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와 웰빙시대

2014. 8. 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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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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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와 웰빙 생활

 

                              다운초 교사 백태명

 

   많이 먹어 나온 배와 혈투를 벌이는, 시대 활극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자동차와 승강기 때문에 한창 일할 두 다리가 당하는 억울한 귀양살이는 어찌 하리오. 후손에게서 길어야 백년 정도 빌려 쓸 자연환경을 제 것인 양 마구 써대는 우리들의 후안무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덜 먹어도 배불렀던 시절을 떠올려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은 문학의 힘으로 가능하다.

   문학은 문화의 핵심이고 민족 자부심의 근원이다. 시는 문학의 최고 형태이고 감성, 품성, 사고력, 표현력을 기르는 최상의 공부이다. 자연과 교감하던 중세시대에는 시 쓰는 능력으로 진출하여 지도자가 되었다. 실무 지식은 하위의 것으로 여겨 중인에게 맡겼다. 시를 외면하는 기술자, 법조인, 행정가, 정치인이 이끌어가는 오늘날의 사회는 가치관이 위기로 치닫고, 인간성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힘들다.

   2011년에 나는 북구 상안초에서 중구 다운초로 옮겼다. 과감하게 자동차를 버리고 귀양 간 두 다리를 풀어 소임을 맡겼다. 빼먹기만 하고 돌보지 않던 자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옥동에서 다운동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걸출족’이 되었다. 남산을 타고 태화강을 끼고 걸어서 학교에 가고,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주위에 동료들은 ‘한 열흘 저라다가 지쳐 떨어지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일 년 내내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다니는 것이 아닌가.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할 때는 어쩌다 시를 썼다. 남산을 타고 태화강을 끼고 걸어서 출퇴근하니 옹달샘처럼 솟아오르는 시를 주체할 수 없다. 겨울동안 퍼석퍼석하던 갯버들에 봄이 와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아주 새로운 광경을 연출하는 것이 아닌가!

 

태화강 갯버들

 

이사나간 자리처럼 휑하던 강변에

갯버들 물이 올라 하루하루 푸르더니

어느새 단장한 새 집 마냥 덩그렇게 찼구나.

 

   지난해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봄비가 잦더니 이어서 여름에는 더 많은 비가 주기적으로 내렸다. 태화강 상류에 징검다리를 큰 홍수가 너댓 번 집어 삼켰다. 십리대밭에 대나무들 고생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나는 괴롭기 짝이 없었다. 축 처진 대나무를 뽀돗이 밀어 올려 곁에 선 나무에 붙들어 매 세워주기도 했다. 반면에 긴 비에 버섯들은 살판이 났다. 갖가지 버섯들이 돋아 올라 온갖 자태를 뽐내었다. 미녀의 미끈한 다리 같은 광대버섯의 훤칠한 맵시를 잊을 수가 없다.

 

七月長雨 칠월장우

 

數雨竹林苦(삭우죽림고) 잦은 비에 신음하는 대숲

頭重脅瘦屈(두중협수굴) 무거운 머리 야윈 옆구리 기우뚱

長雨山菌爭(다우산균쟁) 긴 비에 산 버섯 다투듯 불쑥 불쑥

蒙匏徹殼壯(몽포철각장) 바가지를 덮어쓰고도 씩씩하게 뚫고 나와

 

   왼 겨드랑이에 억새를, 오른 겨드랑이에 갈대를 끼고 평행봉을 굴리듯 태화강가를 걸어 보았는가? 강아지풀이 무더기로 모여 가을바람에 일렁이고, 키만 멀쑥 큰 여뀌꽃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 논귀에 도랑가에 강가에 번져가는 고마리풀꽃의 향연, 세상에서 가장 맑은 기운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고, 밤마다 그 별이 내려와 놀다간 자리에 뿌려진 별사탕, 오로지 농부들을 위한 노래

 

고마리풀꽃

 

초록도 우지짖다 목청 꺾이고

얼마 안에 삽도 씻어 걸어야 하리.

뼈마디 쑤시고 눈물 훔친 자리마다

어제 밤 별들이 찾아 왔어요.

분홍 물 덮어쓴 흰 별사탕을

도랑가에 강가에

한 섬 두 섬 석 섬 넉 섬 흩뿌렸구나.

