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려사 지리지(高麗史地理志) / 집주 문경사

2014. 5. 14. 19:29나의 이야기






       

2. 고려사 지리지(高麗史地理志)  집주 문경사 / 개인발간 향토자료 

2012/08/0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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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集註                         

  문     경     사  

 

 

 

2고려사 지리지(高麗史地理志)

 

                        차      례                         

  해 설
  번 역
     경상도
        상주목
  문경군
  산양현
  호계현
  가은현


[해 설]

  고려사는 고려 34대 475년간의 역사·문화 등을 기전체(紀傳體)로 쓴 역사책으로 1449년(세종 31년)에 시작하여 1451년(문종 1년)에 완성했다.

  1392년(조선 태조 1년)에 조준, 정도전, 정총 등에게 고려사 편찬을 명하여 편년체로 된 37권의 고려국사가 편찬되었으나 전하지 않고 1414년(태종14년)에 하륜, 남재, 이숙번, 변계량에게 다시 짓게 하고, 1419년(세종 1년)에는 유관, 변계량에게 개수케 하여 1424년(세종 6년)에 수교고려사(校高麗史)를 펴냈다. 1438~1442년(세종20~24)에 4차 개찬(改撰)을 신개, 권제가 하여 고려사전문을 편년체 역사서로 크게 보완되었다. 1449년(세종 31년) 정인지, 김종서, 이선재 등이 기전체로 개찬하여 1451년(문종1)에 완성하고 1454년(단종2) 정인지의 주자본과 중종 때 목판본이 전해왔다.

  고려사는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표(表)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 등 139권으로 되어있다. 고려사 지는 천문(天文) 3권, 역(曆) 3권, 오행(五行) 3권, 지리(地理) 3권, 예(禮) 11권, 악(樂) 2권, 여복(輿服) 1권, 선거(選擧) 1권, 백관(百官) 2권, 식화(食貨) 3권, 병(兵) 3권, 형법 2권으로 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가 고려시대 지리에 관한 유일한 기록인데 제57권 지 11의 지리 2에 현재의 문경지역이 당시 5도양계(五道兩界)의 경상도 상주목의 군과 현으로 소략(疎略)하게 기록되어 있고 군현 이하의 행정구역인 향(鄕), 소(所), 부곡(部谷), 장(莊), 처(處)의 지명이 많이 누락되어 있듯이 현재 동로지역은 기양현(基陽縣:현재 예천)에 속했을 것으로 생각되나 기록은 없다.

경상도 - 상주목

 -

영순현

 

   영순

 

-

문경군

 

   문경 마성

 

 -

산양현

 

   산양 산북

 

 -

호계현

 

 호계 점촌

 

 -

가은현

 

   가은 농암


  
1908년 일본 국사간행회에서 활판본을 1955년 연세대학교 동방학 연구소와 198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전국지리지로 영인하고 1971년 동아대학교 고전연구실에서 국역 간행했다.
 

  [번 역]

    경  상  도

   삼한 때는 진한이었고 삼국 때는 신라였다. 태조가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하여 동남도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두고 경주에 기관을 두었다.
  
 
995년(성종14년) 전국을 10개 도로 나누면서 상주(尙州)관내를 영남도(嶺南道)로 경주 금주(金州)관내를 영동도(嶺東道)로 진주(晉州)관내를 산남도(山南道)로 하였다.
  
 
1106년(예종 원년)에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 부르고 1171(명종 원년)에 경상진합주(慶尙晉陜州)를 2개 도로 나누어 부르다가 1186년(명종 16년)에 경상주도(慶尙州道)로 하였다. 1204년(신종 7년)에 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로 하였으며 그후 다시 경상진안도(慶尙晉安道)라 불렀다.
  
 
1259년(고종 46년)에 명주도(溟州道)의 화주, 동주, 정주, 장주의 4개 주가 몽고 침략자들에게 점령되어 본 도의 평해, 덕원, 영덕, 송생을 나누어서 명주도에 소속시켰다.
  
