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집주 문경사

2014. 5. 14. 20:11나의 이야기






       


8.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집주 문경사 / 개인발간 향토자료 

2012/08/0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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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삼국사기지리지고려사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부 록

  

 

 

 集註                         

  문     경     사  

 

 

8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차        례

  해 설
  번 역
      문경현
  한전(旱田)
  수전(水田)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산천(山川)
  토산(土産)
  공서(公署)
  학교(學校)
  궁실(宮室)
  봉수(烽燧)
  우역(郵驛)
  관량(關梁)
  사묘(祠廟)
  사찰(寺刹)
  고적(古跡)
  명환(名宦)
  인물(人物)
  열녀(烈女)
     상주목(尙州牧)


  [해 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발간되고 130여년이 지나자 수록한 내용을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어 편찬한 것이 동국여지지이다. 임진왜란후에 전국적인 지리사항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인 동국여지지는 9권 10책으로 8도의 각 고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상좌도 36개 고을이 누락되었다.

  아직도 내용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도 수록되지 않았고 저작자도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발간연대도 수록내용이 효종조까지인 점을 참고하여 현종조(1660년~1674년)로 추정할 뿐이다.

  여지승람의 증보와 변동사항을 보완하기 위해 발간하면서 역대사지(歷代史志)를 참고하여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이후 고조된 역사 지리적인 면에 관심이 반영되었다.

  수록 편목에서 토지를 한전(旱田)과 수전(水田)으로 나누어 적고 빈칸으로 두어 국가의 전제(田制)를 수정하기를 기다려 기록하도록 하였다.

  현재의 문경지역은 4권의 하권에 문경현과 상주목으로 수록하고 동로지역은 예천군에 단편적이나마 기록이 있을 것이나 예천이 경상좌도라 4권의 상권이 누락되어 수록하지 못한다.

경상도

-

  우도    -  문경현

-

   문경 마성 호계 점촌 가은 농암

 

 

           └  상주목

-

   영순 산양 산북

 

 좌도     -  예천군

   동로

  서울대학교 고도서(古圖書)로 보존되어 오던 것을 아세아문화사에서 1983년 전국지리지총서로 영인 발간했다.
 

  [번 역]

문   경   현(聞慶縣)
 

   동쪽은 상주의 경계까지 20리, 남쪽은 함창현의 경계까지 54리, 서쪽은 충청도 연풍현 경계까지 18리, 북쪽은 연풍현의 경계까지 36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377리이다.

  [한전(旱田)]

  [수전(水田)]

  [건치연혁(建置沿革)]
   본래는 신라의 관문현(冠文縣)인데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고도 하고 관현(冠縣)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관산으로 고치어 고령군(古寧郡)에 소속시켰다.
   고려 초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고치고 현종 때 상주에 소속시켰다가 뒤에 문경으로 고치었다. 공양왕 때에 문경현을 다시 두고 조선조에는 그대로 관장하게 됐다.
   관원(官員)은 현감과 훈도가 각 1인이다.

  [군명(郡名)]
   관문(冠文), 관산(冠山), 문희(聞喜)

  [형승(形勝)]
   
영남인후(嶺南咽喉)
 : 홍귀달(洪貴達)의 유곡역관(幽谷驛館) 기문(記文)에“영남의 목구멍과 같다”고 하였다.
   
함관촉도(函關蜀道)
 : 어변갑(魚變甲)의 시에 방비의 시설이“함곡관(函谷關) 같이 장하고 촉나라 길과 같아”가기 힘들다고 하였다.
   
연애잔도(緣崖棧道) : 권근(權近)의 기문에 관갑(串岬)이 가장 험하여“벼랑에 의지하여 사다리길을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산천(山川)]
   주흘산(主屹山) : 현의 북쪽에 있는 진산(鎭山)1)으로 돌산이 치솟아 그 기세가 웅장하고 뛰어나다.

    서거정(徐居正)의 시

험한 산은 하늘 끝에 닿았고
깎아지른 벼랑은 구름 속에 들어 있다.
만물을 윤택하게 함에는 비록 그 자취 없으나
구름을 일으킴에는 스스로 공이 있다.

