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 집주 문경사

2014. 5. 14. 20:15나의 이야기






       

4.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집주 문경사 / 개인발간 향토자료 

2012/08/0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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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삼국사기지리지고려사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부 록

  

 

 

 集註                         

  문     경     사  

 

 

4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차      례                         

  해 설
  번 역
     경상도
        예천군
        상주목
        문경현
  속현(屬縣)
  명산(名山)
  사경(四境)
  호수(戶數)
  군정(軍丁)
  토성(土姓)
  궐토(厥土)
  풍기(風氣)
  개간한 밭[墾田]
  토의(土宜)
  토공(土貢)
  약재
  토산(土産)
  희양산 석성(曦陽山石城)
  역(驛)
  봉화(烽火)
  험조처(險阻處)
  소둔 산록(所屯山麓)


[해 설]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은 1454년(단종2년)에 정인지 등이 편찬하고 실록청이 편집 간행했는데 163권 중 실록은 127권이고 세종의 명령으로 편찬한 책을 모은 것이다.

실록 제148권에서 지리지가 실려 있으나 역사의 부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독자적 지리책으로 8권 8책이다. 15세기 조선시대 경제, 사회, 군사, 재정, 교통, 산업, 지방제도가 기록되어 있어 역사 지리학과 지방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인문, 자연, 지리와 경제, 군사적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는 체제로 그 후에 지리지 편찬의 기본이 되었다.

  실록은 4대사고(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보관해 오다가 임진왜란으로 1벌만 남은 것을 1606년(선조39년)에 3벌을 만들어 새로운 사고(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에 보관해 오다가 사고는 왜인에 의해 없어지고 나머지 3사고본이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실록지리지는 그전의 관청에서 발간한 지리책과 관련이 깊은데 1424년(세종6년) 변계량(卞季良)에게 지지(地誌)를 지어 올리도록 명령하여 춘추관에서 맡아 전국적인 자료수집 끝에 1425년(세종7년) 경상도지리지가 발간되었다.

  나머지 7도의 지리지를 모아 편찬한 것이 신찬팔도지리지로 1432년(세종14년)에 윤회(尹淮), 신장(申檣), 맹사성(孟思誠), 권진(權軫) 등이 편찬하여 바쳤는데 이것을 다소 가감, 수정, 정리하여 실록지리지가 되었다. 즉 경상도지리지 같이 각도 지리지를 모아 신찬팔도지리지를 만들고 이를 수정하여 실록지리지가 된 것이다.

  내용은 대체로 20개 항목인데 연혁, 사경(四境), 산천, 궐토(闕土), 풍기(風氣), 토의(土宜), 호구(戶口), 군정(軍丁), 성씨, 간전(墾田), 토산(土産), 토공(土貢), 약재, 목장, 어량(魚梁), 염소(鹽所), 청장(鐵場), 도자기소(陶磁器所), 고적(古跡), 역전(驛田), 조운(漕運) 등으로 기재 내용이 정확하게 지방의 특색을 파악하고 산업을 중시하여 땅과 인간의 상관론에 맞게 항목을 배열했다.

  세종장헌대왕실록 제150권 지리지에 8도에 소속된 138군현을 수록했는데 현재의 문경지역은 경상도의 예천군, 상주목, 문경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9년 편사한 세종실록지리지 8권 8책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있고 1937년 조선 총독부 중추원에서 교정 세종실록지리지를 출판했다.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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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대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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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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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 동로 -       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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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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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현 : 산양현 - 산양 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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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현 : 영순현 - 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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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곡 : 무림 -    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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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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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 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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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현 : 가은현 - 가은 농암

 

 

 

 

 

 -

   속현 : 호계현 - 호계 점촌

  198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전국지리지총서(全國地理誌叢書)로 영인(影印) 발행했다.
 

[번 역]

  경  상  도

  삼한(三韓)시대는 진한(辰韓) 땅이었고, 삼국시대에는 신라가 되었는데 고려 태조가 신라와 후백제35)를 병합하고 동남도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설치하고 경주에 관청을 두었다.

  995년(성종14년, 을미)에 경내(境內)를 10도로 나눌 때 상주 관할은 영남도(嶺南道), 경주 금주(金州) 관할은 영동도(嶺東道), 진주 관할은 산남도(山南道)라 했다. 그 뒤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으나 합하여 경상도로 했다.

