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다포(茶布) / 무량승향

2014. 8. 17. 20:27나의 詩






       어떤 다포(茶布)

        / 무량승향(無量勝香)


                      갑오(년)     다 종(茶宗)




 서방정토(西方淨土)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께서 


 나투 오신날....




 가장 낮은이들과 눈 맞추고


 가장 약한이들의 손을잡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오시다.




 어린 왜가리떼가 


 사랑 겸손 포용의 


 불이문(不二門) 씨앗을 물고


 날아 오르다.



  - 성모승천대축일에.....

   






  *******  미타여래(阿彌陀如來)줄여서 미타(彌陀)라고도 한다

이 아미타불의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  정토교(淨土敎)이다.

 

    아미타불이라는 이름은 처음 인도에서 아미타유스(amita-yus무량한 수명을 가진 자, 無量壽), 

아미타브하(amita-bhas한량없는 광명을 지닌 자, 無量光)라고 하는 

두 가지 범어로 표현되었던 것이지만, 

그것이 중국으로 전해졌을 때는 모두가 아미타라고 음사(音寫)되었다.

 

   따라서, 아미타는 이 두 가지 원명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중국 및 우리 나라에서는 이 아미타와 병행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는 의역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미타불께서는 10겁 전에 법장 비구(法藏 比丘)의 몸으로 계실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방극락정토에서 태어나길 바라면서 

모든이들이 극락정토에 가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시며 

48대원(大願)을 세우셨는 데, 

그 중에 32번째 서원(誓願)이 무량승향(無量勝香)이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  32 서원.   제가 부처가 될 그 국토의 지상이나 허공에 있는 일체 만물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보배와 백천가지의 향으로 이루어지고, 

그 미묘한 향기가 시방세계에 두루 풍기면 

보살들은 그 향기를 맡고 모두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되기를,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다면 저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 "


-  불설생경(佛說生經)에서 인용....



한달여 전에 노추산 북서산록의 송천토굴에서 야영을 한적이 있었다.
나흘을 보내고 떠나오던 날, 모닥불 아래 모래 속에 묻어둔 

감자 두개가 설익어 강속의 물고기들이 감자를 잘 먹기에

송천(松川)으로 던져주었다.


하나는 강변에 있는 다릅나무에 부딪쳐서 땅에 떨어지고

나머지 한알의 감자는 개울물에 떨여졌다. 

그러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왜가리떼가 물을 박차고 날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보통 왜가리는 알을 3~7개 낳아 새끼들을 세마리 내지 일곱마리 정도 키우나 

이날에 날아 오른 왜가리들은 어미 한마리에 어린 새끼들 40~50여 마리.....

아!! 왜가리들도 어미 한마리가 다른 어미들이 낳은 새끼들을 돌보고 있구나!!

참으로 보기 힘든 경이로운 광경이였다. 


이  끼룩끼룩하고 울기만 하는 줄 알고 있었던 욕심장이로 소문난 왜가리 어미가 

공동 포육(胞育)으로 사랑. 겸손, 포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왜가리들의 유아원을 보는 듯한 광경이였다.






이 지구상에 사는 동식물들 중에 오직 인간들만이 

타종교에 대하여 비관용적인 인식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뿌리인 기독교와 이슬람은 그 시작부터 종교영역 다툼을

하였으며 현재까지 약 일천육백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 어린 왜가리떼들도 종교에 대한 영역다툼을 하고 있을까?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식물들에게는 종교가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답은 "종교 영역다툼이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짐작되나, 

아직 동식물들에게 종교라는 세계가 있는지에 대하여서는 

그리 깊이 있는 연구를 한 실적이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속단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다른 어미가 부화한 어린 왜가리떼를 이끌고 물고기잡이

훈련과 비행훈련을 시키고 있는 한마리의 어미 왜가리가

보여준 사랑은 자비(慈悲)로, 겸손은 하심(下心)으로,

포용은 통섭(通攝)과 동사섭(同事攝)으로 본다면  기독교나 불교가

추구하고 있는 인류공동선을 위한 이행목적이나 실천 또는 보현행(普賢行)은 

용어만 다를 뿐, 서로 일치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 오랫동안 고대문명교류의 인연이 서로에게서 나타나고 있음이다.



카톨릭의 프란치스코 교종(敎宗)님의 명동성당에서의 미사 

<평화와 화해를 위한 기도>가 아미타불의 법장비구 48대서원에서도 

 같은 뜻으로 광범위하고 심도깊게 비유되고 있음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과거와 현재에서 인연의 쌓임의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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