  
   조령(鳥嶺) : 현의 서쪽 27리, 연풍현의 경계에 있는데 세상에서는 새재〔草岾〕라고 부르는데 수백리에 자리잡아 굳게 막아섰다. 풍기군 소백산이 가로지르며 죽령을 이루고 또 조령을 이루며 하늘이 만든 험한 곳으로 남북을 갈라 놓는다. 경상도를 영남이라고 부르는 것도 조령의 남쪽이라는 뜻이다.

    조선조 장유(張維)의 부(賦)에

아아 이 고개는 높고 높아서
웅장하고 빼나기로 나라에서 이름난 곳
기세가 어우러져 가로질러 놓으니
풍도와 기상마저 남북으로 갈랐네.
여러 산 끌어와서 둘러 않히고
그윽한 골짜기 나눠 언덕 이루니
오솔길에 사람 자취 이어지는데
위험한 사다리 길이 산등성에 걸렸다.
하늘이 낸 험한 곳에 적이 없음을 믿고
어찌 많다고 만족하여 자랑할건가.
아아 이 고개는 대단히 높고
만고를 내려오며 높게 솟았다. 

 

   계립령(鷄立嶺) : 속칭 겨릅산〔麻骨山〕이라고 하는데 방언으로 서로 비슷하다. 현의 북쪽 28리에 있는데 신라 때의 옛 길이다.
   
관혜산(冠兮山)
 : 현의 남쪽 4리에 있다.
   
희양산(曦陽山)
 : 가은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옛 성이 있어 3면이 모두 석벽인데 옛날 군사창고가 있었다.
   
재목산(梓木山)
 : 가은현의 남쪽 2리에 있다.
   
장산(獐山)
 : 호계현의 북쪽 1리에 있다.
   
소둔산(所屯山)
 :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봉명산(鳳鳴山)
 : 현의 동쪽 8리에 있다.
   
화산(華山)
 : 가은현의 서쪽, 본 현에서 67리에 있다.
   
이화현(伊火峴)
 : 현의 서쪽 18리, 충청도 연풍현 경계 길로 대단히 험하다.
   
소야천(所耶川)
 : 현의 남쪽 6리에 있다. 그 근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계립령에서 나오고 하나는 새재에서 나와 현의 남쪽 4리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22리를 흘러 용연에서 가은천과 합친다.
   
가은천(加恩川)
 : 가은폐현에 있다. 그 근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속리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희양산에서 나와 합쳐 동쪽으로 흘러서 소야천과 합친다.
   
호계(虎溪) 
: 호계폐현에 있고 현의 서쪽을 경유하는 시내라 호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소야천, 가은천과 합쳐 현의 남쪽으로 22리를 흘러 물을 건널 수 있는 나루가 있어 견탄이라 하며 남쪽 함창군 경계로 흐른다.
   
조천(潮泉)
 : 조천은 둘이 있다. 하나는 현의 남쪽 소둔산에 있는 것으로 물이 구멍으로부터 나오는데 그 근원이 줄같으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솟아 넘치어 3리까지 번지어 가서 멎는 것이 조수가 왕래하는 것과 같다.
  또 하나는 현의 남쪽 5리 정곡리에 있는 것으로 흙 구멍에서 매일 세 번 뿜어 넘쳐 동구로 흘러 소야천으로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물미리〔水推〕라고 부른다.
   
용추(龍湫) : 새재의 남쪽에 있다. 벼랑에 시내가 흘러 폭포를 이루는데 사면과 밑이 모두 돌이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세상에 전하기를 용이 오른 곳이라고 전한다.

    조선조 허적의 시

어느 해 성난 바람 우레를 호령하여
바위를 깨뜨려 두 벽을 열어두니
샘물 쏟아지듯 골짜기를 진동하고
나누어 거듭 쌓인 돌 대(臺)를 이룬다.
굽어보면 검은 동구에 용이 움직이고
쳐다보면 벼랑 그늘 내리 누른다.
잠기고 뛰는 때가 있어 보기 어려워
먼길을 가다가도 다시 돌아와 쉬는구나.

  

   인천(寅川) : 호계현의 동북쪽에 있는데 현에서 거리가 32리이다.

