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나무 이야기 / 칠엽수 - 마로니에공원의 마로니에는 일본 수종인

2014. 10. 8. 01:16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문학청춘 2001년 겨울호에 실린 오병훈선생님의 '칠엽수와 마로니에' 원고입니다.- 그림이 있는 나무 이야기 / 칠엽수 - 마로니에공원의 마로니에는 일본 수종인  역사민족(국학한류)

2011/12/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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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나무 이야기 / 칠엽수



마로니에공원의 마로니에는 일본 수종인



오 병 훈

  

    칠엽수(七葉樹)는 일본 원산의 낙엽교목이다. 소엽은 넓고 길며 가장자리에 부드러운 톱니가 있고 7~9장씩 맞붙어 한 장의 잎을 이룬다. 긴 잎자루가 있으며 새로 자란 가지 끝에서 몇 장씩 어긋 달린다. 잎몸의 길이는 큰 것이 20~30㎝나 되는 것도 있다. 넓은 잎은 여름철 녹음수로 인기가 있다.

 

  초여름에 위를 향해 피는 싱그러운 꽃이 좋아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가로수나 공원용수로 널리 심는다. 칠엽수를 두고 흔히 마로니에(marronnier)라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겉모습이 비슷하긴 해도 마로니에는 유럽 남부 원산이고 칠엽수는 일본 원산이다.

 

  칠엽수는 공중습도가 많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 장마기 전까지는 잘 견디지만 장마가 끝나고 공기가 건조해지면 잎 끝이 마르기 때 문에 언제나 깨끗한 잎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가로수로 심어도 고운 단풍을 감상할 수는 없다.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20~30m까지 자라는 대형수종이다. 겨울눈은 짙은 갈색을 띤 자주색이고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부동액(不凍液)이 묻어 있어 내한성이 강한 편이다. 가을이 잎이 누렇게 물들 때쯤 한 꼬투리에 열매가 3~5개씩 주저리를 이룬다. 열매는 완전히 익으면 껍질이 벌어지고 속에 든 씨가 밖으로 빠져나온다. 지름 5㎝ 정도로 굵은 편이고 충실한 열매에는 3알씩 들어 있으며 밤톨과 같이 겉면에 광택이 있다. 밤의 밑면이 회색이듯 칠엽수 열매 또한 밑면이 연한 잿빛이고 꼭지에 암술자국이 없이 미끈하다.

 

  열매는 겉껍질을 벗기고 절구에 빻아 베보자기로 즙을 짜낸다. 이 즙은 처음에는 짙은 갈색이지만 물을 부어가면서 우려내면 차츰 맑게 된다. 밑에 가라앉은 앙금을 말리면 뽀얀 칠엽수 열매 가루가 되는데 묵을 쑤어먹거나 만두피, 빵, 떡을 해 먹을 수 있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열매를 군밤처럼 구워먹거나 쪄먹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이다.

 

  열매에는 강한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심한 구토와 배앓이를 할 수 있다. 반드시 물에 오랫동안 우려내서 타닌과 독성을 빼 낸 뒤에 먹어야 한다. 이러한 번거러운 일을 할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먹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아빠가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공원에 떨어진 칠엽수 열매를 주워 왔다. 봄에 심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그 집 아이 엄마가 밤인줄 알고 몇 개를 구워먹었다. 처음에는 몹시 쓰다고 느꼈지만 쓴 음식이 몸에는 좋다고 했으니 그냥 먹었다. 얼마 후 심한 구토와 설사를 하면서 창자를 꼬는 듯한 복통을 호소했다. 놀란 식구들이 119를 불러 병원으로 모셔갔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아빠는 칠엽수 열매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위험천만한 일을 겪은 셈이다. 이러한 열매가 해마다 가을이면 공원이나 길가에서도 쉽게 발길에 차인다. 먹음직스럽게 생겼다고 해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칠엽수 꽃차례는 원추형을 이루며 가지 끝에서 위를 향한다. 자잘한 꽃은 5장의 꽃잎이 모여 있고 아래를 향해 핀다. 수술이 길게 밖으로 빠져나오며 꽃잎 안쪽에 분홍색 점이 있어 아름답다. 꽃차례는 크고 푸짐하지만 워낙 싱그러운 잎에 묻혀 바로 눈에 띄지는 않는다. 나무가 오래 된 것은 많은 꽃이 피고 향기도 좋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꽃에서는 워낙 꿀이 많아 일본에서는 중요한 밀원식물로 치는 나무이다. 높이 20m 정도의 나무 한 그루에서 하루에 10리터나 되는 꿀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고마운 나무임에 틀림없다.

 

  칠엽수의 속명 Aesculus는 라틴어의 ‘먹다’는 뜻인 aescare에서 유래된 말로 처음에는 참나무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열매를 식용 또는 사료로 썼으므로 식용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말이 이 나무의 열매를 잘 먹기 때문에 영어로 ‘말의 밤’이라는 뜻이라 하여 horse nut라고 부른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심은 마로니에(가시칠엽수)라는 큰 나무는 마로니에가 아니고 일본 원산의 칠엽수이다. 우리 모두 칠엽수를 마로니에로 잘 못 알고 있다. 대학로 옛 서울대 문리대 본관 건물터에 남아있는 칠엽수는 원래 두 그루였다. 1975년 서울대를 지금의 관악캠퍼스로 옮길 때 한 그루를 가져가고 현재 한 그루만 남아있다.

