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령진 문경현지(鳥嶺鎭聞慶縣誌) / 집주 문경사

2014. 5. 14. 20:10나의 이야기






       

9. 조령진 문경현지(鳥嶺鎭聞慶縣誌)  집주 문경사 / 개인발간 향토자료 

2012/08/0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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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삼국사기지리지고려사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부 록

  

 

 

 集註                         

  문     경     사  

 

 

9조령진 문경현지(鳥嶺鎭聞慶縣誌)

 

차        례

  해 설
  번 역
  도로
  방리(坊里)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
  학교
  단묘(壇廟)
  공해(公
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樑)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隘)
  봉수
(烽燧)
  누정(樓亭)
  사찰(寺刹)
  고적(古跡)
  진보(鎭堡)
  명환(名宦)
  인물(人物)
  제영(題詠)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
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해 설]

  이 문경현지는 필자가 소장한 지구록(知舊錄)에 실려 있다. 지구록을 쓴 신사국은 좌의정을 지내고 세종(世宗) 묘정1)(廟庭)에 배향된 문희공(文僖公) 개의 후손으로 병옹(病翁) 신필정(申弼貞)의 아들이다. 1696년(숙종22년)에 태어나서 1768년(영조44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字)는 영숙(永叔)이고 뒤에 경일(敬日)로 개명했다. 1723년(경종3년)에 진사에 합격하여 전생서2)(典牲署) 직장3)(直長)을 지냈다.

  옛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는 뜻으로 지구록이라고 표지를 한 육필본이다. 병옹이 사귀어 온 인물들을 기록한 교유록(交游錄) 뒤에 읍지를 초록(抄錄) 하였다.

  교유록 서문의 끝에 경술(1730년:영조6년) 7월 고애자(孤哀子) 사국이 삼가 썼다는 기록이 있고, 지구록의 표지 오른쪽 위에 기사 오월(己巳五月)이란 묵서(墨書)에 의하면 1749년(영조25년) 5월임을 알 수 있다.

  현지의 내용은 전세(田稅)4) 등에서 기묘년을 기준 한 점으로 보아 1760년경으로 볼 수 있다.

  수록내용은 간략하며 도로, 방리 등 39개 편목에 이른다. 특히 논, 밭, 봉름 등 재정사항과 진공, 조적(양곡의 출납), 전세, 대동, 균세 등 조세부분을 세분하여 파악하고 조령진을 둔 때문인지 군병도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와 같이 기묘년 기준이나 조적(양곡의 출납), 봉름, 군병에서 여지도서에서 수량이 증가 된 것으로 보아 여지도서 보다 앞선 현지이다.
 

  [번 역]

조령진 문경현(鳥嶺鎭聞慶縣)
 

  [도로] : 대로, 소로

  [방리(坊里)]
   신동방(身東坊), 초곡방(草谷坊), 신북방(身北坊), 신남방(身南坊), 호서방(戶西坊), 호남방(戶南坊), 호현방(戶縣坊), 가동방(加東坊), 가현방(加縣坊), 가남방(加南坊), 가서방(加西坊), 가북방(加北坊)
   전체 13방, 편호(編戶)
5) 3,466호

  [건치연혁(建置沿革)]
   본래 신라의 관문현(冠文縣)인데 경덕왕이 관산(冠山)으로 고치어 고령군(古寧郡)에 소속시켰다.
   고려 때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고치고 현종이 상주에 소속시켰다가 뒤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공양왕 때에 감무(監務)를 두고 조선조 태조
6) 때 현감을 두었다.

  [군명(郡名)]
   관문(冠文),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 관산(冠山), 문희(聞喜), 관현(冠縣)

  [형승(形勝)]
   
연애잔도(緣崖棧道) :“벼랑에 의지하여 사다리 길을 만들었다”
   
함관촉도(函關蜀道)
 :“함곡관(函谷關) 같이 장하고 가기 힘들기는 촉나라 길처럼 험하다”
   
신증  응암(鷹巖) : 매바위

  [성지(城池)]
   
조령산성(鳥嶺山城)

  [관직(官職)]
   
현감(縣監) : 음직(蔭職) 6품관이다. 문경현이 옛날은 상주진(尙州鎭)에 속했는데, 1752년(임신:영조28년)에 따로 진을 설치하고 현감이 수성장을 겸했다.
   현에 좌수(座首) 1인, 별감(別監) 2인, 천총
7)(千摠) 1인, 파총8)(把摠) 2인, 지곡관(知穀官) 2인, 초관9)(哨官) 7인, 군관10)(軍官) 50인, 기패관(旗牌官) 27인, 아전(衙前) 32인, 지인(知印) 14인, 사령(使令) 15명, 군뢰11)(軍牢) 30명, 관노(官奴) 19구, 관비(官婢) 18구가 소속했다.