 1290년(충열왕 16년)에는 다시 덕원, 영덕, 송생을 동계(東界)에 소속시켰으며, 1314년(충숙왕 원년)에 경상도로 정하니 본 도에 속한 경(京)이 1개, 목(牧)이 2개, 부(府)가 3개, 군(郡)이 30개, 현(縣)이 92개이다.

 

  상  주  목

   본래 사벌국(沙伐國)으로서 신라 첨해왕이 빼앗아서 주(州)로 만들어 법흥왕은 상주(上州)로 고치고 군주(軍主)를 두었으며 진흥왕은 주를 없애고 상락군(上洛郡)으로 만들었다. 신문왕이 다시 주를 설치하였고 경덕왕이 상주(尙州)로 고쳤으며 혜공왕은 다시 사벌주(沙伐州)로 고쳤다.
  
 
940년(태조 23년)에 다시 상주로 고쳤다가 그후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고쳤으며 983년(성종 2년)에 처음으로 전국에 12개 목(牧)을 설치하였을 때 상주는 그 중의 하나가 되었다. 995년(성종 14년)에 전국 12개 주에 절도사(節度使)를 두면서 귀덕군(歸德軍)이라고 불렀고 영남도(嶺南道)에 소속시켰다.
  
 
1012년(현종 3년)에 절도사를 없애고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하였으며, 1014년(현종 5년)에 상주안무사(尙州安撫史)로 고쳤고 1018년(현종 9년)에 목으로 정하여 전국 8개 목 중에 하나로 하였다.
  
 
달리 부르기를 상락(上洛)〔성종이 정한 명칭이다〕또는 상산(常山)〔세상에서 전하기를 주의 북면 임하촌(林下村)의 태씨(太氏) 성을 가진 사람이 적을 잡은 공로가 있었으므로 그 촌을 영순현(永順縣)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낙동강이 있고 공검(恭檢)이라는 큰 제방이 있으며〔1195년(명종 25년)에 사록(司錄) 최정분(崔正분)이 옛터를 따라 이 제방을 쌓았다〕이 주에 소속된 군(郡)이 7개, 현(縣)이 17개 있으며 관할하는 지사부(知事府)가 2개 있다.
 

     문 경 군

   본래 신라의 관문현(冠文縣)〔관현(冠縣) 또한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고 한다〕인데 경
     덕왕은 관산(冠山)으로 고쳐 고령군(古寧郡)이 관할하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년)에 상주목에 소속시켰으며 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다.
  
 1390년(공양왕 2년)에 감무(監務)14)
를 두고 가은현을 문경군에 소속시켰다〔현 북쪽에 주흘산
     이 있다〕.
  
 
이 군에 길이 험한 요해처(要害處)가 세 곳 있는데 초점(草岾)〔현 서쪽에 있다〕, 이화현(伊火
    縣)〔현 서쪽에 있다〕, 관갑천(串岬遷)〔현 남쪽에 있다〕이 그것이다.
 

     산 양 현

   본래 신라의 근품현(近品縣)〔품은 암(巖)으로도 쓴다〕인데 경덕왕은 가유(嘉猷)로 고쳐서
     예천군이 관할하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년)에 상주목에 소속시켰으며 후에 감무를 두
    었다가 1180년(명종 10년)에 없앴다.
 

     호 계 현

   본래 신라의 호측현(虎側縣)〔배산성(拜山城)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고령군이 관할하는 현으로 만들었다.
  
 
1018년(현종 9년)에 상주목에 소속시켰다.
 

     가 은 현

   본래 신라의 가해현(加害縣)인데 경덕왕은 가선(嘉善)으로 고쳐서 고쳐서 고령군이 관할하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년)에 상주목에 소속시켰으며 1390년(공양왕 2
     년)에 문경으로 소속을 옮겼다.

 

14) 고려 중기 이후 조선시대 초까지 적은 현에 두었던 감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