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7. 07:55ㆍ우리 이웃의 역사
강연장을 찾았다.
강사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였다.
그는 '대항해시대'를 비롯해 많은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소위 잘나가는 교수중의 한사람이다.
2시부터 4시까지 준비해 온 슬라이드를 보야주며
컬럼버스의 탄생에서 부터 4차 항해를 마칠 때까지의
시대상황과 그가 추구한 기독교적인 정신세계를
집중 조명하여 흥미롭게 설명해 나갔다.
지금 남아있는 컬럼버스의 초상화는 71점이지만
모두 후에 그려진 것으로 당시의 실제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으므로
아무도 그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아 출신으로 당시 공민학교를 다녔다고 추측되나
많은 책을 사 모아 독학으로 자신의 지식세계를 넓혀갔다고 한다.
그가 탐독한 책중에는 '이마고 문고'가 있는데
약 900여군데 토를 달아놓았다고 한다.
그 만큼 관심을 가지고 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당시에 지구구형설이 보편화 되어 서쪽으로 인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다만 지구의 크기가 작다고 생각되어 스페인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가면 일본이 나오고
또 다시 조금 더 나아가면 중국이 나올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미국 동부 해안선이 있는 곳에 중국 땅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함)
포르투갈왕을 만나서 자신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스페인 이사벨라여왕을 찾아가 지원을 부탁하여 배 3척을 꾸렸다.
스페인 왕실에서도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이사벨라여왕의 패물을 전당포에 맡겨
그 돈으로 지원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이사벨라여왕도 컬럼버스의 성공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미지의 땅과 금의 발견 등)
만약 포르투갈이나 영국, 네들란드 등 다른 나라가 차지하는 것이 두려워 그와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1차 항해시 중남미 지금의 트리니다드 앤드 토바고에 도착하여
육지를 처음 발견하고 산 봉우리 세개가 겹쳐 보인다고 하여
섬 이름을 트리니다드(3봉)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오리노코강에서 흘러나오는 큰 민물을 보고는
상류에 에덴동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에 크리스토퍼 가 들어가는 것은 크리스토퍼 성인의 날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측되며
크리스토퍼는 예수를 안고 강을 건넜다고 알려져 있는 성인이다.
그래서 그는 외국으로 나가 금을 수집하여 부를 축적하여 그 돈을 십자군을 조직하고
스페인에서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낼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까지
기독교세계를 구축하겠다고 결심한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컬럼버스는 1892년 와싱톤 어빙이 쓴
컬럼버스의 생애와 항해라는 책에서 많이 신격화된 영향이라고 한다.
한편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한 살육과 착취 등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그의 원대한 계획과 추진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만 하지 않는가.
시원한 가을에 컬럼버스에 대한 이야기 책이라도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한다.
‘신대륙에 매독 전염’ 컬럼버스 일행 판명 |
에머리ㆍ미시시피대 유골분석 결과 |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컬럼버스 일행이 그 곳에서 매독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가설은 지금까지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최근 유골분석 연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이 보도했다. 미국 에머리대학과 미시시피 스테이트 대학 연구진은 `매독 신대륙 도래설'의 반박 자료로 제시됐던 1492년 이전의 유럽인 유골 50구에 관한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매독의 증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형질인류학 연감 최신호에 발표됐다. 유럽에서 매독의 전염 사례가 처음 나타난 것은 1495년 나폴리를 침공한 프랑스의 샤를 8세의 군대에서였다. 성행위로 전파되는 매독은 이어 전 유럽을 휩쓸었고 많은 나라들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했다. 신대륙 기원설을 믿지 않는 학자들은 컬럼버스의 선원들이 신대륙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유럽에도 매독이 있었지만 1500년까지는 한센병처럼 살이 썩어 들어가는 다른 병과 구별이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여러 문헌 연구와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컬럼버스 일행이 매독 전파의 주범임을 입증해 왔지만 이번엔 문제의 유골들에 관한 자료를 더욱 면밀히 분석했다. 연구진은 또 해안지대 주민들에게서 매독의 기준에 부합하는 16건의 사례가 확인됐지만 이들은 생전에 많은 해산물을 먹은 탓으로 유골의 탄소방사선 연대가 실제보다 몇백년, 심지어 몇천년이나 오래 전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1492년 이전의 매독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1492년엔 유럽에서 새로 들어온 여러 종류의 질병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절멸 상태가 됐고 반대로 아메리카의 질병이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는 질병의 세계화가 현대의 것만이 아님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
컬럼버스 교역 / 데일리전북 2009. 11.12. 기사
컬럼버스 교역이란 말을 아시는지 컬럼버스가 신대륙발견하고난후 유럽문물이 대거 신대륙으로 이동(교역)하게된 역사적 전환점을 말하는데 이 이동경로는 물자교역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이동 생태계의 이동 특히 천연두등 병의 이동경로를 말합니다 이 경로 차단이 현재 동식물 검역소의 기원이 되었지만 그 당시는 그런 제도적장치가 없어 매독이란 성병이 유럽에서 신대륙 원주민에게 파급되었고 토마토 고구마 등 과일의 재배지가 파급된것과 초코릿이 유럽으로 전파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학문적으로 컬럼버스교역이라 합니다 바로 이런것이 컬럼비아 교역이라 합니다 세계사적으로 기계문명의 이동경로가 되었습니다 . |
‘신대륙에 매독 전염’ 컬럼버스 일행 판명 |
에머리ㆍ미시시피대 유골분석 결과 |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컬럼버스 일행이 그 곳에서 매독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가설은 지금까지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최근 유골분석 연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이 보도했다. 미국 에머리대학과 미시시피 스테이트 대학 연구진은 `매독 신대륙 도래설'의 반박 자료로 제시됐던 1492년 이전의 유럽인 유골 50구에 관한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매독의 증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형질인류학 연감 최신호에 발표됐다. 유럽에서 매독의 전염 사례가 처음 나타난 것은 1495년 나폴리를 침공한 프랑스의 샤를 8세의 군대에서였다. 성행위로 전파되는 매독은 이어 전 유럽을 휩쓸었고 많은 나라들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했다. 신대륙 기원설을 믿지 않는 학자들은 컬럼버스의 선원들이 신대륙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유럽에도 매독이 있었지만 1500년까지는 한센병처럼 살이 썩어 들어가는 다른 병과 구별이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여러 문헌 연구와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컬럼버스 일행이 매독 전파의 주범임을 입증해 왔지만 이번엔 문제의 유골들에 관한 자료를 더욱 면밀히 분석했다. 연구진은 또 해안지대 주민들에게서 매독의 기준에 부합하는 16건의 사례가 확인됐지만 이들은 생전에 많은 해산물을 먹은 탓으로 유골의 탄소방사선 연대가 실제보다 몇백년, 심지어 몇천년이나 오래 전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1492년 이전의 매독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1492년엔 유럽에서 새로 들어온 여러 종류의 질병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절멸 상태가 됐고 반대로 아메리카의 질병이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는 질병의 세계화가 현대의 것만이 아님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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