  [산천(山川)]
   주흘산(主屹山), 관혜산(冠兮山), 희양산(曦陽山), 재목산(梓木山), 장산(獐山), 소둔산(所屯山), 봉명산(鳳鳴山), 화산(華山), 이화현(伊火峴), 계립령(鷄立嶺), 조령(鳥嶺), 관갑천(串岬遷), 소야천(所耶川), 가은천(加恩川), 용연(龍淵), 견탄(犬灘), 조천(潮泉), 용추(龍湫), 인천(寅川)
   
신증 대미산(黛眉山), 공정산(公定山), 주현(周峴), 대야산(大耶山), 불일산(佛日山), 불한령(弗寒嶺), 고모령(高毛嶺), 갈령(葛嶺), 호항령(狐項嶺), 황장봉산(黃腸封山), 용뢰산(龍磊山), 야운령(野雲嶺), 광림산(廣林山), 어류동(御留洞), 선유동(仙遊洞), 용유동(龍遊洞), 용추(龍湫), 야유암(夜遊巖)

  [성씨(姓氏)]
   
본현 : 최(崔)씨, 장(蔣)씨, 박(朴)씨, 송(宋)씨, 전(錢)씨, 김(金)씨
   
가은
 : 전(全)씨, 윤(尹)씨, 변(邊)씨, 연(延)씨, 길(吉)씨
   
호계
 : 백(白)씨, 황(黃)씨, 김(金)씨, 나(羅)씨
   
병곡(柄谷)
 : 방(方)씨, 신(辛)씨
   
견천(絹川) 
: 방(方)씨, 황(黃)씨
   
벌천(伐川)
 : 심(沈)씨
   
잉을항(仍乙項)
 : 고(高)씨
   
신증 이(李)씨, 신(申)씨, 민(閔)씨, 채(蔡)씨, 남(南)씨, 원(元)씨, 정(鄭)씨, 주(周)씨, 권(權)씨12), 홍(洪)씨, 배(裵)씨, 임(林)씨, 안(安)씨, 전(田)씨, 유(柳)씨

  [풍속]
   소박함이 많고 꾸밈이 적다.

  [학교]
   향교(鄕校)

  [단묘(壇廟)]
   사직단(社稷壇)13), 문묘(文廟), 주흘산사(主屹山祠), 성황사(城隍寺), 여단(14)), 희양산사(曦陽山祠), 재목산사(梓木山祠), 관혜산사(冠兮山祠)
   
신증 한천향현사(寒泉鄕賢寺), 소양향현사(瀟陽鄕賢寺)

  [공해(公해)]
   객관15)(客館), 징원당(澄源堂), 이화당(利和堂), 무학당(武學堂), 군관청(軍官廳), 인리청(人吏廳)

  [제언(堤堰)]
   만세제(萬世堤), 기제(機堤), 비계제(比溪堤)

  [창고(倉庫)]
   읍창(邑倉), 가창(加倉), 호창(戶倉), 산성창(山城倉), 군기고(軍器庫)

  [물산(物産)]
   은어, 벌꿀(蜂蜜), 석이버섯(石이), 송이버섯(松이), 백화사(白花蛇), 잣(海松子), 웅담(熊膽)
   
신증 인삼, 복령(茯笭)

  [교량(橋樑)]
   마포원량(馬浦院樑), 소야교(所耶橋), 회연교(回淵橋), 견탄교(犬灘橋), 양산교(陽山橋)

  [역원(驛院)]
   유곡역(幽谷驛), 요성역(耳卯 城驛)

  [목장(牧場)]
   분양마(分養馬) 1필

  [관애(關隘)]
   고모성(姑母城)

  [봉수(烽燧)]
   선암산(禪巖山)봉수, 탄항산(炭項山)봉수

  [누정(樓亭)]
   경운루(慶雲樓)
   
신증 연정(蓮亭), 교구정(交龜亭), 천교정(遷喬亭), 열무정(閱武亭)

  [사찰(寺刹)]
   봉암사(鳳巖寺), 오정사(烏井寺), 혜국사(惠國寺), 추심사(推尋寺)