 

   겨우내 찾아오는 진객 철새들, 먹을거리 풍부한 들판과 태화강, 안전하고 편안한 잠자리 십리대밭, 하늘을 까맣게 가린 떼까마귀 층층이 어지럽고, 강물을 하얗게 뒤덮은 흰 새들, 저것 혹시 재두루미 아닌가? 가까이 왜가리가 폴짝 뛰어오르는데, 아 못 볼 것을 보았는가? 진귀하기도 하겠지. 나는 왜가리 발바닥을 보았다네. 왜가리 발바닥을, 자꾸 입에서 되뇌어지는 ‘왜가리 발바닥’, 기어이 시로 잡아내었다.

 

왜가리 발바닥

 

입동첩에 아기용 용트림하고

강바람은 살얼음으로 휘파람 부네.

얕은 물에 왜가리 햇살에 눈이 부셔

폴짝 뛰어 바위 위로 몸을 트는데

반짝, 나팔꽃으로 피어오르는

말갛게 빛나는 왜가리 발바닥

 

   이렇게 봄여름 가을 겨울 사철동안 얻은 시가 무려 80여 편, 우리 시가 50여 편, 한시가 30여 편이다. 작년 나와 올해 내가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 자동차를 버리고 두 다리로 산을 타고 강을 끼고 걸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시가 쏟아지다니. 아, 자연의 위대함이여. 자연이 내게 내린 선물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시는 산문과 다르다. 율격을 알면 시와 아주 가까워진다. 율격은 토막이다. 한 토막에 소리마디가 네 개인 것이 기본이다. 내용과 흥취에 따라 더하고 뺄 수 있다. 우리 시는 한 줄 네 토막 형식과 한 줄 세 토막 형식이 번갈아 일어났다. 신라 향가는 네 토막, 고려 속악가사는 세 토막, 조선 시조는 네 토막, 오늘날 현대시는 세 토막 이렇게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갈마들었다. 현대를 극복한 다음 시대는 어떻게 될까? 자연과 가까이 하며 율격을 이해하니 시가 내게로 불쑥 불쑥 찾아왔다.

   우리 역사에서 문헌에 오른 최초의 한시는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이다. 이 시를 어른들처럼 번역하면 아이들이 즐길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시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반어 기법으로 적장이 어리둥절하여 갈팡질팡할 때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둔 선조의 지혜를 시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은가.

 

與隋將于仲文詩(여수장우중문시)라

 

                              乙支文德(을지문덕)이라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하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를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하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를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는 시

 

꾀는 하늘 귀신보다 더 많고

싸움은 땅 도깨비보다 더 잘하여

전쟁에서 이미 여러 차례 이겼으니

그쯤에서 만족하고 그만두기 바라노라.

 

   이렇게 우리 반은 한 해 동안 한시(漢詩)를 열 편 정도 익힌다. 전래동요도 부르고 시조도 읊는다. 내용도 살펴야 하지만 시를 공부할 때는 형식인 율격이 더 중요하다. 봉숭아가 곱게 피어있는 여름날 우리는 시를 썼다. 우리 반에 시원이가 율격이 또렷하고 겉과 안으로 대조가 빛나는 묘한 시를 썼다. 을지문덕 장군이 고구려를 대표하듯, 시원이가 우리 반을 대표하여 고구려 사람들과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시를 잘 쓰는 사람이 되었다.

 

봉숭아

 

                  5-3 류시원

 

꽃밭에/ 봉숭아가/ 예쁘게/ 심겨있네.

겉에는/ 연보라색/ 안쪽에는/ 진한 빨강

이 꽃을/ 가지고가서/ 손톱에/ 물들이자.

 

   주5일제가 전면 실시되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간 오롯이 자기 시간이 확보되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관람, 관광, 음식, 운동, 봉사활동 등 할 거리도 많다. 걷기를 하자. 자연을 찾자. 시를 읽고 쓰자. 한문과 외국어를 공부하자. 신명나게 풍물을 다시 치자.

