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16. 22:03ㆍ우리 이웃의 역사
과연 어떻게 말하였을까? 하는 것이 궁금하다.프리드리히 니체는 (1844-1900)는 개신교 목사의 독자로 태어나 당시 나이21세로 생철학자 쇼펜하워(1788-1860)의 의지와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많은영향을 받게 된다.
당시 24살때 부교수로 하여 ,라이프찌히 대학은 논문이나 시험없이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이었다.
다음에 1870년 26살때 바아젤대학 정교수로 발탁한다. 27살때 <비극의 탄생>을 집필해 28살에 출간하여
1878년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출간하고, 1881년 여름에 알프스의 실스 마리아 호숫가를 산책하던 중
모든 것은 끊임없이 윤회한다라는 화두을 얻게 된다.이는 인생들에 삶등에서 영원히 반복하는 영원희귀인 것이다. 1883년에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집필하면서 1885년그의 나이 41살에 그 책을 완성하게 된다.
본 내용에서 보면 神은 죽었다. 라는 그의 명언이 탄생한다. 또한 1885년에는 그리스도을 비판하는
<反그리스도교인과 이 사람을 보라>를 저술한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왜 나는 이토록 영리한가?
왜, 나는 이토록 좋은 책들을 쓰는가? 등에 자신의 몰입에 정의을 두면서, 1889년에는 길거리에서
발작을 일으킸는데 .이는 니이체가 21살때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쾔론 관광여행 중 유곽에 발을 딛게 되고
라이프찌히에 돌아와서도 몹쓸 병에 걸리게 된다 .하여 1889년 이르러 병이 악화하면서 혼수상태로 누워서
생활을 하게된다.
이는 역동적인 니체 사상은 힘에 의지, 영원희귀 , 超人-The Superman 이 주요 개념인 것이다.
니체는 초인은 힘에 의지에 산다. 삶은 적극적으로 힘을 얻으려고 하는 독창적 의지을 의미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인 것이다 .하여 초인은 신이 죽었다고 보았다. (신은 없다라고 정의 해 두려는가?)
그리하여 그의 저술에서 기독교적 가치들을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게 된다
~~~~보라,내가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리라 초인이란 대지의 참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는 당연히 말해야 한다.
--초인이야말로 대지가 지닌 참뜻이어야 한다고.형제들아 ! 나는 그들에게 간절히 원한다.
--대지에 충실하여라. 그리고 저 天上의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말라,
그들이야말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독을 주려는 자들이라.
그들이이야말로 생명의 모멸자요,소멸되는 자 ,또 스스로 독을 품은 자들이다 .
대지는 그와 같은 사람들에 지쳐 버렸다.그들로 하여금 떠나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지난 날에는 신을 모독하는 일이 최대의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럼으로써 그들 모독자들도 함께 죽었다.
한때는 영혼이 육체을 모독했다. 그 시대에 있어서는 이 모독이 가장 큰 것이었다 .