  지금 국사(國史)를 상고 하건데 1106년(예종 원년, 병술)에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 하고 1171년(명종 원년, 신묘)에 경상주도(慶尙州道), 진합주도(晉陜州道)로 나누고 1186년(명종 16년, 병오)에 비서승(秘書承) 이계장(李桂長)을 동남해 도부서사(東南海都部署使) 겸 경상주도 안찰사(慶尙州道按察使)로 삼았다고 하였으니 경상도의 이름은 여기서 비롯되었는가 싶다.

  1204년36)(신종14년, 갑자)에 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로 고치고 그 뒤에 또 경상진안도(慶尙晉安道)로 고쳤다. 1314년(충숙왕 원년, 갑인, 원나라 연우37) 원년)에 다시 경상도로 하여 조선조에도 그대로 따라 도관찰사(都觀察使)를 두고 관청을 상주에 두었다.

  경상도의 동남쪽에는 큰 바다가 있고 서쪽경계는 지리산의 함음현(咸陰縣)의 육십령〔峴〕에 이르고, 북쪽은 죽령을 경계로 하여 문경현 땅 새재〔草岾〕에 이른다. 대구군(大丘郡)이 경상도의 중앙이고 동서 376리의 남북 448리이다.

   관할〔所管〕: 유수부(留守府) 1, 대도호부(大都護府) 1, 목(牧) 3, 도호부 6, 군(郡) 15, 현령

    (縣領)6, 현감(縣監)이 34곳이다.
   명산이 5이니 주흘(主屹)〔문경에 있다〕, 사불(四佛)〔상주에 있다〕산이다.
   대천(大川)이 3이니 첫째는 낙동강이다. 근원이 세 곳인데 그 중 하나가 문경현 북쪽 새재〔草
    岾〕에서 나온다.
   역승(驛丞) : 10인
   유곡도(幽谷道) 승(丞)의 관할 하는역〔所管驛〕 20 : 요성, 덕통, 낙양, 낙동, 낙원, 낙서, 장

    림, 청리 신역, 공성 신역, 상평, 구미, 연향, 안곡, 상림, 쌍계, 안계, 수산, 용궁 신역, 지보, 소

    계.

 

예  천  군

   본래 수주현(水酒縣)인데 경덕왕이 예천군으로 고쳤다. 
   고려 때 보주(甫州)로 고치고 안동 소속이 되었다. 
   1172년(명종2년, 임진)에 태자의 태를 묻고 기양현(基陽縣)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 
   1204년(신종7년, 갑자, 송나라 영종 가태
38)
4년)에 남도 초토 병마사(南道招討兵馬使) 최광의

    (崔光義)가 동경(東京:경주)의 적을 맞아 기양대첩(基陽大捷)에서 이겨 지보주사(知甫州事)로 승

    격했다.
   1413년(조선조 태종13년, 계사)에 여러 고을 이름을 고칠 때 보천군(甫川郡)으로 하고 1416년
    (병신:태종16년)에 예천군으로 고쳤다.

   소(所) 1 : 동로(冬老)
   사경(四境) : 서쪽은 상주 산양 38리
   동로소(東老所) 속성(續姓) 2 : 김(金)씨, 임(林)씨

 

상  주  목

   목사(牧使) 1인, 판관(判官)39) 1인
   신라 첨해왕이〔248년(위 우공 정시
40)
 9년, 무진)〕사벌국을 빼앗아 주를 삼았다. 법흥왕이〔525
    년(양 무제 보통 6년, 을사)〕상주(上州)로 고치고 진흥왕이 주를 없애고 상락군(上洛郡)을 삼
    았다. 
   신문왕이 다시 주를 설치하고 경덕왕이 상주(尙州)로 고쳤다. 
   혜공왕이〔776년 당 대종 대력
41)
 11년, 병진〕다시 사벌주를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년, 경자)에 다시 상주로 삼았다. 그 뒤에〔연대를 알 수 없음〕에 안동도독
    부(安東都督府)로 고쳤다. 983년(성종 2년, 계미)에 처음 12목을 설치 할 때 상주도 그 중의 하
    나이다.
   995년(성종 14년, 을미)에 12주 절도사(節度使)를 둘 때 상주 귀덕군 절도사(尙州歸德軍節度

