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종법요(蓮宗集要)』 제 3장 왕생의 예 - 1. 아미타불을 친견(親見)한 실례(實例)
2014. 7. 28. 21:21ㆍ경전 이야기
홍인표 저 / 경서원에서 1983년『정토로 가는 길-蓮宗輯要-』
제 3장 왕생(往生)의 예(例)
1. 아미타불을 친견(親見)한 실례(實例)
천축(天竺, 인도의 옛 이름) 계두마사(鷄頭摩寺)의 오통보살(五痛菩薩)이
신력(神力)으로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불을 뵈옵고 여쭈기를,
「사바세계의 중생이 정토에 나기를 원 하오나
성상(聖像)을 뵈옵지 못하와 강림(降臨)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
부처님께서
「네가 먼저 내려가면 내가 따라 나타나리라」하셨다.
오통보살이 돌아와 보니 성중(聖衆)이 이미 오셨는데,
한 부처님과 오천 보살이 각기 연화에 앉으시고 또 나뭇잎위에 계시었다.
이에 그 형상(形像)을 모사(模寫)하여 전국에 널리 퍼뜨렸다.
중국 수(隋)나라 때에 승려 혜해(慧海)가
강도(江都)의 안락사(安樂寺)에 머물러 지성으로 염불하더니
승려 도전(道銓)이 제주(齊州)에서 아미타불상을 모시고 왔는데
그 미묘하고 공교(工巧)함이 세간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내력을 물은즉 이것은 천축의 계두마사의 오통보살이
극락세계에 가서 그려 온 것이라 하니
혜해가 감격하여 지성으로 예배하며 보니 신광(神光)이 찬란하게 비치었다.
이에 그 상(像)을 본떠 그리며 극락에 왕생하기를 간절히 원 하였는데
그 후에 대수롭지 않은 병이 있더니 밤에 문득 일어나 서쪽을 향하여 예배한 후에
가부좌하고 새벽에 화거(化去)하였는데 산 사람과 같았다.「왕생집(往生集)」
중국 당나라 때에 승려 법조(法照)는 연종(蓮宗)의 제四조인데
대종(代宗)의 대력 4년(大歷 四年, 즉 서기769년)에 호동사(湖東寺)에서
오회염불도량(五會念佛道場)을 개설하였는데
이때에 상운(祥雲)이 가득히 덮이고 구름 속에 누각이 나타나며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두 보살이 나타나셔서 허공에 가득하므로
형주(衡州) 사람들이 분향하며 우러러 절 하였다.
중국 송대(宋代)에 여인(女人) 기씨(紀氏)는
구용(句容) 갈제지(葛濟之)의 처(妻)인데
대대로 선술(仙術)을 배웠으나 기씨는 홀로 불법을 좋아하여 성심으로 염불하였다.
하루는 베를 짜다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공중이 청명하고 문득 보개(寶蓋) 당번(幢幡)이 서방으로부터 오는데
그 가운데에 부처님이 계시고 금색광명이 찬란하게 비치므로
기씨는 베 짜기를 멈추고 자세히 뵈오며 마음으로 기뻐서
경(經)에 말씀하신 무량수불(無量壽佛)이신가 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갈제지를 끌어 부처님 계신 곳을 가리켜 보이나
남편은 단지 부처님의 반신(半身)과 번개(幡蓋)만을 보았다.
이때에 동리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사람이 많았다한다.
중국 당나라 때의 여인(女人) 요파(姚婆)는 상당(上黨) 사람인데
범파(范婆)라는 분이 염불을 권하므로
요파는 가연(家緣:집과 인연)을 끊고 일심으로 염불하더니
임종 때에 아미타불이 공중에 강림하시고
관음, 세지 두 보살이 모신 것을 뵈옵고 요파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범파를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어찌 부처님을 뵈옵게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잠간만 계시면 범파와 작별하겠나이다.」 하더니
범파가 이르매 요파는 서[立]서 화(化) 하였다.
중국 명(明)나라의 승려 원과(圓果)는 임종 날에 제자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죽은 지 10년 후에 화장하라」하였다.
제자가 10년 후에 관을 들고 뜰에 이르니 관 속에서 불이 일어나 타버렸다.
이때에 도속(道俗)들의 구경하는 二千여명이 다 보니
구름 속에 극락세계의 전경이 나타나는데,
칠중란수(七重欄循), 칠중라망(七重羅網), 칠중항수(七重行樹), 칠보지(七寶地),
누각(樓閣) 궁전(宮殿)이 금, 은, 유리(琉璃), 파려(玻瓈),
자거(硨磲), 적주(赤珠), 마노(瑪瑙) 등으로 장엄하고
연못 속에 청, 황, 적, 백(靑, 黃, 赤, 白)의 연화와
백학, 공작, 앵무, 사리(舍利), 가릉빈가(迦陵頻伽), 공명조(共命鳥) 등이
불경에 말씀하신 것과 다르지 아니하고 공중에서 천악(天樂)이 울렸다 한다.