--영혼은 육체가 여위고, 처참해지고 그리고 굶주리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말하라,~~~그대들의 영혼은 실제로 빈곤의 불결과 가련한 쾌적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여기서 정의와 평론을 내리자면 니이체는 신이 죽었다라고 하는 그의 저술에서 본 바와 같이
비단 그리스토적인 神뿐 아니라 , 풀라톤 이래 이상 모든 일체가 소멸하였다라는 것에
이 여름에 하안거의 화두에 정의을 두면서 .인간은 인간들만에 인간적인 삶들에 여념없이 행하라는
철저한 현실을 망각하지 마라,함을 강조해 두련다.이것이 오늘의 일이요, 내일에 희망들의 일인 것이다,
글 ;장강/강일문,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요약 독일 철학자 시인
설명
독일 철학자·시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5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나움부르크로 이사하였다. 포르타 김나지움 시절에는 음악과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하였고, 1864년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古典文獻學)을 배웠으나 A.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시절 동안 A.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고, R. 바그너와 음악을 통해 깊은 관계를 맺었다. 1869년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스승 리츨의 추천을 받아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이 터지자 위생병으로 종군하였으나 병에 걸려 제대한 뒤 평생 병고에 시달리는 몸이 되었다. 당시 유명한 작곡자로 알려졌던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으며, 특히 비극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를 듣고 매혹된 나머지 처녀작인 《비극(悲劇)의 탄생(Die Geburt der Trag?die, 1872)》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비극의 정신이 진실한 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의 두 가지 원리로 그리스비극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을 현대에서 부흥시킨 것이 바그너의 음악임을 논하여 그의 신예술운동을 지원하려 하였다. 뒤이어 발행된 《반(反)시대적 고찰(Unzeitgema?sse Betrachtungen, 1873~76)》 4편은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독일 국민과 문화에 통렬한 비난을 가하는 한편 유럽문화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천재(天才)를 위대한 창조자로서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1편은 헤겔학파의 신학자 D.F. 슈트라우스의 《교양(敎養)을 가진 속물(俗物)》에 대한 공격으로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2편은 역사를 기념비적·골동품적·비판적인 3종류로 구분한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이었다. 3편은 쇼펜하우어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니체 자신의 실존적 결의의 표명이기도 하다. 4편은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서 공연한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관한 찬사이다. 그러나 이 저술을 계기로 바그너와 절교하였으며, 이리하여 천재적인 재질에 의하여 새로운 게르만적 헬레니즘문화를 세우려고 한 낭만적 이상은 무너졌다.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1879년 대학에서 퇴직하고 알프스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해변을 전전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사색을 계속하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78~80)》 《서광(Morgenr?te, 1881)》 《기쁜 지혜 (Die fr?hliche Wissenschaft, 1882)》 등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들은 잠언(箴言)과 사상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종래의 낭만주의를 파괴하고 실증주의적·심리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다. 1883~1885년에 걸쳐서는 전에 알프스 산중에서 깨달은 <영원회귀> 사상을 기반으로 한 <초인(超人)>의 이상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83~91)》를 저술하였다. 이 저서에 니체의 사상이 상징적으로 모두 표현되고 있으나, 이 추상성에 불만을 품고 구체적 논문식으로 해설한 《선악(善惡)의 피안(彼岸, Jenseits von Gut und B?se, 1886)》을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는 고귀한 정신적 귀족의 육성을 주장하고 장래의 위대한 입법자를 암시하는 한편 퇴폐적인 근대의 여러 현상과 단순히 객관에만 치우치고 있는 과학정신, 동정(同情)에 기반을 두었다는 그리스도교적 도덕, 역사의식의 과잉 등을 예리하고 독특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 후 《도덕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1887)》가 유럽 윤리사상의 비판서로서 출판되었으며, 이때 이미 《권력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가 준비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사망 후에 유고(遺稿)만이 수집되어 출판되었다. 1888년에는 《바그너의 경우》 《우상(偶像)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안티 그리스도》 《니체와 바그너》 등이 저술되었다. 