   조동일 선생이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이 중요하다며 학생들을 그 쪽으로 몰아붙이기 전에 시를 쓰게 해야 나중에 수학과 과학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시 창작과 수학의 원리 발견이 창조인 점에서 서로 같아, 어려서 시를 쓰며 창조의 기쁨을 많이 누려 본 사람이 나중에 수학 창조를 잘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시 창조는 초등학교 일학년도 할 수 있지만, 수학 창조는 수학 박사가 되어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시를 많이 읽고 써야 커서 시대를 움직일 수학 과학의 박사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아, 참으로 귀한 통찰이로세. 가슴 깊이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구나.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다. 중세 2000여 년 동안에 쌓아온 선조들의 슬기로운 생각이 한문으로 축적되어 있다. 현대가 앓고 있는 지구의 위기를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중세의 지혜에서 살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참고자료가 풍부하고 학습도구가 원활하고 앞서 공부한 놀라운 학자들이 곳곳에 있어서 한문 공부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장마철에 오히려 목이 마르듯 물질이 너무 풍부하여 웰빙을 찾는다. 어리석은 과잉의 시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능력을 기르고, 함께 모여 나누고,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연사흘 흐리다가 해가 솟아오르니 더 반갑다. 해를 이고 땅을 박차며 힘차게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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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와 웰빙 생활

                              다운초 교사 백태명


  많이 먹어 나온 배와 혈투를 벌이는, 시대 활극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자동차와 승강기 때문에 한창 일할 두 다리가 억울한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 후손에게서 길어야 백년 정도 빌려 쓸 자연환경을 제 것인 양 마구 써대는 우리들의 후안무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덜 먹어도 배불렀던 시절을 떠올려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은 문학의 힘으로 가능하다.

  문학은 문화의 핵심이고 민족 자부심의 근원이다. 시는 문학의 최고 형태이고 감성, 품성, 사고력, 표현력을 기르는 최상의 공부이다. 자연과 교감하던 중세시대에는 시 쓰는 능력으로 진출하여 지도자가 되었다. 실무 지식은 하위의 것으로 여겨 중인에게 맡겼다. 시를 외면하는 기술자, 법조인, 행정가, 정치인이 이끌어가는 오늘날의 사회는 가치관의 위기, 인간성의 황폐화를 막을 수 없다.

  2011년에 나는 북구 상안초에서 중구 다운초로 옮겼다. 과감하게 자동차를 버리고 귀양 간 두 다리를 풀어 소임을 맡겼다. 빼먹기만 하고 돌보지 않던 자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옥동에서 다운동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걸출족’이 되었다. 남산을 타고 태화강을 끼고 걸어서 학교에 가고,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주위에 동료들은 ‘한 열흘 저라다가 지쳐 떨어지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일 년 내내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다닌다.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할 때는 어쩌다 시를 썼다. 남산을 타고 태화강을 끼고 걸어서 출퇴근하니 넘쳐흐르는 시를 주체할 수 없다. 겨울동안 퍼석퍼석하던 갯버들에 봄이 와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아주 다른 새로운 광경을 연출하는 것이 아닌가!


태화강 갯버들


이사나간 자리처럼 휑하던 강변에
갯버들 물이 올라 하루하루 푸르더니
어느새 단장한 새 집 마냥 덩그렇게 찼구나.


  지난해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잦은 봄비에 이어 여름에는 더 많은 비가 주기적으로 내렸다. 태화강 상류에 징검다리를 큰 홍수가 너댓 번 집어 삼켰다. 십리대밭에 대나무들 고생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 하는 나는 괴롭기 짝이 없었다. 축 처진 대나무를 뽀돗이 밀어 올려 곁에 나무에 붙들어 매 세워주기도 했다. 반면에 긴 비에 버섯들은 살판이 났다. 갖가지 버섯들이 돋아 올라 온갖 자태를 뽐내었다. 미녀의 미끈한 다리 같은 광대버섯의 훤칠한 맵시를 잊을 수가 없다.


七月長雨 칠월장우


數雨竹林苦(삭우죽림고)  잦은 비에 신음하는 대숲

頭重脅瘦屈(두중협수굴)  무거운 머리 야윈 옆구리 기우뚱

長雨山菌爭(다우산균쟁)  긴 비에 산 버섯 다투듯 불쑥 불쑥

蒙匏徹殼壯(몽포철각장)  바가지를 덮어쓰고도 씩씩하게 뚫고 나와


  왼 겨드랑이에 억새를, 오른 겨드랑이에 갈대를 끼고 평행봉을 굴리듯 태화강가를 걸어 보았는가? 강아지풀이 무더기로 모여 가을바람에 일렁이고, 키만 멀쑥 큰 여뀌꽃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 논귀에 도랑가에 강가에 번져가는 고마리풀꽃의 향연, 세상에서 가장 맑은 기운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고, 밤마다 별이 내려와 놀다간 자리에 뿌려진 별사탕, 오로지 농부들을 위한 노래


고마리풀꽃


초록도 우지짖다 목청 꺾이고

얼마 안에 삽도 씻어 걸어야 하리.

