄭襲明)의 관구(管句) 등의 편사관에 의해 편찬.
2) 제왕의 사적을 기록한 본기(本紀)와 많은 사람의 전기(傳記)를 기록한 열전(列傳)으로 기술한 역사편찬 체제
3) 거리의 단위로 주척(周尺) 6자이며 약 1.2m 정도임.
4) 이병도 역주,「삼국사기 하권」(서울 : 을유문화사, 1989), p 198.
5) 현감을 배치하지 않고 군수가 직접 관할한 현.
6) 이병도. 앞의 책, p 205 주(註) ⑧
7) 법흥왕 11년이라면 양(梁)나라 연호인 보통(普通) 5년과 같은 해인데 6년이라 525년으로 차이가 있음.
8) 중국 남조의 양나라 무제(武帝) 때 연호(年號).
9) 군정 일치제(軍政一致制)의 주 장관(州長官) 명칭으로 후에는 총관(摠管) 도독(都督)으로 바뀐다.
10) 칙천무후(則天武后) 때 연호(年號).
11) 경덕왕이 지방의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우리말 지명을 중국식 한자 이름으로 고쳤음.
12) 대동여지도에 동로 지역에 표시됨.
13) 삼국사기의 삭주에도 난산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