  [고적(古跡)]
   호계폐현(虎溪廢縣), 벌천부곡(伐川部谷), 고곡부곡(高谷部谷), 견천부곡(絹川部谷), 마량부곡(馬良部谷), 잉을항소(仍乙項所)
   
신증 가은폐현(加恩廢縣), 경운루(慶雲樓), 조령원(鳥嶺院), 요광원(要光院), 관음원(觀音院), 화봉원(華封院), 관갑원(串岬院), 회연원(回淵院), 개경원(開慶院), 불정원(佛井院), 동화원(桐華院), 고모성(姑母城), 고부성(姑夫城), 견훤성(甄萱城), 비홍정(飛鴻亭), 봉생정(鳳笙亭), 빙허루(憑虛樓), 금학사(金鶴寺)

  [진보(鎭堡)]
   조령진(鳥嶺鎭) 별장(別將)

  [명환(名宦)]
   
고려 : 흥달(興達)
   
조선 : 허종항(許從恒), 조추(趙秋), 신증 신단(申湍), 신길원(申吉元), 이덕령(李德齡)

  [인물(人物)]
   
신라 : 아자개(阿慈介)
   
효자(孝子) 조선
 : 조형(趙珩)
   
열녀(烈女) 조선
 : 최씨(崔氏)
   
신증
 안귀손(安貴孫)〔한천사에 입향되었다〕, 신처사(申處士) 신숙빈(申叔彬), 김낙춘(金樂春) 임백당(忍白堂), 신참판(申參判), 신병옹(申病翁)
   
효자
 : 김시진(金始振), 주득천(周得天)
   
열녀 : 윤소사(尹召史)

  [제영(題詠)]
   분단명협리(奔湍鳴峽裏) : 달리는 여울은 골짜기를 울리고
   동밀청운합(洞密晴雲合) : 동구는 그윽하여 구름 가운데 맑고
   산기혼여무(山氣昏如霧) : 산속 아지랑이 안개같이 아득하고

   팔영(八詠) : 주흘(主屹)의 영사(靈祠), 관갑(串岬)의 사다리길(棧道), 창밖의 오동나무(窓外 梧桐), 뜰 앞의 버드나무(庭前楊柳), 푸른 절벽의 단풍(蒼壁 楓丹), 그늘진 벼랑에 흰눈(陰崖白雪), 오정사 종루(烏井鐘樓), 용담폭포(龍潭瀑布)  
   
신증 관건하간조화물(關鍵何看造化物) : 관(關)이 막힌 것은 잠시봐도 조물주가 이루었다.

  [한전(旱田)]
   1720년 양부(경자:숙종46년 量付) 1,836결(結) 87부(負) 8속(束)
  각 연도 경작지 2결 25부를 더하여
  합계 1,839결 12부 8속 안에서
  각종 재해지와 묵밭 506결 89부 6속을 감하면,
  1759년(기묘:영조35년) 경작지 1,332결 23부 2속이다.

  [수전(水田)]
   1720년 양부(庚子量付) 965결 62부 7속
  각 연도 경작지 1결 12부를 더하여
  합계 966결 74부 7속 안에서
  각양 재해지와 묵밭 115결 44부 4속을 감하면,
  1759년 경작지 851결 30부 3속이다.

  [진공(進貢)]
   인삼 6전(), 적복령(赤茯) 3냥, 백복령(白茯) 3냥, 복신(茯神) 3냥, 백작약 1냥, 자초용(紫草茸) 8전, 고루인(苽蔞仁) 1냥, 감국(甘菊) 8전, 시호(柴胡) 8냥, 연교16)(連翹) 1냥

  [조적(糶糴 : 양곡의 출납)]
   원호(元戶) 쌀, 좁쌀〔大小米〕1,536섬〔石〕4말〔斗〕7홉〔合〕5작〔舍〕
   피잡곡(皮雜穀)    1,495섬 8말 4되 8홉 8작

  [전세(田稅)17)]
   쌀 381섬 9말 3되 3홉, 콩 271섬 14말 8되 1홉 6작을 호조에서 정한대로 작전18)(作錢)하여 4월에 육로로 5일 걸려서 서울의 호조에 납부하는데 1759년 수조(收租) 기준이다.

  [대동(大同)]
   쌀 600섬 8말 2되는 저축하여 두고 910섬과 작목19)(作木) 39동(同)은 반은 돈으로 받아 4월에 육로로 서울의 선혜청(宣惠廳)에 납부하는데 1759년 수조(收租) 기준이다.