  [토산(土産)] 
   웅담, 벌꿀, 황납(黃蠟), 석이버섯, 송이버섯, 백화사(白花蛇), 잣(海松子), 은어

  [공서(公署)]
  [유곡도(幽谷道) 찰방사(察訪司)]
 :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 유곡, 요성, 덕통, 수산, 낙양, 낙동, 구미, 쌍계, 안계, 대은, 지보, 소계, 연향, 낙원, 상림, 낙서, 장림, 낙평, 안곡 등 19역을 거느린다.
   찰방 1인이 있다.

  [학교(學敎)]
   향교 : 현의 동쪽 2리에 있다.

  [궁실(宮室)]
   객관(客館), 경운루(慶雲樓)〔객관의 동남쪽에 있다〕

  [봉수(烽燧)]
   
선암산(禪巖山)봉수 : 호계폐현의 북쪽 7리에 있다. 북쪽으로 탄정산에 연락하고 동쪽으로 상주 산양현의 소산에 연락하며 남쪽으로 함창현의 성산에 연락한다.
   
탄정산(炭頂山)봉수 : 현의 북쪽 31리에 있다. 남쪽으로 선암산에 연락하고 서쪽으로 충청도 연풍현의 겨릅재에 연락한다.

  [우역(郵驛)]
   
유곡역 :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 찰방사가 있는 본 역이다.

    허적의 시

깊은 산 가운데 옛 역이 있으니
집 몇 채 연기 숲을 가까이 했는데
가는 길이 시내 둑에 잇닿았는데
드문드문 처마에 나무 그늘이 닿는다.

  
  요성역(耳卯 城驛) : 현의 동쪽 2리에 있다.

    조선조 이규보(李奎報)의 시

유곡의 하루 밤을 술 취해 자고나서
요성길 한나절에 말 멍에 풀어 쉰다.
돌아온 완적(阮籍)
2)은 휘파람만 오래 불고
쓸쓸한 상여(相如)는 벼슬에 실증 났네
역 아전들 송영(送迎)은 언제쯤 끝이나고
사신들의 내왕은 어느 때 멎으려나
나 같이 한가로운 길손은 다행이다
와도 번거롭히잖고 가는 것도 마음대로니

  
   조령원(鳥嶺院) : 새재의 등마루 동쪽에 있다.
   
요광원(要光院) 
: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 
   
관음원(觀音院)
 : 계립령 아래에 있다.
   
관갑원(串岬院)
 : 관갑의 북쪽에 있다.
   
회연원(回淵院) 
: 용연의 위에 있다.
   
개경원(開慶院) 
: 호계폐현의 서쪽 3리에 있다.
   
보통원(普通院)
 : 현의 남쪽 45리에 있다.
   
동화원(洞華院)
 : 현의 서북쪽 15리에 있다.
   
견탄원(犬灘院)
 : 호계폐현 북쪽 견탄 위에 있다. 조선조 초에 화엄진사(華嚴眞師)가 중수했고 권근(權近)이 지은 기문이 있다.
   
화봉원(華封院) : 현의 남쪽 4리에 있고 세상에서는 초곡원(草谷院)이라 부른다.

  [관량(關梁)]
   조령관(鳥嶺關) : 조령의 위에 있다. 옛날 관문을 만들고 성을 쌓아 지키던 곳인데 지금은 못쓰게 됐다. 남은 터는 영남대로의 목구멍과 같아 지형이 험하기는 촉나라 길 같고 함곡관 같이 험하다.

     조선조 허적의 시

벼랑을 끼던 길 논두렁을 만나도
높은 산 험한 고개 다시 솟았다.
남쪽으로 나눈땅에 관문을 거듭하고
세력이 천지간에 한 기세로 웅장하다.

  
   관갑구(串岬口) : 조령의 남쪽 용연의 동쪽 벼랑인데 세상에서는 토천구(兎遷口)라고도 한다. 벼랑은 높고 계곡이 깊어 돌을 파서 사다리 길을 만들었는데 지나는 사람 좁고 험하여 모두 두려워한다. 세상에 전해오기를“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쳐 와서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곳으로 길을 열어 갈 수가 있어 토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북쪽의 단봉(斷峯)에 돌로 쌓은 성터는 옛날에 지키던 곳이다.

  [사묘(祠廟)]
   
사직단(社稷壇)3) : 현의 서쪽에 있다.
   