중화민국 거사(居士) 강암남(江庵南)은 안휘성(安徽省)의 무원(婺源)사람인데,
만년(晩年)에 강역원(江易園) 거사(居士)의 권고로 매일아침 송경(誦經) 염불하더니
임신년(壬申年, 서기1932년) 3월에 등에 종기가 발병하여
다시 살아나지 못할 줄을 알고 염불에 더욱 힘을 쓰니
병은 비록 중하나 고통을 느끼지 아니하며
또 서방극락세계를 관견(觀見)한지라 강(江) 거사에게 편지하기를
「제가 3월25일 인시(寅時)에 뇌우(雷雨)가 있은 뒤에 하늘이 낮같이 밝더니
문득 서방극락세계의 진경(眞景)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 칠보장엄(七寶莊嚴)과 보수(寶樹 보배나무), 보탑(寶塔) 등이
모두 기이(奇異)하지 아니한 것이 없고
부처님이 공중에서 말씀하시는데 분명하게 들리지 아니하고 곧 흩어져 버렸으니
이로써 극락세계가 확실히 있는 줄을 알았노라」하였다.
강암남은 그 뒤부터 더욱 부지런히 염불하다가
그 해 4월 22일에 염불하면서 화거(化去)하였다.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
《註》
-. 보개(寶蓋)
보옥(寶玉)으로 장식한 천개(天蓋)를 말함.
천개(天蓋)는 부처님의 머리위에 덮어서
우로(雨露: 비와 이슬)와 진애(塵埃: 티끌과 먼지)를 피하는 것이니,
본래 천인(天人)이 공양(供養)한 것이므로 천개(天蓋)라 하며
또 부처님 머리위의 상방(上方)에 드리는 것이므로 천개라 한다.
-. 당번(幢幡)
번당(幡幢)이라고도 하고 또 증번(繒幡)이라고도 한다.
불전(佛殿)을 장엄하게 하는데 쓰이는 당(幢)과 번(幡)을 말한다.
당(幢)은 간주(竿柱 장대) 끝에 용두(龍頭)의 모양을 만들고 깃발을 드린 것이다.
번(幡)은 부처님의 위신과 공덕을 표치(標致 취지(趣旨)를 드러내 보임)한
장엄의 구(具 도구)로 하는 것이다.
-. 번개(幡蓋)
번(幡)과 개(蓋)를 말한다.
번(幡)은 불보살의 위덕을 표시하는 장엄도구의 깃발이다.
개(蓋)는 불상을 덮은 일산(日傘: 황제, 황태자,
왕세자들이 행차할 때 받치던 의장 양산 )이다.
법당 안에 있는 탁자 위를 덮도록 만든
닫집(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이다.
이것은 비나 먼지 같은 것을 막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던 것이나 후세에는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든 것이 많으며
이것을 천정에 달아 놓기도 하고 또는 위가 구부러진 긴 장대에 달기도 한다.
-. 유리(琉璃)
청색보(靑色寶), 원산보(遠山寶), 불원산보(不遠山寶)라 번역한다.
육면체, 십이면체, 능형(菱形 모난 형태) 등으로 된 옥과 같은 보석으로서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수미산의 남면(南面)이 이 보석으로 되어서
남섬부주(南贍部洲)에 빛이 반사하여 비치는 까닭으로
허공의 빛이 청색으로 보이는 것이라 한다.
-. 파려(玻瓈)
파리(玻璃), 파리(頗梨), 파려(頗黎)라고도 한다.
수정과 같으며 홍(紅 붉고), 벽(碧 푸르고), 자(紫 자주), 백(白 희고)의
사색(四色)이다.
-. 자거(硨磲)
또는 ‘차거’라 발음한다.
옛적에는 차거(車渠)라 쓰더니 후세에
백산호(白珊瑚)나 조개껍질로 만든 것을 차거(硨磲)라 한다.
-. 마노(瑪瑙)
마노(碼碯)라고도 쓴다.
취녹옥(翠綠玉)이니 짙은 녹색의 보석이다.
-. 사리(舍利)
인도에서 나는 새(鳥)니 추로조(鶖鷺鳥),
구욕조(鷗鵒鳥), 백설조(白舌鳥)라 번역한다.
전신이 검은색인데 목만 누렇고 입부리는 붉으며 크기는 참새 갑절이나 되고
앵무새와 같이 사람의 말을 잘 외우며 대단히 영리하다.
-. 가릉빈가(迦陵頻伽)
호성조(好聲鳥), 묘음조(妙音鳥)라 번역한다.
인도에 나는 참새의 일종이니 알을 까기 전부터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고 기묘하다.
크기는 보통의 참새보다 다소 작은 편이고 빛은 참새와 근사하나
검은빛이 섞여 있고 입부리가 붉다.
-. 공명조(共命鳥)
인도에 나는 꿩의 일종이니 명명조(命命鳥), 생생조(生生鳥)라고도 한다.
새 모양이 사람의 얼굴과 같고 한 몸에 두 머리가 있는 까닭으로
공명(共命)이라 부른다 하며,
가릉빈가와 같이 소리가 좋으며 빠르고 가볍게 날아다닌다고 한다.
-. 천악(天樂)
천상(天上)의 기악(伎樂: 女樂이므로 妓樂이 옳다고 한다)이니
모든 하늘이 부처님을 공양할 때에 천악을 짓는 것이다.
-. 거사(居士)
거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재산을 많이 쌓은 거재(居財)의 사(士)를 거사(居士)라하고,
또 하나는 집에서 도(道)를 닦는 거가도사(居家道士)를 거사라 한다.
불교에서는 보통 출가하지 않고 가정에 있으면서
불문(佛門)에 귀의(皈依)한 남자를 말한다.
여자는 여거사(女居士)이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염화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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