 

  1929년 4월 5일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할 때 그 기념으로 일본 수종인 칠엽수를 대학의 가장 중심에 심었다. 바로 식민지 조선에 일본 혼을 심고 조선 젊은이들에게 왜색 사상을 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 일본에서 가져온 칠엽수를 두고 일본특산식물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유럽 원산의 마로니에나무라고 거짓으로 알려 서울대학의 상징처럼 각인시켰다.

 

  지금이라도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은 칠엽수공원으로 이름을 바꾸던지 마로니에로 잘 못 알려진 노거수는 칠엽수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국립서울대학교의 상징도 일본나무에서 벗어나 우리 소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자생수종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길이고 우리의 주체성을 찾는 길이 아니겠는가.

 

  서울대학의 상징이 칠엽수이고 그 칠엽수를 관악 캠퍼스로 옮긴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대학로 문화마당의 상징수도 칠엽수가 되고 말았다. 그 칠엽수가 자라는 공원에 가짜 마로니에공원을 세운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마로니에 공원의 이름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 머릿속에 당연한 것처럼 남아 있는 작은 것이라도 거짓이라면 바로 털어내야 한다. 그것이 일제의 잔재라면 더욱 그렇다. 한국문인협회에서 해마다 치르는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도 느티나무 백일장이나 소나무 백일장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마로니에가 아닌 칠엽수 백일장이라고 할 수야 없지 않은가.

 

  또 관악 캠퍼스에 옮겨 심은 칠엽수도 더 이상 마로니에가 아니므로 대학의 상징으로 떠받들 아무런 이유가 없다. 동문들의 모임 마로니에회나 문리대의 동아리모임 마로니에, 동인지 《마로니에》 같은 것들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남의 일에 제삼자가 나서서 이름까지 시비를 걸 이유는 더욱 없지만 서울대학이 한국을 대표할만한 명문이라면 제삼자라도 일제의 잔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같은 칠엽수속(七葉樹屬)에 들어있는 유럽원산의 마로니에나무는 열매 껍질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말로는 가시칠엽수 또는 유럽칠엽수라고도 한다. 잎과 꽃으로는 쉽게 구분이 되지 않지만 열매 껍질은 분명히 다르다. 원래 마로니에는 빙하기 이전부터 유럽 전역에 분포했던 나무였는데 빙하기에 사라지고 남부 발칸반도 같은 따뜻한 지역에만 겨우 연명하였다. 그후 빙하기가 끝나고 다른 나무들이 북으로 옮겨 갈 때 마로니에는 종자가 굵어 높은 산맥을 넘지 못하고 루마니아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16세기 켈트족이 이 나무를 좋아하여 심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마로니에는 분홍색 꽃이 피고 가을에 주황색으로 물드는 단풍이 곱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심으면 칠엽수처럼 잎 끝이 마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 어렵다. 프랑스에서는 가로수로 이 나무를 많이 심기 때문에 도시에서 쉽게 눈에 띈다. 초여름의 붉은 꽃이 아름답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며 가을에는 단풍이 곱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거리 몽마르트르에서는 마로니에 그늘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수많은 시나 문학작품의 무대를 장식하는 나무이며 파리의 로맨틱한 풍광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나무가 되었다.

 

  마로니에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12년이다. 당시의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황제 회갑 기념으로 이 나무의 묘목을 진상하면서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 덕수궁 석조전 옆에 두 그루가 지금도 살아있다.

 

  노래 속에서는 마로니에 꽃이 필 때 사랑을 했고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헤어졌다고 했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 내리 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마로니에 가로수 밑에서 떠나간 님을 그리며 젊은 날의 추억을 상기하는 사내의 심경이 잘 드러난 노랫말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곤 한다.

 

  유럽에서는 마로니에 종자를 동맥경화, 혈전성 정맥류 장애, 외상, 종창 등의 약재로 쓴다. 또 목재는 치밀하지 못해 잘 썩고 뒤틀리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무늬가 독특하고 광택이 좋아서 건축 내장재나 공예재, 가구재, 합판재 등으로 이용된다. 그리고 데생할 쓰는 목탄도 마로니에 목재로 만들며 약품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마로니에 잎이 뒹구는 만추의 계절이다. 마로니에 나무 그늘에서 낙엽의 의미를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림 설명


  칠엽수는 일본 원산의 낙엽활엽수로 우리나라의 중부 이남에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서울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있는 노거수 마로니에는 일제 때 심은 일본특산의 칠엽수이다. 높이는 30m에 이르고 5,6월에 원뿔모양의 꽃차례가 자란다.


 

 


  꼬투리에 3~5개 정도의 열매가 달린다. 껍질은 3갈래로 갈라지고 속에 든 종자는 익으면 밑으로 떨어진다.

 

 

 


  열매 겉껍질에 가시가 없어서 밋밋하다. 짙은 갈색의 열매는 표면에 광택이 있고 밤처럼 생겼지만 독성이 있어 먹을 수는 없다.


 

 


  유럽 남부 원산의 마로니에는 우리말로 가시칠엽수 또는 유럽칠엽수라 한다. 껍질의 겉면에 날카로운 가시가 무수히 돋아나 있다.