뼈마디 쑤시고 눈물 훔친 자리마다

어제 밤 별들이 찾아 왔어요.

분홍 물 덮어쓴 흰 별사탕을

도랑가에 강가에

한 섬 두 섬 석 섬 넉 섬 흩뿌렸구나.


  겨울 들어 찾아오는 진객 철새들, 먹을거리 풍부한 들판과 태화강, 안전하고 편안한 잠자리 십리대밭, 하늘에 떼까마귀 층층이 어지럽고, 강물을 하얗게 뒤덮은 흰 새들, 저것 혹시 재두루미 아닌가? 가까이 왜가리가 폴짝 뛰어오르는데, 아 못 볼 것을 보았는가? 진귀한 것을 보았는가? 나는 ‘왜가리 발바닥’을 보았다네. ‘왜가리 발바닥’을, 자꾸 입에서 되뇌어지는 ‘왜가리 발바닥’, 기어이 시로 잡아내었다.


왜가리 발바닥


입동첩에 아기용 용트림하고

강바람은 살얼음으로 휘파람 부네.

얕은 물에 왜가리 햇살에 눈이 부셔

폴짝 뛰어 바위 위로 몸을 트는데

반짝, 나팔꽃으로 피어오르는

말갛게 빛나는 왜가리 발바닥


  이렇게 봄여름 가을 겨울 사철동안 얻은 시가 우리 시 50여 편, 한시가 30여 편, 무려 80여 편이나 되었다. 작년 나와 올해 내가 거의 그대로 같은 사람 아닌가. 자동차를 버리고 두 다리로 산을 타고 강을 끼고 걸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시가 쏟아지다니. 아, 자연의 위대함이여. 자연이 내게 내린 선물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시는 산문과 다르다. 율격을 알면 시와 아주 가까워진다. 율격은 토막이다. 한 토막에 소리마디가 넉 자인 것이 기본이다. 내용과 흥취에 따라 더하고 뺄 수 있다.  우리 시는 한 줄 네 토막 형식과 한 줄 세 토막 형식이 번갈아 일어났다. 향가는 네 토막, 고려속악가사는 세 토막, 시조는 네 토막, 현대시는 세 토막 이렇게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갈마들었다. 자연과 가까이 하며 율격을 이해하니 시가 내게로 불쑥 불쑥 찾아왔다.

  우리 역사에서 문헌에 오른 최초의 한시는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이다. 이 시를 어른들처럼 번역하면 아이들이 즐길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시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반어 기법으로 적장이 어리둥절하여 갈팡질팡할 때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둔 선조의 지혜를 시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은가.


與隋將于仲文詩(여수장우중문시)라

 

               乙支文德(을지문덕)이라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하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를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하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를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는 시


꾀는 하늘 귀신보다 더 많고

싸움은 땅 도깨비보다 더 잘하여

전쟁에서 이미 여러 차례 이겼으니

그쯤에서 만족하고 그만두기 바라노라.


  이렇게 우리 반은 한 해 동안 한시를 10여 편 익혔다. 전래동요도 부르고 시조도 읊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시를 공부할 때는 율격이 더 중요하다. 봉숭아가 곱게 피어있는 여름날 우리는 시를 썼다. 우리 반에 시원이가 율격이 또렷하고 겉과 안으로 대조가 빛나는 묘한 시를 썼다. 을지문덕 장군이 고구려를 대표하듯, 시원이가 우리 반을 대표하여 고구려 사람들과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시를 잘 쓰는 사람이 되었다.


봉숭아

           5-3 류시원


꽃밭에 봉숭아가 예쁘게 심겨있네.

겉에는 연보라색 안쪽에는 진한 빨강

이 꽃을 가지고가서 손톱에 물들이자.


  주5일제가 전면 실시되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간 오롯이 자기 시간이 확보되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관광, 관람, 음식, 운동, 봉사활동 할 거리도 많다. 걷기를 하자. 자연을 찾자. 시를 읽고 쓰자. 한문과 외국어를 공부하자. 신명나게 풍물을 다시 치자.