  [균세(均稅)]
   결세전(結錢) 1,086냥(兩) 7전(錢) 9푼〔分〕과 선무목(選武木) 45필
   전세로 받는 쌀〔田稅米〕21섬 8말 6되 9홉 5작, 콩 42섬 11말 9홉 5작은 호조에서 정한 데로 작전(作錢)하고, 대동목
20)(大同木) 4필(疋) 6자〔尺〕4치〔寸〕는 반은 돈으로 하여 4월에 육로로 5일 걸려 서울의 균역청(均役廳)에 납부한다.

  [봉름(俸)]
   아록21)(衙祿) 쌀 10섬 9말 5홉 2작, 콩 3섬 4말 4되 8홉 8작
   공수위(公須位) 쌀 3섬 1말 7되 7작, 콩 2섬 1말 1되
   관수(官需) 쌀 180섬, 사객지공미
22)(使客支供米) 50섬, 기름, 조청, 종이값에 드는 쌀〔油淸紙價米〕66섬 10말, 시탄가23)(柴炭價), 치계24)(雉鷄), 대금 사람마다〔每夫〕3냥 6전씩 대동부(大同夫)에게서 받아들인다.

  [군병(軍兵)]
   훈련도감(訓鍊都監) 포보(砲保) 120명
   어영청(御營廳) 정군(正軍) 40명, 자보(資保) 43명, 상납보(上納保) 150명
   금위영(禁衛營) 정군(正軍) 66명, 상납보(上納保) 107명
   병조(兵曹) 기병(騎兵) 98명, 보병 188명, 금군보(禁軍保)
25) 5명, 내취보(內吹保)26)
 1명
   장악원(掌樂院) 악공보(樂工保) 5명
   호조(戶曹) 장인보(匠人保) 50명
   감영(監營) 무부
27)(巫夫) 군뢰28)
(軍牢) 1명
   가산성(架山城) 정군(丁軍) 7명
   금오산성(金烏山城) 정군(丁軍) 4명
   우병영
29)(右兵營) 친아병30)
(親牙兵) 6명
   발군(撥軍) 70명
   봉수군(烽燧軍) 50명
   속오본영군(束伍本營軍) 773명
   각보(各保) 150명

1) 공로 있는 신하를 죽은 뒤에 종묘(宗廟) 제사에 부제(祭)하는 것.
2) 조선 때 궁중의 제사에 쓸 양, 돼지 따위를 기르는 일을 맡은 관청.
3) 조선 때 종 7품 벼슬.
4) 토지에 부과하는 조세.
5) 호적에 등재된 호수.
6) 태종의 잘못된 기록임.
7) 조선 때 각 군영에 소속했던 정 3품 무관 벼슬
8) 조선 때 각 군영에 소속했던 종 4품 무관 벼슬
9) 조선 때 한 초(哨)를 거느리던 종 9품 무관직. 각 군영의 위관(尉官)
10) 무관(武官). 장교의 통칭
11) 군대에서 죄인을 다루던 병졸. 현재의 헌병
12) 본문의 유씨는 잘못된 기록임
13) 사직(社稷)은 토지 신과 곡식의 신. 즉 국가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
14) 각 고을의 북쪽에 단을 쌓아 후사(後嗣)가 끊어진 혼령을 제사 지냈다.
15) 조선 때 각 고을의 관사
16) 개나리, 개나리 열매로 내복약에 쓰임
17) 토지에 부과하는 조세
18) 전세(田稅)를 받을 때 쌀, 콩, 무명 대신 값을 처서 돈으로 받게 하는 일
19) 쌀이나 콩 대신 무명으로 전세(田稅)를 받아들이던 일
20) 대동법에 의하여 거두는 무명
21) 지방 수령의 식구 몫으로 주던 식료
22) 다른 나라에 가는 사신에게 음식 접대비
23) 땔나무와 숯값
24) 꿩과 닭
25) 금군은 용호영으로 왕실의 수위 왕의 신변보호를 맡는데 직접 복무하지 않고 비용을 내는 보인(保人)
26) 내취는 선전관청에 딸렸던 어전의 취타수로 직접 종사하지는 않고 비용을 내는 보인
27) 무당 서방
28) 군대 안에서 죄인을 다스리는 병졸
29) 1603년(선조 36년) 이후 경상도 진주에 두었던 병마절도사의 주영(駐營)
30) 대장의 휘하에 있는 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