그 중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1889년 1월 정신착란 증세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동생의 간호 아래 여생을 보냈다. 니체는 근대유럽의 정신적 위기를 일체의 의미와 가치의 근원인 그리스도교적 신의 죽음, 즉 <신은 죽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사상적 공백상태를 새로운 가치창조에 의해 전환시켜 사상적 충실을 기했다. 이리하여 신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원회귀를, 선(善)과 참(眞)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쁨 대신에 심연(深淵)을 거쳐서 웃는 인간의 내재적(內在的) 삶으로 가치를 전환시켰다. 그의 사상은 원숙한 문장과 함께 주로 문학자들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시대 변천과 함께 사상적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의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그들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가장 독특한 저서인『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짜라투스트라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주인공의 이름은 페르시아의 전설적인 예언자이자 배화교로 번역되는 고대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를 본뜬 이름이다. 우리는 그 이름에서 유럽문화에 대한 니체의 반성과 아울러 동방의 사상,생활,잠언에 대한 그의 애착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니체는 사상적으로 그 내용을 조로아스터교와 무관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은 니체의 모든 사상을 집약적으로 기술하고 있어서 그의 사상의 진수를 보여 준다. 그 뿐만 아니라 서사시적인 구성의 문장 또한 유려하여 어떠한 문학서, 어떠한 시보다도 더 문학적이고 시적이다. 즉 내용은 철학적이면서도 그 텍스트의 구성은 외형적으로 문학적 형태를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의 애정이 가장 뜨겁게 표출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구성자체가 아주 특이하다. 제1부는 짜라투스트라의 서설과 설교가 들어 있다. 제2부, 제3부, 제4부는 어떠한 큰 제목을 부과하지 않고 단락별로 주제를 붙여 전개한다. 서설과 제4부를 제외하고는 서로 전후의 관련성이 없는 듯 독립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적으로 제1부는 신의 죽음을 전개한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말할 때는 서양의 모든 형이상학적 전통과 가치의 죽음을 지칭한다. 먼저 서설에서 30세의 나이에 고향과 그 호수를 떠나 입산하여 10년간 산 속에서 고독을 즐기던 짜라투스트라는 새로운 가치창조라는 사명감을 갖고 40세의 나이에 산에서 내려온다. 그는 인간세계로 돌아와서??얼룩소??라는 별명을 붙인 도시에서 자극극복(초인)의 이상을 설교하지만 일반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제2부는 자기극복으로서의 힘에의 의지를 전개한다. 자기극복의 의지와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 니체의 초인이다. 각자가 본래적 자기를 자기극복의 행위로써 실현한다. 따라서 자기극복은 자기를 넘어서는 행위에 의해 실현되어야 할 본래적 자기를 의미한다. 다시 산중으로 들어간 짜라투스트라는 인간세계에서 가르침이 왜곡되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하산한다. 이때 지복(至福)의 섬들이 그의 활동무대가 된다. 여러 가지 설교를 통해 그는 자기극복을 설교하고 자기극복의 절대자들에게 맹타를 가한다. 이때의 영원회귀사상이 그의 내면을 성숙해 간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이러한 사상을 전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자각하고 좀더 성숙한 인식을 위해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제3부는 영원회귀가 그 중심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영원회귀사상은 이론적 형태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세계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순환이며 회귀라는 사상은 처음부터 객관적 이론으로 제시되기 어려운 이론인지 모른다. 삶의 한순간일망정 충실하게 사는 것, 이것은 어쩌면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운명애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여러 곳을 방랑하며 산으로 돌아간 짜라투스트라는 고독한 생활 속에서 영원회귀 사상의 성숙을 기다리며 삶의 절대적 긍정을 노래한다.
제4부도 3부에서와 같이 영원회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장은 가장 희곡적인 구성을 갖고 있다. 이제 짜라투스트라는 산으로 내려오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동굴생활 중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일곱 명의 보다 높은 인간들을 만난다. 아직 자기극복은 아니지만 고뇌하는 인간들에게서 짜라투스트라는 동정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은 짜라투스트라에게 새로운 유혹이요 시련이다. 그는 결국 동정이라는 마지막 시련을 이기고 홀로 이제 성숙한 영원회귀사상의 고지를 위해 산을 떠난다. 짜라투스트라의 종말은 수난이나 순교도 아니고 미래와의 결합에 의한 자기영원화라는 상징이다. 따라서 그는 미래가 풍부한 새로운 귀족이 창조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저서의 핵심은,신의 죽음과 자기극복(초인)이 놓여 있다. 그는 인간은 그 스스로가 초월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것이라고 보았다.
출처 :에피큐리안 원문보기▶ 글쓴이 : 벨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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