    使)로 불렀다. 1012년(현종 3년, 임자)에 절도사를 폐지하고 다시 안동 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로 했다. 1014년(현종 5년, 갑인)에 상주 안무사(尙州安撫使)로 고치고 1018년(현종 9년, 무

    오)에 상주목으로 정하니 8목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조는 그대로 따르고 별호(別號)는 상락(上洛)〔순화
42)
(淳化)때 정했으며 또 다른 별호는 상
    산(商山)〕이다.
   속현(屬縣)이 7이다.
   산양현 : 본래 근품현(近品縣)인데 경덕왕이 가유(嘉猷)로 고치고 예천군 소속이 되었다.〔이
     상 6현
43)
이 1018년(현종 9년, 무오)에 모두 상주관할이 되었다〕
   영순현 : 세속에 전하기를 “본래 상주의 북면 임하촌(林下村)인데 고려 때 임하촌의 태(太)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적을 잡아 공을 세운 까닭에 그 촌을 영순현으로 삼았다”고 한다.
   부곡(部曲) 3 : 무림(茂林)〔세속에 전하기를 “본 주의 북면 무흥촌(茂興村)이다”고 한다〕
   명산 : 사불산(四佛山)〔산양현 북쪽에 있고 공덕산이라고도 한다〕
   상주 호구 : 1,845호, 인구 : 3,132명
   산양 112호, 인구 667명
   영순 22호, 인구 132명
   영순 속성(續姓) 1 : 태(太)씨〔지금 향리
44)
(鄕吏)이다〕
   무림(茂林) 성(姓) 1 : 김(金)씨, 속성 2 : 김(金)씨, 심(沈)씨
   토산(土産) : 은어〔銀口漁〕〔산양현에서 난다〕
   봉화(烽火) 6
   산양 소산(所山) : 산양현 동쪽에 있다.〔동으로 용궁의 산성(山城), 서쪽으로 호계 선암산(禪岩
     山)에 연락한다〕
   관할〔所領:領地〕 : 현(縣) 7 - 문경

 

문  경  현

   본래 관문현(冠文縣)이다. 경덕왕이 관산(冠山)으로 고치고 고령군(古寧郡) 소속으로 하였다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 문희(聞喜)로 고치고 1018년(현종 9년, 무오)에 상주 소속이 되었다. 뒤에 문경으로 고
     쳤다. 1390년(공양왕 2년, 경오)에 비로소 감무를 두고 가은현을 소속시켰고 조선조에도 그대
     로 했다.
   1413년(태종 13년, 계사)에 예에 의하여 현감을 두었다.

   속현(屬縣)
    가은현 : 본래 가해현(加害縣)으로 경덕왕이 가선(嘉善)으로 고치고 고령군(古寧郡 : 현재 함
    창) 소속이 되었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년, 무오)에 상주 소속이 되었
    다. 1390년(공양왕 2년, 경오)에 문경현 소속이 되었다.
    호계현 : 본래 호측현(虎側縣)인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고령군(古寧郡) 소속이 되
    었다. 배산성(拜山城)이라고도 했다.
    1018년(현종 9년, 무오)에 상주 소속이 되고 1416년(조선 태종 16년, 병신)에 문경현의 직접

    관할이 되었다.

   명산(名山)
    주흘산(主屹山) : 현의 북쪽에 있다.〔매년 봄, 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소사(小祀)를 지냈
    다〕.
    관혜산(冠兮山) : 현의 남쪽에 있다〔주흘산에 부처서 제사〔附祭〕한다〕
    희양산(曦陽山) : 현의 서쪽에 있다.
    재목산(梓木山) : 현의 남쪽에 있다.
    장산(獐山) : 현의 동쪽에 있다〔위의 3산은 모두 현지의 관리가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낸다〕