문묘(文廟)
 : 향교에 있다.
   
주흘산사(主屹山祠)
 : 사전(祠典)에 실려 있기를“봄, 가을에 향을 내려보내 소사(小祠)를 지낸다”고 하였다. 관혜산(冠兮山) 또한 주흘산사에서 부제(付祭)한다.
   
성황사
 : 현의 북쪽 2리에 있다.
   
여단( 壇)4)
 : 현의 북쪽에 있다.
   
희양산사(曦陽山祠), 재목산사(梓木山祠), 장산사(獐山祠) : 모두 본 고을에서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사찰(寺刹)]
   
봉암사(鳳巖寺) : 양산사(陽山寺)라고도 하는데 희양산에 있다. 절의 남쪽에 굉장히 크고 넓은 누각이 있고,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중〔僧〕지증(智證)의 비와 이몽유(李夢遊)가 지은 중〔僧〕진정(眞靜)5)의 비가 있다.
   
금학사(金鶴寺)
 : 봉명산에 있다.
   
오정사(烏井寺) : 선암산에 있다.

  [고적(古跡)]
   가은폐현(加恩廢縣) : 현의 남쪽 41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가해현(加害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가선(嘉善)이라고 고치어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초에 가은으로 고치고 현종 때 상주에 소속시켰다가 공양왕 때에 문경현에 소속하게 되었다.
   
호계폐현(虎溪廢縣) : 현의 동남쪽 40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호측현이었으며 배산성(拜山城)이라고도 하였는데 경덕왕 때에 호계로 고치어 고령군(古寧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에는 상주에 소속하였으며 조선조의 태종 때에 문경현에 소속되었다.

  [명환(名宦)]
   
고려 흥달(興達) : 태조가 927년(태조10년)에 강주(康州)를 순행하려고 사갈이성(思葛伊城)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먼저 그 아들을 보내 귀순하였으므로 태조가 가상히 여겨 청주록(靑州祿)을 하사하였고, 맏아들 준달(俊達)은 진주록(珍州祿)을, 둘째 아들 웅달(雄達)은 한수록(寒水祿)을, 셋째 아들 옥달(玉達)은 장천록(長淺祿)을 하사하였다.
   
조선 허종항(許從恒), 조추(趙秋) : 세종 때에 모두 문경현감으로 다스린 업적이 있었다.

  [인물(人物)]
   
신라 아자개(阿慈介) : 가은현 사람인데 농사로 자활하다가 뒤에 집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아들이 넷이 모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는데, 견훤(甄萱)은 곧 그 중의 한 아들이다. 처음 견훤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들에서 밭을 갈고 어머니가 수풀에 눕혀 두고 점심을 했는데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듣고 이상히 여겼다.
  고기(古記)에“옛날에 한 부자가 무진주(武珍州) 북촌(北村)에 살았다. 한 딸이 있었는데 몸매와 용모가 단정하였다. 어느 날 그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매일 밤 자줏빛 옷을 입은 사나이가 와서 잠자리를 같이하고 간다’하므로 그 아버지가 말하기를 ‘네가 실을 바늘에 꿰어 그 옷에 찔러 놓아라’하여 그대로 하였다. 날이 밝자 그 실을 찾으니 북쪽 담 밑 큰 지렁이 허리에 바늘이 찔려 있었다. 그로 말미암아 아이를 베어 견훤을 낳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본전(本傳)과 다르니 아마 믿을 만한 것이 못될 것이다”하였다.
   
조선 조형(趙珩) : 벼슬이 사재 부정(司宰副正)에 이르렀고 어머니를 위하여 시묘하면서 피눈물을 흘려 슬피 울기를 3년 동안 하였으며,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도 그렇게 하였다. 세종이 그 효성을 듣고 특별히 1품을 가자(加資)6)하고 정려를 세웠다.

  [열녀(烈女)]
   
최씨(崔氏) : 조선시대 사직(司直) 안귀손(安貴孫)의 아내이다. 가은현에 살았으며, 그의 아버지 참판(參判) 치운(致雲)이 시와 글씨를 가르쳤다. 남편이 죽으니 예절에 지나치게 애통해 하며 지은 제문(祭文)에

봉황이 함께 날 때 즐겨 노래 불렀는데
봉(鳳)이 돌아오쟎아 황(凰)이 홀로 운다.
하늘에도 물어 봐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
하늘같고 바다같이 넓은 한(恨)이 끝이없다.