  조동일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어려서는 수학과 과학으로 몰아붙이기 전에 시를 써야 나중에 수학과 과학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시 창작과 수학의 원리 발견이 창조인 점에서 같아, 어려서 시를 쓰며 창조의 기쁨을 많이 느껴 본 사람이 나중에 수학 창조를 잘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시 창조는 초등학교 일학년도 할 수 있지만 수학 창조는 수학 박사가 되어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려서 시를 많이 읽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가? 초등교사가 곱씹어 볼 대목이 아닌가.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지 않은가. 중세 2000여 년 동안 선조들의 슬기로운 생각이 한문으로 축적되어 있다. 현대가 앓고 있는 지구의 위기를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중세의 지혜에서 살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참고자료가 풍부하고 학습도구가 원활하고 앞서 공부한 놀라운 학자들이 곳곳에 있어서 한문 공부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장마철에 오히려 목이 마르듯 물질이 너무 풍부하여 웰빙을 찾는다. 어리석은 과잉의 시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능력을 기르고, 함께 모여 나누고,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연사흘 흐리다가 해가 솟아오르니 더 반갑다. 해를 이고 땅을 박차며 힘차게 걸어보자.





- 네이버 블로그 < 백용회의 글마당 > 용회학인 님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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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왜가리와 두루미(리투아니아에 전해오는 이야기)



   수컷 왜가리와 암컷 두루미가 같은 연못에 살고 있었어요. 
그러나 서로 반대편에 살았기 때문에 한마디도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왜가리는 하루하루가 심심하기 짝이 없었어요. 

   ‘아! 날씨도 좋은데 이렇게 혼자 있다니. 건너편 두루미에게 청혼이라도 해 볼까?’
결혼을 하면 훨씬 더 행복할 것 같았어요. 다음 날, 깃털을 잘 다듬은 왜가리는 휘익 두루미의 집으로 날아갔어요. 
전 건너편에 살고 있는 왜가리라고 합니다.” 왜가리는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어요.
둘이 함께하면 행복할 것 같은데…. 저, 저와 결혼해 주세요.” 
왜가리의 청혼에 두루미는 깜짝 놀랐어요. 청혼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두루미는 딱 잘라 거절을 했어요. 

    “난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당신은 다리도 삐쩍 마르고 멋지게 날지도 못하잖아요.” 
왜가리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돌아갔어요. 얼마 후, 두루미도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오리들도 짝이 있는데 나는 이게 뭐람.’
갑자기 왜가리가 청혼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두루미는 용기를 내어 왜가리를 찾아갔어요. 
갑작스러운 두루미의 방문에 놀란 것은 왜가리였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당신과 결혼하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예전의 왜가리가 아니었어요. 왜가리는 목에 힘을 주고 대답했어요. 
됐어요, 두루미 양. 시간이 늦었군요. 그냥 돌아가 주세요.”

   왜가리는 아주 쌀쌀맞게 대답했어요. 두루미는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며 다시 연못을 건너 집으로 돌아왔지요. 
두루미가 울며 가자 왜가리도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내가 너무 심했나?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아 줄걸.’
왜가리는 마음을 바꿔 다시 두루미를 찾아갔어요. 마침 두루미는 바쁘게 먹이를 먹고 있었지요. 
다시 생각해 봤는데 당신 말이 옳아요.”
왜가리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을 받아 달라고 빌었어요. 그러나 두루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어요.
“전 이제 남편 같은 건 필요 없답니다.”


   실망한 왜가리도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갔어요. 배가 부르자 그제서야 두루미도 왜가리 생각이 났어요. 
그러자 슬금슬금 후회가 됐어요.
아무래도 왜가리와 결혼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이번엔 왜가리가 퇴짜를 놓았죠. 그 뒤로도 여러 번 왜가리와 두루미는 연못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청혼하고 거절하기를 되풀이했어요.
결국은 둘 다 친구를 구하지 못하고 말았어요. 해 질 무렵 외로움을 느낄 땐 누구라도 친구가 옆에 있어 주길 바라죠
. 그러다 또 금세 잊어 먹기도 하고요. 항상 친구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답니다.

 



    - 다음 블로그 < 늙은 청춘의 모노드라마 > 작은키다리 님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