   사방 경계〔四境〕
    동쪽은 상주 관내 산양현에 이르기 20리, 서쪽은 충청도 영풍(迎豊)에 이르기 13리, 남쪽은 함
    창에 이르기 31리, 북쪽은 영풍 대원현(大院峴)으로 29리이다.
   본현 호수 : 260호 단일(單一), 인구 : 1,065명
   가은 호수 : 105호, 인구 : 720명
   군정
45)(軍丁) : 시위군(侍衛軍)46)
 50명, 영진군(營鎭軍) 25명, 선군(船軍:水軍) 53명이다.
   본현 토성(土姓) 5 : 최(崔)씨, 장(蔣)씨, 박(朴)씨, 송(宋)씨, 전(錢)씨
   속성(續姓) 2 : 김(金)씨〔선산에서 왔다〕,박(朴)씨〔은풍(殷豊)에서 왔다.모두 향리(鄕吏)이
     다〕
   가은 성(姓) 4 :김(金)씨, 윤(尹)씨, 변(邊)씨, 연(延)씨
   차성(次姓) 1 : 길(吉)씨
   호계성 (姓) 5 : 백(白)씨, 황(黃)씨, 김(金)씨, 나(羅)씨, 방(方)씨
   땅〔 土〕은 메마르다.
   기후〔風氣〕는 춥다.
   개간한 밭〔墾田〕: 2,789결(結)
47)
〔논〔水田이 5분의 1이 넘는다〕〕
   토의(土宜) : 벼, 조, 기장, 피, 콩, 밤
   토공(土貢) : 꿀〔蜂蜜〕, 밀〔黃蠟〕, 종이, 칠(漆), 살쾡이 가죽〔狸皮〕, 돼지 가죽〔猪皮〕
   약재 : 웅담, 영양각, 백복령, 백부자, 당귀, 인삼
   토산(土産) : 은어〔銀口魚〕, 송이, 신감초(辛甘草)
   희양산석성(曦陽山石城) : 현의 서쪽에 있다. 3면이 모두 석벽이고 둘레 464보(步)이다. 안에 계
    곡 하나와 군창(軍倉)이 있다.
   역(驛) 2 : 요성, 유곡(幽谷)〔호계에 있다〕
   봉화(烽火) 2
    탄항(炭項) : 현의 북쪽에 있다. 남쪽으로 호계 선암, 북쪽은 연풍 마골점(麻骨岾)에 연락한다.
    선암산(禪巖山) : 현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산양 소산(所山), 남쪽은 함창 남산(南山), 북쪽은

    본현 탄항(炭項)에 연락한다.
   험조처
48)
(險阻處)
    새재〔草岾〕: 현의 서쪽 19리로 충청도 충주 가는 길로 위험한 곳이 7리이다.
    이화현(伊火峴) : 현의 서쪽에 있고 연풍 가는 길로 위험한 곳이 5리이다.
    관갑천(串岬遷) : 현의 남쪽 17리에 있고 위험한 곳이 430보(步)이다.
   소둔산록(所屯山麓) : 현의 서쪽 13리에 있다. 바위 구멍에서 물이 나오는데 보통때는 그 흐르
     는 것이 실오리 같고 매일 아침 저녁에 넘쳐 흘러 3~4리를 적시다가 그친다. 조수(潮水)가 왕
     래하는 것과 같아 속칭 물미리〔水推〕라 한다.

 

35) 원문에는 백제라고 했으나 후백제가 옳음
36) 고려 신종(神宗)은 7년만에 선위하여 신종 14년은 없고, 갑자년이 1204년으로 신종 7년에 해당되어 원문이 착오 같음
37) 연우(延祐)는 원나라 인종(仁宗)의 연호로 1314~1319년까지 사용했음
38) 가태(嘉泰)는 송나라 영종(寧宗)의 연호로 1201~1204년까지 사용했음
39) 조선 시대 지방관직. 지방관의 속관으로 민정 보좌 역할 담당
40) 정시(正始)는 위(魏)나라 제왕(齊王)의 연호로 9년은 첨해왕 2년임
41) 대력(大曆)은 당나라 대종(代宗)의 연호로 11년은 혜공왕 12년임
42) 송(宋) 나라 태종 때 연호로 990~994년까지 사용
43) 청리(靑理). 청효(靑驍). 화령(化寧). 중모(中牟). 단밀(丹密). 산양(山陽)현
45) 군적(軍籍)에 있는 지방의 장정(壯丁)
46) 왕궁을 호위하는 군정(軍丁)
47) 수확량을 기준으로 과표를 정하는 양전척(量田尺)을 결부법이라함. 1결=100부, 1부=10속, 1속=10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