  
끝내 소복을 하고 목숨을 다했다.

 

상   주   목(尙州牧)
 

  [건치연혁(建置沿革)]
   옛 사벌국(沙伐國)인데〔사불(沙弗)이라고도 한다〕 신라 첨해왕이 빼앗아 사벌주를 삼았다. 법흥왕 때 상주(上州)로 고쳤다. 진흥왕 때 상락군(上洛郡)을 삼았고, 신문왕 때 다시 주를 설치하고 757년(경덕왕16년)에 상주(尙州)를 설치했고, 혜공왕 때 다시 사벌주를 삼았다.
   고려 초에 다시 상주로 고쳤고,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고쳤다. 983년(성종2년)에 상주목으로 고치고 주에 귀덕군(歸德軍)을 두고 현종 때 군(軍)을 폐지하고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했다. 뒤에 상주목으로 고쳤다.
   조선조는 그대로 따르고 세조 때에 비로소 진(鎭)을 설치하고 22개 진관(鎭管)을 관장했다.
 
  현 5 : 문경

  [산천]
   사불산(四佛山) : 산양폐현 북쪽에 있는데 주(州)와의 거리가 99리이다.

    권근(權近)의 기문에

  산꼭대기에 큰 돌이 있고 뿌리가 떠서 서있는데 사면에 모두 부처를 새겼으니 그 때문에 사불산이라 이름하였다. 온 나라의 부처를 신봉하는 자들이 가장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봉우리는 법왕이고 그 남쪽 돌에 또 미륵보살의 얼굴을 새기고 옆에 작은 절을 지었는데 미륵암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 때 창건한 것이라 한다.

   대조현(大鳥峴) : 산양현 북쪽에 있는데 상주에서 88리이다.
   
낙동강(洛東江) : 그 근원은 태백산에서 나와 안동부를 경유하여 용궁 예천을 지나 상주의 동북쪽에서 예천의 사천(沙川), 문경의 호계수(虎溪水) 및 군위 병천(幷川)을 합류하여 강을 이루어 남쪽으로 50여리 흘러 선산부 경계로 드는데 바다에 들 때까지 흘러가는 땅은 달라도 모두 낙동(洛東)이라 하고 한도를 관통한다.

  [토산(土産)]
   
옥등석(玉燈石) : 대조현에서 난다.

  [봉수(烽燧)]
   
산양현 소산(所山)봉수 : 산양현 동쪽에 있고, 서쪽으로 문경 호계현 선암산(禪岩山)에 응하고 동쪽으로 용궁현 용비산에 응한다.

  [우역(郵驛)]
   
반암원(班巖院) : 산양현 서쪽에 있는데 주까지 57리이다.

  [사찰(寺刹)]
   
미륵암(彌勒庵) : 사불산에 있다.

  [고적(古跡)]
   
산양폐현(山陽廢縣) : 주의 북쪽 63리에 있다. 본래 신라 근품현(近品縣)〔달리 근암(近巖)이라고도 하였다〕인데 경덕왕 때 가유(嘉猷)로 고치고 예천군 소속이 되었다. 고려 때 지금이름으로 고치고 현종 때에 상주목에 예속하였다가 뒤에 산양현이 되었으나 명종 때 다시 편입되어 조선조에도 그와 같다.
   
영순폐현(永順廢縣) : 주의 북쪽 35리에 있다. 본래 상주의 북면 임하촌(林下村)이다. 고려 때 임하촌의 태(太)씨 성을 가진 사람이 도적을 잡은 공이 있어 영순현으로 승격했다.

 

1) 도성이나 각 고을을 진호하는 주산.
2) 진나라 사람으로 휘파람을 잘 불어 유명하다.
3) 사직(社稷)은 토지 신과 곡식의 신, 즉 국가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
4) 각 고을의 북쪽에 단을 쌓아 후사(後嗣)가 끊어진 혼령을 제사지냈다.
5) 정진(靜眞)의 착오 기록임.
6) 정 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品階)를 올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